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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민중항쟁 주제 단편시리즈<6>/임철우의 '어떤 넋두리'(월간예향, 1989. 8)

본문

철우의 어떤 넋두리



  오라 참, 그랬었제. 내 정신 조까 보소이. 이제 보니까 전번에 찾아왔던 바로 그 젊은이들구마는‥‥ 날씨도 이리 더운디 뭣할라고 또 여그까쟝 찾아 왔으까이. 또 그 일 때문에 왔능가? 허참, 그거 이 무신 하기 좋고 듣기 좋은 이야기라고 자꼬 그래쌌능가 모르겄네 이‥‥ 하기사 실은 나도 저번 참에 해 줄 말도 없다고 함서 그냥 젊은이들을 보내놓고 나서 생각한께, 조까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여그까장 애쓰고 찾아온 젊은 사람들을 너무 매정하게 쫓아 부렀능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여간 후회스럽기도 하든 참이었는디 말이여‥‥ 그랬드마는 이렇게 또 찾아와 주었구마이.
  어쩠거나 고맙소이. 남의 아픈 속을 귀담아 들어 볼란다고 찾아와 주는 성의가 얼마나 갸륵허냔 말이시. 솔직이, 그 동안 팔 년이 넘도록 이렇게 나한테까진 직접 찾아와 가꼬 우리 집 사정 얘기를 들어 볼란다고 졸라 보기라도 했던 사람은 시방까장 아무도 없었응께.
  아이고오 그런 말은 허도 마시오. 지금 이때 까장 누구한티 하소연 한번 팔자타령 한번 마음놓고 못해보고,그저 가슴 속에다 돌덩이 맨키로 꾹꾹 묻어둔 채로 죽은디끼 지내온 이 내 속사정을 누가 다 알아줄랍디까이.참말로 그 생각만 허면 억장이 무너지고 분통이 터질라 고해서 돌아보기조차 싫소만은‥‥흐유우‥‥
  왜 진즉 떳떳하게 밝히지 않았느냐고 그랬소, 시방? 꼭 시청에서 그렇게 물어보든 사람하고 똑 같은 소리를 하요이. 참, 젊은이들도 그 피해자 신고서를 보고 찾아온 것이겄제? 맞어라우. 내가 그 신고서를 냈제‥‥ 이쪽 학생이 금방 얘기한 희생이네 투사네 하는 소리도 그렇고, 거 뭣이냐, 항쟁이니 민중이 어떻고 허는 어려운 문구 같은 건 애 당초 무신 뜻인지도 나는 잘 오르는 멍텅구리 여편네여. 초등 학교 졸업장배끼 없어서 뽀도시 국산 글이나 눈으로 대충 가려낼 줄 아는 정도니깨 말이여.
  그런디 어쪘거나, 학생도 역시 우리 같은 사람들 사정을 잘은 모르니께 그런 소리를 하는 것 같소이. 털어놓고 말이제만, 지난 칠 팔년 동안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조차 나도 잘 모르겠소. 온 세상이 모조리 한 통속으로 짜고, 고때 죽거나 다친 사람들은 무조건 폭도니 불량배들이니 불순분자니 함스로 손가락질을 하고, 영락없이 꼭 무신 흉악 무도한 살인 강도 전과자들이라 되는 것 모냥으로 살기 등등하게 몰아쳐 대는 판국에, 우리같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쑥븐쟁이 같은 신세들 이사 무신 힘을 믿고 감히 내놓고 나설 용기를 낼 수가 있었겄소. 입장을 바꿔놓고 따져 보시우만, 그때 세상이 오죽이나 흉악하고 지독스러웠어 야지 말이제‥‥
  옛 말에도 목구녕이 포도청이라고, 어쩌꺼시요, 우리 순옥이 아부지사 어차피 그 꼴로 허망하게 억지 빙신이 되가꼬 결국에는 죽어 불고 말았제 마는, 그래도 남아있는 식구들 이사 우선은 살고 봐야제.
  나 같은 무식한 여편네라고 어찌 감정도 눈물도 없었겠소. 생각대로 한다면 야 당장에라도 길거리로 달려나가서 내 남편 그 지경으로 만든 놈들을 찾아 내가꼬 칵 찔러 쥑이든지, 정 안되면 청와대 앞에 가서 그 원수놈들을 당장 찾아내라고 목구녕에서 피가래 터지도록 악이라도 질러보고 싶은 생각이 벌떡벌떡 치솟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제이.
  하제마는, 눈앞에 죄 없는 새끼들 셋이 오굴오굴 커나가는 걸 보면, 아이고, 만약에 나조차 없어져 불면 저놈들은 당장 어찌 될 것인고, 이 집 저 집 문전에서 밥 얻어 묵는 거지꼴이 될 것이 뻔한디‥‥하는 생각이 든께로, 가슴속에서는 요런 불댕이 같은 것이 불꺽불꺽 함시로도, 그저 하루하루 목구녕에 집어넣을 끼니감 찾아 댕기는 일에만 빠져서 허덕허덕 살아 올 도리 베끼는 없드란말이여.
  하기사, 그래도 그 끔찍한 난리통에 죄 없이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 중에는 서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무신 유가족 단체를 만들어 가꼬 당당하게 데모도 하고, 또 높은 놈들 광주 오는 길목을 지켰다가 속 씨원하게 대판 싸움도 하고, 그러다가 잡혀가서 얻어맞고 쫓겨 댕기기까지 함스로도 줄기차게 싸움을 했었다는 얘기를 겨우 얼마전에사 처음 듣기는 했었제이.
