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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12.12 5.18재판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본문

12.12 5.18재판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광휘(방송작가)

1996년 2월 26일에 시작되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공판으로 막을 올린 5 · 6공에 대한 재판은 같은해 11월 I4일에 항소심이 일단 마무리가 됨으로써 현재 이 사건은 1996년 12월 16일의 선고만 남겨 놓고 있다.이 글이 나올 때쯤이면 이미 2심 판결이 끝나고 아마도 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옮겨질 것이다

1 · 2심 끝났지만 명쾌한 규명안돼

아무튼 이 재판은 첫째, 규모면에서 엄청난 면모를 보여 주었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세사람이 모두 법정에 불려나왔다는 측면에서 그 규모와 비중이 우리 사법 사상 가장 클 것이다.

둘째, 이 재판의 의미가 대단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제가 옳고그름을 떠나 일단 우리의 현대사를 재판이라는 심판대에 올려놓고 전직 대통령에게 일심에서 극형을 선고했다는 사실에서도 놀랍고, 5 · 18과 같은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이 재판의 의미는 실로 크다.

그러나, 나는 이 재판을 전부 방청하지는 않았지만 2심까지의 재판을 내나름대로 성실히 지켜보면서 실로 묘한 기분에 젖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런 재판은 애당초 시작을 말았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실심인 1 · 2심을 끝내고 법률적 검토만을 기다리는 대법원 상고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서도 이 사건은 명쾌하게 규명되지도 않고, 또 누가 정말 잘했고 누가 범인이거나 악인인가 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여건상 정말 무리구나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됐기 때문이다

재판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 방청 객들도 말은 못하지만 심증은 갖기 마련인데, 이 재판은 묘하게도 보면 볼수록 검찰의 뜨거운 유죄의 확신만 있지 그것을 뒷받침해 줄 확실한 상황이나 증거, 증언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월간잡지 발췌가 검찰증거

또 재판을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세월이라는 망각의 강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 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정도로 중대하고도 역사적인 일들이라면 좁은 재판정 안에서 흑이야 백인야를 가릴 일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일단 학문적으로 접근을 하고, 사회학자들이 80년대의 시대적 상황과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과 관계를 학술적으로 풀어 나가는 편이 훨씬 올바른 방법이 아닌가 하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두드러진 예를 들자면, 이재판에서 지금까지 '이것이다'하고 딱 부러지게 드러난 증거가 없다.

예를 들자면, 1심 재판 처음 부분에서 검찰측이 엄청난 확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재판부에 제시했던 이른바 '5공 전사' 라는 것도 이미 어느 월간 잡지에서 주요부분을 발췌해서 내놨듯이 이리보면 검찰에 유리하고, 또 저리 보면 그 자료가 오히려 변호인측에 유리하게 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도 후반부에는 이 자료를 용하지도 않고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다.

또 2심에 가서 주요 쟁점으로·남은 7가지 사안도 검찰은 유죄라는 확신, 국민 정서라는 막연한 근거로 피고인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내용이었고,거기에 비해 오히려. 변호인들은 치밀한 반증과 법 이론으로 맞서 방청석에 앉은 광주쪽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낭패감을 안겨주고, 일반 방청객들에게는 변호사들이 치밀하고 논리적이라는 공감대를 갖게 했다. ,

우선 한 가지씩 따져 보자. 이 재판을 죽 하다 보니까, 결국 결론은 다음 7가지로 요약되고 말았다.

첫째는, 12 12가 세간의 의혹처럼 정말 군사반란이며 ,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한 것이 불법이냐 하는 점이다. 검 찰은 12 12야말로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이 세상을 뒤엎고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다단계 쿠데타의 시발점이며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장군을 그렇게 잡아간 것은 하극상이자 불법이라는 논리이다.

