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이종구 전 국방장관 충격발언/광주사태 당시 육본 작전명령은 내가 기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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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 전 국방장관 충격발언/광주사태 당시 육본 작전명령은 내가 기안했다
김재홍(신동아)
『야인이 돼서 좀 한가하게 지내려 하는 사람을 도대체 왜 만나자는 거요. 그래 무슨 얘기를 하면 됩니까』
지난 5월11일 밤 9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큰길가의 오피스텔 사무실에 약속보다 1시간 늦게 들어선 이종구전국방부장관은 웃음 띤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14개월간 재임한 국방부장관직을 물러난지 5개월, 그러나 35년간을 보낸 군인 생활에 비하면 그가 자연인으로 지낸 시간은 너무 짧다.
그에게 대담을 청한 것은 軍부재자투표 부정의혹사건이 터져 軍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데다가 남북총리회담에서 5월18일 남북군사공동위를 발족시킨다는 데 합의, 가장 마주앉기 어려운 것으로 예상돼던 군사당국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돼 남북간 군사협상시대가 개막됐기 때문이다. 군의 생리에 정통한 인사가 아니고서는 남북군사당국간 협상의 앞날을 전망하기 어렵다.
금년 나이 57세. 한창 일할 연배이지 현직에서 물러나 자신이 걸어 온 외길 이외의 다양한 세계까지 수용할 줄 아는 「원로」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정통한 군인이라는 것은 그의 경력이 증명한다.
경북 칠곡태생으로 경북고를 졸업하고 58년 육사를 마친 후(14기) 79년에 별을 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월남전에 백마부대의 기강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비롯,전방 부사단장과 동해안경비사 참모장으로 일반 야전지휘관이었다. 그러다가 80년 1월 육군본부 작전처장에 보임된 뒤부터 「창군 이래 유례가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요직만 두루 맡았다.
81년 8월 20사단장(기계화보병사단),83년 6월 수방사령관, 85년 6월 국군보안사령관, 86년 7월 2군사령관, 88년 6월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90년 10월 육군총장의 임기만료로 전역한 후 불과 4개월 만에 국방부장관.
그의 경력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두른다. 어떻게 그렇게도 빈틈 한번 없이 승승장구했느냐는 얘기들이다. 더욱이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장관에 오른 예는 거의 없다.
이것은 군부에 너무 센 인물을 키워놓는다는 점에서 朴正熙대통령시절부터 금기시돼온 인사관행으로, 「특수상황」이었던 5공때의 鄭鎬溶전국방부장관 이외에는 없던 일이다. 이종구전장관이 보기 드문 군부실세로 주목받은 것은 이 때문이고, 90년 초 육해공군 통합군제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그를 통합군사령관으로 올려놓기 위한 爲人設官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었다.
특히 그는 全斗煥씨가 발탁해 키웠고 盧泰愚대통령도 중용한 드문 장성들 중 한 사람이다.
북한은 과연 변했는가
대담의 서두를 꺼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진전돼 가고 그 결과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던 군사 당국간 협상이 남북군사공동위 발족으로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학가 집회에 人共旗가 등장해 남북관계가 유화국면에 들어간, 가운데서도 좌경세력 척결이라는 「공안논리」가 또 떠오르고 있습니다만‥‥
『89년 1월 중순경 내가 육군참모총장 때 그해 육해공군의 장성진급자들에게 교육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일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좌경세력을 이대로 방치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인공기가 휘날릴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鄭元植총리가 외국어대에서 학생들에게 봉변당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 열린 비상국무회의 석상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 행동은 이미 학생신분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겁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들과 전투하는 게 아닙니다. 10대의 전사들이 우리 가슴을 비수로 찌른다는 말입니다.
나는 최근에도 어떤 모임에서 금년5,6월이면 총액임금 5% 인상억제 등 때문에 노사분규가 터질 것이며 이때민주투사를 가장한 좌익세력이 날뛸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슈를 무엇으로 내거느냐, 「민자당 해체」로 내걸 것이다, 그렇게 예측을 했어요. 지금 그것이 맞아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치권은 굉장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이를 두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무언가 한번 이용해보려 할겁니다.
인공기를 흔들어댄 학생들이 지금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남북한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좌익세력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렇게 흐트러진 사회분위기 속에 극렬세력들이 설치지 않을까, 나는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할 3개공동위 구성과 이산가족고향방문이 합의되는 등 남북대화가 어느 때보다도 잘돼 가고 있지 않습니까.
『남북회담이라든가 기본합의서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내가 자연인의 입장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만, 그냥 순수하게 얘기한다면, 상대와 협상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위험합니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상대의 전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북한측이 미소를 짓고 나오는 것이 화해를 하려는 마음에서인지, 아니면 화해를 가장한 새로운 음모를 하고 있는 것인지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북한의 과거형태를 역사를 통해 얼마나 잘 압니까. 金三龍이와 曺晩植선생을 교환하자고 떠들다가 6·25남침을 하지 않았습니까. 7·4남북공동성명을 함께 발표하면서 땅굴을 파기 시작했고, 범민족 무슨 대회를 열자고 하다가 아웅산테러를 자행했어요. 올림픽 단일팀 운운하면서 KAL기를 폭파하고‥‥ 자, 이것이 북한집단입니다. 이런 북한이 지금 변했느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남북총리회담을 하고 있는데, 북한의 목표와 우리의 목표가 분명히 다릅니다. 북한은 적화전략에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화해하자는 것이란 말이죠. 이렇게 목표가 다른데 북한이 지금 무슨 이유로 화해하려는 제스추어를 하고 있는지 바로 읽어야 됩니다.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지, 그런 것을 읽지 못하고 감상적으로 굴다가는 큰일납니다』
신국방정책의 필요성
그의 얘기는 일목요연하다. 과거 군출신 정치인들이 내세우던 북한의 남침위기론이나 심지어 국제적으로 탈냉전이 진행되는 안보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한반도에서만은 전쟁위협이 감돈다는 局地안보위기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35년간을 군에서 잔뼈가 굵고 또 남다르게 요직을 두루 거친 그로서는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자체붕괴했고 동구의 공산당정권도 무너졌다. 이들 옛 공산주의 국가들이 국가이념을 바꾸고 우리와 수교했으며, 이런 가운데 북한도 우리의 끈질긴 평화공존 화해 공세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국민일반의 인식일 수 있다. 대학가시위와 노사분규가 벌어지면 북한측이 이를 대남공작의 호기로 이용한다는 것도 오래된 「공안논리」다. 이같은 일반여론이 인다는 측면에서 한정을 부려보았다.
-장관으로 계실 때는 국민여론을 의식하고 또 정부차원의 남북대화정책을 생각해서 「성급한 남북회담 추구는 금물」이라는 정도로만 제동을 걸었는데, 이제 야인으로 돌아와서는 더 세게 겁을 주는 것 같은데요.
