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항쟁의 소설화. 최원식(창작과 비평, 1988. 여름)
본문
광주항쟁의 소설화
최원식
최근 홍희담의 중편소설 「깃발」(『창작과 비평』복간호)이 독서 계에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노동자의 눈으로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침통하게 추적f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여러모로 획기적이다.
다 알다시피 유신체제의 재편과정 속에서 대두한 새로운 독재권력에 정면으로 격렬히 부딪쳤던 광주항쟁은 열흘만에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었지만 우리나라 민족운동사에 불멸의 각인으로 남아 있다. 무엇이 불멸의 각인인가? 그것은 민중의 대두이다. 초기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이 주도했던 광주항쟁은 계엄군에 맞서 도청을 사수했던 그 최후의 결전기에 있어서 민중 주도로 넘어갔으니,「깃발」에서 도청에 남기를 결심한 여성노동자 형자는 광주항쟁 본질적 국면을 다음과 같이 간명히 요약하고 있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을 잘 기억해둬.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인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를‥‥‥
지식인들은 흔히 말한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식인과 달리 민중은 그 존재조건때문에 그 어떠한 현상적 왜곡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혁명적일 수밖에 있다고. 그런데 광주항쟁에서 지식인들은 진정한 위엄 속에 홀연히 대두한 민중을 보았다. 지식인들은 또 흔히 말한다. 「수호지」에서 108명의 호걸들을 거느리고 귀순한 양산박의 두령 송강은 투항주의자이며, 반황제의 깃발을 내세운 흑선풍 이규야말로 진정한 혁명가라고. 마찬가지로 갑오농민전쟁 당시 척양척왜의 깃발 아래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던 녹두장군은 높이 기리는 한편 남접의 즉각적인 무장투쟁노선에 소극적이었던 북접 지도부를 신랄히 비판한다. 그런데 광주항쟁은 『수호지』 비판과 남북접 갈등을 하나의 현실로서 지식인들에게 강박하였다.
이른바 80년대 소설의 침체현상은 바로 이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광주항쟁을 괄호치고 비통한 신음만 뿜어냈던 것이 80년대 전반의 문학적 분위기는 아니었을까 ?
벗들 소위 역사로부터 돌아오라
……
역사로부터
그것이 역사다
……
동학도
이제 3·1운동도 그만 말하고
그 역사로부터 돌아오라
……
역사가 커지면
역사가 무거워지면 오늘이 없다
벗들 역사로부터 돌아 오라
아무리 발길로 차도 동티나지 않는 해골의 역사로부터
- 고은, 「역사로부터 돌아오라」 부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뜨끔함, 그리고 어떤 후련함, 그 미묘한 감정복합을 잊을 수 없다. 고은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민중문학의 이름 아래 우리 시대로부터 일종의 내적 망명상태로 빠져든 80년대 문학의 어떤 경향에 대해 동지적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소설의 침체는 바로 이와 같은 망명상태와 연관되는 것이니, 80년대를 제대로 문제 삼으려고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광주항쟁과 대면하게 된다.
이 점에 광주항쟁의 소설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
내가 알기로 광주항쟁을 본격적으로 그린 첫 작품은 윤정모씨의 「밤길」(12인 신작소설집 「슬픈 해후」창작과 비평사,1985)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수습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신부와, 시민군의 일원으로 항쟁에 참가했던 요섭이 최후의 결전기에 광주를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도피가 아니라 광주항쟁의 진상을 서울에 알리기 위한 임무를 부여받고 떠난 탈출이다. 이와 같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탈출하는 두 사람은 끝없이 번민한다. 진압군의 발굽 아래 유린될 두고 온 동지들의 모습이 망령처럼. 그들을 끊임없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광주항쟁은 자연발생적 봉기이기 때문에 항쟁의 전 국면을 빈틈없이 통제하는 지도부가 부재한다. 지도부의 부재상태에서 몇몇 동지들의 권유에 의해 부여된 탈출 임무에 대해서 두 사람이 끝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요섭은 신음한다.
