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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RSS 게시판 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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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This is RSS Board.]]></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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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참여 관찰자 증언-------------------------</title>
								<link>/bbs/cnu518/3790/1035270/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7:13.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참여 관찰자 증언</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일인(日人)사진기자의 현장 목격기.風間公一(신동아, 1985. 7)</title>
								<link>/bbs/cnu518/3790/1035271/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6:4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日人사진기자의 現場목격기風 間 公 一 (報道寫眞家)1949년에 태어나 보도사진가(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風間公一은 광주사태를 사진 취재하기 위해 현지에 내려갔다. 그는 광주에 도착 후, 5월 20일 오후 7시경부터 군대 경찰기동대와 시민과의 대치, 다음날의 총격을 목도하고, 일단 서울로 탈출한 후, 다시 광주로 내려와 진압군에 의해 진압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편집자주어둠과 함께 사태 돌변해5월 20일(화)서울에서부터 만원이 되어 출발한 야간열차가 광주역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5시 15분. 역두에</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사태 관계자들의 증언.송기숙외(월간조선, 1985. 7)</title>
								<link>/bbs/cnu518/3790/1035272/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6:34.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光州사태관계자들의 證言이 증언은 광주사태를 직접 겪은 관계자들의 체험담을 본지 취재기자들이 정리한 것이다.月刊朝鮮특별취재반證言者宋基淑(당시 수습위원)金鍾培(당시 학생투위 위원장)李梁賢(당시 학생투위 기획위원)南東成(당시 전투경찰관)曺喆鉉(신부)■宋基淑(50, 전남대교수, 당시 수습위)계엄군이 확산되고 계엄군이 학교에 진주하고 난후 5월18일에 벌어진 상황을 나는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5월19일은 통근버스가 정상 운행되어 9시경 학교에 출근했다. 물론 교수와 학교직원들만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학생들이 맞는 광경을 직접 눈으로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쟁점!무엇이 광주의 진상인가-증언, 수기.윤재걸(신동아, 1988. 3)</title>
								<link>/bbs/cnu518/3790/1035273/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6:11.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民和委증언 공수대원 手記 국방부발표 NCC보고서 光州側문서 등을총동원한 「진상규명」을 위한 질문서爭点! 무엇이 「光州」의 眞相인가尹 在 杰(東亞日報出版局次長署理)民和委, 光州시태 본격 거론지난해 연말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부터 80년 5월의 「광주사태」에 관한 논의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분분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盧泰愚대통령 직접 지시에 의해 만들어진 민주화합추진위원회(약칭 民和委)에서 나오고 있는 관련당사자들의 증언들은 국민들에게 이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이 증언과 논의를 통해 국민들은 사태의 근본적인 치</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민화위에서 털어놓은 증언록.김성수,소준열,전계량,전옥주,김영철,이광영(월간경향, 1988. 3)</title>
								<link>/bbs/cnu518/3790/1035274/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5:53.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입체특집光州사태를 再審한다.民和委에서 털어놓는 증언록 진상조사후 명예 회복을  金成洙 사태수습에 최선 다했지만  蘇俊烈 民和委에 무엇 기대하랴  田桂良 간첩누명에 拷問까지  全玉珠5 18 光州사태 계엄군 手記 다같은 피해자, 참회의 마음을  金永哲5 18 光州사태 시민군 手記錦南路 10일, 스님이 겪은 煉獄 李光榮입체특집/光州사태를 再審한다.지난 1월 11일 구성된 民主和合推進委員會는 당초  들러리 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을상당부분 불식시키면서 그동안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한 지금까지  禁忌 나  聖域 으로 여겨져 왔던 사안들</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주역 36인의 증언/내가 겪은 80년 5월의 광주.홍남순외(월간조선, 1988. 3)</title>
								<link>/bbs/cnu518/3790/1035275/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5:27.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光州」주역 36人의 증언내가 겪은 80년 5월의 光州「光州」를 어떻게 풀까. 80년 5월, 세계를 진동시킨 그 엄청난 사건은 「義擧」일까, 「抗爭」일까 . 6共和國의 출범을 가로막고 있는 이 難題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眞相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에 月刊朝鮮은 당시 이른바 「市民軍」의 대표, 수습위원, 총을 들고 싸웠던 학생, 전투경찰관, 간호원, 시민등 36명으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채록했다.이 증언은 85년 5월 월간조선 특별취재반이 광주에 특파돼 취재한 것으로, 증언자들의 나이와 직책등은 당시의 것이다.月刊朝鮮 특별취재반吳효</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민화위의 「광주청문회」.한동윤(월간조선, 1988. 3)</title>
