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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80년대의 민중문학 / 운동성·실천성·역사성에 접근하여. 김준태(5월과 문학, 남풍, 1988. 8)

본문

80년대의 민중문학

-운동성 ·실천성 · 역사성에 접근하여-

김준태



1. 시작하는 말

  어느덧 80년대의 후반기, 그러니까 지금은 1987년, 우리는 지나온 연대와 더불어 앞으로 밀려오는 90년대를 목전에 두고, 그야말로 너무도 벅찬 그러나 기어이 생동성 있게 꿰뚫고 나아가야 할 역사적 변혁기에 놓여있다. 돌이켜 보면 80년대는 그 벽두부터 천둥과 번개가 이 땅을 울리고 내리쳤고, 그렇지만 대다수 민중들의 끝없는 자기생존투쟁, 흑은 올곧은 세상에로의 전진을 위한 부문적 ·집단적 몸부림을 크게 깊게 보여 주어왔다. 사회의 각 현장에서, 더러는 고독한 창작의 작업실에서, 그리고 셀 수 없이 끓어오르고 타오르는 삶과 죽음의 변주곡 속에서, 이 땅의 민중들은 참 목숨 ·참 세상 ·참 나라로 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은 으깨어지더라도 역사의 가는 길에 밑거름과 횃불이 되고자, 자신의 온몸을 북소리로 두드리었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을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총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핀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인 소리친다
허공을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조국의 화살이여 전사여 영령이여
                            - 고은 의 「화살」 전문

  고은 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80년대는 이렇듯 자기생존, 민중생존, 나아가 민족전체의 문제와 몸 비비며 출발한 것이다. 분단상황에 맞물려 어느새 후기 산업사회의 속성의 그것으로 나타나기 마련인 계층갈등에로까지 부글부글 끓어와 버린 80년대. 60년대 이후 끊임없이 전개된 민주화로 향한 열망과 투쟁에 이어,  예의 80년대는 사회의 도처에서 현장감 있는 행동과 목소리 그리고 이에 따르는 리와 문화적 시각이 그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럼 문학분야는 어떠한가. 적어도 민중문학 분야에서 보면, 우리는 70년대에 김지하와 양성우의 싸움을 상기할 수 있는데, 김지하는 '오적'과 '비어 '로,  양성우는 '겨울공화국' '노예수첩'으로 70년대의 유신체제와 맞부딪쳤고, 1974년 11월 18일엔 '문학인 1백1인 선언'의 발표와 함께 이름하여 "자유 실천문인협의회(약칭)"가 창립되어, '문학의 자유와 실천을 위하여'그 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70년대에 있어서 주로 민족 ·민족문학에 관심을 아끼지 않았던 문예지론, 『창작과 비평』, 『실천문학』, 『시인』등이 바로 그것이었고, 종합지론 『대화』와 『사상계 『씨의 소리』등이 아니었던가 한다. 
  80연초 광주민중항쟁과 때를 같이 하여 구속문인들은 훨씬 늘어났다. 고은 ·조태일 ·신경림 ·송기원 ·문병란 ·송기숙 ·채광석 등이 바로 그들이며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자실 의 멤버이다. 60, 70년대 이후 소위 운동권출신의, 흑은 교도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 중의 상당수도 문단에 얼굴을 내밀어, 민중문학의 입장에서 문학의 실천화를 죄하고 있는 터인데, 백진기 김태현 같은 소장파 평론가들은 '문학의 운동화'또는'운동의 문학 화'란 갈등 속에서 문학의 운동화란 측면을 강조한다.
  80년대 문학은 역시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인데, 그 몇 가닥 내용으론, 5월 항쟁문학, 분단극복 통일지향문학, 교사운동문학, 농촌현장문학, 노동현장문학이 그렇다. 이런 문학운동은 자연히 그 대중성의확보를 위해 방법상으로 노래시운동, 판화시운동, 마당 굿 운동, 장르확산운동, 그리고 운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손치더라도 나름대로 공로가 큰 서사문학의 전개 따위와 더불어 민중문학의 길을 넓히고 넓혀오고 있음은, 민족문학의 전도 양양한 앞날을 위하여서도 어쨌든 소중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2. 5월 항쟁문학

