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관념적 죽음과 현실적 죽음 / 박진관 시집<<까마귀 우는 산>>. 강형철(시인의 길 …
본문
관념적 죽음과 현실적 죽음
-박진관 시집, <<까마귀 우는 산>>
강형철
1. 문학과 현실의 대응양태
근대 이후 우리 문학은 각각의 시기에 맞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 민족의 당면과제에 반응하여 왔다. 특히 해방 이후의 문학사에는 분단의 극복,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가장 긴박한 문제를 둘러싸고 그 방법과 이념 등의 문제로 쉴 새 없이 갈등해 온 과정이 짙게 침윤되어 있다.
문학의 현실 대응 양상은 몇 가지로 갈래를 지을 수 있다.
첫째로는 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에 문학이 수단일 수 없다는 관점을 지니면서 언어 자체의 의미 탐구 혹은 독립성에 정도 이상으로 집착하여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문학이 언어라는 재료로 구성된다는 점에는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나 거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어 있다. 즉 언어 자체가 의미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언어와 삶의 관계'가 사상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대단히 엄숙하고 진지한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미리부터 현실을 아예 포기하고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거짓 엄숙이고 거짓 진지성이다.
또한 그 모습은 3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이 일제의 가혹한 탄압엔 짓눌려 직접적인 현실문제를 거론하는 대신, 자연과 인간의 삶의 원초적인 문제로 도피하여 그들 자신은 언어의 조탁이라는 업적을 남기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견지한 모습을 연장시켜 준다.
그들은 또한 현실은 늘 그렇고 그런 것이고 초월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들 앞에 주어진 모든 정치적 금기, 현실적 제약을 당연히 수용해야 되는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는 다르게 현실을 바로 보듬고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앞에 맞닥뜨린 현실의 장벽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앞서의 태도 즉 현실을 우회적으로 접근해 나간다는 모습을 버리고는 정면으로 다가서서 묻고 돌파하려 한다.
문학이라는 것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관계하고 있는 삶의 문제에 훨씬 가까이서 묻고 추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길도 자세히 본다면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로 우선적으로 전해야 될 메시지, 즉 내용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는 경우이다. 우리는 그것을 '내용과 형식의 인위적 통일'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에는 전언의 내용 자체에 초점이 놓여 있어 최소한의 문학적 장치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거나, 진리 자체 흑은 명제 자체가 생경하게 드러나 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용과 형식의 진정한 결합에 초점이 놓여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성'이 획득된 예라고 규정 지을 수 있을 것인바 자칫하면 어정쩡한 중도통합론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사실은 삶과 언어매체 자체의 진정한 관계 건설을 통하여 문학의 참다운 길을 가고 있는 모습으로 규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간 논의되어온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문학론, 분단 시대의 문학론, 민중문학론 등의 아픈 논의를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문학논쟁에서 익숙하게 진행된 논의인 것이다.
박진관 스님의 여섯번째 시집 <<까마귀 우는 산>>은 이러한 문학의 대응양상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우리 문학의 여러 관점이 너무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또 그 모습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진정한 문학의 형태를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를 이 글에서는 관념적 죽음으로부터 현실적 죽음으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볼 때 이러한 관점 이동은 80년초 광주의 집단적 죽음 혹은 불교계에서의 이른바 10·27 불교법란을 기점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2. 관념적 대응양태
그의 전체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은 죽음의 메시지이다.
이러한 죽음은 작품의 시기별로 편차를 보이고 나타나는데 이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 즉 80년 이전 작품에서의 죽음은 l,600여 년 전에 이 땅에 들어온 불교에서의 죽음인바 이때의 죽음은 실제의 죽음이 아니라 불교에서 정각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구로서의 죽음이다.
그리고 80년 이후에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죽음은 민주주의 실현과 분단극복의 날에 바쳐지는 희생으로서의 죽음이다. 물론 이때의 민주주의 실현이나 분단극복의 의미는 사회과학적 의미이기보다는 불교에서 일컫는 이른바 '대승보살도'라는 넓은 바다에 도달하고 있는 의미만을 갖는다. 그 전의 죽음에 대한 시적 인식과는 확연히 다른 생생한 삶의 관계로서 만나고 있다.
먼저 80년 이전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가 1976년 1월에 <生과 死>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1980년에 이르기 전까지 보여준 모습이다. 본 시집에서는 4부에 '생명의 고뇌'라는 소제를 달고 수록되어 있다.
다음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 전형을 본다.