『아니, 내가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대학가시위에 인공기가 등장한 일에 대해 어느 정도로 심각성을 갖고 대처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지금 남북총리회담은 계속 진전돼가는 분위기이고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등에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
『그러니까 그것이 저쪽의 전술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순수한 생각만 갖고 회담에 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공산주의국가 뿐만 아니라 우방국과 무역협상을 할 때도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계산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 그런 외교협상을 하는데는 능수능란했다고 봅니다. 日本이 아주 교활하게 했지만 소련은 절대 손해를 안보았어요. 외교협상에서 치밀한 계산없이 대들었다가는 백발백중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저렇게 나오는 것이 과연 순수하게 통일을 하자는 뜻에서 인지 아니면 그들의 전략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적인 태도변화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협상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내가 보기에는 북한이 김일성의 생존기간에는 변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회담하기 전에 金正日이 뭐라고 했습니까. 김일성이 살아있는 동안에 통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우리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아니냐는 겁니다. 남북회담하면서 김일성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북한은 지금 사정거리 1천Km 미사일을 개발해 팔면서, 전략무기를 계속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핵 사찰하자고 하니까 상호사찰해서 미군시설을 이것저것 전부 보자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핵사찰입니까, 또 한심한 것은, 모정광의 대표가 깊은 산속에 원자탄 만드는 기지를 자기가 공사했노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일성에게 백만대군을 준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장관께서는 장관으로 계실 때 21세기 신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의 기초를 입안해놓지 않았습니까. 그 신국방정책은 통일과정에서 우리의 국방정책 목표가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책의 입안자로서 장관께서는 이미 남북회담의 성과를 염두에 둔 것 아니었습니까. 가상적의 변화라든가 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 해 설명해주시지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야 국방부와 합참당국자들이 말해야겠지만, 통일과정에 환상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고, 통일된 후의 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기까지는 무슨 일이 날지 모르니 현실적으로 대북경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한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의 군조직 무기체계 군사전략으로 안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21세기를 8년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재래식무기인 Ml6 소총을 수십만정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전략 무기하나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방만한 군 조직을 소수정예화하고 고핵화 전문집단화해야 합니다. 아마 지금 국방부나 합참에서 이 문제를 상당히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되면 군사비 더 들어갈 것』
-통일한국을 주변열강의 군사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안보전략개념의 변화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흔히들 우리의 가상적이 과연 누구냐 하는 얘기들을 합니다. 나는 우리에게 가상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정돼 있는 가상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모두가 가상적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우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그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제1의 적은 분명히 북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라졌을 때에도 우리는 한반도와 우리의 역사 문화 전통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군사력과 군사전략을 유지해야 합니다』
-작년부터 시작됐습니다만 군비감축과 국방예산 절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전경련이 내년도 국방예산 감축을 요구하고 있는데‥‥‥
『통일된 후에도 어느 것이 적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의 나라를 절대로 선제공격은 안하지만 우리가 침략을 받을 때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국방비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통일되면 군사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군의 역할과 군부의 위상도 더 커진다 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통일 후를 대비한다면 지금부터 「남북 공동안보전략」에 대해 논의해 나갈 수는 없을까요. 남북군사공동위도 발족됐는데 ‥‥‥
『아직까지는 시기상조 차원을 넘어서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아마 우리 정보기관에서는 대개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북한이 그들만의 비밀회의에서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알아보면 과거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요. 韓時海(북한노동당 국재부부부장)가 조총련에서 무어라고 떠들어댔는지 아십니까. 남북대화는 하나의 전술이고 기본전략은 변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북한식대로 통일하자는 얘깁니다.
그런 상태에서 남북 공동안보니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군축회담의 기초가 신뢰구축 군비축소 검증 등 3단계로 진행된다고 볼 때 지금 남북한간에는 군사적 신뢰 구축이라는 초기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그런 말씀은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남북 고위급회담같은 것은 경제협력의 필요성도 있고 해서 북한의 핵심부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북한 하부조직의 움직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의심만 가질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작년에 미국의 어떤 시사주간지에서 이런 기고문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북한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많은 서방세계 인사들이 북한을 다녀온 뒤 말하는 것을 한국사람들이 귀담아 들었다가는 큰일난다는 내용이었어요. 북한 사회는 한두번 가서 본다고 해서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엔테베 발언」의 배경
북한에 대해 그가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에 크게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겪은 가장 큰 시련은 이른바 엔테베발언에 따른 국내 외의 파문이었을 것이다.
91년 4월 한국신문 편집인협회에서 연설을 통해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해 우리에게 치명적 안보위협을 줄 경우 그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며 『그 내용은 엔테베작전을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것이 보도되자 야권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라며 인책 해임을 요구했다. 북한측도 물론 예민하게 반응, 중앙통신을 통해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청와대측의 발언취소 요청에는 소신임을 굽히지 않는 태도를 보였었다.
-「엔테베 발언」으로 큰 파문이 일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에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서 국제여론이 크게 관심을 나타내지도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후 서너달이 지난 그해 여름부터 북한핵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현안문제로 부상했어요. 그러니까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든 것이 이장관의 엔테베발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으니 엔테베발언은 이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 안보관계자들에게서 영향받은 결과였다고 말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한국의 국방부장관의 입을 빌려 대행시켰다는 해석이었어요.
『아직까지도 남북관계가 대결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시정이기 때문에 왜 그런 발언을 했느냐에 대해 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면 이해가 갈 겁니다. 지난번 걸프전 때 다국적군 사령관 슈워츠코프 대장이 지상전을 개시하기 직전에 계속 연안상륙훈련을 했습니다. 이라크뿐 아니라 서방군측의 우리도 그런 상륙작전을 할 것으로 믿었지요. 그래서 이라크 군은 해안선에 집중 배치됐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국적 군은 육지를 우회해서 공격해 들어갔어요. 그때 슈워츠코프에게 상륙훈련의 이유를 물어보았자 절대로 답변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미국측의 「사주」를 받아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얘깁니다. 당시 미국측은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엔테베발언은 사실 내가 91년 4월 서울에서 처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전해 11월 미국에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을 때입니다. 내가 체니 미국국방장관에게 당신네들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이 앞으로 불과 몇년사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만약 내년에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한·미간에 이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공감하느냐고 했더니 그는 동의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나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언론이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해에 엔테베발언은 파문이 굉장했지요. 국방부장관 그만두라는 소리까지 나왔으니 부끄러운 얘깁니다』
-당시 청와대측의 반응은 발언을 취소하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이 6공정부의 최우선적정책이라는 점에서 그런 발언이 결국실점으로 기록됐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북한 핵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겠다는 것은 정책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그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 있다면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하는 군사전략이요 군사작전이지 정책이 아닙니다. 다만 그때 정부, 청와대에서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곧 오게 돼 있는데 한 ·소정상회담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 발언을 취소하라고 청와대 안보보좌관한테서 전화가 걸려 오더니 좀 있다가 청와대비서실장이 전화해요. 내가 안들으니 안기부장이 또 전화를 했고 결국에는 대통령각하가 전화를 했습니다. 이럴 때는 내가 말한 것이 백번 옳고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국가 원수가 안된다고 하면 승복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통수권자의 말인데 ……』
-그때 청와대 핵심참모 등이 이장관의 발언에 대해 6공정부와 노대통령의 최우선적 정책목표인 남북관계개선에 위배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무슨 정책에 위배된다는 얘기는 없었고 다만 너무 강력한 표현이어서 우리가 꼭 공격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한 국가의 내각에서 경제팀이나 외교팀은 부드러워도 군사력을 운용하는 부서는 강해야 조화를 이루어서 외교협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국방부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몰락시키려는 위협에 대해서 제거해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가 있는 겁니까』
업적에 연연하면 안돼
-군에서 장성으로 진급한 뒤에 특히 기억에 남는 보직이나 기억할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보병 20사단장때 돈이 왜나 드는 기계화부대로 개편시켰지요. 그후 수방사령관을 거쳐‥‥‥』
-처음에 보임받을 때는 소장자리인 수도경비사령관이었는데 수도군단 예하사단들을 흡수해서 수도방위사령부로 증편하지 않았습니까. 그 자리에서 중장으로 진급도 했고. 그런 일은 누구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기존구조를 깨야 하기 때문에 실세가 아니고는 하기 어려울텐데요.
「그때만 해도 수경사는 전시에 수도 서울과 청와대를 지킨다고 해서 친위부대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을 순수한 전략군으로 바꾼 겁니다. 내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 필요성을 윗분들에게 납득시키고 그대로 실천했지요」
-그리고는 보안사령관으로 얼마나 있었습니까.