  그라제마는, 나 같은 소식 깜깜한 여편네는 그런 것도 당최 몰랐고, 또 설사 알았었다고 치더래도 무어 배운 것 없고 말 주변머리도 없어 놓으니‥‥ 그래도 뒤늦게사 조까 후회도 되등만. 설사 못나게 그 사람들 뒤 만 졸졸 따라 댕기기만 하드래도, 나도 같이 나서서 팔뚝 걷어붙이고, 하고자픈 소리라도 속 씨원 허니 퍼붓어 보기라도 했었드라면 이렇게 생 울화병이 심해지지는 안해졌을 것인디 싶으기도 하고‥‥
  그나저나 차암, 세상도 많이 변했능갑서. 변해부러도 아조 회한하고도 별스럽게 변해부렀당께. 그리 보면 세상도 어쨌그나 오래 살고 볼 일이여. 안 그런가 학생?  우선 나부터도 인자는 '나도 오일팔 유가족이오'하고 시청에 신고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학생들도 시방 이렇게 나같은 여편네까장 만나볼란다고 두 번씩이나 찾아오지 않았능갑네이.
  진짜 기가 맥혀서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도 남을 일은 따로 있제이. 정치한다는 위인들이 요새 뻔뻔하게도 하고 나서는 소리를 조까 들어봐. 우리를 요모양 요 끌로 만든것들이 대체 누구였간디, 인자는 즈그들이 되레 명예회복이 어떻고 진상규명이 또 어떻고 떠들어 댐스로, 꼭 즈그가 무신 천하에 없는 은혜나 베풀어 줄라는 모양으로 낯가죽 두겁게 나발거리고들 있잖는 개비여.
  그 미친 공수부댄가 뭔가를 길바닥에다가 왁자하니 떼거리로 풀어다 놓고서는, 아무 죄없이 엠헌 사람들을 꼭 무신 복날 염천에 개 뛰디레 잡디끼 찔러 쥑이고 쏴 죽이고 패 적이고 억지 생빙신들을 맹글어 놓고 한 작자들이 시방 와서는 밑구녕도 안 닦은 채로 눈앞에서 하고 있는 짓거리들을 보랑께 . 참말이 제, 분하고 원통해서 열불나는 것으로 치자면, 복창이 다 튀어나오고 눈알에 핏발이 터질라고 해서 미쳐 불겄단 말이여.
  아, 안 그런가? 적반하장도 유분수고, 뻔뻔하고 능글맞기가 돼야지 발바닥 보듬도 더 한 물건들이여 . 이거야 꼭, 한밤중에 느닷없이 식칼들고 안방으로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살인하고 달아났던 떼강도들이, 이튿날 벌건 대낮에 찾아와 설랑은 바로 즈그들 손으로 그 살인강도를 잡아 줄란다고, 그런께 인자는 즈그들만 믿고 마음 편히 묵고 기대리시라고. 아 영락없이 그렇게 얼리고 달래고 주물름서, 산사람 까장 또 한번 욕을 뵈일라는 꼴이 아니고 멋인가이 참말로 송구 망칙스럽고 날벼락을 맞아도 쌀 짓거리 들이당게.
  뻔뻔하고 날도둑놈 같기로는 어디 그쪽 뿐이간디? 신문이랑 테레비 같은디서 하고 있는 짓거리들을 요새와서 두 눈뜨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라치면, 당최 같잖고 든적스럽기는 되리 한 술 더 뜨는 거 같드라고. 나도 아무리 무식하고 못나기는 했제. 안 그래도 신문도 대충은 짐작해서 읽을 줄도 알고, 또 이것도 장사라고 날마다 하루 온종일 이렇게 아파트 단지 길목에 벌려놓고 앉아 있응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한 마디씩 던져주고 가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주워 들은 것도 있어놔서, 아하 요즘 세상 판이 어제께 돌아가는 갑구나, 하는 눈치쯤을 쪼끔씩 감이 잽 힐 것도 같아서 허는 말이여.
  아, 광주서 그 난리 터진 때가 언제등가. 팔 년 아니 참 그새 구 년째가 다 되가는구마이. 세월이 그리 유수 같이 덧없단 말이시‥‥ 차암‥‥ 십 년이면 뭣도 변한다고들 해 쌌제만, 그 긴 세월동안 꽈악 입 봉하고 귓구녕 쳐막고 자빠졌다가- 아니제, 차라리 그러고나 있었음사 고맙기나 하제이- 인자사 무신 낯바닥으로 저리 떠들고 나서는가 모르겠어. 정치하는 작자들 밑구녕에 구데기 모냥 들러 불어서, 시키는 대로 덩달아서 북 반주에 장구 장단 까장 쿵덕쿵덕 넣어 감시로 광주 사람들을 싸그리 폭도니 불량배니 양아치니 하고 한꺼번에 몰아 붙이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첩입네 빨갱입네 불순분잡네 하고 생판 억지 누명을 덮어씌우니라고, 즈그들 쪽에서 먼저 자청하고 나서서 바로 엊그제 까장 손뼉 치고 나발 불고 줄창나게 뻔적거리던 것들이 바로 신문이랑 테레비 방송 아니었든 갑네.
  그런디, 작년부턴가 좀 보아. 오메에, 우리 한국 땅에 언제부터 그렇게 용감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살고 있었드라요? 별안간 낯가죽 빨딱 뒤집어 쓰고는, 너도나도 천하에 없는 애국자요 내노라 하는 양심파 정의파들이기라도 하는 것 맨키로, 오뉴월에 수캐 뭣 나오디까 울뚝불뚝 불거져 나와가꼬, 남 부끄런지도 몰르고 개발새발 떠들어 대고 날쳐대는 꼬라지들 조까 보시요
  참, 이왕지사 말이 나왔응께 한번 물어 봅시다이 .그 많던 신문사들이랑 방송국들도 지난번에 전두환이 쨋기날 때 함께 몽땅 문 닫고 없어져 불고, 전에 없든 신문이랑 방송국들이 그 참에 새로 생겨 부렀다요? 아니먼, 이전에 그런디에 취직해서 월급 받고, 나댕기든 사람들은 몽땅 쫓겨 나불고, 작년부터 새로 직원들 까장 전부 다시 뽑았다 등가요?