물 위에 떠있는 西天國 소녀여
노을이 저 하늘을 저렇게 지나가고
흰 구름을 자꾸만 내리는 날에도
나비는 여기에 와서 춤을 추다 가노라
물결이 저리도 잔잔한 밤이라고
물결치며 씻겨 버린 흰 갈매기
어느 날 靑蓮 위에 앉았다 가는데
그날에 맺은 情을 잊지 못하는가
잠들기 괴로운 날 맺은 사랑도
인간사 눈물을 닦아주고 가노니
저 바다 멀리로 밀려가는 물결같이
山은 내 마을에 와서 무덤을 만든다
그 날을 지키다가 떠나 버린 龍인 양
뜬구름 위에는 인생도 잠들 수 없나니
蓮끝송이 위에는 수천 생명이 잠들어도
이승을 지키는 건 나비 한 마리
밤 깊어온 날 물결 소리는 드높은데
가자고 말 못하는 맘 누가 알리
저 江물 아재로 나룻배를 보내어
눈물 없는 세상을 지키게 하리라.
-<靑蓮>
그의 초기 시는 불교에 대한 깊은 천착이 없이는 온전히 포착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궁리질이 없어도 수도자의 아픈 길(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1연에서는 연꽃을 '서천국 소녀'로 치환시켜 열반의 세계를 나타내고 그 반대편에 삶인지 죽음인지 분간 못하는 미자각(末自覺) 존재인 '나비'를 대립시켜 이 둘 사이를 "춤을 춘다"는 말로 매개시켜 삶의 세계를 보여준다.
2연은 1연의 변주라고 볼 수 있는데 '청련'과 '흰 갈매기'의 모습으로 나타내준다.
3연은 그 모든 것이 결국 허무한 것이라는 불교의 인식이 깔려 있다. 잠들기 괴로운 날 맺은 사랑도 "인간사 눈물을 닦아주고 가느니"라는 절절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바다 멀리로 가는 물결인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산을 물결처럼 흐르는 것으로 묘파하여 흐르고 흘러 자기 삶의 주변에 무덤으로 몰려온다는 엄청난 비약을 지극히 당연한 흐름 속에 합치시킨다.
이러한 인식은 나비 한 마리로 요약될 수 있는 모든 중생의 아픔과 연꽃 사이의 참된 정각(正覺)의 세계 사이로 되돌아오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5연으로 구성된다.
이어서 삶의 어수선함과 애틋한 정들이 물결 소리로 드높은데 그들에게 해탈의 길을 같이 가자고 말은 못하지만 작자 자신은 눈물 없는 세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명제를 떨쳐 버릴 수 없는 이유로 "저 강물 아래로 나룻배를 보내어"수도자의 길을 가는 작자 자신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속세의 아픔과 열반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우리는 만해의 <나룻배와 행인>을 보아왔지만 진관 스님의 시에서는 한결 풍성한 얘기와 함께 전개되는 '나룻배의 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나룻배의 길'을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중생의 죽음 때문이다. 이때의 죽음이란 물론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때의 죽음은 참다운 정각의 세계에 이르는 인식론적 도구로서의 죽음이다.
검정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을 신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서 西山을 바라본다
갈길 몰라 헤매는 나그네 무리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광화문 앞에 서 있다
-<광화문>에서
그는 중생들의 죽음으로부터 뛰쳐나와 죽지 않는 영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바 이처럼 그가 죽음이라 규정짓는 것은 실제의 죽음이 아닌 관념상의 죽음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초기 시편에서 우리는 죽음을 말하고 희롱하고 뛰어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모든 시편에서 그 죽음의 이미지가 전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을 향한 생명의 고뇌는 무엇이냐
살아 있는 동안의 영원한 사랑이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 해도
다가오는 죽음은 면할 수 없노라
모래를 쪄 밥을 지을지라도
죽음을 당한 생명을 살릴 수 없노라
이것은 나의 고독의 창조물이 되고
이것은 언제나 인간의 슬픔이었노라
몸뚱이는 스스로 불이 붙어 타오르고
허공도 불바다처럼 타오르고 있도다
나는 허공 가운데 살아 있는 생명이 되고
영원한 바다에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생명의 고뇌>에서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죽음에의 인식은 그대로 <내 무덤의 언덕 위에는>, <누이여>, <바람 한 점 자고 간 자리>등등 여느 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러한 죽음의 인식은 아름다운 심상들과 함께 초기시에 주로 보이는데 이를 우리는 시어의 조탁, 언어 자체의 탐구 등등의 말로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규정 지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앞서 밝힌 바 있듯이 이때의 시편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그의 죽음이 현실의 죽음 혹은 갈등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후반은 유신 말기의 시대인바 이때의 현실적 삶의 모습은 실제로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당시 그에게는 '속세의 일'일 뿐인 것이며 인류 역사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인바 그것에 대한 집착이나 관심은 불자의 수도(修道)라는 도구로 가볍게 초월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초월의 의미는 단지 그 자체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앎의 세계 이후 이웃에게로 돌아오는 완벽한 불자로서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교의 고뇌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삶의 태도, 즉 시의 태도에서는 같이 산다는 의미를 깨닫고 있는 모습이 전혀 없다.
요컨대 그러한 모든 일들은 하나의 냉혹한 사건일 따름이다. 그는 혼자이고 참다운 이웃이 없는 것이다.
