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변혁기의 문학적 대응 양상 / 박몽구와 채광석의 경우. 강형철(시인의 길 사람의 길, 예하, 1994. 3…
본문
변혁기의 문학적 대응양상
-박몽구와 채광석의 경우
강형철
1. 머리말
폭동·반란·사태·민중봉기·민중혁명 등 다양한 용어로 So년 5월은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용어로 규정 지어야 할 것인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한 의미규정은 각각 일정한 역사 단계 속에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사회구성체의 역량에 기초한 역학관계에서 규정되거나 전취되기 때문인데, 아직 어느 계층 흑은 계급도 결정적으로 승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 개념은 여러 가지로 규정 되어나 갈 것이다.
그러나 80년 5월을 통과하여 중반기를 지나고 있는 이즈음까지를 살펴보면 가위 이 시기를 대변혁기 혹은 혁명기라 규정 지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일들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혁명이란 하나의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고차원 적인 사회경제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때, 흑은 이러한 사회적 전환 과정의 집중화된 형태로써 구지배계급에서 혁명적 지배계급으로 정치권력이 이행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이 말은 다소 성급한 규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80년 5월이 제기한 문제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범박하게 말해서 "민중들의 주체적·조직적 참여 없이는 우리 시대의 사회변혁 운동이란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변혁 주체자와 변혁 지향자들에게 제출하여 대중운동이 기층운동·반제 민족운동 등으로 질적한 도약을 시도하도록 제기한 점을 비롯하여 그동안 수많은 성과와 좌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우선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의 So년 5월이란 돌연한 계기 혹은 그 사건 자체로 고립적인 안목에서 정립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해방이라는 커다란 명제에 참답게 복무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사의 예를 갑오농민혁명, 3·1운퐁, 6·10투쟁, 그리고 가까이는 4·19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러한 운동의 봉우리에 바쳐진 이름없는 전사, 혹은 민중들의 투쟁의 도정과 맥을 같이하는 싸움의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지금 이곳'을 문제 삼을 경우 가장 가까이 있는 80년 5월을 떠나서는 모든 논위와 방향 정립이 올바른 도정을 확보할 수 없으리라 판단된다. 본고에서 80년 5월 이후의 이 시기를 변혁기 또는 혁명기로 지칭하는 이유도 또한 거기에 있다.
혁명기의 변화는 우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기본 모순이 충돌하며 새로운 생산양식을 건설함에서 찾아볼 수 있을 터인데 이러한.기초 위에 있는 정치·문화 등의 제반 영역도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며 변화 발전해 나갈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상부구조의 변화양상은 모두 심각한 방향으로 격절·변화·전진해 나갈 것인데 문화부문 혹은 문학부문 또한 그 예외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문학부문을 살펴볼 때 가장 큰 변화로 문학부문보다는 상위 부문이라 할 수 있는 문화운동부문과 어떻게 매개되어져야 할 것인가가 문제로 제기되었고 또 이러한 문화운동부문은 총체적인 운동부문과 어떻게 관계 지워져야 할 것인가로 발전, 제기되어 왔다. 또한 문학부문운동 자체 속에서도 시·소설 등의 장르 자체는 어떻게 관계 지워져야 할 것인가, 혹은 그러한 관계를 제기하기에 앞서 각 장르가 갖고 있는 특성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할 것인가가 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재 검토 혹은 변증법적 파악이 개시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아니 더 쉽게 말하면 참된 민중에게 복무하는 문학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80년대 초기 운동으로서의 문학, 문학으로서의 운동, 시의 시대, 시의 유격적(避擊的) 감수성 등등의 표현으로 그 일단을 펴보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러한 많은 쟁점과 논의들을 점검하면서 재정비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쟁점 점검과 작품의 실제적 검토는 총체적이고도 과학적인 운동을 지향하는 모든 이에게 필수불가결한 일일 것이며 그것은 또한 80년 5월의 의미를 정확히 계승·발전시켜 죽은 사람, 다친 사람에게 또 다른 죽음이나 상처를 안겨주지 않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엄밀하고도 과학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점검의 한 예로 작성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는 아니다. 다만 80년대 이후 그러한 많은 논의의 생산자 혹은 축으로 활동한 두 사람의 시집을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 특히 시와 운동 또는 혁명기 시의 대응양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박몽구와 채광석의 경우로 한정지은 이유는, 비교적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었을 뿐 아니라 글의 진행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그들이 최근 우리 시의 장점과 단점을 전형적으로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 박몽구의 시집《 십자가의 꿈》
박몽구 시인의 시집 《십자가의 꿈》은 75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된 내용은 So년 5월의 현장증언과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 그리고 그 의미의 천착으로 되어 있다.
시집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와《거기 너 있었는가》를 '나남'과 '청사'에서 1982년, 1984년도에 상재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시작활동은 매우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은 박몽구의 작품집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를 전망하는 자리에서 "투박하고 거친 곳이 적잖이 눈에 띈다. 기법상으로 덜 다듬어졌다고 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질박함은 어떤 면에서 남이 가지지 못한 그만의 자산이다"라고 평가한 후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시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과제를 가장 대범하게 수용하여 용기있게 펼쳐 보인 것이 세 번째 시집이 갖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과 대상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라는 말이 그의 천재성이나 특이성이라는 말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올바로 민중에게 복무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집은 광주항쟁의 배경, 전개 과정, 결말, 항쟁 이후 등이 차례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김명인의 지적처럼 "일관된 이야기를 가진 연작서사시도 아니고 충실한 기록시도 아니다. 다만 80년 5월 남녘을 할퀴고 간 폭풍 속에서 살아 남은 한 젊은 시인의 의식에 깊이 각인된"날들의 의미를 현재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확인하며 독자들에게 혹은 자기 스스로에게 "부리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시집인 것이다. "그 고향,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어느새 돌아가 있고 잊고 싶어도 기어이 꿈으로 살아오는 (‥‥) 두렵고 치떨리는, 그러나 사랑하는 고향 오월의 광주로"되돌려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함을 가르치는 시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반적인 평가 이외에 그의 시집 《십자가의 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보이며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그 점을 검토하기 전에 혁명기의 문학적 대응양상 혹은 So년 5월 이후의 문학적 대응양상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 아직 분단 극복의 실현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명제가 요구하는 문학은 우리의 참된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문학이며 그러한 논의의 예가 '민족문학론'이며 '리얼리즘문학론'이다.
이러한 문학론에 바로 선다는 것은 항상 당대의 사회·정치 상황과의 전면적인 몸싸움에 뛰어든다는 일이며 문학의 형이상학적 자리매김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이고, 정치·사회현실의 극복·광정(匯正)을 위한 제반 운동에 어깨걸고 나아가는 문학의 자리를 확보하는, 이른바 운동으로서의 문학에 선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학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역사의 참된 주체를 민중으로 파악한다는 입지점에 위치하는 것이고 또한 민중의 참된 힘에 대한 신뢰에 뿌리 내린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변신이란, 80년 5월이 전체 우리 역사의 인간해방투쟁의 한 고리로 통합 파악되어야 한다는 말이 시사하듯 근대 이후, 특히 70년대 이후 계속된 민중·민족문학론의 변화양상과 연계되어 평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변화양상이 전면적으로 부상해 나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할 때 '80년 5월 이후'라는 한정어가 갖는 의미가 그 유효성을 획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변화양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될 수 있겠으나 시부문에 한정시켜 살필 때, 형식과 내용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서사구조를 가진 시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yl에는 짧은 이야기시 또는 같은 주제를 여러 가지 이야기로 변주시키는 장시 혹은 연작시가 속할 텐데, 이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와 전통적인 서정양식인 시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어의 폭넓은 수용이 전개된다(물론 이 점은 선배시인들, 특히 신경림 시인에게서 힘입은바 지대할 터이지만).
또한 80년대 이후의 시로 한정짓기 어려운 점이지만 언론기능을 가진, 아니 소언론의 역할을 담당한시의 등장을들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작자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인물시가 대거 등장하고 있는 바 이 또한 So년대 이후 우리 문학담당자들의 세계관의 변화양상을 추출할 수 있는 근거를 이룬다고 하겠다.
하여튼 이러한 변화 혹은 능동적 대응양상은 결국 형식과 내용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문학과 대중화의 문제, 창작방법론과 세계관 등등 문학의 원론적인 문제로 심화·확대되며'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깊은 천착이 없어도 박몽구의《십자가의 꿈》은 최근 간행된 시집 중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십자가의 꿈》은 이러한 제반양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을뿐더러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가 80년 5월을 직접 체험하고 운 좋게(?) 살아 남아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는 일정기간 동안.잠행을 체험한 이후이며 또한 법정에 포승줄로 묶여 있었던 이후의 일이다. 전사(戰士)는 혁명기간 동안 싸우는 일이 급선무요 쓰는 일에 틈이 없다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그는 "혀를 빼문 채 아스팔트에 나동그라진 주검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또한 봉기 이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갔다가도 잠복 중인 형사들에게 붙잡혀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주는 조그마한 행복을 잃을까 싶어 되돌아오곤 했던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이제 이 길만은/아무도 가로막지 못하리라"는 다짐의 자리에 돌아오는 과정이 그려진 두번째 시집《거기 너 있었는가》를 지나 자기의 자리를 찾았을 때 거기에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가 직접 체험한 5월이었다.
