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신문 1988년 5월 27일 발행 마지막 새벽을 지킨 샛별. 5.18광주민중항쟁의 주역 윤상원 열사 망월동 시립 5 18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 금년으로 8주기를 맞아 광주 뿐만 아니라 경향각지의 참배객 들이 줄을 잇고 있는 '민주화와 민족통일의 성지' 작년 7월, 전국민적 애도 속에 이 묘역에 묻힌 이한열열사, 작년 11월, '오월의 아들로 죽어간 박관현열사가 이장을 했고 농민권익을 옹호하며 투쟁하다 군부독재의 공권력에 죽어간 김기호 열사, 금년 5월 전남광주지역 학생청년운동을 주도하다 숨져간 신영일 투사, 또…
5월 인물사 -전영진 열사 여동생의 수기 오빠의 무덤앞에 우리 모두 웃을 날은‥‥ 답답하리 만큼 과묵했던 오빠. 철모르고 어렸던 나는 오빠의 침묵 속에 내재된 무서운 정열을 읽지 못했다. 팝송이나 흥얼거리고 쓸데없는 영화배우 얘기나 주절대던 내 모습이 하도 보기 싫어 몇 번씩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대던 오빠.나는 그때 오빠가 내 세계를 이해 못하고 파쇼처럼 군림하려든다고 생각했었다. 오빠는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고,나도 얼마쯤은 오빠를 미워했다. 내가 미워한 오빠는 그러나, 우리 집안의 기등이었다. 함부로 범접할 수없는 분위기가…
백대환 열사 어머님의 수기 워째 우리 대환이가 폭도라요 『발가벗겨진 알몸에 코는 잘려져 나가고 눈 알은 튀어 나와 눈뜨고 블 수 없었음니다. 누가 왜 무엇때문에 내 외아들을 이토륵 잔인하게 찢어 놓았는지‥‥ 나는 반드시 내 자식을 죽인 놈들을 그럴게 똑 같이 죽이고 말겠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곤 합니다. 』 착하기만 하고 동네 어른들한테도 인사성이 바르다고 늘 칭찬만 받고 커왔고 누구한테 해꼬지 한번 안하고 그저 순하고 과묵하기 만 했던 우리 대환이가 폭도라요- 벌써 우리 대관이가 죽은지 8년이 지났습니다. 우직하고…
5뭘인물사 -김형관 열사 어머님의 수기 아들아, 네 어깨죽지에 새긴 평화의 비둘기로 훨훨 날아라 『기독교병원 시체실에 갔을 때 얼굴이 으깨져 알아볼 수 수가 없었습니다.눈에 익은 옷과 어깨의 지둘기 문신을 보고서야 우리 형관이란걸 알았습니다.으스러진 녀석의 얼굴 위에 엎어져 정신을 잃었습니다.몇달 후 형관이의 아버지까지 홧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등졌습니다.문득 서럽고 외로울 때마다 하늘을 보면 우리 형관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한 마리 비들기로 훨훨 날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너무도 놀라 정신이 없었읍니다. ,5월…
김복만 열사 아내의 수기 국민신문.1988년 6월 24일 발행. 일석이,준석이 잘 키울테니 걱정말고 편히 잠드시오, 우리 일석이 아버지가 가신지 8년!.세월 가는 줄 모르고 지냈읍니다. 그만큼 상사가 고달픈 탓이겠지요.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많든 적든 살아 왔던 제가 결흔 2년딴에 남편과 사별하는 박복한년이 되고 말았윰니다. 우리 준석이는 그 때 겨우 한달이 채 못된 갓난아이 였는데‥‥‥‥ 일석이 아버지는 정이 많아 남이 못 쓸 일 당하면 참지 못하고 내 일같이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었옵니다. 우리 일석이를 키울 때도 …
묘지번호 58, 황호걸 열사 "죽은 자식, 부모 가슴에 묻는 게여" 강희주 기자 본지 오월 인물사 취재를 위해 기자가 찾아간 곳은 지산2동 712-50번지에 자리잡은 낡았지만 아담한 황호걸 열사의 집이었다. 초행인데도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벨을 눌렀다. 황호걸열사 어머님이 반갑게 맞아 주어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마당 귀퉁이에 묶여져 있던 세퍼드 한 마리가 곧 물어 뜯을 듯 짖어대기 시작했다. 겁이 나서 주춤거리는데 황열사 어머님께선 개를 잡아 붙들며 "가만 있어라. 이…
장하일 열사 재수의 수기 시숙은 다시 살아나는 풀잎니다. 우리 시숙께서는 평소에 '술보'라는 별명어 블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서서 친구분들도 많았윰니다. 술을 좋아해서 성격이 괴팍할 것 같지만 우리 시숙은 법없이도 살 분이었옵니다. 늘 "없이 사는데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 고생 시킬 수 없다"며 결혼도 하지 않으셨율니다. 그래서 저희들 결혼하고 부터는 서동에서 같이 살았율니다. 시숙께서는 17살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시누이와, 애기들 아버지, 두 동생을 건사하는 가장으로 어려운 생활을 꾸리셨다고…
현지 취재 광주 희생자 가족들의 한 맺힌 8년 세월 『낙엽만 떨어져도 문을 열어 본답니다』 아직도 통곡하는 사람들 해마다 숨죽이며 5월을 맞이해야 했던「광주」는 이제는 더 이상 「비극의 도시」만은 아니었다. 지난 5월 광주에서는 학생 시민 재야 운동 단체들에 의해 「해방 광주 주간」이 선포되었고, 연일 수 만 명에 이르는 인파들이 모여 추도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 집회 시위 등을 벌여 나갔다. 또한 전국적으로 각 대학 재야 운동 단체에서는「민족 성지 광주 순파단」이 유례없이 결성되어 8만 여명이 망 월동 5·18묘역을 참배하…
새로 밝혀진 광주 항쟁 희생자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광주 민중 항쟁으로부터 8년. 그 동안 이 땅의 현대사에 내란 폭동을 야기한 폭도로 오인되어 강요된 침묵 속에 압박을 받으며 살아온 지난 8년은 5.18사망자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 시민들에게 치욕의 나날이었다. 이제 8주기를 맞아 진압의 총성이 멎은 순간부터 계속 되어 왔던 투쟁의 결과 아무런 제지 없이 망월동 묘역을 참배할 수 있게 되었다. 13대 국회 계원에 이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5공화국 비리 등과 아울러 광주 항쟁 진상 규명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질…
5월 인물사 봉숭아꽃은 다시 피었는데…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며 본지 기자는 정지영 열사의 집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 탓도 있겠으나 미리 전화로 방문 제의를 했을 때 흔쾌히 맞이하겠다는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웬지 비통함이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정열사의 집은 동명 1동 73-38번지, 아담한 한옥이었다. 열려진 대문을 열고 무심코 들어섰을 때 마당에 피빛으로 만발한 봉숭아꽃 주위를 손질하고 계시던 어머니께 기자를 반가이 맞이하였다. 집안 식구 모두가 외출중인 듯 집안은 조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