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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 계속되고 있는가? / 참세상 이루는 운동의 나사못 / 5월연극의 흐름과 과제. 박효선(월간예향, …

본문

참세상 이루는 운동의 나사못


5월 연극의 흐름과 과제



80년 5월의 역사적 격랑은 그후 상당한 세월이 경과한 지금에도 여전히 민족사의 상흔을 간직한 채 우리 주변과 내부에 생생히 머물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그때의 몸부림이나 피흘림이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어내  못했고 어떤 식으로든 시급히 해결되어져야 할 항쟁의 진상조사마저도 끊임없이 은폐 왜곡되어 왔기 때문이다.
  유신독재가 무너지고 새로운 민주화의 시기가 도래하려는 전환점에서 광주의 민중들이 죽음과 맞바꾸면서라도 이루려 했던 민주화에의 열망은 폭압적 살인극에 의해 무참히 허물어지고 만다. 광주 민중항쟁은 자연발생적이고 비조직적인 민중투쟁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겨주었으며 고립된 지역에서 외롭게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운동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하지만 항쟁이 비록 실패하였다 하여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구조적 모순점들을 단적으로 노정시켜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운동의 성격과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부동의 성과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사에서 지을 수 없는 상흔으로서의 '광주 5월'은 연극 예술 안에 어떤 위상으로 서있는가?
  한국 현대사의 한 분수령을 점하는 '광주 5월'은 여러 예술부문 중(문학부문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를 이루어 내지 못해왔고 연극부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5월을 다룬 연극공연이 상당한기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건 우리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기피하고, 민중의 의식을 대 변한다는 연극 고유의 사명을 망각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우리 연극의 수준이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보해 내기에는 아직 일천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연극종사자들의 역량 역시 그에 못 미친다는 자탄 섞인 말도 들린다.

5월 연극 아직 일천한 단계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크게 보아 두 갈래의 연극형태가 존재한다. 하나는 권위주의적이고 관의 직간접적 통제하에 머무는 상업주의 연극이며 다른 하나는 연극예술과 정치와의 일원화를 지향하는 민중연극이 그것이다.
  상업주의연극은 개발도상국가의 전형에 따라 권력의 충직한 하인으로 전락한 연극이랄 수 있다. 이 방면의 연극종사자들은 '순수'와 '예술'을 내세워 자기도취 내지는 최면상태에서 예술적 안락 혹은 '빈곤한 예술'이라는 퇴폐와 자조섞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모든 예술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라는 관점은 역설적으로 이들 상업극의 경우에도 적용되는 수가 있다. 
  그들은 보이게 안보이게 정치권력과 은밀히 결탁하여 권력의 품안에 온존되어 왔다고 볼 수 있고 그 입김의 비호를 받으며 연극인임을 자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연극작업도 정치극일 수가 있다.  그들은 스스로 정치와는 무관한 예술, 순수예술, 미학에 충실한 예술을 부르짖으면서도 사실은 정치 세력과 유기적 관계를 맺어왔던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이러한 예술의 고답성을 탈피하여 예술의 평등화 민중화를 주장하며 민중을 위한 연극,민중에 의한 연극을 운동적 차원으로까지 확대하려는 민중문화운동세력이 지향하는 민중연극이 그것이다. 그들은 연극이란 어느 특정 유한 계급의 향유물이 아닌 이 시대 민중의 공동체적 삶의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연극이 민중에게 있어 행복의 수단이라고 믿는다. 연극이나 여타 예술은 삶의 수단이며 무기가 될 수 있다. 예술의 속성은 원래가 인간의 진보적인 삶에 공헌하고 인류의 발전에 한 몫을 행사하는 인간 삶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연극은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관점을 도외시하고는 광주 5월의 예술적 형상화를 획득해 냈다 할 수 없다. 5월 근 현대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사건이었고 올바른 정치를 갈망하는 민중들의 투쟁이었으며 지금도 그 과정 속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연극작업에 5월을 담아내는데 가장 선도적 역할을 해낸 건 역시 대학연극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사회 속에서 5월을 다룬 연극을 올린다는 건 하나의 금기였고 전문연극을 한다는 사람들의 의식 또한 형편없이 왜소화했었기에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80년 이후 3, 4년간의 탄압시기를 거치면서도 대학 내에서는 자율화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또한 어느 정도 '반해방공간'일 수 있는 대학 내의 분위기 탓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연극은 거개가 학생운동의 이념적 차원, 즉 학생운동의 제반흐름, 굴곡과 궤를 같이 해왔다. 그 가운데 학생들의 의식을 계도하고 고양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마당극의 저변화 속도는 84년 이후 참으로 놀랄만한 것이었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각 단과대별로 또는 과별로 연극, 마당극패가 형성되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공동으로 연출을 해내는 등 주체적 역량을 끊임없이 길러 왔고 이제는 그러한 것이 보편성을 획득할 정도가 되었다. 

