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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미국의 5·18 재판/안병하 전 전남도경국장 장남 미법원서 끈질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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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5·18 재판/안병하 전 전남도경국장 장남 미법원서 끈질긴 투쟁.

  정태수 (월간중앙 WIN)

  "미국은 한국민의 가장 은혜로운 우방으로 인식 돼왔다.그러나 1980년 5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돼버린 광주사태를 미국이 용인함으로써 ‥‥‥"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가 지난 82년 4월15일 발표한 한국 최초의 공개적 반미 성명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 대한 우리의 견해' 는 반미의 뿌리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한동안 미국을 구세주처럼 떠받들던 한국에서 80년대부터 시작된 반미운동의 불길을 댕긴 것은 바로 '광주' 였다. 주한 미대사관 · 미문화원 · 미국 기업들은 물론 미군부대까지 화염병 세례를 받거나 점거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불타는 성조기를 짓밟고 찢어발기며 "광주학살 책임지라"는 등 시위대의 목쉰 절규가 분출했다
  미국이 비로소 광주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은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5 ·18괌주민주화운동의 최대 피해자중 한 사람인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고부터다.
  김당선자의 건의로 전두환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5 ·I8 수감자들'의 사면 복권이 이뤄졌고 광주단체들도 근 18년 동안 응어리진 한을 추스르며 김당선자의 화해조치를 받아들었다 직접책임자들의 죄를 덮어두기로 한 마당에 묵인. 방조 등 간접책임을 지웠던 미국에 더 이상 광주를 빌미로 삿대질할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복이니 뭐니 하는 엉뚱한 해석과 파장 때문에 광주에서조차. 5 ·18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지금 광주의 '광' 자만 들먹여도 손을 내젓느라 바빴던 미국에서 '5 18재판' 이 진행되고 있다.
  5·18 때 전남도경국장에서 해임된 안병하( 88년 사망·당시 60세)씨의 장남 영재(43.미 LA거주)씨가 전두환 노태우씨 등 당시 신군부 실세 11명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이 그것. 아버지의 죽음이 항쟁 도증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돼 당한 고문 후유증 때문이라며 피고들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으로 이미 96년 초 시작돼 2년여 공방 끝에 현재 미연방대법원에 계류중(사건번호 97-1889)이다.
  피고소인으로는 전 · 노씨 외에도 최세창 전 국방장관. 유학성 장세동 전 안기부장. 허화평·허삼수 이학봉 전 국회의원 박준병 권정달 현국회의원  박희도 전 육군참모총장 등 전 현직 거물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아니 ,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상대로 벌인 행위를 어떻게 미국에서 재판한다는 말인가. 문제된 행위가 유죄냐 무죄냐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피고들이. 직접 고문행위에 가담한 것도 아니잖은가. 백번 양보해 원고가 승소한다 한들.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이 뻔한 '국경 밖 외국인 피고들'을 무슨 수로 제재하겠다는 것인가.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단만 남겨둬

  우리의 법 ·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문들은 그밖에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당초부터 소송이 성립될 리 없고, 성립된다 하더라도 의미있는 판결이 나을 수 없다는 지레짐작을 낳았다. 고소인측의 행위는 돈이나 유명세 따위를 노린 헛수작으로 치부됐다. 피고들의 쟁쟁한 면면으로 보나, 한국선교협 성명서의 지적대로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 인 광주사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보나 엄청난 볼륨을 지닌 이 소송은 그런 연유로 정작 한국에서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5 · 18재판'은 엄연히 실제상황이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은 사이에 소송 쌍방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고 전투무대는 끝내 미연방대법원으로 옮겨졌다. 더욱이 대법원 판결 여하에 따라서는 예측을 불허하는 국내외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여전히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만 지금부터라도 소승 향방에서 눈길을 뗄 수 없는 것은 그때문이다.
  우선 1, 2심 결과부터 훑어보자.
  원고 안씨의 고소 후 8개월만인 96년 8월 내려진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연방지방법원 판결 요지는 재판관할권이 없으므로 기각 군말 없는 원고 패소였다. 문제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제9항소법원(고등법원)이 지난 1월 내린 판결이었다. 1심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본 판결은 보완될 수 있다'는 요지의 단서를 붙인 것이다.