도깨비의 모습을 바람 한점 지나간 자리에서도 깨달아 알 수 있는 사람이 왜 현실의 정치적 상황이 노정하는 모순과 격렬한 피흘림의 순간들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바로 이런 점을 일러 우리는 관념적 죽음에의 인식이라 칭하는 것이다.
3. 현실과의 건강한 만남
아직 80년 민중봉기의 의미는 정확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정한 지역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붕괴요 참혹한 과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며 빛나는 내일의 한 상징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그것이 단순한 사건이기를 거부하고 자기 삶의 중심이 되도록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80년 사건의 현재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데 박진관 시인의 작품이 80년 이후에 몸부림치는 주제란, 바로 그때의 죽음이며 그 죽음의 의미화 작업이다.
아니 그 죽음으로 표상되는 이장의 민주주의 회복과 분단 극복의 날에 대한 절실한 기다림이다.
앞서 보여주던 시적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대응하며 뜨겁게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짜 인생
오늘 살아 있음이 가짜인데
오늘 머물러 있음이 가짜인데
나는 언제나 가짜 인생이라
나는 어데로 가야 하나
-<나는 가짜>에서
이 작품에는 아직도 확실한 광주체험의 리얼리티는 확보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가짜'라는 말과 민주주의라는 말을 대비시키는 것으로 보아 자기 삶의 현실적인 자리로는 확연히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얼어붙은 몸둥이로다
한반도 산천 초토되어 뒤집혀진 땅이로다
흔들리는 사상의 울타리 밖에
죄지은 무리들의 죽임이 있을 뿐이로다
朝鮮의 목소리여
朝鮮의 횐 의상의 행렬이여
朝鮮의 땅에서 울리는 죽음의 몸둥이여
-<朝鮮의 북소리>에서
라고 울부짖고 있다. 바로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80년대 이전의 관념적 죽음에서 현실적 죽음 혹은 역사적 죽음에로 확연히 이행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일러 그의 정신적 탄력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즉 범인들이 자기의 삶에 있어서의 근거를 훼손당하지 않으려고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동안 그는 쉽게 그러한 한계를 넘어 몸을 내맡기고 저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는바, 그의 시적 대응양상의 편차이다.
다시 말하면 앞에 닥쳐진 현실의 제반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이 혼란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 혼란의 양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가지의 모습으로 대별될 수 있다. '내용과 형식의 인위적 통일' 혹은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이라는 말로 규정 지어 본 양태인데 그 첫번째 모습은 닥쳐진 현실의 벽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형태이고 또 한 가지는 그러한 상황을 은밀하게 견디면서도 그 상황과 시인의 가슴이 얹혀져 나타나는 형태인 것이다.
먼저 첫번째 형태의 반응을 보자.
부처님 안방을
칼을 들고 들어와서
부처님을 믿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을
꽁꽁 묶어 가두는 일을
우리 共和國은 왜
저질렀느냐
날마다 하는 일이란
남을 비방하며 못살게 하는 것도
지옥에 가는 일이다 하리라
이런 일 하는 것도
충성된 일이라 할 것이냐
그토록 서러운 일 당하고
울고 있으란 말이더냐
이 산길에 접어들면
보이는 산길은
너무나도 멀리에 가 있어라
부처님 안방을 향해 달려온 놈들
모조리 모조리 지옥에 갈 것이야
-<부처님>에서
여기에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다. 앞에 사람을 놓아두고 직접 발언하는 것 같다. 최소한의 문학적 여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대로 직설적 발언이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 <서울은 악마의 도시>, <구치소에 들어간 이들에게>, <판자촌> 등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앞에 당장 죽음이 벌어지고 있는 판에 문학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러한 태도야말로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냉혹하게 다시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때는 문학이라는 틀이 이미 사라진 상황이며 무용한 사태가 돼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은 그렇게 열렬한 문학적 대응양상을 보인 작품들이 완강한 현실에 부대껴 그만 주저앉는 모습을 보인다는 데에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혼자로서는 극복되지 않는 절벽을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한 태도일 수도 있다.
무기를 달라
무기를
나는 홀로 싸우리라
나는 홀로 쓰러지리라
나의 피가 이탈리아인의
가슴에
영감을 주리라
하고 외치던 시인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혼자만의 돌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이러한 모습은,
삶이여 어서 빛나라
어둠이 밀리어 오고 있구나
여기에 우리들은 찬란한 무덤터를 만들고
핏발에 가슴을 죄인 땅에
내일 가득 채워질 육신들을
청산에 알몸으로
청산에 총살당한 알몸으로
나비처럼 날아갈 육신들이어라
먼 훗날 이땅에 혼령들은 살아서 울 것이어라
언 땅에 꽃들이 시들어 버리는 몸으로
내일에도 어둠에 잠든 한을 풀어줄 순 있느냐
-<들판>에서
에서 보는 것처럼 급박하게 같이 가자고 외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벌거숭이 산>, <죽는 아픔으로>, <법정을 비판하며>, <길>등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호흡과 맥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인이 얼굴을 붉히고 손에 칼을 들이대며 발버둥을 쳐도 그의 가슴속에 확연히 일어난 변화처럼 현실은 그렇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이후 우리 앞에 닥쳐진 현실적인 제명제가 어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에 거기에 머리를 부딪치며 울고 있는 모습, 외로워하고 있는 진관 스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전혀 의외의 일이 아니다.
