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시로 도달하는 광주, 그 뜨거운 나라. 강형철(시인의 길 사람의 길, 예하, 1994. 3)
본문
시로 도달하는 광주, 그 뜨거운 나라
강형철
1
이라크와 미국의 싸움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아직도 인간은 동물이다. 몽둥이와 돌멩이의 변조가 조금 놀라울 뿐 싸움은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우쭐대던 많은 사람들에게 독점자본의 위력은 무엇인지 생방송으로 실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은 전쟁무기의 유효성을 충분히 선전한 뒤, 인간이 동물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충분히 실증한 뒤 종결될 것이다.
1991년 봄을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우리 시를 검토하는 이 자리에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얘기하는 것은 우리 시가 도달해 가야 할 궁극적인 인간해방에의 침로가 험난함을 되짚어 보기 위함이다.
평화의 시대에 시는 꽃일 터이지만 격변의 시대에 시는 시대와 전쟁을 치른다. 1980년 5월 이후의 시가 그러했고 1960년 4월의 시가 그러했다. 1945년 해방공간, 1919년 이후의 시가 그러하다. 고리고 그 시대 민중의 힘과 비례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찾아 문학은 자기 진전을 이룬다.
그러므로 최근 우리 시를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는 글이 산견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198o년을 통과한 시가 그 내실을 얻어야 한다는 채찍이었다. 노동해방의 구체적인 실감과 조국통일의 실감을 자신의 몸에 실어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내 보일 것을 명령한 민중의 분명한 음성에 시인들이 응답할 것을 재촉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객관 현실은 꾸준히 변모 발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반영할 시인의 주체적 역량은 능동적인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스무 살 무렵에 광주의 불지짐을 체험한 시인들이 삼십 대에 접어들고 그들이 자본주의의 중력 권에서 일상의 일로 허덕일 때 그들의 시는 이중의 질곡을 겪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면 소시민적 삶의 시가되고 그렇다고 미래의 전망을 생각하며 시를 쓰게 되면 그 시가 '빵틀의 국화빵'이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 다다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삶을, 아니 시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감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일 터이지만 거기에 얼마나 예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요컨대 운동으로서의 시에 걸맞는 시적 실천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시를 향수하는 독자의 감수성이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 따라 엄청나게 그 진폭이 달라졌고 또한 시 장르, 아니 예술이 숙명처럼 지니고 있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창조적 재현이라는 문학본연의 요구까지 곁들여져 그동안 시는 일정한 자기 모색의 운하를 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의 현상은 필자 불명의 이른바 대중시들이 얼마간 위세를 떨치는 모양으로 혹은 포스트모더니증을 핑계 상은 경박한 말장난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진지한 시인들은 끊임없이 고투를 치러내고 있으며 그 나름의 성과를 속속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참된 인간해방의 장정을 향해 끊임없이 전쟁보다 더 혹독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예증을 임동확의《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황지우의《게 눈 속의 연꽃곽재구의《서울 세노야》를 통해 본다.
2
황지우, 곽재구, 임동확의 시집은 198o년 광주에 원체험을 대고 있으면서도 그 원체험을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 육화시키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얼마간의 변별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집은 오늘의 시점에서 찬찬히 읽어볼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삶의 전망을 향해 포복하면서 전진하는 모범적인 사례인 것이다.
광주는 So년대 이래 '뜨거운 상징'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인들은 이 세계에 눈을 떴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들 시집에서 광주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이들 시집의 성취를 살피기로 하자.
황지우의《게 눈 속의 연꽃을 먼저 검토하자. 주지하듯 그는 So년대에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이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So년대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쑥굴헝 같은' 이 땅으로부터 비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이 땅을 떠날 수 있는 날개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집을 매개로 건네고 있었다. 그것은 '혼수상태의 세월'에서 '세상을 버리고 야유회'를 갈 때 필요한 배낭이었다. 그때 새는 세상을 떠났다.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이처럼 그의 시는 이 쑥굴헝의 세상으로부터 떠나려고 하였고 그 떠 남의 지향 끝에 "세상을 자꾸만 내려다보려고만 한다"는 고백을 묻히고 있었다. 그것은 이 땅이 살 만한 곳이 못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보듯 그 희생은 덧없다. 그의 시에 있어서 5월 광주는 화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 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처넣고 솜으로 막는다
-(그날 그날의 현장검증)에서
물론 그의 떠남은 되돌아옴을 지향하고 있었다. "앉는다 주저앉는다"는 진술은 그것을 상징한다.
이후 그는《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나는 너다》를 통해 혹독하게 그 만남과 떠남을 반추한다. 하지만 거기엔 광주가 있었다. 그것은 더럽게 달라붙어서 젊은 시인을 황당하게 한다. 그는 길을 찾아 내기 위해 진정으로 광주에 귀환하여 광주가 빚어내는 상징을 온몸으로 껴안기 위해 몸부림 친다. 그리고 문득 그 길을 찾는다.
한려수도, 內掠雌리 배때기로 긴 자극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길)에서
萬里城邊(만이성변)에 홀로 있어
이 石壁(석벽)앞에 새까맣게 타버린 내 그림자
대가리를 대고 있는 나는
아직도 焚身中(분신중)이다
그러므로 아내여, 오늘은 그대 혼자 울고
내일은 그대 스스로 일어나
문 앞의 길이 세상 끝에 나아가게 하라
모든 길은 집에서 나오므로.