								<link>/bbs/cnu518/3790/1035276/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5:07.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民和委의 「光州청문회」정부측과 광주사태 당사자들의 생생한 현장증언. 8년만에 광주사태를 정식논의한 民和委는 「광주사태에 대한 정부 사과」, 광주사태의 성격을 「광주학생-시민투쟁」으로 재규정해 주도록 정부에 건의했다.韓 東 潤 연합통신 정치부 기자8년만의 역사적 재평가 작업국민 모두에게 「어두운 기억」일 수밖에 없는 광주사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광주 사람들에게는 통곡의 진원이었고 운동권에게는 투쟁 이데올로기의 출발점이었으며 제5공화국의 집권세력에게도 끊임없이 제기된 정통성 시비의 업보였던 80년 5월의 대사건이 금기의 벽을 넘어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죽은자가 산 자에게 말한다/5월 27일, 그 마지막 새벽까지 총을 들고 싸웠던 항쟁 참가자의 증언 위성삼(국민신문, 1988, 10</title>
								<link>/bbs/cnu518/3790/1035277/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4:42.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 18증언-우리는이렇게 싸웠다-5월 27일, 그 마지막 새벽까지 총을 들고 싸웠던 항쟁참가자의 증언!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한다정적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새벽 3시 30분! 도청 주변 사방에서 정적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 가두방송을 듣고 뛰쳐 나온 젊은이들이 계엄군의 포위망에 걸렸다. 어둠속에서 도청주위를 맴돌다 수백명이 체포, 사살되었다.도청 상황실에서는 자폭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한 청년이 눈물을 주먹으로 씻으며 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여기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 남아도 잡혀 죽겠지만 여기있는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월의 꿈 5월의 분노.송기숙(월간예향, 1990.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78/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4:16.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광주민중항쟁 10주년 특집□수습위원으로 참가했다가 오히려 고문등 갖은 시련을 겪었던 한 지성의 증언수기  나와 5 18 300매 전재5월의 꿈 5월의 분노宋基淑 전남대교수 소설가 1935년 전남 장흥에서 남. 전남대 국어국문과 동대학원 수료(1964)목포교대(1965 73)를 거쳐 73년부터 전남대 재직.  교육지표 사건(1978)으로 투옥, 광주항쟁때(1980)재차 투옥되어 10년구형에 5년형을 받고 복역중 이듬해 4월 3일 형집행 면제처분으로 출소. 소설로는 장편  녹두장군 을 집필중이며  자랏골의 비가 ,  백의민족 등 다수</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원천적으로 합법을 가장한 또 하나의 범죄행위/5·18군사재판과 변호인들.이재의(월간예향, 1990.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79/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3:54.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광주민중항쟁 10주년 특집 가려졌던 광주 전남 근현대사의 현장에서 엮는 대하기획증언  원천적으로 합법을 가장한 또 하나의 범죄행위 5 18군사재판과 변호인들이재의  광주일보 월간국기자  5 18광주사태에 대한 재판은  재판 이 아니라 차라리  개판 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런 재판을 할 바에야 차라리 혁명적 상황이라고 까놓고 얘기하면서 재판이라는 요식행위를 거치지 않았어야죠. 그 재판에 본의아니게 관여한 재판관들이 그후 두고두고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 역시 법조인의 한</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긴급동의, 이것만은 다시 생각하자/광주보상, 왜 하필 국민모금인가.이종오(신동아, 1991. 2)</title>
								<link>/bbs/cnu518/3790/1035280/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3:26.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특집 緊急動議, 이것만은 다시 생각하자光州보상금을 국민모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동정 베푸는 식의 발상도 그렇지만 국민이 배상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光州보상, 왜 하필 국민모금인가李鍾旿(啓明大社會大副敎授 社會學)지난해 12월 11일은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지원성금 모금 첫날이었다. 이날 정부종합청사의 중앙모금창구에는 민자당 광주지구당 위원장 5명이 각 2백만원씩 합계 1천만원을 접수시켰다고 한다.이 지원성금은 법정보상금 의료지원금 등 국고 지급 8백억원 이외에 별도의 생활지원금 7백87억원을 국민성금으로 충</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18당시 발포거부 전남도경국장의 광주비망록.이재의(말, 1994.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81/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3:05.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 18당시 발포거부 전남도경국장의 광주비망록80년 광주의 학살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하다 동빙고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자진 사표를 써야했던 5 18당시 전남도경국장 안병하씨. 그는 5공의 폭압 속에 말 못할  광주의 한 을 끌어안은 채 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지난해 광주로 완전 이주한 그의 부인이 그의 광주사랑을 잇고 있어 화제다.이재의 (광주일보 예향 기자) 5 18 피해자 된 전남도경국장지난 93년 7월 중순 이색적인 한 사람이 5 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로 신고서를 접수시켜 화제를 불러 일</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18검찰수사에 대한 5공측 이양우변호상의 입장(월간조선, 1995. 9)</title>