대학연극이 선도적 역할

필자의 짧은 경험으로 대학 내에서 빈번하게 펼쳐지는 마당극의 공연을 일일이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상당수의 공연이 5월과 연관되거나 적어도 5월의 정신을 수용한 것들이었다. 특히 해마다 5월이 되면 거의 모든 대학이 정기적으로 5월극을 상연해왔다. 이들 공연  특징은 첫째로, 대학 내의 학내 행사용 작품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이것은 공연공간의 축소화를 의미하며 대중성을 획득하는 차원이 아닌 대학생들의 의식교육을 위한 제한적 효과만을 노린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들 작품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학생운동의 흐름과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당수의 작품들이 아지프로를 지향하고 있고 메시지 전달의 차원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지프로는 연극의 고유한 기능 중의 하나이지만 이럴 경우 자칫하면 다루는 내용을 지나치게 압축, 상징화하여 다양한 형상화를 불가능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대학극이 학생운동의 흐름에 종속되어버릴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극 운동은 단순한 메시지 전달이나 학생운동의 이념적 종속운동으로 머무를 게 아니라 보다 균형잡힌 틀 속에 5월의 정신을 담아 내야 하며 학생들에게만 보여지기 위한 차원이 아닌 일반민중 속에 파고들어 대중성을 획득해 내는 것이 과제랄 수 있다. 일제시대나 해방직후의 대학극이 연극과 민중 민족운동이 일치된 선상에서 모든 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해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88년 3월, 4월 2개월동만 서울 미리내 극장에서 열린「민족극한마당」에 광주지역의 두 극단이 동시에「 5월」을 테마로 삼은 연극과 마당극을 갖고 참가했던 것은 실로 연극사적인 의미가 있다. 극단 (신명)과 극단(토박이)는 각각 「일어서는 사람들」과 「금희의 5월」을 공연했는데 아마도 본격적인 공개공연으로서는 처음 있는 5월극이 아닌가 여겨진다.
  극단(신명)의 「일어서는 사람들」 (서울미리내극장 4월 21∼23일, 광주 YWCA대강당 5월 7∼8일.)은 마당극 고유의 극작술로 5월을 그려내고 있다. 알려진대로 <신명>은 전국에서 전위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 전문적인 마당극단이다.
  이 극단은 82년 8월에 창단된 후로 수 편의 창작 마당극을 공연해 상당한 기량을 축적해 왔고 광주 지역뿐 아니라 전국을 순회하며 마당극의 정착화에도 기여해온 바 적지 않은 극단이다. 그런데 상당한 편수의 공연실적을 쌓아왔음에도, 정작 뿌리 내리고 있는 광주 5 월을 다룬 작품은 그 동안 한편도 공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극단(토박이)의 경우도 똑같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5월을 다루기에는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급변하는 정치정세 속에서 현장적 운동성을 확보해 내기에도 벅찬 실정이었고 5월을 그리기엔 자체역량이 성숙되지 않은 처지였다.
  극단의 기반을 확립하는 일도 커다란 짐이었으며 관권의 주시와 힘도 그에 못지 아니했다. 하지만 (신명)은 그 동안 5월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그 정신적 맥락을 잇는 작업들을 줄기차게 벌여왔다. 「당제」에서 민족통일과 수몰지구 농민의 애환을 「광대」에서 식민지 문화 예술인의 고난과 힘찬 투쟁을,「호랑이놀이」에서 외세와 독재권력의 타도를 춤과 노래, 창으로 혼용된 마당판을 짜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외적 요구와 단원들의 내적인 합심된 욕구에 의해 이번에는 5월의 소재를 직접 표현해내게 된 것이다.