모든 길은 집에서 떠나므로
- <길>에서
시집《게 눈 속의 연꽃》을 들추자마자 우리는 '길'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그러한 길의 종합적인 깨달음이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모두가 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 집에서 나오고 집에서 떠난다. 이를테면 사람살이의 모든 공간 속에 닿아야 할, 걸어야 할 참된 길이 있음을, 그리고 그 길은 실제적인 사람살이로써만 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광주라는 현장을 초월의 세계에서, 아니 광주를 추상화시켜 찾았다는 점에 대한 그 자신의 반성으로 읽혀진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겨울산) (윗점 필자)
그러한 깨달음은 사람으로부터 자연으로 확장된다. 겨울산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시인은 말한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그러면서 그는 잘린 무에서 올라온 푸른 순을 보면서 한줌재가 어찌 살아 있는 바이러스만 할까라고 무릎을 친다. 그러한 시인에게 광주는 따뜻하다. 떠도는 혼을 부러 다독거려준다. "광주천 따라/고향의 봄밤을 걸으면/공기 속에 무슨 스펀지 같은 것이 들어 있다/푸욱 파묻히는/파묻히고 싶은/육신이, 물컹물컹한 육신이/눌려진다"((봄밤)). 공기도 육신이 된다. 대기가 육신이라니!
아무튼 이러한 절절한 깨달음으로부터 그의 시에서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 직설법의 광주가 도드라진다. (華嚴光州(화엄광주))라는 시편이 그것이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감추어진 목소리로 은밀히 얘기되던 광주가,《 겨울-나무로부터 봉-나무에로·《나는 너다》에서 도무지 드러나지 않던 직설법의 광주가 드디어 출현한다. 그날의 격전지 '전남대학교 정문', '공용터미널', '광주공원', '광천동', '도청'등의 지명이 선명하게 황지우의 시편에 드러난다. 아니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 '도라무깡'처럼 우르르르 밀면서 광주를 오늘 앞에 귀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외친다.
저 도청 앞 분수대에
유리 줄기 나무 높이 올라오르리라
그 투명 가지가지마다
지금까지 찾았던 눈물 힘껏 빨아올려
유리나무 상공에 물방울 뿌린 듯
수많은 摩尼(마이) 보배 꽃, 빛 되리라
그때에 온 사찰과 교회와 성당과 무당에서
다함께 종 울리고
집집마다 들고 나온 연등에서도 빛의
긴 범종 소리 따라 울리리라
-(화엄광주) 에서
황지우의 화법 중에서 드물게 정면돌파를 시도한 이 특이한 시는 그의 시가 여태껏 에돌아 보여주고 싶은 극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갈까. 그는 지금 광주에 살러 내려갔다.
이에 비해 곽재구와 임동확은 광주에 붙박여 있었다. 곽재구의 《서울 세노야》를 먼저 살피자. 황지우가 자신의 광주 원체험을 도시의 일상인의 삶으로부터 천착하면서 소시민의 삶이 지니는 음영을 풍자와 반어의 형식으로 타파하며 화엄광주로 진군해 갔다면 곽재구는 농촌 공동체의 흔적이 여실한 하층민의 삶을 매개로 하여 자분자분하게 광주의 원체험을 확산시 켜나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시에서는 초기 황지우 시에서 보이는 자연과의 불상용의 관계가 보이지 않고 언제나 따뜻한 교감으로 다가서면서 이 산하에 핀 각양각색의 꽃으로 광주를 찾아간다. 그러한 와중에 우리의 삶에 드리워진 분단의 현실을 만나고 있다.
① 대전차 장애물 징검다리처럼 코스모스 꽃길 위에 놓였습니다
만세교 지나 함흥 여관집 큰아들 기선이 아재
이곳 바다에서 사십 년 동안 소주병 붙들고 울며 살았습니다
돈은 벌어서 뭐해 고향에 다 있는데
밤이나 낮이나
지나는 사람 붙잡고 소주 한잔씩 권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헌 오징어처럼 파도에 떠밀려 죽었습니다
- (화진포)에서
② 칡꽃 향기 달빛 쏟는
선운사 도솔암에서 하룻밤 비럭잠을 잤습니다
밤늦게 최승자의 시집을 읽는다는 처녀보살은
광주에서 왔다는 말 듣고 어쩐지
내 행장에 최루탄 냄새 나더라고 웃었습니다
-(도솔암 풍경)에서
③ 해바라기 씨를 까며 해뜨는 만주벌판 달렸습니다
봉천에서 두만강 기슭 도문까지 달리는 증기기관차엔
오십 년 전처럼 횐옷 입은 조선 사람 가득 탔습니다
오십 년 전에는 차라리 행복했습니다 그땐 35선도
대전차 방어용 콘크리트벽도 미군 사령관도 없었습니다
찢긴 삼베옷 하나로 눈 덮인 광야에서 잠들며
독립의 이팝 한 그릇 오로지 꿈꾸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을 불렀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나게 불렀습니다
수수술 한잔 볼 붉히며 기차는
칙칙폭폭 해지는 만주벌판 달렸습니다
-(오십 년 후)
①은 얼마간의 시간을 내서 시의 화자가 동해안의 화진포에 갔을 때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죽은 사람을 만나 쓴 시이고, ②는 선운사를 갔을 때, 그리고 ③은 중국여행을 가서 쓴 시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경어체의 담백한 서술형을 택함으로써 그가 만난 풍경을 매우 정밀하게 그하고 차분하게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살필 일은 그가 광주에 생활근거를 두고 있으면서 쉴새없이 유동하고 있다는 점이다.《서울 세노야》는 기행시집으로 불릴 만큼 시의 화자가 떠돌고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기행에서 어김 없이 오늘의 조국현실을 관통하고 있는 분단의 상처를 만나고 있다.그는 그렇다면 광주를 떠나고자 계획하고 있는가. (광주에서 시 한 편 쓰기)라는 시를 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평일 날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이미 '반동'이 아닌가 눈치를 봐야 하길 어쩐지 켕기는 화자의 고백은 다음의 진술에서 확실하게 연표된다.