								<link>/bbs/cnu518/3790/1035282/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2:0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인터뷰 5 18 검찰수사에 대한 5共측 李亮雨변호사의 입장5共 탄생은 국가보위 세력과 民主化세력간의 갈등의 결과全斗煥 前대통령의 법률고문인 李亮雨변호사는 「검찰의 5 18수사결과는 법률판단을 회피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또 新軍部집권과정에서 國憲문란 목적의 폭동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란」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李변호사는 80년 봄에 新軍部라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집권 시나리오도 없었다고 주장한다.질문 : 趙 甲 濟 月刊朝鮮부장정리 : 金 容 三 月刊祖先기자全斗煥 前대통령측의 검찰 제출 답변서, 崔圭夏 前대통령도</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조철현신부의 검찰 수사결과 반박 인터뷰/「우리는 용서할 상대가 없다」.김용삼(월간조선, 1995. 9)</title>
								<link>/bbs/cnu518/3790/1035283/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1:4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曺喆鉉 신부의 검찰 수사결과 반박 인터뷰『우리는 용서할 상대가 없다』曺喆鉉(세례명 備吾)신부는 5 18관련 검찰수사에 대해 일면 수긍하면서도 『학살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결론』이라며 불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사망자 2천명 설, 헬기 기총소사도 사실이며, 검찰이 밝힌 사례외에도 숱한 양민학살이 저질러졌다는 것이다. 曺신부는 金永三정부는 광주의 진실을 밝힐 수 없다며 차기 정권에 그 처리문제를 기대하고 있었다. 누가 집권하든 광주문제의 부담은 계속 이어지게 된 셈이다.金容三 月刊朝鮮 기자金永三 정부에 기대 않는다광주로 가는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한승원감사원장/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재심필요하다.박성원(신동아, 1998. 6)</title>
								<link>/bbs/cnu518/3790/1035284/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1:21.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인터뷰 韓勝憲 감사원장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재심 필요하다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한승헌(韓勝憲)감사원장은 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된 뒤 계엄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4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30여년간 군사통치 과정에서 숱한 시국사건 변호를 맡았던 한감사원장은 이 사건을 포함해 여러 차례 구속되거나 연행돼 수난을 당하기도 한 시국사건의 산 증인.한승헌 감사원장은 인터뷰에서 인권변호사 출신답게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법적 문제점과 그 정치적 성격 등에 관해 조목조목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외국인이 증언하는 80년 5월 광주/광주의 마지막날 내가 본 그 현장.헨리스코트 스톡스(신동아, 1989. 50)</title>
								<link>/bbs/cnu518/3790/1035285/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0:55.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특별기획 80년 5월 光州 외국인이 證言하는 「光州」의 마지막 날, 내가 본 그 現場헨리 스코트 스톡스 (당시 美「뉴욕 타임즈」東京特派員)―예술은 하나의 사치이다. 그것은 침착하고도 깨끗한 손을 필요로 한다―     「귀스타프 플로베르」얼마전 런던에서 만난 한 은행가는 자신이 얼마전 북한의 외채 10%를 사들였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를 내게 들러주었다. 그의 말인즉 9천만달러에 가까운 북한외채를 담보로 약 8백만달러를 대출했는데, 만약 그 외채증서가 상환된다면 그의 은행은 8천2백만달러를 손쉽게 번다는 것이다.글세, 그러자면 몇해를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외국인이 증언하는 80년 5월 광주/광주사망자 3백명은 넘는다.필립 퐁스(신동아, 1989.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86/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0:27.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특별기획 80년 5월 光州 외국인이 證言하는「光州」사망자, 3백명은 넘는다필립 퐁스(프랑스 「르 몽드」記者)「학살」몇 시간 후 光州도착1980년 5월 21일 아침, 우리가 광주에 막 도착해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당시 받은 첫인상이 떠오른다. 폭력이 거의 없는 민중봉기와 거리를 돌아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은 정도의 투쟁을 전날 밤에 겪은 도시의 모습일 뿐이었다. 당시 「뉴욕 타임즈」지의 특파원이었던 동료기자 심재훈과 자동차로 새벽에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전날 우리는 단지 광주에서</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외국인이 증언하는 80년 5월 광주/광주는 전두환 집권의 단계적 쿠데타였다.