  이를 두고 원고측은 꽉 막혔던 문이 열린 것에 비유하며 반색한 반면, 피고측은 그 단서의 의미를 깎아내리며 사실상 1심 판결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축한다. 어쨌든 원고측이 지난 5월27일 워싱턴DC 소재 연방대법원에 상고함으로써 이번 소송은 마지막 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그렇다면 소송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원고측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시나리오는 의외로 싱겁다. 95년 12월 중순 어느날 5 · 18특별법에 따라 전두환씨 등 '가해자들'이 줄줄이 구속된 지 얼마 안된 즈음. 로스앤젤레스 남쪽 오렌지카운티의 안영재씨 집으로 느닷없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미국 서북단 워싱턴주 타코마에 사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윤영일(53. 미국명 에디 윤)이라는 변호사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선친(안병하 전 전남도경국장)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들었다. 미국 법으로도 가해자들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허락한다면 내가 선친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 있다 '
  '안국장'은 80년 광주항쟁 와중에 상부의 강경진압 지시를 묵살한 채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무차별 토벌작전 하루 전인 5월26일 직위해제돼 '서빙고호텔(합동수사본부조사실)' 에서 8일 동안(미망인은 11일이라고 주장) 온갖 고문 끝에 경찰복을 벗은 인물. 건강했던 그는 이후 담낭염 ·고혈압 당뇨병 신부전승 등에 시달리다 88년 10월 사망했으며 한국 대법원은 97년 5월 그의 사망이 고문 후유증 때문임을 인정 . 유가족에게 5 · I8 피해보상금 9천여만원을 지급하도록 확정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 안씨가 윤변호사의 편지를 받을 당시에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란 꿈같은 일이었다. 92년 6월 이민, 정원관리 대행회사에 다니면서 가족(부인과 딸)의 생계를 어렵사리 책임져야 했던 그로서는 구구절절 사연을 늘어놓을 겨를조차 빠듯한 처지였다.
  눈이 번쩍 뜨인 그는 편지에 적힌 번호대로 은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똑같은 얘기였다.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았지만 제돈 써가며 해주겠다는 데야 고맙다고 할 수밖에 고문 · 학살에 대해선 외국인의 소송도 관할 이로써 그는 어쩌면 역사적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소송의 고소인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뿐. 고소인 안씨의 소송 관련 움직임은 윤변호사의 제의를 승락한 것이 전부다. 이따금 전화만 주고받을 뿐 아직 윤변호사를 만난 적도 없다. 모든 것을 윤번호사에게 일임한 채 고소장 작성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소장 제출 때는 물론 법정심리 · 판결때도 법원 근처에는 얼씬거린 적도 없다.
  이번 소송이 있게 하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주인공은 바로 윤변호사인 것이다. 따라서 그를 봐야 이번 소송을 알 수 있다. 그는 왜 십수년이나 지난 일을, 미국에서, 생면부지인 안씨를 깨우쳐, 게다가 자신의 돈과 시간을 축내가면서 이 소송을 '일으켰을까' 기자는 지난 5월 잠시 서울에 온 그를 세차례 만났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틀이 멀다하고 전화 팩스 등을 통해 궁금증풀이를 해오고 있지만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95년 모처럼 한국에 나가 석달 가량 지낸 뒤 12월 초 귀로에 로스앤젤레스에 들렀어요. 그때 친구 후배가 안씨네 사연을 들려주면서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 하기에 딱한 생각이 들어 그러마고 한 것입니다. "
- 개인적으로 5 · 18 때문에 피해보신 것이 있습니까. 일가친척이나 친구, 혹은 그냥 아는 사람 누구라도‥‥
  "노(No). 솔직히 광주사태 자체에 대해 별로 관심도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
- 그러니 돈 때문이니 괜히 유명해지려고 그러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돈이야 벌 만큼 벌었고 이래뵈도 시애틀(타코마는 '시애틀의 분당'쯤에 해당한다)에서는 남부럽지 않은.지명도를 갖고 있어요. 이제와서 정의감 같은 것을 갖다붙이기도 낯간지러워요. 그러나 기왕 덤볐으면 '프로'답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 이겨야죠. 다만 변호사로서 욕심이 있다면 내 이름이 새겨진 역사적인 연방대법원 판례를 남기고 싶다는 거예요."
- 도대체 손해배상청구액은 얼마나 됩니까 6백만달러니, 6억달러니 하고 여러 가지 설이 있던데요.
  "얼마를 달라고 (고소장에) 쓴 적도 없고, 입 뻥긋한 적도 없어요. 안병하씨 명예회복이 목표예요. 손해배상액은 재판부가 결정한 대로 따를 것입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액수로 소문난 것은 이번 소송을 단순히 돈을 노린 치사한 짓으로 몰아붙이려고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때문일 것입니다. "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노태우씨가 구속되고 전두환씨가 이른바 '골목성명'을 발표한 뒤 고향에 내려갔다가 안양구치소로 압송되는 장면 등을 보면서 변호사의 '끼'를 발동해 워터게이트사건 마르코스재판과 대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긴 했으나 이런 일에 끼어들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했다.