그들은 죽었어요. 모두가‥‥‥ 그런데 난 비겁자가 되었잖아요. 족보에도 없는 비겁자‥‥‥
그런데 "족보에도 없는 비겁자"라는 말이 묘한 울림을 전해준다. 요섭의 족보는 어떠한가 ?강진서 도예 공이셨다는 몇 대조 선조가 임진란 때 자문한 것으로 비롯해서 동학군에 가담해서 현감을 정치했다는 죄목으로 옥사를 했다는 증조 할아버지, 왜놈 집만 골라 도둑질을 하거나 그 집 안방에 몰래 독사를 잡아넣었다는 당대 할아버지‥‥‥
이 느닷없는 족보타령은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인데, 역사의 전개를 가계사의 연속에서 파악하는 요섭의 의식이야말로 봉건적이다. 혁명적 가계에서는 혁명가만, 반혁명적 가계에서는 반동만 출현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립과 운동을 부정하는 비변증법적인 사고가 아닌가? 요섭의 족보타령은 결국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감상의 밑바닥에는 광주항쟁의 민중적 전개 앞에서 번민하는 소시민적 고뇌가 서려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상적인 요섭보다, "비록 이 밤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해도 이젠 서둘러야 한다"고 다짐하는 김신부가 더욱 돋보이지만, 그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에서도 일말의 쓸쓸함을 지울 길이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광주항쟁에 대한 지식인의 부채의식에 주제적 초점이 맞춰 있으니, 그것은 광주항쟁 당시 광주 바깥의 지식인들을 무겁게 내리 눌렀던 참담한 무력감을 고통스럽게 환기시킨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선구적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엄격한 언론통제를 염두에 둘 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출판탄압의 표적이 되었던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 1985)와 함께 이 작품은 광주항쟁의 소설화에 한 혈로를 뚫었던 것이다.
「밤길」 이후 광주항쟁소설 집 『일어서는 땅』(인동, 1987)이 출간되었다. 중견작가로부터 신인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소설가가 참여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대체로, 항쟁의 바깥에서 비통한 마음으로 항쟁을 바라보는 「밤길」의 시각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감상적인 작품이 많은데 그중 박호재씨의 「다시 그 거리에 서면」과 정도상씨의 「십오방 이야기」가 돋보인다.
"도심에 포진해 있던 특수부대가 외곽으로 철수해버린 후" 곧 광주의 해방기간을 배경으로 한 1장과, 계엄군의 재진입으로 항쟁이 절정 속에 붕괴하는 2장으로 구성된 「다시 그 거리에 서면」은 항쟁에 참여한 대학생 형석의 누나인 지숙의 시각을 중심에 두었다.
지숙의 집안은 빈농 출신이다. "들일을 끝내고서 저물어 가는 사립을 마른 검불처럼 들어서곤 하던 할아버지"는 끝내 쭉정이 같은 육신으로 병사했고, 아버지는 그나마 일찍 죽었으니,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두 남동생을 거느린 맏딸로서 지숙은 가난에 지치고 "나이마저 잔뜩 든 체 시들어가고 있다. 지숙에게 있어서 소시민적 안정에 대한 염원은 절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늘 상 노여움과 피로가 뒤죽박죽이 된 불온한 얼굴로 늦은 귀가를 계속"하던 동생 형석은 운동권 학생으로 어머니와 누나의 염원을 단호히 거부한다. 형석과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가족을 탈출하려는 지숙의 갈구는 더욱 증폭되는 것인데, "·자신의 그 어두컴컴한 이기에 치를 떨면서도 냉철한 성격에 그럴 듯한 직업을 가진 어느 남자에게 더욱 매달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적 위기에 시달리던 그녀의 삶 속으로 뜻밖에 광주항쟁은 틈입한다. 그 남자와의 연락은 두절되고 형석은 항쟁에 참가하고 막내동생 형수는 방위 병으로 진압측에 동원된다. 이 때문에 지숙은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소문을 듣고도 처음에는 설마설마하며 믿지를 않았던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 작품은 바로 형석에 대한 육친적 관심으로부터 광주항쟁의 정당성을 이해하게 되는 지숙의 의식의 발전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삼엄한 항쟁의 와중에서도 인정의 기미를 포착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눈매에도 크게 말미암는다. 가령 광주 소식을 듣고 엄중한 경계를 뚫고 시골에서 올라온 고모와 어머니가 딸기를 먹는 장면은 얼마나 리얼한가.
"아이고, 이년 정신 좀 파라, 말기가 좀 있을 건데‥‥‥‥
(‥‥) 머뭇거리는 어머니의 입에 어그차게 하나를 디밀어 넣으시는 것이었다. 지숙 역시 벌써부터 턱밑에서 신 침이 괴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두 개를 억지로 깨물고 지속이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 갈 즈음이었다. 세 개째 들어 디미는 고모의 손을 부여잡고 어머니가 그만 당신의 무릎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금세 질펀한 넋두리가 통곡으로 어어 졌다.