  ... 맞어. 그러지도 안했겄제.  그러먼, 거 참말 요상한 일이 아니냐 그 말이여. 벨안간 작년부터 테레비 신문을 물론이고 사방 어디에서나 그렇게 대단한 애국자들이랑 용감하고 양심 똑바르고 말 잘하는 사람들이 대관절 어쩌 그리 한꺼번에 떼거리로 많이들 생져나 부렀으까라이. 바로 엊그제 까장만 해도 엿묵고 체해분 비버리들 맨키로 끽소리 한번 안하고 있던 그 많은 인물들이, 세상이 쬐끔 어쩐갑다 하니께, 느닷없이 너 나 안 가리고 우루루 불거져 나와가꼬는, 무신 광주사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느니, 민주 투사들의 혼을 어째야 한다느니 해 쌈스로 왈가불가 짖어 쌌고 이리저리 촐랑촐랑 달려 댕기고 있지 않느냐니께. 참말이제 거, 그 사람들 재주 한번 기맥히게 대단하고 용한 사람들인 갑구나 허는 생각배끼는 안드요야. 허기사, 세상 인심이란 것이 본디가 세치 혓바닥 맨키로 간사하고 비겁한 것이라서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겄소만 작년 오월 십 팔 일엔가 망월동 묘지에 가보고 나서도, 참 세상이 많이 변하기는 했능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또 듭디다이‥‥ 아니라우. 오래 전부터 댕겼던 것은 아니제. 우리 순옥이 아부지 죽은 지가 올해로 꼭 오 년째 된께, 그 뒤부터는 해마다 나 혼자서라도 빠지지 않고 망월동엔  꼭꼭 댕겨오곤 했제이. 순옥이 아부지 묘는 담양에 모셨제마는, 그래도 웬지 오 일팔 때가 돌아오면 거기 공원묘지에는 한번 가보고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고 그래서‥‥가봐야뭐 달리 할 일이 있간디.  그냥 아무 산소 앞에서나 비석 붙들고 한참씩 울다가 오곤 그랬제. 얼굴도 모르제만, 여그 누워있는 사람도 우리 순옥이 아부지랑 그때같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 인자는 저 세상에 가서도 내 남편이랑 함께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래서‥‥ 아이구. 또 주책없이 눈물이 나올라고 그러네이 ‥‥
  재작년까지만 해도, 그 무렵에는 묘지를 찾아와보는 사람들이 벨로 그리 많지가 않았던 것 같어 나는 대개점심 묵고 나서야 느즈막하게 찾아가곤 했었응께. 이 동네가 온통 아파트 단지라 놔서 오전 잠깐하고 해질 참에만 손님들이 조까 있제, 한낮에는 비교적 찾는 사람이 뜸하거든.  리어카를 이 옆에 아줌씨한테 조까 대신 봐달라고 부탁해 놓고, 혼자 시내버스로 휭 갔다가 오고 그랬제이
  그런디 재작년까지는 내가 거기 도착해 보면 사람들이 거의 안보이등만. 아침에 기념식인가 추모식인가 할 때는 사람들이 그래도 왜 많이들 왔다 가기는 한다는디, 그 뒤로는 몇 사람씩, 그것도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것 같드라고. 투구 쓴 경찰들이 야 항상 적잖이 지키고 서 있고.
  그런디, 세상에 작년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도 많이 몰려 왔드랑께. 오후 서너시 경까지도 어뜨케나 사람들이 막 밀어 닥치는디, 발을 옮길 틈이 없어서, 다른 해 같으면 이십 분 배끼 안걸리는 큰길에서 공원묘지까지 가는 길을 빠져나가니라고 자그마치 한 시간도 넘게 걸렸응께로‥‥ 아이고, 모여도 모여도 그렇게 많이들 몰려 부렀으까이. 광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대전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까지 학교 버스랑 관광 버스가장 대절해 가꼬 속속 밀려오는디, 오메에, 좁은 길이 미어 터질 것 같드랑께 그러네.
  거기다가 길목마다 온갖 포장마차들이랑 사이다 콜라 장수들, 아이스크림 장수, 꽃장수, 떡장수, 하다못해 담배 따먹기 하는 야바위 장수들까지 수십 수백 명씩 떼거리로 모여들어가꼬 복작거리고 있는디, 참말로 어찌된 판국인고 싶드만.
  묘지로 찾아가고 또 돌아오고 하는 그 엄청난 사람들을 보고 있을랑께, 아이고, 인자 광주사람들도 폭도니 양아치니 하는 억울한 누명을 벗게 될라 능갑다, 인자는  그 억울하고 분 끓어서 한이 맺힌 속을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 차도 알아 줄라는 갑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새삼 서럽고 원통해서 목이 칵 메이드란께. 그럼 선도 솔직히 또 맘 한구석으로는 세상 사람들이 야속하고 미운 생각도 안드는 것이 아니더라고이. 무신 말이냐 하면, 이날 이때가장 우리가 그렇게 울고불고 믿어 주라고, 이 원수를 조까 갚어 주라고 그렇게 했어도, 지금껏 눈 한번 따뜻하게 돌려 봐주지도 않다가, 세상이 어떻게 조까 풀려 간다드라 허니께사 어디서 이렇게들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고 싶은, 그런 야박스런 생각도 쪼끔은 들어서 말이여 필시 우리 광주사람들 중엔 그런 생각 해 본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여.