마크 피터슨(신동아, 1989.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87/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40:11.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특별기획 80년 5월 光州 외국인이 證言하는 「光州」는 全斗煥집권의 단계적 쿠데타였다「마크 피터슨」(美브리검영大극동문제연구소)□編輯者 註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주한 美대사 「글라이스틴」과 美8군사령관 「위컴」의 「광주」관련증언을 기록한 미국학자의 논문이 최근 발표돼 「광주사태」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과 입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주목하고 있다. 웨스트뷰출판사의 광주사건논문집 『광주봉기』에 실린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 브리검영大 극동문제연구소)의 「미국과 광주사건」(Americans and the Kwan-gju In</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피터슨 목사의 광주 증언록/내가 겪은 광주, 80년 5월.아놀드 피터슨(사회평론 길, 1995.5)</title>
								<link>/bbs/cnu518/3790/1035288/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9:41.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긴급입수 피터슨 목사의 광주 증언록내가 겪은 광주, 80년 5월아놀드 피터슨 미국 남침례교 목사. 80년 당시 광주에서 선교활동이 글은 80년 5월 광주 시민에 대한 총격이 흔히 알려진 5월 21일이 아니라 5월 20일부터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광주 시민에 대해 무차별한 헬기 기총사격이 자행되었음을 주장하는 한 외국인 선교사의 기록이다. 피터슨 목사는 자신의 주장을 사진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 이 피터슨 목사의 증언록이 광주 전 신문의 지면세 대서 특필되는 동안 서울의 거의 모든 언론은 피터슨 목사의 헬기기총사격 주장을 간단히 언</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충격증언/미선교사 피터슨의 광주항쟁 현장기록/신군부,광주 폭격까지 계획했다(신동아, 1995.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89/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9:24.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충격증언미선교사 피터슨의 광주항쟁 현장기록신군부, 광주 폭격까지 계획했다○ 미공군, 미국인 구출 위해 병력특파 준비○ 사고 직후 군당국 조사, [사망자 8백32명]○ 헬기 난사 장면 사진 찍었다○ 진압군 들어올때 죽음 예감,유서 썼다필자 아놀드 피터슨 목사(50)는 침려교 선교사로 75년부터 81년까지 광주에서 활동했다.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내내 현장에 있으면서 중요 장면을 지켜봤다. 지금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그는 80년 당시의 메모와 기억을 토대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록을 작성했다. 2백자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미정부 관계자 증언</title>
								<link>/bbs/cnu518/3790/1035290/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8:47.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미정부 관계자 증언</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미국은 광주문제에 책임없다?/글라이스틴 전 주한대사, 책임회피 발언(말,1985. 6)</title>
								<link>/bbs/cnu518/3790/1035291/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8:29.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미국은 광주문제에 책임없다 ?글라이스틴 전 주한대사, 책임회피 발언월리엄 글라이스틴 전(前)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5월15일 , 미국은 80년 5월 광주 사태 당시 폭동진압을 위해 한국 육군의 광주 출동은 허가했으나 한국측이 미정부의 거듭된 경고와 자제 요청을 무시하고 무력진압을 결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에서 가진 일본 아사히신문 이와무라 특파원과의 회견에서 유엔군 지휘 하에 있는 제20사단을 광주에 파견한 것은 이 사단이 도시 군중의 취급에 익숙했기 때문에 자신이 워싱턴에 연락, 허가 했다고 말하고 , 그러나 학생과 시</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사태 당시 주한미국대사 윌리암 글라이스틴의 증언/미국은 사과할 일이 없다.안재훈(신동아, 1985. 7)-냉무</title>
								<link>/bbs/cnu518/3790/1035292/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7:59.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광주사태 당시 주한미국대사 윌리암 글라이스틴의 증언/미국은 사과할 일이 없다.안재훈(신동아, 1985. 7)-</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광주사태 전면조사 환영한다(월간조선, 1988. 7)-냉무</title>
								<link>/bbs/cnu518/3790/1035293/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7:34.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광주사태 전면조사 환영한다(월간조선, 1988. 7)</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그레그 주한 미대사 독점인터뷰/5공시절 미국의 침묵은 실수였다. 정종문(신동아, 1990.5)</title>