광주에서 살기 위해서는 힘이 든다
아니 세상에서 살기란 힘이 든다
세상에서 적당히 살기란 어렵고
광주에서 그럭저럭 살기가 더욱 어렵다
-(광주에서 시 한 편 쓰기)에서
그러나 이 진술에서 유의할 일은 '이 세상'과 광주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이다. 결국 광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한 사람살이를 향한 몸부림은 곧 이 지상의 진실된 사람살이의 몸부림이며 그것은 등가를 이루어 우리 삶을 재촉하고 있다. 그는 광주를 얘기한다.
연심이 고모 아는 사람 없다
그 아들 두칠이 아는 사람 없다
토벌대에 잡힌 산사람 낱편 구하기 위해
연심이 고모 토벌대장에게 몸 주었다
애기 적부터 몸달았던 만수
웃으며 긴 밤 내내 연심이 고모 껴안았다
잡혔다던 남편 석루관 계곡 시체로 발견되고
남편 대신 열 달 만에 아들 하나 얻었다
연심이 고모 슬픔 북두칠성처럼 빛났다
연심이 고모 섬진강 물가에서 두칠이와 살았다
아버지 바꿔 두칠이는 어릴 적부터 푼수
나이 서른 되어서야 광주 건축공사장 일 나갔다
잡부 일 보름 만에 두칠이 광주에서 죽었다
바보 두칠이 금남로에서 왜 사람 패냐고
공수대원에게 달겨들다 칼 맞아 죽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피 쏟으며 죽었다
연심이 고모 미쳐 뛰다 줄초상났다
석루관 섬진강 물가에 피 쏟으며 죽었다
칡꽃 향기 얼얼한 늦여름 지아비
쓰러진 그 자리에 농약 먹고 죽었다
- (연심이 고모)에서
이 땅 현대사의 살점을 이루는 민중사의 대표적 전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이 시는 광주란 곳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곡절을 얘기하고 있다. 결국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이땅의 무지렁이 민중이고 한 시대의 가해자는 또 다른 시대에 피해자로 뒤바뀌어 도대체 누구를 증오해야 할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바로 그러한 총체적 얼크러짐이 광주의 나날인 것이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분노도 없으며 일방적인 절규도 없다. 곽재구가 찾아내는 것은 사람살이의 저 깊은 안창인 것이다. 그러므로 광주문화원을 지키는 전경들이 빗물을 섞어 허기를 채우는 광경을 보면서 식민지의 설움을, 식빈지 종주국의 잔혹한 착취를 찾아내지만 동시에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서는/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람살이를 관통하고 있는 사랑 찾기는 (하야시 카즈오 씨의 오월행)이라는 시에서도 이어지고 연변의 풍경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정녕 사람의 사랑에 환장한 시인이다. 그것은 거꾸로 사람의 사랑에 대한 절망의 예증이기도 하다. 누가 있어 그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늦도록 기차를 기다리면서 톱밥난로의 가냘픈 온기에 서로의 어깨를 겯고 살아가는 모습에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준 이 눈물 많은 지인에게 진실된 참으로 따뜻한 사랑 한줌 건넬 수 있을 것인가. 가끔 소박한 사랑 앞에 절벽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일일 것이다.
《매장 시편에 이어《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을 낸 임동확은 곽재구에 비해 훨씬 단호하다. 그는 말한다. "오월은 화두다 또는 거대한 벽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시는 그곳에 새겨진 음화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그는 아직 광주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에게 5월 광주는 너무도 확실한 현재이다. 80년대초 박몽구가《십자가의 꿈》에서 보여주었던 처절한 투쟁과 현장 검증을 지금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방식은 다르다. 임동확은 거의 같은 주제를 희랍신화에 기대어 현란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묘파하고 있으며 이번의 시집《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은《매장 시편》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다. 그것은 앞의 시가 장시라는 한계 속에서 총자루를 숨기고 죽음의 그림자를 숨긴 것인데 비해 이번의 시정이 단형의 서정시라는 점에 연유한다. "싸우다 죽으나 도망가다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구절을 그대로 원용한다면 광주를 떠나다 죽으나 살다 죽으나 광주는 광주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광주는 지독하게도 피 배인 설움을 강요하는 진원지이다.
별빛 하나라도 그냥
깜박이지 않을 것 같은 봄밤을
그대여, 특별한 믿음도 없이 흘러가는 게
조금은 두렵고 쓸쓸하지 않더냐
아무도 손짓하여 부르지 않는
비탈진 시대의 벼랑을 돌아
한 고개 또 한 고개
노란 씀바귀로 숨차 넘으며
새 날을 꿈꾸고 기도하는 우리들
유성의 긴 꼬리를 닮은 사랑이여
보았느냐, 처음엔 가슴 벅찬 밀물이더니
밀물같이 성난 그리움이더니
잊으려, 잊으려 할수록
더 사나운 물결로 뒤채여 오는 저 흰 파도
그러나 문득 깨어나면 상처뿐인 저 바다
완벽하려 할수록 뒤틀린
저 진흙탕 갯벌같이 비린 삶을.