"성님, 이 몹쓸 에미년 좀 보쇼. 내 자식들 어디 온데 간데도 모른 채 무슨 낯짝으로 입탐을 하고 있단 말이요. 아이고, 내 아들들아‥‥‥‥
호메로스의 리얼리즘 정신을 얘기할 때 흔히 오뒤세우스가 거대한 괴물의 공격으로 많은 부하를 잡아먹히고 혼비백산 도망쳐서 우선 허기를 끈 후 잃어버린 부하들을 생각하고 통곡하는 장면을 드는데, 위의 장면에서도 작자의 산문정신이 빛난다. 생활이 부족한 것이 최근 우리 소설의 한 특징임을 등극할 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생활의 실감은 중요로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 「십오방 이야기」의 무대는 감옥이다. 전태일 기념일을 앞두고 옥중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운동권 대학생 정원태가 수감된 15방에 신입자가 들어오면서 소설은 시작되는데, 노동자로 떠돌다 살인범으로 감옥에 들어온 신입자 김만복은 기실 광주항쟁 때 투입된 공수부대 원이었던 것이다. 박호재씨의 작품에 등장하는 방위병 형수에 이어 마침내 광주항쟁의 직접적 가해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였다. 최후의 결전 날 시·외곽의 고속도로 경계에 동원되어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와 숨죽여 오열하는 몇몇 방위 병의 울음소리측에서 끝내 눈물 한 방을 흘리지 못하고 통곡의 새벽을 견디는 방위 병 형수의 모습이 그대로 우리의 가슴을 치듯이, 제대 후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노가다로 떠도는 만복이의 형상도 아프다.
그런데 김만복의 의식의 잠은 너무나 깊다. 옥중투쟁을 전개하는 운동권 학생들에 대해 속으로 날카로운 적의를 드러내는 그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니, 마지막 진압작전 직전 소대장과 함께 광주에 잠입했다가 중국집 배달원으로 시민군에 참여한 동생 만수가 신분이 탄로난 소대장에 의해 사살되는 비통한 경우에 부딪쳤던 것이다. 광주항쟁을 오직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교육받은 만복이는 이 때문에 동생의 죽음을 데모하는 대학생들의 탓으로 지목하였던 터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생에 대한 만복이의 적의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작품 속에서 잡범들은 말한다.
"낭중에 광주사람들 야그 들어봉께 살벌했다등만. 천엔 학생들이 시작했는디, 뒤에 자들은 다 내auf고 때밀이, 식당 종업원, 구두닦이, 운전수, 공들이, 구멍가게 주인 같은 야들이 총을 잡고 광주를 지킨다고 싸웠다등만, 뭐. 니기미 뒤져뿌린 놈만 불쌍하지 누가 알아주나:'
"때밀이 겉은 야들이 왜 죽기 살기루다 싸운지 아냐. 학생들은 배을게 있어농께 그거 안해도 지 목구녁은 채을 수 있응께 발라버린 것이고, 갸득은 못 가진 한도 있고 데모 하나 안하나 때밀이는 때밀이고 공돌이는 공돌잉께 싸우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들이 의리 하나는 끝내중께."