그러나 80년 5월을 시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써야 되는 일이었다.
이 점에서 80년 이후 소집단 운동. 혹은 동인운동의 중요성과 역할이 두드러지는바 그가 그런 힘을 얻어 발표한 지면은 그가 동인(同人)으로 속한 '5월시' 동인지 제4집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였다.
물론 이 점이 박몽구 한 개인의 주체적 결단과 시적 성실성을 폄하하는 얘기가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이는 곧 사회 전반적 상황의 열악함을 동지적 결속 속에 깨치고 나간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여기에 박몽구 시인은 이 시집의 1부를 이루고 있는 25편의 시를 민중 앞에 제출한 이후 1년이 지난 85년도에 다시 2부를 이루는 25편을 발표한다. 그리고 25편의 시는 이번 시집을 내는 과정에서 한꺼번에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각각 일정한 편차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편차란 일정한 발전·변화의 양상이다.
먼저 1부의 시 25편을내용면 중심으로 살펴본다.
1부 25편의 시는 실제로 광주 5월에 대해 확실한 상황을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은유(隱喩)나 직유(直楡) 등의 방법으로 한발 뒤로 물러선 자세로 규명하고 있는데, 특히 그 당시 실제적인 투쟁전사였던 기층민중의 활약상이 25편의 시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확인될 수 있듯이 작자 자신이 민중의 힘에 대한 신뢰의 깊이가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이를 부연하면, 25편의 작품 중 봉기 과정의 상황을 증거하는 시는(영안실 풍경), (금남로 탈환의 대낮), (남의 무대에 서서), (대자보를 붙이며), (아무도 흩어지지 않았다), (어떤 유산)등 6편에 불과하고 광주 이후의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서시), (다문 입 속에), (거짓 역사 저편에), (아버지의 꿈)등 이 작자의 일방적인 의미부여 혹은 결단의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봉기의 실제 주역이었던 기층민중들의 활약상은 (금남로 탈환의 대낮), (아무도 흩어지지 않았다)에서 보듯, 한 소년으로, 구두닦이와 시장의 닭집 아주머니, 황금동 누이 등으로 스케치하듯 부차적인 측면으로 조명되어 있고, 주되게는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혁명에 대한 의미부여라고 할 수 있는 (꼭 다시 오리니)에서 그가,
이날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지 말아라. 이 날은 폼페이 최후의 날 거리에 나선 자 모두 목숨을 바쳤듯이, 1960년 4월 앞잡이가 쏜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굴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외치던 그날처럼, 그날의 하늘처럼 꼭 다시 오리니
라는 막연한 혁명의 재도래에 대한 기다림, 혹은 일종의 저주와 절망적 몸부림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연유도 이에서 밝혀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80년 5월의 좌절과 희망에 운동권 학생들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음은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계기 혹은 매개의 역할이지 참된 주체는 민중이라는 점의 확인이 핵심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시가처음 발표된 84년초의 상황을 살필 때 이 시편들이 가진 적극적인 의의는 여전히 큰 몫으로 남는다. 몇몇 단편적인 시도는 있었지만 광주 5월을중심 테마로 하여 서사구조를 갖추어 증언해 낸 것은 이 작품이 거의 최초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실의 확인, 혹은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처음으로 제출될 때에 느껴지는 전율 혹은 신선한 투쟁의지 등이 겹쳐지며 일으키는 감동 또한 그의 몫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시인은 항상 민중과 함께 하는 시인이고 또한 민중의 힘에 자신의 역량을 충전시키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가는 자라 칭할 때 그로부터 일년이 지나 '5월시' 동인지 제5집에 실린 25편의 시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 발전됨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그가 역사에 살아 움직이는 시인이라 불릴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한다고 할 수 있다.
광주 5월의 체험이 2부의 시 25편에서는 1부에서보다 훨씬 진실되게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그 혁명의 참된 의미에 한결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즉 그 날의 발단과 과정이 (닫힌 교문 앞에서)에 실려 있고, 진압군의 실상을 그린(일정표 속의 모르모트들)등을 위시한 14-15편의 작품이 실제의 상황을 담고 있으며, 광주 이후의 일이 7-8편으로 적어지고 그 대신 광주 5월에 대해 작자가 전반적인 의미규정을 시도한 작품으로 나머지가 구성되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또한 그날의 실제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뽐내는 제스쳐 일류 탤런트를 압도하던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
깡통을 쥐던 무뢰한들이 서서
비정의 총알들을 막고 있었고
-(진정한 주인들)에서
거짓의 폭력 앞에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을 때
홀연히 당신들은 왔다.
언제나 시민들의 발이었던 당신들은
다시 한 번 시민들의 마음을 실어 나르고자 왔다
(‥‥)
당신들이 핸들 하나에 걸린 가족의 생계며
아가리를 벌린 공포도 마다않고
빗발치는 총탄 앞으로 삶의 무기를 던진 날
산산이 흩어졌던 사람들은 찬 마음으로 다시 모여
자욱한 화약 냄새에 묻힌 땅을 찾아나섰다
-(자동차를 앞세우고)에서
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날의 실제적인 주역들인 이름없는 전사, 기층민중들의 모습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이 날의 종언을 검토해 보면 기층민중들은 학생들에게 당신들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 우리가 대신 싸우겠노라고 죽음의 벽 앞에 당당히 나섰던 일이 많은데 바로 이 점을 그는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부의 맺음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에서 우리는 앞서 보았던 작품에서보다 훨씬 더 진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남쪽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타고 있다
비록,보잘것없지만 이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오래 잃었던 양심을 되찾게 해준 곳
너는 안으로 안으로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다시 힘차게 일어나고 있다
광활한 나주평야의 쌀이며, 꿀맛같이 녹아나는 송정리 무우
(‥‥)
아들 딸들을 서울의 공단으로 올려보내고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실업자들이 우글거리는 곳
네게 가진 것 모두 내주고
남은 것은 아쉬움 아닌 임방을 노래가락처럼 질긴 찬이다
불같이 치솟는 새날에의 그리움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앓는 아픔을 골고루 간직한 곳
아니 이 모든 아픔의 근원인 한국의 할렘
끝내 그리움을 포기하지 않는 한국의 팔레스타인
아아 너는 마침내 한가닥 희망 뜨겁게 타는
약속의 땅
-(약속의 땅)에서
이러한 변화는 3부의 25편 시를 검토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우리는 그날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을 만나게 되고 시적 감동이 더욱 크게 울려옴을 느낄 수 있다.
3부의 시편은 실제로 봉기 현장 앞에 독자들을 데려다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방송이 타던 날), (딸기장수 이형), (용달차에 마이크를 달고) 등등 광주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유언비어로 변신하던 일들이 실제로 사실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사실의 단순한 복원이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그 날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그 정신을 오늘의 역사 앞에 살려 인간 해방의 장정, 아니 분단극복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 정신과 실천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감추어지고 은닉된 상황에서는 그러한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그러한 실천은 그 이후의 일에 속한다.
또한 그 점이 《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 혹은 장점, 사랑의 정신 등을 배제하고 그가 사실의 확인 과정에 얼마나 깊은 정성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가에 우선 초점을 맞춰 탐구해 본 이유이기도하다.
이를 통해 볼 때 그의 (십자가의 꿈) 연작시 75편은 1부, 2부,3부의 진행 과정 속에 일정한 편차를 지니고 있으나, 그 편차는 그가 민중 앞에 자기의 자리를 확보하는 역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으며, 또한 변혁기 혹은 혁명기의 시적 대응양상의 하나인 민중에의 참된 신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그의 시편이 갖고 있는 암측의 시절 속의 빛 혹은 언론의 기능을, 아울러 살필 수 있었다. 그러한 장점 혹은 튼튼한 역사·사회의식 속에 3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목소리, 진실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사람들을 슬퍼할 때가 아니다
글과 돈과 허풍들이 꼬리를 잽싸게 사린 자리에서
한 사람을 지키기에는 너무도 거추장스런
화약 냄새들은 철쭉꽃들을 쉽게 뭉갤 수도 있었는데
더 이상 아무 것도 버릴 것 없어
맨몸일망정 뜨겁게 쇠 앞에 던져
우리들의 뼈가 묻힐 자리를 지킨 사람들
(‥‥)
지금은 부끄러이 손을 부빌 때가 아니다
당신들이 버리고 간 몫을 집어들 때다
한아름 시들 꽃 대신 우리들의 몸을 사를 때다
하나가 또 하나의 어깨를 적고
다시는 풀어지지 않을 벽이 되어
해일같이 개벽같이 치달아야 한다
온누리 고루 동트는 그날까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해일같이 치달아)
이상에서 그가 80년 5월의 민중봉기 속에서 요행히(?) 살아남아 이를 형상화시킨 75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읽은 것처럼 이러한 문학활동이 갖는 전체 운동과의 맥락이 과연 반드시 옳은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인간해방의 장정에 일보 전진을 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미덕과 아울러 흠으로 지적될 수 있는 점을 생각해 보지는 것인데, 가령 1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민중의 힘에 대한 구호적이고 다소 맹목적인 신뢰표시이다.