  윤변호사는 무슨 근거로 미국에서 소송이 가능하다고 믿었을까.
  그것은 미연방법 제28조 1350항, 즉 '외국인 고문 · 학살 방지조항(ATCA)' 이었다. '국제법 또는 미국과의 조약을 위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에 한해 외국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할 경우 연방지방법원이 재판관할권을 가진다(The district courts shall have original jurisdiction of any civil action by an alien for tort only,committed in violation of the law of nations or a treaty of the United States)' 는 한 문장이다.
  이 조항은 미국 독립전쟁 때 미국 편을 든 영국인들이 본국에 돌아갔다가 고문 학살 등 보복을 당할 경우 응징하겠다는 취지로 1776년 독립 후 열린 첫 의회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당초 우려했던 보복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조항도 1백80년이 넘도록 한번(1799년)밖에 적용되지 않는 등 '죽은 법' 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미국 법조인들조차 ATCA의 존재를 망각할 정도가 됐다. 그런데 80년대 들어 누군가 이 조항을 용케 찾아내 소송에 활용하면서 차츰 되살아나 현재 18건의 판례를 남겼다.
  ATCA 판례 중 대표격은 한때 국제뉴스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마르코스재판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이 민중봉기로 축출돼 미국 하와이에 망명한 직후인 86년 3월 트라하노라는 마르코스 치하의 고문피해자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하와이 연방지방법원은 91년 5월 24만6천9백66달러99센트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고무된 필리핀인 9천5백41명이 같은 법원에 무더기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 95년 초 무려 7억6천6백만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재판 과정에서 마르코스의 미국 내 은닉재산은 물론 스위스은행에 감춰둔 예금 금붙이까지 샅샅이 밝혀져 일부는 원고들에게, 일부는 필리핀 정부에 넘겨진 바 있다.

마르코스재판 교훈삼아 부랴부랴 방어 나서

  윤변호사 역시 마르코스재판을 지켜보면서 ATCA의 존재와 위력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안씨로부터 쾌히 허락을 받은 그는 곧 하와이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가 1주일 동안 머무르면서 마르코스재판을 참고해 A4용지 다섯쪽 분량의 고소장을 작성했다. 그는 96년 한해를 이 사건에 매달리겠다는 각오에서 1월1일자로 사인한 뒤 5일 자신이 사는 타코마연방지방법원에 접수했다. 이번 소송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피고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 턱이 없었다.  더욱이 이들은 대부분 급조된 5 18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구치소와 재판정을 오가며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미국에서의 소송에 대해 알게 된 것은 96년 4월께. 타코마지방법원이 시애틀총영사관 등 외교경로를 통해 보낸 그해 3월20일자 통지서를 받고서다.
  이들의 반응은 불문가지였다 국내 재판도 억울한 판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무시했다고 한다. 변호인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대응론을 편 사람은 전두환씨측 변호인 단의 일원이었던 도두형 (41) 변호사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사시 23회(81년)인 그는 지난 88년 미국 일리노이대에 연수. 법학을 공부하는 등 미국법에 밝은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그의 대응론 또한 마르코스재판에서 '교훈' 을 얻은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1심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좀 불리해졌다고 해서 항소심에 나가 새로운 주장을 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마르코스도 처음에 대응하지 않는 바람에 그렇게 당했거든요. 그것을 노려서인지 원고측 변호사가 법원에 빨리 궐석재판을 하자고 한다는 정보도 들어오고요. 그런 정황과 함께 내버려두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도변호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피고들은 샌프란시스코 · 시애틀 등지의 3개 로펌에서 미국인 변호사 7명을 선임, '응전'에 나선다. 한 ·미 양국에서 동시에 법정싸움을 벌여야 하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국내 눈길들이 피고들의 수감생활과 국내 재판에 쏠려 있는 사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자못 열띤 공방이 오갔다.
  그중 백미는 충견론.
  국내 재판에서 전두환씨측 변호인을 맡아온 전상석(69) 전 대법관은 타코마법원에 제출한 96년 6월25일자
의견서에서 대법관 등 자신의 화려한 경력을 소개한 뒤 "한국은 법치국가로서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일본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법체제가 미국과 다름을 설명하는 등 다양한 근거를 내세워 이 사건이 미국 사법당국의 심판대상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윤변호사는 즉각 "그는 전두환씨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된 사람으로 주인을 따르는 충견과 같다"며 전 변호사의 의견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반박하는 의견서로 맞불을 놓았다.