뼈아픈 말이다. 민중구성에 있어서 주변부를 이루는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광주항쟁에서 맡았던 적극적 역할과, 룸펜프롤레타리아트는 결국 황금과 권력에 맹종하는 변절한 무산계급이라는 고전적 이론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그런데 작가는 이 문제를 끝까지 추적하지 아니하고 서로 적대적인 원태와 만복이를 서둘러 하나의 연대로 묶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얼마나 튼튼한 것인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잡범들의 생태가 리얼한 데 반해 왠지 만복의 형상은 작위적이다:
공수부대 원의 시각을 도입함으로써 광주항쟁의 소설화에 새로운 면모를 개척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잡범과 운동권 대학생 사이의 뿌리깊은 적의에 새삼 놀랐다. 이것이 전위주의에 입각한 대중에 대한 경멸로 치닫지 않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밤길」「다시 그 거리에 서면」「십오방 이야기」는 각각 탈출하는 지식인 동생의 생사에 노심초사하는 누나, 그리고 진압군의 시각을 도입함으로써 광주항쟁의 소설적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위에서 대강 검토했듯이 광주항쟁에 대한 외재적 접근은 그 접근방식 자체가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광주항쟁의 본질적 국면을 올바르게 드러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홍회담씨「깃발」이 주목되는 첫째 이유가 기존의 외재적 접근을 넘어서 광주항쟁을 내재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민중구성의 핵심부를 이루는 노동자들이 축으로서 등장한다. 순분을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은 항쟁의 초기에는 단순한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5·17 비상계엄 화대조치가 의미하는 혹독한 정치적 겨울의 진군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항쟁이 타오르기 시작했음에도, 그녀들은 변함없이 일요일날 야학에서 예배보고 중국집에서 점심 먹으며 노닥거렸던 것이다. 학생 및 지식인이 주도하던 항쟁의 초기에 순분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이 급기야 발포로 귀결되면서 항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자 지식인과 노동자의 관계는 변화한다. 이 변화가 순분이 속한 야학의 노동자들과 야학선생 윤강일의 대립 속에서 극적으로 포착되고 있으니, 초기의 항쟁을 선동 · 지도하던 윤강일은 퇴각한다. 북접 지도부의 투항주의를 비판하고 혁명을 외치던 윤강일은 일보후퇴를 결정하고 광주를 빠져나갔던 것이다. 윤강일의 퇴각으로 야학노동자들은 서울의 어느 방직회사에 해고되어 귀향한 형자의 지도 아래 결속한다. 비록 조그만 야학조직이지만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도권의 교체는 광주항쟁의 본질적 국면을 함축하고 있으니, 5월 20일 운수노동자들의 차량시위를 고비로 광주항쟁은 지식인 주도에서 민중 주도로 비약하였던 것이다. 황석영씨의 표현을 빌면, "민중 스스로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온 생애를 던지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순간"인데, 우리는 이 점을 봉건시대의 민란에서도 익히 보아온 터이다. 가령1900년 제주도 전역을 휩쓸었던 반 기독교 항쟁은 초기에는 유생 및 토호가 주도하다가 그들이 퇴각하자 민중 속에서 노비 출신의 곰보혁명가 이재수가 눈부시게 떠올랐던 것이다. 광주항쟁에서도 이와 같은 운동의 일반법칙은 어김없이 관철되었다. 그리하여 여성노동자들은 도청 취사만에 참가하고 최후의 결전기에 형자는 마침내 총을 잡고 끝처럼 산화한다.
일종의 후일담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3장은 단순한 첨가가 아니라 매우 풍부한 암시를 내포하고 .친다. 윤강일이 수배자로서 순분이들의 자취방으로 숨어들어와 세심한 보호 아래 편안한 잠에 빠져드는 장면에서 보이는 여성노동자들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분위기에서도 그러하고,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따라 깃발처럼 펄럭이는 노동자들의 옷자락은 얼마나 싱싱한 이미지인가. 민중민족운동의 주체는 노동자라는 자각이 간명하고도 힘차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눈으로 광주항쟁의 본질적 국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 작품은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제출하고 있다.
나는 홍희담씨가 노동자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했는데, 노동자가 운동의 주체라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터이다. 그러나 지식인이 이 원칙을 관념적으로 반복해서 확인만 할 때 거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으니, 모든 책무를 노동자에게 넘기고 자신은 모든 역사적 임무로부터 퇴각할 위험이 없지 않은 것이다. 원칙의 확인이 어느 계급을 막론하고 사람의 자기변혁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스콜라주의로 떨어져서는 아니 된다.
이 작품은 물론 르뽀르따쥬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르뽀적 특징이 있으니 그것은 인물의 형상화에서 특히 그러하다. 루카치가 지적하고 있듯이, 부르주아소설의 심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소설의 르뽀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소시민적 반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르포에서는 사회적 산물이 기성품적 또는 최종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비변증법적 기계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깃발」에 그런 징후가 없지 않다. 노동자들은 혁명적인 계급이니라 무조건 그렇게 그려지고 지식인들은 부동하는 소시민층이니까 무조건 흔들리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구체적인 인물이 일반원칙의 한 예증으로서 제출되었다. 이 경향은 최근 노동문학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우려할 일이다. 우리는 운동의 형식에 있어서 변화의 일반법칙이 필연성의 기계적 과장이 아니라 생동하는 구체성 속에서 관철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두자. *
최원식
최근 홍희담의 중편소설 「깃발」(『창작과 비평』복간호)이 독서 계에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노동자의 눈으로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침통하게 추적f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여러모로 획기적이다.