「보안사령관은 만 1년 했는데 간첩을 30여명 잡은 것외에 다른 일은 관심을 쓴 기억이 없어요. 그후 2군사령관 시절에는 실제로 작전지휘체계를 세우기 위해서 후방군단 2개를 창설했고 방위병월급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육군참모총장때 서울에 있던 육군본부를 계룡대로 이전했는데, 군장교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미 내 전임총장때 육군본부를 88년 6월에 이동시키기로 결정해놓았습니다. 나는 그때 안된다고 반대했습니다. 올림픽이 내일 모레인데 육군의 최고지휘부가 서울에서 옮겨가면 민심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꼭 그런 시기에 불안요인이 있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무어냐 말이지요. 그래서 1년간 연기시 켰다가 그 다음해에 이동했지요』
-총장이 끝나고 조금 쉬다가 국방부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장관 재임시 업적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총장 임기만료로 전역하고 넉달 쉬다가 장관을 맡았는데 무슨 업적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지요』
-신국방정책의 한 대목이기도 한데 국방부는 내각의 일원으로서 정책을 다루게 하고 군사전략은 합참이 중심이 돼 추진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견지에서 국방부를 상당한 수준으로 문민화시켜 놓은 일도 이장관의 업적이라고들 합니다만‥‥
『나는 총장 장관을 하면서 업적을 남기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총장이 바뀔 때마다 제각기 업적 하나씩이라도 남기려고 한다면 이랬다 저랬다 해서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국방부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조직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해서 정비하는 것이지 어떤 장관의 업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럼 이 장관께서 구상했던 국방부와 합참의 개편이 자금 제대로 이루어져가고 있습니까.
「내 욕심 같아서는 조금 더 템포가 발랐으면 싶은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가령 과거 국방부 장차관은 현역 중장 대장급에서 임명해왔지요. 아직까지 우리 안보상황으로 보아서 군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국방부를 맡기는 좀 빨라요. 그러나 차관을 내부에서 승진시켜 임명하고 각 차관보급들도 현역이 맡던 것을 전역시켜 민간인 신분으로 전문직 화했습니다. 이런 것이 조직과 임무수행의 효율성 극대화에 크게 기여하리라 봅니다』
통합군논란은 오해에서 비롯
-그런데 합참의 위상이 아직 애매한 것 같습니다. 국군조직법상 합참이 최고군령기구지만 각군본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던 과거 실세의 역할을 합참에 제대로 양도하려 하느냐가 문제 아닙니까. 최근 합참측에 서도「군령권에 각군본부를 어느정도 참여시키고 합참은 각군의 주요지휘관 인사에 사전협의 받는 절충식 운용발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지난 90년 6월 국회에서 군령 군정권의 집중화를 방지하기 위해, 군부가 내놓은 통합군제를 합동군제로 수정했던 취지에 위배되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 입장에서 언젠가는 통합군제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걸프전에서도 보았듯이 앞으로 전쟁양상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3군으로 흩어져 있으면 통합전력을 발휘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전력확보차원에서 통합군제로 가야하는 것은 불가피해요. 다만 그것을 하는데 군부내에 통합군사령관이 생겼을 때 그에게 힘이 모아져 너무 강해지면 어떤 부작용이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우려들이 있습니다. 힘이 너무 강하면 또 군사쿠데타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이런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군사쿠데타를 누가 하는데…. 5 · 16을 군사쿠데타라고 합시다. 그것을 참모총장이 했습니까, 합참의장이 했습니까. 밑에 사람이 하는 겁니다. 통합군사령관이 생긴다면 그것을 감시하기에 바빠요. 또 육해공군이 통합군으로 같이 있으면 그런 것을 하는데 의견일치가 더 안돼서도 어려워요.
그리고 통합군이 되면 육군이 요직을 독식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고쳐야 합니다. 이제 육군은 대폭 줄이고 그대신 해공군력을 증강시켜야 해요. 내가 장관하면서도 필연적이라고 누차 얘기했지만, 육군은 절대로 줄여야 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서는 통일 후의 한국군으로 안맞습니다. 특히 공군쪽을 크게 늘려야 해요. 이런 순수한 생각을 모르고 정치권에서는 육군이 독식해 가지고, 힘이 강해지면 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참‥‥.』
-통합군제 논란이 있었을 때 특히 야권 일각에서는 당시 이종구육군참모총장을 통합군사렁관으로 올리기 위한 위인설관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왔는데 느낌이 어땠습니까.
『정말 하도 어이가 없고 우리 정치권이 수준이 이렇게 낮을까 생각되더군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을 개편 하려는데 어떻게 한 개인을 염두에 두고 하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께 총장직을 물러나게 해달라고 건의했었습니다. 새로운 합참을 만든다면 과도기의 업무추진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서열이 가장 빠른 당시 육군총장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순리지요. 무슨 위인설관이라거나 나를 누가 보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광주」, 발포진상 밝혀져야
-12·12때는 준장이었는데 보직은 무엇이었습니까.
『장성진급을 해서 첫 보직으로 전방부사단장에 나갔다가 12 · 12때는 동해안경비사 참모장으로 이른바 야전군인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육본 작전처장 때 5 · 18光州사태가 터졌지요. 지금 청문회다 뭐다 해가지고 분식이 가해져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잘 구분이 안갑니다. 당시 병력 움직이는 것 등은 작전처장의 기본소관사항이니 내가 소상히 알고 있었고 이미 다 알려진 내용입니다』
-현지에서 공수부대의 작전계획이나 상황보고는 제대로 올라왔었습니까.
『그것은 육본에 보고할 사항이 아니고 현지 지휘관 소관입니다. 육본의 당시 작전명령은 이런 것입니다. 「몇월 몇일 몇시를 기해서 그 지역 사령관의 작전계획에 의해 작전을 해도 좋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세부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식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기안한 작전명령을 기억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금 광주시 일원에는 선량한 시민과 폭도들이 완전히 구분돼 있다. 이 사태를 더이상 방치하면 이 폭도들에 의해서 선량한 광주시민의 희생이 더 커진다. 특히 환자, 부녀자는 생필품과 약품이 고갈돼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더이상 사태를 방치하면 광주시민의 피해가 크다. 그러니 몇일을 기해서 작전을 개시하라」폭도라고 매도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정부의 공식문서입니다. 살인하고 방화하고 군대에 대항하는 극히 일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량한 다수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진압작전이라는 것을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현지의 군부대 행동에 대한 과잉진압 시비같은 구체적 상황보고를 받지 않은 육본이 그런 작전명령을 하달한 것도 지금 와서 보면 문제 아닙니까.
「그것은 국회 청문회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식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돼버렸어요. 무엇이 과잉진압인가…… .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저항도 하지 않은 흑인을 경찰관이 몽둥이로 구타했다고 해서 발단이 된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차량을 동원해서 야간에 라이트를 켠채 수십만의 군중이 몰려오는데 진압군은 백 몇십명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과잉진압이 되느냐‥‥‥그런 때는 군중심리나 전장심리가 되는 겁니다. 국회청문회에서는 발포명령자를 찾으라고 했으나 결국 못찾아냈어요. 발포명령자가 없는 걸 어떻게 찾아냅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도 발포명령 안합니다.