  피고들도 한결같이 자신들이 미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미국에서의 소송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전두환씨의 경우 친필 사인을 한 6월25일자 두쪽짜리 영문 서면진술서에서 자신의 경력과 79년부터 당시까지의 미국 방문 날짜 · 행선지 등을 상세히 적고 광주사태와 관련해 기소돼 있음을 밝힌 후 "88년 이후 미국을 방문한 적도 없고, 미국 또는 워싱턴주에서 사업을 하거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짜 같은 형식으로 된 노태우씨의 서면진술서도 내용은 비슷하다.
  8월9일 타코마연방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초의 법정공방 역시 서면공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프랭크 버지스라는 흑인재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샌프란시스코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존 바코 등 피고측 변호사 7명과 원고측 윤변호사가 홀로 맞붙어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다. 피고측 변호사들이 외국국가원수면책조항(FSIA 보다 정확히 얘기하면 외국주권면책조항) 등을 내세워 '관할권 없음' 을 강조하면 윤변호사는 마르코스재판을 예로 들며 반격하는 식이었다.

  고등법원 판결놓고 양측변호인 아전인수 해석

졸지에 '대사건'을 맡게 된 버지스 판사는 그달 30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측의 손을 들어준다. "재판관할권이 없으므로 본 고소를 기각함."
  그러나 열흘 뒤인 9월9일 윤변호사가 샌프란시스코 제9항소법원에·항소함으로써 이 소송은 2라운드로 접어든다. 윤변호사는 항소 준비를 위해 한국을 방문, 안병하씨의 미망인 전임순( 66. 서울 은평구 갈현동)씨로부터 안씨에 대한 보다 상세한 얘기를 듣고 광주에 내려가 5  18단체 관계자와 지역 언론인들로부터 증언과 자료를 모으기도 했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원고나 피고의 진술 없이 서류 심리와 양측 변호사들간 법정공방 한차례로 마무리됐다. 이 역시 1심공판의 재판이었다. 결심공판은 지난 1월 28일 한국내 피고들이 2년여 수감생활 끝에 사면 ·복권된 지 두달 남짓 지난 이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혹붙은 판결'이 내려져 엇갈린 해석을 낳게 된다. 문제의 단서를 원문대로 옮겨놓고 양측 변호사들의 '해설' 을 들어보자.
  The judgement is modified to be without prejudice and affirmed. AFFIRMED AS M0DIFIED.
  ▷윤변호사=재판관할귄이 없다는 1심 판결을 인정하지만 피고측 주장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 등을 찾아내면 예단하지 않고. 즉 기존 판결에 구애받지 않고 고쳐준다는 뜻이다. 피고들이 1심 때 미국에 재산이 없다는 등 미국과 무관함을 주장했으니 미국내 재산만 찾아내도 판결은 달라진다.
  ▷도변호사(현지 변호사들과 연락이 여의치 않아 도면호사로 대신함)=단서는 다른 판결문에도 흔히 따라불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설령 윤변호사 말을 믿더라도 그분들(피고들)이 미국이나 다른 어디에 재산을 숨겨놓았다면. 그것을 찾겠다고 덤벼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왜 아직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겠는가.
  어느 쪽이 옳든 공은 이제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 판결은 보통 상고이유서 접수일로부터 6-12개월 사이에 양측 변호사들을 모아놓고 한차례 법정심리를 벌인뒤 대법관 9명이 표결로 수용 · 기각 여부를 결정한다 법정심리는 대법관들이 원고측 변호사 30분→피고측 변호사 30분→원고측 변호사 5분 순서로 변론 기회를 주고 나서 양측에 번갈아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사안에 따라 확정판결까지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어쨌든 이번 소송의 쟁점, 즉 원고측 상고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1, 2심 때와 마찬가지로 재판관할권 문제. 피고측이 미국과 무관함을 주장하고 외국국가원수면책조항을 내세운 점을 의식, 원고측은 상고이유서에서 피고들이 ▷사건 발생 당시 미군 통제하에 있었고 ▷미국에서 자금을 투자하고 재산을 구입했으며 ▷적어도 2년 동안 미국에 거주(허확평씨를 지칭)했고 ▷더이상 국가원수가 아님(전 노씨를 지칭)을 들어 ATCA에 따라 미국 법원이 관할권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할권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해답' 은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선 ATCA에 의한 최초의 대법원 판례가 이번 소송을 통해 탄생하게 된다. 기존 판례 18건이 모두 연방지방법원이나 항소법원에서 내려졌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고문 ·학살의 책임범위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제9항소법원은 직접가담자만 소추대상으로 인정한 반면, 동부지역을 관할하는 제2항소법원은 해당 국가 지도자까지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등 하급법원간 판례들이 엇갈려 대법원이 이에 대해 교통정리를 해주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피고들의 미국내 재산실태에 대한 조사 여부. 윤변호사는 샌프란시스코항소법원이 이에 대한 조사권을 달라는 원고측 요구를 무시한 것은 명백한 대법원 판례 위반이라며 적어도 이 부분만은 1백%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특히 항소심 판결문에 원고측의 조사권 요구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이 없는 점을 들어 관할권 유무를 놓고 고심하다 불찰을 빚었을 것이라는 추론까지 덧붙이고 있다.