  80년 5월은 처절한 죽음이었다. 해방 이후 가장 처절한 죽음이요, 죽임이었다. 그러나 80년 5월은 그 죽음과 죽임의 싸움 속에서, 어쩌면 차라리 예술이었다. 항쟁 기간 동안에 광주시민들이 전개하였던 인간성의 극치, 민족성의 극치, 공동체정신의 극치, "여기 하나 되어 살고 있음"의 극치를 보여준 너무도 슬픈 예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왜 일어서야 하는가"를 보여준, 깨우침의 극치였다. 60년대 이후 산업사회 메커니즘의 물량주의에 눈 먼 이 땅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여기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준, 예컨대 80년 광주는 역사의 스승이었다. 역사를 향한 일체감 Einheit, 집단적 휴머니즘 흑은 민족생존 의식의 확인이었다. 시인 김정환의 시구처럼, 80년 5월은 "아픔의 기쁨 곁, 아니면 기쁨의 아픔 곁l 영원토록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탄생의 피 비린 눈부심"'그것이 아닌가.
  80년 5월 광주항쟁은 이 땅의 예술형식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70년대부터 김민기에 의해 작곡 ·작사되어 불려졌던 '투사의 노래' '아침이슬'따위의 노래들이 80년대까지 이어지는가 하더니, 80년대엔 더욱 그런 노래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넘치는 거리를 가득 채운 것이다. 이를테면 비장미가 감도는, 그러면서도 어디에 굴하지 않는 자세로 버티어 내는 그런 노래들이 대학가는 물론 기성 민주화운동권에 널리 퍼뜨려진 것이다. 이와 때를 맞추어 많은 시인들이 노래 시 짓기 운동을 벌였고 거기엔 당연히 민중적 애환과 진취성이 곁들인 가락이 담겨지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광주의 5월 정신을 보편화시킴에 다름 아니리라. 이 노래운동은 결국 교사운동·농촌운동 노동운동·분단극복 ·통일지향운동, 기타 모든 현장운동에 빠질 수 없는 '상쇠잡이'의 역할을 다 하면서, 운동력의 자체신장에도 보다 신명을 돋구었으니 말이다.
  광주란 지명이 한국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고 현 단계의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고유명사가 아닌 이미·한국사의 보통명사로 전환케 하는데는 앞서 말한 노래운동이 그것이었고, 마당굿 놀이 운동도 판화운동과 더불어 큰 몫을 해냈다. 넋풀이 시킴 풀이 흔 풀이·살풀이 따위로 명명되는 전통무속성에 다 비판적 미학과 운동성을 가미한 마당굿 놀이는 80년대의 한국 민족 극의 혹은 민족 굿의 한 전형을 보여줄 만큼 자리를 잡고 있음이 사실이다. 시와 노래와 그림과 글씨와 행동 성을 한꺼번에 불러 들여 뒤섞은 듯한 마당굿 놀이는, 드디어는 문학의 폭을 그만큼 넓혀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대중성에로의 길잡이를 해준 셈이다.
  80년 5월은 여기에다 또, 판화 시란 장르를 전격적으로 출범시키는데 일 익을 담당해오고 있는 터이다. 광주의 5월시동인들이 시도한 '판화와 시'의 만남은 이윽고 판화 시란 예술 장르를 출현시켜, 그 시각적 효과를 충격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는데, 이런 판화시운동은 어느덧 전국으로 확산되어, 민 주화운동의 그 어떤 부문에 있어서도 빠짐없이 역할기능을 발휘한다. 판화시운동은 그리하여 귀족적이고 정태적인 보수주의 미술계에도 일격을 가하여, 민중미술의 당위성을 이 땅 위에 보편화시켜 준 바가 많다.
  요컨대 5월 항쟁문학은 내용뿐만이 아니라 형식면에 있어서 그렇듯 혁명 성을 획득한 것인데, 그것은 이제 문학이란 그 독자성을 유지하는 보수적인 미덕의 차원을 훨씬 뛰어 넘어,다른 예술장르와도 섞어지며 몸 비비고 상호 보완해가면서 시대적 민족적 연대의식을 확보하자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80년 광주5월 항쟁은, 노래운동·판화시운동·마당굿 운동 속으로, 지금까지 움츠려있던 문학의 협소 성을 깊숙이 그리고 넓게 끌어낸 것이다. 문병란과 이영진 시인이 펴낸 엔쏠로지 『누가 그대 큰 이름 지우랴』가 그것을 증명이나 하고 있듯이,' 5월 광주는 오늘도 그 계속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과연 이 엔쏠로지에 참여한 (필자가 알기론 많은 시인들의 작품들이, 지면 관계인지 많이 빠져있다) 시인들의 노래가 5월광주의 아픔과 일어섬을 5월 한국의 아픔과 일어섬으로 일치시키는1데 게을리 하지 않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3. 분단극복 · 통일지향문학