  물론 여 그 사는 사람들 이사 직접 그 끔찍한 난리를 당하고 도 한꺼번에 폭도라고 억지 누명을 똑같이 뒤 집어 샜던 처지이니께 두 말할 거야 없제만, 그 당시에 다른디서 있었던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서 그 동안 그 기맥힌 속사정을 제대로 알아주고 믿어준 사람들이 대관절 얼마나 되었겄능가 말이시. 오죽하면, 그렇게 못 믿겠거든 차라리 당신네들도 직접 그 지경을 당해 보라고, 그래서 제 자식 제 남편이 죽어봐o~라 그때사 우리네 속을 알아주꺼시라고, 그렇게 악에 바친 소리 까장 할 맘이 들고는 했었으까이 ,
  o!, 얼마 전에사 테레비에 나온 것보고 나서는 그제서 차 참말로 그때 그 소문들이 맞기는 맞았든갑다 했다는 사람들이 그리 많았담시로? 나도 여러 해 전에 그런 일을 당했던 일이 있었제. 우리 먼 친척 중에 한 사람이 서울서 돈 조까 벌어가꼬 서울서 사는디, 우리 친정오라 장례식 패 서울 갔다간 우연히 만나가꼬. 내가 그때 얘기를 해 주었등만 당최 거짓말 같아서 못 믿겠다는 투여. 참다 참다 안되겄길래 끝내는 이년 저년하고 욕까지 퍼붓고 시끄럽게 싸웠는디, 아 그때도 나를 보고는 아이구 저런 독한 악물들이니 광주선 그 난리가 안 벌어졌었느냐고 하대. 내 그 뒤로는 아예 그런 물건들하고는 상종조차 안 하기로 했제만, 두고 두고 생각할수록 얼매나 속이 뒤집어지고 이가 갈리는지 몰라.
  하기사 그런 사람들이사 그 동안 맨날 테레비다 신문이 다에서 말도 안 되는 억지 거짓말만 곧이곧대로 듣고 보고 믿고 지내와 놔서 그럴 수 배끼 없었겠다 싶기도 하제마는, 어쨌거나 그런 사람들도 우리로서야 야속하고 정나미 떨어지기는 매 일반이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문횐가 원인가 한다고 날이면 날마다 테레비서 난리소동을 쳐 댔제마는, 아이고, 나는 눈에 열불이 나서 그것 차마 못디려다보고 있겄등만. 그 놈들도 사람들이여? 저 생판 거짓말들을 저리도 뻔뻔하게 해 댈 수가 있을까이. 시방까장도 낮바닥 한번 안 붉히고 저렇게 오리발을 내미는 저 인간들도 집에 돌아가던 새끼들이랑 각시가 있고 부모 형제가 있으까, 저 인간들도 대관절 우리 나라 사람들인가 싶어지면서, 아이구, 손발이 다 벌벌 떨리고 테레비를 당장에 칵 띠디레 부솨 뿌리고만 싶드랑께. 이러다가는 공연스레 또 화병이 도지겠다 싶어서 꺼불고는 다시는 안보기로 했었당께.
  그런디 요새도 여전히 고개를 짜뚱짜뚱 함시로 그놈들 하는 소리에만 귀가 솔긋해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든디, 그거이 진짜라면 참말로 이놈의 나라가 어찌될라는가 모르겄어 . 보나마나 그런 사람들일수록 먹 고 살 걱정없게 배부르고 팔자가 늘어져 가꼬, 어쩌다가 즈그 자식들이 땅바닥에 넘어져서 무르팍만 조까 까자도 그냥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 것 맨키로 벌벌 떨고 생 야단법석을 떨람스로도, 정작 즈그 코밑에 이웃집서 사람이 죽어가도 곁눈질 한번 안해 줄, 독하고 매정시런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 여. 그런저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다가보면, 참말이제, 이놈의 세상이 어째서 갈수록 이리도제 목구녕만 채 울라고 눈구녕을 뒤집어 쓰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날이 갈수록 지독스럽고 인정머리라곤 없어져 가는 것인가 싶어지고‥‥ 그래서 가끔은 등골이다 써늘해짐서, 왼통 이눔의 세상이 무시무시하고 끔찍스럽게만 여겨지고 그런 당께이.
  내 생각에는 그래. 이눔의 세상이 잘 될라먼, 맨 몬치 정치하는 사람들부터 사그리 책임을 지고 물러나든지 아니먼 머리 속을 퐁퐁으로 쪽쪽 씻어내서, 거 멋이냐, 암도 비우고 골까지 비우든지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겄제만, 또 돈 있고 배운 사람들도 생각머리들을 확 바꿔 불고 첨부터 다시 시작할 각오를 해야 돼, 우리 국민들도 그거야 다 마찬가지겄제. 너나 없이 참말로 속 조까 차렸으면 좋겠어. 으흐흐 나? 아이고, 실은 나부터 속아지를 차려야쓰제이. 진짜여. 으흐훈.
  으마, 내가 시방 학생들 앞에서 이러고 있을랑께, 꼭 뭣 앞에서 주름잡고 있는 격이구마이. 하제만, 나가 이래뵈도 여그 근처 아줌씨들 가운데서는 변호사란 소리까장듣는 사람이여, 이왕 떠들어분 것인께 몇마디 덕 해 볼랑구마이.