아울러, 모든 시의 끝에 가서는 으레 광주 5월의 넋 앞에 불려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도, 살아 있는 유가족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좀 묘한 논리이겠지만, 우선 작풍으로서 내적 필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니 참된 운동성은 또한 예술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탈해 있다. 좀 투박하게 표현하면 폭폭하고 갑갑하다.
이 점은 물론 그만이 보이고 있는 결점은 아니며 또한 그러한 폭풍이 끝난 뒤 해야 할 일, 살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할 때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주는, 퍼 터지는 현실이 주는 중압감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작자의 무성의나 혹은 매너리즘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 점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또 한가지는 앞에서도 지적되었지만 광주 5월이 너무 산만하게 처리되는가 하면 때로는 시적 체험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이후의 작업이 될 수 있겠지만 (십자가의 꿈)이 본격 서사시의 형태로 해체구성되어 우리 민족 해방투쟁의 커다란 맥락 속에 통합되어 형상되었으면 한다. 이러할 경우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은 동어반복이나, 의무적 발언 등이 훨씬 적어지는 강점을 지닐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할 때 이 시집이 이후에도 계속될 민중해방투쟁의 한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영예를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요구가 어쩌면 그에게 과중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분단 이후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인 광주 5월을 직접 체험하고 살아남은, 정직하고 용기있는 시인임을 떠올릴 때 이 요구가 그리 무리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믿는다.
3.채광석의 시집《밧줄을 타며》
박몽구 시인의 경우 80년 민중항쟁을 중심으로 시집을 구성하고 있다면, 채광석 시인의 시집《밧줄을 타고》는 봉기 이전과 이후의 민족·민중운동의 복판에서 우러나온 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장점은 가장 소박한 사람에게도 이 시대 민족·민중운동의 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며 또한 그러한 싸움에 같이 어깨걸고 싸워 나갈 것을 줄기차게 요청하면서도 그러한 몸싸움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인생 역정이 숨김없이 남겨져 있어 이른바 단순히 구호라든가 생경한 관념토로에 그치지 않는 작풍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임헌영은 그의 이러한 모습을 '큰집'이 때냄새를 거느린 '행동적 민중상'으로 지칭하면서 "지식인의 자기합리화나 반성으로서의 민중의식이 아닌 실천과 운동적 차원으로서의 민중문학을 여는 앞장에 서서 이론만이 아니라 문학운동의 성화를 불붙게 한 점화자의 시인이요 비평가"로 평하고 있다.
그의 전 작품은 운동 과정에서 산출된 것인데 이를 좀 자세히 펼쳐보기 위해 그의 실제 삶을 살펴본다.
그는 유신치하 학생운동의 장정에 합세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3년 꼬박 감옥을 경험하고, So년 5월이후에도 또 한 번 경헝하였으며 아직 정규대학 4년 과정을 졸업하지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른바'대학원 과정'을 홀로 이수하는 과정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평론활동을 활발히 함은 물론 현단계 민족·민중운동의 핵심에 서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분리되고 파편화된 삶을 강요하는 민족의 분단시대에 그러한 옹벽을 깨뜨리기 위한 싸움에 동참함으로써 한 개인의 삶과 전체 민중의 삶을 적절히 통일시키면서도 시를, 평론을, 그것도 탁월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유로 그의 시는 항상 문화운동 혹은 전체 운동과 맥을 잇고 있다. 그가 So년대 초반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주창하며 확립해 온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어려운 시절 묶어낸 시집에 차라리 어떤 감탄마저 느낄 수 있다.
이 시집의 골격을 보면, 1부는 80년대에 쓴 시, 2부는 70년대 초에 쓴 시, 3부는 70년대말께 쓴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편들은 초기 자유주의자에서부터 비롯되는 여러 경험과 사랑을 통과하여 이후 민족의 모순과 사회경제적 모순의 인식에 이르르는 긴 역정을 담고 있다.
시집의 배열 순서와는 다르게 l부의 시편들을 먼저 검토해 보면서1의 인생역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가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던 70년대의 풍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가정교사)나, 강제 입영으로 인하여 입대 인사차 교정을 찾았을 때의 풍경 (천리길)을 통해, 혹은 최전방에 배치된 경험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다음의 시에서 우선 살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민간인 통제선을 훨씬 너머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인근의 어느 산자락
수 십 년이나 인적이 끊겨 완전히 야산의 일부가 된
거기 옛 집터의 살구꽃 복숭아꽃은 철따라 피고 지고
해마다 살구며 복숭아며 저 흘로 떨어져 썩어가는데
이것들을 따먹던 아이들 서른이 넘었으련만
휴전선 일대에 대북, 대남 방송 스피커만 요란하고
이 집 주인들은 어디 살길래 소식 한번 없나요
-(집터)
분단의 뼈아픈 체험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에는 도달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범박하게 표현하면 민족 모순에는 닿아 있지만 그것의 핵심인 사회경제적 모순에는 그 인식의 깊이가 닿아 있지 않다는 말이다.
기다림을 익히리라
카랑한 목을 뽑아 진리를 외우고
쌓이는 낙엽을 거느리며
한 걸음 두 걸음 조용히 다지다가
자유의 여신이 찾아오는 그날
고이 목을 바치리라.
-(기다림)에서 (윗점 필자)
에서 살펴볼 수 있듯 자유를 기다려 목을 바치겠다는 자기의 다짐만 토로하고 있을 뿐. 물론 이때의 자유란 근본적으로 인간의 세계에 요청되는 자유라기보다는 소시민적 자유, 혹은 굶어죽을 자유를 방기하는 자유를 뜻하는 느낌이 더욱 짙다는 생각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꽃이 사랑을 표시하던 때는 갔다"는 시대적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고 또한 희망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고 있었다.
희망은
숨어 날을 가는 기다림
끝끝내 살아남아
절망의 목을 버히리란
음흉한 기대
사랑은
숨어 날을 가는 미소
끝끝내 살아남아
떨어지는 목에 끝을 바치리란
싯푸른 서릿발
-(희망과 사랑)
희망과 사랑과 기다림이 전투적 정서 속에 접맥되어 있다. 또한 그에게 아직까지 남아 있어 보이는 낙천적 세계관 혹은 너무 넓어 수많은 것을 포용하는 깊은 세계관의 일단을 펴보이는 해학의 정신으로 점차 무장되어 있다.
해학은 적극적 의미에서 전투정서의 충전도구가 아닌가. 그는 슬슬 투사로서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미치도록
미울 때
나는 웃는다
땀 속에 흐느끼는 세포들
마디마디 이겨지는 뼈다귀들
보듬으며 보듬으며
나는 웃는다
세포 하나에 사랑을
마디 하나에 자유를
새겨넣으며 새겨넣으며
나는 웃는다
미치도록 미울 때
-(미치도록 미울 때)
이러한 투사로서의 단련기에 가장 커다란 획을 긋는 체험을 그는 공주에서 겪는다. 동학혁명의 넋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이때의 감정을 그는 딴 책에서 시집을 묶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금치의 사랑노래'라고 하겠다는 말로 표시하고 있는데 이후 그의 넋과 정신은 그 뿌리를 찾고 민중의 바다에 도달하는 것이다.
바라보러 가야 한다
아직은 따사한 힘이거나 부드러운 위로일 수 없는 나의 눈
대학 4학년에 5년씩이나 머물다가 교도소에 갇힌
반정부주의자 양심범
분열주의자 자유의 투사
이 가시 박힌 눈 오만을 버리지 못한 이 눈을 후비고
꿈에라도
배워 먹은 지식, 문학의 심오한 예술성을 훌훌 버리고
국문이나 빠듯 읽어대는 사람들의
가슴 뻐근한 즐거움일 수 있다면
꿈을 꾸어야지
-(꿈)에서
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가장 깊은 사랑이자 존재의 기반을 이루던 시의 껍데기를 훌훌 버리고 그 알맹이로 복무하는 자리로 나서야 함을 그는 깨달은 것이다.