여기에 대해 변호인측은 12 · 12가 다단계 쿠데타의 시발점이라는 증거를 대라는 것이며, 계엄사령관도 혐의가 있다면 수사기관이 연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관행이었다는 점을 강조했고, 사실상 장군을 연행하는 데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는 법적 근거도 전혀 없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강경시위 진압이 반란인가

또 그것이 불법이고 군사 반란이었다면 다음날 새벽에 재가를 해 준 대통령의 행위는 무엇인가‥‥ 바로 이점을 변호인들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심지어는 그것이 불법이라면 불법에 대해 재가를 해 준 최규하 대통령은 '간접 정범'이 아니냐고 다그쳐 물었다.

둘째, 5 · 17 비상 계엄 확대 선포가 폭동인가‥‥하는 점인데, 이것 역시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통치 행위로 이루어진 행위이고 적법 절차를 따른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 변호인측의 요지였고, 비상 계엄을 전국에 확대한 일이 정치적 음모라면 그것을 재가한 최대통령의 책임은 어떤 것인가를 따졌다.

셋째로, 국보위를 설치 운영한 것이 국헌문란행위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당시의 국보위는 5 · 16당시의 국가재건 최고회의와 같이 국무회의와 행정 각부를 통제하고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혁명 기구라는 것이 검찰의 요지였다. 그러나 변호인들은 국보위 역시 옥상옥으로 억지로 만든 기구는 아니고, 계엄하에서 각 행정부의 의견을 수용하도록 만들어진 합법적 기관이라는 것이었다.

넷째로, 광주에서의 계엄군의 강경한 시위 진압 행위가 폭동 및 군사 반란인가. 이 점에 대해 검찰에서는 지금까지 일반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통념을 이용하고 있었다. 신군부쪽이 아예 국헌을 문란시킬 목적으로 계엄군을 '생명있는 도구' 로 이용해서 광주 시민들을 유혈진압시켰고 이런 행위야말로 내란 행위라는 것이다

또 학생들을 체포하고 병력을 동원해서 시민들을 학살한 것은 국가 권력에 대한 반란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 대한 변호인측의 주장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계엄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동대 거나 외국에서 데려온 용병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군이라는 점과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해 군이 나가서 활동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국헌수호행위가 반란죄가 되는가‥‥ 말하자면 관군(官軍) 또는 초토사(招討使)가 민란을 진압했다고 해서 어떻게 죄가 되느냐는 논리였다.

다섯째로는,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지시가 사실상의 발포 명령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검찰 측에서는 계엄군들에게 실탄을 나눠주고 자위권이 무언지도 모르는 병사들에게 자위권 자체를 강조한 일이 사실상 발포 명령이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대해 변호인측은 계엄군 중에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먼저 발포했느냐·. 또 누가 뒤에서 그 발포를 명령했는가‥‥ 이 점을 과학적으로 밝혀나가야 할 텐데 검찰은 무조건 발포 사실만을 강조하면서 자위권발동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아무리 군이라도 급한 판에 자위권을 안쓰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 그럼 군은 무조건 당하기만 해야 하는가‥‥ 뭐 이런 식의 당연한 논리를 폈었다



변호인측 법이론에 지친 검찰

여섯째는, 폭동 중에 일어난 살인 행위에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즉, 검찰은 광주에서 군인들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행위는 뒤에 정권을 잡기 위한 내란 목적 살인이라는 주장이었는데, 변호인측에서는 원래 내란 목적 살인죄는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요인을 살해한다든지 쉽게 말해 여순반란 사건과 같이 국가를 튀엎을 의도가 있어야 내란 목적 살인죄가 성립될 수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위권 발동 지시에 따른 계엄군의 행동이 내란목적 살인죄가 된단 말인가‥‥ 견강부회 (牽强附會)라는 반론이었다.

마지막으로는. 내란죄의 공소 시효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부분은 골치 아픈 법 이론이니까, 접어 두기로 하자

이렇게 마지막으로 좁혀진 주요 쟁점을 가지고 검찰과 변호인측이 맞서게 되자 상고심 재판을 맡은 권 성 재판관은 마치 스터디 그룹을 지도하는 교수처럼 검찰과 변호인간에 자유 토론을 하도록 했다.