몇 번이고 까무라치다
한 떼의 응혈을 쏟으며
끝끝내 발가벗은 노을로 달겨드는 눈물을.
-(葉信(엽신))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는 "비탈진 시대의 벼랑"을 통과하면서 이 젊은 시인은 "몇 번이고 까무라치다"응혈을 쏟으면서 지금 광주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광주에서는 휴전이란 불가능하다((잃어버린 우산)).언제나 눈 찔러오는 응혈의 아픔이 어디에서나 계속된다. 그 아픔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떠난다. 또한 그 아픔을 이제는 잊을 만하지 않느냐고 가해자들은 노릇노릇한 표정으로 다그친다. 결국 폐허이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여기는 팔십년대 내 고향 광주.
끝까지 파헤치면 그리움의 뼈무덤, 그 참담함과 살을 섞는 분신들
그리고 무너진 전선마다 영원히 푸른 상록수 그늘
그리고 그 곁에 쉬어가며 샘물을 마시는 순례자들‥‥
-(다시 부르는 노래)에서
아무도 남아 있지 않고 이제 광주는 희미한 상록수의 그림자만 있을 뿐 그리고 이따금 성지순례하듯 들러서 퍼가는 샘물로만 존재할 뿐 시인에게 광주는 폐허인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누구인가. 그는 정직하게 부끄러워한다.
싫어, 싫어
피,
피, 피.
모두들 이런 식으로 살려고
총을 들었던 게 아니야
그러다가 개죽음 했던 게 아니야
그건 나
나, 나, 나
삶은 과학이 아니라며
열정만도 아니라며 반항하고, 거부하고
그리하여 사랑의 몸체를 꿈꾸며
날마다 남 몰래 탈주를 꿈꾸던 자
-(나)에서
이 시의 뒷 면에 그는 "그런데, 지금, 난, 누구인가"라는 혹독한 질문을 퍼부으면서 그날의 진리, 그날의 아름다움 앞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모두라는 것을 깨닫는다. (생존자의 비망록)을 위시한 많은 시편에서 그러한 과정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므로《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은 광주를 호명하는 호출부호이며 그것은 또한 삶을 긴장시키고 반성시키고 그리하여 진리와 진실로 나아갈 수 있는 한 통로로 이 지상에 세워진 이정표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들은 죄다 피 냄새가 나고
그대여, 그만큼씩 환멸과 고통의 그림자가 커가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제 누구든 행복할 권리도 있지만 싸울 의무도 있다는 것을
-(시작과 끝의 보고서)에서
눈을 떠봐
이곳은 상징의 늪이야
무덤이고 흔들릴수록 빠져드는 모순의 수렁이야
그래 이제 때가 왔어
부드러운 직설 같은 진눈깨비
진눈깨비 속에서 너희들 첫 소망을 말해 보렴.
난 이제 거리로 종을 치러 가기로 했어.
-(눈 오는 날)에서
젊은 시인은 이제 거리로 나와 종을 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행복할 권리와 싸을 의무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 그 싸움에 축복 있기를! 모쪼록 거리로 나온 그가 아스팔트 위의 굳은 피딱지만 보고서 슬퍼하지 않기를!
3
이제까지 세 시인의 시집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광주를 중심으로 얼마간 살폈다. 광주는 아직 젊은 시인의 상상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마그마임을 밝힌 셈이다. 그런데 유의할 일은 이들의 표출형식이다. 이것은 그들의 시를 이루어 나가는 어조나 언어 등을 소상히 살펴야 충분히 드러날 일이지만 우선 언어적 특징만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 과제를 넘기기로 한다.
전편을 읽으면서 먼저 떠오르는 일은 이들이 모두표준어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언어를 채택함으로써 광주가 지닌 의미의 확산에는 기여하고 있지만 시의 실감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미흡한 점이 느껴진다. 그것은 광주의 고유한 체험은 광주지역의 언어로써 씌어질 때 그 감동의 폭이 커진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가령 황지우의 시편에서 청천벽력 같은 시의 감동을 낚아채는 시는 그가 광주지역의 방언으로 시의 중심을 삼고 있을 때이다.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이 징헌 놈아," "도라무깡"등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어디론가 끌고 간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전라지역의 방언으로 그 시의 테마를 끌고 갈 때 성공적인 작품을 이룬다.
이 점에서 곽재구와 임동확의 시적 발상법은 현저히 다르다. 특히 곽재구는 우리 말에 내재해 있는 리듬을 얹어 시를 쓰고 있으므로 이러한 극적인 시편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시가 노래나 부르스를 차용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또한 임동확의 경우 자신의 원체험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희랍신화 혹은 교과서적 진실에 조회하여 형상화함으로써 너무 단정할 뿐 우리의 심장을 뻐근케 하는 감동은 적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닌다.
바로 이러한 편차가 광주를 원체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으로 자신들의 시를 건설하고 있는 종차(種差)를 형성한다고 하겠는데 이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면 싶다.
강형철
1
이라크와 미국의 싸움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아직도 인간은 동물이다. 몽둥이와 돌멩이의 변조가 조금 놀라울 뿐 싸움은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평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우쭐대던 많은 사람들에게 독점자본의 위력은 무엇인지 생방송으로 실감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전쟁은 전쟁무기의 유효성을 충분히 선전한 뒤, 인간이 동물을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충분히 실증한 뒤 종결될 것이다.