그러한 사전 준비와 긴 단련을 지나 결국 그는 돌아온다. 저 80년 민중 봉기의 피바다를 통과하여 민중의 곁에 정직한 사랑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시집의 2부는 바로 그러한 준비 과정의 시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채광석 시인의 경우, 그의 시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맥락을 통해 볼 때 광주 5훨은 돌연한 사건일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80년 5월 이후 남보다 한발 앞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작품을 민중 안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80년 5월 이후 그의 작품은 심한 고통의 역정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었으며 또한 방법의 모색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1부의 시편들은 80년 이후 쓴 시들인바, 이를 통해 보면 그 점은 명확해진다.
1부의 시편들은 변혁기 문학의 대응양상이 어김없이 반영되어 있으며 So년대 이후 민중·민주운동의 전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내면서 전체운동과의 매개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도시빈민운동의 한 양패인 이른바 목동 지역 문제를 한 아줌마의 신세내력을 통해 직조한 (목동 아줌마Ⅰ·Ⅱ), 농민운동의 한 양태로 제시된 소싸움을 주제로 한 (읍내로 가는 길), 운동 담당자의 실상과 애환, 고통을 노래한 (가을밤)·(국보)·(검은 장갑)등의 시에서 우리는 그 모습을 확인한다.
그러한 와중에서 타헙하거나 좌절하는 태도 혹은 방관하는 태도를(내 가슴속의 개)로 형상화시켜 스스로를 다그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유한마담을 풍자한 (개꿈), 탈락계층을 노래한 (웨딩드레스), 그러한 상황을 포괄적으로 노래한 (건강체조개론) 등을 보면 가위 그의 시는 이 시대의 민중사로 읽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시를 쓴다는 일은, 아니 살아간다는 일은 남아프리카 중앙교도소에서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형장으로 끌려가는(몰로이즈 연가)를 듣는 일인데,
더 이상의 숲은 없다
더 이상의 어둠은 없다
두려움 없이 투쟁의 길을 걸으리라
마지막 시 읊는 소리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똑똑하게 듣고 있었다
전기고문 물고문 매질에 울부짖는 벗들의 비명 소리
마침내 몹쓸 죄명을 매고 몸부림치는 벗들의 신음 소리
이땅의 몰로이즈들의 소리를 통하여
우리는 지금도 듣고 있다
몰로이즈여
우리는 똑똑히
지금은 일어설 때
일어나 해방을 쟁취할 때
그대의 피외침을 알아듣고 있다
피에 굶주린 이리떼는 으르렁거리고
눈멀고 질린 언론은 침묵하고 있지만
지금은 일어설 때
일어나 해방을 쟁취할 때
-(몰로이즈 연가)에서
를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편을 대하다 보면 자신이 민중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여타 시인들의 작품과 다른,그만의 독특함이다. 운동과정에의 안내 흑은 진정한 의미의 선전 선동 기능 등을 무시한 채 막연한 문학의 기법·방법에서 출발한 그에 대한 평가들이 오류에 빠지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측면에 있다.
더욱이 (가을밤)이라는 시에서는, 작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 거기에 '민청련이 간부였던 이을호 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민통련'의장인 문익환 목사, 또 이 시대 민주화 운동의 탄압자, 그 음험한 얼굴을 함에 그려 놓으면서 문익환 목사의 기도문을 인용하고 있는바 그 기도문은 그대로가 전율이다.
하느님 당신은 정말 계십니까
하느님 당신에게도 눈이 있습니까
하느님 당신에게도 마음이 있습니까
이 고통을 보고 이 고통의 소리를 듣고
이 모든 고통은 당신이 양심의 마음을 주신 때문이니
마음을 주셨으면 견뎌낼 용기도 주소서‥‥
-(가을밤)에서
여기서 볼 수 있는 간절한 염원은 그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극점과 잇닿아 있으리라 판단된다. 물론 어떤 형이상학적 종교에의 초월 흑은 도피라는 측면을 배제한 말이지만. 하여튼 이 시는 채광석 시인의 작품 중 중요한 작풍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과 훌륭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흠처럼 여겨지는 대목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감방의 체험들이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러한 상황을 혹여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가 문학주의자 혹은 문학주의로 매도해 버린 생각에 대해 재 점검이 요청된다는 점이다. 그 말은 문학이라는 것을 의지하여 그 외 다른 것과 구별지으며 요컨대 특권 혹은 이기심에 기초한 착취의 또 다른 변형이라는 점에 그 비판점이 있는 것이지 문학이 지닌 참된 힘에 대한 비판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요컨대 그의 작품이 좀더 형상화에 노력해야겠다는 정이며 이러한 노력이 방기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가 소시민적 세계관을 떨쳐 버리고 민중의 삶에 입각한 세계관에 기초한 삶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중의 삶이 해방되는 방법으로서 문학이 충실해야 한다는 말일 터이지 현재 민중이 주인되는 세계가 이미 전개 흑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좀더 문학작품상으로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점을 창작 주체의 태도 문제와 관련해서 살핀다면 혁명에 비해 문학은 지극히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소함도 한 사람의 일생을 버터며 이룩해 낼 만큼 귀하고 무겁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천착으로부터 그의 작품이 보다 맡은, 문학을 통해 인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 이른바 중간층을 겨냥한 문학으로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그의 시에서 전투성이 그의 초기 작품부터 보여지던 해학 혹은 해탈에의 유혹에 압도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우선 광주 5월에 대한 얘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그가 가진 정직성, 흑은 그가 이미 단련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의 명백한 규명과 거기에 따른 전투 정서의 개발은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검은 장갑), (스승과 제자), (국보), (위대한 나라)등의 작품에서 보듯 각각 이 시대의 근본적인 모순을 거덜내기 위한 몸짓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것이 우스갯소리로 떨어져 버린 느낌을 지을 수 없다.
해방의 노래꾼은 현실에 입각하되 그 현실의 진정한 변혁에 기여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싸움이 수반된다. 그런데,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해학으로, 웃음으로 해소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것이다. 이러한 낙천성이 서정적 저항시의 틀로 좀더 확대되는 것도 극복의 한 방법일 것이며 그것은 사회과학적 지식의 단순한 반복으로 기울어진 점토 불식시켜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흠을 그는 개인적 삶과 민중적 삶의 완벽한 일치 속에 극복함으로써 So년대 민중시의 한 전형이자, 진정한 싸움문의 전형을 이루어 나갈 것임을 굳게 믿는다.
4. 맺는 말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 글은 최근의 문학논의에 대한 본격적인 평문이 아리다. 다만 그러한 제반사항을 충실히 반영하여 어쩌면 혁명기 문학의 대응양상의 한 예를 구성함직한 두 사람의 작품집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정시켰다. 한편, 그러한 논의도 작품의 내용에만 일방적으로 치우쳐 진행되었다는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작품에서의 내용은, 형식과 함께 예술작품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조직적이며 근본적인 요소를 이룬다는 점, 내용은 결국 제재의 선택과 제재를 다루는 작자의 태도 및 특질을 결정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정리하였다.
그러나 미흡한 점은 또 있다. 가령 박몽구의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실제적인 내용, 즉 지식인의 자세 및 자기반성, 광주에 대한 역사적인 천착, 봉기에 대한 역사적 맥락의 탐구, 외세에 대한 정확한 저항의지 등의 검토에 미흡했다는 점이다. 또 채광석 시인의 작품에서 제한된 표현의 자유를 뚫고 모순의 본질을 폭로하여 그 극복에 육박하는 모습등도 검토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작품이 혁명기 혹은 변혁기에 올바르게 대응하고 있는 측면에 대해 소홀하게 언급하고 말았다는 자책이 인다. 이 점은 과제로 남긴다.
모든 과제를 떠나 광주 5월을 상대로 투쟁에 가까운 노력을 줄기차게 기울인 박몽구의《십자가의 꿈》이나, 민족·민중운동의 핵심운동 가로서의 삶의 궤적을 형상화한 채광석의《밧줄을 타며》는 몇 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중요한 민중시들 임은 틀림없다 하겠다.
그들의 과제는 먼저 그들의 몫이겠지만 그러한 과제는 인간해방의 대장정이 멈추어지지 않는 한 계속되어 나갈 것이며 또한 그러한 상황의 참된 해결이 참으로 이 두 사랑의 젊은 시인에게 "순수와 투명의 늪을 건너고 산을 넘는 고뇌와의 싸움 없이는 그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서정성"을 참되게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주지 않을까 싶다.
-박몽구와 채광석의 경우
강형철
1. 머리말
폭동·반란·사태·민중봉기·민중혁명 등 다양한 용어로 So년 5월은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용어로 규정 지어야 할 것인가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한 의미규정은 각각 일정한 역사 단계 속에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사회구성체의 역량에 기초한 역학관계에서 규정되거나 전취되기 때문인데, 아직 어느 계층 흑은 계급도 결정적으로 승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 개념은 여러 가지로 규정 되어나 갈 것이다.
