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신동아 토론 / 광주사태 어떻게 해야하나. 강인섭(신동아, 1985. 7)
본문
신동아 토론/광주사태 어떻게 해야 하나.
참석자 : 김영작/박찬종
사 회 : 강인섭
개원국회, 만족할만 했는가
사 12대개원국회가 30일간 회기를 모두 마치고 폐막했읍니다. 이번 국회는 지난번 총선 후에 처음 열리는 개원국회이고, 또 5.16과 5.17, 그리고 광주사태가 걸쳐 있는 그런 민감한 계절에 열렸읍니다. 또 국회가 계속되고 있는 기간중에는 미문화원농성 사건이 있었고, 12년만에 북한적십자대표단이 서울에 와서 남북적회담이 재개되었읍니다. 이러한 시기에 열린 국회여서 그런지 몰라도 흔히 정치국회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이 다루어졌읍니다. 어떤 사람은 이번 국회가 목청만 높았지 실질소득이라 할까 결실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만, 과거의 국회에 비교해볼 때 목청만이라도 높았던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김 12대 국회가 국민들의 많은 기대를 모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국회로서 잘 운영이 되겠느냐 하는 일말의 불안감 속에서 열렸는데, 개원까지 가는데만 해도 한달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요. 저는 나름대로 이번 국회가 국민이 갖고 있었던 불안감을 씻어준 측면도 있었고, 그와 함께 국민의 입장에서 완전히 만족을 했겠느냐 하면 그렇게 후한 점수만은 주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강위원 말씀대로 정치국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여야간에 많은 정치현안이 다루어졌는데, 목청만 높았지 소득은 적었다는 평과 그것만으로도 종전보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느냐 하는 평 어느 쪽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치국회라고 해서 임시국회 한 회기에 모든 현안이 완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여는 여대로 자기 입장을 주장하고,야는 야대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누적되는 과정에 국민들이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하고 국민여론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볼 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그런대로 합격점을 줄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하나 국민의 실지 피부에 와 닿는 민생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정기국회 전에라도 임시국회를 한번 열어서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는 현안들을 다뤄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총선민의에 대한 상반된 평가
박 좀 가혹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제5공화국 출범과정에서 만들어졌던 정당과, 그렇게 해서 구성되었던 11대 국회는 어용 국회이고 들러리국회였고 따라서 국민적 지지나 신뢰의 기반 위에서 출범했던 국회가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이번 12대 개원국회를 통해서 적어도 그러한 제도권 내의 규격화되고 어용.무력화된 성격은 상당히 분쇄됐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설정해 놨던 성역을 무너뜨리고, 국회를 통해서 신민당은 국민적 관심사를 상당히 얘기할 수 있었어요. 물론 평가는 국민들이 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하려고 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정부와 여당이 아직도 2.12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심각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요.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어떤 민정당의원이 국민은 안정 속에 개혁을 바라서 우리 민정당에 압도적 표를 던져 원내 제1당이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망연자실한 심정에 빠졌읍니다. 바로 이런 사고에서 나오는 여당과 정부의 경직된 자세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 입장에서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정치에 뛰어들어서 얼마 안되지만 신민당은 논리적 독선이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어요. 지난번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만도 그래요. 국민들이 민주화를 바란다, 개혁을 바란다, 또 발전을 바란다는 것을 우리 민정당에서는 한번도 부인해본 적이 없어요. 단지 민주화의 내용과 그 민주화의 내용을 둘러싼 입장이 대립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많은 국민이 안정을 바란다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분명히 드러났어요. 이와 같이 총선결과를 양쪽에 균형있게 받아들일 적에 객관적으로 총선결과를 평가하고 참된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쌓인 것을 풀어야 할 때
박 제5공화국 출범 후에 입법회의에서 만든 국회의원 선거법 아래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다당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민정당은 어떤 경우에라도 다수당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원천적으로 출발이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조작과 이러한 선거법 아래에서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압도적 지지가 있어도 우리가 제1당이 될 수는 없어요. 따라서 이러한 기형적이고 불구적인 상황 아래에서도 그 모순과 잘못된 점을 분명하게 국민에게 알리자 해서 우리는 선거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을 말씀하셨는데, 폭력의 공포, 위하의 분위기 조성 아래서 국민들에게 물리적 안정을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정당한 소리를 지르면 언제라도 이것을 깰 수 있다는 공포분위기 조성 아래서의 안정이 지난 5년의 세월이었고, 또 지금도 정부와 여당이 강조하는 안정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정권은 70년대 정권과 달리 조금도 미안하다거나 컴플렉스를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자유민주주의를 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린애 보고 자 지금부터 너는 마음대로 울어라, 울 자유를 준다 이래 놓고, 그 대신에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떨어뜨려서 울어서는 안된다고 했을 때 외관상으로 볼 때 자유를 준 것 같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자유를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로 하여금 영원히 울지 못하게 만든 것이지요.
강 두 분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도 5년만에 처음 만났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보면 이번 국회가 첫 조우라고 할 수 있읍니다. 왜냐하면 박의원 경우는 정치규제에 묶여 있다가 이번에 비로소 풀려서 원내에 복귀했고, 김의원은 민정당 창당 초기부터 깊숙하게 정책결정 등에 참여했다가 이번에 처음 원내에 진출하셔서, 그래서 말하자면 첫 조우이기 때문에 자연히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국회입니다. 우선 그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아직 정리가 안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개헌협상도 그렇게 지루하게 끌었지만 소득이 없었고, 아무 준비없는 채로 국회에서 만난 거예요. 그런 것 치고는 좀 삐걱소리는 있었지만 그런대로 넘어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느낌입니다. 민정당도 그동안 약골야당과 편안한 정치를 한 것은 사실이고, 이번에 벅찬 상대를 만난 것 또한 사실 아니겠읍니까? 의석도 많고 4년 동안 정치규제에 묶였던 한을 가지고 나온 사람과 만나 파워 테스트를 해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김 제5공화국이 출범할 때의 상황은 정상상황이 아니었읍니다. 어느 한 개인이 미워서 묶은 것이 아니고, 우리의 전제상황이 그런 정치활동의 규제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는 말하자면 5.17같은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사회혼란을 극복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요. 물론 그런 과정 속에 있었던 것을 푸는 일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번 12대 총선의 분위기도 저는 그런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72년 유신 이후로 축적이 되었던 그런 문제에 대한 여과과정이 한꺼번에 분출된 측면이 있었지요. 이것은 어느 면에서는 앞으로의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서 기여할 수도 있읍니다. 그런데 생산적인 측면을 거부하고 저쪽은 악마고 이쪽은 천사다 하는 측면에서 투쟁적인 면만이 표출돼 나올 적에는 정국이 또 하나의 다른 암초에 부닥칠 위험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을 저는 염려합니다.
박 저는 이번 국회에서 혹시 개인적인 한 때문에 과격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퍽으나 자제했고, 내 자신 역사적인 과오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의사당에서 사과했어요.
저는 현 정권은 과도정부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도 착각을 하고 있는데서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과도정부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이 정권은 10.26사태에 대한 역사적 정리를 거치지 않고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10.26사태에 대해 역사적 정리와 청산이 있어야 되고, 그래야 그 이후에 새 시대 새 역사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란 전혀 뉴페이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한번 새로와지는 데는 자세 전환이 필요하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창출되어야지요.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12.12사태가 일어났어요.
광주사태를 보는 여당의 시각
강 박의원은 정통성 문제를 제기하셨고 김의원은 [여과]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국회만 압축해서 본다면 그동안 금기로 되어 있던 광주사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최초의 국회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광주사태를 한번 걸른다고 할까, 그런 의미도 있을 것이고, 또 박의원이 말씀하신 정통성문제하고도 관련이 될 것같은데, 이제 얘기의 범위를 좁혀 광주사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김 광주사태는 4년 동안 금기된 사항처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80년에 광주사태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일단락지어진 일이 있었읍니다. 11대 때 언론도 그렇고 국회고 그렇고 광주사태는 여야 모두 민족적인 비극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어떻게 됐건 굉장한 비극이었지요. 우리 여당에서 보는 기본시각은 10.26이후 광주사태에 이르는 일련의 사회불안 정치불안과 혼란의 극치에 광주사태가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의거로 보는 야당의 시각과 기본적으로 다른 겁니다.
야당의 일각에서는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지금까지 온 과정을 사사건건 퇴행의 역사, 암혹의 시대로 단정하고 있읍니다. 10.26은 김재규에 의한 의거였다 하는 감각이 깔려 있어요. 나는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10.26의 동기가 무엇이었던간에 그러한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국가원수가 시해되는 것은 법에 의해서 처단이 돼야 됩니다. 따라서 김재규는 영웅이 아니라 패륜아입니다. 5.17사태도 그러한 사태 이후에 온 사회혼란을 극복하는데 불가피했던 조치였어요. 그리고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그 이후 역시 자율과 개방이 확대돼 나가는 과정이었고, 유신 때처럼 점점 정치규제가 강화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것은 민주화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서 광주사태를 다루어야 하고, 이것을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 여야 할 것 없이 가장 기본적으로 할 일이다. 배후에 숨겨진 흑막이 있고 폭로되지 않은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는 것을 주장해 왔어요. 그러다보니까 12대 총선 전후 또 12대 국회에 들어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달히 논의가 되었읍니다. 논의가 되는 것은 저는 반대하지 않아요. 문제는 광주사태를 논의하는 논점이 진상을 규명하겠다 하는데 있다면 백번이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주사태를 정권타도, 정통성 시비의 근간으로 삼겠다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각에서의 여야의 광주사태를 둘러싼 싸움은 광주의 아픔을 아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후벼파서 아름을 더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고 야당의 특조위에 반대한 것입니다.
진상은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이제까지 발표한 것이 있고, 그것이 틀렸다면 객관적인 자료를 제기해달라 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망자 수입니다. 1백64명의 민간인 이름 서명 다 발표했읍니다. 군.경까지 합해서 [2천명이라더라] 하는 막연한 유언비어적인 주장가지고는 사태를 자꾸 악화시킬 뿐이니까 객관적인 자료를 마련해달라는 겁입니다. 어디에건 다 신고를 해라, 그런 자료가 나왔을 적에 우리는 승복을 한다. 그렇지 않고 [하더라]하는 얘기를 가지고는 싸움질하자는 것이지 진상을 밝히자는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광주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박 야당이 광주사태를 정권쟁취의 수단 내지 도구화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집권세력이 광주사태 문제에 있어서는 과대피해망상증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광주 얘기만 나오면 신경이 곤두세우는데, 이번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거론한 것은 우리에게 지지를 보낸 국민들의 대부분이 평소에 갖고 있던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하기 며칠 전에 정부에서 공식으로 발표한 사망자 수자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일부가 묻혀 있는 망월동묘지에 갔읍니다. 그 당시에 중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으로 죽은 아이들의 무덤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거의 동갑내기인 지금 대학교 3학년과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학생들과 같이 있게 되었읍니다. 그 아이들의 무덤에 그 부모들이 와서 통곡하는 것을 보고 저도 많이 울었읍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들을 폭도라고 하는 것이 절대 허구다 하는 것을 실감을 했어요. 그래서 아하, 논리 이전에 이것은 참말로 원한이라는 것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서 그런 시각에서 광주사태 문제를 내 나름대로 이번 국회에 제기해보려고 애를 썼읍니다. 그런데 당국은 광주사태에서 얼마나 죽었느냐 하면서 수자놀음하듯 이 문제를 끌고 가버리고 만 것 같아요.
국회국방위에서 6월7일 야당이 까딱 잘못했더라면 말려들 뻔 한 일이 있었는데, 수자는 부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5.17계엄확대조치의 정당성에 있고, 또 5월 22일 모사단병력이 투입되기 이전에, 이른바 미국이 말하는 유엔군 작전지휘권 하에 있지 않은 공수부대 3개 대대가 5월 18일 새벽에 투입이 되었고, 그로부터 나흘 동안에 찌르고 쏘지 않아도 될 양민들을 쏘고 했다는 데에 있읍니다. 영어로 브루털(Brutal)로 표현되었지요. 전쟁이 아니었는데 질서유지하러 들어간 군인이 살상을 하여 바로 그 과정에서 망월동묘지에 묻혀 있는 어린 아이들이 도망가다가 등덜미에 총을 맞아 죽고 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겼어요.
5월18일 전남대 학생들 2백여명이 교문에 모여 있는 것을 해산시키려고 하는 공수단에 의해서 교수가 두들겨 맞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보고 학생들이 항의했고, 그에 대항해서 공수부대가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고....