								<link>/bbs/cnu518/3790/1035294/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7:13.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그레그」駐韓美大使 독점인터뷰 『5공시절 미국의 침묵은 실수였다』韓國通이자 백악관通「도털드 그레그」 通韓美大使(63)는 서울에 친구가 많다. 그래서 그는 美행정부 내에서 韓國通으로 불린 韓國通으로 불린다.「부시」美대통령의 부통령시절 그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그는 동시에 백악관통이기도 하다. 한국통과 백악관통이기도 하다. 한반도 주변관계에 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중대한 국면에서 이 점은 그가 가진 강점이 아닐 수 없다.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 되는 시점을 앞두고 미국대사관 대사실에서 그를 만났다. 단순히 광주사태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위컴 미8군사령관 AP통신 익명 인터뷰(80년 8월8일)/미국 전두환 장군지지.김기철(월간조선별책부록, 1996. 1)</title>
								<link>/bbs/cnu518/3790/1035295/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6:51.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위컴 미8군사령관 AP통신 익명 인터뷰(1980년 8월8일)미국, 全斗煥장군지지1980년 8월8일 AP통신 서울 특파원 테리 앤더슨氏는 위컴 美 8군사령관과 익명을 전제로 한 인터뷰를 갖고「全斗煥장군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그를 지원할 것』이 라는 내용의 기사를 송고했다. 위컴 사령관의 익명 조건은 AP통신 보도 이후 全斗煥 장군이 발언자를 확인해줌으써 무산됐으며 美국무성은 위컴 사령관의 발언을 부인하고 나섰다.위컴 사령관은 1979년12 12 사건 때 측에서 韓美연합사의 작전통제권 안에 있던 9사단 병력을 임의로 동원한 사실 등으</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계엄군 관계자 증언-----------------------</title>
								<link>/bbs/cnu518/3790/1035296/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6:15.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계엄군 관계자 증언</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사태」당시 광주지역사령관 정웅장군 인터뷰/진상은 때가 오면 밝히겠다.윤재걸(신동아, 1987. 10)-냉무</title>
								<link>/bbs/cnu518/3790/1035297/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5:56.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광주사태」당시 광주지역사령관 정웅장군 인터뷰/진상은 때가 오면 밝히겠다.윤재걸(신동아, 1987. 10)</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정호용, 광주사태 책임자 밝히다.이태원(월간경향,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298/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5:16.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鄭鎬溶 광주사태 책임자 밝히다第6共和政의 견인차제 13대 국회의원의 총선 열기가 지난해의 대통령선거에 이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기자 大邱 西區 甲에 민정당 공천으로 출마, 민의에 수렴을 외치며 민의에 호소하고 있는 정호용씨를 만나 그와의 두 번째의 공식적인 면담을 가지게 되었다.두번의 만남은 각각 처해진 상황과 입장이 대조적이었다. 첫 번째의 만남은 그가 최고통치권자의 임명에 의해 내무장관직에 재직하고 있던 지난해 5월 초순 때였다. 당시는 4 13호헌조치 직후로 정국이 경색일변로로 치닫는 등 극히 어수선한 시기였다. 따라서 제한</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박준병 민정당 사무총장/내가 아는 광주사태는 이것이 전부요.김대곤(신동아, 1988. 7)</title>
								<link>/bbs/cnu518/3790/1035299/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4:53.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내가 아는 「光州사태」는 이것이 전부요』처음에는 「光州사태」 잘 몰라朴俊炳민정당사무총장은 경력으로 보아 왜나 「근엄한」 군출신인사로 인식된다. 소위 「경복궁팀」의 한사람으로 [12 12]에 참여했고, 光州사태 때는 20사단장으로 진압을 지휘한데다, 보통사람들에 차 괜히 겁을 먹게 하는 국군보안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출신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군출신 인사들 중에서도 「무서운」 경력이 많은 그이기에 만나기 전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6월12일 일요일 저녁, 약속장소에서 처음 보니 일단 보통사람의</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민정당 사무총장 박준병.조용준(주부생활, 1988. 7)</title>
								<link>/bbs/cnu518/3790/1035300/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4:31.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민정당 사무총장 박준병"어느 경우든 군부의 정치개입 없을 겁니다"확인인터뷰온국민이 관심이 '광주민주화운동 조사특위'의 활동여부에 쏠려 있는 가운데 과연 80년 광주의 5.17에서부터 5.21까지의 열흘동안 '무슨일이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문제가 주목되고 있다. 당시 20사단장으로서 광주진압을 직접 지휘한 한사람인 박준병 민정당 사무총장이 당시의 상황과 군부의 정치개입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광주에 관계된 군인사증 최초의 공식발언자 박총장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을 '여소야대'의 정치구도에서 '삼면초가 민정당의 실질적 총지위탑인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특위위원 김광일 민주당 의원/정호용 인간연구부터 했다.권영기(월간조선, 1989. 1)-냉무</title>
								<link>/bbs/cnu518/3790/1035301/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3:59.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광주특위위원 김광일 민주당 의원/정호용 인간연구부터 했다.권영기(월간조선, 1989. 1)</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전 광주 505보안대 수사관의 폭로수기/내가 정웅장군을 체포 수사했다.허장환(신동아, 1989. 1)</title>