  분단의 산물을 보자. 우리 사회에 야기되어있는 모든 경제악·정치악·문화악·사회악은 바로 분단의 산물인 경우가 태반이다. 바른 경제, 바른 정치, 바른 문화, 바른 사회로 가기 위한 우리들의 발목을 뒤틀어 잡고 있는 것이 바로 분단이 아니고 그 무엇일까. 이 땅의 모든 뜻을 저버린 분단주의, 분단의 악영향은 80년대만 놓고 보더라도 5월광주가 그것이 아니었던가. 참된 문화, 참된 산업, 참된 공업화, 참된 농촌, 참된 세상을 저버리게 하는 분단이란 철조망과 독가스는 언제나 이 민족의 숨통을 조이고 두 눈과 가슴을 답답하고 흐리게 한다.
  그래서 분단 이후 한국문학은 정말 제 모습이 제 모습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작가나 시인들의 머리 속은 자유로운 창작정신이 자리잡기도 전에, 벌써 분단심리, 냉전위기, 너무도 문약한 소시민의식이 가득 들어차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60년대 4 · 19를 배운 시인 ·작가들은 80년대에도 그냥 주저앉지만 은 않는다. 분단의 위기를 역사적으로, 사치경제사 혹은 문화 시적으로 과학적으로 인식해 들어가면서, 조금씩 그리고 조심스럽고도 당연한 자세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문학의 길을 모색한다. '민족'이란 말이,'통일'이란 말이 한때는 이 땅에서 얼마나 금기시 불온시 되어 왔던가를 상기시켜볼 때, 앞으로 우리의 민족문학이 헤쳐나가야 할 길은 그렇게 평탄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역시 민중의 참 세상, 민족통일의 참 세상을 위한 시인 ·작가들의 책무는 그래서 더욱 값진 것이며 민족의 에스프리를 찾아 구현하는데 앞장설 수  밖에 없으리라. 통일을 열망하는 일련의 줄기찬 노력으로서는, 문익환씨와 백기완씨의 시들이 아무래도 돋보인다. 그들의 통일시가 오늘날 우리에게 감동을 3게 줌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통일을 향한 그 소박성(꾸밈없음)과 단순성의 미학에 힘입고 있음에 다름 아니며 또한 그들의 실천적 행동이 뒷받침이 되어 쓰여진 시인지라 그렇다. 소설문학 분야에선 소재 때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분단소설'이랄까 '6 · 25소설'이 80년대에 많이 쓰여졌다. 50년대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를 출발로 하여 쓰여진 전쟁상황소설은 60년대 최인훈의 『광장A, 70년대 이청준의 『소문의 벽』, 황석영의 『한씨연대기』를 거쳐서 80년대엔 이문열·조정래 ·송기숙·문순태 ·김원일 등의 작업이 부지런함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과학적 접근 내지는 작가의 용기와는 멀리, 분단문제를 거의가 가족 사나 개인사로 처리해버리는 무책임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적어도 한 작가가 분단문제를 소설화 할 경우에는, (멜로드라마 적인 소설화 할 경우에) 멜로드라마 적인
상업주의에 편승해서는 아니 되리라. 어쨌든 시인 ·작가들에겐, 이 분단문제야말로 항시 문학작업의 상위개념에 넣어 두고 진지하게 엄숙하게 달 겨 붙어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진정한 민중문학도 통일지향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함이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다.