「신명」「토박이」가 5월을 소재로

  「일어서는 사람들」은 도합 다섯마당으로 구성되어있다. 첫째마당에서는 민중을 대변하는 곰배팔이 남편과 꼽추부인이 혼인하여 그들 사이에서 아들인 오일팔이 탄생한다. 둘째마당에서는 80년 5월의 전후상황으로 양코박이와 제록스가 등장하여 광주 5월이 외세와 군부독재의 결탁으로 음모되었음을 폭로한다.  당시 전국적으로 일고 있었던 시위확산을 잠재할 요량으로 일정지역을 선택해 본보기를 보였다는 걸 폭로하고 있다. 셋째마당은 동지마당으로 5월 당시 시민들이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장렬히 숨져 간 시민군의 갈등과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장면에서는 특히 외세에 관한 획기적인 정리를 해내고 있다.

    동지 2 :…대자보 소식통에 의하면 일주일만 더 버티면 미국항공모함이 와서 우리를 구해준다 했소.
    동지 4 : 일주일, 일주일만 더 버틴다면‥‥
    오일팔  :꿈을 개시오 동지들, 미국이 우릴 도와준단 말이오?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기들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냉혈국가요!

  이처럼 외세의 실체를 극명하게 깨닫고 그들은 산화해 간다.  네째마당은 병신부부가 자식을 찾아 헤매다 시신을 상무대에서 찾게 되는 과정을, 마지막 다섯째마당에서는 항쟁정신을 계승하여 투쟁하는 유가족들의 현재상황, 그리하여 광주 5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풍에서는 전반적으로 5월을 최대한 압축해 보여주고 있는데 중요한 건 마당극이라는 독특한 양식에 어떻게 광주 5월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담아내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를 테면 마당극 고유의 기능인 「풍자와 해학」의 수법이 비극적 줄거리를 적절히 용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신명은 이 작품에서 새로운 창작극과 창작노래를 마당마다 도입하고 있다. 사실 마당극이란 공연 상황의 가변성을 무시할 수 없고 현장적 운동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섣부르게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명)의 이번 작품 역시 대본 외적인 연출상의 창의력과 노래판의 변용이 어떻게 관객과의 끈끈한 교감을 이루었느냐가 문제이다.
  극단 「신명」이 요점만 추출해 전형성을 획득하려 한다면 (토박이)의 「금희의 5월」은 항쟁의 전기간을 사실적으로 다루어내고 있다는 게 커다란 차이점이다. 이 작품은 5월을 80년대 후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수렴해 낼 것인가, 그 현대적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당시 항쟁의 와중에서 희생당한 '이정현' 이라는 인물의 궤적, 그리고 여동생 금희의 증언을 통해 그리고 있다. 총 13장과 전후 서장, 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이정연의 투쟁과정, 정연 부모의 기다림과 자식 찾음, 거기다가 정연네 생활기반인 대인시장 주변시장사람들의 항쟁을 겪는 자세 등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원래 무대극 중심의 활동을 벌여오던(토박이)는 이 작품에서 춤, 슬라이드, 사물 등을 과감히 원용,그야말로 총체적인 연극을 시도하고 있다.