다 알다시피 유신체제의 재편과정 속에서 대두한 새로운 독재권력에 정면으로 격렬히 부딪쳤던 광주항쟁은 열흘만에 참담한 패배로 귀결되었지만 우리나라 민족운동사에 불멸의 각인으로 남아 있다. 무엇이 불멸의 각인인가? 그것은 민중의 대두이다. 초기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지식인이 주도했던 광주항쟁은 계엄군에 맞서 도청을 사수했던 그 최후의 결전기에 있어서 민중 주도로 넘어갔으니,「깃발」에서 도청에 남기를 결심한 여성노동자 형자는 광주항쟁 본질적 국면을 다음과 같이 간명히 요약하고 있다.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을 잘 기억해둬.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인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를‥‥‥
지식인들은 흔히 말한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식인과 달리 민중은 그 존재조건때문에 그 어떠한 현상적 왜곡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혁명적일 수밖에 있다고. 그런데 광주항쟁에서 지식인들은 진정한 위엄 속에 홀연히 대두한 민중을 보았다. 지식인들은 또 흔히 말한다. 「수호지」에서 108명의 호걸들을 거느리고 귀순한 양산박의 두령 송강은 투항주의자이며, 반황제의 깃발을 내세운 흑선풍 이규야말로 진정한 혁명가라고. 마찬가지로 갑오농민전쟁 당시 척양척왜의 깃발 아래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던 녹두장군은 높이 기리는 한편 남접의 즉각적인 무장투쟁노선에 소극적이었던 북접 지도부를 신랄히 비판한다. 그런데 광주항쟁은 『수호지』 비판과 남북접 갈등을 하나의 현실로서 지식인들에게 강박하였다.
이른바 80년대 소설의 침체현상은 바로 이 문제와 깊이 관련된다. 광주항쟁을 괄호치고 비통한 신음만 뿜어냈던 것이 80년대 전반의 문학적 분위기는 아니었을까 ?
벗들 소위 역사로부터 돌아오라
……
역사로부터
그것이 역사다
……
동학도
이제 3·1운동도 그만 말하고
그 역사로부터 돌아오라
……
역사가 커지면
역사가 무거워지면 오늘이 없다
벗들 역사로부터 돌아 오라
아무리 발길로 차도 동티나지 않는 해골의 역사로부터
- 고은, 「역사로부터 돌아오라」 부분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뜨끔함, 그리고 어떤 후련함, 그 미묘한 감정복합을 잊을 수 없다. 고은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민중문학의 이름 아래 우리 시대로부터 일종의 내적 망명상태로 빠져든 80년대 문학의 어떤 경향에 대해 동지적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소설의 침체는 바로 이와 같은 망명상태와 연관되는 것이니, 80년대를 제대로 문제 삼으려고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광주항쟁과 대면하게 된다.
이 점에 광주항쟁의 소설화가 가지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
내가 알기로 광주항쟁을 본격적으로 그린 첫 작품은 윤정모씨의 「밤길」(12인 신작소설집 「슬픈 해후」창작과 비평사,1985)이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수습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신부와, 시민군의 일원으로 항쟁에 참가했던 요섭이 최후의 결전기에 광주를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도피가 아니라 광주항쟁의 진상을 서울에 알리기 위한 임무를 부여받고 떠난 탈출이다. 이와 같은 명분에도 불구하고 탈출하는 두 사람은 끝없이 번민한다. 진압군의 발굽 아래 유린될 두고 온 동지들의 모습이 망령처럼. 그들을 끊임없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광주항쟁은 자연발생적 봉기이기 때문에 항쟁의 전 국면을 빈틈없이 통제하는 지도부가 부재한다. 지도부의 부재상태에서 몇몇 동지들의 권유에 의해 부여된 탈출 임무에 대해서 두 사람이 끝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요섭은 신음한다.