1991년 봄을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우리 시를 검토하는 이 자리에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을 얘기하는 것은 우리 시가 도달해 가야 할 궁극적인 인간해방에의 침로가 험난함을 되짚어 보기 위함이다.
평화의 시대에 시는 꽃일 터이지만 격변의 시대에 시는 시대와 전쟁을 치른다. 1980년 5월 이후의 시가 그러했고 1960년 4월의 시가 그러했다. 1945년 해방공간, 1919년 이후의 시가 그러하다. 고리고 그 시대 민중의 힘과 비례해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찾아 문학은 자기 진전을 이룬다.
그러므로 최근 우리 시를 반성적으로 되짚어 보는 글이 산견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198o년을 통과한 시가 그 내실을 얻어야 한다는 채찍이었다. 노동해방의 구체적인 실감과 조국통일의 실감을 자신의 몸에 실어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내 보일 것을 명령한 민중의 분명한 음성에 시인들이 응답할 것을 재촉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객관 현실은 꾸준히 변모 발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반영할 시인의 주체적 역량은 능동적인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스무 살 무렵에 광주의 불지짐을 체험한 시인들이 삼십 대에 접어들고 그들이 자본주의의 중력 권에서 일상의 일로 허덕일 때 그들의 시는 이중의 질곡을 겪게 되었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시를 쓰면 소시민적 삶의 시가되고 그렇다고 미래의 전망을 생각하며 시를 쓰게 되면 그 시가 '빵틀의 국화빵'이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 다다른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삶을, 아니 시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감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일 터이지만 거기에 얼마나 예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요컨대 운동으로서의 시에 걸맞는 시적 실천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시를 향수하는 독자의 감수성이 자본주의 발전 단계에 따라 엄청나게 그 진폭이 달라졌고 또한 시 장르, 아니 예술이 숙명처럼 지니고 있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창조적 재현이라는 문학본연의 요구까지 곁들여져 그동안 시는 일정한 자기 모색의 운하를 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의 현상은 필자 불명의 이른바 대중시들이 얼마간 위세를 떨치는 모양으로 혹은 포스트모더니증을 핑계 상은 경박한 말장난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진지한 시인들은 끊임없이 고투를 치러내고 있으며 그 나름의 성과를 속속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참된 인간해방의 장정을 향해 끊임없이 전쟁보다 더 혹독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예증을 임동확의《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황지우의《게 눈 속의 연꽃곽재구의《서울 세노야》를 통해 본다.
2
황지우, 곽재구, 임동확의 시집은 198o년 광주에 원체험을 대고 있으면서도 그 원체험을 어떻게 자신의 삶 속에 육화시키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얼마간의 변별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집은 오늘의 시점에서 찬찬히 읽어볼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삶의 전망을 향해 포복하면서 전진하는 모범적인 사례인 것이다.
광주는 So년대 이래 '뜨거운 상징'이다. 그로부터 많은 시인들은 이 세계에 눈을 떴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들 시집에서 광주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피는 것으로 이들 시집의 성취를 살피기로 하자.
황지우의《게 눈 속의 연꽃을 먼저 검토하자. 주지하듯 그는 So년대에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시인이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So년대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쑥굴헝 같은' 이 땅으로부터 비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이 땅을 떠날 수 있는 날개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집을 매개로 건네고 있었다. 그것은 '혼수상태의 세월'에서 '세상을 버리고 야유회'를 갈 때 필요한 배낭이었다. 그때 새는 세상을 떠났다.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매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이처럼 그의 시는 이 쑥굴헝의 세상으로부터 떠나려고 하였고 그 떠 남의 지향 끝에 "세상을 자꾸만 내려다보려고만 한다"는 고백을 묻히고 있었다. 그것은 이 땅이 살 만한 곳이 못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보듯 그 희생은 덧없다. 그의 시에 있어서 5월 광주는 화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어제 나는 내 귀에 말뚝을 박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내 눈에 철조망을 치고 붕대로 감아 버렸다
내일 나는 내 입에 흙을
한 삽 처넣고 솜으로 막는다
-(그날 그날의 현장검증)에서
물론 그의 떠남은 되돌아옴을 지향하고 있었다. "앉는다 주저앉는다"는 진술은 그것을 상징한다.
이후 그는《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나는 너다》를 통해 혹독하게 그 만남과 떠남을 반추한다. 하지만 거기엔 광주가 있었다. 그것은 더럽게 달라붙어서 젊은 시인을 황당하게 한다. 그는 길을 찾아 내기 위해 진정으로 광주에 귀환하여 광주가 빚어내는 상징을 온몸으로 껴안기 위해 몸부림 친다. 그리고 문득 그 길을 찾는다.
한려수도, 內掠雌리 배때기로 긴 자극
지나가고 나니 길이었구나
거품 같은 길이여
-(길)에서
萬里城邊(만이성변)에 홀로 있어
이 石壁(석벽)앞에 새까맣게 타버린 내 그림자
대가리를 대고 있는 나는
아직도 焚身中(분신중)이다
그러므로 아내여, 오늘은 그대 혼자 울고
내일은 그대 스스로 일어나
문 앞의 길이 세상 끝에 나아가게 하라
모든 길은 집에서 나오므로.
