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학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이렇게 돼야 한다. 명노근 외(국민신문, 1988. 11)
본문
좌담 "열린 청문회, 닫힌 진실"
광주학살 진상규명 어디로?
광주학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이렇게 돼야 한다
참 석 자 : 명노근<전남대교수, 5·18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의장>
전계량<5·18광주민중항쟁 유족회 회장>
정동년<민주쟁취국민운동 전남본부 공동의장>
윤강옥<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이지현<5·18광주민중항쟁부상자동지회 회장>
사 회 : 선대원<편집장>
기록·정리 : 강희주 기자
사회자-광주학살의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된 채 8년이 지났습니다. 진실을 얘기하는 자는 좌경·용공으로 매도됐고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등장한 정권의 가혹한 탄압밑에 민중들의 신음과 분노가 계속되었던 세월이었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학살자들끼리 정권의 대물림이 된 현 시점에서 지난 국정감사와 일해청문회, 광주청문회를 통해 전 국민들은 증인들의 뻔뻔스러운 답변과 거짓 증언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히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광주청문회에는 학살 주범으로 지목되는 전두환씨가 나오지도 않아 진상규명의 한계를 절감케 했습니다. '열린 청문회, 닫힌 진실'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제도 정치권의 한계와는 관계없이 "학살주범 처단은 국민의 힘으로"라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지금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 그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을 점검하고 전망하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윤강옥-지난 국정감사와 일해 청문회를 보면서 수박 겉핥기식이니, 국회특위 당사자들의 준비부족으로 인해 문제의 초점을 흐렸다느니 하는 여론이 분분한 실정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의 비리가 다 나타나 있고 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더 준비하고 증거조사작업을 성실히 했다면 대단히 많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일해 청문회를 통해 엄청난 비리와 전두환을 위시한 5공화국 주역들에 대해 국민들 인식이 별로 큰 부정이 아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던 청문회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무기명으로 기탁된 35억에 초점을 맞춰 일해 청문회는 시작이 됐고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끝났으니 다시 5공화국비리에 대한 문제는 원점으로 환원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더군다나 일해청문회에서는 무기명으로 기부한 2억, 3억 등을 전두환이 착실히 일해에 기탁한 것처럼 되어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지요. 이 외에도 엄청난 비리가 산적해 있는데도 5공비리조사특위에서는 조사했다는 명분만 내세우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결국, 5공비리에 깔려 공장에서, 농촌에서 저임금에, 부채에 시달리는 우리네 사람들에게 억장 무너지는 일밖에 한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겁니다.
이지현-그렇지요. 지난번 14세의 소년이 공장 일하는게 힘들어 공장에 불을 질렀던 일이 기억납니다. 어린 나이에 가난때문에 다른애들처럼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어른들도 하기 힘든 장시간 노동을 어린 소년이 하다 보니 왜 그런 생각이 안들겠습니까. 비단 그것은 소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부의 불평등, 그것은 있는 자와 없는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권을 쥔 자들은 현 사회의 모순을 백분 활용해 자신들의 치부 수단으로 쓰고 있으니 민중들한테 "죽어라"는 말 밖에 더 되겠습니까? 우리 서민들은 목돈 한번 쥐기가 '하늘에서 별따기'인데 일해 청문회에서 보면 몇 십억이 얘들 장난처럼 오갔으니 참 세상 더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정동년-앞서 말씀하셨듯이 비단 그러한 문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로 지난번 국장감사에서도 거론된 바 있는 우데이타 위장폐업 문제가 해결될 듯 하더니 국정감사가 끝난 후 다시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어떻게 대충 얼버무리려는 현 정권은 '보통사람시대'의 나팔을 불고 등장했지만 지금까지의 형태를 보면 5공비리 학살주범인 '특별한 사람'에게 계속 보호막을 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자-현재 전국적으로 전·이구속처단투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호응과 관심속에서 전개되는 전·이 구속처단 문제는 8년간 눌려온 민중들의 분노의 표출일겁니다. 전두환의 생가가 대학생들에 의해 불에 타고 연회동을 향한 체포결사대의 투쟁이 멈추지 않고 있는 이 때 전·이 구속처단이란 문제는 일란성 쌍생아인 현 정권에게까지 막대한 위협과 곤혹스러움을 던져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학살 주범들을 고소조치하셨는데 고소 조치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윤강옥-80년 5월 광주민중학살은 한국에 대단한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의 지원 하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등 군부일파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저질렀던 반역사적 행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구속주장이 노태우와 미국에 대한 책임추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진상이 은폐될 수 없습니다. 국회차원에서도 특위가 구성되어 공청회를 진행 중에 있고 이에 편승하여 전 국민적으로 광주민중학살 진상문제가 초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이때 전·노일당에 대한 범국민적 심판이 되어야 하고 의법처단이 되어야만 광주민중학살의 진상규명과 해결을 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고소조치 했습니다.
