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증언-우리는이렇게 싸웠다-5월 27일, 그 마지막 새벽까지 총을 들고 싸웠던 항쟁참가자의 증언!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말한다 정적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 새벽 3시 30분! 도청 주변 사방에서 정적을 가르는 총성이 울렸다. 가두방송을 듣고 뛰쳐 나온 젊은이들이 계엄군의 포위망에 걸렸다. 어둠속에서 도청주위를 맴돌다 수백명이 체포, 사살되었다.도청 상황실에서는 자폭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한 청년이 눈물을 주먹으로 씻으며 말했다. “고등학생들은 먼저 총을 버리고 투항해라. 여기야 사살되거나 다행히 살아 남아도 잡혀 죽겠…
특집 緊急動議, 이것만은 다시 생각하자 光州보상금을 국민모금으로 충당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동정 베푸는 식의 발상도 그렇지만 국민이 배상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光州보상, 왜 하필 국민모금인가 李鍾旿(啓明大社會大副敎授·社會學) 지난해 12월 11일은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지원성금 모금 첫날이었다. 이날 정부종합청사의 중앙모금창구에는 민자당 광주지구당 위원장 5명이 각 2백만원씩 합계 1천만원을 접수시켰다고 한다.이 지원성금은 법정보상금 의료지원금 등 국고 지급 8백억원 이외에 별도의 생활지원금 7백87억원…
3공수여단 12대대 작전병 출신의 실명수기/전투는 있었지만 학살은 없었다.김치년(월간조선, 1996. 4)-서버에러
10월 12일로 6주기 맞는 박관현, '나팔꽃 씨가 그를 죽였는가?' 의문을 추적한다 분수대의 명언 설 1980년 5월 16일 -. 그날 밤 광주는 '횃불의 바다'를 이루었다. 3만여명의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를 마친 뒤 전남 도청 앞 광장에 다시 모인 것은 밤 9시 30분께.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분수대가 있었다. 금남로 지하도 공사로 하마터면 헐릴 뻔했던 분수대는 그대로 훌륭한 연단이 되었다. 어둠을 밝히려는 횃불 같은 다짐을 시위대의 가슴에 뭉클뭉클 만들어 내며 연설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 수업을 팽개…
특집Ⅱ12주년 맞는 5·18항쟁의 현주소 고통의 세월 속'잊혀져 가는 진실'지켜가 강요된 화해의 그늘 아래 후유증 앓기도 12주년 째를 맞는'광주 문제'는 어느덧 '역사의 장'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다. 13대 국회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광주 청문회' 지난해 관련 당사자 일부에게 지급된 '광주 보상금'으로 광주 문제가 '해결' 됐다는 것이 당국의 입장이다. 그 동안 광주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왔던 '5월 관련 단체들'도 광주 보상금 수령 이후 그 운동 폭이 눈에 띄게 약화됐다. 이러한 변화는 그 동안 우후죽순처럼 …
특별 기획 「12·12, 5·18단죄」 역사와 정의 완전 공개 검찰 작성 5·18사망자 165명 부검 자료 계엄군「시민사냥」결정적 증거 찾았다 「5.18관련 사망자 검시 내용」이라는 제목으로 광주 지방검찰청이 작성한 정부 공식 문서가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문서는 80년5월26일부터 6월19일까지 사망한 1백93명의 사망자 가운데 군인 등을 제외한 시민 1백65명에 대해 당시 광주 지검 검사 등 관계자 10여명이 전문가의 소견을 들어 작성한 것이다. 「신동아」에서는 지난 12월 7일 광주시 5·18자료실이 이 자료…
특집 광주 계속되고 있는가 새출발…다시 외로운 작업을 천주교「광주 정평위」12년 「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져서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난달 2월10일 천주교 광주 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이후 정평위로 약칭)는 민화 위에서 5.18광주 문제에 대한 치유 방안을 놓고 한창 논란을 벌이고 있을 때 앞서의 누가 복음8장 17절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했었다. 정평위 신부들은 성명서에서 「민화 위에서 5.18광주 의거를 공식적으로 거론으로부터 위임받은 기구가 아니어서 광주 문제의 핵심이라 할…
12.12, 5.18 재수사 검찰 수사 기록 신혁확 찾아가 중앙정보부장직 요구했다. 전두환 예하 공수특전단과 20사, 광주파병 허락했다. 노태우 전두환은 최규하의 약점 잡고 협박했을 것 신현확 나는 신군부주식회사의 심부름꾼이었다. 권정달 안필준 보안사령관 친위쿠데타 지시했다. 한용원 「안개정국」80년 짧았던 「서을의 봄」을 사람들은 달리 이렇게 부른다. 온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도불구하고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전두환보안사령관의 집권으로 국민들은 12 12 이후 군부를 장악한 신군…
노태우 "예하 공수특전단과 20사단 광주파병 허락했다" 진술자:노태우 진술일자:1995.12.14일 29일 담당검사:서울지검 김상희 ● 언론통폐합, 결재받은 문공부가 처리하지 왜 우리한데 떠넘기나 ● 수경사 예하 공수특전부대,20사 작전통제 해제, 광주 파견 길 터 ● 군수사 안종훈중장 비상계엄 확대 반대에 노태우 · 정호용 발끈 ● 임시국무회의 때 중앙청에 배치한 병력, 『IM 간격은 넘었을 것』 ● 국무회의장 전화선 끊고 공포분위기 조성 ● 정치인 연행 수경사 병력 동원 (95년 1…
12.12 5.18재판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광휘(방송작가) 1996년 2월 26일에 시작되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공판으로 막을 올린 5 · 6공에 대한 재판은 같은해 11월 I4일에 항소심이 일단 마무리가 됨으로써 현재 이 사건은 1996년 12월 16일의 선고만 남겨 놓고 있다.이 글이 나올 때쯤이면 이미 2심 판결이 끝나고 아마도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옮겨질 것이다 1 · 2심 끝났지만 명쾌한 규명안돼 아무튼 이 재판은 첫째, 규모면에서 엄청난 면모를 보여 주었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