법이론보다 정서에 호소하는 검찰

검찰측에서는 서면으로 제출한 공소장을 참고해 달라고 했고, 변호인측은 1996년 11월 11일 항소심을 10차 공판이 변호인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변론 기회라는 점을 의식해서 모든 방증과 법이론을 동원하여 전면 방위에 들어갔다.

방청인들이 관전자라면 아마 그날 검찰과 변호인의 공방전은 일단 변호인측의 우세승이라고 관전자들은 판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변호인측에서 법이론을 가지고 꼬치꼬치 반론을 하니까, 검찰은 피곤에 지치고 말을 반복하고 싶치 않다는 듯 이런 표현을 썼다."이 문제는 그런 법 이론만 가지고는 해결할 일이 못됩니다. 접근 방법을 달리 해 보세요" 요컨대 콩이야 팥이야 다 따지는 법이론 말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동기와 배경,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실력자들을 찾아내고 그 사람들의 죄상을 물어야 한다는· . 정서로 호소했다.

다시 말해서, 좁은 법보다 더욱 포괄적이며 이른바 대중적 정서까지도 포함하는 심정적 정서를 가지고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라는 논리였다.

만약 그 자리가 재판정이 아니고,TV의 심야 토론이나 무슨 공청회나 대학생들의 학술 토론장이었다면 검찰이 주장하는 대로 보다 폭넓고 이른바 대중 정서를 살린 원론적 접근도 시도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법정이었다. 법정에서 사실에 접근하는 '접근 방법'은 필자가 아는 한 냉엄한 법이론과 증거밖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을 때는 일단 무죄로 추정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지난 2월에 시작되어 11월까지 끌고온 이 재판에서 검찰은 처음부터 아주 확고한 자세를 유지해 왔다. 물론 검찰이라는 것은 공소의 유지가본분일 것이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그 사람들을 검찰측에서는 분명히 죄인으로 보기 때문에 재판관에 대해 검찰은 '저 죄인은 이런이런 죄를 지었으니, 법에 따라 저런 벌을 주시되 이왕이면 엄벌로 처벌해 주십시오·.' 라는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너무나 당연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 재판을 처음부터 지켜본 필자의 눈에는 검찰의 자세는 이런 것으로 비쳐졌다

'피고인 그대들은 분명한 죄인이다.그대들과 변호인들은 그대들이 죄인이 아님을 증명하라 . 사실상 박정희라는 절대적인 카리스마가 무너지고 경제적으로야 어찌 됐든 유신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억압체제가 일단 쓰러지자, 다시는 유신의 '유'자도 듣고 싶치 않고 이 땅에 급속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것이 80년 그 당시 국민 대다수의 정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육군 소장, 그것도 텔리비전에 나타날 때마다 절대로 웃지 않고 남의 죄목만을 발표하는 그 사람을 무서워하기 시작하였다



해당자들 다 빠진 재판

그리고, 그가 끝내는 자기 스스로의 어깨에 대장 계급장을 달고, 황급히 전역한 후 국보위‥‥ 언론 통폐합 삼청교육대·. 5 18 같은 피묻고 얼룩진 역사의 징검다리를 성큼성큼 뛰어 건너 체육관 대통령이 된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고 그 두려움이 미움으로 변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 5공 시대에 직장을 잃었거나 지하실로 끌려가 전기나 물고문을 당하고 성적 치욕을 당한 사람들은 전씨의 '전' 자만 들어도 치가 떨릴 것이다. 그러나 '밉다' . '이상하게 싫다' '죽이고 싶었다' 이런 것은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나타낼 수 있는 감정이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푸는 방법은 그런 구체적인 피해 상황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른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이 재판을 방청하면서 사람들은 5공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도 텔리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 재판의 속보를 보거나 들으면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뭘 이것저것 따져 그냥 그런 것들은 무조건 처치해야 해!" 그런가 하면 "아이고, 할 일도 많은데 왜 케케묵은 옛날 일을 꺼내 가지고 따져쌓나. 그래도 올림픽을 유치하고 무역 혹자 만들고 국민소득 3천불 시대 열고 할 일 다 한 사람들인데·. ."