그러나 야밤의 전장심리에서 방아쇠에다들 손을 얹고 있습니다. 지휘관에게는 사격통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바로 앞에 근접해올 때까지 기다려서 사격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다가 겁이 나서 누군가가 한발 쏘아버렸다 이겁니다. 그 총 한발에 전원이 사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전장심리지요. 군중이 몰려오니까 어느 누군가 먼저 한방 쏘았겠지. 어쨋든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세월이 좀 흘러간 뒤 정확한 것이 밝혀져야 합니다』
투표부정의혹, 구태 관행탓
-기왕에 군부에게 입장곤란한 얘기를 꺼낸김에 말씀인데, 요즘도 군장교들간에 지난 88년 국회청문회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진압군의 행위를 따질 때와 똑같은 울분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선거와 관련해서 군이 그렇게 매도당해도 되겠느냐는 불만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언론 야당 공선협 등의 시민단체들이 계속 군부재자투표 부정의혹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
『군대란 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하고 복잡다단한 조직입니까.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국민의 눈길을 끌만한 사건들이 터져나왔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내세워 군대를 자꾸 코너로 몰아서야 되겠습니까. 국민이 군에 대해 내리는 훈계는 회초리로 끝내야지 그것이 몽둥이질이 돼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만약 군대가 강정의 매에 얻어 맞아서 허리가 부러지거나 다리가 못쓰게 됐을 때 누가 박수칩니까.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입니다. 국민은 군대를 북돋워주고 그대신 군대도 이제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눈을 돌려야 합니다. 아직 1∼2%정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2%라는 말씀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성시민사회의 민주화에 비해 군부의 변화 적응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괴리현상이 이번에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터져나온 것 아닙니까. 투표부정 의혹을 부인하는 군 간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지금이 어느때이고 사병의 학력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지휘관들 중에 이같은 환경변화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구태를 관행에 따라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는 군부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군은 군의 특성을 보존해야 합니다. 민주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군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요. 군대라는 것은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가 특수성을 상실하면 그 존재가치가 사라집니다. 군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있으나 평화를 파괴하려는 놈이 나타나면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군은 불합리한 짓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쟁이란 것 자체가 죽이고 살리고 하는 극히 불합리한 일이지요. 군의 명령은 지독히 불합리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그 불합리한 명령에 승복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같은 군의 특수성을 살리려면 일반사회의 발전속도에 비해 군의 민주화가 너무 늦다고 하는 시각은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군대가 옛날처럼 독재적 조직이고 아주 불합리하게 운영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 합리적으로 관리해오지 않은 군대는 불합리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부재자 투표부정의 의혹에 대해서 민관군합동조사를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합니까.
『그것은 거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장독도 깨고 장도 다 버리는 결과밖에 안됩니다. 외부 합동기구가 조사하면 보다 정확한 내용이 밝혀지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때문에 군이 보존해야 할 기본적인 틀이 깨져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사건이 있게 되면 또 민관합동기구가 조사해야 한다고 나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병들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어요』
정치불안이 난국 초래한다
-이번에 보니까 부정투표나 선거조작이 얼마라 있었는지는 좀더 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겠지만 지휘관들의 정치성 정신교육이 관행화돼 왔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유독 선거 직전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좌경세력과 사회혼란의 문제점 등은 어떤 지휘관이나 다 교육하고 있다고 보야야 합니다. 지난 헌정 45년동안의 국회를 생각하면 국가경영이 아니라 정권싸움 하나밖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군의 임무란 전쟁억제인데, 가장 전쟁이 일어나기 쉬운 여건이 사회혼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혼란은 어디서 시작되느냐, 정치권입니다. 내가 이런 애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만약에 어떤 야당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이기게 돼 있다고 한다면 우리 군은 모두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중심세력이 안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책임있는 안정세력이 유지돼야 혼란상이 방지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군의 속성상 이것은 불가피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영역이 정치의 영향을 받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정치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지 않습니까』
一올해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군부 일각에서는 군통수권자를 뽑는 선거에서 군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이장관의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까. 군부의 이익 집단화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군의 최고통수권자는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은 국민이 뽑아주는 겁니다. 국민이 뽑아주는 대통령이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군은 통수권자로 받들어 모시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통수권자를 뽑으니까 군에 보탬이 될만한 사람을 선택해 보자고 하는 논리는 군에 적용이 안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지휘관들이 예비시민인 부하사병들에게 정신교육을 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이런 점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각종 직업 군인은 장교 및 지휘관 양성학교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재검토 할 필요성은 없겠습니까. 커리큘럼도 교관도 모두 군부내에서 만들어진다면 시민사회의 의식이 배제된 채 군부의 시각만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될텐데‥‥‥‥.
『내가 보기에는 한국사회의 어떤 집단이나 직업인보다도 민주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군입니다. 누가 누구한테 교육을 한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가장 건전한 집단인 군에게 다른 영역은 놔두고 무슨 민주시민교육입니까. 군을 정치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설사 군이 민주화가 안됐다고 합시다. 강한 군대로서 전쟁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군대로 성장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군이 군본연의 자세를 견지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다고 해서 군만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군에 대해 엉뚱하게 바람을 넣거나 자기들 유리한 방향으로 해주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겁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군부재자투표제는 아예 없애버리고 부대가 위치한 행정구역에서 현지투표하자는 얘기까지 나왔겠습니까』
퇴임해도 마음 안 편해
-끝으로 퇴임 후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서 조금 얘기하시지요.
『공직생활에서 물러나면 좀 한가해지고 편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마음이 편치가 못하네요. 나라 전체가 불안한 상태인 것 같아요. 역사는 1백년을 주기로 반복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우리가 1세기 전의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게 돼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금세기 초에 우리는 남북 분단이라는 씨앗을 스스로가 뿌렸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통일되든가 해서 분단의 씨앗이 뿌려지던 당시와 비슷하게 돼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분단의 씨앗이 어떻게 뿌려졌습니까. 日本에게 군대를 빼앗겨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한일합방이 일본의 죄과라고 욕을 하고 있는데, 남을 욕할 것 없어요. 지금도 보세요. 사정이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한 곳만 손대서 고쳐질 수가 없고 총체적 문제라는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 밑바닥층에서는 불평불만투성이고 조금 윗층에서는 냉소적이고 이것이 이제 도가 지나쳐 위아래가 함께 흔들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근래 절정기에 올랐을 때가 88서울올림픽때입니다. 민족적 자존심이 최고로 고양됐었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서 라디오방송이나 영화관에서 왜 그런 노래 있잖아요.
「손에 손잡고‥‥‥‥ 하늘엔 조각배가 떠 있고」 이런 것을 계속 틀어 주면서 국민의식을 바꿔보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심야에 유흥가에서 흥청망청이나 해서는 금방 또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얼마전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 일본이 너무 잘 살아서가 아니고 인간개조 때문입니다.모든 분야에 질서와 규범이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의 공직자처럼 부패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모 기업인이 우리중소기업을 살리는 방법은 공직자출입만 자제되면 된다고 했겠습니까. 이제는 법집행을 공정히 하는 강한 정부가 들어서야 합니다. 「유전무죄」라고 생각되는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도덕성이 하루발리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대권전에만 관심이 쏠려 있으니‥‥‥ 오늘 어느 신문에 보니 중소기업이 1천7백개가 쓰러졌고, 우리 수출의 주종을 이루던 의류는 일본시장에서 북한제가 점령하고 있다고 합니다. 질좋은 북한제 양복 한벌이 일본시장에서 2만-5만엔에 팔리고 있어요. 중화학은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있고‥‥‥』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의 열변은 한창이다. 대단한 열정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의 경제발전단계를 수차로 비교해가며 『우리는 인건비와 소비수준이 너무 높아서 국제경쟁력에서 낙오하고 있다』면서 경제문제에 대해 메스를 가하기 시작했다. 심야의 대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취미생활을 물었다.
『인생의 마지막 승부는 체력과 건강이 말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운동도 하고 가끔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붓글씨도 써보고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잘 안 되더군』
6공의 마지막시기라는 말에 생각나는 것을 한마디 더 물었다.
-전두환 노태우대통령 두분을 모두 잘 아실텐데 6공이 끝난 후 두사람이 곧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모두 국가원수를 했던 분들인데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겠어요. 평생 친구사이 아닙니까』
김재홍(신동아)
『야인이 돼서 좀 한가하게 지내려 하는 사람을 도대체 왜 만나자는 거요. 그래 무슨 얘기를 하면 됩니까』
지난 5월11일 밤 9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큰길가의 오피스텔 사무실에 약속보다 1시간 늦게 들어선 이종구전국방부장관은 웃음 띤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14개월간 재임한 국방부장관직을 물러난지 5개월, 그러나 35년간을 보낸 군인 생활에 비하면 그가 자연인으로 지낸 시간은 너무 짧다.