  아, 그런디 이 것 조까 보더라고이. 광주사태, 웅? 그래, 참, 광주 항쟁이 팔 구 년이 다 지나고 난 시방 이 순간에 와써 까장도, 누구 하나 그때 그 끔쩍하고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 자기 때문이었노라고, 그런께 자기들이 그 책임을 지고 벌도 달게 받을란다고, 아, 그렇게 나서는 사람이 대관절 이눔의 세상에 어디 단 하나라도 있냐 그 말이 여어.
  죄를 직접 꾸미고 저지른 놈들이사, 그러다가는 어차피 즈그들 목에다가 밧줄 걸게 될까봐서 그런 콧구멍에 씨알도 안 맥히는 짓거리들을 한다고 치드라고이. 또 어차피 그만한 염치나 용기가 있는 작자들이었으면 팔년 전에 그런 미친 짓거리도 안 했을 것일 터이고‥‥
  그런디, 그것들 밑구녕에 붙어서 쉬파리맨키로 구들구들 허던 사람들도 그렇고, 신문이다 방송이다 하는 사람들, 또 글께나 배워가꼬 펜대 굴림스로 넥타이 매고 비까번쩍대든 온갖벼라별 사람들도 맡고 많제마는, 그때 자기가 어떻게 무얼 잘못 했었고, 그러니께 자기가 질 만큼씩은 책 임 을 질란다고, 아, 그렇게 말로만이 라고 솔직히 털어 놓고 나서서 머리 조아리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고, 그저 잘못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다 다른 사람들 때문이었노라고 삿대질만 함서 떠 넘길라고만 하고 있잖능갑네. 되레 죄짓고 벌받아 마땅할 사람들일수록, 세상이 조까 어쩐 갑다 싶은께 그런지 어쩐지, 너도나도 잽싸게 낯가죽 뒤집어쓰고 나와서, 오뉴월 논바닥에 깨구락지 튀어 오르대끼 저마다, 나도 애국자요 나도 민주투사요 내가 진짜 정의파요, 하고 깨골깨골 폴딱폴딱뛰어 댕기고 있으니, 참말로 이렇게 뻔뻔시럽고 양심 머리없는 사람들만 늘어가다가는 이눔의 세상 꼬라지가 어찌께 돼 갈라능가, 나 같은 여편네 소견으로는 당최 하나도 모르겠어.
  으응, 오일팔 때 이야기? 그런께 우리 남편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어부렀능가 하는 얘기를 들어야 쓰겠다 그 말이제이? 흐이구우_ 그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쓸란지 모르겄구마이. 꺼내다가 보면 오늘밤이 다 새도록 해도 차마 다 못할 것인디‥‥
  우리 순옥이 아부지는 택시를 몰았었제이. 나랑 결혼해가꼬 이삼년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도 봤는디, 맨날 뼈빠지게 일해 봐야 배고프고 헐벗기는 항시 마찬가지여서, 어느 날 짐 싸갖고 광주로 무턱대고 올라와 부렀어.  그이가 군대 있을 때 수송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디, 그 경험으로 택시를 물기 시작했던 거여‥‥ 택시 기사란 직업이 워낙 그런 것이라, 밤낮 없이 달려나가 온종일을 이리저리 궁글어 댕기다가 보면 밥도 제때 못 묵고 잠도 제때 못 자고, 그래서 늘 상 소화불량이다 신경통이다 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제‥‥ 그래도 그 바쁜 중에도 집에 잠깐 들러서는 우리 아이들을 한번씩 안아서 보듬어 보고는 또 횡허니 달려나가고 그랬는디 ‥‥ 좋은 양반이었제. 무뚝뚝하고 퉁방울 맨키로 멋대가리는 별로 없었제만. 집에 가져오는 돈이라야 쥐꼬리에 묻은 쥐똥만큼도 못했어도, 그걸 조금씩 모아서 언젠가는 전세방도 큰 걸로 얻고 또 십 년 안엔 개인택시라도 사자고 제 법 꿈에 부풀기도 했었는디‥‥ 갔어. 가부렀단 말이여‥‥ 세상에, 무신 사고 나가로 그랬다거나 아니면 이녁 잘못으로 병이라도 들어서 죽었다면 야 차라리 원통허들 안하겄다고이 .
  오월 이십 일날인가, 그 택시부대 이야기 잘 알재라우? 맞어, 바로 그때 우리 순옥이 아부지도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 놈들 한티 잽혀 들어가가꼬 삼 개월인가 교도소 감옥살이를 했제‥
  그날 밤 나는 아무 상도 모르고 속 편하게도 집구석에서 새끼들이랑 함께 그 양반 들어오기 만 기 다리 고 있었제. 그런디 그날 밤이 지나고 새벽 까장도 안 돌아오는 거여. 전화 한 통도 없고 누구 하나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자다가 깨어났다가 하고만 있다가, 아침에사 근처에 사는 순옥이 아부지 아는 사람을 찾아가보았제. 같은 회사에서 택시 모는 사람인디, 그 양반도 어저께는 우리 집 아저씨 얼굴도 못 봤다여 그 전날 저녁 무렵에 금남로서 차량시위가 있었는디, 거기 참가한 기사들 수십 명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가꼬 군인들 한티 끌려갔다는 소리를 뒤늦게사 들었제. 회사에 찾아가 봐도 모른다고 그러고‥‥ 참말로 눈앞이 캄캄해짐서 아무 것도 안 보이드랑께.