								<link>/bbs/cnu518/3790/1035302/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3:22.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내가 정웅 장군을 체포 수사했다허장환 (편집자의 말)「5 18광주민주화운동」당시 發砲명령과 作戰 지휘권문제가 쟁점화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광주지구보안대 상사 許壯煥씨(41)가 지난 12월 G일 平民黨술에서 「양심선언」을 했다. 이날 허씨의 발언 가운데 주목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1980년 5월 21일 全보안사령관이 광주 K-57 비행장에 도착, 전투교육사령부에서 사태진행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후 헬기로 광주일대를 살펴보고 상경했으며, 그후 전교사 기밀실에서 전투교육사령관 尹興禎 중장, 특전사령관 정호용소장, 11공수여단장 崔雄준</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한 공수대원의 80년 봄·여름.김용환(월간조선, 1989. 1-서버에러</title>
								<link>/bbs/cnu518/3790/1035303/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2:5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한 공수대원의 80년 봄 여름.김용환(월간조선, 1989. 1</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당시 7공수 33대대 최영신 중사의 그날 그기억(생활성서, 1995.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04/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2:23.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당시 7공수 33대대 당시 7공수 33대대최영신 중사의 그날, 그 기억매년 5월이면 광주 망월등을 찾는다는, 경기도 부천에 사는 최영신(42) 씨 광주민준한쟁당시 7공수 33대대 소속 계엄군이었던 그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참상을 잊지 못한다. '80년 5월 17일, 전북 금마의 7i공수 33대대에서 근무하던 최 씨는 제대를 10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출돋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부대에서는 그전까지 폭동진압 훈련 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출동할 때는 M16자동소총과 길이 70센티미터 정도의 진압봉으로 완전무장</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18당시 정보부전남 지부장 정석환 비망록/전두환은 공수부대장에게 진압격려금 내려보냈다(신동아, 1996. 1)</title>
								<link>/bbs/cnu518/3790/1035305/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2:09.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전두환은 공수부대장에게 진압격려금 내려보냈다.비화/5.18 당시 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 비망록 80년 5월18일 나는 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직무대리였다. 全斗煥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그해 4월에 지부장 이상의 간부를 모두 경질했기 때문에 정보과장이었던 내가 직무 대리를 맡았던 것이다.61년에 중앙정보부에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한 지 약 20년만에 지역책임자가 된 셈인데 그 지역에서 엄청난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당시 광주 지역의 동향을 수집 보고하고 군 관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나는 틈틈이 메모를 해두었다. 5월16일. 5월</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3공수여단 12대대 작전병 출신의 실명수기/전투는 있었지만 학살은 없었다.김치년(월간조선, 1996. 4)-서버에러</title>
								<link>/bbs/cnu518/3790/1035306/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1:37.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3공수여단 12대대 작전병 출신의 실명수기/전투는 있었지만 학살은 없었다.김치년(월간조선, 1996. 4)-서버에러</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사망자 관련-------------------</title>
								<link>/bbs/cnu518/3790/1035307/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1:0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사망자 관련</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 그날의 유산/ 착한 자식 죽은 것도 서러운디 (월간경향, 1988. 4)</title>
								<link>/bbs/cnu518/3790/1035308/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0:45.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착한 자식 죽은 것도 서러운디'김춘수 5 18유가족회회원광주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시 조대부고 3학년생이었던 아들을 도청에서 잃은 한 어머니가 「분하고 서러웠던 7년세월」을 한숨처럼 토해 놓았다. 아들에 이어 남편마저 홧병으로 잃은 「광주의 한많은 母情」은 세월만으로 치유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斷腸의 역사를 광주의 말투 그대로 지상녹음하여 이 시대의 아픔을 진단해본다.(기록1이봉환) 298 월간경향 1988. 4"친구가 죽어부렀어요"오늘은 참 하늘이 청청도 허요. 