4. 교육운동문학

  80년대의 민중문학 분야에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사들의 교육민주화를 위한 운동이다. 일찌기 식민지 교육풍토에 길들여진 이 땅의 교육계에, 그리고 사회의 각 삶의 현장에, 교사들은 참다운 교사의 길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교육의 민주화를 부르짖은 것이다. 야간학습철폐, 교육법시정, 보충수업폐지, 여교사의 대우개선 등을 비 롯, 경쟁심리조성과 입시 지옥의 터널이 돼버린 반민족적 반민주적 교육풍토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그야말로 교육현장의 비리를 유인물로 때로는 수많은 시와 수기, 소설로 폭로한다. U'년 5월 10일'교육민주화선언'파동과 85년도에 간행된 『민중교육』 지 사건은 이 땅의 30만 교사들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87년 올해에는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이 결성되게 이른 것이다. 전교협의 전국회장인 윤영규 선생의 말처럼, 이들 전교협 회원들은 민족 · 민주 · 인간화 교육을 추구하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작가 송기원, 시인 김진경·윤재철이 구속되었으나 그들은 결국 석방되고, 또 그들에 이어 수많은 교사들이 감봉 파직 ·벽지전출 ·구속조치를 당하였는데도, 교육민주화를 향한 요원의 불길은 그치질 않고, 이와 더불어 예의 많은 교육 현장 시들 파 수기들이 널리 읽혀지게 된 것이다. 학교라는 현장을 통하여 교육민주화운동을 전개하며, 그리하여 참다운 민주시민을 양성시키고자 하는 이들 교사들의 몸부림은 정말 눈물겹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더 많은 교육현장 시들이 쓰여져, 지금까지의 학교현장이 올곧은 넉넉한 배움터로 닦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내 무거운 책가방'이내 가벼운 책가방이 되어, 우리들의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그러면서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갖게 되는 그런 세상을 위해, 교육운동문학은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5. 농촌현장문학

  오늘날 농촌 현장에서 진정한 그리고 풍요한, 뻑뻑한, 가슴 벅찬 농민문학이 나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일까, 시대를 따르지 못하는 생각일까. 한말로 60년대 이후, 한국의 농촌은 근대화 ·공업화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지금은 너무도 소외돼버렸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제쳐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들의 고향, 먼 옛날부터 옹기종기 살았던 농사를 지었던 농경문화의, 공동체정신의 산실인 농촌은, 오늘날도시의 물질문명이 내뿜어 낸 온갖 독소에 물려 질식 상태 하에 있지 않는가. 빚더미 농약공해, 이윽고는 전국토의 도시화 추세에 밑 깔려 허덕이는 지경이다.
  그런 속에서도 건강성을, 흙의 건강성을 잃지 않는 시인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80년대에 국한시켜 보면) 김용택·흥일선·김회수·김영안·고재종 등이 아닐까 한다. 특히 김용택의 시집 『섬진강』과 『맑은 날』은 한국농촌시의, 한국농민시의 최고수준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우리 시대가 가면 타시는 쓰여지질 못할 그런 축축한 넉넉한 성급하지 않는 의연한 시들로 가득 담겨 출렁인다. 솔직히 말한다면 김용택의 농촌 시는 농촌시일 뿐만이 아니라 민족시의 한 거봉 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시속엔 이 민족이 살아왔던 이야기,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살아가야 할 이야기들로 꿈틀 꿈틀거리는데 아니 넘실넘실 거리는 데, 확실히 그의 시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도란도란 얘기해 주는 듯한 감동을 준다. 그러면서도 때론 그의 농촌 시(농민 시 )는 팔뚝을 걷어붙인 힘센 머슴처럼, 아니 글쎄, '마당은 비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이다. 지나온 시절과 함께 오늘의 농촌을 그처럼 걸걸하고 투명하게 읊어 대는 시인이 이 땅엔 그렇게 흔하지 않다. 우리들의 고향, 민족경제의 영원한 산실일 것임에는 분명한, 오늘의 농촌을 대변하듯이 노래하는 농촌현장문학이 그래서 앞으로도 활성화되길 비는 것은 어디 필자만의 기원일까.