  아그들 둘은 큰방 주인 한티 맡겨 놓고, 막내 만 등에 걸쳐 업고 집을 나섰제. 그러제만 어디 가서 어떻게 사람을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있어야제. 시내버스도 택시도안 보이고, 시민 수송차라고 해서 조그만 트럭이 가끔씩 댕기길래 그걸 타고 다녔제. 죽은 사람들 모아 놓았다는디 는 다 쫓아댕기니라고, 대학병원 이랑 적 십 자 병 원,그라고 상무관에 까장 안 가본디 없이 다 뒤지고 댕겼제. 오매에. 그때 까장 소문만 들었제, 참말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징하고 끔찍 맞게 죽고 다치고 했는지는 그제서야 처음 눈으로 보고 알았당께.  첨에는 무섭기도 하고 징하기도 해서 사지가 덜덜 떨리고 뱃속이 미싱 미싱해서 못 참겄등마는, 우리 집 양반 찾을 욕심에 나중에는 아무상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 댕김서 거적 대기도 들쳐보고 송장이 입고있는 옷도 빼보고 했제.
  한번은 도청에서 여기 저기 눈이 삘개 갖고 뒤져 댕기는판인디, 쬐그만 계집아들 둘이 그 험한 속에서 함께 손을 꼬옥 쥐고 서 있드란 말이여. 하나는 초등 학교 일학년 쯤이나 되어 보이 고 다른 놈은 그 보다 한 두 살 아래나 되겄든디 , 아마 둘이가 형제간인갑서. 오메  느그 같이 어린 것들이 이런 징한 지옥같은 딜서 뭘하고 있느냐고 내가 물었드니, 큰놈 하는 말이 송장 하나를 손으로 가리킴스로, 거기 누워있는 사람이 즈그 아부지라여. 칼에 찔렸는지 몽등이에 그랬는찌, 얼굴이랑 몸뚱이 전체가 온통 푸르죽죽하니 으깨지고 팅팅 부어 올라서 죽은 그 사람이 즈그 아부지라면서도, 그 아그들은 넋이 빠진 건지 아니면 아무 상을 몰라서 그런 건지, 그냥 두 눈만 띠룩띠룩 굴리고 서 있드랑께. 함께 왔던 즈그 엄니는 어른들을 불러 올란다고 쫓아 나갔든 모양이여‥‥ 시상에, 그 철없는 것들을 볼랑께 어찌나 불쌍하든지, 나도 울고 옆에 줄서서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도 모다 그 어린것들을 부등켜  안고 한바탕 통곡을 하고 말았었당께‥‥


  그렇게 여러 날을 영락없이 미친년 꼴을 하고서 온 시내를 뒤지고 댕겼는디,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들어갔더니 주인 아줌씨가 그러데. .어떤 남자가 전화를 했는디, 상무댄가 어디에 잡혀 들어가 있응께 그리 알라고 그러드라여. 그러고 나서 한달 후 엔가 교도소에서 연락이 왔어. 하제만 면회 한번도 못했어. 이틀 걸려 면회소로 쫓아가서 손발이 다 닳도록 통사정을 해도, 폭도로 조사중인 사람은 면회가 안된다여. 폭도라니? 처음엔 그거이 무신 소린지도 몰랐제. 뒤로 알고 본께로, 그것이 엠헌 사람패고 죽이고 허는 흥악무도한 깡패나 강도같은 놈들을그리 부른디는디, 아이고메에, 그거이 대관절 말이여 개 콧구멍이여? 난리 일으켜서 무단한 사람들을 개 돼지맨키로 때려 쥑이고 찔러 쥑이고 쏴죽인 놈들이 거꾸로 즈그 입으로 누구한테 폭도라여? 참말로 복창이 터져서 혓바닥 샘키고 숨맥혀 죽을 일이 아닌가 그말이여‥‥‥
  그래도 다시 생각하면 우리야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구나 싶기도 하등만. 그 난리통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고 또 송장조차 못 찾은 사람들한티 비하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허, 기 맥 힐 일이 여.
  그렇게 석 달이 지나고 나니께 뜬금없이 석방되어 나온다는 소식이 왔드라고이. 그런디‥‥그런디‥‥ 세상에, 막상 풀려 나온 사람을 딱 보니께, 아이고, 이거이 무신 날벼락이여 첫눈에 그냥 눈앞이 깜깜하등만 정상사람이 아니란 걸 담박에 알겄드란 말이시. 왜 안그러겄는가이. 십 년넘게 한 솥에서 밥 묵고 한 이불 속에서 살붙이고 살아온 사람인디 말이여‥‥ 얼굴은 아예 된 창호지 맨키로 핼쑥한디, 몇달 만에 만나는 식구들을 앞에 두고도 버버리 맨키로 당최 말 한마디 없는 거여. 집에 와서도 우아랫 입술을 앙당 물고는, 대체 무신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언제 고 벽 바람 쪽만 뚫어 지라고 들여다보기 만 하는 거 여 .눈빛은 그냥 새끼 뺏겨분 개 맨키로 번들번들해 가꼬‥‥오매, 저 사람이 내 남편이란 말인가.  교도소에서 사람알맹이는 빼버리고 껍데기만 내주었구나· 참말로 그때심정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겄소이‥‥ 그런 즈그 아부지가 무섭고 이상 하담서 아그들 조차 곁에 가까이 가기를 꺼려하고‥‥
  그러다가 꼭 한마디, 머리를 다쳤다, 그러 길래 내가 살펴 보았등마는, 뒤쪽 머리 거죽이 쭉 찢어져서 거의 스무발 가량이나 꿰맨 자국이 있드란 말이여. 뒤에사 알았제만, 그때 금남로서 차안에 있다가 끌려 나와가로 얼매나 험하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부렀등가 그냥 골통이 다 깨져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정신을 발딱 잃어 부렀다여. 그런디도 변변한 치료 한번 제대로 못 받고, 그길로 끌려가서 그 더운 삼복에 석 달이나 감옥생활을 했으니 오죽 챘겠어? 그 뒤로 어째 정신이 이상해지자 안되겠다 싶은께 슬그머니 석방을 해 주었등갑서.  아이고, 그때부터 내가 살아온 일은 차마 말하기 조차 싫네야 그래이 . 남편이랍시고 허새비 맨키로 그 지경을 하고 있어 노니 어쩔 것이여. 내가 대신 걷어붙이고 벌이를 나서야제. 말도 말어라우. 이 시퍼런 세상에 안 굶어 죽을라고 참 벼라별 일을 다 해 장음께. 야구르트 배달도하고 우유배달, 월부 책장수도 하고, 공판장 같은디서 지까심을 받어다가 양동 시장에 나가 팔기도 하고‥‥ 그러다가 재작년부터는 리어카 한대 사서 이렇게 여그 나와가꼬, 과일이랑 간단한 찬거리 같은 걸 늘어놓고 팔기 시작하고 있제이.