울며 발을 구르며
바위굴 속에 기어들어가
눈물 한바탕 흘리고
기어나와 하늘을 본다
하늘엔 땅이 내려와 눕고
흔들거린 心血의 공터에 남은 몸
이것을 버리지 못해 울었나
창문 밖 어둠 속에 죽어간 이들
소리치며 날개를 찾아도
들에는 피어나지 못할 진달래꽃과
울지 못할 새들이 날길 있나
울며 발을 구르며
오늘도 죽어가는 이들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울고 있다
-<일몰>
여기에서 볼 수 있듯 그는 거꾸로 진달래꽃과 새들이 노니는 옛날의 모습으로 후퇴하여 울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극심한 외로움을 <여름>, <외출>, <우리는 아무래도>, <어찌하오리> 등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자기 삶에 대해 너무 부대끼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 감정에 부대끼고 앞에 닥친 현실에 부대낀 채 그 앞에서 엉망진창 일그러진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동시대인의 슬픈 초상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갖는 미덕은 그러한 삶의 모습이 솔직하게 반영된다는 점이다. 이 점이 그의 가장 귀중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사회과학적 인식의 냉혹함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그것이 박진관 스님이 시인으로 남을 수 있는, 거꾸로 말하면 그의 간절한 소망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의 또 다른 시 <까마귀 우는 산>, <피의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차분하면서도 뜨거운 삶의 노래와 우리가 만나기 때문이다.
4. 삶과 표현의 통일을 향하여
그의 또 다른 대응양상을 보기 전에 살펴볼 점이 있다.
현실의 제반문제를 올바로 보듬고 거기에서 생생하게 건립되는 사람살이의 정서가 회복될 때 이를 당대 민족문학의 참다운 모습이라 하자는 잠정적인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참다운 사람의 정서회복이란 엄밀한 자기검증과 반성을 선결요인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의 확실한 전망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러한 정서회복을 말한다. 이 점을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이라고 우리가 앞서 말했던 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형성의 획득'이라든가 '리얼리티의 획득'이라는 말의 의미를 명백히 알게 된다.
박진관 시인의 작품을 볼 때에 이러한 기준에 비추면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이 말은 80년 이후의 죽음을 대하는 눈이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고통스러운 자기인식을 전제하고서라도 그의 작품은 아직 그러한 과정에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판자촌 골방에 엎드려
길게길게 숨을 내쉬고 울던 나비
오늘은 벌거벗은 알몸으로
오늘을 그림 그리고 있구나
밀려갈 것은 밀려가고
쫓겨갈 것은 쫓겨가는 날
저렇게도 많은 이들의 울음 소리를
나비는 붉은 나비는 듣고 있는가
비늘마다 은빛이 나리고
비늘조각마다 한 세상이 밀리는데
어데를 가야 할지 모르는 하루
땅에서 쫓겨가는 일만 가르쳐주는구나
나비야
나비야
판자촌에서 날아온 나비야
-<판자촌에서 날아온 나비>에서
철거민의 얘기를 다룬 것으로 짐작되는 위의 시를 보자. 여기에서는 판자촌과 거기에서 울고 있는 사람과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작자의 냉철한 눈이 마주서 있다. 이어서 나비처럼 춤추는 자유가 꼭 오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품의 필연성이 주는 어떤 결론이라기보다는 작자의 간절한 바람 혹은 소망이 그저 노정되고 만다.
특히 여기에서 한 가지 검토할 것은 그의 시가 보여주는 '공리성의 반복'이라는 측면이다. 그의 어떤 시를 읽어보아도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러라, …이라, …이어라 등등의 어미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 도덕적 교사로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 점은 그의 작품이 극복해야 할 중요한 난관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거의 극복되고 있는 또 다른 작품도 가끔 볼 수 있다.
우리는 꿈에도 못 본 곳이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평양의 거리 평양의 여인 평양의 깜둥이
세상에 살다보니 이럴 수가
눈에 흘린 눈물을 닦고
전송사진으로 본 북한 농촌 노동자들
어쩌면 우리와 똑같다
어쩌면 우리들과 똑같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 다른 인종인 줄로만 알았다
평양의 거리엔 인민들이 없어도
평양의 지하철은 우리와 같았다
이것이 꿈이냐
이것이 생시냐
춘향이와 이도령이 서로 만나듯이
우리는 서울과 평양이 서로 만났다
평양에도 비가 오고
평양에도 사람이 있다
-<평양의 거리>에서
이 시에서는 앞서의 우려가 어느 정도 극복되어 있다.
