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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노태우 정부의 시험대, 전두환 조사와 광주문제. 조영래(신동아, 1988. 7)

본문

노태우 정부의 시험대, 전두환 조사와 광주문제



조  영  래 (변호사)



[광주사태] [전씨 비리] 어물어물 넘길 수 없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라고 하는 말도 있거니와, 새 시대는 구시대의 철저한 청산에서부터 출발한다. 새 국회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부터 올림픽에 이르는 기간중에, 구시대가 남긴 최대의 숙제 두 가지-즉,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에 대한 진상조사와 규명의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에 따라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새 시대]로 순탄하게 돌입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역사적 쟁점을 둘러싸고 집권세력과 국민 사이에 아직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집권세력의 일각에서는 아예 국회 안에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조차 반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들 또한 이 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확고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단적인 예로, 광주학살진상을 조사할 국회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둘러싸고 평민당과 민주당이 각기 {피해 당사자가 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당치 않다}(평민)느니, 또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위원장을 맡는 것은 적당치 않다}(민주)느니 해가면서 특히 위원장 자리를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다투고 있는, 실로 웃지 못할 촌극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노련한 정치가들의 흉중을 이루 다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어쨌거나 지난 양대선거 기간을 통하여 두 정당이 각기 {피해 당사자라야 광주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있다}(평민)라거니, 혹은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야말로 광주문제를 더 잘 처리할 수 있다}(민주)라거니 하면서 서로 다투어 주장하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국민들로서는 심사가 매우 착잡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이런 판국이니 이번엔들 무엇이 제대로 시원스레 밝혀지겠는가, 또다시 어물어물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일찌감치 체념에 빠지는 사람도 없지 않다.
  과연 사태는 그렇게 흘러가고 말 것인가?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으리라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들이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하기 때문이다.
  {묵은 상처를 다시 헤집어내서 국민화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매우 중대한 착각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이 [묵은 상처]가 저절로 딱지가 가라앉고 또 아물어가고 있는 것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 당사자들의 아픔과 국민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치도 헤아리지 못하는 정치적 불감증의 소치이다.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가 우리 역사에 남긴 상처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저절로 아물어가기는커녕 도질 대로 도져서 이제는 어떤 진통을 무릅쓰게 될지언정 더이상 수술을 늦출 수 없는 절박한 단계에 들어섰다.
  [광주학살사진전]에 가보라. 그 참혹한 상처 하나하나가 하늘로 입을 벌리고 그날의 악몽을 증언하며, [진실]과 [정의]를 외치고 있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늦은 밤 지하철을 타보면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안에서 석간신문을 펼쳐든 서민들의 눈빛이 그 날도 어김없이 사회면을 가득 메운 전씨일가·이씨일가의 비리 소식에 새삼스런 놀라움과 노여움으로 타오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가 속에 소리없이 쌓여가는 울분과 원한, 그리고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였던 「체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경멸은 이제 어떤 정치적 술수로 얼버무려 덮을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벗어나 있음을 나는 직감한다. 「묵은 상처」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한 현실인식이 아닌가 싶다.