그러나 80년 5월을 통과하여 중반기를 지나고 있는 이즈음까지를 살펴보면 가위 이 시기를 대변혁기 혹은 혁명기라 규정 지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일들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혁명이란 하나의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고차원 적인 사회경제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고 할 때, 흑은 이러한 사회적 전환 과정의 집중화된 형태로써 구지배계급에서 혁명적 지배계급으로 정치권력이 이행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이 말은 다소 성급한 규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80년 5월이 제기한 문제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범박하게 말해서 "민중들의 주체적·조직적 참여 없이는 우리 시대의 사회변혁 운동이란 끝내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변혁 주체자와 변혁 지향자들에게 제출하여 대중운동이 기층운동·반제 민족운동 등으로 질적한 도약을 시도하도록 제기한 점을 비롯하여 그동안 수많은 성과와 좌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우선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의 So년 5월이란 돌연한 계기 혹은 그 사건 자체로 고립적인 안목에서 정립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해방이라는 커다란 명제에 참답게 복무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역사의 예를 갑오농민혁명, 3·1운퐁, 6·10투쟁, 그리고 가까이는 4·19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그러한 운동의 봉우리에 바쳐진 이름없는 전사, 혹은 민중들의 투쟁의 도정과 맥을 같이하는 싸움의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지금 이곳'을 문제 삼을 경우 가장 가까이 있는 80년 5월을 떠나서는 모든 논위와 방향 정립이 올바른 도정을 확보할 수 없으리라 판단된다. 본고에서 80년 5월 이후의 이 시기를 변혁기 또는 혁명기로 지칭하는 이유도 또한 거기에 있다.
혁명기의 변화는 우선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기본 모순이 충돌하며 새로운 생산양식을 건설함에서 찾아볼 수 있을 터인데 이러한.기초 위에 있는 정치·문화 등의 제반 영역도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며 변화 발전해 나갈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상부구조의 변화양상은 모두 심각한 방향으로 격절·변화·전진해 나갈 것인데 문화부문 혹은 문학부문 또한 그 예외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문학부문을 살펴볼 때 가장 큰 변화로 문학부문보다는 상위 부문이라 할 수 있는 문화운동부문과 어떻게 매개되어져야 할 것인가가 문제로 제기되었고 또 이러한 문화운동부문은 총체적인 운동부문과 어떻게 관계 지워져야 할 것인가로 발전, 제기되어 왔다. 또한 문학부문운동 자체 속에서도 시·소설 등의 장르 자체는 어떻게 관계 지워져야 할 것인가, 혹은 그러한 관계를 제기하기에 앞서 각 장르가 갖고 있는 특성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할 것인가가 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재 검토 혹은 변증법적 파악이 개시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아니 더 쉽게 말하면 참된 민중에게 복무하는 문학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80년대 초기 운동으로서의 문학, 문학으로서의 운동, 시의 시대, 시의 유격적(避擊的) 감수성 등등의 표현으로 그 일단을 펴보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러한 많은 쟁점과 논의들을 점검하면서 재정비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다.
이러한 쟁점 점검과 작품의 실제적 검토는 총체적이고도 과학적인 운동을 지향하는 모든 이에게 필수불가결한 일일 것이며 그것은 또한 80년 5월의 의미를 정확히 계승·발전시켜 죽은 사람, 다친 사람에게 또 다른 죽음이나 상처를 안겨주지 않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엄밀하고도 과학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점검의 한 예로 작성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총체적인 검토는 아니다. 다만 80년대 이후 그러한 많은 논의의 생산자 혹은 축으로 활동한 두 사람의 시집을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 특히 시와 운동 또는 혁명기 시의 대응양상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굳이 박몽구와 채광석의 경우로 한정지은 이유는, 비교적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었을 뿐 아니라 글의 진행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그들이 최근 우리 시의 장점과 단점을 전형적으로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 박몽구의 시집《 십자가의 꿈》
박몽구 시인의 시집 《십자가의 꿈》은 75편의 연작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된 내용은 So년 5월의 현장증언과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 그리고 그 의미의 천착으로 되어 있다.
시집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와《거기 너 있었는가》를 '나남'과 '청사'에서 1982년, 1984년도에 상재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시작활동은 매우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신경림 시인은 박몽구의 작품집 《우리가 우리에게 묻는다》를 전망하는 자리에서 "투박하고 거친 곳이 적잖이 눈에 띈다. 기법상으로 덜 다듬어졌다고 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질박함은 어떤 면에서 남이 가지지 못한 그만의 자산이다"라고 평가한 후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시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과제를 가장 대범하게 수용하여 용기있게 펼쳐 보인 것이 세 번째 시집이 갖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과 대상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라는 말이 그의 천재성이나 특이성이라는 말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가 올바로 민중에게 복무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집은 광주항쟁의 배경, 전개 과정, 결말, 항쟁 이후 등이 차례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김명인의 지적처럼 "일관된 이야기를 가진 연작서사시도 아니고 충실한 기록시도 아니다. 다만 80년 5월 남녘을 할퀴고 간 폭풍 속에서 살아 남은 한 젊은 시인의 의식에 깊이 각인된"날들의 의미를 현재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확인하며 독자들에게 혹은 자기 스스로에게 "부리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시집인 것이다. "그 고향, 돌아가고 싶지 않아도 어느새 돌아가 있고 잊고 싶어도 기어이 꿈으로 살아오는 (‥‥) 두렵고 치떨리는, 그러나 사랑하는 고향 오월의 광주로"되돌려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 함을 가르치는 시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반적인 평가 이외에 그의 시집 《십자가의 꿈》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보이며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그 점을 검토하기 전에 혁명기의 문학적 대응양상 혹은 So년 5월 이후의 문학적 대응양상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 아직 분단 극복의 실현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명제가 요구하는 문학은 우리의 참된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문학이며 그러한 논의의 예가 '민족문학론'이며 '리얼리즘문학론'이다.
이러한 문학론에 바로 선다는 것은 항상 당대의 사회·정치 상황과의 전면적인 몸싸움에 뛰어든다는 일이며 문학의 형이상학적 자리매김으로부터의 완벽한 탈출이고, 정치·사회현실의 극복·광정(匯正)을 위한 제반 운동에 어깨걸고 나아가는 문학의 자리를 확보하는, 이른바 운동으로서의 문학에 선다는 것이다.
그러한 문학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역사의 참된 주체를 민중으로 파악한다는 입지점에 위치하는 것이고 또한 민중의 참된 힘에 대한 신뢰에 뿌리 내린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러한 변신이란, 80년 5월이 전체 우리 역사의 인간해방투쟁의 한 고리로 통합 파악되어야 한다는 말이 시사하듯 근대 이후, 특히 70년대 이후 계속된 민중·민족문학론의 변화양상과 연계되어 평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변화양상이 전면적으로 부상해 나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할 때 '80년 5월 이후'라는 한정어가 갖는 의미가 그 유효성을 획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변화양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될 수 있겠으나 시부문에 한정시켜 살필 때, 형식과 내용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서사구조를 가진 시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yl에는 짧은 이야기시 또는 같은 주제를 여러 가지 이야기로 변주시키는 장시 혹은 연작시가 속할 텐데, 이것은 소설이라는 장르와 전통적인 서정양식인 시가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어의 폭넓은 수용이 전개된다(물론 이 점은 선배시인들, 특히 신경림 시인에게서 힘입은바 지대할 터이지만).
또한 80년대 이후의 시로 한정짓기 어려운 점이지만 언론기능을 가진, 아니 소언론의 역할을 담당한시의 등장을들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작자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인물시가 대거 등장하고 있는 바 이 또한 So년대 이후 우리 문학담당자들의 세계관의 변화양상을 추출할 수 있는 근거를 이룬다고 하겠다.
하여튼 이러한 변화 혹은 능동적 대응양상은 결국 형식과 내용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문학과 대중화의 문제, 창작방법론과 세계관 등등 문학의 원론적인 문제로 심화·확대되며'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깊은 천착이 없어도 박몽구의《십자가의 꿈》은 최근 간행된 시집 중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십자가의 꿈》은 이러한 제반양상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을뿐더러 거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가 80년 5월을 직접 체험하고 운 좋게(?) 살아 남아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는 일정기간 동안.잠행을 체험한 이후이며 또한 법정에 포승줄로 묶여 있었던 이후의 일이다. 전사(戰士)는 혁명기간 동안 싸우는 일이 급선무요 쓰는 일에 틈이 없다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그는 "혀를 빼문 채 아스팔트에 나동그라진 주검들을" 직접 체험했으며 또한 봉기 이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갔다가도 잠복 중인 형사들에게 붙잡혀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주는 조그마한 행복을 잃을까 싶어 되돌아오곤 했던 착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이제 이 길만은/아무도 가로막지 못하리라"는 다짐의 자리에 돌아오는 과정이 그려진 두번째 시집《거기 너 있었는가》를 지나 자기의 자리를 찾았을 때 거기에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가 직접 체험한 5월이었다.