그에게 대담을 청한 것은 軍부재자투표 부정의혹사건이 터져 軍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데다가 남북총리회담에서 5월18일 남북군사공동위를 발족시킨다는 데 합의, 가장 마주앉기 어려운 것으로 예상돼던 군사당국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돼 남북간 군사협상시대가 개막됐기 때문이다. 군의 생리에 정통한 인사가 아니고서는 남북군사당국간 협상의 앞날을 전망하기 어렵다.
금년 나이 57세. 한창 일할 연배이지 현직에서 물러나 자신이 걸어 온 외길 이외의 다양한 세계까지 수용할 줄 아는 「원로」의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정통한 군인이라는 것은 그의 경력이 증명한다.
경북 칠곡태생으로 경북고를 졸업하고 58년 육사를 마친 후(14기) 79년에 별을 달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월남전에 백마부대의 기강중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비롯,전방 부사단장과 동해안경비사 참모장으로 일반 야전지휘관이었다. 그러다가 80년 1월 육군본부 작전처장에 보임된 뒤부터 「창군 이래 유례가 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요직만 두루 맡았다.
81년 8월 20사단장(기계화보병사단),83년 6월 수방사령관, 85년 6월 국군보안사령관, 86년 7월 2군사령관, 88년 6월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90년 10월 육군총장의 임기만료로 전역한 후 불과 4개월 만에 국방부장관.
그의 경력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두른다. 어떻게 그렇게도 빈틈 한번 없이 승승장구했느냐는 얘기들이다. 더욱이 육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장관에 오른 예는 거의 없다.
이것은 군부에 너무 센 인물을 키워놓는다는 점에서 朴正熙대통령시절부터 금기시돼온 인사관행으로, 「특수상황」이었던 5공때의 鄭鎬溶전국방부장관 이외에는 없던 일이다. 이종구전장관이 보기 드문 군부실세로 주목받은 것은 이 때문이고, 90년 초 육해공군 통합군제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그를 통합군사령관으로 올려놓기 위한 爲人設官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었다.
특히 그는 全斗煥씨가 발탁해 키웠고 盧泰愚대통령도 중용한 드문 장성들 중 한 사람이다.
북한은 과연 변했는가
대담의 서두를 꺼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진전돼 가고 그 결과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던 군사 당국간 협상이 남북군사공동위 발족으로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학가 집회에 人共旗가 등장해 남북관계가 유화국면에 들어간, 가운데서도 좌경세력 척결이라는 「공안논리」가 또 떠오르고 있습니다만‥‥
『89년 1월 중순경 내가 육군참모총장 때 그해 육해공군의 장성진급자들에게 교육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일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좌경세력을 이대로 방치하면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인공기가 휘날릴 날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鄭元植총리가 외국어대에서 학생들에게 봉변당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 열린 비상국무회의 석상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 행동은 이미 학생신분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겁니다. 우리가 공산주의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나이 많은 사람들과 전투하는 게 아닙니다. 10대의 전사들이 우리 가슴을 비수로 찌른다는 말입니다.
나는 최근에도 어떤 모임에서 금년5,6월이면 총액임금 5% 인상억제 등 때문에 노사분규가 터질 것이며 이때민주투사를 가장한 좌익세력이 날뛸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슈를 무엇으로 내거느냐, 「민자당 해체」로 내걸 것이다, 그렇게 예측을 했어요. 지금 그것이 맞아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치권은 굉장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이 이를 두고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무언가 한번 이용해보려 할겁니다.
인공기를 흔들어댄 학생들이 지금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남북한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좌익세력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렇게 흐트러진 사회분위기 속에 극렬세력들이 설치지 않을까, 나는 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실천할 3개공동위 구성과 이산가족고향방문이 합의되는 등 남북대화가 어느 때보다도 잘돼 가고 있지 않습니까.
『남북회담이라든가 기본합의서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내가 자연인의 입장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만, 그냥 순수하게 얘기한다면, 상대와 협상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상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성찰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위험합니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상대의 전략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과연 북한측이 미소를 짓고 나오는 것이 화해를 하려는 마음에서인지, 아니면 화해를 가장한 새로운 음모를 하고 있는 것인지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북한의 과거형태를 역사를 통해 얼마나 잘 압니까. 金三龍이와 曺晩植선생을 교환하자고 떠들다가 6·25남침을 하지 않았습니까. 7·4남북공동성명을 함께 발표하면서 땅굴을 파기 시작했고, 범민족 무슨 대회를 열자고 하다가 아웅산테러를 자행했어요. 올림픽 단일팀 운운하면서 KAL기를 폭파하고‥‥ 자, 이것이 북한집단입니다. 이런 북한이 지금 변했느냐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남북총리회담을 하고 있는데, 북한의 목표와 우리의 목표가 분명히 다릅니다. 북한은 적화전략에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화해하자는 것이란 말이죠. 이렇게 목표가 다른데 북한이 지금 무슨 이유로 화해하려는 제스추어를 하고 있는지 바로 읽어야 됩니다.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지, 그런 것을 읽지 못하고 감상적으로 굴다가는 큰일납니다』
신국방정책의 필요성
그의 얘기는 일목요연하다. 과거 군출신 정치인들이 내세우던 북한의 남침위기론이나 심지어 국제적으로 탈냉전이 진행되는 안보환경의 변화 속에서도 한반도에서만은 전쟁위협이 감돈다는 局地안보위기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35년간을 군에서 잔뼈가 굵고 또 남다르게 요직을 두루 거친 그로서는 당연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이 자체붕괴했고 동구의 공산당정권도 무너졌다. 이들 옛 공산주의 국가들이 국가이념을 바꾸고 우리와 수교했으며, 이런 가운데 북한도 우리의 끈질긴 평화공존 화해 공세에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국민일반의 인식일 수 있다. 대학가시위와 노사분규가 벌어지면 북한측이 이를 대남공작의 호기로 이용한다는 것도 오래된 「공안논리」다. 이같은 일반여론이 인다는 측면에서 한정을 부려보았다.
-장관으로 계실 때는 국민여론을 의식하고 또 정부차원의 남북대화정책을 생각해서 「성급한 남북회담 추구는 금물」이라는 정도로만 제동을 걸었는데, 이제 야인으로 돌아와서는 더 세게 겁을 주는 것 같은데요.
『아니, 내가 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대학가시위에 인공기가 등장한 일에 대해 어느 정도로 심각성을 갖고 대처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지금 남북총리회담은 계속 진전돼가는 분위기이고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등에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는데 ….
『그러니까 그것이 저쪽의 전술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전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됩니다. 순수한 생각만 갖고 회담에 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공산주의국가 뿐만 아니라 우방국과 무역협상을 할 때도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계산에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련이 그런 외교협상을 하는데는 능수능란했다고 봅니다. 日本이 아주 교활하게 했지만 소련은 절대 손해를 안보았어요. 외교협상에서 치밀한 계산없이 대들었다가는 백발백중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저렇게 나오는 것이 과연 순수하게 통일을 하자는 뜻에서 인지 아니면 그들의 전략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적인 태도변화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협상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내가 보기에는 북한이 김일성의 생존기간에는 변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회담하기 전에 金正日이 뭐라고 했습니까. 김일성이 살아있는 동안에 통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우리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아니냐는 겁니다. 남북회담하면서 김일성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북한은 지금 사정거리 1천Km 미사일을 개발해 팔면서, 전략무기를 계속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핵 사찰하자고 하니까 상호사찰해서 미군시설을 이것저것 전부 보자고 합니다. 이것이 과연 핵사찰입니까, 또 한심한 것은, 모정광의 대표가 깊은 산속에 원자탄 만드는 기지를 자기가 공사했노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일성에게 백만대군을 준 게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장관께서는 장관으로 계실 때 21세기 신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의 기초를 입안해놓지 않았습니까. 그 신국방정책은 통일과정에서 우리의 국방정책 목표가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책의 입안자로서 장관께서는 이미 남북회담의 성과를 염두에 둔 것 아니었습니까. 가상적의 변화라든가 하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 해 설명해주시지요.