정동년-어차피 정권의 성격이 변화되지 않는 한 정권의 시녀인 사법부에 고소조치한다는 것은 모순이기는 하나 현 정권이 광주문제 해결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일단 어떻게 하는지 두고보자는 얘기지요. 자기 모순을 자기가 해결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난처해지는지, 그러면 우리는 현 정권이 난처해지면 질수록, 현 정권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그러한 투쟁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진정한 광주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고소조치는 앞으로 투쟁 속에서 전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지현-우리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구속'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희 부상자 회원중에서도 당시 공수대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정신적 고통과 가정까지도 파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 5·18때 얻은 부상으로 정신질환을 앓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 김형영 열사의 고통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고 생각해요. "학살자를 학살하자"는 주장까지 있고 보면 전두환 구속은 법절차에 의한 합리적인 처리과정으로 볼 순 있습니다.
이것은 복수가 아니라 민족정기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해요. 신문에도 발표된 것처럼 박모씨가 개인적 고소조치했던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유관단체와 모든 광주시민, 전라도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거론했다면 좀 더 확실한 전망과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어쨌든 고소조치가 전술적 의미를 지니던, 개인이 고소조치를 취했던 간에 '학살자 처단'이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감을 표할 것입니다.
사회자-현재 광주청문회를 비롯한 다른 청문회들은 노태우가 국민들의 열기에 밀려 개량적 차원으로서 국민들의 여망에는 아랑곳없이 모든 문제를 국회안으로 끌어들여 적당한 선에서 여·야가 합의할 심산이라는 얘기가 분분합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강옥-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국적 관심이 학살자 처단문제였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전국의 대학생, 노동자, 농민할 것없이 망월동 성지순례도 하고 전 단체가 연합하여 도청에서 학살자처단투쟁을 10일간 전개했는데 6월로 접어들면서 그 열기가 사그러 들었지요.
이지현-민족의 숙원인 통일운동이 대학생들에 의해 요구되면서 학살자 처단이라는 문제가 잠시 맥이 끊겼지요. 8.15학생회담이 원천봉쇄되고 실제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민중들의 이해관계가 통일운동과 접목되지 못하면서 난항을 거듭하게 되었고 통일운동의 결산을 하면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질적으로 학살자처단투쟁, 5공비리 척결투쟁이 민주화로, 조국통일로 가는 첩경이다고 인식이 모아질 무렵, 또 다시 올림픽이 장애로 등장했습니다. 그 후 국정감사와 더불어 일해 청문회가 열리면서 쉴새없이 언론에서는 5공비리를 떠들어댔지만 광주문제는 정치적, 언론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전계량-그렇습니다. 5공비리 청산이라는 문제는 어느 정도 현 정권이 빠져 나올 수는 있으나 광주학살 진상규명이라는 문제야말로 현 정권의 존립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정권의 의식적 행동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광주학살의 진상을 만천하에 알리고 학살자들을 처단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정권을 물리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 여겨집니다.
명노근-어떤 문제이든 간에 구호로 외치는 것과 실제로 달성하는 문제는 다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략과 전술을 올바르게 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현재 현 정권은 광주학살 진상규명의 문제를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얼버무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야만 현 정권의 존립이 보장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지요.
이러한 현 정권의 속셈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 호락호락 그들의 의도대로 말려들지는 않습니다만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올바로 직시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사실 국회 광주학살진상규명특위가 구성되어, 나름대로 조사해 왔고 청문회가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광주항쟁 관련문제는 제도 정치권에 묶여 있어선 안됩니다. 진정한 해결은 민족민주운동 단체와 모든 국민이 주체가 되어 현 상황을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고 결국 건강한 야당 정치인들도 보조를 맞춰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정동년-그렇습니다만 일간에서는 우리의 역량이 취약한데 전두환·이순자를 구속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한 현재 우리의 역량만을 두고 전·이구속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좀 이른 판단이 아닐까요.