그러나 80년 5월을 시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써야 되는 일이었다.
이 점에서 80년 이후 소집단 운동. 혹은 동인운동의 중요성과 역할이 두드러지는바 그가 그런 힘을 얻어 발표한 지면은 그가 동인(同人)으로 속한 '5월시' 동인지 제4집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였다.
물론 이 점이 박몽구 한 개인의 주체적 결단과 시적 성실성을 폄하하는 얘기가 아님은 분명한 일이다. 이는 곧 사회 전반적 상황의 열악함을 동지적 결속 속에 깨치고 나간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여기에 박몽구 시인은 이 시집의 1부를 이루고 있는 25편의 시를 민중 앞에 제출한 이후 1년이 지난 85년도에 다시 2부를 이루는 25편을 발표한다. 그리고 25편의 시는 이번 시집을 내는 과정에서 한꺼번에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각각 일정한 편차를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편차란 일정한 발전·변화의 양상이다.
먼저 1부의 시 25편을내용면 중심으로 살펴본다.
1부 25편의 시는 실제로 광주 5월에 대해 확실한 상황을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은유(隱喩)나 직유(直楡) 등의 방법으로 한발 뒤로 물러선 자세로 규명하고 있는데, 특히 그 당시 실제적인 투쟁전사였던 기층민중의 활약상이 25편의 시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확인될 수 있듯이 작자 자신이 민중의 힘에 대한 신뢰의 깊이가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이를 부연하면, 25편의 작품 중 봉기 과정의 상황을 증거하는 시는(영안실 풍경), (금남로 탈환의 대낮), (남의 무대에 서서), (대자보를 붙이며), (아무도 흩어지지 않았다), (어떤 유산)등 6편에 불과하고 광주 이후의 이야기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서시), (다문 입 속에), (거짓 역사 저편에), (아버지의 꿈)등 이 작자의 일방적인 의미부여 혹은 결단의 양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봉기의 실제 주역이었던 기층민중들의 활약상은 (금남로 탈환의 대낮), (아무도 흩어지지 않았다)에서 보듯, 한 소년으로, 구두닦이와 시장의 닭집 아주머니, 황금동 누이 등으로 스케치하듯 부차적인 측면으로 조명되어 있고, 주되게는 운동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혁명에 대한 의미부여라고 할 수 있는 (꼭 다시 오리니)에서 그가,
이날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지 말아라. 이 날은 폼페이 최후의 날 거리에 나선 자 모두 목숨을 바쳤듯이, 1960년 4월 앞잡이가 쏜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굴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를 외치던 그날처럼, 그날의 하늘처럼 꼭 다시 오리니
라는 막연한 혁명의 재도래에 대한 기다림, 혹은 일종의 저주와 절망적 몸부림만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연유도 이에서 밝혀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80년 5월의 좌절과 희망에 운동권 학생들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음은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계기 혹은 매개의 역할이지 참된 주체는 민중이라는 점의 확인이 핵심사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시가처음 발표된 84년초의 상황을 살필 때 이 시편들이 가진 적극적인 의의는 여전히 큰 몫으로 남는다. 몇몇 단편적인 시도는 있었지만 광주 5월을중심 테마로 하여 서사구조를 갖추어 증언해 낸 것은 이 작품이 거의 최초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사실의 확인, 혹은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처음으로 제출될 때에 느껴지는 전율 혹은 신선한 투쟁의지 등이 겹쳐지며 일으키는 감동 또한 그의 몫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직한 시인은 항상 민중과 함께 하는 시인이고 또한 민중의 힘에 자신의 역량을 충전시키면서 서로 같은 방향을 가는 자라 칭할 때 그로부터 일년이 지나 '5월시' 동인지 제5집에 실린 25편의 시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 발전됨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그가 역사에 살아 움직이는 시인이라 불릴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한다고 할 수 있다.
광주 5월의 체험이 2부의 시 25편에서는 1부에서보다 훨씬 진실되게 그려지고 있으며 또한 그 혁명의 참된 의미에 한결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즉 그 날의 발단과 과정이 (닫힌 교문 앞에서)에 실려 있고, 진압군의 실상을 그린(일정표 속의 모르모트들)등을 위시한 14-15편의 작품이 실제의 상황을 담고 있으며, 광주 이후의 일이 7-8편으로 적어지고 그 대신 광주 5월에 대해 작자가 전반적인 의미규정을 시도한 작품으로 나머지가 구성되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또한 그날의 실제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뽐내는 제스쳐 일류 탤런트를 압도하던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에
깡통을 쥐던 무뢰한들이 서서
비정의 총알들을 막고 있었고
-(진정한 주인들)에서
거짓의 폭력 앞에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을 때
홀연히 당신들은 왔다.
언제나 시민들의 발이었던 당신들은
다시 한 번 시민들의 마음을 실어 나르고자 왔다
(‥‥)
당신들이 핸들 하나에 걸린 가족의 생계며
아가리를 벌린 공포도 마다않고
빗발치는 총탄 앞으로 삶의 무기를 던진 날
산산이 흩어졌던 사람들은 찬 마음으로 다시 모여
자욱한 화약 냄새에 묻힌 땅을 찾아나섰다
-(자동차를 앞세우고)에서
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날의 실제적인 주역들인 이름없는 전사, 기층민중들의 모습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이 날의 종언을 검토해 보면 기층민중들은 학생들에게 당신들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 우리가 대신 싸우겠노라고 죽음의 벽 앞에 당당히 나섰던 일이 많은데 바로 이 점을 그는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2부의 맺음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에서 우리는 앞서 보았던 작품에서보다 훨씬 더 진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남쪽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타고 있다
비록,보잘것없지만 이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오래 잃었던 양심을 되찾게 해준 곳
너는 안으로 안으로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다시 힘차게 일어나고 있다
광활한 나주평야의 쌀이며, 꿀맛같이 녹아나는 송정리 무우
(‥‥)
아들 딸들을 서울의 공단으로 올려보내고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실업자들이 우글거리는 곳
네게 가진 것 모두 내주고
남은 것은 아쉬움 아닌 임방을 노래가락처럼 질긴 찬이다
불같이 치솟는 새날에의 그리움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앓는 아픔을 골고루 간직한 곳
아니 이 모든 아픔의 근원인 한국의 할렘
끝내 그리움을 포기하지 않는 한국의 팔레스타인
아아 너는 마침내 한가닥 희망 뜨겁게 타는
약속의 땅
-(약속의 땅)에서
이러한 변화는 3부의 25편 시를 검토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우리는 그날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장을 만나게 되고 시적 감동이 더욱 크게 울려옴을 느낄 수 있다.
3부의 시편은 실제로 봉기 현장 앞에 독자들을 데려다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방송이 타던 날), (딸기장수 이형), (용달차에 마이크를 달고) 등등 광주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유언비어로 변신하던 일들이 실제로 사실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사실의 단순한 복원이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그 날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그 정신을 오늘의 역사 앞에 살려 인간 해방의 장정, 아니 분단극복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 정신과 실천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감추어지고 은닉된 상황에서는 그러한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그러한 실천은 그 이후의 일에 속한다.
또한 그 점이 《십자가의 꿈》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 혹은 장점, 사랑의 정신 등을 배제하고 그가 사실의 확인 과정에 얼마나 깊은 정성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가에 우선 초점을 맞춰 탐구해 본 이유이기도하다.
이를 통해 볼 때 그의 (십자가의 꿈) 연작시 75편은 1부, 2부,3부의 진행 과정 속에 일정한 편차를 지니고 있으나, 그 편차는 그가 민중 앞에 자기의 자리를 확보하는 역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으며, 또한 변혁기 혹은 혁명기의 시적 대응양상의 하나인 민중에의 참된 신뢰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그의 시편이 갖고 있는 암측의 시절 속의 빛 혹은 언론의 기능을, 아울러 살필 수 있었다. 그러한 장점 혹은 튼튼한 역사·사회의식 속에 3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만이 할 수 있는 목소리, 진실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사람들을 슬퍼할 때가 아니다
글과 돈과 허풍들이 꼬리를 잽싸게 사린 자리에서
한 사람을 지키기에는 너무도 거추장스런
화약 냄새들은 철쭉꽃들을 쉽게 뭉갤 수도 있었는데
더 이상 아무 것도 버릴 것 없어
맨몸일망정 뜨겁게 쇠 앞에 던져
우리들의 뼈가 묻힐 자리를 지킨 사람들
(‥‥)
지금은 부끄러이 손을 부빌 때가 아니다
당신들이 버리고 간 몫을 집어들 때다
한아름 시들 꽃 대신 우리들의 몸을 사를 때다
하나가 또 하나의 어깨를 적고
다시는 풀어지지 않을 벽이 되어
해일같이 개벽같이 치달아야 한다
온누리 고루 동트는 그날까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해일같이 치달아)
이상에서 그가 80년 5월의 민중봉기 속에서 요행히(?) 살아남아 이를 형상화시킨 75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읽은 것처럼 이러한 문학활동이 갖는 전체 운동과의 맥락이 과연 반드시 옳은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인간해방의 장정에 일보 전진을 기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미덕과 아울러 흠으로 지적될 수 있는 점을 생각해 보지는 것인데, 가령 1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민중의 힘에 대한 구호적이고 다소 맹목적인 신뢰표시이다.