『그 구체적인 내용이야 국방부와 합참당국자들이 말해야겠지만, 통일과정에 환상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고, 통일된 후의 국방정책과 군사전략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이 되기까지는 무슨 일이 날지 모르니 현실적으로 대북경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한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의 군조직 무기체계 군사전략으로 안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21세기를 8년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재래식무기인 Ml6 소총을 수십만정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전략 무기하나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방만한 군 조직을 소수정예화하고 고핵화 전문집단화해야 합니다. 아마 지금 국방부나 합참에서 이 문제를 상당히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되면 군사비 더 들어갈 것』
-통일한국을 주변열강의 군사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안보전략개념의 변화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흔히들 우리의 가상적이 과연 누구냐 하는 얘기들을 합니다. 나는 우리에게 가상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정돼 있는 가상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모두가 가상적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우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그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의 제1의 적은 분명히 북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라졌을 때에도 우리는 한반도와 우리의 역사 문화 전통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군사력과 군사전략을 유지해야 합니다』
-작년부터 시작됐습니다만 군비감축과 국방예산 절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전경련이 내년도 국방예산 감축을 요구하고 있는데‥‥‥
『통일된 후에도 어느 것이 적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의 나라를 절대로 선제공격은 안하지만 우리가 침략을 받을 때 단호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국방비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통일되면 군사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군의 역할과 군부의 위상도 더 커진다 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통일 후를 대비한다면 지금부터 「남북 공동안보전략」에 대해 논의해 나갈 수는 없을까요. 남북군사공동위도 발족됐는데 ‥‥‥
『아직까지는 시기상조 차원을 넘어서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아마 우리 정보기관에서는 대개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만, 북한이 그들만의 비밀회의에서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알아보면 과거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어요. 韓時海(북한노동당 국재부부부장)가 조총련에서 무어라고 떠들어댔는지 아십니까. 남북대화는 하나의 전술이고 기본전략은 변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북한식대로 통일하자는 얘깁니다.
그런 상태에서 남북 공동안보니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군축회담의 기초가 신뢰구축 군비축소 검증 등 3단계로 진행된다고 볼 때 지금 남북한간에는 군사적 신뢰 구축이라는 초기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그런 말씀은 납득이 갑니다.
그러나 남북 고위급회담같은 것은 경제협력의 필요성도 있고 해서 북한의 핵심부에서 추진하고 있는데, 북한 하부조직의 움직임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의심만 가질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작년에 미국의 어떤 시사주간지에서 이런 기고문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북한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많은 서방세계 인사들이 북한을 다녀온 뒤 말하는 것을 한국사람들이 귀담아 들었다가는 큰일난다는 내용이었어요. 북한 사회는 한두번 가서 본다고 해서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엔테베 발언」의 배경
북한에 대해 그가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핵개발에 크게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국방부장관으로 재임하는 동안 겪은 가장 큰 시련은 이른바 엔테베발언에 따른 국내 외의 파문이었을 것이다.
91년 4월 한국신문 편집인협회에서 연설을 통해 그는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해 우리에게 치명적 안보위협을 줄 경우 그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며 『그 내용은 엔테베작전을 연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것이 보도되자 야권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라며 인책 해임을 요구했다. 북한측도 물론 예민하게 반응, 중앙통신을 통해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청와대측의 발언취소 요청에는 소신임을 굽히지 않는 태도를 보였었다.
-「엔테베 발언」으로 큰 파문이 일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에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서 국제여론이 크게 관심을 나타내지도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후 서너달이 지난 그해 여름부터 북한핵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 현안문제로 부상했어요. 그러니까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국내외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만든 것이 이장관의 엔테베발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들으니 엔테베발언은 이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직후에 나왔다는 점 등을 들어 미국 안보관계자들에게서 영향받은 결과였다고 말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한국의 국방부장관의 입을 빌려 대행시켰다는 해석이었어요.
『아직까지도 남북관계가 대결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시정이기 때문에 왜 그런 발언을 했느냐에 대해 다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면 이해가 갈 겁니다. 지난번 걸프전 때 다국적군 사령관 슈워츠코프 대장이 지상전을 개시하기 직전에 계속 연안상륙훈련을 했습니다. 이라크뿐 아니라 서방군측의 우리도 그런 상륙작전을 할 것으로 믿었지요. 그래서 이라크 군은 해안선에 집중 배치됐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국적 군은 육지를 우회해서 공격해 들어갔어요. 그때 슈워츠코프에게 상륙훈련의 이유를 물어보았자 절대로 답변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이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미국측의 「사주」를 받아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근거없는 얘깁니다. 당시 미국측은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엔테베발언은 사실 내가 91년 4월 서울에서 처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전해 11월 미국에서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가 열렸을 때입니다. 내가 체니 미국국방장관에게 당신네들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북한이 앞으로 불과 몇년사이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만약 내년에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한·미간에 이에 대한 특별한 조치를 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공감하느냐고 했더니 그는 동의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나와 기자회견을 했는데,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언론이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더군요.
그런데 그 다음해에 엔테베발언은 파문이 굉장했지요. 국방부장관 그만두라는 소리까지 나왔으니 부끄러운 얘깁니다』
-당시 청와대측의 반응은 발언을 취소하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이 6공정부의 최우선적정책이라는 점에서 그런 발언이 결국실점으로 기록됐던 것 아닙니까.
『그러나 북한 핵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겠다는 것은 정책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그것은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 있다면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하는 군사전략이요 군사작전이지 정책이 아닙니다. 다만 그때 정부, 청와대에서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곧 오게 돼 있는데 한 ·소정상회담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 발언을 취소하라고 청와대 안보보좌관한테서 전화가 걸려 오더니 좀 있다가 청와대비서실장이 전화해요. 내가 안들으니 안기부장이 또 전화를 했고 결국에는 대통령각하가 전화를 했습니다. 이럴 때는 내가 말한 것이 백번 옳고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국가 원수가 안된다고 하면 승복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통수권자의 말인데 ……』
-그때 청와대 핵심참모 등이 이장관의 발언에 대해 6공정부와 노대통령의 최우선적 정책목표인 남북관계개선에 위배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무슨 정책에 위배된다는 얘기는 없었고 다만 너무 강력한 표현이어서 우리가 꼭 공격을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이지요. 그러나 한 국가의 내각에서 경제팀이나 외교팀은 부드러워도 군사력을 운용하는 부서는 강해야 조화를 이루어서 외교협상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국방부장관이라는 사람이 우리를 몰락시키려는 위협에 대해서 제거해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가 있는 겁니까』
업적에 연연하면 안돼
-군에서 장성으로 진급한 뒤에 특히 기억에 남는 보직이나 기억할만한 일은 무엇입니까.
『보병 20사단장때 돈이 왜나 드는 기계화부대로 개편시켰지요. 그후 수방사령관을 거쳐‥‥‥』
-처음에 보임받을 때는 소장자리인 수도경비사령관이었는데 수도군단 예하사단들을 흡수해서 수도방위사령부로 증편하지 않았습니까. 그 자리에서 중장으로 진급도 했고. 그런 일은 누구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기존구조를 깨야 하기 때문에 실세가 아니고는 하기 어려울텐데요.
「그때만 해도 수경사는 전시에 수도 서울과 청와대를 지킨다고 해서 친위부대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을 순수한 전략군으로 바꾼 겁니다. 내가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 필요성을 윗분들에게 납득시키고 그대로 실천했지요」
-그리고는 보안사령관으로 얼마나 있었습니까.