나도 이 재판을 지켜보기 전까지는 80년대의 실력자였던 오늘의 피고인들이 모든 문제를 다 뒤집어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도매금' 이론을 막연히 신봉해 온 사람이다. 그러나 재판을 지켜 보면서 나는 실로 황당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불사 깊은 밤에‥‥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흘로 듣는구나: 이런 노래처럼 그 당시에'분명히 주승에 해당하는 최규하 대통령이 있었고, 소신 있게 물러난 신현확씨 후임으로 자리를 차지한 후임 총리도 있었으며 각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다 빠지고, 왜 당시 보안 사령관이었으며 중정부장서리였던 피고인만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되어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지·. 그 점이 알쏭달쏭했다

12 · 12를 재가하고, 5 · 17계엄을 확대하고, 5 · 18때에는 광주 현지까지 내려가 선무방송을 했던 그 대통령은 왜 책임도 지지 않고, 증언 한 마디를 하는 데에도 그렇게 인색했을까‥‥

1996년 11월 14일 법정에 마지 못해 구인되어 왔던 최규하 대통령은 권 성재판관이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어 간곡히 진실을 말해 달라고 했는데도 그야말로 동문서 답식으로 자신이 준비해온 증언 거부 이유서만 일방적으로 읽고 공판장을 빠져나갔다. 사실 최규하 전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내가다 했소‥‥하면 전직 대통령 3명이 수의를 입게 될 것이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저 피고석에 앉아 있는 바로 저 힘깨나 쓰는 군인들이 나를 그때 윽박지르고 이용해서 이를 다 저질렀소· . 이렇게 대답한다면 그는 책무를 다하지 못한 대통령 , 군의 통수권을 포기한 대통령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직무를 유기한 죄인으로서 또 다른 법정에 서야 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 당시 여러분들이 모르는 이런 저런 국내 사정이 있었고 정치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소. 사실은 그때 이런 피치 못할 사정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국민들은 아마 최규하 전대통령으로부터 세 번째 얘기, 그 당시의 피치 못할 사정과 얽히고 설켰던 사건의 진짜 내막을 듣고자 했을 것이다.



증거 없이 증언에만 매달리는 재판

따라서, 최규하 전대통령이 모든 비밀이 든 역사의 상자를 개봉하지 않고 그냥 끌어안고 있는 한, 이 재판이야말로 주승은 절을 비운 채 객승들끼리 절 마당에서 치고 코피 터지는 식인 것이다.

객관적인 증거 없이 증인의 증언에 주로 매달리는 이 재판에서 주요 증인으로 나온 권정달씨는 처음에는 검찰의 의견에 동조하는 듯하다가 구인장‥‥ 어쩌고 하는 으름장 속에서 황급히 나와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시국 수습 방안'은 정권 찬탈이나 내란 목적과는 사돈의 팔촌도 안 된다는 증언을 하고 사라졌다

또 '자위권 발동 지시' 담화문 초안을 보안사나 전두환 사령관한테서 받아다가 당시 계엄 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장군에게 전하지 않았다고 당시 보안사 보안처장이었던 정도영씨가 증언했고, 이희성씨는 '그럼 황영시 장군이 었던가..: 이렇게 헷갈리니까 황영시 피고인은 천부당 만부당하다고 펄쩍 뛰었다.