아울러, 모든 시의 끝에 가서는 으레 광주 5월의 넋 앞에 불려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도, 살아 있는 유가족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좀 묘한 논리이겠지만, 우선 작풍으로서 내적 필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니 참된 운동성은 또한 예술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탈해 있다. 좀 투박하게 표현하면 폭폭하고 갑갑하다.
이 점은 물론 그만이 보이고 있는 결점은 아니며 또한 그러한 폭풍이 끝난 뒤 해야 할 일, 살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할 때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고 답답해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주는, 퍼 터지는 현실이 주는 중압감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작자의 무성의나 혹은 매너리즘에 기인한 것이라면 이 점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또 한가지는 앞에서도 지적되었지만 광주 5월이 너무 산만하게 처리되는가 하면 때로는 시적 체험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이후의 작업이 될 수 있겠지만 (십자가의 꿈)이 본격 서사시의 형태로 해체구성되어 우리 민족 해방투쟁의 커다란 맥락 속에 통합되어 형상되었으면 한다. 이러할 경우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은 동어반복이나, 의무적 발언 등이 훨씬 적어지는 강점을 지닐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할 때 이 시집이 이후에도 계속될 민중해방투쟁의 한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영예를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요구가 어쩌면 그에게 과중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분단 이후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인 광주 5월을 직접 체험하고 살아남은, 정직하고 용기있는 시인임을 떠올릴 때 이 요구가 그리 무리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믿는다.
3.채광석의 시집《밧줄을 타며》
박몽구 시인의 경우 80년 민중항쟁을 중심으로 시집을 구성하고 있다면, 채광석 시인의 시집《밧줄을 타고》는 봉기 이전과 이후의 민족·민중운동의 복판에서 우러나온 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장점은 가장 소박한 사람에게도 이 시대 민족·민중운동의 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며 또한 그러한 싸움에 같이 어깨걸고 싸워 나갈 것을 줄기차게 요청하면서도 그러한 몸싸움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이의 인생 역정이 숨김없이 남겨져 있어 이른바 단순히 구호라든가 생경한 관념토로에 그치지 않는 작풍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임헌영은 그의 이러한 모습을 '큰집'이 때냄새를 거느린 '행동적 민중상'으로 지칭하면서 "지식인의 자기합리화나 반성으로서의 민중의식이 아닌 실천과 운동적 차원으로서의 민중문학을 여는 앞장에 서서 이론만이 아니라 문학운동의 성화를 불붙게 한 점화자의 시인이요 비평가"로 평하고 있다.
그의 전 작품은 운동 과정에서 산출된 것인데 이를 좀 자세히 펼쳐보기 위해 그의 실제 삶을 살펴본다.
그는 유신치하 학생운동의 장정에 합세하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3년 꼬박 감옥을 경험하고, So년 5월이후에도 또 한 번 경헝하였으며 아직 정규대학 4년 과정을 졸업하지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른바'대학원 과정'을 홀로 이수하는 과정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평론활동을 활발히 함은 물론 현단계 민족·민중운동의 핵심에 서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분리되고 파편화된 삶을 강요하는 민족의 분단시대에 그러한 옹벽을 깨뜨리기 위한 싸움에 동참함으로써 한 개인의 삶과 전체 민중의 삶을 적절히 통일시키면서도 시를, 평론을, 그것도 탁월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유로 그의 시는 항상 문화운동 혹은 전체 운동과 맥을 잇고 있다. 그가 So년대 초반 운동으로서의 문학을 주창하며 확립해 온 점을 감안한다면 그가 어려운 시절 묶어낸 시집에 차라리 어떤 감탄마저 느낄 수 있다.
이 시집의 골격을 보면, 1부는 80년대에 쓴 시, 2부는 70년대 초에 쓴 시, 3부는 70년대말께 쓴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시편들은 초기 자유주의자에서부터 비롯되는 여러 경험과 사랑을 통과하여 이후 민족의 모순과 사회경제적 모순의 인식에 이르르는 긴 역정을 담고 있다.
시집의 배열 순서와는 다르게 l부의 시편들을 먼저 검토해 보면서1의 인생역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가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다니던 70년대의 풍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가정교사)나, 강제 입영으로 인하여 입대 인사차 교정을 찾았을 때의 풍경 (천리길)을 통해, 혹은 최전방에 배치된 경험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다음의 시에서 우선 살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민간인 통제선을 훨씬 너머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인근의 어느 산자락
수 십 년이나 인적이 끊겨 완전히 야산의 일부가 된
거기 옛 집터의 살구꽃 복숭아꽃은 철따라 피고 지고
해마다 살구며 복숭아며 저 흘로 떨어져 썩어가는데
이것들을 따먹던 아이들 서른이 넘었으련만
휴전선 일대에 대북, 대남 방송 스피커만 요란하고
이 집 주인들은 어디 살길래 소식 한번 없나요
-(집터)
분단의 뼈아픈 체험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에는 도달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범박하게 표현하면 민족 모순에는 닿아 있지만 그것의 핵심인 사회경제적 모순에는 그 인식의 깊이가 닿아 있지 않다는 말이다.
기다림을 익히리라
카랑한 목을 뽑아 진리를 외우고
쌓이는 낙엽을 거느리며
한 걸음 두 걸음 조용히 다지다가
자유의 여신이 찾아오는 그날
고이 목을 바치리라.
-(기다림)에서 (윗점 필자)
에서 살펴볼 수 있듯 자유를 기다려 목을 바치겠다는 자기의 다짐만 토로하고 있을 뿐. 물론 이때의 자유란 근본적으로 인간의 세계에 요청되는 자유라기보다는 소시민적 자유, 혹은 굶어죽을 자유를 방기하는 자유를 뜻하는 느낌이 더욱 짙다는 생각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꽃이 사랑을 표시하던 때는 갔다"는 시대적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고 또한 희망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고 있었다.
희망은
숨어 날을 가는 기다림
끝끝내 살아남아
절망의 목을 버히리란
음흉한 기대
사랑은
숨어 날을 가는 미소
끝끝내 살아남아
떨어지는 목에 끝을 바치리란
싯푸른 서릿발
-(희망과 사랑)
희망과 사랑과 기다림이 전투적 정서 속에 접맥되어 있다. 또한 그에게 아직까지 남아 있어 보이는 낙천적 세계관 혹은 너무 넓어 수많은 것을 포용하는 깊은 세계관의 일단을 펴보이는 해학의 정신으로 점차 무장되어 있다.
해학은 적극적 의미에서 전투정서의 충전도구가 아닌가. 그는 슬슬 투사로서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미치도록
미울 때
나는 웃는다
땀 속에 흐느끼는 세포들
마디마디 이겨지는 뼈다귀들
보듬으며 보듬으며
나는 웃는다
세포 하나에 사랑을
마디 하나에 자유를
새겨넣으며 새겨넣으며
나는 웃는다
미치도록 미울 때
-(미치도록 미울 때)
이러한 투사로서의 단련기에 가장 커다란 획을 긋는 체험을 그는 공주에서 겪는다. 동학혁명의 넋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이때의 감정을 그는 딴 책에서 시집을 묶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금치의 사랑노래'라고 하겠다는 말로 표시하고 있는데 이후 그의 넋과 정신은 그 뿌리를 찾고 민중의 바다에 도달하는 것이다.
바라보러 가야 한다
아직은 따사한 힘이거나 부드러운 위로일 수 없는 나의 눈
대학 4학년에 5년씩이나 머물다가 교도소에 갇힌
반정부주의자 양심범
분열주의자 자유의 투사
이 가시 박힌 눈 오만을 버리지 못한 이 눈을 후비고
꿈에라도
배워 먹은 지식, 문학의 심오한 예술성을 훌훌 버리고
국문이나 빠듯 읽어대는 사람들의
가슴 뻐근한 즐거움일 수 있다면
꿈을 꾸어야지
-(꿈)에서
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가장 깊은 사랑이자 존재의 기반을 이루던 시의 껍데기를 훌훌 버리고 그 알맹이로 복무하는 자리로 나서야 함을 그는 깨달은 것이다.