모든 길은 집에서 떠나므로
- <길>에서
시집《게 눈 속의 연꽃》을 들추자마자 우리는 '길'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그러한 길의 종합적인 깨달음이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자국 모두가 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길은 모두 집에서 나오고 집에서 떠난다. 이를테면 사람살이의 모든 공간 속에 닿아야 할, 걸어야 할 참된 길이 있음을, 그리고 그 길은 실제적인 사람살이로써만 갈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광주라는 현장을 초월의 세계에서, 아니 광주를 추상화시켜 찾았다는 점에 대한 그 자신의 반성으로 읽혀진다.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겨울산) (윗점 필자)
그러한 깨달음은 사람으로부터 자연으로 확장된다. 겨울산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시인은 말한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그러면서 그는 잘린 무에서 올라온 푸른 순을 보면서 한줌재가 어찌 살아 있는 바이러스만 할까라고 무릎을 친다. 그러한 시인에게 광주는 따뜻하다. 떠도는 혼을 부러 다독거려준다. "광주천 따라/고향의 봄밤을 걸으면/공기 속에 무슨 스펀지 같은 것이 들어 있다/푸욱 파묻히는/파묻히고 싶은/육신이, 물컹물컹한 육신이/눌려진다"((봄밤)). 공기도 육신이 된다. 대기가 육신이라니!
아무튼 이러한 절절한 깨달음으로부터 그의 시에서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 직설법의 광주가 도드라진다. (華嚴光州(화엄광주))라는 시편이 그것이다.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감추어진 목소리로 은밀히 얘기되던 광주가,《 겨울-나무로부터 봉-나무에로·《나는 너다》에서 도무지 드러나지 않던 직설법의 광주가 드디어 출현한다. 그날의 격전지 '전남대학교 정문', '공용터미널', '광주공원', '광천동', '도청'등의 지명이 선명하게 황지우의 시편에 드러난다. 아니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 '도라무깡'처럼 우르르르 밀면서 광주를 오늘 앞에 귀환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외친다.
저 도청 앞 분수대에
유리 줄기 나무 높이 올라오르리라
그 투명 가지가지마다
지금까지 찾았던 눈물 힘껏 빨아올려
유리나무 상공에 물방울 뿌린 듯
수많은 摩尼(마이) 보배 꽃, 빛 되리라
그때에 온 사찰과 교회와 성당과 무당에서
다함께 종 울리고
집집마다 들고 나온 연등에서도 빛의
긴 범종 소리 따라 울리리라
-(화엄광주) 에서
황지우의 화법 중에서 드물게 정면돌파를 시도한 이 특이한 시는 그의 시가 여태껏 에돌아 보여주고 싶은 극점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갈까. 그는 지금 광주에 살러 내려갔다.
이에 비해 곽재구와 임동확은 광주에 붙박여 있었다. 곽재구의 《서울 세노야》를 먼저 살피자. 황지우가 자신의 광주 원체험을 도시의 일상인의 삶으로부터 천착하면서 소시민의 삶이 지니는 음영을 풍자와 반어의 형식으로 타파하며 화엄광주로 진군해 갔다면 곽재구는 농촌 공동체의 흔적이 여실한 하층민의 삶을 매개로 하여 자분자분하게 광주의 원체험을 확산시 켜나왔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시에서는 초기 황지우 시에서 보이는 자연과의 불상용의 관계가 보이지 않고 언제나 따뜻한 교감으로 다가서면서 이 산하에 핀 각양각색의 꽃으로 광주를 찾아간다. 그러한 와중에 우리의 삶에 드리워진 분단의 현실을 만나고 있다.
① 대전차 장애물 징검다리처럼 코스모스 꽃길 위에 놓였습니다
만세교 지나 함흥 여관집 큰아들 기선이 아재
이곳 바다에서 사십 년 동안 소주병 붙들고 울며 살았습니다
돈은 벌어서 뭐해 고향에 다 있는데
밤이나 낮이나
지나는 사람 붙잡고 소주 한잔씩 권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헌 오징어처럼 파도에 떠밀려 죽었습니다
- (화진포)에서
② 칡꽃 향기 달빛 쏟는
선운사 도솔암에서 하룻밤 비럭잠을 잤습니다
밤늦게 최승자의 시집을 읽는다는 처녀보살은
광주에서 왔다는 말 듣고 어쩐지
내 행장에 최루탄 냄새 나더라고 웃었습니다
-(도솔암 풍경)에서
③ 해바라기 씨를 까며 해뜨는 만주벌판 달렸습니다
봉천에서 두만강 기슭 도문까지 달리는 증기기관차엔
오십 년 전처럼 횐옷 입은 조선 사람 가득 탔습니다
오십 년 전에는 차라리 행복했습니다 그땐 35선도
대전차 방어용 콘크리트벽도 미군 사령관도 없었습니다
찢긴 삼베옷 하나로 눈 덮인 광야에서 잠들며
독립의 이팝 한 그릇 오로지 꿈꾸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을 불렀습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나게 불렀습니다
수수술 한잔 볼 붉히며 기차는
칙칙폭폭 해지는 만주벌판 달렸습니다
-(오십 년 후)
①은 얼마간의 시간을 내서 시의 화자가 동해안의 화진포에 갔을 때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죽은 사람을 만나 쓴 시이고, ②는 선운사를 갔을 때, 그리고 ③은 중국여행을 가서 쓴 시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경어체의 담백한 서술형을 택함으로써 그가 만난 풍경을 매우 정밀하게 그하고 차분하게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살필 일은 그가 광주에 생활근거를 두고 있으면서 쉴새없이 유동하고 있다는 점이다.《서울 세노야》는 기행시집으로 불릴 만큼 시의 화자가 떠돌고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리고 그 기행에서 어김 없이 오늘의 조국현실을 관통하고 있는 분단의 상처를 만나고 있다.그는 그렇다면 광주를 떠나고자 계획하고 있는가. (광주에서 시 한 편 쓰기)라는 시를 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평일 날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이미 '반동'이 아닌가 눈치를 봐야 하길 어쩐지 켕기는 화자의 고백은 다음의 진술에서 확실하게 연표된다.