예상되는 구세력·왕당파의 반발과 반동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구시대를 청산하는 데는 진통이 따른다. 구체제 아래서 배양된 기득권의 온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구세력의 완강한 저항 앞에 정면으로 맞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구시대의 청산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고 원만하게, 누구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는 [국민화합]적인 방식으로 구시대가 청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러나 이것은 이 죄많은 사바세계에서는 한갖 백일몽에 지나지 아니한다. 이같은 냉엄한 현실로부터 우리의 눈을 가리려는 사람들, 낡은 껍질이 깨어지는 아픔에 패한 우리들의 본능적 공포를 부채질하고 그것을 회피하라고 우리를 유혹하는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새 시대를 빼앗아가려는 사람들이다.
  제5공화국 비리와 광주사태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 마음속으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원하면서도 구세력의 반발에 대한 우려와 불안 때문에 이 문제를 덮어두거나 혹은 지연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방책이 되지 않을까 하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집권세력은 은연중에 [군의 존재]를 암시하면서 이러한 우려와 불안을 더욱 확산시킨다.
  광주사태문제의 경우에는 특히 사정이 나쁘다. 이 문제는 성질상 군 내부의 일부 인사들이 불가피하게 연루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집권세력은 이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 군을 「모욕」하고 「자극」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양대 선거를 거치면서 「지역감정의 악화」라는 현상이 초래되는 과정에서 실로 통분스럽게도 광주사태문제마저도 마치 하나의 「지역문제」인 것처럼 비쳐지게 되어버린 감이 없지 않고, 집권세력이 이러한 취약점을 십분 활용하여 국론을 양분시키려고 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평민당과 민주당이 서로 광주사태특위의 위원장을 맡기를 회피하는 지경에 이른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광주문제도 그렇긴 하지만, 제5공화국 비리문제는 구정권의 최고 책임자였던 전두환 전대통령의 책임문제로 곧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일촉즉발의 긴박감과 같은 것을 자아내고 있다. 전두환씨 개인의 비리는 자연인인 그 한 사람의 문제로 그칠 수 있을지 모르나, 구체제의 권위의 상징인 그를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려 세운다는 것은 구체제 가담세력 전체에게 마치 이제껏 그들을 감싸고 있던 보호방벽이 일시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적인 사태로 받아들여지게 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전직 국가원수, 특히 전씨처럼 절대권력의 화신이었던 사람을 심판대 위에 세운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체제가 폭력적으로 붕괴된 프랑스 혁명의 경우에도 한낱 필부로 전락한 「루이」 16세를 법정에 세우기까지에는 엄청난 진통과 갈등이 따랐다. 하물며, 엊그제까지 권좌에 앉아 있다가 이른바 「평화적 정부이양」을 하고 내려온 전씨에게 어떤 사법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폭력혁명으로 전씨를 축출한 것도 아니고 더우기 투표에 의한 실질적인 정권교체마저도 이룩해 내지 못한 우리가 그를 심판대 위에 올려 세울 때에 뒤따를 수 있는 「왕당파」의 반발을 극복해 낼 힘이 과연 있을 것인가? 이것은 과욕이 아닌가? 이러한 무리한 과욕이 도리어 「반동」과 「역행」을 초래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인가?

  미지의 앞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이러한 불안과 우려와 끝없는 머뭇거림을 더하게 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낱 근거없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의 완·급과 강·온을 현명하게 조절해 나아갈 수 있는 국민적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우리가 분명하게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 일은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일이고 또 회피해서도 안될 일이라는 사실이다.

과제를 잊기 위하여, 과거를 청산하기 위하여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의 진상을 규명하는 자제를 우리가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이유는, 이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이 정도 선에서 덮어두고 넘어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앞날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언제까지나 과거의 일에 연연해 있으려고 하는가?]하고 「질책」하는데, 우리의 생각도 바로 그렇다. 우리는 과거의 일에 집착할 여가가 없다. 이 지긋지긋한 과거를 한시라도 빨리 청산해버리고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고 싶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과거란 그저 덮어버린다고 하여, 그저 잊어버린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래는 과거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를 매개로 하여 과거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지금 우리의 발목도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라는 과거가 만들어놓은 매듭에 묶여 있으며, 이 매듭을 올바로 풀지 않고는 아무리 우리가 앞을 향하여 나아가려고 발버둥쳐도 점점 그 매듭을 꼬이게만 할 뿐 허사가 되고 만다.
  생각해 보라. 우리 군인들이 우리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어 수없는 무고한 목숨이 회생된 사태가 일어났는데,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일어났는지, 누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그냥 넘어간다면, 우리에게 어떤 앞날이 있을 것인가? [명령을 따라야 하는 군의 특수성]때문에, [똑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면 똑같이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는 기막힌 고백까지 나오고 있는 상장에서, 우리가 우선 무엇보다도 과거의 악몽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가 있겠는가? 이 상태에서 그저 군을 신뢰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차피 공허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제5공화국 비리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바로잡지 않고 그냥 덮어둔 채, 무엇으로 [깨끗한 정부]를 보장할 것이며, 어떻게 국민들에게 정부를 신뢰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육조단경』에 이르기를, 『참회란 무엇인가? 두번 다시 잘못을 짓지 않는 것 (終身不作)을 참이라 하고, 지난 잘못을 아는 것(知於前非)을 悔라 한다』라고 하였다. 광주사태나 제5공화국 비리를 한두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고 그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실정법의 세계에서는 어떨는지 몰라도 신의 앞에서는 온당한 일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어두운 역사에는 우리 모두의 낙인이 찍혀 있으며, 하늘에 사무친 이 엄청난 죄악으로부터 [알리바이]를 주장하며 깨끗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누구를 공격하거나 해치려고 하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참회」를 위해서이다. 지나간 일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철저히 가려내고 그것을 통렬히 뉘우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앞으로 두번 다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보장을 얻어낼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친일·유신잔재에 5공화국잔재마저 물려줄 것인가