지금 죽은 사람들을 보면 정부 발표대로 하더라도 24명의 죽은 원인이 좌상입니다. 벙어리가 죽고 국민학교 학생이 죽고 국민학교 교감이 죽었어요. 심지어는 헌혈하고 나오는 여고생이 총상으로 죽었고, 적십자 완장을 찬 비무장 간호원으로 보이는 사람 세명이 죽었다 이거예요. 이것을 보고 시민들이 이럴수가 하는 본능적인 분노에서 가세하게 되고, 그렇게 하니까 공수부대가 시민군에 대항하지 못하고 21일 철수한 것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NHK가 어떤 경위로 5.17계엄확대조치가 있었고, 거기에서 어떤 형태로 이른바 광주사태가 진정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을 소상하게 보도하고 있는데 반해서, 우리 언론은 특히 방송매체는 그 원인과 진행결과에 대해서 한번도 소상하게 발표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한가지 놀라운 것은 국방위가 6월7일 열려 윤성민 국방장관이 5년전 계엄사 발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발표를 하고 있고, 그 직후에 우리는 국회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간인데, 공영 TV에서 뭘 방송했읍니까?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돌 던져 육군 소위가 이마를 맞아서 피를 닦으면서 돌아서는 그 장면만 비춰 주었어요. 대학생들이 왜 돌을 던지게 되었느냐, 그 선행사실에 대해서는 TV가 전혀 비춰준 바가 없어요. NHK 비디오를 실제로 보고 났을 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의 전개나 상황사실에 은폐하고 묻어두는 데서 오히려 광주사태는 사태 이상의 정치문제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국의 예를 들어서 안됐읍니다만, [닉슨]이 물러서게 된 워터게이트사건은 도청 그 사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데 있었읍니다. 현직 대통령이 관련 테이프를 폐기 처분한 것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서게 된 것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모든 자료가 국민들에게 공개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국회에서 전혀 해명이 안되었어요.
유언비어와 광주사태
김 제가 대단히 중요한 쟁점이 나왔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지금 박의원 말씀 가운데 광주사태의 사실인식에 굉장한 허구와 허위, 잘못된 상황인식이 있다 하는 것을 외람되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요.
광주사태의 초점중의 하나는 5.17전국 비상조치로 다른 지역에서는 일단 데모가 진정이 되었는데, 왜 유독 광주에서만 민간인 1백64명 경찰 4명 군인 23명 도합 1백 91명이라는 많은 희생자가 나는 엄청난 사태로 악화 확대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5.17이후에 여타 지역상황과 다른 광주사태의 특징적인 현상이 아니겠어요? 19일날 상황까지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단이 2개 대대입니다. 1개 대대의 병력이 3백명 정도인데, 18일날 0시20분을 기해 한 대대는 전남대에, 한 대대는 조선대에 들어갔읍니다.
광주사태가 다른 지역과 달리 많은 희생자를 내게끔 확대 악화된 직접적인 동기는 유언비어에 있었어요. 초기에 공수단이 들어가 무자비하게 유부녀를 칼로 찌르고 대검으로 여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고 심지어는 임산부를 찔러 태아를 끄집어내서 개천리에 팽개쳤다는 갖가지 유언비어가 광주시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는데, 내가 여러 가지로 조사하고 자료를 뒤져보니까 공수부대가 전남대에 들어간 것은 18일 0시20분이지만, 가두진압에 나선 첫번째 시간이 언제냐, 18일 06시 40분부터예요.
그전에도 공수부대와 대학생들과의 1차적인 충돌이 있었어요. 18일 9시 전남대에서 학교로 들어가겠다 못들어 간다 하면서 공수부대와 학생들이 투석전이 있었어요. 투석전이 있고 난 다음에 학생들이 시내로 들어가서 시내 데모대가 있고, 난 다음에 학생들의 시내로 들어가서 한 16시 40분까지 진압하던 것은 공수부대가 아니고 경찰부대였읍니다. 경찰부대와 학생들이 충돌과정에서 경찰이 중상 경상 해서 27명이 나왔다는 기록도 있지만, 학생들도 다친 사람이 있을 겁니다. 공수부대가 처음 들어갔을 때는 실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18일 현재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49명의 시체검안위원회가 다 확인을 하고 증언도 듣고 판명되었어요. 윤공위대주교같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분들도 18일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언을 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18일 정오부터 앞서 말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하고, 그것이 유인물로 인쇄된 것이 18일 오후입니다, 따라서 저는 누가 잘못했다 이전에 정치인이 한 사람으로서의 양심선언인데, 그런 상황의 격돌에서 상상할 수 없을 비인도적인 유언비어가 광주시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유언비어가 유인물로 인쇄되어 선량한 광주 시민을 흥분시키기 시작했어요. 경상도 군인만으로 구성된 공수부대가 와서 전라도 사람들을 씨를 말리려고 한다는 유언비어가 18일 상황에서 광주시내를 지배했단 말이에요.
저는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대원들을 다 조사하고 대대장들을 만나보려고 개인적으로 노력했읍니다. 그랬더니 33대장은 그 자신이 전남출신으로 호남분이에요. 35대대장은 대구출신 경상도분입니다. 그 부대 40%가까운 사람들이 호남사람들이고 익산 금마에 있는 부대였어요. 저는 사람이 적게 죽었으니까 광주사태에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을 조사하는 과정에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보이지 않는 유언비어의 위력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호남분들 광주시민들의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에요. 그러한 유언비어 조작, 이런 것들이 시민들을 흥분시켜서 19일 낮 오후가 되면서 시민들이 학생데모에 가담을 하는 상황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감정격돌이 시작돼서 그 과정에 19일 오후에 사망자가 두 사람이 나오고, 경찰이 4명이 깔려 죽고 민간인도 죽고 군인도 붙잡혀서 밟혀 죽었어요.
양쪽에서 시체가 나온 상황부터는 흥분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21일 계엄부대가 철수할 때까지는 무기는 가지고 있었지만 겨눠서 쏜 적이 없다는 것은 천하공지의 사실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초기에 광주시민을 흥분시켰던 유언비어, 브루털한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에 흥분시켰다 하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하는 점입니다. 책임이 어느 쪽에 있고 없고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21일 상황이 되면 5천정 이상의 총이 이른바 시민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의와 관계없이 유언비어에 흥분해 있었던 선량한 시민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격한 일부 집단이 군부대를 습격한다든지 광주교도소를 습격했어요. 이 상황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전상황입니다. 19일 2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이 광주사태의 최초의 사망자입니다. 20일 경찰 4명과 민간인 2명의 사망자가 생겼고, 그 다음에 21일 54명의 많은 사람이 하루에 죽어버렸읍니다. 이것은 양쪽에서 총을 가지고 쏴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태가 되다보니까 이제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어 버렸어요. 유언비어가 먹혀들어갈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었던 것이 민족적인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서울지역같은데 경상도 군인이 서울놈들 죽이러 왔단다, 그래보았자 먹혀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이 문제만은 언론도 정치인도 네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하는 논란보다는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소지만은 없애야겠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객관적인 실증이 나오면 야당은 당연히 정부.여당에 대해 책임을 추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진 사실, 이것은 유언비어였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구나 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것은 사실은 사실대로 여야 언론인 인권단체 할 것 없이 국민들한테 널리 알려야 제2의 광주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생각합니다.
왜 국정조사권을 발동 안하나
박 그러면 유언비어 때문에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얘기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누가 그런 말을 믿겠어요. 일부 군이 대검 등을 사용해서 시위군중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 정말 참혹하게 살상했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김의원 말대로라면 18일에서 21일 사이에 공수부대에 의한 브루털한 진압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니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객관적인 사실이 나오고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겠어요. 그리고 김의원은 18일에는 전혀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이날 시외버스터미널 변소에서 시체가 2구 발견되었다는 것이에요. 또 이날 오후 3시경 전남대 입구에서 학교로 들어가는 학생들을 무장군인이 막자 학생과 충돌해 무장군인이 무자비하게 나와 학생 1명이 대검으로 찔러 죽었다는 것이고, 이때30여명이 가톨릭센터 안의 기독교방송국에 몰려가 진실보도를 요구하며 건물경비를 맡고 있던 계엄군을 포위해서 무장시켰는바, 가톨릭센타 옥상에서는 공수부대원과 시민이 충돌, 시민 2백여명이 붙잡혀가고는 건물 안에서 시체 6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고, 오후 4시30분경 택시운전사 3명이 학살당하고 터미널부근 지하도에 피신해 있던 시민 1백여명이 연행되어 행방불명되었다 합니다.
혹시 정부와 여당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전부 유언비어라고 할지 모르나, 그렇다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 사실여부를 가리고, 여러 단체들이 광주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도 억압해서는 안될 것이에요. 유언비어를 없애기 위해서도 광주사태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정부.여당은 회피하지 말고 응해야 합니다. 지금 정보는 완전히 정부에 의해 독점되어 있어요. 내가 얘기한 것은 미국 일본에서 나온 자료,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얘기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이번 문화원농성사건에서도 미대사관의 고위당국자가 초기에 모사단이 미군 작전 지휘권의 발동에 의해서 출동하기 이전에 다른 부대에 의해서 잔혹행위가 있었던 것을 우리도 인정한다라는 대목이 있읍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의문투성이라면 백일하에 명태 배 가르듯이 갈라놓고 진상을 규명해야지 김의원 말씀대로 내 말이 옳으니까 야당도 그것을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알린다는 거요.
수자 얘기만 해도 그래요. 어찌 되었거나 광주시와 도청, 경제기획원에서 확인돼가지고 만들어진 통계에 사망자가 2천명 단위로 나와 있는데, 만약 내무장관 해명대로 2백3명이 죽었을 뿐이라면 이것은 평상시 규모에 비해 너무 적은 수에요. 적어도 1백91명에 평상시의 사망자가 플러스 알파되어야 하는데 그에 대해서 설명이 없어요.
유언비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 지금까지 직접 현장에 있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심증을 주었던 자료들이 여러 형태로 또 구전이 되어 왔읍니다. 일본 NHK에 어떻게 났다, [타임]지에 어떻게 났다, 외국의 뉴스에는 어떻게 났다더라, 그것을 보았다 하는 유언비어가 많습니다.
제 경험입니다만 제가 대학교수였을 때 여학생의 유방을 도려냈다더라, 목을 잘라가지고 어느 광장에다가 목을 걸었다더라 하는 유언비어까지 돌아다녔읍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 아무리 무력으로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눈이라는 것이 있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일인데, 그런 얘기는 상식선에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논의가 오고갈 적이었읍니다. 어느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인 제 후배가 저한테 말하길 그가 아는 어느 종교계 지도자가 외국에 나갔다 오다가 일본의 뉴스 비디오에서 목이 걸린 것을 보았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아연질색하고 할 말이 없었어요. 보았다더라 하는데 보지 못한 내가 더 이상의 반론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반론을 하지 못하고 제가 또 적극적으로 당시 반론을 하고 다닐 필요도 없었던 입장에서....
그후 한 3개월 후에 일본을 갈 기회가 있었읍니다. 제 스스로를 확인하고 납득을 시키기 위해서 일본에서 나돈 광주관계 비디오를 전부 구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지면이 있는 NHK기자, [아사히]기자들한테 물었어요. 내가 본 비디오에는 목이 걸려 있는 장면이나 유방을 도려내는 장면이 안 나오고 그냥 학생들을 엎어놓고 패고 묶어놓고 있는 장면이었다. 목이 걸려 있는 장면이 일본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모두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부.여당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이것은 국가 민족으로서 상당히 다행스럽다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제가 국회에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미국의 [뉴욕타임즈] 일본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찌신문] [요미우리신문]에 난 광주사태의 관련뉴스를 일일이 다 점검해 보았읍니다. 지금 박의원이 일본신문에 그런 것이 나왔더라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기사가 있었다면 제가 인격을 걸겠읍니다. 거기에 난 뉴스는 [이러한 설이 있다] [광주에서 사망자는 2천명이 넘는다더라] 하는 전송기사들이었어요.
박 유언비어가 왜 생기느냐, 불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로가 안 통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유언비어가 많다 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라도 이 사건은 헌법과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 국정조사권으로 조사를 해봐야 돼요.
그리고 또 6월7일 국방장관이 광주사태진상보고를 주욱 읽어내려갈 때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장관이건 국회의원이건 질의하고 답변하는 장면을 생방송한 일이 없는데, 야당과는 한미디 상의도 없이 긴 시간 TV로 생중계를 했다 이겁니다. 이는 야당에 대한 분명한 기만이에요. 그리고는 광주사태가 해명됐다는 것이에요. 이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무력사용의 필요성과 충분성
김 정부.여당의 입장이 1백91명이 다니까 이것을 믿어라 이런 자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정부.여당이 조사하고 보고받고 신고받은 모든 수자는 이것이니까 더 있으면 신고를 해라, 언제든지 나와라 하는 것입니다. 수자뿐만 아니라 진상에 대해서 언론기관이 조사해도 좋고 신한민주당이 조사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조사권은 진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감정을 가라앉히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인상을 주어요. 잘 아시다시피 외채도입사건 때 조사를 해서 진상이 밝혀졌는데, 보고서에 여야가 합의를 안 하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보고서를 쓰는 거예요. 왜? 합의하면 한쪽이 완전히 패배한 것같이 생각되니까 야당측에서는 사인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보고서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광주사태처럼 정말로 국민적인 관심사고 정권의 정통성과 관계되는 문제에 대해서 진상이 밝아졌다고 하여 합의를 해줄 리가 없읍니다.