명노근-그렇습니다. 현재 전·노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노는 전을 구속시켜 자신의 과오를 은폐할 수 있다면 백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노가 전의 구속을 꺼리고 있는 것은 자칫 전·이 구속으로 인해 자신의 파멸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전·노의 갈등을 우리는 백분 이용하자는 겁니다.
윤강옥-노의 입장에서는 12.12쿠데타에서부터 광주학살까지 전과 노의 공동작품인데 이제와서 노가 전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한다면 전이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전을 구속시킨다거나 노쪽에서 그런 입장을 취했을때 전의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월간지에서나 일해 청문회에서 장세동이 발언했던 '폭탄선언' 운운했던 것도 전이 혼자는 죽지 않겠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5공비리도 전·노 합작품임을 모든 정황이 얘기해 주고 있고 실제로 전이 지금까지 해먹고 노에게 넘겨됐지 않습니까. 이 세력들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 어느 선에서 국민을 속이고 넘어 갈 수 있겠는가라는 것을 생각하며 광주문제, 5공비리 조사도 하는 척 얼버무려 놓고 국민들을 속여넘길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결국 광주문제는 반드시 이런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피해당사자, 범국민적 입장표명이 확실히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계량-그렇지요. 그런데 저희 유족회의 경우 1년간만 해도 무슨 문제만 있다하면 뛰어나가 투쟁했는데 지금은 그 열기가 식어가고 있어요. 그것은 8년이란 세월동안 광주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포자기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나 할까요. 더우기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갖은 협잡한 부정을 통해 그놈이 그놈인 노태우가 정권을 쥐면서 피해당사자들은 또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컸던 기대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열기가 식어가는지 모르지요.
5공비리 일해 청문회는 전 국민적 호응과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데 광주문제 청문회는 자칫 잘못하면 광주만의 문제로 국한되면서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 버리지나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광주문제 해결의 치유책의 일환으로 국회차원에서 진상규명을 하고 정부차원에서 치유대책을 강구하겠다"는 4월 1일 노태우의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청문회가 피해 당사자들만 현혹하는 치유고 진상규명이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앞섭니다. 자칫 피해 당사자들의 가슴에 또 한번 피멍들게 될지 모를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전 국민이 단결하여 야권을 견인하고 끝까지 학살자 처단투쟁을 전개하는 것뿐입니다.
정동년-그렇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학살자처단투쟁을 끝까지 전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단체를 비롯한 전 국민의 단결이 시급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이지현-현재 진행중인 광주문제 청문회 얘기가 나와 하는 말입니다만 일해 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이 잘 해야 했지만 이번 광주문제청문회는 증인들이 잘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만치 이번 청문회는 철두철미하게 우리의 주장을 만천하게 진실 그대로 밝히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자-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는 학살자 처단 투쟁에 굳건한 단결로 하나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자처단투쟁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인지, 아울러 앞으로 5월운동이 어떻게 전개돼야 할 것인지 얘기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동년-8년동안 광주시민들은 학살에 대한 분노와 학살자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며 고발하고, 설득하고, 투쟁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광주시민과 온 국민은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되씹으며 차근차근 노태우를 비롯한 학살주범들의 목을 조여갈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투쟁방향, 즉 학살자 처단투쟁과 5월운동의 방향은 분리될래야 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전계량-광주학살의 진정한 진상규명은 당시 계엄령 선포의 근거, 공수부대의 투입 경위, 시체암매장 장소 공개, 발포령은 누가 내렸는가? 그리고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쥔 미국의 관련정도가 밝혀져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관련책임자들이 위와 같은 사실을 은폐 조작시켜온 경위까지도 포함해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합니다.
명노근-또한 광주학살의 책임자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어요. 학살책임자 전원구속, 처단을 원합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꼭 할 것입니다. 학살을 주도하고 명령했던 장본인들은 반드시 국민의 심판대에 올려져서 단호히 처단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정치적 보복이 아니예요. 민족정기를 확립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입니다.
사회자一많은 시간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 어디로?