「보안사령관은 만 1년 했는데 간첩을 30여명 잡은 것외에 다른 일은 관심을 쓴 기억이 없어요. 그후 2군사령관 시절에는 실제로 작전지휘체계를 세우기 위해서 후방군단 2개를 창설했고 방위병월급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육군참모총장때 서울에 있던 육군본부를 계룡대로 이전했는데, 군장교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미 내 전임총장때 육군본부를 88년 6월에 이동시키기로 결정해놓았습니다. 나는 그때 안된다고 반대했습니다. 올림픽이 내일 모레인데 육군의 최고지휘부가 서울에서 옮겨가면 민심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꼭 그런 시기에 불안요인이 있는 일을 해야 할 필요가 무어냐 말이지요. 그래서 1년간 연기시 켰다가 그 다음해에 이동했지요』
-총장이 끝나고 조금 쉬다가 국방부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장관 재임시 업적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총장 임기만료로 전역하고 넉달 쉬다가 장관을 맡았는데 무슨 업적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지요』
-신국방정책의 한 대목이기도 한데 국방부는 내각의 일원으로서 정책을 다루게 하고 군사전략은 합참이 중심이 돼 추진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견지에서 국방부를 상당한 수준으로 문민화시켜 놓은 일도 이장관의 업적이라고들 합니다만‥‥
『나는 총장 장관을 하면서 업적을 남기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총장이 바뀔 때마다 제각기 업적 하나씩이라도 남기려고 한다면 이랬다 저랬다 해서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국방부가 일을 제대로 하려면 조직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해서 정비하는 것이지 어떤 장관의 업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럼 이 장관께서 구상했던 국방부와 합참의 개편이 자금 제대로 이루어져가고 있습니까.
「내 욕심 같아서는 조금 더 템포가 발랐으면 싶은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가령 과거 국방부 장차관은 현역 중장 대장급에서 임명해왔지요. 아직까지 우리 안보상황으로 보아서 군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국방부를 맡기는 좀 빨라요. 그러나 차관을 내부에서 승진시켜 임명하고 각 차관보급들도 현역이 맡던 것을 전역시켜 민간인 신분으로 전문직 화했습니다. 이런 것이 조직과 임무수행의 효율성 극대화에 크게 기여하리라 봅니다』
통합군논란은 오해에서 비롯
-그런데 합참의 위상이 아직 애매한 것 같습니다. 국군조직법상 합참이 최고군령기구지만 각군본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던 과거 실세의 역할을 합참에 제대로 양도하려 하느냐가 문제 아닙니까. 최근 합참측에 서도「군령권에 각군본부를 어느정도 참여시키고 합참은 각군의 주요지휘관 인사에 사전협의 받는 절충식 운용발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지난 90년 6월 국회에서 군령 군정권의 집중화를 방지하기 위해, 군부가 내놓은 통합군제를 합동군제로 수정했던 취지에 위배되는 것 같습니다만‥‥
『우리 입장에서 언젠가는 통합군제로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걸프전에서도 보았듯이 앞으로 전쟁양상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3군으로 흩어져 있으면 통합전력을 발휘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전력확보차원에서 통합군제로 가야하는 것은 불가피해요. 다만 그것을 하는데 군부내에 통합군사령관이 생겼을 때 그에게 힘이 모아져 너무 강해지면 어떤 부작용이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우려들이 있습니다. 힘이 너무 강하면 또 군사쿠데타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이런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군사쿠데타를 누가 하는데…. 5 · 16을 군사쿠데타라고 합시다. 그것을 참모총장이 했습니까, 합참의장이 했습니까. 밑에 사람이 하는 겁니다. 통합군사령관이 생긴다면 그것을 감시하기에 바빠요. 또 육해공군이 통합군으로 같이 있으면 그런 것을 하는데 의견일치가 더 안돼서도 어려워요.
그리고 통합군이 되면 육군이 요직을 독식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고쳐야 합니다. 이제 육군은 대폭 줄이고 그대신 해공군력을 증강시켜야 해요. 내가 장관하면서도 필연적이라고 누차 얘기했지만, 육군은 절대로 줄여야 합니다. 이대로 그냥 가서는 통일 후의 한국군으로 안맞습니다. 특히 공군쪽을 크게 늘려야 해요. 이런 순수한 생각을 모르고 정치권에서는 육군이 독식해 가지고, 힘이 강해지면 또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참‥‥.』
-통합군제 논란이 있었을 때 특히 야권 일각에서는 당시 이종구육군참모총장을 통합군사렁관으로 올리기 위한 위인설관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왔는데 느낌이 어땠습니까.
『정말 하도 어이가 없고 우리 정치권이 수준이 이렇게 낮을까 생각되더군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을 개편 하려는데 어떻게 한 개인을 염두에 두고 하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께 총장직을 물러나게 해달라고 건의했었습니다. 새로운 합참을 만든다면 과도기의 업무추진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서열이 가장 빠른 당시 육군총장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순리지요. 무슨 위인설관이라거나 나를 누가 보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광주」, 발포진상 밝혀져야
-12·12때는 준장이었는데 보직은 무엇이었습니까.
『장성진급을 해서 첫 보직으로 전방부사단장에 나갔다가 12 · 12때는 동해안경비사 참모장으로 이른바 야전군인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육본 작전처장 때 5 · 18光州사태가 터졌지요. 지금 청문회다 뭐다 해가지고 분식이 가해져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잘 구분이 안갑니다. 당시 병력 움직이는 것 등은 작전처장의 기본소관사항이니 내가 소상히 알고 있었고 이미 다 알려진 내용입니다』
-현지에서 공수부대의 작전계획이나 상황보고는 제대로 올라왔었습니까.
『그것은 육본에 보고할 사항이 아니고 현지 지휘관 소관입니다. 육본의 당시 작전명령은 이런 것입니다. 「몇월 몇일 몇시를 기해서 그 지역 사령관의 작전계획에 의해 작전을 해도 좋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세부적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식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기안한 작전명령을 기억하고 있는데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금 광주시 일원에는 선량한 시민과 폭도들이 완전히 구분돼 있다. 이 사태를 더이상 방치하면 이 폭도들에 의해서 선량한 광주시민의 희생이 더 커진다. 특히 환자, 부녀자는 생필품과 약품이 고갈돼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더이상 사태를 방치하면 광주시민의 피해가 크다. 그러니 몇일을 기해서 작전을 개시하라」폭도라고 매도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정부의 공식문서입니다. 살인하고 방화하고 군대에 대항하는 극히 일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량한 다수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진압작전이라는 것을 명시했습니다』
-그러나 현지의 군부대 행동에 대한 과잉진압 시비같은 구체적 상황보고를 받지 않은 육본이 그런 작전명령을 하달한 것도 지금 와서 보면 문제 아닙니까.
「그것은 국회 청문회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식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돼버렸어요. 무엇이 과잉진압인가…… .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저항도 하지 않은 흑인을 경찰관이 몽둥이로 구타했다고 해서 발단이 된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차량을 동원해서 야간에 라이트를 켠채 수십만의 군중이 몰려오는데 진압군은 백 몇십명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과잉진압이 되느냐‥‥‥그런 때는 군중심리나 전장심리가 되는 겁니다. 국회청문회에서는 발포명령자를 찾으라고 했으나 결국 못찾아냈어요. 발포명령자가 없는 걸 어떻게 찾아냅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도 발포명령 안합니다.