박 이제 우리 당보고 조사하라니 그것은 정부.여당의 주장과 다른 것 아닙니까? 그리고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국방장관이 신고하라 했지만 왜 조사는 못하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어제 저녁 현재로 광주 제2지구당에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무엇보다도 초기 투입된 부대원들의 무력사용의 필요성과 충분성이 있느냐 하는 것도 조사를 해봐야만 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 야당의원들이 그 당시에 지휘관들의 명단을 밝혀라 하는데도 안 밝히고 있어요.
사 이거 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6월 7일 국방위원회에서 국방잔관이 전모를, 그것도 박의원도 말씀한대로 야당의 양해없이 일방적으로 그동안 해오지 않던 TV중계까지 하면서 진상을 일단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의문점이 있다고 하면서 야당이 그 의문점을 상임위원회를 통해서 다시 제기를 했어야 하는데, 다음 날인 토요일에 국회상임위가 유회됨으로써 그 기회를 활용을 못하고 말았단 말이에요. 물론 그때 신민당은 국회를 국방장관의 홍보장으로 이용했다는 불만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 아닙니까? 그리고 바로 월요일 화요일 본회의를 끝으로 국회가 문을 닫게 되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미결입니다.
그래서 이 다음 국회에서, 7월에 임시국회가 한번 열릴지 아니면 정기국회 때가지 넘어갈는지 모르겠지만, 이 미결된 광주사태국정조사결의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야당이 국방장관의 전모 발표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의문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보완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논의해가는 과정에서 의문점이 하나둘씩 제기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광주사태 문제를 장외에서 촉발시킨 것이 미문화원사건 아니겠읍니까? 야당도 물론 광주사태를 이번 국회에 끌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학생들이 그걸 가지고 미문화원에서 농성까지 하는데 다시 한번 촉발을 받았을 것이고, 민정당도 역시 원외에다가 이 문제를 내팽개쳐 두기보다는 한번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서 걸르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고 보는데, 이 문제는 조금 있다 하기로 하고, 먼저 국회의 발언 수위에 대해서 한마디하고 넘어가지요.
민정당이 대응하는 것도 상당히 신축성이 생겼다 할까, 이철의원 발언같은 것을 징계로까지는 끌고 가지 않았는데, 민정당이 처음에는 이철의원 발언을 크게 문제를 삼고 징계로까지 몰고 갈 것처럼 하다가 5개항 공개 질의선에서 끝낸 것은 왜 그랬읍니까? 지난번에 이민우총재 발언에 대해 공개질문을 했으나 답변을 못받았지 않습니까?
이철의원 발언의 파장
김 의원이 의사당 안에서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소화될 수 있는 부분은 소화를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의사록에서의 삭제 등 의회규제적인 방법도 있는 것이니까, 극단적인 징계는 취하지 앟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그러나 면책특권에는 명확히 한계가 있읍니다. 의원의 발언은 우선 의원의 자질에 기대를 하게 되고, 그 다음에 대한민국의 의회다 하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여야 모두 기초를 두어야지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의회주의의 경쟁의 원칙과 규칙을 지키자 하는 것입니다. 면책특권을 빙자해서 의회주의를 파괴하고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것에 관해서는 정신적인 계도 등 여러 방법으로 극복해야지요.
박 제가 명색이 3선이지만 극회발언의 수위라는 것은 묘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말을 빨리 해서 여당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는 사이에 획 지나가버리면 소위 초강경 고수위 발언이라도 그냥 넘어가버리는 수가 있고, 천천히 점잖게 얘기하면 대수롭지 않은 얘기인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데, 70년대에도 그랬고 5공화국에 들어와서도 보니까 여당의 총재, 곧 각하의 주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이것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 나라 정치의 비극이올시다. 그 얘기만 나오면 여당의원들은 어떻게든지 반응을 보이게끔 되어 있는 이것이 참 부끄럽고 가슴 아프게 생각해요.
이철의원이 무슨 발언을 했는지 국민들은 모릅니다. 그 발언의 핵심이 전해지지 않았어요. 민중 민족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야당에서는 이것이 해명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철의원의 얘기중에는 문제될 발언이 전혀 없어요. 또 이의원은 일반론을 얘기했던 것이에요. 민중의 집권세력에 대한 정당한 요구가 비폭력 평화적 방법으로 수렴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것은 민중 폭동의 형태, 나아가 혁명의 형태로 진전이 될 수 있다는 일반론을 얘기했을 뿐이에요. 동학란도 그러하고 3.1운동도 그러하고 4.19도 그러하고 10.26도 어떤 맥락에서는 국민저항권 행사라고 보는 것 아닙니까? 민중민주주의라는 말만 해도 그래요. 이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한다고 계속 우기고 그런 표현을 쓰니까 그게 못마땅한 것이고, 그러니까 피해를 받고 소외받고 있는 그 국민을 민중이라고 얘기했을 뿐이고, 그래서 구별하기 위한 표현으로 민중민주주의라는 어휘를 쓴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어요. 따라서 나는 이철의원 발언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민정당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요. 문제 안삼고 조용히 넘어갈 일을 일부러 평지풍파를 일으켰는데, 이 때문에 정말 어느 쪽이 손해봤겠느냐 이 말입니다.
삼민주의란 무엇인가
김 국가원수에 대한 사실무근의 모독이라든지 국가체제의 기본성격을 부인하는 형태로 제가 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최고 통치자를 걸고 들어오건 아니건 체제의 기본성격의 기저를 흔드는 얘기가 되면 이것은 얼마든지 문제 제기가 될 수 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권력상층부에 관해 실질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이러이러한 원성이 있다 하는 것을 야당의원이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제기하는 방법이 국회의원의 자질로서의 품위와 관련되는 표현과 논리로써 사실 근거에 입각한 예증들로써 정부.여당이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동적인 방법, 표현의 과격성 같은 것 가지고 시원함을 나타내는 그것은 지양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그 문제에 관한 한 미니멈의 요구입니다.
또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말 자체를 문제삼는 것 아니에요. 그 하나하나의 말들은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말들은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말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될 수도 있어요. 우리 대학생들만 하더라도 민주라는 말은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의 개념으로 쓸 수도 있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와 양립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적 민주라는 내용도 있다 이 말입니다. 민주라는 말이 아름답기 때문에 이북도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 용어가 담고 있는 내용을 따져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철의원이 발언한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것은 직접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물은 미문화원을 점령했던 삼민투위 학생들이 쓰는 것과 같은 용어일 뿐만 아니라 그 학생들의 투쟁 양상을 원호 호응해 주는 것같은 문맥속에서 이른바 삼민주의의 해방의 얘기를 했다 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삼민주의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민중 민주주의혁명이라는 것과 민족해방혁명이라는 것을 양대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삼민투위 학생들의 민중민주주의혁명에서 얘기되는 민중은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쓰는 민중의 개념이 아니라, 계급개념으로서의 민중, 영세상인 도시근로자 빈민을 주축으로 하는 기층세력이 민중이다 하는 개념으로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규정을 할 수 있어요. 두번째, 민중의 개념이 혁명의 주체로서의 민중이다, 이것은 무어냐 하면 정치발전과 역사발전의 기본 동력을 대화나 의회정치의 장속에다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투쟁 플러스 무장투쟁, 곧 항쟁의 요소를 결부시키지 않고는 민중 민주주의는 달성될 수 없다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는 것이에요. 따라서 저는 이철의원이 얘기하는 민중 민주주의 해방이라는 얘기가 그러한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적 내용과 다른 의미의 내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달라 하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밝힐 적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지요.
또 삼민투위에 들어가 있는 학생들도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아름다운 용어에 현혹이 돼서 순수한 동기에서 참다운 민주화투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핵심분자들로부터 빨리 구출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입니다.
삼민투의의 실체
박 아! 참말로 큰일났군요. 정부.여당의 논리와 발상과 접근방법은 어떤 정보 자료를 토대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매카시즘적 접근 분석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철의원이 사용한 민중 민주주의 민족을 삼민투위 학생들이 쓰는 것과 동질성의 것인지 아닌지 대답하라 이렇게 말하고, 삼민투위 학생들이 말하는 어휘는 계급투쟁, 기층민중을 전제로 한 것이고, 이것은 결국 무장폭력혁명에 의해서만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다 하는 공산당식 수법이라고 공식에 딱 맞춰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실체를 가진 삼민투위, 이 나라에 없읍니다.
나는 분명히 얘기합니다. 정부.여당이 어디다 근거를 두고 이와 같은 실체와 주장과 구호를 가진 삼민투위가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읍니다. 조직적인 실체가 없은 삼민투위를 용공으로 매도하는데, 몇발자국을 양보해놓고 보더라도 학생들이 주장하는 삼민정신이 어째서 무장봉기에 의한 폭력혁명을 주장했다고 보는가. 미문화원 학생들의 어느 유인물을 통해 보더라도 무장봉기에 의한 폭력혁명주장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요. 또 [삼민]정신이 왜 나쁩니까? 민주쟁취 민족통일 민중해방을 얘기하는 삼민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자주적인 민주통일을 하고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민중의 생존을 지켜준다는 것을 어째서 용공주의로 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해방이란 어휘도 그렇습니다. 전대통령은 5공화국출범초반부터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등 해방이라는 용어를 여라 차례에 걸쳐 썼읍니다. 핍박받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아래서 당연한 일입니다. 민중이란 어휘도 무산계급을 얘기하는 말이 아닙니다.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부와 여당은 어휘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꼬투리를 잡고 있어요.
또 전학련은 임의단체입니다. 그리고 삼민투위는 고려대 학생회장 허인회군이 민족 민중 민주투쟁위원회를 만든 것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명칭 자체는 전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소멸되었어요. 전학련 삼민투위위원장이 조직적으로 지휘하고 명령하는 조직화되어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전학련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조직이 아닙니다. 각 대학학생회에 이런저런 연구위원회 같은 것이 그때그때 만들어졌다가 소멸되고 만들어졌다가 소멸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인회군이 위원장이라 하는 것도 이미 그것은 전두환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없어져 버린 것이고, 전두환대통령 방미 때는 각 대학이 방미반대투쟁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광주사태가 문제가 될 때는 광주사태에 대해서 진상을 밝혀라 하는 커미티가 만들어진 것이고, 숭전대같은 경우는 반종속투쟁위원회라든지 그때그때 한 두사람 책임자가 되어 만들어지고 소멸되었다 만들어지고 이런 것뿐이에요.
이처럼 삼민투위가 실체도 없는데, 도시게릴라적 수법, 반미, 용공, 극렬, 좌경, 이런 온갖 어휘를 총동원해가지고 오늘날 학생사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삼민투위에 덮어씌우는 처사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어요. 문화원에 들어간 73명의 학생들에 대해서도 마치 삼민투위의 행동지침이나 전략 전술의 일환으로 조직화되어 특공대로 따라갔다고 하는데, 정부가 홍보매체를 동원하여 그동안 학생운동을 얼마나 탄압하고 금압하려 했는가가 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들어간 지 24시간도 채 안된 24일 저녁 7시10분부터 9시까지 1백10분에 걸쳐서 KBS가 방영한 와이드 프로로서 삼민투위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특집프로에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읍니다. 화면의 하나하나가 학생들이 돌멩이 던져 전투경찰과 맞닥뜨리는 그런 장면뿐이에요. 그러한 상황의 원인이 어디 있느냐, 왜 학생들이 돌팔매질을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읍니다.
나아가서 거기에다가 각계 인사들이 삼민투위를 보는 견해를 섞었는데, 24일 오후 3시경에 국회본회의장에 있으니까 KBS기자가 와서 나에게도 코멘트를 요구했어요. 망설이다가 이렇게 응했어요. 부산미문화원화재사건, 광주미문화원화재미수사건, 강원대 성조기소각사건, 지난 4월9일의 부산미문화원투석사건 등과 이번 사건의 발생 주장내용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다. 이것이 한센텐스였읍니다. 다음 센텐스는 이와 같은 일들의 예방과 근본적 해결은 광주사태의 진상규명과 우리 신민당이 주장하는 정치민주화의 실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TV에 어떻게 나왔느냐, 뒷부분은 자르고 앞부분만 났어요. 이렇게 야당 선배의원들도 너희들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느냐는 투였지요. 그것을 보는 저는 공영방송에 대해서 이제는 시청료를 내지 말아야 할 단계에까지 왔구나 생각하고 우리 집에서는 안내기로 결의를 했어요.
이것은 보통 분개할 일이 아닙니다. 야당의원의 코멘트를 위조 조작하는 공영방송에서 말하는 그 삼민투위의 노선과 주장을 우리가 그대로 믿어야 합니까? 그래서 이 부분은 국회 본회의 마지막 전날 신상발언을 얻어서 하려고 했는데 봉쇄당하고 말았어요. 더 여러 말 할 것 없어요. 직접 증인으로서 또 이 사건의 피해자로서, 또 행인지 불행인지 변론을 맡고 있는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미문화원사건을 발생시부터 현장에서 조사해왔고, 학생들을 구치소에서 접견을 했고, 또 공영방송의 조작에 내가 증거물로서 이용을 당했어요.