남과 북의 모습을 전혀 다른 집단인 것처럼 갈라놓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의 모습이라면, 그러한 현실의 벽을 서로의 사람이라는 모습 속에서, 사람의 정과 살이 오갈 수 있는 동포라는 의식 속에서 허물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대응양태를 그의 두번째 대응양태 즉,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이라는 말로 규정 지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직 그의 문학적 작업을 참다운 민족문학의 길로 열심히 지향되고 있는 도정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시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집 이후의 그의 문학적 성과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열심히 이땅의 진실과 참다운 역사 전개의 날에 이르는 제반 삶의 길을 향해 몸 던지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다.
5. 전망과 결론
앞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문학과 현실의 대응양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을 이루어내는 주체, 즉 시인 자신에 대한 문제도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시인의 경우 그가 영위하고 있는 삶이 문제 삼아진다는 말이다.
시인 자신의 삶이 얼마만큼 자기의 현실적 토대 위에 굳건하게 서있는가, 혹은 절실하게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
이 점에서 살펴보면 박진관 시인의 경우 그의 작품의 모습처럼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병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뜻있는 젊은 승려들과 함께 민중불교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불교의 민주화를 위해 명상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버팀돌로 <<실천불교>>지를 창간하여 3집까지 간행하였음은 물론 불교계에서조차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禪客>이라는 희곡을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문학작품에서는 시조 형식도, 소설 형식도 모두 시도하면서 그야말로 숨가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그것은 그가 입고 있는 법복 자체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라는 측면이다.
이 말은 그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고 있는 현실적 삶 자체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그에게 바쳐지는 한 번의 '공양'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는 것일진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그 밥 한 사발에 얽힌 보통사람들의 땀과 정성에 닿아가는 시편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는 그가 속한 불교계 자체의 문제로서 <법정을 비판하며>를 위시한 10·27 불교법란을 다룬 작품을 보여주었지만 그가 명상수도하고 있는 '절집'의 이야기는 쓰지 않고 있다.
l,600여 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불교계에서 사람의 가슴을 휘감을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이해되지 않는다.
'절집'의 삶이 그의 삶, 아니 시의 대상으로 회복될 수 있을 때 어쩌면 앞서 말한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성'에 이른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시대는 자기의 종교를 포기하고 삶 그 자체로 녹아드는 것이 오히려 역으로 죽음을 참되이 극복하고 비극적 삶을 종결하는 참다운 종교의 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참다운 문학이란 늘 자기 삶과의 건강한 만남이 기초가 될 때 태어난다는 말을 신뢰하고 있음에 더 말해 무엇하랴.
또 한가지 글을 맺기 전에 살펴볼 점은 그러한 절실한 삶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려 질 종교와 민족주의, 민주주의, 분단조국의 통일 등등의 명제들과의 갈등현상이다.
그러한 갈등의 전망은 이 글의 한계를 넘는 문제이니 차치하기로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한 인간의 삶으로 절절히 녹아 아름다운 조화와 함께 글로 체현되어 우리가 만해에게서 볼 수 있었던 참다운 시인, 행동가, 사상가의 풍모를 진관 스님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여태까지의 모습으로 보아 그러한 미래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작품 자체로는 이 시대 삶의 총체성에 도달하는 데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을지언정 그의 삶 자체는 그러한 총체성을 향해 진실로 숨가쁘게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 자체는 글로 씌어진 그의 어떤 시보다도 훨씬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갖은 곤경을 무릅쓰고 이땅의 민주화에 앞장서서 살아가며 당하는 아픔이, 그리고 검정색 법복과 바랑을 짊어지고 깡마른 모습으로 우리 사람의 현장에 녹아 사랑이고자 하는 진관 스님의 열정이 우리의 문학적 결실로 남겨 지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1987)
-박진관 시집, <<까마귀 우는 산>>
강형철
1. 문학과 현실의 대응양태
근대 이후 우리 문학은 각각의 시기에 맞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 민족의 당면과제에 반응하여 왔다. 특히 해방 이후의 문학사에는 분단의 극복,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가장 긴박한 문제를 둘러싸고 그 방법과 이념 등의 문제로 쉴 새 없이 갈등해 온 과정이 짙게 침윤되어 있다.
문학의 현실 대응 양상은 몇 가지로 갈래를 지을 수 있다.
첫째로는 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에 문학이 수단일 수 없다는 관점을 지니면서 언어 자체의 의미 탐구 혹은 독립성에 정도 이상으로 집착하여 예술의 고유한 영역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문학이 언어라는 재료로 구성된다는 점에는 누구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나 거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어 있다. 즉 언어 자체가 의미하고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언어와 삶의 관계'가 사상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대단히 엄숙하고 진지한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미리부터 현실을 아예 포기하고 내면으로만 침잠하는 거짓 엄숙이고 거짓 진지성이다.