  『前非를 묻지 말자』라고 하는 말이 진상조사 작업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과거의 어둠 속으로 되돌아가자고 하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전비를 묻지 않고는 참회가 있을 수 없고, 참회가 없이는 진정한 「국민화합」도 있을 수 없다. 해방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숱한 정치적 격변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아직껏 한번도 과거의 잘못을 단죄하는 청산의 자정을 거치지 못하고, 한번도 「전비를 묻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역사에 얼마나 심대한 해독을 끼쳤는지를 이 시점에서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으로 과연 진정한 「국민화합」이 이룩되었는가? 진정한 「과거로부터의 단절」이 이룩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친일파 숙청」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지 못한 채 출범한 우리 정부의 「정통성」의 문제가 젊은 세대들에 의해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는 판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와 기성질서에 대하여 품고 있는 뿌리깊은 불신과 경멸도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기에 닿는다. 이러한 상황이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옳은가?
  「친일잔재」와 「유신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 뒤이어 「제5공화국 잔재」마저도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옳은가? 「평화적 정부이양을 한 공로」때문에 지난 7년간의 민족사를 모두 말소해 버려도 좋은가? 이것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훗날 우리 자손들이 배우고 가르치게 될 역사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수백명인지 수천명인지 알 수 없는 시민들이 군인들에 의해 살해된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태를 계기로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었는데, 전씨의 대통령재임기간 7년 중 전씨 부부와 그 일족에 의해 수백억원대인지 수천억원대인지 흑은 수조원대인지 그 규모가 밝혀지지 않은 권력형 비리가 저질러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 후 전씨가 평화적 정부이양을 한 공로가 있다고 하여 국민화합적 차원에서 이 두가지 사태의 진상을 덮어두기로 하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당시 광주에 왜 군대가 투입되였으며 누구의 결정에 의해 투입되었는지, 발포 명령자는 누구이며 투입된 군인의 수효와 소속과 지휘체계는 어떠했으며 작전상황은 어떠했는지, 전씨 일족의 비리의 내용은 무엇이며 관련자는 누구누구이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하는 등등의 정확한 사건 전말에 대하여는 아직까지도 알 길이 없고 그저 미확인의 풍설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들과 관련하여 책임을 지거나 처벌을 받거나 기타 어떤 형태로든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용납할 수가 없다. 민주화니 새 시대니 하는 거창한 구호를 말하기 이전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정의감을 짓밟고 최소한의 양식과 이성마저도 여지없이 조롱하는 그 같은 범죄적인 역사책에 우리 후손들의 순결한 심성이 더럽혀지는 사태를 결단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광주사태와 제5공화국 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은 「정치보복」을 원하는가