미문화원사건과 미국측 태도
김 박의원은 정치를 오래 하셨으면서도 굉장히 실체관념이 없으신데, 삼민투위가 조직이 없고 실체가 허상이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완전히 해체가 됐는지 모르지만 삼민투위라는 것은 분명히 실체가 있었읍니다.
삼민투위는 전학련의 하나의 연구분과위원회라고 그러시는데, 연구분과위원회가 됐건 전학련 산하의 어떤 조직체가 됐건 삼민투위라고 하는 간판 아래 삼민투위의 목적을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게 실체입니다. 지금 박의원은 그 조직이 소멸되었다고 그러시는데, 일부 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한 것이 5월23일입니다.
각하가 방미한 일자와 전후관계에서 볼 적에 박의원 말씀은 전혀 객관성이 없는 이야기이고, 설사 소멸이 되었다 하더라도 미문화원에 들어가 있던 73명의 학생이 정부.여당이 삼민투위의 사람들이다라고 매카시즘적으로 규정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전학련 산하의 삼민투위의 멤버다 하고 공표를 했어요.
박 그렇게 말한 일이 없어요! 내가 담당변호사인데, 학생들이 삼민투위 소속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민중 민주 개념은 앞에서 얘기했으니까 학생들이 생각하는 민족만 얘기하지요. 학생들은 이 정권이 정권 출범의 취약성과 정권출범 당시의 보장받은 것에 대한 것 때문에 종속일변도로 나오게 되고, 그런 것에 대해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 민족의 개념으로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또 정부의 답변을 들어보면 서울대에서 나온 [깃발]이니 [모색]이니 하는 것이 전부 삼민투위에서 만든 것처럼 되어 있는데 증거를 대라 이거예요. 그것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유령이에요. 출처불명이에요. 김 앞에서 저는 삼민투위의 민중민주주의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분명히 다르고, 일부 학생들이 거기에 잘못 인식하여 현혹되었으면 하루 빨리 거기에서 나오라고 얘기했지만, 이른바 민중민주주의에 도달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그들은 투철한 인식이 있읍니다. 그 인식을 내가 두가지만 지적을 하겠는데, 지식인과 학생은 기층세력의 연합세력으로 하고 정치인은 사상투쟁을 통해서 정치투쟁을 해야 되고...
박 내 얘기는 그게 삼민투위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 말이에요.
김 지금 삼민투위의 실체에 대해 박의원은 아니라고 하고 저는 그렇다고 하니까 국민들의 심판에 맡기지요.
박 학생들이 미문화원에서 퇴거할 때 낸 성명이 어디에 정부에서 얘기하는 그런 내용이 있어요. 또 우리 헌법 26조에 [유죄확정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조항을 완전히 무시하고 온 언론을 동원해서 아직 법에 의해서 구속도 안되고 있는데 여론재판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왜 미대사관 고위관리가 학생들의 미문화원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 공영방송에서는 방송도 안합니까? 그 미국 관리들이 뭐라고 얘기했읍니까. [They are not redical, peaceful] 과격하지 않고 평화적이라 했어요. 그리고 문화원의 기능을 마비 안시켰다, 반공 반미가 아니었다, 그 다음 [던롭] 참사관이 그들 학생들은 조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상과 희망을 가지고 진지한 태도를 보인 것에 리스펙트(respect)한다고 얘기했읍니다. 국무성 대변인의 성명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거예요. 이런 것은 왜 전혀 보도 안하고 있는 거예요.
김 저는 미국측의 발언과 태도에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외무장관에게 물었읍니다만, 미대사관에서는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느냐, 미문화원을 점령했다 하는 사실 자체가 의회주의적인 장내질서에 있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입니다. 그런 사태를 저질러 놓고 난 사람이 들어가서 순종적이고 말로 한다 해서 폭력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러면 폭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폭력이냐 이겁니다.
미문화원에 들어간 자체가 법질서를 파괴한 것이고 그런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주장하고 비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대화나 글로 써서 얘기하고 해야 하지요.
호헌인가 개헌인가
사 이제 이번 국회를 통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 것같습니다. 광주사태도 거론이 되었고 개헌특위안도 제출이 되었어요. 물론 모두가 미결로 다음 국회로 이월되었지만. 앞으로 휴회기간에 민정당은 개헌문제에 어떻게 대응준비작업을 하고 신민당은 신민당대로 지난번 선거때 국민한테 공약한 제1호인 개헌문제를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지 그런 입장을 좀 얘기해 주시지요.
김 개헌문제는 야당측에서 들고 나온 이슈중의 하나이니까 간단히 저의 입장을 피력하겠읍니다. 86년 아시안게임, 87년 지자제 실시, 88년 현행헌법에 의한 정권교체와 올림픽 등 앞으로 3~4년 동안에 우리 민족의 기로가 달려 있는 중요한 과제들이 엄청나게 많다고요. 이와 함께 민주화와 경제과제를 다 풀어가야 하는데, 헌정이 중도에 파탄이 와서는 안되겠어요. 그러자면 가장 좋은 방법이 이미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 간선제에 의한 7년 단임제를 실시해가는 과정에 있으니까 이것을 차질없이 실현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직전제다 내각책임제다, 7년 임기가 좋으냐 8년 임기가 좋으냐, 중임이 좋으냐 하는 식의 개헌논의가 일어나면 직선제 간선제 하나만의 논란으로 끝나지 않고 복잡한 문제가 나와요. 일단 합의된 것이 민주화의 열매가 설사 적다 하더라도 착실하게 이룩돼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야당에서도 지금은 여당을 치기 위해서 직선제가 좋다 하지만 김영삼씨 생각은 내각책임제에 기울어져 있고 김대중씨는 제3공화국 헌법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우리 당내에서도 개헌을 할 바에는 그러면 대통령의 임기도 고치자고 하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단 말이에요. 또 야당이 직선제로 고치자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어디 있느냐 하면 양쪽의 주장이 대립되다가 안되면 그 다음 선거에서 국민한테 심판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시한을 정해놓고는, 예컨대 87년까지 개헌을 안하면 이것은 민주화가 아니니까 그때에는 국민의 여망을 빌어 데모를 하건 무슨 방법으로든지 직선제로 몰고가야겠다고 하는데 있어요. 제발 그런 발상만은 안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여당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정치판국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러면 피차 불행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기본입장입니다.
박 88년 3월에 현행 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그 호헌의지가 지켜지면, 이 나라의 헌정은 참말로 더욱 불행의 깊이를 크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가 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현행 헌법은 국민의 합의기반 위에서 생성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계엄령 아래서 국민투표를 하여 헌법이 성립한 것이 아니냐 이 말예요. 또 헌법에 개인이 되었건 집단이 되었건 자유로운 교체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완전히 배제했어요. 선거인단이 후보의 등록에서 대통령 선출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개입할 요소가 포함 되어 있어요. 그것은 이미 4년 전의 대통령선거 행사를 통해 우리가 체험을 했읍니다.
그러니까 역대 정권처럼 장기집권도 국민에게 불행한 것이지만,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헌법을 갖느냐 못갖느냐 하는 것이 그보다 더 앞선 비원이라는 것을 이번 총선과정을 통해서 국민들이 보여준 것입니다. 개헌은 국민적 합의라고 봐야 해요. 우리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노총리가 국정보고에서 헌정의 굴곡이 개헌 때문에 있어 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일견 그럴 듯하지만 문제는 현정권과 여당이 말하는 호헌의 성격에 있읍니다. 대단히 외람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민정당정권도 자유당 공화당처럼 야당할 능력 없는 정당이에요. 그 의지와 의사가 보이지 않아요. 무리하게 잡은 이 권력을 무리하게 유지하는 발상으로 호헌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무리에 있어서는 장기집권욕에 불탄 나머지 강행한 개헌과 동질이다 이거예요. 오늘날 이 개헌문제에 있어서도 학생들을 자주 나무라면서 자제하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집권여당보고 자제하라고 얘기하고 싶고, 우리 기성세대가 자제를 해야 된다고 봐요. 뭘 자제하느냐, 탐욕을 좀 자제해야 돼요.
김 박의원이 우리가 야당할 자세가 안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터무니 없는 추측이에요. 선거에 패배했는데 다른 엉뚱한 짓을 해가지고 계속 여당을 하겠다는 것은 우선 저같은 사람이 용납 안해요.
박 현행 헌법과 선거법을 갖고는 여당이 선거에 패배 안하도록 되어 있어요.
김 그렇다면 이번에 서울지역 부산지역에서의 선거결과는 어떻게 보십니까? 또 박의원이 어떻게 당선이 될 수 있었어요?
박 그것은 극단적인 논리에요. 이 나라가 병영국가까지는 아니잖아요.
사 김의원 생각으로는 현행 간선제로도 정권이 평화적으로 야당한테 이행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지금 선거법에 의해서 야당측에서 단일후보가 나와 선거를 한다, 그러면 민정당이 낙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정말로 민정당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판]을 깨지는 말자
사 이제 광주사태에서 개헌문제까지 얘기가 되었는데, 그러고도 우리 국회가 해결해야 될 미결의 건들이 많이 있읍니다. 사면.복권이라든지 양심수문제라든지 노동문제라든지 그런 산적한 안건들을 다음 국회가 또 다루어야 되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내정의 차원에서 보면 한없이 많은 안건들이 있지만, 시야를 좀 크게 돌려서 남북관계같은 것을 보면 우리 여야가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될 더 큰 라이벌이 우리한테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점에서 남북국회회담에 대해서 여야가 초당적인 회답을 마련한 것은 참 뜻있는 일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앞으로 국회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으로 결론을 내립시다.
김 어느 나라 정당이건 여야가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서 의견이 대립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또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느 의미에서는 살아 있다는 역증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피차에 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고 또 주장과 내용의 차이도 있지만 그러나 나는 대화가 계속 돼야 된다고 봅니다. 또 남북 국회회담에 앞서 저는 정권이 안보를 내세워 정치발전을 억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먼저 얘기하고 싶어요. 그것은 내 개인적인 반대일 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도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야당도 여당에게 이런 주문을 해야 돼요. 그러나 우리가 많은 문제를 논의할 적에 의견이 아무리 대립돼도 정치판국만은 유지하며, 절차상의 문제, 경쟁의 규칙과 원칙에 관한 합의만 있으면 아무리 의견이 대립되는 문제라도 여야간에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에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선택을 해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기대를 하고, 그런 측면에서 볼 때에 우리가 국회를 열어 이렇게 여야간에 뜨거운 공방이 있는 과정에 북한에서 국회회담을 제의해 왔는데, 이 제의에 여야가 공히 일치하여 원만히 합의본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입니다. 아직도 우리 국회가 건전하다는 것을 구체적인 실증으로 남겨둔 예증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발전을 포함해서 제가 갖고 있는 의견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정치발전이나 의회발전을 우리가 평가할 적에 저는 세 가지 유형의 평가기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이상상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설정하여 그 이상상에 비추어 우리의 실제 국회기능과 역할을 비추어 보는 방법이 있어요. 이러한 방법에 기준을 둘 것같으면 실제의 의회나 정치인은 항상 비판받고 부족함이 많은 것입니다. 항상 이상과 실제에 거리가 있으니까요.
다음에 역사적인 맥락에서 정치발전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국회가 어느 정도의 기능을 해내고 있느냐, 정치현안이 한꺼번에 해결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국회가 나름대로 상당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저는 객관적인 자료로 자부를 합니다. 약1백여개 국가의 의회기능을 비교 분석해 보니까, 입법기능 대의기능 행정부 견제기능 등에서 우리나라 국회가 최상급은 못될망정 상급에 속하는 국회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증연구에서 입증이 됩니다. 그러나 이상상에 비해서는 아직도 부족하고 국민의 기대에 비해서도 부족하니까 더 분발해야겠지요.