또한 그 모습은 30년대 이후 우리 문학이 일제의 가혹한 탄압엔 짓눌려 직접적인 현실문제를 거론하는 대신, 자연과 인간의 삶의 원초적인 문제로 도피하여 그들 자신은 언어의 조탁이라는 업적을 남기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견지한 모습을 연장시켜 준다.
그들은 또한 현실은 늘 그렇고 그런 것이고 초월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들 앞에 주어진 모든 정치적 금기, 현실적 제약을 당연히 수용해야 되는 것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는 다르게 현실을 바로 보듬고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앞에 맞닥뜨린 현실의 장벽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앞서의 태도 즉 현실을 우회적으로 접근해 나간다는 모습을 버리고는 정면으로 다가서서 묻고 돌파하려 한다.
문학이라는 것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관계하고 있는 삶의 문제에 훨씬 가까이서 묻고 추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길도 자세히 본다면 대략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로 우선적으로 전해야 될 메시지, 즉 내용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는 경우이다. 우리는 그것을 '내용과 형식의 인위적 통일'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에는 전언의 내용 자체에 초점이 놓여 있어 최소한의 문학적 장치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거나, 진리 자체 흑은 명제 자체가 생경하게 드러나 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용과 형식의 진정한 결합에 초점이 놓여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성'이 획득된 예라고 규정 지을 수 있을 것인바 자칫하면 어정쩡한 중도통합론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나 사실은 삶과 언어매체 자체의 진정한 관계 건설을 통하여 문학의 참다운 길을 가고 있는 모습으로 규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간 논의되어온 민족문학론, 리얼리즘문학론, 분단 시대의 문학론, 민중문학론 등의 아픈 논의를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동안 우리의 문학논쟁에서 익숙하게 진행된 논의인 것이다.
박진관 스님의 여섯번째 시집 <<까마귀 우는 산>>은 이러한 문학의 대응양상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우리 문학의 여러 관점이 너무도 확연하게 나타난다. 또 그 모습은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진정한 문학의 형태를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를 이 글에서는 관념적 죽음으로부터 현실적 죽음으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볼 때 이러한 관점 이동은 80년초 광주의 집단적 죽음 혹은 불교계에서의 이른바 10·27 불교법란을 기점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2. 관념적 대응양태
그의 전체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은 죽음의 메시지이다.
이러한 죽음은 작품의 시기별로 편차를 보이고 나타나는데 이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 즉 80년 이전 작품에서의 죽음은 l,600여 년 전에 이 땅에 들어온 불교에서의 죽음인바 이때의 죽음은 실제의 죽음이 아니라 불교에서 정각의 세계로 나아가는 도구로서의 죽음이다.
그리고 80년 이후에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죽음은 민주주의 실현과 분단극복의 날에 바쳐지는 희생으로서의 죽음이다. 물론 이때의 민주주의 실현이나 분단극복의 의미는 사회과학적 의미이기보다는 불교에서 일컫는 이른바 '대승보살도'라는 넓은 바다에 도달하고 있는 의미만을 갖는다. 그 전의 죽음에 대한 시적 인식과는 확연히 다른 생생한 삶의 관계로서 만나고 있다.
먼저 80년 이전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가 1976년 1월에 <生과 死>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1980년에 이르기 전까지 보여준 모습이다. 본 시집에서는 4부에 '생명의 고뇌'라는 소제를 달고 수록되어 있다.
다음의 작품에서 우리는 그 전형을 본다.
물 위에 떠있는 西天國 소녀여
노을이 저 하늘을 저렇게 지나가고
흰 구름을 자꾸만 내리는 날에도
나비는 여기에 와서 춤을 추다 가노라
물결이 저리도 잔잔한 밤이라고
물결치며 씻겨 버린 흰 갈매기
어느 날 靑蓮 위에 앉았다 가는데
그날에 맺은 情을 잊지 못하는가
잠들기 괴로운 날 맺은 사랑도
인간사 눈물을 닦아주고 가노니
저 바다 멀리로 밀려가는 물결같이
山은 내 마을에 와서 무덤을 만든다
그 날을 지키다가 떠나 버린 龍인 양
뜬구름 위에는 인생도 잠들 수 없나니
蓮끝송이 위에는 수천 생명이 잠들어도
이승을 지키는 건 나비 한 마리
밤 깊어온 날 물결 소리는 드높은데
가자고 말 못하는 맘 누가 알리
저 江물 아재로 나룻배를 보내어
눈물 없는 세상을 지키게 하리라.