광주학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이렇게 돼야 한다
참 석 자 : 명노근<전남대교수, 5·18위령탑 건립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의장>
전계량<5·18광주민중항쟁 유족회 회장>
정동년<민주쟁취국민운동 전남본부 공동의장>
윤강옥<5·18광주민중항쟁동지회>
이지현<5·18광주민중항쟁부상자동지회 회장>
사 회 : 선대원<편집장>
기록·정리 : 강희주 기자
사회자-광주학살의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된 채 8년이 지났습니다. 진실을 얘기하는 자는 좌경·용공으로 매도됐고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등장한 정권의 가혹한 탄압밑에 민중들의 신음과 분노가 계속되었던 세월이었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학살자들끼리 정권의 대물림이 된 현 시점에서 지난 국정감사와 일해청문회, 광주청문회를 통해 전 국민들은 증인들의 뻔뻔스러운 답변과 거짓 증언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특히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광주청문회에는 학살 주범으로 지목되는 전두환씨가 나오지도 않아 진상규명의 한계를 절감케 했습니다. '열린 청문회, 닫힌 진실'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제도 정치권의 한계와는 관계없이 "학살주범 처단은 국민의 힘으로"라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지금 '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위한 우리들의 노력, 그 현주소와 앞으로의 방향을 점검하고 전망하는 작업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윤강옥-지난 국정감사와 일해 청문회를 보면서 수박 겉핥기식이니, 국회특위 당사자들의 준비부족으로 인해 문제의 초점을 흐렸다느니 하는 여론이 분분한 실정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의 비리가 다 나타나 있고 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더 준비하고 증거조사작업을 성실히 했다면 대단히 많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일해 청문회를 통해 엄청난 비리와 전두환을 위시한 5공화국 주역들에 대해 국민들 인식이 별로 큰 부정이 아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던 청문회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무기명으로 기탁된 35억에 초점을 맞춰 일해 청문회는 시작이 됐고 끝내 밝혀내지 못하고 끝났으니 다시 5공화국비리에 대한 문제는 원점으로 환원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더군다나 일해청문회에서는 무기명으로 기부한 2억, 3억 등을 전두환이 착실히 일해에 기탁한 것처럼 되어 있으니 기막힐 노릇이지요. 이 외에도 엄청난 비리가 산적해 있는데도 5공비리조사특위에서는 조사했다는 명분만 내세우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결국, 5공비리에 깔려 공장에서, 농촌에서 저임금에, 부채에 시달리는 우리네 사람들에게 억장 무너지는 일밖에 한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겁니다.
이지현-그렇지요. 지난번 14세의 소년이 공장 일하는게 힘들어 공장에 불을 질렀던 일이 기억납니다. 어린 나이에 가난때문에 다른애들처럼 학교에 다닐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어른들도 하기 힘든 장시간 노동을 어린 소년이 하다 보니 왜 그런 생각이 안들겠습니까. 비단 그것은 소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부의 불평등, 그것은 있는 자와 없는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권을 쥔 자들은 현 사회의 모순을 백분 활용해 자신들의 치부 수단으로 쓰고 있으니 민중들한테 "죽어라"는 말 밖에 더 되겠습니까? 우리 서민들은 목돈 한번 쥐기가 '하늘에서 별따기'인데 일해 청문회에서 보면 몇 십억이 얘들 장난처럼 오갔으니 참 세상 더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군요.
정동년-앞서 말씀하셨듯이 비단 그러한 문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단적인 예로 지난번 국장감사에서도 거론된 바 있는 우데이타 위장폐업 문제가 해결될 듯 하더니 국정감사가 끝난 후 다시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어떻게 대충 얼버무리려는 현 정권은 '보통사람시대'의 나팔을 불고 등장했지만 지금까지의 형태를 보면 5공비리 학살주범인 '특별한 사람'에게 계속 보호막을 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자-현재 전국적으로 전·이구속처단투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국민의 호응과 관심속에서 전개되는 전·이 구속처단 문제는 8년간 눌려온 민중들의 분노의 표출일겁니다. 전두환의 생가가 대학생들에 의해 불에 타고 연회동을 향한 체포결사대의 투쟁이 멈추지 않고 있는 이 때 전·이 구속처단이란 문제는 일란성 쌍생아인 현 정권에게까지 막대한 위협과 곤혹스러움을 던져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주학살 주범들을 고소조치하셨는데 고소 조치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윤강옥-80년 5월 광주민중학살은 한국에 대단한 이해관계를 가진 미국의 지원 하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등 군부일파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저질렀던 반역사적 행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두환 구속주장이 노태우와 미국에 대한 책임추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로도 진상이 은폐될 수 없습니다. 국회차원에서도 특위가 구성되어 공청회를 진행 중에 있고 이에 편승하여 전 국민적으로 광주민중학살 진상문제가 초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는 이때 전·노일당에 대한 범국민적 심판이 되어야 하고 의법처단이 되어야만 광주민중학살의 진상규명과 해결을 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고소조치 했습니다.