세번째로 우리 의회는 왜 불안하냐는 문제가 있읍니다. 실질적으로 우리보다 의회기능이 못한 나라도 헌정파탄이 없이 의회가 쭉 이어왔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능은 많이 하면서도 왜 의회가 이렇게 불안하냐, 또 중도에 차단이 여러 번 있었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통성에 대한 시비문제라고 하는 것이 언제든지 초원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아까 박의원님 좋은 지적을 했어요. 원초에 문제가 있었다면 해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게끔 해라, 그 얘기는 우리 여당으로서는 상당히 고
참석자 : 김영작/박찬종
사 회 : 강인섭
개원국회, 만족할만 했는가
사 12대개원국회가 30일간 회기를 모두 마치고 폐막했읍니다. 이번 국회는 지난번 총선 후에 처음 열리는 개원국회이고, 또 5.16과 5.17, 그리고 광주사태가 걸쳐 있는 그런 민감한 계절에 열렸읍니다. 또 국회가 계속되고 있는 기간중에는 미문화원농성 사건이 있었고, 12년만에 북한적십자대표단이 서울에 와서 남북적회담이 재개되었읍니다. 이러한 시기에 열린 국회여서 그런지 몰라도 흔히 정치국회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이 다루어졌읍니다. 어떤 사람은 이번 국회가 목청만 높았지 실질소득이라 할까 결실은 거의 없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만, 과거의 국회에 비교해볼 때 목청만이라도 높았던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김 12대 국회가 국민들의 많은 기대를 모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국회로서 잘 운영이 되겠느냐 하는 일말의 불안감 속에서 열렸는데, 개원까지 가는데만 해도 한달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요. 저는 나름대로 이번 국회가 국민이 갖고 있었던 불안감을 씻어준 측면도 있었고, 그와 함께 국민의 입장에서 완전히 만족을 했겠느냐 하면 그렇게 후한 점수만은 주기 어려운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강위원 말씀대로 정치국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여야간에 많은 정치현안이 다루어졌는데, 목청만 높았지 소득은 적었다는 평과 그것만으로도 종전보다는 의미가 있지 않았느냐 하는 평 어느 쪽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정치국회라고 해서 임시국회 한 회기에 모든 현안이 완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여는 여대로 자기 입장을 주장하고,야는 야대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누적되는 과정에 국민들이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하고 국민여론이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볼 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그런대로 합격점을 줄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단지 하나 국민의 실지 피부에 와 닿는 민생문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정기국회 전에라도 임시국회를 한번 열어서 국민들 기대에 부응하는 현안들을 다뤄야 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총선민의에 대한 상반된 평가
박 좀 가혹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제5공화국 출범과정에서 만들어졌던 정당과, 그렇게 해서 구성되었던 11대 국회는 어용 국회이고 들러리국회였고 따라서 국민적 지지나 신뢰의 기반 위에서 출범했던 국회가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이번 12대 개원국회를 통해서 적어도 그러한 제도권 내의 규격화되고 어용.무력화된 성격은 상당히 분쇄됐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설정해 놨던 성역을 무너뜨리고, 국회를 통해서 신민당은 국민적 관심사를 상당히 얘기할 수 있었어요. 물론 평가는 국민들이 하겠지만,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하려고 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정부와 여당이 아직도 2.12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심각하고 정확하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요.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어떤 민정당의원이 국민은 안정 속에 개혁을 바라서 우리 민정당에 압도적 표를 던져 원내 제1당이 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망연자실한 심정에 빠졌읍니다. 바로 이런 사고에서 나오는 여당과 정부의 경직된 자세에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 입장에서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정치에 뛰어들어서 얼마 안되지만 신민당은 논리적 독선이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어요. 지난번 총선에 나타난 민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만도 그래요. 국민들이 민주화를 바란다, 개혁을 바란다, 또 발전을 바란다는 것을 우리 민정당에서는 한번도 부인해본 적이 없어요. 단지 민주화의 내용과 그 민주화의 내용을 둘러싼 입장이 대립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많은 국민이 안정을 바란다는 것은 지난 총선에서 분명히 드러났어요. 이와 같이 총선결과를 양쪽에 균형있게 받아들일 적에 객관적으로 총선결과를 평가하고 참된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쌓인 것을 풀어야 할 때
박 제5공화국 출범 후에 입법회의에서 만든 국회의원 선거법 아래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다당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민정당은 어떤 경우에라도 다수당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은 원천적으로 출발이 잘못된 것입니다. 정치조작과 이러한 선거법 아래에서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압도적 지지가 있어도 우리가 제1당이 될 수는 없어요. 따라서 이러한 기형적이고 불구적인 상황 아래에서도 그 모순과 잘못된 점을 분명하게 국민에게 알리자 해서 우리는 선거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정을 말씀하셨는데, 폭력의 공포, 위하의 분위기 조성 아래서 국민들에게 물리적 안정을 강요하고, 조금이라도 정당한 소리를 지르면 언제라도 이것을 깰 수 있다는 공포분위기 조성 아래서의 안정이 지난 5년의 세월이었고, 또 지금도 정부와 여당이 강조하는 안정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 정권은 70년대 정권과 달리 조금도 미안하다거나 컴플렉스를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자유민주주의를 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린애 보고 자 지금부터 너는 마음대로 울어라, 울 자유를 준다 이래 놓고, 그 대신에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떨어뜨려서 울어서는 안된다고 했을 때 외관상으로 볼 때 자유를 준 것 같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자유를 준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로 하여금 영원히 울지 못하게 만든 것이지요.
강 두 분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도 5년만에 처음 만났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보면 이번 국회가 첫 조우라고 할 수 있읍니다. 왜냐하면 박의원 경우는 정치규제에 묶여 있다가 이번에 비로소 풀려서 원내에 복귀했고, 김의원은 민정당 창당 초기부터 깊숙하게 정책결정 등에 참여했다가 이번에 처음 원내에 진출하셔서, 그래서 말하자면 첫 조우이기 때문에 자연히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국회입니다. 우선 그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아직 정리가 안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개헌협상도 그렇게 지루하게 끌었지만 소득이 없었고, 아무 준비없는 채로 국회에서 만난 거예요. 그런 것 치고는 좀 삐걱소리는 있었지만 그런대로 넘어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의 느낌입니다. 민정당도 그동안 약골야당과 편안한 정치를 한 것은 사실이고, 이번에 벅찬 상대를 만난 것 또한 사실 아니겠읍니까? 의석도 많고 4년 동안 정치규제에 묶였던 한을 가지고 나온 사람과 만나 파워 테스트를 해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김 제5공화국이 출범할 때의 상황은 정상상황이 아니었읍니다. 어느 한 개인이 미워서 묶은 것이 아니고, 우리의 전제상황이 그런 정치활동의 규제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는 말하자면 5.17같은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사회혼란을 극복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요. 물론 그런 과정 속에 있었던 것을 푸는 일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난번 12대 총선의 분위기도 저는 그런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72년 유신 이후로 축적이 되었던 그런 문제에 대한 여과과정이 한꺼번에 분출된 측면이 있었지요. 이것은 어느 면에서는 앞으로의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서 기여할 수도 있읍니다. 그런데 생산적인 측면을 거부하고 저쪽은 악마고 이쪽은 천사다 하는 측면에서 투쟁적인 면만이 표출돼 나올 적에는 정국이 또 하나의 다른 암초에 부닥칠 위험성이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을 저는 염려합니다.
박 저는 이번 국회에서 혹시 개인적인 한 때문에 과격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퍽으나 자제했고, 내 자신 역사적인 과오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의사당에서 사과했어요.
저는 현 정권은 과도정부라고 평가합니다. 그런데도 착각을 하고 있는데서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왜 과도정부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이 정권은 10.26사태에 대한 역사적 정리를 거치지 않고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10.26사태에 대해 역사적 정리와 청산이 있어야 되고, 그래야 그 이후에 새 시대 새 역사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란 전혀 뉴페이스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한번 새로와지는 데는 자세 전환이 필요하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창출되어야지요. 이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12.12사태가 일어났어요.
광주사태를 보는 여당의 시각
강 박의원은 정통성 문제를 제기하셨고 김의원은 [여과]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국회만 압축해서 본다면 그동안 금기로 되어 있던 광주사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최초의 국회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광주사태를 한번 걸른다고 할까, 그런 의미도 있을 것이고, 또 박의원이 말씀하신 정통성문제하고도 관련이 될 것같은데, 이제 얘기의 범위를 좁혀 광주사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김 광주사태는 4년 동안 금기된 사항처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80년에 광주사태가 일어나고 난 다음에 일단락지어진 일이 있었읍니다. 11대 때 언론도 그렇고 국회고 그렇고 광주사태는 여야 모두 민족적인 비극이라는 데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어떻게 됐건 굉장한 비극이었지요. 우리 여당에서 보는 기본시각은 10.26이후 광주사태에 이르는 일련의 사회불안 정치불안과 혼란의 극치에 광주사태가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광주사태를 의거로 보는 야당의 시각과 기본적으로 다른 겁니다.
야당의 일각에서는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지금까지 온 과정을 사사건건 퇴행의 역사, 암혹의 시대로 단정하고 있읍니다. 10.26은 김재규에 의한 의거였다 하는 감각이 깔려 있어요. 나는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10.26의 동기가 무엇이었던간에 그러한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형태로 국가원수가 시해되는 것은 법에 의해서 처단이 돼야 됩니다. 따라서 김재규는 영웅이 아니라 패륜아입니다. 5.17사태도 그러한 사태 이후에 온 사회혼란을 극복하는데 불가피했던 조치였어요. 그리고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그 이후 역시 자율과 개방이 확대돼 나가는 과정이었고, 유신 때처럼 점점 정치규제가 강화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것은 민주화로 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에서 광주사태를 다루어야 하고, 이것을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 여야 할 것 없이 가장 기본적으로 할 일이다. 배후에 숨겨진 흑막이 있고 폭로되지 않은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는 것을 주장해 왔어요. 그러다보니까 12대 총선 전후 또 12대 국회에 들어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활달히 논의가 되었읍니다. 논의가 되는 것은 저는 반대하지 않아요. 문제는 광주사태를 논의하는 논점이 진상을 규명하겠다 하는데 있다면 백번이라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주사태를 정권타도, 정통성 시비의 근간으로 삼겠다 하는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각에서의 여야의 광주사태를 둘러싼 싸움은 광주의 아픔을 아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후벼파서 아름을 더 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보고 야당의 특조위에 반대한 것입니다.
진상은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이제까지 발표한 것이 있고, 그것이 틀렸다면 객관적인 자료를 제기해달라 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망자 수입니다. 1백64명의 민간인 이름 서명 다 발표했읍니다. 군.경까지 합해서 [2천명이라더라] 하는 막연한 유언비어적인 주장가지고는 사태를 자꾸 악화시킬 뿐이니까 객관적인 자료를 마련해달라는 겁입니다. 어디에건 다 신고를 해라, 그런 자료가 나왔을 적에 우리는 승복을 한다. 그렇지 않고 [하더라]하는 얘기를 가지고는 싸움질하자는 것이지 진상을 밝히자는 얘기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광주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박 야당이 광주사태를 정권쟁취의 수단 내지 도구화로 삼는다고 하셨는데, 집권세력이 광주사태 문제에 있어서는 과대피해망상증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광주 얘기만 나오면 신경이 곤두세우는데, 이번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이 거론한 것은 우리에게 지지를 보낸 국민들의 대부분이 평소에 갖고 있던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하기 며칠 전에 정부에서 공식으로 발표한 사망자 수자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일부가 묻혀 있는 망월동묘지에 갔읍니다. 그 당시에 중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으로 죽은 아이들의 무덤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거의 동갑내기인 지금 대학교 3학년과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학생들과 같이 있게 되었읍니다. 그 아이들의 무덤에 그 부모들이 와서 통곡하는 것을 보고 저도 많이 울었읍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이들을 폭도라고 하는 것이 절대 허구다 하는 것을 실감을 했어요. 그래서 아하, 논리 이전에 이것은 참말로 원한이라는 것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서 그런 시각에서 광주사태 문제를 내 나름대로 이번 국회에 제기해보려고 애를 썼읍니다. 그런데 당국은 광주사태에서 얼마나 죽었느냐 하면서 수자놀음하듯 이 문제를 끌고 가버리고 만 것 같아요.
국회국방위에서 6월7일 야당이 까딱 잘못했더라면 말려들 뻔 한 일이 있었는데, 수자는 부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5.17계엄확대조치의 정당성에 있고, 또 5월 22일 모사단병력이 투입되기 이전에, 이른바 미국이 말하는 유엔군 작전지휘권 하에 있지 않은 공수부대 3개 대대가 5월 18일 새벽에 투입이 되었고, 그로부터 나흘 동안에 찌르고 쏘지 않아도 될 양민들을 쏘고 했다는 데에 있읍니다. 영어로 브루털(Brutal)로 표현되었지요. 전쟁이 아니었는데 질서유지하러 들어간 군인이 살상을 하여 바로 그 과정에서 망월동묘지에 묻혀 있는 어린 아이들이 도망가다가 등덜미에 총을 맞아 죽고 하는 그러한 일들이 생겼어요.
5월18일 전남대 학생들 2백여명이 교문에 모여 있는 것을 해산시키려고 하는 공수단에 의해서 교수가 두들겨 맞았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을 보고 학생들이 항의했고, 그에 대항해서 공수부대가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고....
지금 죽은 사람들을 보면 정부 발표대로 하더라도 24명의 죽은 원인이 좌상입니다. 벙어리가 죽고 국민학교 학생이 죽고 국민학교 교감이 죽었어요. 심지어는 헌혈하고 나오는 여고생이 총상으로 죽었고, 적십자 완장을 찬 비무장 간호원으로 보이는 사람 세명이 죽었다 이거예요. 이것을 보고 시민들이 이럴수가 하는 본능적인 분노에서 가세하게 되고, 그렇게 하니까 공수부대가 시민군에 대항하지 못하고 21일 철수한 것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NHK가 어떤 경위로 5.17계엄확대조치가 있었고, 거기에서 어떤 형태로 이른바 광주사태가 진정 전개되었느냐 하는 것을 소상하게 보도하고 있는데 반해서, 우리 언론은 특히 방송매체는 그 원인과 진행결과에 대해서 한번도 소상하게 발표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한가지 놀라운 것은 국방위가 6월7일 열려 윤성민 국방장관이 5년전 계엄사 발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발표를 하고 있고, 그 직후에 우리는 국회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간인데, 공영 TV에서 뭘 방송했읍니까?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돌 던져 육군 소위가 이마를 맞아서 피를 닦으면서 돌아서는 그 장면만 비춰 주었어요. 대학생들이 왜 돌을 던지게 되었느냐, 그 선행사실에 대해서는 TV가 전혀 비춰준 바가 없어요. NHK 비디오를 실제로 보고 났을 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의 전개나 상황사실에 은폐하고 묻어두는 데서 오히려 광주사태는 사태 이상의 정치문제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어요.