  「정치보복」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 거듭 밝히거니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참회」이다. 정치보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과 정의를 굽힌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될 수는 없고, 더우기 「참회」마저도 면제한다는 뜻이 될 수는 결코 없다. 만약 모든 진실이 숨김없이 밝혀져 책임소재가 분명히 되고 거기에서 우리가 충분한 역사적 교훈을 얻게 된다면, 누가 되었든 자신의 잘못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고 통렬히 뉘우치는 사람에 대하여는 법과 정의의 질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관대한 처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그저 누가 무엇을 잘못 했길래 누가 누구에 대하여 유감스럽다는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아니한, 어정쩡한 [유감의 표시」만으로 사태가 마무리될 수는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한 진상조사」는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요구이다.
  우리가 군을 「모욕」하려 한다거나 「자극」하려고 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이다. 누구의 군대인데 모욕하려 하겠으며 누구를 위하여 도움이 될 일이라고 일부러 자극하려 들겠는가? 그 경위야 어찌되었든 광주사태의 와중에서 국군과 시민이 적대하여 살륙전을 벌인 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으며, 이것이 이 사태의 가장 비극적인 묘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이 역사의 응어리가 올바로 풀리지 않고서는 국민과 군 사이의 진정한 신뢰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역사의 응어리를 푸는 열쇠는 [진실]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려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절박하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진실을 밝히자는 우리의 요구에는 아무런 선입견도 개재되어 있지 않고 아무런 전제조건도 붙어있지 않다. 이 사태에 관련되었던 군인들 중에서, 사회여론이 당시의 군의 어려운 처지나 군인의 특수한 행동규범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만 해왔다고 하는 울분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적절한 변소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듣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만이 아니라 군도 광주사태의 피해자이다』라는 말도 충분히 음미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모든 관계자들이 그동안 막혔던 가슴을 열고 그들이 체험한 진실을 밝힘으로써 당시의 모든 상황이 객관적으로 재현되어 국민들에게 충실히 전달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 상황 속에서의 관계 당사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허심탄회한 비판과 토론을 통한 정당한 평가가 내려짐으로써 앞날을 위한 철저한 반성의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이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경청할 자세만 갖추고 있다면 이러한 작업이 군과 국민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키면 시켰지 악화시킬 우려가 있을 까닭이 만무할 것이다.
  제5공화국 비리에 관한 진상조사에 있어서도, 만약 정부가 말하듯이 떠도는 풍설중에 근거없는 낭설이거나 사실보다 과장된 것이 많다고 한다면, 전두환씨 등 관련 당사자들에게 그것을 해명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질 것이다. 만약 전씨가 결백하다면 자진하여서라도 진상조사를 요청하여 그 결백을 증명할 일이요, 만약 전씨가 떳떳지 못하다면 한시 바삐 모든 것을 털어놓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진상조사 자체를 「정치보복」이라고 하는 이유로 마다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문제에 관하여 노대통령과 그의 정부가 매우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는 일이다. 노대통령은 제5공화국헌법 아래서 전두 환씨에 의해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었고 제6공화국헌법 아래서 국민의 직접선거 절차를 거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 기묘한 태생과정은 노정권에게 이른바 제5공화국의 「상속자이자 청산인」이라는 이율배반의 지반 위에 서서 오이디푸스적 고뇌 속에 끝없이 방황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을 선고하였다. 『제5공화국 비리 조사에 성역을 두지 않겠으되 다만 전전대통령 내외에 대한 조사는 반대한다』든지, 또는 『광주사태에 대해 사과 와 보상은 하겠으나 진상조사는 할 수 없다』든지 하는 노정부의 자가당착적인 논리는 바로 이 「상속자이자 청산인」이라는 노정부의 자가당착적인 지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를 낳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신들의 모든 저주 앞에 당당하게 맞서 나아갔듯이, 노대통령과 그 정부 또한 그를 낳은 제5공화국을 자신의 손으로 단죄하고 청산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신의 운명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새 시대로 나아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盧정권은 낡은 탯줄을 단호히 끊어야 한다

  대국을 살피건대, 작년 6월의 전국민적인 민주항쟁을 분수령으로 하여 집권세력과 국민 사이의 힘의 균형은 역전되었다. 노대통령 자신이 정직하게 시인하였듯이, 6·29선언은 「국민에 대한 항복」의 선언이었고, 이 항복의 선언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은 평화적인 방식에 의한 민주화의 길을 선택하고 집권세력에게 철저한 자기 쇄신의 기회를 허용하였던 것이다. 만약 집권세력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를 두고 자만에 빠진 나머지, 「항복」을 위해 치켜들었던 두 팔이 「만세」의 표시로 바뀐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과거의 어두컴컴한 태반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한번 민주주의 쪽으로 기울어진 역사의 저울은 되돌려놓을 순 없으며, 국민이 주인 되는 새 시대는 노정권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시작되었다. 온갖 불법무도한 전횡과 비리로 얼룩진 제5공화국의 어둠을 청산하는 일은 6월명예혁명의 당연한 과실로서 국민에게 약속된 것이고, 노정부는 바로 이 약속의 밑바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노대통령이 이 약속을 성실히 지키려고 할 때에 부딪치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난관은 종국적으로는 전국민적인 민주역량의 뒷받침에 의해 넉넉히 극복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노대통령이나 그 정부가 설령 어떤 현실적인 좌절을 겪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역사 속에서는 그들이 패배자로 기록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노정부가 이 약속을 지키기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립기반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일 뿐이며, 그 경우 따르게 될 오욕은 실로 쓰라린 것이 될 것이다. 노정부는 지금 엄정한 역사적 선택의 갈림길 위에 서 있고 시간은 매우 촉박하다. 낡은 탯줄을 단호하게 끊어 내어버리고 새 시대를 분명하게 선택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