정동년-어차피 정권의 성격이 변화되지 않는 한 정권의 시녀인 사법부에 고소조치한다는 것은 모순이기는 하나 현 정권이 광주문제 해결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일단 어떻게 하는지 두고보자는 얘기지요. 자기 모순을 자기가 해결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난처해지는지, 그러면 우리는 현 정권이 난처해지면 질수록, 현 정권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그러한 투쟁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가 염원하는 진정한 광주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고소조치는 앞으로 투쟁 속에서 전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지현-우리가 당한 고통에 비하면 '구속'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희 부상자 회원중에서도 당시 공수대원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정신적 고통과 가정까지도 파탄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과 얼마전 5·18때 얻은 부상으로 정신질환을 앓다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간 김형영 열사의 고통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라고 생각해요. "학살자를 학살하자"는 주장까지 있고 보면 전두환 구속은 법절차에 의한 합리적인 처리과정으로 볼 순 있습니다.
이것은 복수가 아니라 민족정기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해요. 신문에도 발표된 것처럼 박모씨가 개인적 고소조치했던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유관단체와 모든 광주시민, 전라도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거론했다면 좀 더 확실한 전망과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어쨌든 고소조치가 전술적 의미를 지니던, 개인이 고소조치를 취했던 간에 '학살자 처단'이라는 데에는 누구나 동감을 표할 것입니다.
사회자-현재 광주청문회를 비롯한 다른 청문회들은 노태우가 국민들의 열기에 밀려 개량적 차원으로서 국민들의 여망에는 아랑곳없이 모든 문제를 국회안으로 끌어들여 적당한 선에서 여·야가 합의할 심산이라는 얘기가 분분합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강옥-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국적 관심이 학살자 처단문제였습니다. 지난 5월에는 전국의 대학생, 노동자, 농민할 것없이 망월동 성지순례도 하고 전 단체가 연합하여 도청에서 학살자처단투쟁을 10일간 전개했는데 6월로 접어들면서 그 열기가 사그러 들었지요.
이지현-민족의 숙원인 통일운동이 대학생들에 의해 요구되면서 학살자 처단이라는 문제가 잠시 맥이 끊겼지요. 8.15학생회담이 원천봉쇄되고 실제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기층민중들의 이해관계가 통일운동과 접목되지 못하면서 난항을 거듭하게 되었고 통일운동의 결산을 하면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질적으로 학살자처단투쟁, 5공비리 척결투쟁이 민주화로, 조국통일로 가는 첩경이다고 인식이 모아질 무렵, 또 다시 올림픽이 장애로 등장했습니다. 그 후 국정감사와 더불어 일해 청문회가 열리면서 쉴새없이 언론에서는 5공비리를 떠들어댔지만 광주문제는 정치적, 언론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전계량-그렇습니다. 5공비리 청산이라는 문제는 어느 정도 현 정권이 빠져 나올 수는 있으나 광주학살 진상규명이라는 문제야말로 현 정권의 존립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정권의 의식적 행동에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광주학살의 진상을 만천하에 알리고 학살자들을 처단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야말로 독재정권을 물리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 여겨집니다.
명노근-어떤 문제이든 간에 구호로 외치는 것과 실제로 달성하는 문제는 다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략과 전술을 올바르게 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현재 현 정권은 광주학살 진상규명의 문제를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면서 빠른 시일내에 얼버무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야만 현 정권의 존립이 보장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지요.
이러한 현 정권의 속셈을 알고 있는 우리들이 호락호락 그들의 의도대로 말려들지는 않습니다만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올바로 직시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사실 국회 광주학살진상규명특위가 구성되어, 나름대로 조사해 왔고 청문회가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광주항쟁 관련문제는 제도 정치권에 묶여 있어선 안됩니다. 진정한 해결은 민족민주운동 단체와 모든 국민이 주체가 되어 현 상황을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고 결국 건강한 야당 정치인들도 보조를 맞춰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정동년-그렇습니다만 일간에서는 우리의 역량이 취약한데 전두환·이순자를 구속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한 현재 우리의 역량만을 두고 전·이구속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좀 이른 판단이 아닐까요.