미국의 예를 들어서 안됐읍니다만, [닉슨]이 물러서게 된 워터게이트사건은 도청 그 사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는 데 있었읍니다. 현직 대통령이 관련 테이프를 폐기 처분한 것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서게 된 것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모든 자료가 국민들에게 공개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국회에서 전혀 해명이 안되었어요.
유언비어와 광주사태
김 제가 대단히 중요한 쟁점이 나왔기 때문에 말씀드립니다. 지금 박의원 말씀 가운데 광주사태의 사실인식에 굉장한 허구와 허위, 잘못된 상황인식이 있다 하는 것을 외람되지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요.
광주사태의 초점중의 하나는 5.17전국 비상조치로 다른 지역에서는 일단 데모가 진정이 되었는데, 왜 유독 광주에서만 민간인 1백64명 경찰 4명 군인 23명 도합 1백 91명이라는 많은 희생자가 나는 엄청난 사태로 악화 확대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5.17이후에 여타 지역상황과 다른 광주사태의 특징적인 현상이 아니겠어요? 19일날 상황까지 광주에 투입되었던 공수단이 2개 대대입니다. 1개 대대의 병력이 3백명 정도인데, 18일날 0시20분을 기해 한 대대는 전남대에, 한 대대는 조선대에 들어갔읍니다.
광주사태가 다른 지역과 달리 많은 희생자를 내게끔 확대 악화된 직접적인 동기는 유언비어에 있었어요. 초기에 공수단이 들어가 무자비하게 유부녀를 칼로 찌르고 대검으로 여학생들의 유방을 도려내고 심지어는 임산부를 찔러 태아를 끄집어내서 개천리에 팽개쳤다는 갖가지 유언비어가 광주시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는데, 내가 여러 가지로 조사하고 자료를 뒤져보니까 공수부대가 전남대에 들어간 것은 18일 0시20분이지만, 가두진압에 나선 첫번째 시간이 언제냐, 18일 06시 40분부터예요.
그전에도 공수부대와 대학생들과의 1차적인 충돌이 있었어요. 18일 9시 전남대에서 학교로 들어가겠다 못들어 간다 하면서 공수부대와 학생들이 투석전이 있었어요. 투석전이 있고 난 다음에 학생들이 시내로 들어가서 시내 데모대가 있고, 난 다음에 학생들의 시내로 들어가서 한 16시 40분까지 진압하던 것은 공수부대가 아니고 경찰부대였읍니다. 경찰부대와 학생들이 충돌과정에서 경찰이 중상 경상 해서 27명이 나왔다는 기록도 있지만, 학생들도 다친 사람이 있을 겁니다. 공수부대가 처음 들어갔을 때는 실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18일 현재로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49명의 시체검안위원회가 다 확인을 하고 증언도 듣고 판명되었어요. 윤공위대주교같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분들도 18일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언을 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18일 정오부터 앞서 말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하고, 그것이 유인물로 인쇄된 것이 18일 오후입니다, 따라서 저는 누가 잘못했다 이전에 정치인이 한 사람으로서의 양심선언인데, 그런 상황의 격돌에서 상상할 수 없을 비인도적인 유언비어가 광주시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유언비어가 유인물로 인쇄되어 선량한 광주 시민을 흥분시키기 시작했어요. 경상도 군인만으로 구성된 공수부대가 와서 전라도 사람들을 씨를 말리려고 한다는 유언비어가 18일 상황에서 광주시내를 지배했단 말이에요.
저는 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부대원들을 다 조사하고 대대장들을 만나보려고 개인적으로 노력했읍니다. 그랬더니 33대장은 그 자신이 전남출신으로 호남분이에요. 35대대장은 대구출신 경상도분입니다. 그 부대 40%가까운 사람들이 호남사람들이고 익산 금마에 있는 부대였어요. 저는 사람이 적게 죽었으니까 광주사태에 책임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을 조사하는 과정에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보이지 않는 유언비어의 위력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호남분들 광주시민들의 지역감정에 불을 지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에요. 그러한 유언비어 조작, 이런 것들이 시민들을 흥분시켜서 19일 낮 오후가 되면서 시민들이 학생데모에 가담을 하는 상황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래가지고 감정격돌이 시작돼서 그 과정에 19일 오후에 사망자가 두 사람이 나오고, 경찰이 4명이 깔려 죽고 민간인도 죽고 군인도 붙잡혀서 밟혀 죽었어요.
양쪽에서 시체가 나온 상황부터는 흥분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21일 계엄부대가 철수할 때까지는 무기는 가지고 있었지만 겨눠서 쏜 적이 없다는 것은 천하공지의 사실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초기에 광주시민을 흥분시켰던 유언비어, 브루털한 비인도적인 행위를 했기 때문에 흥분시켰다 하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하는 점입니다. 책임이 어느 쪽에 있고 없고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21일 상황이 되면 5천정 이상의 총이 이른바 시민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본의와 관계없이 유언비어에 흥분해 있었던 선량한 시민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격한 일부 집단이 군부대를 습격한다든지 광주교도소를 습격했어요. 이 상황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전상황입니다. 19일 2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이 광주사태의 최초의 사망자입니다. 20일 경찰 4명과 민간인 2명의 사망자가 생겼고, 그 다음에 21일 54명의 많은 사람이 하루에 죽어버렸읍니다. 이것은 양쪽에서 총을 가지고 쏴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태가 되다보니까 이제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어 버렸어요. 유언비어가 먹혀들어갈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었던 것이 민족적인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서울지역같은데 경상도 군인이 서울놈들 죽이러 왔단다, 그래보았자 먹혀들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얘기해서 이 문제만은 언론도 정치인도 네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하는 논란보다는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소지만은 없애야겠다, 그래서 앞으로 더 이상 객관적인 실증이 나오면 야당은 당연히 정부.여당에 대해 책임을 추궁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진 사실, 이것은 유언비어였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구나 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것은 사실은 사실대로 여야 언론인 인권단체 할 것 없이 국민들한테 널리 알려야 제2의 광주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생각합니다.
왜 국정조사권을 발동 안하나
박 그러면 유언비어 때문에 광주사태가 일어났다는 얘기군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누가 그런 말을 믿겠어요. 일부 군이 대검 등을 사용해서 시위군중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 정말 참혹하게 살상했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김의원 말대로라면 18일에서 21일 사이에 공수부대에 의한 브루털한 진압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니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객관적인 사실이 나오고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겠어요. 그리고 김의원은 18일에는 전혀 죽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이날 시외버스터미널 변소에서 시체가 2구 발견되었다는 것이에요. 또 이날 오후 3시경 전남대 입구에서 학교로 들어가는 학생들을 무장군인이 막자 학생과 충돌해 무장군인이 무자비하게 나와 학생 1명이 대검으로 찔러 죽었다는 것이고, 이때30여명이 가톨릭센터 안의 기독교방송국에 몰려가 진실보도를 요구하며 건물경비를 맡고 있던 계엄군을 포위해서 무장시켰는바, 가톨릭센타 옥상에서는 공수부대원과 시민이 충돌, 시민 2백여명이 붙잡혀가고는 건물 안에서 시체 6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고, 오후 4시30분경 택시운전사 3명이 학살당하고 터미널부근 지하도에 피신해 있던 시민 1백여명이 연행되어 행방불명되었다 합니다.
혹시 정부와 여당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전부 유언비어라고 할지 모르나, 그렇다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서 사실여부를 가리고, 여러 단체들이 광주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도 억압해서는 안될 것이에요. 유언비어를 없애기 위해서도 광주사태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정부.여당은 회피하지 말고 응해야 합니다. 지금 정보는 완전히 정부에 의해 독점되어 있어요. 내가 얘기한 것은 미국 일본에서 나온 자료, 그리고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 얘기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이번 문화원농성사건에서도 미대사관의 고위당국자가 초기에 모사단이 미군 작전 지휘권의 발동에 의해서 출동하기 이전에 다른 부대에 의해서 잔혹행위가 있었던 것을 우리도 인정한다라는 대목이 있읍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의문투성이라면 백일하에 명태 배 가르듯이 갈라놓고 진상을 규명해야지 김의원 말씀대로 내 말이 옳으니까 야당도 그것을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알린다는 거요.
수자 얘기만 해도 그래요. 어찌 되었거나 광주시와 도청, 경제기획원에서 확인돼가지고 만들어진 통계에 사망자가 2천명 단위로 나와 있는데, 만약 내무장관 해명대로 2백3명이 죽었을 뿐이라면 이것은 평상시 규모에 비해 너무 적은 수에요. 적어도 1백91명에 평상시의 사망자가 플러스 알파되어야 하는데 그에 대해서 설명이 없어요.
유언비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김 지금까지 직접 현장에 있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심증을 주었던 자료들이 여러 형태로 또 구전이 되어 왔읍니다. 일본 NHK에 어떻게 났다, [타임]지에 어떻게 났다, 외국의 뉴스에는 어떻게 났다더라, 그것을 보았다 하는 유언비어가 많습니다.
제 경험입니다만 제가 대학교수였을 때 여학생의 유방을 도려냈다더라, 목을 잘라가지고 어느 광장에다가 목을 걸었다더라 하는 유언비어까지 돌아다녔읍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느냐, 아무리 무력으로 어떻게 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눈이라는 것이 있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일인데, 그런 얘기는 상식선에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논의가 오고갈 적이었읍니다. 어느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인 제 후배가 저한테 말하길 그가 아는 어느 종교계 지도자가 외국에 나갔다 오다가 일본의 뉴스 비디오에서 목이 걸린 것을 보았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 아연질색하고 할 말이 없었어요. 보았다더라 하는데 보지 못한 내가 더 이상의 반론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반론을 하지 못하고 제가 또 적극적으로 당시 반론을 하고 다닐 필요도 없었던 입장에서....
그후 한 3개월 후에 일본을 갈 기회가 있었읍니다. 제 스스로를 확인하고 납득을 시키기 위해서 일본에서 나돈 광주관계 비디오를 전부 구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지면이 있는 NHK기자, [아사히]기자들한테 물었어요. 내가 본 비디오에는 목이 걸려 있는 장면이나 유방을 도려내는 장면이 안 나오고 그냥 학생들을 엎어놓고 패고 묶어놓고 있는 장면이었다. 목이 걸려 있는 장면이 일본 TV에서 방영된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모두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부.여당의 입장으로서가 아니라, 이것은 국가 민족으로서 상당히 다행스럽다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제가 국회에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미국의 [뉴욕타임즈] 일본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찌신문] [요미우리신문]에 난 광주사태의 관련뉴스를 일일이 다 점검해 보았읍니다. 지금 박의원이 일본신문에 그런 것이 나왔더라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기사가 있었다면 제가 인격을 걸겠읍니다. 거기에 난 뉴스는 [이러한 설이 있다] [광주에서 사망자는 2천명이 넘는다더라] 하는 전송기사들이었어요.
박 유언비어가 왜 생기느냐, 불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로가 안 통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유언비어가 많다 하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라도 이 사건은 헌법과 국회법에 정해져 있는 국정조사권으로 조사를 해봐야 돼요.
그리고 또 6월7일 국방장관이 광주사태진상보고를 주욱 읽어내려갈 때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장관이건 국회의원이건 질의하고 답변하는 장면을 생방송한 일이 없는데, 야당과는 한미디 상의도 없이 긴 시간 TV로 생중계를 했다 이겁니다. 이는 야당에 대한 분명한 기만이에요. 그리고는 광주사태가 해명됐다는 것이에요. 이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무력사용의 필요성과 충분성
김 정부.여당의 입장이 1백91명이 다니까 이것을 믿어라 이런 자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정부.여당이 조사하고 보고받고 신고받은 모든 수자는 이것이니까 더 있으면 신고를 해라, 언제든지 나와라 하는 것입니다. 수자뿐만 아니라 진상에 대해서 언론기관이 조사해도 좋고 신한민주당이 조사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이 주장하는 국정조사권은 진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감정을 가라앉히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도구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인상을 주어요. 잘 아시다시피 외채도입사건 때 조사를 해서 진상이 밝혀졌는데, 보고서에 여야가 합의를 안 하는 것입니다. 각기 다른 보고서를 쓰는 거예요. 왜? 합의하면 한쪽이 완전히 패배한 것같이 생각되니까 야당측에서는 사인을 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보고서를 쓰겠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광주사태처럼 정말로 국민적인 관심사고 정권의 정통성과 관계되는 문제에 대해서 진상이 밝아졌다고 하여 합의를 해줄 리가 없읍니다.