그러한 사전 준비와 긴 단련을 지나 결국 그는 돌아온다. 저 80년 민중 봉기의 피바다를 통과하여 민중의 곁에 정직한 사랑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시집의 2부는 바로 그러한 준비 과정의 시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채광석 시인의 경우, 그의 시작품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맥락을 통해 볼 때 광주 5훨은 돌연한 사건일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80년 5월 이후 남보다 한발 앞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작품을 민중 안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80년 5월 이후 그의 작품은 심한 고통의 역정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었으며 또한 방법의 모색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1부의 시편들은 80년 이후 쓴 시들인바, 이를 통해 보면 그 점은 명확해진다.
1부의 시편들은 변혁기 문학의 대응양상이 어김없이 반영되어 있으며 So년대 이후 민중·민주운동의 전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엮어내면서 전체운동과의 매개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도시빈민운동의 한 양패인 이른바 목동 지역 문제를 한 아줌마의 신세내력을 통해 직조한 (목동 아줌마Ⅰ·Ⅱ), 농민운동의 한 양태로 제시된 소싸움을 주제로 한 (읍내로 가는 길), 운동 담당자의 실상과 애환, 고통을 노래한 (가을밤)·(국보)·(검은 장갑)등의 시에서 우리는 그 모습을 확인한다.
그러한 와중에서 타헙하거나 좌절하는 태도 혹은 방관하는 태도를(내 가슴속의 개)로 형상화시켜 스스로를 다그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유한마담을 풍자한 (개꿈), 탈락계층을 노래한 (웨딩드레스), 그러한 상황을 포괄적으로 노래한 (건강체조개론) 등을 보면 가위 그의 시는 이 시대의 민중사로 읽혀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시를 쓴다는 일은, 아니 살아간다는 일은 남아프리카 중앙교도소에서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형장으로 끌려가는(몰로이즈 연가)를 듣는 일인데,
더 이상의 숲은 없다
더 이상의 어둠은 없다
두려움 없이 투쟁의 길을 걸으리라
마지막 시 읊는 소리 우리는 들을 수 있었다
이미 똑똑하게 듣고 있었다
전기고문 물고문 매질에 울부짖는 벗들의 비명 소리
마침내 몹쓸 죄명을 매고 몸부림치는 벗들의 신음 소리
이땅의 몰로이즈들의 소리를 통하여
우리는 지금도 듣고 있다
몰로이즈여
우리는 똑똑히
지금은 일어설 때
일어나 해방을 쟁취할 때
그대의 피외침을 알아듣고 있다
피에 굶주린 이리떼는 으르렁거리고
눈멀고 질린 언론은 침묵하고 있지만
지금은 일어설 때
일어나 해방을 쟁취할 때
-(몰로이즈 연가)에서
를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편을 대하다 보면 자신이 민중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여타 시인들의 작품과 다른,그만의 독특함이다. 운동과정에의 안내 흑은 진정한 의미의 선전 선동 기능 등을 무시한 채 막연한 문학의 기법·방법에서 출발한 그에 대한 평가들이 오류에 빠지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측면에 있다.
더욱이 (가을밤)이라는 시에서는, 작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 거기에 '민청련이 간부였던 이을호 씨와 그의 부인, 그리고 '민통련'의장인 문익환 목사, 또 이 시대 민주화 운동의 탄압자, 그 음험한 얼굴을 함에 그려 놓으면서 문익환 목사의 기도문을 인용하고 있는바 그 기도문은 그대로가 전율이다.
하느님 당신은 정말 계십니까
하느님 당신에게도 눈이 있습니까
하느님 당신에게도 마음이 있습니까
이 고통을 보고 이 고통의 소리를 듣고
이 모든 고통은 당신이 양심의 마음을 주신 때문이니
마음을 주셨으면 견뎌낼 용기도 주소서‥‥
-(가을밤)에서
여기서 볼 수 있는 간절한 염원은 그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극점과 잇닿아 있으리라 판단된다. 물론 어떤 형이상학적 종교에의 초월 흑은 도피라는 측면을 배제한 말이지만. 하여튼 이 시는 채광석 시인의 작품 중 중요한 작풍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미덕과 훌륭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흠처럼 여겨지는 대목도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감방의 체험들이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그러한 상황을 혹여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니 자랑처럼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일반적인 얘기지만 그가 문학주의자 혹은 문학주의로 매도해 버린 생각에 대해 재 점검이 요청된다는 점이다. 그 말은 문학이라는 것을 의지하여 그 외 다른 것과 구별지으며 요컨대 특권 혹은 이기심에 기초한 착취의 또 다른 변형이라는 점에 그 비판점이 있는 것이지 문학이 지닌 참된 힘에 대한 비판은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요컨대 그의 작품이 좀더 형상화에 노력해야겠다는 정이며 이러한 노력이 방기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점이다. 더구나 그가 소시민적 세계관을 떨쳐 버리고 민중의 삶에 입각한 세계관에 기초한 삶을 주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중의 삶이 해방되는 방법으로서 문학이 충실해야 한다는 말일 터이지 현재 민중이 주인되는 세계가 이미 전개 흑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좀더 문학작품상으로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점을 창작 주체의 태도 문제와 관련해서 살핀다면 혁명에 비해 문학은 지극히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소함도 한 사람의 일생을 버터며 이룩해 낼 만큼 귀하고 무겁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천착으로부터 그의 작품이 보다 맡은, 문학을 통해 인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 이른바 중간층을 겨냥한 문학으로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점은 그의 시에서 전투성이 그의 초기 작품부터 보여지던 해학 혹은 해탈에의 유혹에 압도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우선 광주 5월에 대한 얘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그가 가진 정직성, 흑은 그가 이미 단련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의 명백한 규명과 거기에 따른 전투 정서의 개발은 요청되는 것이다.
또한 (검은 장갑), (스승과 제자), (국보), (위대한 나라)등의 작품에서 보듯 각각 이 시대의 근본적인 모순을 거덜내기 위한 몸짓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것이 우스갯소리로 떨어져 버린 느낌을 지을 수 없다.
해방의 노래꾼은 현실에 입각하되 그 현실의 진정한 변혁에 기여해야 할 것이며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싸움이 수반된다. 그런데,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해학으로, 웃음으로 해소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는 것이다. 이러한 낙천성이 서정적 저항시의 틀로 좀더 확대되는 것도 극복의 한 방법일 것이며 그것은 사회과학적 지식의 단순한 반복으로 기울어진 점토 불식시켜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흠을 그는 개인적 삶과 민중적 삶의 완벽한 일치 속에 극복함으로써 So년대 민중시의 한 전형이자, 진정한 싸움문의 전형을 이루어 나갈 것임을 굳게 믿는다.
4. 맺는 말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 글은 최근의 문학논의에 대한 본격적인 평문이 아리다. 다만 그러한 제반사항을 충실히 반영하여 어쩌면 혁명기 문학의 대응양상의 한 예를 구성함직한 두 사람의 작품집을 중심으로 논의를 한정시켰다. 한편, 그러한 논의도 작품의 내용에만 일방적으로 치우쳐 진행되었다는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작품에서의 내용은, 형식과 함께 예술작품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조직적이며 근본적인 요소를 이룬다는 점, 내용은 결국 제재의 선택과 제재를 다루는 작자의 태도 및 특질을 결정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정리하였다.
그러나 미흡한 점은 또 있다. 가령 박몽구의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실제적인 내용, 즉 지식인의 자세 및 자기반성, 광주에 대한 역사적인 천착, 봉기에 대한 역사적 맥락의 탐구, 외세에 대한 정확한 저항의지 등의 검토에 미흡했다는 점이다. 또 채광석 시인의 작품에서 제한된 표현의 자유를 뚫고 모순의 본질을 폭로하여 그 극복에 육박하는 모습등도 검토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작품이 혁명기 혹은 변혁기에 올바르게 대응하고 있는 측면에 대해 소홀하게 언급하고 말았다는 자책이 인다. 이 점은 과제로 남긴다.
모든 과제를 떠나 광주 5월을 상대로 투쟁에 가까운 노력을 줄기차게 기울인 박몽구의《십자가의 꿈》이나, 민족·민중운동의 핵심운동 가로서의 삶의 궤적을 형상화한 채광석의《밧줄을 타며》는 몇 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중요한 민중시들 임은 틀림없다 하겠다.
그들의 과제는 먼저 그들의 몫이겠지만 그러한 과제는 인간해방의 대장정이 멈추어지지 않는 한 계속되어 나갈 것이며 또한 그러한 상황의 참된 해결이 참으로 이 두 사랑의 젊은 시인에게 "순수와 투명의 늪을 건너고 산을 넘는 고뇌와의 싸움 없이는 그 설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아름다운 서정성"을 참되게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