그들은 죽었어요. 모두가‥‥‥ 그런데 난 비겁자가 되었잖아요. 족보에도 없는 비겁자‥‥‥
그런데 "족보에도 없는 비겁자"라는 말이 묘한 울림을 전해준다. 요섭의 족보는 어떠한가 ?강진서 도예 공이셨다는 몇 대조 선조가 임진란 때 자문한 것으로 비롯해서 동학군에 가담해서 현감을 정치했다는 죄목으로 옥사를 했다는 증조 할아버지, 왜놈 집만 골라 도둑질을 하거나 그 집 안방에 몰래 독사를 잡아넣었다는 당대 할아버지‥‥‥
이 느닷없는 족보타령은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인데, 역사의 전개를 가계사의 연속에서 파악하는 요섭의 의식이야말로 봉건적이다. 혁명적 가계에서는 혁명가만, 반혁명적 가계에서는 반동만 출현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립과 운동을 부정하는 비변증법적인 사고가 아닌가? 요섭의 족보타령은 결국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감상의 밑바닥에는 광주항쟁의 민중적 전개 앞에서 번민하는 소시민적 고뇌가 서려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상적인 요섭보다, "비록 이 밤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해도 이젠 서둘러야 한다"고 다짐하는 김신부가 더욱 돋보이지만, 그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에서도 일말의 쓸쓸함을 지울 길이 없다.
요컨대 이 작품은 광주항쟁에 대한 지식인의 부채의식에 주제적 초점이 맞춰 있으니, 그것은 광주항쟁 당시 광주 바깥의 지식인들을 무겁게 내리 눌렀던 참담한 무력감을 고통스럽게 환기시킨다.
그렇다고 이 작품의 선구적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 정권의 엄격한 언론통제를 염두에 둘 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어 출판탄압의 표적이 되었던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 1985)와 함께 이 작품은 광주항쟁의 소설화에 한 혈로를 뚫었던 것이다.
「밤길」 이후 광주항쟁소설 집 『일어서는 땅』(인동, 1987)이 출간되었다. 중견작가로부터 신인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소설가가 참여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대체로, 항쟁의 바깥에서 비통한 마음으로 항쟁을 바라보는 「밤길」의 시각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감상적인 작품이 많은데 그중 박호재씨의 「다시 그 거리에 서면」과 정도상씨의 「십오방 이야기」가 돋보인다.
"도심에 포진해 있던 특수부대가 외곽으로 철수해버린 후" 곧 광주의 해방기간을 배경으로 한 1장과, 계엄군의 재진입으로 항쟁이 절정 속에 붕괴하는 2장으로 구성된 「다시 그 거리에 서면」은 항쟁에 참여한 대학생 형석의 누나인 지숙의 시각을 중심에 두었다.
지숙의 집안은 빈농 출신이다. "들일을 끝내고서 저물어 가는 사립을 마른 검불처럼 들어서곤 하던 할아버지"는 끝내 쭉정이 같은 육신으로 병사했고, 아버지는 그나마 일찍 죽었으니,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두 남동생을 거느린 맏딸로서 지숙은 가난에 지치고 "나이마저 잔뜩 든 체 시들어가고 있다. 지숙에게 있어서 소시민적 안정에 대한 염원은 절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늘 상 노여움과 피로가 뒤죽박죽이 된 불온한 얼굴로 늦은 귀가를 계속"하던 동생 형석은 운동권 학생으로 어머니와 누나의 염원을 단호히 거부한다. 형석과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가족을 탈출하려는 지숙의 갈구는 더욱 증폭되는 것인데, "·자신의 그 어두컴컴한 이기에 치를 떨면서도 냉철한 성격에 그럴 듯한 직업을 가진 어느 남자에게 더욱 매달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적 위기에 시달리던 그녀의 삶 속으로 뜻밖에 광주항쟁은 틈입한다. 그 남자와의 연락은 두절되고 형석은 항쟁에 참가하고 막내동생 형수는 방위 병으로 진압측에 동원된다. 이 때문에 지숙은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 소문을 듣고도 처음에는 설마설마하며 믿지를 않았던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 작품은 바로 형석에 대한 육친적 관심으로부터 광주항쟁의 정당성을 이해하게 되는 지숙의 의식의 발전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삼엄한 항쟁의 와중에서도 인정의 기미를 포착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눈매에도 크게 말미암는다. 가령 광주 소식을 듣고 엄중한 경계를 뚫고 시골에서 올라온 고모와 어머니가 딸기를 먹는 장면은 얼마나 리얼한가.
"아이고, 이년 정신 좀 파라, 말기가 좀 있을 건데‥‥‥‥
(‥‥) 머뭇거리는 어머니의 입에 어그차게 하나를 디밀어 넣으시는 것이었다. 지숙 역시 벌써부터 턱밑에서 신 침이 괴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어머니가 두 개를 억지로 깨물고 지속이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 갈 즈음이었다. 세 개째 들어 디미는 고모의 손을 부여잡고 어머니가 그만 당신의 무릎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금세 질펀한 넋두리가 통곡으로 어어 졌다.