박 이제 우리 당보고 조사하라니 그것은 정부.여당의 주장과 다른 것 아닙니까? 그리고 5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국방장관이 신고하라 했지만 왜 조사는 못하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어제 저녁 현재로 광주 제2지구당에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무엇보다도 초기 투입된 부대원들의 무력사용의 필요성과 충분성이 있느냐 하는 것도 조사를 해봐야만 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 야당의원들이 그 당시에 지휘관들의 명단을 밝혀라 하는데도 안 밝히고 있어요.
사 이거 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6월 7일 국방위원회에서 국방잔관이 전모를, 그것도 박의원도 말씀한대로 야당의 양해없이 일방적으로 그동안 해오지 않던 TV중계까지 하면서 진상을 일단 발표를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의문점이 있다고 하면서 야당이 그 의문점을 상임위원회를 통해서 다시 제기를 했어야 하는데, 다음 날인 토요일에 국회상임위가 유회됨으로써 그 기회를 활용을 못하고 말았단 말이에요. 물론 그때 신민당은 국회를 국방장관의 홍보장으로 이용했다는 불만 때문에 그렇게 나온 것 아닙니까? 그리고 바로 월요일 화요일 본회의를 끝으로 국회가 문을 닫게 되었단 말이죠. 그러니까 미결입니다.
그래서 이 다음 국회에서, 7월에 임시국회가 한번 열릴지 아니면 정기국회 때가지 넘어갈는지 모르겠지만, 이 미결된 광주사태국정조사결의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야당이 국방장관의 전모 발표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의문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보완해서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논의해가는 과정에서 의문점이 하나둘씩 제기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광주사태 문제를 장외에서 촉발시킨 것이 미문화원사건 아니겠읍니까? 야당도 물론 광주사태를 이번 국회에 끌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학생들이 그걸 가지고 미문화원에서 농성까지 하는데 다시 한번 촉발을 받았을 것이고, 민정당도 역시 원외에다가 이 문제를 내팽개쳐 두기보다는 한번 국회 안으로 끌어들여서 걸르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고 보는데, 이 문제는 조금 있다 하기로 하고, 먼저 국회의 발언 수위에 대해서 한마디하고 넘어가지요.
민정당이 대응하는 것도 상당히 신축성이 생겼다 할까, 이철의원 발언같은 것을 징계로까지는 끌고 가지 않았는데, 민정당이 처음에는 이철의원 발언을 크게 문제를 삼고 징계로까지 몰고 갈 것처럼 하다가 5개항 공개 질의선에서 끝낸 것은 왜 그랬읍니까? 지난번에 이민우총재 발언에 대해 공개질문을 했으나 답변을 못받았지 않습니까?
이철의원 발언의 파장
김 의원이 의사당 안에서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소화될 수 있는 부분은 소화를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의사록에서의 삭제 등 의회규제적인 방법도 있는 것이니까, 극단적인 징계는 취하지 앟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그러나 면책특권에는 명확히 한계가 있읍니다. 의원의 발언은 우선 의원의 자질에 기대를 하게 되고, 그 다음에 대한민국의 의회다 하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여야 모두 기초를 두어야지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의회주의의 경쟁의 원칙과 규칙을 지키자 하는 것입니다. 면책특권을 빙자해서 의회주의를 파괴하고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것에 관해서는 정신적인 계도 등 여러 방법으로 극복해야지요.
박 제가 명색이 3선이지만 극회발언의 수위라는 것은 묘한 데가 있는 것 같아요. 말을 빨리 해서 여당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모르는 사이에 획 지나가버리면 소위 초강경 고수위 발언이라도 그냥 넘어가버리는 수가 있고, 천천히 점잖게 얘기하면 대수롭지 않은 얘기인가 보다 하고 지나가는데, 70년대에도 그랬고 5공화국에 들어와서도 보니까 여당의 총재, 곧 각하의 주변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이것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이 나라 정치의 비극이올시다. 그 얘기만 나오면 여당의원들은 어떻게든지 반응을 보이게끔 되어 있는 이것이 참 부끄럽고 가슴 아프게 생각해요.
이철의원이 무슨 발언을 했는지 국민들은 모릅니다. 그 발언의 핵심이 전해지지 않았어요. 민중 민족 민주주의를 위한 결단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됩니까? 야당에서는 이것이 해명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철의원의 얘기중에는 문제될 발언이 전혀 없어요. 또 이의원은 일반론을 얘기했던 것이에요. 민중의 집권세력에 대한 정당한 요구가 비폭력 평화적 방법으로 수렴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것은 민중 폭동의 형태, 나아가 혁명의 형태로 진전이 될 수 있다는 일반론을 얘기했을 뿐이에요. 동학란도 그러하고 3.1운동도 그러하고 4.19도 그러하고 10.26도 어떤 맥락에서는 국민저항권 행사라고 보는 것 아닙니까? 민중민주주의라는 말만 해도 그래요. 이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한다고 계속 우기고 그런 표현을 쓰니까 그게 못마땅한 것이고, 그러니까 피해를 받고 소외받고 있는 그 국민을 민중이라고 얘기했을 뿐이고, 그래서 구별하기 위한 표현으로 민중민주주의라는 어휘를 쓴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어요. 따라서 나는 이철의원 발언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민정당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요. 문제 안삼고 조용히 넘어갈 일을 일부러 평지풍파를 일으켰는데, 이 때문에 정말 어느 쪽이 손해봤겠느냐 이 말입니다.
삼민주의란 무엇인가
김 국가원수에 대한 사실무근의 모독이라든지 국가체제의 기본성격을 부인하는 형태로 제가 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최고 통치자를 걸고 들어오건 아니건 체제의 기본성격의 기저를 흔드는 얘기가 되면 이것은 얼마든지 문제 제기가 될 수 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권력상층부에 관해 실질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이러이러한 원성이 있다 하는 것을 야당의원이 제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제기하는 방법이 국회의원의 자질로서의 품위와 관련되는 표현과 논리로써 사실 근거에 입각한 예증들로써 정부.여당이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동적인 방법, 표현의 과격성 같은 것 가지고 시원함을 나타내는 그것은 지양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그 문제에 관한 한 미니멈의 요구입니다.
또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말 자체를 문제삼는 것 아니에요. 그 하나하나의 말들은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그러나 이 말들은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말과 의미가 다르게 사용될 수도 있어요. 우리 대학생들만 하더라도 민주라는 말은 자유민주주의의 민주의 개념으로 쓸 수도 있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와 양립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적 민주라는 내용도 있다 이 말입니다. 민주라는 말이 아름답기 때문에 이북도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그 용어가 담고 있는 내용을 따져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철의원이 발언한 민중 민주 민족이라는 것은 직접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물은 미문화원을 점령했던 삼민투위 학생들이 쓰는 것과 같은 용어일 뿐만 아니라 그 학생들의 투쟁 양상을 원호 호응해 주는 것같은 문맥속에서 이른바 삼민주의의 해방의 얘기를 했다 하는데 문제가 있어요. 삼민주의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두가지입니다. 민중 민주주의혁명이라는 것과 민족해방혁명이라는 것을 양대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삼민투위 학생들의 민중민주주의혁명에서 얘기되는 민중은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이 쓰는 민중의 개념이 아니라, 계급개념으로서의 민중, 영세상인 도시근로자 빈민을 주축으로 하는 기층세력이 민중이다 하는 개념으로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의미의 민주주의라고 규정을 할 수 있어요. 두번째, 민중의 개념이 혁명의 주체로서의 민중이다, 이것은 무어냐 하면 정치발전과 역사발전의 기본 동력을 대화나 의회정치의 장속에다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투쟁 플러스 무장투쟁, 곧 항쟁의 요소를 결부시키지 않고는 민중 민주주의는 달성될 수 없다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는 것이에요. 따라서 저는 이철의원이 얘기하는 민중 민주주의 해방이라는 얘기가 그러한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적 내용과 다른 의미의 내용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달라 하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밝힐 적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지요.
또 삼민투위에 들어가 있는 학생들도 민주 민중 민족이라는 아름다운 용어에 현혹이 돼서 순수한 동기에서 참다운 민주화투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했다면 핵심분자들로부터 빨리 구출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입니다.
삼민투의의 실체
박 아! 참말로 큰일났군요. 정부.여당의 논리와 발상과 접근방법은 어떤 정보 자료를 토대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매카시즘적 접근 분석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철의원이 사용한 민중 민주주의 민족을 삼민투위 학생들이 쓰는 것과 동질성의 것인지 아닌지 대답하라 이렇게 말하고, 삼민투위 학생들이 말하는 어휘는 계급투쟁, 기층민중을 전제로 한 것이고, 이것은 결국 무장폭력혁명에 의해서만 민중을 해방시킬 수 있다 하는 공산당식 수법이라고 공식에 딱 맞춰가지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실체를 가진 삼민투위, 이 나라에 없읍니다.
나는 분명히 얘기합니다. 정부.여당이 어디다 근거를 두고 이와 같은 실체와 주장과 구호를 가진 삼민투위가 존재하고 있다고 판단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읍니다. 조직적인 실체가 없은 삼민투위를 용공으로 매도하는데, 몇발자국을 양보해놓고 보더라도 학생들이 주장하는 삼민정신이 어째서 무장봉기에 의한 폭력혁명을 주장했다고 보는가. 미문화원 학생들의 어느 유인물을 통해 보더라도 무장봉기에 의한 폭력혁명주장은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요. 또 [삼민]정신이 왜 나쁩니까? 민주쟁취 민족통일 민중해방을 얘기하는 삼민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자주적인 민주통일을 하고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민중의 생존을 지켜준다는 것을 어째서 용공주의로 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해방이란 어휘도 그렇습니다. 전대통령은 5공화국출범초반부터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등 해방이라는 용어를 여라 차례에 걸쳐 썼읍니다. 핍박받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아래서 당연한 일입니다. 민중이란 어휘도 무산계급을 얘기하는 말이 아닙니다.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부와 여당은 어휘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꼬투리를 잡고 있어요.
또 전학련은 임의단체입니다. 그리고 삼민투위는 고려대 학생회장 허인회군이 민족 민중 민주투쟁위원회를 만든 것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명칭 자체는 전대통령 방미를 앞두고 소멸되었어요. 전학련 삼민투위위원장이 조직적으로 지휘하고 명령하는 조직화되어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전학련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조직이 아닙니다. 각 대학학생회에 이런저런 연구위원회 같은 것이 그때그때 만들어졌다가 소멸되고 만들어졌다가 소멸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인회군이 위원장이라 하는 것도 이미 그것은 전두환대통령 방미를 계기로 없어져 버린 것이고, 전두환대통령 방미 때는 각 대학이 방미반대투쟁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광주사태가 문제가 될 때는 광주사태에 대해서 진상을 밝혀라 하는 커미티가 만들어진 것이고, 숭전대같은 경우는 반종속투쟁위원회라든지 그때그때 한 두사람 책임자가 되어 만들어지고 소멸되었다 만들어지고 이런 것뿐이에요.
이처럼 삼민투위가 실체도 없는데, 도시게릴라적 수법, 반미, 용공, 극렬, 좌경, 이런 온갖 어휘를 총동원해가지고 오늘날 학생사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삼민투위에 덮어씌우는 처사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어요. 문화원에 들어간 73명의 학생들에 대해서도 마치 삼민투위의 행동지침이나 전략 전술의 일환으로 조직화되어 특공대로 따라갔다고 하는데, 정부가 홍보매체를 동원하여 그동안 학생운동을 얼마나 탄압하고 금압하려 했는가가 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들어간 지 24시간도 채 안된 24일 저녁 7시10분부터 9시까지 1백10분에 걸쳐서 KBS가 방영한 와이드 프로로서 삼민투위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특집프로에 단적으로 잘 나타나 있읍니다. 화면의 하나하나가 학생들이 돌멩이 던져 전투경찰과 맞닥뜨리는 그런 장면뿐이에요. 그러한 상황의 원인이 어디 있느냐, 왜 학생들이 돌팔매질을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읍니다.
나아가서 거기에다가 각계 인사들이 삼민투위를 보는 견해를 섞었는데, 24일 오후 3시경에 국회본회의장에 있으니까 KBS기자가 와서 나에게도 코멘트를 요구했어요. 망설이다가 이렇게 응했어요. 부산미문화원화재사건, 광주미문화원화재미수사건, 강원대 성조기소각사건, 지난 4월9일의 부산미문화원투석사건 등과 이번 사건의 발생 주장내용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볼 수 있다. 이것이 한센텐스였읍니다. 다음 센텐스는 이와 같은 일들의 예방과 근본적 해결은 광주사태의 진상규명과 우리 신민당이 주장하는 정치민주화의 실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날 TV에 어떻게 나왔느냐, 뒷부분은 자르고 앞부분만 났어요. 이렇게 야당 선배의원들도 너희들 학생들을 나무라지 않느냐는 투였지요. 그것을 보는 저는 공영방송에 대해서 이제는 시청료를 내지 말아야 할 단계에까지 왔구나 생각하고 우리 집에서는 안내기로 결의를 했어요.