광주에서 살기 위해서는 힘이 든다
아니 세상에서 살기란 힘이 든다
세상에서 적당히 살기란 어렵고
광주에서 그럭저럭 살기가 더욱 어렵다
-(광주에서 시 한 편 쓰기)에서
그러나 이 진술에서 유의할 일은 '이 세상'과 광주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이다. 결국 광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한 사람살이를 향한 몸부림은 곧 이 지상의 진실된 사람살이의 몸부림이며 그것은 등가를 이루어 우리 삶을 재촉하고 있다. 그는 광주를 얘기한다.
연심이 고모 아는 사람 없다
그 아들 두칠이 아는 사람 없다
토벌대에 잡힌 산사람 낱편 구하기 위해
연심이 고모 토벌대장에게 몸 주었다
애기 적부터 몸달았던 만수
웃으며 긴 밤 내내 연심이 고모 껴안았다
잡혔다던 남편 석루관 계곡 시체로 발견되고
남편 대신 열 달 만에 아들 하나 얻었다
연심이 고모 슬픔 북두칠성처럼 빛났다
연심이 고모 섬진강 물가에서 두칠이와 살았다
아버지 바꿔 두칠이는 어릴 적부터 푼수
나이 서른 되어서야 광주 건축공사장 일 나갔다
잡부 일 보름 만에 두칠이 광주에서 죽었다
바보 두칠이 금남로에서 왜 사람 패냐고
공수대원에게 달겨들다 칼 맞아 죽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피 쏟으며 죽었다
연심이 고모 미쳐 뛰다 줄초상났다
석루관 섬진강 물가에 피 쏟으며 죽었다
칡꽃 향기 얼얼한 늦여름 지아비
쓰러진 그 자리에 농약 먹고 죽었다
- (연심이 고모)에서
이 땅 현대사의 살점을 이루는 민중사의 대표적 전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이 시는 광주란 곳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곡절을 얘기하고 있다. 결국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이땅의 무지렁이 민중이고 한 시대의 가해자는 또 다른 시대에 피해자로 뒤바뀌어 도대체 누구를 증오해야 할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만든다. 바로 그러한 총체적 얼크러짐이 광주의 나날인 것이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분노도 없으며 일방적인 절규도 없다. 곽재구가 찾아내는 것은 사람살이의 저 깊은 안창인 것이다. 그러므로 광주문화원을 지키는 전경들이 빗물을 섞어 허기를 채우는 광경을 보면서 식민지의 설움을, 식빈지 종주국의 잔혹한 착취를 찾아내지만 동시에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서는/도저히 견딜 수 없는 그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람살이를 관통하고 있는 사랑 찾기는 (하야시 카즈오 씨의 오월행)이라는 시에서도 이어지고 연변의 풍경에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정녕 사람의 사랑에 환장한 시인이다. 그것은 거꾸로 사람의 사랑에 대한 절망의 예증이기도 하다. 누가 있어 그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늦도록 기차를 기다리면서 톱밥난로의 가냘픈 온기에 서로의 어깨를 겯고 살아가는 모습에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준 이 눈물 많은 지인에게 진실된 참으로 따뜻한 사랑 한줌 건넬 수 있을 것인가. 가끔 소박한 사랑 앞에 절벽을 느끼는 것은 사람의 일일 것이다.
《매장 시편에 이어《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을 낸 임동확은 곽재구에 비해 훨씬 단호하다. 그는 말한다. "오월은 화두다 또는 거대한 벽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시는 그곳에 새겨진 음화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그는 아직 광주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에게 5월 광주는 너무도 확실한 현재이다. 80년대초 박몽구가《십자가의 꿈》에서 보여주었던 처절한 투쟁과 현장 검증을 지금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방식은 다르다. 임동확은 거의 같은 주제를 희랍신화에 기대어 현란하게 때로는 아름답게 묘파하고 있으며 이번의 시집《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은《매장 시편》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다. 그것은 앞의 시가 장시라는 한계 속에서 총자루를 숨기고 죽음의 그림자를 숨긴 것인데 비해 이번의 시정이 단형의 서정시라는 점에 연유한다. "싸우다 죽으나 도망가다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구절을 그대로 원용한다면 광주를 떠나다 죽으나 살다 죽으나 광주는 광주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광주는 지독하게도 피 배인 설움을 강요하는 진원지이다.
별빛 하나라도 그냥
깜박이지 않을 것 같은 봄밤을
그대여, 특별한 믿음도 없이 흘러가는 게
조금은 두렵고 쓸쓸하지 않더냐
아무도 손짓하여 부르지 않는
비탈진 시대의 벼랑을 돌아
한 고개 또 한 고개
노란 씀바귀로 숨차 넘으며
새 날을 꿈꾸고 기도하는 우리들
유성의 긴 꼬리를 닮은 사랑이여
보았느냐, 처음엔 가슴 벅찬 밀물이더니
밀물같이 성난 그리움이더니
잊으려, 잊으려 할수록
더 사나운 물결로 뒤채여 오는 저 흰 파도
그러나 문득 깨어나면 상처뿐인 저 바다
완벽하려 할수록 뒤틀린
저 진흙탕 갯벌같이 비린 삶을.