"성님, 이 몹쓸 에미년 좀 보쇼. 내 자식들 어디 온데 간데도 모른 채 무슨 낯짝으로 입탐을 하고 있단 말이요. 아이고, 내 아들들아‥‥‥‥
호메로스의 리얼리즘 정신을 얘기할 때 흔히 오뒤세우스가 거대한 괴물의 공격으로 많은 부하를 잡아먹히고 혼비백산 도망쳐서 우선 허기를 끈 후 잃어버린 부하들을 생각하고 통곡하는 장면을 드는데, 위의 장면에서도 작자의 산문정신이 빛난다. 생활이 부족한 것이 최근 우리 소설의 한 특징임을 등극할 저 이 작품이 보여주는 생활의 실감은 중요로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 「십오방 이야기」의 무대는 감옥이다. 전태일 기념일을 앞두고 옥중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운동권 대학생 정원태가 수감된 15방에 신입자가 들어오면서 소설은 시작되는데, 노동자로 떠돌다 살인범으로 감옥에 들어온 신입자 김만복은 기실 광주항쟁 때 투입된 공수부대 원이었던 것이다. 박호재씨의 작품에 등장하는 방위병 형수에 이어 마침내 광주항쟁의 직접적 가해자가 소설 속에 등장하였다. 최후의 결전 날 시·외곽의 고속도로 경계에 동원되어 시가지에서 들려오는 기관총 소리와 숨죽여 오열하는 몇몇 방위 병의 울음소리측에서 끝내 눈물 한 방을 흘리지 못하고 통곡의 새벽을 견디는 방위 병 형수의 모습이 그대로 우리의 가슴을 치듯이, 제대 후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노가다로 떠도는 만복이의 형상도 아프다.
그런데 김만복의 의식의 잠은 너무나 깊다. 옥중투쟁을 전개하는 운동권 학생들에 대해 속으로 날카로운 적의를 드러내는 그는 깊은 상처를 안고 있으니, 마지막 진압작전 직전 소대장과 함께 광주에 잠입했다가 중국집 배달원으로 시민군에 참여한 동생 만수가 신분이 탄로난 소대장에 의해 사살되는 비통한 경우에 부딪쳤던 것이다. 광주항쟁을 오직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교육받은 만복이는 이 때문에 동생의 죽음을 데모하는 대학생들의 탓으로 지목하였던 터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생에 대한 만복이의 적의가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작품 속에서 잡범들은 말한다.
"낭중에 광주사람들 야그 들어봉께 살벌했다등만. 천엔 학생들이 시작했는디, 뒤에 자들은 다 내auf고 때밀이, 식당 종업원, 구두닦이, 운전수, 공들이, 구멍가게 주인 같은 야들이 총을 잡고 광주를 지킨다고 싸웠다등만, 뭐. 니기미 뒤져뿌린 놈만 불쌍하지 누가 알아주나:'
"때밀이 겉은 야들이 왜 죽기 살기루다 싸운지 아냐. 학생들은 배을게 있어농께 그거 안해도 지 목구녁은 채을 수 있응께 발라버린 것이고, 갸득은 못 가진 한도 있고 데모 하나 안하나 때밀이는 때밀이고 공돌이는 공돌잉께 싸우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자들이 의리 하나는 끝내중께."