  우리 순옥이 아부지는 오 년 전엔가 돌아가셔 부렀고‥‥까닭 없이 어디를 그렇게 밤낮으로 나댕기는가 모르게, 혼자 중얼중얼 무신 소린지도 모를 소리를 해대기도 하고, 누구한텐 가 욕을 막 퍼붓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는 대성통곡을 하기도 함서 늘 상 이리저리 싸돌아 댕기기도 하등마는‥‥ 결국 어느 날 집을 나가서는 사홀 동안이나 돌아오지를 않는 거여.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사 시신을 목포로 가는 도로변에서 찾았제. 눈이 필펄펄 흐벅지게도 쏟아져 내리는 날인디, 길가 풀밭에 거적 대기로 덮어 놓았드라고. 세상에, 내가 딱 가서 본께로, 거적대기 밑으로 두다리만 삐죽이 나와 있는디, 어디서 신을 잊어 불고 돌아 댕겼든가 몰라도, 한쪽은 그냥 맨발이여, 양말도 없이, 그 추운 한 겨울에 당신이 어디를 갈라고‥‥ 대관절 어떤 세상을 찾어 갈라고 그 꼴을 하고 나선 길이었올꼬오‥‥그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져서 그냥 그 자리에 풀색 주저 앉아 불고 말었제이.
  몰라라우. 어째서 죽었는지, 편할라고 거그까지 혼자 걸어 나가다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 누가 어쩌께 알겠소? 거그 동네 사람들 말을 들어본께로, 웬 남자 하나가 그 전날 저녁에 광주 쪽에서 허정허정 걸어 내려오더라여.  차리고 있는 입성도 허술하고 영락없이 넋빠진 사람 맨키로 맥놓고 비칠비칠 걷는 폼이, 필시 술 취한 주정뱅이거나 정신이 총찮은 사람인 모양이다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았다여.
  그런디 그 동네 앞을 지나서 목포가는 쪽 도로를 따라 그렇게 느릿느릿 넋놓고 혼자 가던 사람이 아, 별안간 뭣에 놀랐는지 길에서 허둥지둥 내려오더니 논둑 새로 급히 숨드라여,  무신 일로 저러는고 싶어서 마을 사람들이 건네다 보고 있노라니, 마침 그 때 목포 쪽에서 군용 도라꾸 수 십대가 난데없이 열을 지어 올라오고 있더라여.
  자기들은 날이면 날마다 보는 게 군용차들인디, 그거이 뭣이 무섭다고 저러는고, 참 요상한 사람도 다 있구나.  그럼서 동네 사람들끼리 보고 웃었다여‥‥ 그런디 바로 그때 뜬금없는 일이 벌어지드라는 거여. 그 우왁스럽게 큰 트럭들이 머리 위로 아직도 슁슁 지나쳐 가고 있는 참인디, 아, 길 아래 논둑 새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사람이 어느 순간엔가 별안간 볼딱 일어서등마는 쿠아아아‥‥마구 고래고래 악을 내지름서 도망을 치드니, 그 옆 조그만 방죽으로 풍덩 뛰어 들어가드라여·. 그걸 보든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서 동네 남자들이 와가꼬 뽀도시 건져내기는 했는디, 올려놓고 본께 이미 숨이 갔드라여‥‥
  세상에나 만상에나, 아무리 허무하다 해도 원 그리도 허망하고 원통할 수가 있을라든가‥‥ 세상에, 아이고오‥‥그럴 게 건장허고 씽씽 하던 사람을 어쩌면 그 지경으로 맹글어 놓을 수가 있느냔 말이여. 시신을 찾어가로 오니게 시골에서 시부모들이랑 친척 어른네들이 연락을 받고 올라와서 기다리고 지시등만. 그런디 거기서 또 한바탕난리가 벌어졌제. 집 밖에서 객사한 송장인께 집안으로 들이면 안된다고 어른들이 집 바깥에다 내놓고 장사를 치러야 한다는 거여. 대번에 내가 그럴 수는 없담서 뒤집고 나섰제.  나도 모르게 어디서 그런 악이 복받쳐 올라왔는가 몰라.  시아부지한테 말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지내온 난디 말이여.  안되라우 제 아무리 법도가 어쩌고 이치간 언쩐다 드래도 우리 순옥이 아부지만은 내 법대로할라요.