이것은 보통 분개할 일이 아닙니다. 야당의원의 코멘트를 위조 조작하는 공영방송에서 말하는 그 삼민투위의 노선과 주장을 우리가 그대로 믿어야 합니까? 그래서 이 부분은 국회 본회의 마지막 전날 신상발언을 얻어서 하려고 했는데 봉쇄당하고 말았어요. 더 여러 말 할 것 없어요. 직접 증인으로서 또 이 사건의 피해자로서, 또 행인지 불행인지 변론을 맡고 있는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미문화원사건을 발생시부터 현장에서 조사해왔고, 학생들을 구치소에서 접견을 했고, 또 공영방송의 조작에 내가 증거물로서 이용을 당했어요.
미문화원사건과 미국측 태도
김 박의원은 정치를 오래 하셨으면서도 굉장히 실체관념이 없으신데, 삼민투위가 조직이 없고 실체가 허상이라고 말씀을 하시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완전히 해체가 됐는지 모르지만 삼민투위라는 것은 분명히 실체가 있었읍니다.
삼민투위는 전학련의 하나의 연구분과위원회라고 그러시는데, 연구분과위원회가 됐건 전학련 산하의 어떤 조직체가 됐건 삼민투위라고 하는 간판 아래 삼민투위의 목적을 실행하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게 실체입니다. 지금 박의원은 그 조직이 소멸되었다고 그러시는데, 일부 학생들이 미문화원을 점거한 것이 5월23일입니다.
각하가 방미한 일자와 전후관계에서 볼 적에 박의원 말씀은 전혀 객관성이 없는 이야기이고, 설사 소멸이 되었다 하더라도 미문화원에 들어가 있던 73명의 학생이 정부.여당이 삼민투위의 사람들이다라고 매카시즘적으로 규정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전학련 산하의 삼민투위의 멤버다 하고 공표를 했어요.
박 그렇게 말한 일이 없어요! 내가 담당변호사인데, 학생들이 삼민투위 소속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민중 민주 개념은 앞에서 얘기했으니까 학생들이 생각하는 민족만 얘기하지요. 학생들은 이 정권이 정권 출범의 취약성과 정권출범 당시의 보장받은 것에 대한 것 때문에 종속일변도로 나오게 되고, 그런 것에 대해서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것이 민족의 개념으로 나타난 것일 뿐입니다.
또 정부의 답변을 들어보면 서울대에서 나온 [깃발]이니 [모색]이니 하는 것이 전부 삼민투위에서 만든 것처럼 되어 있는데 증거를 대라 이거예요. 그것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유령이에요. 출처불명이에요. 김 앞에서 저는 삼민투위의 민중민주주의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분명히 다르고, 일부 학생들이 거기에 잘못 인식하여 현혹되었으면 하루 빨리 거기에서 나오라고 얘기했지만, 이른바 민중민주주의에 도달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그들은 투철한 인식이 있읍니다. 그 인식을 내가 두가지만 지적을 하겠는데, 지식인과 학생은 기층세력의 연합세력으로 하고 정치인은 사상투쟁을 통해서 정치투쟁을 해야 되고...
박 내 얘기는 그게 삼민투위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 말이에요.
김 지금 삼민투위의 실체에 대해 박의원은 아니라고 하고 저는 그렇다고 하니까 국민들의 심판에 맡기지요.
박 학생들이 미문화원에서 퇴거할 때 낸 성명이 어디에 정부에서 얘기하는 그런 내용이 있어요. 또 우리 헌법 26조에 [유죄확정 판결이 있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조항을 완전히 무시하고 온 언론을 동원해서 아직 법에 의해서 구속도 안되고 있는데 여론재판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왜 미대사관 고위관리가 학생들의 미문화원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 공영방송에서는 방송도 안합니까? 그 미국 관리들이 뭐라고 얘기했읍니까. [They are not redical, peaceful] 과격하지 않고 평화적이라 했어요. 그리고 문화원의 기능을 마비 안시켰다, 반공 반미가 아니었다, 그 다음 [던롭] 참사관이 그들 학생들은 조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상과 희망을 가지고 진지한 태도를 보인 것에 리스펙트(respect)한다고 얘기했읍니다. 국무성 대변인의 성명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거예요. 이런 것은 왜 전혀 보도 안하고 있는 거예요.
김 저는 미국측의 발언과 태도에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외무장관에게 물었읍니다만, 미대사관에서는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느냐, 미문화원을 점령했다 하는 사실 자체가 의회주의적인 장내질서에 있어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입니다. 그런 사태를 저질러 놓고 난 사람이 들어가서 순종적이고 말로 한다 해서 폭력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러면 폭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폭력이냐 이겁니다.
미문화원에 들어간 자체가 법질서를 파괴한 것이고 그런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주장하고 비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대화나 글로 써서 얘기하고 해야 하지요.
호헌인가 개헌인가
사 이제 이번 국회를 통해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 것같습니다. 광주사태도 거론이 되었고 개헌특위안도 제출이 되었어요. 물론 모두가 미결로 다음 국회로 이월되었지만. 앞으로 휴회기간에 민정당은 개헌문제에 어떻게 대응준비작업을 하고 신민당은 신민당대로 지난번 선거때 국민한테 공약한 제1호인 개헌문제를 어떻게 관철시킬 것인지 그런 입장을 좀 얘기해 주시지요.
김 개헌문제는 야당측에서 들고 나온 이슈중의 하나이니까 간단히 저의 입장을 피력하겠읍니다. 86년 아시안게임, 87년 지자제 실시, 88년 현행헌법에 의한 정권교체와 올림픽 등 앞으로 3~4년 동안에 우리 민족의 기로가 달려 있는 중요한 과제들이 엄청나게 많다고요. 이와 함께 민주화와 경제과제를 다 풀어가야 하는데, 헌정이 중도에 파탄이 와서는 안되겠어요. 그러자면 가장 좋은 방법이 이미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 간선제에 의한 7년 단임제를 실시해가는 과정에 있으니까 이것을 차질없이 실현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직전제다 내각책임제다, 7년 임기가 좋으냐 8년 임기가 좋으냐, 중임이 좋으냐 하는 식의 개헌논의가 일어나면 직선제 간선제 하나만의 논란으로 끝나지 않고 복잡한 문제가 나와요. 일단 합의된 것이 민주화의 열매가 설사 적다 하더라도 착실하게 이룩돼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야당에서도 지금은 여당을 치기 위해서 직선제가 좋다 하지만 김영삼씨 생각은 내각책임제에 기울어져 있고 김대중씨는 제3공화국 헌법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우리 당내에서도 개헌을 할 바에는 그러면 대통령의 임기도 고치자고 하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단 말이에요. 또 야당이 직선제로 고치자고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어디 있느냐 하면 양쪽의 주장이 대립되다가 안되면 그 다음 선거에서 국민한테 심판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시한을 정해놓고는, 예컨대 87년까지 개헌을 안하면 이것은 민주화가 아니니까 그때에는 국민의 여망을 빌어 데모를 하건 무슨 방법으로든지 직선제로 몰고가야겠다고 하는데 있어요. 제발 그런 발상만은 안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여당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정치판국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러면 피차 불행해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기본입장입니다.
박 88년 3월에 현행 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그 호헌의지가 지켜지면, 이 나라의 헌정은 참말로 더욱 불행의 깊이를 크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가 쉬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현행 헌법은 국민의 합의기반 위에서 생성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계엄령 아래서 국민투표를 하여 헌법이 성립한 것이 아니냐 이 말예요. 또 헌법에 개인이 되었건 집단이 되었건 자유로운 교체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완전히 배제했어요. 선거인단이 후보의 등록에서 대통령 선출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개입할 요소가 포함 되어 있어요. 그것은 이미 4년 전의 대통령선거 행사를 통해 우리가 체험을 했읍니다.
그러니까 역대 정권처럼 장기집권도 국민에게 불행한 것이지만,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헌법을 갖느냐 못갖느냐 하는 것이 그보다 더 앞선 비원이라는 것을 이번 총선과정을 통해서 국민들이 보여준 것입니다. 개헌은 국민적 합의라고 봐야 해요. 우리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노총리가 국정보고에서 헌정의 굴곡이 개헌 때문에 있어 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일견 그럴 듯하지만 문제는 현정권과 여당이 말하는 호헌의 성격에 있읍니다. 대단히 외람되지만 내가 보기에는 민정당정권도 자유당 공화당처럼 야당할 능력 없는 정당이에요. 그 의지와 의사가 보이지 않아요. 무리하게 잡은 이 권력을 무리하게 유지하는 발상으로 호헌을 하겠다고 한다면 그 무리에 있어서는 장기집권욕에 불탄 나머지 강행한 개헌과 동질이다 이거예요. 오늘날 이 개헌문제에 있어서도 학생들을 자주 나무라면서 자제하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집권여당보고 자제하라고 얘기하고 싶고, 우리 기성세대가 자제를 해야 된다고 봐요. 뭘 자제하느냐, 탐욕을 좀 자제해야 돼요.
김 박의원이 우리가 야당할 자세가 안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터무니 없는 추측이에요. 선거에 패배했는데 다른 엉뚱한 짓을 해가지고 계속 여당을 하겠다는 것은 우선 저같은 사람이 용납 안해요.
박 현행 헌법과 선거법을 갖고는 여당이 선거에 패배 안하도록 되어 있어요.
김 그렇다면 이번에 서울지역 부산지역에서의 선거결과는 어떻게 보십니까? 또 박의원이 어떻게 당선이 될 수 있었어요?
박 그것은 극단적인 논리에요. 이 나라가 병영국가까지는 아니잖아요.
사 김의원 생각으로는 현행 간선제로도 정권이 평화적으로 야당한테 이행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저는 실질적으로 지금 선거법에 의해서 야당측에서 단일후보가 나와 선거를 한다, 그러면 민정당이 낙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어려워요. 정말로 민정당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판]을 깨지는 말자
사 이제 광주사태에서 개헌문제까지 얘기가 되었는데, 그러고도 우리 국회가 해결해야 될 미결의 건들이 많이 있읍니다. 사면.복권이라든지 양심수문제라든지 노동문제라든지 그런 산적한 안건들을 다음 국회가 또 다루어야 되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내정의 차원에서 보면 한없이 많은 안건들이 있지만, 시야를 좀 크게 돌려서 남북관계같은 것을 보면 우리 여야가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될 더 큰 라이벌이 우리한테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 점에서 남북국회회담에 대해서 여야가 초당적인 회답을 마련한 것은 참 뜻있는 일입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앞으로 국회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으로 결론을 내립시다.
김 어느 나라 정당이건 여야가 정치적인 쟁점에 대해서 의견이 대립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또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느 의미에서는 살아 있다는 역증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피차에 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고 또 주장과 내용의 차이도 있지만 그러나 나는 대화가 계속 돼야 된다고 봅니다. 또 남북 국회회담에 앞서 저는 정권이 안보를 내세워 정치발전을 억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먼저 얘기하고 싶어요. 그것은 내 개인적인 반대일 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도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야당도 여당에게 이런 주문을 해야 돼요. 그러나 우리가 많은 문제를 논의할 적에 의견이 아무리 대립돼도 정치판국만은 유지하며, 절차상의 문제, 경쟁의 규칙과 원칙에 관한 합의만 있으면 아무리 의견이 대립되는 문제라도 여야간에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에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선택을 해주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기대를 하고, 그런 측면에서 볼 때에 우리가 국회를 열어 이렇게 여야간에 뜨거운 공방이 있는 과정에 북한에서 국회회담을 제의해 왔는데, 이 제의에 여야가 공히 일치하여 원만히 합의본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입니다. 아직도 우리 국회가 건전하다는 것을 구체적인 실증으로 남겨둔 예증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발전을 포함해서 제가 갖고 있는 의견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정치발전이나 의회발전을 우리가 평가할 적에 저는 세 가지 유형의 평가기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이상상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설정하여 그 이상상에 비추어 우리의 실제 국회기능과 역할을 비추어 보는 방법이 있어요. 이러한 방법에 기준을 둘 것같으면 실제의 의회나 정치인은 항상 비판받고 부족함이 많은 것입니다. 항상 이상과 실제에 거리가 있으니까요.
다음에 역사적인 맥락에서 정치발전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국회가 어느 정도의 기능을 해내고 있느냐, 정치현안이 한꺼번에 해결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국회가 나름대로 상당한 기능을 하고 있다고 저는 객관적인 자료로 자부를 합니다. 약1백여개 국가의 의회기능을 비교 분석해 보니까, 입법기능 대의기능 행정부 견제기능 등에서 우리나라 국회가 최상급은 못될망정 상급에 속하는 국회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증연구에서 입증이 됩니다. 그러나 이상상에 비해서는 아직도 부족하고 국민의 기대에 비해서도 부족하니까 더 분발해야겠지요.
세번째로 우리 의회는 왜 불안하냐는 문제가 있읍니다. 실질적으로 우리보다 의회기능이 못한 나라도 헌정파탄이 없이 의회가 쭉 이어왔읍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기능은 많이 하면서도 왜 의회가 이렇게 불안하냐, 또 중도에 차단이 여러 번 있었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통성에 대한 시비문제라고 하는 것이 언제든지 초원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아까 박의원님 좋은 지적을 했어요. 원초에 문제가 있었다면 해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게끔 해라, 그 얘기는 우리 여당으로서는 상당히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