또 그 당시 최규하 대통령 밑에서 수석비서관을 지낸 이원홍씨가 "국보위는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비상 권력 기구가 아니었다. "고 딱 부러지게 증언하였다 결국 이래서 권정달씨가 기초했다는 이른바 정권 찬탈의 마스터 플랜이었던 시국수습방안이라는 것도 검사의 공소장을 벗어나고 있고 내란 목적 살인에 해당하는 그 자위권 발동 문제도 피고인 전두환씨와는 관계 없는 것으로 됐으니 재판부의 판단이 정말 궁금해진다

더구나. 이미 1심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광주 사태의 실권 행사자, 또는 발포 명령의 주요 가담자로 의심의 선상에 놓았던 당시의 참모 차장 황영시 장군이나 그 무시무시했던 공수부대의 사령관 정호용 장군이 일찌감치 그 '내란 목적 살인' 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혐의를 벗은 바가 있다 이렇게 되면 광주의 총성은 현지에서 일어난 당시의 우발적아고도 즉흥적인 총성으로 남게 되는 것이며, 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발포를 교사한 진짜 범인도 없는 셈이다.



죽이라고 고함치는 방청석

또 정권을 탈취하고 단계적 쿠데타를 펼쳐 나가려던 그 문제의 시국 수습 방안 역시 통상적인 상황 분석과 대책을 위한 행정 용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2심 마지막날. 광주 지역 사람들은 법정 안에서 휴정하는 기간 울부짖고 피고인석을 향해 소리쳤다 "이유 없어, 저놈들이 범인이야 다 사형시켜 ."

나는 광주의 그 슬픔과 그 분노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누구를 궁극적으로 미워하거나 교수목에 매달기 위해 이 재판을 연것이 아니라, 역사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내고 우리 후손들을 위해 바른 현대사를 펼쳐 내기 위해 이 재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재판이 정치적 의도가 담겨진 잘못된 재판이 아니라면.검찰도 피고석에 앉은 사람들이 무조건 죄인이라는

사회적 통념과 자신들의 고정관념만을 주장할 일이 아니다

또 재판부도 권력의 눈치를 절대로 살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권력은 유한하고 진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또 변호인들도 금전적으로 보장되는 변호비를 의식하며 무조건 피고인들을 감쌀 일만도 아니다· 그렇게 되면 변호인들이야말로 자신들이 쌓아온 그 법률적 지식을 밑천으로 삼아 흑을 백이라고 하는 문과식비 (文過飾非)의 우를 범하는 먹물들이 되고 말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법률을 다루는 사람들도 절대적으로 깨끗할 수만 있을까‥‥ 이점에 대해서 스스로를 반성해 봤으면 하는 심정이다 변호인들의 마지막 변론중에 나온 내용이지만 이번에 이 재판을 위해 정치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그것이 위헌인가 아닌가를 헌법재판소에 알아봤을 때 이미 이 재판에서 문제로 제기됐던 국보위에 파견되어 가장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던 장본인이 헌법 재판관으로 판결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어쨌든, 그 사태 배후에 진짜 범인이 있었느냐 없었느냐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범인이 있다면 처벌해야 할 것이고 범인이 없다면 이제는 오해를 씻어나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목표가 아닌 오인된 목표에다가 원한과 슬픔을 계속 품고 그 한을 계속 풀혀고 한다면 오인 사격처럼 또 다른 불행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일년에 걸친 재판방청을 할때, 세상도 많이 변했다

5공때 있었던 가장 큰 학생 시위 작전, 이른바 건국 대학 사태를 능가하는 연대 한총련 사건도 있었고, 5공때 요란한 모금 운동과 함께 만들어 놓은 평화의 댐이 북한의 금강산 댐 실체에 의해 마냥 쓸모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부각되었다.

또 북한에서는 여전히 잠수함에다가 남파 간첩을 태워 내려보내고 우리 사회에도 5공때와 비슷한 안보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순전히 사족이지만, 방청석에 단골로 나와 괴고인들을 매도하던 인권 문제의 전문가로 소문이 난 스님 한 분은 간첩과 관련된 혐의, 즉 국보법 관계로 얼마 전에 수감되었다

아무쪼록 이 재판을 통재 이 재판에 참여한 검찰, 재판부, 그리고 당사자나 방청객뿐 아니라 우리 역사를 위해 진실이 꼭 밝혀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