그러나 야밤의 전장심리에서 방아쇠에다들 손을 얹고 있습니다. 지휘관에게는 사격통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바로 앞에 근접해올 때까지 기다려서 사격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다리고 있다가 겁이 나서 누군가가 한발 쏘아버렸다 이겁니다. 그 총 한발에 전원이 사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전장심리지요. 군중이 몰려오니까 어느 누군가 먼저 한방 쏘았겠지. 어쨋든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세월이 좀 흘러간 뒤 정확한 것이 밝혀져야 합니다』
투표부정의혹, 구태 관행탓
-기왕에 군부에게 입장곤란한 얘기를 꺼낸김에 말씀인데, 요즘도 군장교들간에 지난 88년 국회청문회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진압군의 행위를 따질 때와 똑같은 울분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선거와 관련해서 군이 그렇게 매도당해도 되겠느냐는 불만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언론 야당 공선협 등의 시민단체들이 계속 군부재자투표 부정의혹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
『군대란 하는 일이 얼마나 막중하고 복잡다단한 조직입니까. 물론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국민의 눈길을 끌만한 사건들이 터져나왔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내세워 군대를 자꾸 코너로 몰아서야 되겠습니까. 국민이 군에 대해 내리는 훈계는 회초리로 끝내야지 그것이 몽둥이질이 돼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만약 군대가 강정의 매에 얻어 맞아서 허리가 부러지거나 다리가 못쓰게 됐을 때 누가 박수칩니까.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입니다. 국민은 군대를 북돋워주고 그대신 군대도 이제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눈을 돌려야 합니다. 아직 1∼2%정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2%라는 말씀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성시민사회의 민주화에 비해 군부의 변화 적응속도가 너무 느려서 그 괴리현상이 이번에 군부재자투표과정에서 터져나온 것 아닙니까. 투표부정 의혹을 부인하는 군 간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지금이 어느때이고 사병의 학력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데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지휘관들 중에 이같은 환경변화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고 구태를 관행에 따라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는 군부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군은 군의 특성을 보존해야 합니다. 민주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군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요. 군대라는 것은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가 특수성을 상실하면 그 존재가치가 사라집니다. 군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있으나 평화를 파괴하려는 놈이 나타나면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군은 불합리한 짓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전쟁이란 것 자체가 죽이고 살리고 하는 극히 불합리한 일이지요. 군의 명령은 지독히 불합리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그 불합리한 명령에 승복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이같은 군의 특수성을 살리려면 일반사회의 발전속도에 비해 군의 민주화가 너무 늦다고 하는 시각은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우리 군대가 옛날처럼 독재적 조직이고 아주 불합리하게 운영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에 합리적으로 관리해오지 않은 군대는 불합리한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부재자 투표부정의 의혹에 대해서 민관군합동조사를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합니까.
『그것은 거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장독도 깨고 장도 다 버리는 결과밖에 안됩니다. 외부 합동기구가 조사하면 보다 정확한 내용이 밝혀지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때문에 군이 보존해야 할 기본적인 틀이 깨져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사건이 있게 되면 또 민관합동기구가 조사해야 한다고 나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병들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어요』
정치불안이 난국 초래한다
-이번에 보니까 부정투표나 선거조작이 얼마라 있었는지는 좀더 조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겠지만 지휘관들의 정치성 정신교육이 관행화돼 왔다는 것은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유독 선거 직전이라고 해서가 아니라 평소에 좌경세력과 사회혼란의 문제점 등은 어떤 지휘관이나 다 교육하고 있다고 보야야 합니다. 지난 헌정 45년동안의 국회를 생각하면 국가경영이 아니라 정권싸움 하나밖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군의 임무란 전쟁억제인데, 가장 전쟁이 일어나기 쉬운 여건이 사회혼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혼란은 어디서 시작되느냐, 정치권입니다. 내가 이런 애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만약에 어떤 야당후보가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이기게 돼 있다고 한다면 우리 군은 모두 그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중심세력이 안정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책임있는 안정세력이 유지돼야 혼란상이 방지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안보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군의 속성상 이것은 불가피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영역이 정치의 영향을 받는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정치불안에서 비롯되고 있지 않습니까』
一올해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군부 일각에서는 군통수권자를 뽑는 선거에서 군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이장관의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까. 군부의 이익 집단화라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군의 최고통수권자는 대통령인데, 그 대통령은 국민이 뽑아주는 겁니다. 국민이 뽑아주는 대통령이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군은 통수권자로 받들어 모시는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통수권자를 뽑으니까 군에 보탬이 될만한 사람을 선택해 보자고 하는 논리는 군에 적용이 안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지휘관들이 예비시민인 부하사병들에게 정신교육을 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이런 점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각종 직업 군인은 장교 및 지휘관 양성학교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재검토 할 필요성은 없겠습니까. 커리큘럼도 교관도 모두 군부내에서 만들어진다면 시민사회의 의식이 배제된 채 군부의 시각만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될텐데‥‥‥‥.
『내가 보기에는 한국사회의 어떤 집단이나 직업인보다도 민주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군입니다. 누가 누구한테 교육을 한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는데, 가장 건전한 집단인 군에게 다른 영역은 놔두고 무슨 민주시민교육입니까. 군을 정치적인 시각으로 봐서는 안됩니다. 설사 군이 민주화가 안됐다고 합시다. 강한 군대로서 전쟁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군대로 성장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군이 군본연의 자세를 견지해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다고 해서 군만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군에 대해 엉뚱하게 바람을 넣거나 자기들 유리한 방향으로 해주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는 겁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군부재자투표제는 아예 없애버리고 부대가 위치한 행정구역에서 현지투표하자는 얘기까지 나왔겠습니까』
퇴임해도 마음 안 편해
-끝으로 퇴임 후의 새로운 생활에 대해서 조금 얘기하시지요.
『공직생활에서 물러나면 좀 한가해지고 편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마음이 편치가 못하네요. 나라 전체가 불안한 상태인 것 같아요. 역사는 1백년을 주기로 반복한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우리가 1세기 전의 상황과 대단히 유사하게 돼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금세기 초에 우리는 남북 분단이라는 씨앗을 스스로가 뿌렸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1세기가 지난 오늘날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통일되든가 해서 분단의 씨앗이 뿌려지던 당시와 비슷하게 돼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분단의 씨앗이 어떻게 뿌려졌습니까. 日本에게 군대를 빼앗겨서 시작된 것 아닙니까. 한일합방이 일본의 죄과라고 욕을 하고 있는데, 남을 욕할 것 없어요. 지금도 보세요. 사정이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한 곳만 손대서 고쳐질 수가 없고 총체적 문제라는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 밑바닥층에서는 불평불만투성이고 조금 윗층에서는 냉소적이고 이것이 이제 도가 지나쳐 위아래가 함께 흔들린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근래 절정기에 올랐을 때가 88서울올림픽때입니다. 민족적 자존심이 최고로 고양됐었지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서 라디오방송이나 영화관에서 왜 그런 노래 있잖아요.
「손에 손잡고‥‥‥‥ 하늘엔 조각배가 떠 있고」 이런 것을 계속 틀어 주면서 국민의식을 바꿔보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심야에 유흥가에서 흥청망청이나 해서는 금방 또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얼마전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 일본이 너무 잘 살아서가 아니고 인간개조 때문입니다.모든 분야에 질서와 규범이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의 공직자처럼 부패한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모 기업인이 우리중소기업을 살리는 방법은 공직자출입만 자제되면 된다고 했겠습니까. 이제는 법집행을 공정히 하는 강한 정부가 들어서야 합니다. 「유전무죄」라고 생각되는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도덕성이 하루발리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대권전에만 관심이 쏠려 있으니‥‥‥ 오늘 어느 신문에 보니 중소기업이 1천7백개가 쓰러졌고, 우리 수출의 주종을 이루던 의류는 일본시장에서 북한제가 점령하고 있다고 합니다. 질좋은 북한제 양복 한벌이 일본시장에서 2만-5만엔에 팔리고 있어요. 중화학은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있고‥‥‥』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그의 열변은 한창이다. 대단한 열정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의 경제발전단계를 수차로 비교해가며 『우리는 인건비와 소비수준이 너무 높아서 국제경쟁력에서 낙오하고 있다』면서 경제문제에 대해 메스를 가하기 시작했다. 심야의 대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취미생활을 물었다.
『인생의 마지막 승부는 체력과 건강이 말해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운동도 하고 가끔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붓글씨도 써보고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잘 안 되더군』
6공의 마지막시기라는 말에 생각나는 것을 한마디 더 물었다.
-전두환 노태우대통령 두분을 모두 잘 아실텐데 6공이 끝난 후 두사람이 곧 화해의 악수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모두 국가원수를 했던 분들인데 우리가 헤아릴 수 있겠어요. 평생 친구사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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