  우리 순옥이 아부지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우. 힘없고 이름없고 죄없는 죄로, 아니 인정많고 천성 착한 죄 하나땜시 광주사태 때 물불 안 가리고 나섰다가 저 짐승같은 놈들한테 생병신이 되가꼬, 이날 이때 까장 산 송장으로 살아온 줄을 몰라서 그러시요? 발갱이다 폭도다 불량배다 억지 누명 뒤집어쓰고 시방까장 천대받고 살아온 것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눈구녕에 산불이 나는디, 죽어서 마지막 가는 날 가장도 이 추춘 겨울에 길바닥에다 눕혀 놓을란다고라우? 안되라우. 내 눈에 흙인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고 꼴 못 봐라우. 차라리 날 쥑이고 그렇게 하시란 말이요‥‥ 그렇게 내가 아조 포악뜰 부림서 시신을 질질 끌다시피 했제. 결국에는 집안 어른들이 포기를 하등마는.
  입관을 할라고 본께, 이미 팔다리가 꼿꼿하니 굳어서 펴지지를 않드라고이. 동태 맨키로 뻣뻣하게 굳은 몸뚱이를 어른들이 억지로 펴서 입관을 하는디·. 오매에, 그 우두둑 소리여어‥‥흐으으‥‥어쩌서 당신은 죽어서 까장 이런 참혹한 대접을 받아야 허요. 그놈들한테 잡혀가서 모진 고문 다 받고 정신 까장 못쓰게 되어븐 것도 모자라서 어쩌다가 눈을 감는 날 까장 이래야만 허요오‥‥ 그런 생각이 드니께, 참말로 하느님이고 부처님이고 다 원망스럽고 저주스럽기만 하드란 말이요‥‥
  그날 밤에 경찰서에서 부르르 찾아왔등만. 광주사태관련자라는 걸 뻔히 알고서 그렇게 득달같이 쫓아왔을 것이여. 그 위인 허는 소리 조까 들어봐. 당신 남편이 오래 전부터 알콜 중독자에다가 정신병자인 걸 환히 다안다. 그날도 술을 마시고 나가 싸돌아 댕기다가 실족해가꼬 방죽에 빠져 얼어죽은 걸로 판명이 났다,  그런께 공연히 광주사태 랑 무신 관련이 있는 것 맨키로 떠들고 댕기지 말어라. 그래야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라고 말이여.  그래서 내가 어쩠는 줄 아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나가꼬 그 놈 멱살을 움켜 잡았제, 원이여, 이놈. 알콜중독에 정신병자라고야? 오냐, 그렇게 만든 게 누구냐. 씽씽하고 건장한 사람을 잡아끌고 가서 뒤딜개 패고 고문해서 그 지경으로 만든 놈들이 바로 느그들 아니냐 말여. 느그 가죽인 거여.  전두환이 하고 느그들이 광주사람 쥑이고 내 남편도 쥑인 거란 말이여. 살려내라. 내 남편 옛날 모습 그대로, 눈꼽만치도 상한디 없이 그대로 살려내란 말이 여 ‥‥ 그렇게 악을 쓰고 몸부림 을 치 고‥‥ 참말로 그날은 내가 아조 미쳐부렀등갑서.
  ‥‥그 다음 이야기사 또 해서 뭘 하겠어. 말 안해도 알고 안 들어도 뻔히 다 알것인디 말이여', 흐이구우. 이놈의 짐승보다 못한 세상. 힘없고 죄없는 우리들 같은 사람들 목숨은 측간에 구더기만큼도 안 여겨주는 이 더러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죄일랑가. 하다못해 제삿날 상에 올릴라고 달구새끼 한 마리만 잡을라고 해도 소매 끝에 피 한 방울은 묻힐 수밖에 없는 법인디, 하물며 백주 대낮에 죄 없는 사람 생목숨들을 수백 수 천 명씨 척인 놈들은 시방 대명천지에 대통령도 해묵고 장관도 해묵고 국회의원도 해처 묵고 장군도 해처묵음서, 눈 하나 깜짝 없이 떵떵거림서 온갖 호사는 다 누리 고 있으니, 대 관절 이 것도 하늘 아래 사람 사는 세상이랄 수 있는 것이여 원인여. 안그러요, 젊은이?
  ‥‥하이고. 그러다가 전번에 청문회 뒤끝에 무신 보상인가를 해 준답시고, 사망자랑 행불자 부상자들한테 추가신고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제.  이래저래 망설이다가 늦게사 나가서 신고를 했구 마이. 그런디 요새 우리 동네사람들 중에는 신문에 난 걸보고는, 인자 순옥이 엄니네는 보상금 받으면 벼락부자 되겠다고 쑥덕이기도 허는 모양이드라요, 글씨. 아이고오, 세상에. 아무리 별 생각 없이 남말 허는 것이라고 하재마는, 세상에 무신 그런 징하고 끔찍스런 소리가 다 있다요. 세상에 어느 짐승보다 못한 년이 제 서방 재 자식 목숨 팔고 피 살점 팔아가꼬 보상금 받아서 잘 살고 호강 허겄다고 그걸 바란단 말이요.  세상에 내 신세를, 이 만신창이로 갈래갈래 찢어져내리 는 이 내 심 정 을 모르고요‥‥ 아아‥‥ 이내 애 애가안자아앙 터지고 녹아 내애리 이는 주울은‥‥ 모오르고오‥‥으흐흐‥‥ 부울 싸앙한 우우리 수우운오오기 아부지이이.  이 한을, 이 원통한 한을 참말로 어째사야 쓸랑가 모르겠소‥‥으흡. 오매. 내가 또 무신 주책이라냐이. 속 창아리 없이, 어째서 이러까이. 누가 보겄구마는‥‥ 아이고, 미안허요야. 그런께 내가 뭐 랍디여, 애초에. 무담씨 속만 뒤집어진께 그런 얘기는 안할란다고 안 그럽디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