정연의 시신은 망월동에

  엄밀히 말한다면 이 작품은 이정연이라는 항쟁에 온몸으로 투쟁했던 한 소지식인으로서의 대학생만을 그리자는 게 아니라 그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 특히 아버지 어머니의 의식적 발전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새롭게 정치적으로 각성된 인물들로 탄생되어 감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시장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 이해 속에 머물지 아니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 항쟁에 기여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은 서장이 열리면서 유족회 일을 하는 어머니를 높은 사람이 광주에 오기 때문에 경찰이 연금하기 위해 끌고 가는 짧은 장면으로 시작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금희의 해설을 연결 고리로 80년 5월 18일로 돌아간다.
학생들의 타살을 목격하고 귀가한 정연은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부모에게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그날밤 잠을 못이루고 고민한다.
  다음날 시장에 아버지 일을 도와주러 나갔다가 한 청년과 그를 구하려던 시장할머니의 의로운 죽음을 목도하고 그날 밤 집을 나가 항쟁에 참여한다. 한편 부모와 시장 사람들은 시민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김밥 만들기 화염병 제작 등의 일을 공동으로 추진한다. 투쟁하던 시민들은 총을 쏘자 자위책으로 무장을 시작하고 마침내 광주는 계엄군을 몰아낸다.
  그러나 정연네 가정은 집을 나간 정연을 애타게 기다리고 찾는다. 이때 정연은 도청 안에서 수습위 일을 보고 있었다. 그는 무기를 반발하고 투항하자는 수습위 간부들의 주장을 공박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은 고조되고 부모의 애탐은 갈수록 더해 간다. 시장사람들은 다시 시민군이 먹을 쌀과 반찬거리, 성금 등을 모아 갖고 도청으로 가려 한다.
26일밤 정연네 집안엔 제사가 있었다. 그때 소식이 감감하던 정연이 집을 들어온다. 집안엔 다시 화기가 돌고 어머니는 비로소 안심을 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 식구들이 잠든 후 정연은 다시 집을 나간다. 그는 자신이 집에 들어온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는다. 텅빈 마당에서 읊는 정면의 독백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핑계로 집안에 갇히게 되기를 속으로 바란 자신의 비겁함」을 토로한다. 드디어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개시되고 정연은 동지들을 모아놓고 힘차게 역설한다.

  정연 :동지 여러분! 이제 최후의 결전의 시기가 왔습니다. 어린 학생들과 여자들은 발려 도청에서 나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시오,
... 이 싸움은 신념이 있는 사람만이 치러야 합니다. 내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 나라의 민주화에 대한 불타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만이 남아 싸웁시다‥‥‥

  기나긴 새벽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날이 밝아온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뛰쳐나가 정연의 행방을 찾는다. 거리에서, 도청부근에서, 상무대까지 가봤지만 정연을 찾을 수가 없다. 닷새 후 동사무소직원은 정연의 시신이 망월동에 있음을 통보한다.

'연극은 발생부터 민중적'

  연극은 그 발생부터가 민중적이다. 고대에 연극은 모든 사람이 참여한 축제였으며 관객과 배우의 구별이 없는 공동체의 삶 그 자체였다.
  연극은 또한 민중의 정치적 심혼을 일깨우는 예술이다. 「모든 인간은 정치적이다」 이 말은 인간이 정치의 수혜자나 노예의 위치로 전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의 정치는 인간의 주체적 참여와 자주성에 의해 이루어짐을 믿는 것이다.
  광주 5월의 연극적 형상화를 이루어 법은 이제 맹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제약이 있어왔으나 그러한 제약이 민중연극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과정이었다. 연극 종사자들은 일 반 민중의 의식 적 차원을 앞서가지 않으면 안된다. 흔히 하는 말로 광주시민의 경우 놀랄만한 정 치 의식을 갖고 있다고들 한다.
  이러한 정치의식을 한 차원 높이고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세 상을 이루는데 적극적인 실천력으로 환원될 수 있도록 연극종사자들의 사명감은 지대한 것이다. 연극은 참 세상을 이루는 운동의 나사못이며 톱니바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