-<靑蓮>
그의 초기 시는 불교에 대한 깊은 천착이 없이는 온전히 포착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궁리질이 없어도 수도자의 아픈 길(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1연에서는 연꽃을 '서천국 소녀'로 치환시켜 열반의 세계를 나타내고 그 반대편에 삶인지 죽음인지 분간 못하는 미자각(末自覺) 존재인 '나비'를 대립시켜 이 둘 사이를 "춤을 춘다"는 말로 매개시켜 삶의 세계를 보여준다.
2연은 1연의 변주라고 볼 수 있는데 '청련'과 '흰 갈매기'의 모습으로 나타내준다.
3연은 그 모든 것이 결국 허무한 것이라는 불교의 인식이 깔려 있다. 잠들기 괴로운 날 맺은 사랑도 "인간사 눈물을 닦아주고 가느니"라는 절절한 삶의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바다 멀리로 가는 물결인 것이고, 바로 그런 이유로 산을 물결처럼 흐르는 것으로 묘파하여 흐르고 흘러 자기 삶의 주변에 무덤으로 몰려온다는 엄청난 비약을 지극히 당연한 흐름 속에 합치시킨다.
이러한 인식은 나비 한 마리로 요약될 수 있는 모든 중생의 아픔과 연꽃 사이의 참된 정각(正覺)의 세계 사이로 되돌아오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5연으로 구성된다.
이어서 삶의 어수선함과 애틋한 정들이 물결 소리로 드높은데 그들에게 해탈의 길을 같이 가자고 말은 못하지만 작자 자신은 눈물 없는 세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명제를 떨쳐 버릴 수 없는 이유로 "저 강물 아래로 나룻배를 보내어"수도자의 길을 가는 작자 자신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속세의 아픔과 열반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로 우리는 만해의 <나룻배와 행인>을 보아왔지만 진관 스님의 시에서는 한결 풍성한 얘기와 함께 전개되는 '나룻배의 길'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나룻배의 길'을 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중생의 죽음 때문이다. 이때의 죽음이란 물론 생물학적 의미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때의 죽음은 참다운 정각의 세계에 이르는 인식론적 도구로서의 죽음이다.
검정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을 신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서 西山을 바라본다
갈길 몰라 헤매는 나그네 무리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광화문 앞에 서 있다
-<광화문>에서
그는 중생들의 죽음으로부터 뛰쳐나와 죽지 않는 영생의 길을 가고자 하는바 이처럼 그가 죽음이라 규정짓는 것은 실제의 죽음이 아닌 관념상의 죽음이라 볼 수 있다.
그의 초기 시편에서 우리는 죽음을 말하고 희롱하고 뛰어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모든 시편에서 그 죽음의 이미지가 전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을 향한 생명의 고뇌는 무엇이냐
살아 있는 동안의 영원한 사랑이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 해도
다가오는 죽음은 면할 수 없노라
모래를 쪄 밥을 지을지라도
죽음을 당한 생명을 살릴 수 없노라
이것은 나의 고독의 창조물이 되고
이것은 언제나 인간의 슬픔이었노라
몸뚱이는 스스로 불이 붙어 타오르고
허공도 불바다처럼 타오르고 있도다
나는 허공 가운데 살아 있는 생명이 되고
영원한 바다에 타오르는 불꽃이 되리라
-<생명의 고뇌>에서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죽음에의 인식은 그대로 <내 무덤의 언덕 위에는>, <누이여>, <바람 한 점 자고 간 자리>등등 여느 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러한 죽음의 인식은 아름다운 심상들과 함께 초기시에 주로 보이는데 이를 우리는 시어의 조탁, 언어 자체의 탐구 등등의 말로 그의 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규정 지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앞서 밝힌 바 있듯이 이때의 시편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그의 죽음이 현실의 죽음 혹은 갈등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70년대 후반은 유신 말기의 시대인바 이때의 현실적 삶의 모습은 실제로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당시 그에게는 '속세의 일'일 뿐인 것이며 인류 역사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인바 그것에 대한 집착이나 관심은 불자의 수도(修道)라는 도구로 가볍게 초월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초월의 의미는 단지 그 자체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앎의 세계 이후 이웃에게로 돌아오는 완벽한 불자로서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불교의 고뇌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삶의 태도, 즉 시의 태도에서는 같이 산다는 의미를 깨닫고 있는 모습이 전혀 없다.
요컨대 그러한 모든 일들은 하나의 냉혹한 사건일 따름이다. 그는 혼자이고 참다운 이웃이 없는 것이다.
도깨비의 모습을 바람 한점 지나간 자리에서도 깨달아 알 수 있는 사람이 왜 현실의 정치적 상황이 노정하는 모순과 격렬한 피흘림의 순간들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바로 이런 점을 일러 우리는 관념적 죽음에의 인식이라 칭하는 것이다.
3. 현실과의 건강한 만남
아직 80년 민중봉기의 의미는 정확히 정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일정한 지역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붕괴요 참혹한 과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며 빛나는 내일의 한 상징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그것이 단순한 사건이기를 거부하고 자기 삶의 중심이 되도록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80년 사건의 현재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데 박진관 시인의 작품이 80년 이후에 몸부림치는 주제란, 바로 그때의 죽음이며 그 죽음의 의미화 작업이다.