우리 성룡이 저 세상 갈 적에도 저렇게 노여운</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고 신영일 열사 민주시민장(국민신문,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09/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0:2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故 신영일 열사 민주시민장동지들 애도속에 망월동 5 18묘역 안장애국학생 故신영일열사의 장례식이 11일 오전10시 유족과 민주운동제단체,동지 친척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독교 병원에서의 발인, 영결식파 YMCA앞 노제로 진행되었다.생전에들불야학과 전남민주주의 청년연합(이하 전청련)을 통해 기층민중의 주인된 삶을 위해 열정적인 활동을 해왔던 고인은 그 뜻을 기려 민주시민장으료 치러졌다.기독교병원 뜰앞에서 있었던 발인.영결식에서 전청련의장 송재형씨는 조사를 통해 "전청련의 주인이자 이세상의 주인으로서 청년의 모범을 보였던 그대는</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옥중시인 김남주 누구인가. 손동우(월간경향,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0/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30:13.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옥중시인 김남주월간경향.1988.5.「南民戰」사건으로 구속, 15년형을 받고 9년째 수감중인 옥중시인 金南柱-. 아직 그의 신체는 복권되지 않아 不自由의 쇠창살 솔에서 바깥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의 諱는 입과 입을 타고 自由의 창공을 훨훨 날아 다닌지 이미 오래다. 88년 국제 펜(PEN)대회를 앞두고 그의 석방이 초미의 文壇 관심사로 되고 있는지금,그의 삶의 궤적을 환전 추적했다.「南民戰」의 戮中詩入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꽃이 되고자 하네 꽃이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녹두끝이 되자 하네.이 들판을 날라왁 더불어불이</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월의 절규]가 잠든땅 망원동 제3묘역.김재명(월간중앙,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1/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9:54.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월의 절규」가 잠든 땅망월동 제3묘역.金 在 明(月刊中央 기자)참배객 줄 잇는 『민주화의 聖地」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望月洞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산 者들아 산 者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욕된 역사 고통 없이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랴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굳이 몇월이라 가릴 것은 없으나 해마다 특히 5월</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월항쟁의 주역은 누구인가?(말,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2/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9:3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월 항쟁의 주역은 누구인가80 년 5월 광주항쟁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분수령을 이룬다. 광주를 통해 한반도를 뒤엎고 있는 외세와 이에 예속된 권력은 껍데기를 벗고 본질을 드러냈다.광주는 한국사의 ㅂㄹ전을 가로막고 있는 세력들을 극복하는 훤동력이 민중으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음을 실중해 주었다. 그러나 광주항쟁의 주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 이 글은 이를 위한 하나의 시론이다.전남 및 광주지역의 특수성아래 통계표를 읽기 전에 광주항쟁 당시 전남 및 광주지역의 특수성을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박정권에</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5월의 분수대, 그대 다시 살아오는 목소리여/박관현 열사(국민신문,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3/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9:19.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월의 분수대그대 다시 살아오는 목소리여국민신문 1988년 5월 2D일 발행5.18 광주민중항쟁과 박관현 열사사람들은 5  18광주민중항쟁을 떠올리는 한 인물이 있다.도청앞 광장, 그리고 거기 원형거리로 연상되는 저 금남로를 바라볼때,사람들은 80년 항쟁을 연상하고 한 인물을 그려낸다.광주 뿐만 아니라 도시건 농촌이건 할 것 없이 광주항쟁을 말하는 곳에서 분명한 인물이 등장한다.그는 박관현이다.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청년 박관현이다. '82년10월 12일 체포되어 광주교도소 독거감방에서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의 염원을 불태우며 </description>
							</item>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유언비어인가 진실인가/유언비어가 진실이었던 피의 현장(국민신문,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4/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9:05.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국민신문 1988년 5월 20일 발행유연비어인가, 진실인가-유언비어가 진실이었던 피의 현장.』눈만뜨면 광주와 망월동은 어용 신문의 얼굴마담이 되어 있다. 언필칭 '민주의 성지'요 '빛고을' 이다. 틀린아니다.그러나 8년 전 그 때 '폭도'와 '난동으로 묘사했던 바로 그 입으로 이제 '성지'운운 하는 발빠른 변색에 놀랄 뿐이다.보자. 돌아보자. 8년 전 살인 정권의 확성기였던 언론의 얼굴을. 