  어쨌든 상고가 기각되면 그뿐, 이번 소송은 그야말로 '길고도 복잡한 헛이야기' 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받아들여지는 날에는 마르코스재판과 같이 세계적 뉴스거리를 양산하는 빅 이벤트가 될 것이 틀림없다.
  1. 2심 결과로 미뤄 가능상은 희박해 보이지만 재판관할권을 인정할 경우
  하급법원에서 피고들의 5 · 18 당시 행위가 유죄냐 무죄냐, 특히 안병하씨의 죽음에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가를 본격적으로 따지게 된다. 장소가 달라지고 법정에 피고들이 없을 뿐(제발로 미국까지 찾아가지 않을 것이므로), 국내에서의 5 · 18재판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이와 관련, 피고들이 이미 국내법에 의해 유죄판정을 받고 복역한 데다 안병하씨는 고문후유증에 의한 사망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상태여서 미국 법원도 원고측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피해보상 결정되면 세계적 뉴스거리

  그렇다면 미국 법원은 얼마만큼의 손해배상을 명령하고 또 이를 어떻게 집행할 수 있을까. 손해배상액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피고들의 미국내 은닉재산이 드러나면 모르되 없을 경우 집행방법도 아리송하다. 미국 법원은 한국 법원에 피고들의 한국내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요청할 수 있지만 한국 법원이 정치적 파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분고분 따라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피고들. 특히 전 · 노씨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 법원이 결정한 추징금조차 못낸 실정이다. 미국 법원은 또 마르코스재판 때와 같이 스위스은행 등에 피고들의 비밀계좌 존재유무를 확인한 뒤 있을 경우 소정의 금액을 인도해 주도록 요청할 수 있다.
  2. 재판관할권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거나 결정을 유보한 채 상고이유 ② 항,즉 피고들의 미국내 재산유무 등에 대한 원고측의 조사권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원고측 법정대리인은 미국 사법당국의 조력을 받아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사실 은닉재산 유무와는 별개로 윤변호사가 공식적인 '재산찾기'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게다가 조사과정에서 쥐꼬리만한 은닉재산이라도 확인될 경우 피고들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겨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히 메가톤급 정치적 소용돌이를 빚어낼 것이 틀림없다.
  또 하나, 위 두가지 중 어느 경우라도 마르코스재판이 그랬던 것처림 무더기 연쇄소송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윤변호사가 '상고심과 그 이후를 낙관하는 것은 바로 재산 부분. 몰래 파악해둔 믿는 구석' 이라도 있을까. 그는 즉답을 회피한 채 "그들이 미국에 재산을 숨겨놓았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open secret)"이라고 잘라 말한다. 재산을 밝혀내면 관할권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피고측은 펄쩍 뛴다. 재산 관련 발언을 명예훼손으로 걸어 이번 소송과 별개로 법적대응을 강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변호사 그 사람 자기 재산이나 잘 관리하라고 해라"·"괜히 시간낭비하는 것이 애처롭다"는 비아냥까지 흘러나온다.
  윤변호사는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이것 보세요. ATCA는 사실 허점이 많아요.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미국에서 재판을 하든 말든, 이기든 말든,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지더라도 미국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왜 비싼 돈 들여가며 미국인 변호사들을 선임해 응수하고 있습니까. 켕기는 것이 없으면 그러겠습니까."
  미연방대법원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 대법원 판결 이후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한국인들의 무관심 속에 최종라운드에 접어든 이번 소송은 물거품으로도, 핵폭탄으로도 변질될 수 있는 불씨를 안고 종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