뼈아픈 말이다. 민중구성에 있어서 주변부를 이루는 룸펜프롤레타리아트가 광주항쟁에서 맡았던 적극적 역할과, 룸펜프롤레타리아트는 결국 황금과 권력에 맹종하는 변절한 무산계급이라는 고전적 이론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그런데 작가는 이 문제를 끝까지 추적하지 아니하고 서로 적대적인 원태와 만복이를 서둘러 하나의 연대로 묶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과연 얼마나 튼튼한 것인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잡범들의 생태가 리얼한 데 반해 왠지 만복의 형상은 작위적이다:
공수부대 원의 시각을 도입함으로써 광주항쟁의 소설화에 새로운 면모를 개척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잡범과 운동권 대학생 사이의 뿌리깊은 적의에 새삼 놀랐다. 이것이 전위주의에 입각한 대중에 대한 경멸로 치닫지 않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 「밤길」「다시 그 거리에 서면」「십오방 이야기」는 각각 탈출하는 지식인 동생의 생사에 노심초사하는 누나, 그리고 진압군의 시각을 도입함으로써 광주항쟁의 소설적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위에서 대강 검토했듯이 광주항쟁에 대한 외재적 접근은 그 접근방식 자체가 한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광주항쟁의 본질적 국면을 올바르게 드러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홍회담씨「깃발」이 주목되는 첫째 이유가 기존의 외재적 접근을 넘어서 광주항쟁을 내재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는 민중구성의 핵심부를 이루는 노동자들이 축으로서 등장한다. 순분을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은 항쟁의 초기에는 단순한 주변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5·17 비상계엄 화대조치가 의미하는 혹독한 정치적 겨울의 진군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항쟁이 타오르기 시작했음에도, 그녀들은 변함없이 일요일날 야학에서 예배보고 중국집에서 점심 먹으며 노닥거렸던 것이다. 학생 및 지식인이 주도하던 항쟁의 초기에 순분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이 급기야 발포로 귀결되면서 항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자 지식인과 노동자의 관계는 변화한다. 이 변화가 순분이 속한 야학의 노동자들과 야학선생 윤강일의 대립 속에서 극적으로 포착되고 있으니, 초기의 항쟁을 선동 · 지도하던 윤강일은 퇴각한다. 북접 지도부의 투항주의를 비판하고 혁명을 외치던 윤강일은 일보후퇴를 결정하고 광주를 빠져나갔던 것이다. 윤강일의 퇴각으로 야학노동자들은 서울의 어느 방직회사에 해고되어 귀향한 형자의 지도 아래 결속한다. 비록 조그만 야학조직이지만 이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도권의 교체는 광주항쟁의 본질적 국면을 함축하고 있으니, 5월 20일 운수노동자들의 차량시위를 고비로 광주항쟁은 지식인 주도에서 민중 주도로 비약하였던 것이다. 황석영씨의 표현을 빌면, "민중 스스로 역사의 전면에 자신의 온 생애를 던지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순간"인데, 우리는 이 점을 봉건시대의 민란에서도 익히 보아온 터이다. 가령1900년 제주도 전역을 휩쓸었던 반 기독교 항쟁은 초기에는 유생 및 토호가 주도하다가 그들이 퇴각하자 민중 속에서 노비 출신의 곰보혁명가 이재수가 눈부시게 떠올랐던 것이다. 광주항쟁에서도 이와 같은 운동의 일반법칙은 어김없이 관철되었다. 그리하여 여성노동자들은 도청 취사만에 참가하고 최후의 결전기에 형자는 마침내 총을 잡고 끝처럼 산화한다.
일종의 후일담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의 3장은 단순한 첨가가 아니라 매우 풍부한 암시를 내포하고 .친다. 윤강일이 수배자로서 순분이들의 자취방으로 숨어들어와 세심한 보호 아래 편안한 잠에 빠져드는 장면에서 보이는 여성노동자들의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분위기에서도 그러하고,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따라 깃발처럼 펄럭이는 노동자들의 옷자락은 얼마나 싱싱한 이미지인가. 민중민족운동의 주체는 노동자라는 자각이 간명하고도 힘차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눈으로 광주항쟁의 본질적 국면을 날카롭게 포착한 이 작품은 몇 가지 중요한 쟁점을 제출하고 있다.
나는 홍희담씨가 노동자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약간의 실망을 금치 못했는데, 노동자가 운동의 주체라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을 터이다. 그러나 지식인이 이 원칙을 관념적으로 반복해서 확인만 할 때 거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으니, 모든 책무를 노동자에게 넘기고 자신은 모든 역사적 임무로부터 퇴각할 위험이 없지 않은 것이다. 원칙의 확인이 어느 계급을 막론하고 사람의 자기변혁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스콜라주의로 떨어져서는 아니 된다.
이 작품은 물론 르뽀르따쥬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르뽀적 특징이 있으니 그것은 인물의 형상화에서 특히 그러하다. 루카치가 지적하고 있듯이, 부르주아소설의 심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소설의 르뽀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소시민적 반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르포에서는 사회적 산물이 기성품적 또는 최종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비변증법적 기계론에 입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깃발」에 그런 징후가 없지 않다. 노동자들은 혁명적인 계급이니라 무조건 그렇게 그려지고 지식인들은 부동하는 소시민층이니까 무조건 흔들리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구체적인 인물이 일반원칙의 한 예증으로서 제출되었다. 이 경향은 최근 노동문학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우려할 일이다. 우리는 운동의 형식에 있어서 변화의 일반법칙이 필연성의 기계적 과장이 아니라 생동하는 구체성 속에서 관철된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