진실을 유언비어로 짓뭉개던 그 뻔뻔스러움을 계엄사와 어용 언론이 주장한 유언비어의 유형대검으로 아들 딸들을 난자해버리고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게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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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간지 관련기사] 광주항쟁관련 김형영씨  권련의 방치 속에 끝내 숨져(국민신문,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5/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8:4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광주항쟁 관련 김형영씨권력의 방치'속예 끝내 숨져"원수놈의 가난때문에 자식을 죽인 어미의 심정을 누가 알아 주겄소!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이 심정을 ‥라는 말만을 되뇌이며 당신보다 먼저 간 아들의 원통한 주검 앞에 어머니는 아예 넋을 잃고 있었다.지난 11월 7일 애중원(무안군 삼향면 유교리 수재. 정신요양원 사회복지법인)에서 80년 5월19일 조대앞에서 공수부대 의 폭력에 의한 부상으로 극심한 정신분열을 앓던 김형영 (당시 조대공전1년)씨 가 28세 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5월 19일 지산동에서 공수부대와 맞서 싸우다 무</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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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월간지 관련기사] 마지막 새벽을 지킨 샛별/윤상원 열사(국민신문, 1988. 5)</title>
								<link>/bbs/cnu518/3790/1035316/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8:35.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국민신문 1988년 5월 27일 발행마지막 새벽을 지킨 샛별.5.18광주민중항쟁의 주역 윤상원 열사망월동 시립 5 18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 금년으로 8주기를 맞아 광주 뿐만 아니라 경향각지의 참배객 들이 줄을 잇고 있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성지'작년 7월, 전국민적 애도 속에 이 묘역에 묻힌 이한열열사, 작년 11월, '오월의 아들로 죽어간 박관현열사가 이장을 했고 농민권익을 옹호하며 투쟁하다 군부독재의 공권력에 죽어간 김기호 열사, 금년 5월 전남광주지역 학생청년운동을 주도하다 숨져간 신영일 투사, 또는 이번 5 18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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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오빠의 무덤 앞에 우리 모두 웃을 날은/전영진 열사(국민신문, 1988. 6)</title>
								<link>/bbs/cnu518/3790/1035317/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8:17.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월 인물사-전영진 열사 여동생의 수기오빠의 무덤앞에 우리 모두 웃을 날은‥‥답답하리 만큼 과묵했던 오빠. 철모르고 어렸던 나는 오빠의 침묵 속에 내재된 무서운 정열을 읽지 못했다. 팝송이나 흥얼거리고 쓸데없는 영화배우 얘기나 주절대던 내 모습이 하도 보기 싫어 몇 번씩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던 오빠.나는 그때 오빠가 내 세계를 이해 못하고 파쇼처럼 군림하려든다고 생각했었다. 오빠는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고,나도 얼마쯤은 오빠를 미워했다. 내가 미워한 오빠는 그러나, 우리 집안의 기등이었다. 함부로 범접할 수없는 분위기가 오빠에게서</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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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워째 우리 대환이가 폭도라요/백대환 열사(국민신문, 1988. 6)</title>
								<link>/bbs/cnu518/3790/1035318/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8:02.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백대환 열사 어머님의 수기워째 우리 대환이가 폭도라요『발가벗겨진 알몸에 코는 잘려져 나가고 눈 알은 튀어 나와 눈뜨고 블 수 없었음니다. 누가 왜 무엇때문에 내 외아들을 이토륵 잔인하게 찢어 놓았는지‥‥ 나는 반드시 내 자식을 죽인 놈들을 그럴게 똑 같이 죽이고 말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곤 합니다. 』착하기만 하고 동네 어른들한테도 인사성이 바르다고 늘 칭찬만 받고 커왔고 누구한테 해꼬지 한번 안하고 그저 순하고 과묵하기 만 했던 우리 대환이가 폭도라요-벌써 우리 대관이가 죽은지 8년이 지났습니다. 우직하고 정직하기만 했던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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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월간지 관련기사] 아들아, 네 어깨죽지에 새긴 평화의 비둘기로 훨훨 날아라/김형관 열사(국민신문, 1988. 6)</title>
								<link>/bbs/cnu518/3790/1035319/artclView.do</link>
								<pubDate>2007-05-30 06:26:38.0</pubDate>
								
									
									
										<author>admin</author>
									
								
								
								<description>5뭘인물사-김형관 열사 어머님의 수기아들아, 네 어깨죽지에 새긴 평화의 비둘기로 훨훨 날아라『기독교병원 시체실에 갔을 때 얼굴이 으깨져 알아볼 수 수가 없었습니다.눈에 익은 옷과 어깨의 지둘기 문신을 보고서야 우리 형관이란걸 알았습니다.으스러진 녀석의 얼굴 위에 엎어져 정신을 잃었습니다.몇달 후 형관이의 아버지까지 홧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등졌습니다.문득 서럽고 외로울 때마다 하늘을 보면 우리 형관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한 마리 비들기로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너무도 놀라 정신이 없었읍니다. ,5월 며칠인가 날짜도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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