명노근-그렇습니다. 현재 전·노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노는 전을 구속시켜 자신의 과오를 은폐할 수 있다면 백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노가 전의 구속을 꺼리고 있는 것은 자칫 전·이 구속으로 인해 자신의 파멸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전·노의 갈등을 우리는 백분 이용하자는 겁니다.
윤강옥-노의 입장에서는 12.12쿠데타에서부터 광주학살까지 전과 노의 공동작품인데 이제와서 노가 전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한다면 전이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전을 구속시킨다거나 노쪽에서 그런 입장을 취했을때 전의 반응이 무척 궁금합니다. 월간지에서나 일해 청문회에서 장세동이 발언했던 '폭탄선언' 운운했던 것도 전이 혼자는 죽지 않겠다는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5공비리도 전·노 합작품임을 모든 정황이 얘기해 주고 있고 실제로 전이 지금까지 해먹고 노에게 넘겨됐지 않습니까. 이 세력들이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 어느 선에서 국민을 속이고 넘어 갈 수 있겠는가라는 것을 생각하며 광주문제, 5공비리 조사도 하는 척 얼버무려 놓고 국민들을 속여넘길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결국 광주문제는 반드시 이런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피해당사자, 범국민적 입장표명이 확실히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계량-그렇지요. 그런데 저희 유족회의 경우 1년간만 해도 무슨 문제만 있다하면 뛰어나가 투쟁했는데 지금은 그 열기가 식어가고 있어요. 그것은 8년이란 세월동안 광주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포자기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나 할까요. 더우기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갖은 협잡한 부정을 통해 그놈이 그놈인 노태우가 정권을 쥐면서 피해당사자들은 또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컸던 기대만큼 실망도 컸기 때문에 의외로 쉽게 열기가 식어가는지 모르지요.
5공비리 일해 청문회는 전 국민적 호응과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데 광주문제 청문회는 자칫 잘못하면 광주만의 문제로 국한되면서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 버리지나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섣부른 판단일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광주문제 해결의 치유책의 일환으로 국회차원에서 진상규명을 하고 정부차원에서 치유대책을 강구하겠다"는 4월 1일 노태우의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청문회가 피해 당사자들만 현혹하는 치유고 진상규명이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앞섭니다. 자칫 피해 당사자들의 가슴에 또 한번 피멍들게 될지 모를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것은 전 국민이 단결하여 야권을 견인하고 끝까지 학살자 처단투쟁을 전개하는 것뿐입니다.
정동년-그렇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학살자처단투쟁을 끝까지 전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단체를 비롯한 전 국민의 단결이 시급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이지현-현재 진행중인 광주문제 청문회 얘기가 나와 하는 말입니다만 일해 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이 잘 해야 했지만 이번 광주문제청문회는 증인들이 잘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런만치 이번 청문회는 철두철미하게 우리의 주장을 만천하게 진실 그대로 밝히는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회자-광주학살의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서는 학살자 처단 투쟁에 굳건한 단결로 하나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학살자처단투쟁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싸워 나가야 할 것인지, 아울러 앞으로 5월운동이 어떻게 전개돼야 할 것인지 얘기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동년-8년동안 광주시민들은 학살에 대한 분노와 학살자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며 고발하고, 설득하고, 투쟁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광주시민과 온 국민은 동안의 인고의 세월을 되씹으며 차근차근 노태우를 비롯한 학살주범들의 목을 조여갈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투쟁방향, 즉 학살자 처단투쟁과 5월운동의 방향은 분리될래야 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전계량-광주학살의 진정한 진상규명은 당시 계엄령 선포의 근거, 공수부대의 투입 경위, 시체암매장 장소 공개, 발포령은 누가 내렸는가? 그리고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쥔 미국의 관련정도가 밝혀져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관련책임자들이 위와 같은 사실을 은폐 조작시켜온 경위까지도 포함해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합니다.
명노근-또한 광주학살의 책임자 처벌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 없어요. 학살책임자 전원구속, 처단을 원합니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꼭 할 것입니다. 학살을 주도하고 명령했던 장본인들은 반드시 국민의 심판대에 올려져서 단호히 처단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정치적 보복이 아니예요. 민족정기를 확립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민족자주통일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입니다.
사회자一많은 시간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