몇 번이고 까무라치다
한 떼의 응혈을 쏟으며
끝끝내 발가벗은 노을로 달겨드는 눈물을.
-(葉信(엽신))에서
아무도 부르지 않는 "비탈진 시대의 벼랑"을 통과하면서 이 젊은 시인은 "몇 번이고 까무라치다"응혈을 쏟으면서 지금 광주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므로 광주에서는 휴전이란 불가능하다((잃어버린 우산)).언제나 눈 찔러오는 응혈의 아픔이 어디에서나 계속된다. 그 아픔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떠난다. 또한 그 아픔을 이제는 잊을 만하지 않느냐고 가해자들은 노릇노릇한 표정으로 다그친다. 결국 폐허이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여기는 팔십년대 내 고향 광주.
끝까지 파헤치면 그리움의 뼈무덤, 그 참담함과 살을 섞는 분신들
그리고 무너진 전선마다 영원히 푸른 상록수 그늘
그리고 그 곁에 쉬어가며 샘물을 마시는 순례자들‥‥
-(다시 부르는 노래)에서
아무도 남아 있지 않고 이제 광주는 희미한 상록수의 그림자만 있을 뿐 그리고 이따금 성지순례하듯 들러서 퍼가는 샘물로만 존재할 뿐 시인에게 광주는 폐허인 것이다. 거기서 시인은 누구인가. 그는 정직하게 부끄러워한다.
싫어, 싫어
피,
피, 피.
모두들 이런 식으로 살려고
총을 들었던 게 아니야
그러다가 개죽음 했던 게 아니야
그건 나
나, 나, 나
삶은 과학이 아니라며
열정만도 아니라며 반항하고, 거부하고
그리하여 사랑의 몸체를 꿈꾸며
날마다 남 몰래 탈주를 꿈꾸던 자
-(나)에서
이 시의 뒷 면에 그는 "그런데, 지금, 난, 누구인가"라는 혹독한 질문을 퍼부으면서 그날의 진리, 그날의 아름다움 앞에서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모두라는 것을 깨닫는다. (생존자의 비망록)을 위시한 많은 시편에서 그러한 과정을 반성하고 있다. 그러므로《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은 광주를 호명하는 호출부호이며 그것은 또한 삶을 긴장시키고 반성시키고 그리하여 진리와 진실로 나아갈 수 있는 한 통로로 이 지상에 세워진 이정표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이제는 아름다운 것들은 죄다 피 냄새가 나고
그대여, 그만큼씩 환멸과 고통의 그림자가 커가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하고 싶어집니다
이제 누구든 행복할 권리도 있지만 싸울 의무도 있다는 것을
-(시작과 끝의 보고서)에서
눈을 떠봐
이곳은 상징의 늪이야
무덤이고 흔들릴수록 빠져드는 모순의 수렁이야
그래 이제 때가 왔어
부드러운 직설 같은 진눈깨비
진눈깨비 속에서 너희들 첫 소망을 말해 보렴.
난 이제 거리로 종을 치러 가기로 했어.
-(눈 오는 날)에서
젊은 시인은 이제 거리로 나와 종을 치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며, 행복할 권리와 싸을 의무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 그 싸움에 축복 있기를! 모쪼록 거리로 나온 그가 아스팔트 위의 굳은 피딱지만 보고서 슬퍼하지 않기를!
3
이제까지 세 시인의 시집 뒤편에 웅크리고 있는 광주를 중심으로 얼마간 살폈다. 광주는 아직 젊은 시인의 상상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마그마임을 밝힌 셈이다. 그런데 유의할 일은 이들의 표출형식이다. 이것은 그들의 시를 이루어 나가는 어조나 언어 등을 소상히 살펴야 충분히 드러날 일이지만 우선 언어적 특징만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 과제를 넘기기로 한다.
전편을 읽으면서 먼저 떠오르는 일은 이들이 모두표준어로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언어를 채택함으로써 광주가 지닌 의미의 확산에는 기여하고 있지만 시의 실감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미흡한 점이 느껴진다. 그것은 광주의 고유한 체험은 광주지역의 언어로써 씌어질 때 그 감동의 폭이 커진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가령 황지우의 시편에서 청천벽력 같은 시의 감동을 낚아채는 시는 그가 광주지역의 방언으로 시의 중심을 삼고 있을 때이다. "내항선이 배때기로 긴,"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이 징헌 놈아," "도라무깡"등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어디론가 끌고 간다"라는 구절에서 보듯 전라지역의 방언으로 그 시의 테마를 끌고 갈 때 성공적인 작품을 이룬다.
이 점에서 곽재구와 임동확의 시적 발상법은 현저히 다르다. 특히 곽재구는 우리 말에 내재해 있는 리듬을 얹어 시를 쓰고 있으므로 이러한 극적인 시편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시가 노래나 부르스를 차용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또한 임동확의 경우 자신의 원체험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희랍신화 혹은 교과서적 진실에 조회하여 형상화함으로써 너무 단정할 뿐 우리의 심장을 뻐근케 하는 감동은 적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닌다.
바로 이러한 편차가 광주를 원체험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으로 자신들의 시를 건설하고 있는 종차(種差)를 형성한다고 하겠는데 이에 대한 검토가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