6. 노동운동문학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씨가 근로조건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한 사건이 1970년 11월 3일에 있었다. 이 땅의 근대화 ·공업화 ·산업화의 역군으로 있으면서 그러나 성장의 그 그늘 속에서만 끙끙 맴돌던 노동자들, 듣기 좋은 말로 수출과 경제성장의 역군이었던 노동자들, 그러나 그들이 사람다운 대접, 근로조건 개선, 최저임금제실시를 부르짖었을 때는, 기실 사람다운대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전태일씨는 온몸에 불을 붙여, 이 땅의 노동운동사에 출발신호를 던진 것이다. 그후 노동운동은 Y · H사건을 위시해서 70년대를 어렵게 견디어 오다 80년대 중반기를 넘어서자, 이젠 각 산업체별로 그 운동역량을 터뜨린 것이다. 그리하여 평론가 김도연이 주장한대로, 문학 분야에서도 소위 문학장르의 확대, 흑은 기존 문학장르의 탈피를 꾀하여 현장문학의 '길 열기'가 시도되었다. 이런 여파 속에서 (아니 당연히, 민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지만)한편으론 출판운동과 어우러지면서, 노동문학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예의 현장에서 물 끓듯이 분출하였다.
  노동문학은 주로 공장문학, 댐 공사장문학, 아파트공사장문학, 수출공단문학, 공해업소공장문학, 노가다 문학, 도시빈민노동자문학, 농업노동자문학 등, 오늘날 수많은 산업체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노동자들의 애환과 욕구 그리고 열망에 젖어있는 목소리가 주종을 이룬다. 산업사회의 후기에 으레 히 부딪치게 마련인 계층간의 갈등(계급갈등이랄까),소외의 팽창,"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라는 깨우침이 치솟아, 앞서 얘기한 노동문학의 뼈대를 이룬다. 노동문학 쪽에선(사실상 노동현장 거기에서 쓰여진 시 · 소설 ·수기 · 르포가 오죽이나 많으련만), 박노해 ·깅해화·김기흥·박영근 ·최명자·정명자가 우선 머리에 떠오른다. 그중 80년대 한국 지식인문학가들에게 일대 쎈세이셔널한 충격을 주고 있는 박노해의 시들은 실로, 노동문학이 겨냥하는 문제점의 급소를 찌른다.

이제 나는 임금인상요구에 철퇴를 가하는
저들에 맞서, 아프게 눈을 뜨며
다시 묻는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안정 위에서 죽어 가는 자와 춤추는 자,
수출 속에 뼈빠지는 놈과 살쪄 가는 놈,
화합의 미소 커튼 뒤에
피투성이가 된 민주주의,
이제 우리는
더 이상의 기만을 거절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위에 구축된
안정과
화해와
일치를
소름 치며 거절한다.
거짓 이론가도, 신문도
교황 할아비라도
단연코 거절한다.

민족의 슬픈 분단을 이용하여
안정의 구호 속에
노동자의 피와 땀을
질서 있게 빨아대던
그대들의 안정도 이젠 끝이다.

우리는 명확하게
분열하고 대립하면서
투쟁의 소용돌이
혼란의 회오리 속에,
평등과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그대들의 안정된 질서를
송두리째 깨뜨릴 것이다.
                              -박노해의 「안정의 끝」

7. 또 시작하는 말

  저물어 가는 87년의 늦가을, 정작·올해만 뒤돌아보아도, 저절로 필자는 머리가 숙여진다. 87년도는 80년 이후 어느 해 보다도 가장 치열한, 민주화에로의 실천적 몸부림이 많은 해였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이한열 최루탄사망, 노동자 이석규의 옥포조선소에서의 최루탄사망, ,직선제 관철을 위한6월 투쟁, 6 · 29선언과 대통령직선제실시 발표, 1987년은 흔히들 말하는 민주화에로의 대장정 속에서 변혁기의 한 와중에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오늘의 문학은, 그리고 민중문학은 과연 행여 라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던가를 자성해볼 시점에 접해 있다. 따라서 5월 문학은 5월 문학대로, 분단극복 ·통일지향문학은 분단극복 ·통일지향문학대로, 교육운동문학은 교육운동문학대로, 농촌현장문학은 농촌현장문학대로, 노동문학은 노동문학대로 각기 분파 되어 독자적으로 전개되어 갈 것이 아니라, 각 부문의 현장은 다르지만 서로 어우러져서 때로는 일체감 Einheit 있게,  이 땅의 민주화 ·통일화를 향한 부단한 상호연대의식을 높여야 할 것이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그날을 위해서, 민족이 참다운 모습과 숨결을 찾는 그날을 위해서, 문학은 적어도 민중 ·민족의 부름에 좇아야 하리라. 마당 굿이 그렇듯이 이제 문학은 모든 예술장르와 피와 살이 섞어진 채로, 민중 ·민족의 대열에 부끄럼 없이 서야 할 것이다.
                                                                          (순천대학 학보, 198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