아니 그 죽음으로 표상되는 이장의 민주주의 회복과 분단 극복의 날에 대한 절실한 기다림이다.
앞서 보여주던 시적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대응하며 뜨겁게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가짜 인생
오늘 살아 있음이 가짜인데
오늘 머물러 있음이 가짜인데
나는 언제나 가짜 인생이라
나는 어데로 가야 하나
-<나는 가짜>에서
이 작품에는 아직도 확실한 광주체험의 리얼리티는 확보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가짜'라는 말과 민주주의라는 말을 대비시키는 것으로 보아 자기 삶의 현실적인 자리로는 확연히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얼어붙은 몸둥이로다
한반도 산천 초토되어 뒤집혀진 땅이로다
흔들리는 사상의 울타리 밖에
죄지은 무리들의 죽임이 있을 뿐이로다
朝鮮의 목소리여
朝鮮의 횐 의상의 행렬이여
朝鮮의 땅에서 울리는 죽음의 몸둥이여
-<朝鮮의 북소리>에서
라고 울부짖고 있다. 바로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80년대 이전의 관념적 죽음에서 현실적 죽음 혹은 역사적 죽음에로 확연히 이행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일러 그의 정신적 탄력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즉 범인들이 자기의 삶에 있어서의 근거를 훼손당하지 않으려고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동안 그는 쉽게 그러한 한계를 넘어 몸을 내맡기고 저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는바, 그의 시적 대응양상의 편차이다.
다시 말하면 앞에 닥쳐진 현실의 제반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이 혼란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 혼란의 양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가지의 모습으로 대별될 수 있다. '내용과 형식의 인위적 통일' 혹은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이라는 말로 규정 지어 본 양태인데 그 첫번째 모습은 닥쳐진 현실의 벽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형태이고 또 한 가지는 그러한 상황을 은밀하게 견디면서도 그 상황과 시인의 가슴이 얹혀져 나타나는 형태인 것이다.
먼저 첫번째 형태의 반응을 보자.
부처님 안방을
칼을 들고 들어와서
부처님을 믿는 부처님의 아들딸들을
꽁꽁 묶어 가두는 일을
우리 共和國은 왜
저질렀느냐
날마다 하는 일이란
남을 비방하며 못살게 하는 것도
지옥에 가는 일이다 하리라
이런 일 하는 것도
충성된 일이라 할 것이냐
그토록 서러운 일 당하고
울고 있으란 말이더냐
이 산길에 접어들면
보이는 산길은
너무나도 멀리에 가 있어라
부처님 안방을 향해 달려온 놈들
모조리 모조리 지옥에 갈 것이야
-<부처님>에서
여기에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다. 앞에 사람을 놓아두고 직접 발언하는 것 같다. 최소한의 문학적 여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대로 직설적 발언이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 <서울은 악마의 도시>, <구치소에 들어간 이들에게>, <판자촌> 등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앞에 당장 죽음이 벌어지고 있는 판에 문학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그러한 태도야말로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좀더 냉혹하게 다시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다시 말하면 이때는 문학이라는 틀이 이미 사라진 상황이며 무용한 사태가 돼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은 그렇게 열렬한 문학적 대응양상을 보인 작품들이 완강한 현실에 부대껴 그만 주저앉는 모습을 보인다는 데에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혼자로서는 극복되지 않는 절벽을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한 태도일 수도 있다.
무기를 달라
무기를
나는 홀로 싸우리라
나는 홀로 쓰러지리라
나의 피가 이탈리아인의
가슴에
영감을 주리라
하고 외치던 시인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혼자만의 돌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또한 이러한 모습은,
삶이여 어서 빛나라
어둠이 밀리어 오고 있구나
여기에 우리들은 찬란한 무덤터를 만들고
핏발에 가슴을 죄인 땅에
내일 가득 채워질 육신들을
청산에 알몸으로
청산에 총살당한 알몸으로
나비처럼 날아갈 육신들이어라
먼 훗날 이땅에 혼령들은 살아서 울 것이어라
언 땅에 꽃들이 시들어 버리는 몸으로
내일에도 어둠에 잠든 한을 풀어줄 순 있느냐
-<들판>에서
에서 보는 것처럼 급박하게 같이 가자고 외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벌거숭이 산>, <죽는 아픔으로>, <법정을 비판하며>, <길>등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호흡과 맥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인이 얼굴을 붉히고 손에 칼을 들이대며 발버둥을 쳐도 그의 가슴속에 확연히 일어난 변화처럼 현실은 그렇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이후 우리 앞에 닥쳐진 현실적인 제명제가 어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이다.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에 거기에 머리를 부딪치며 울고 있는 모습, 외로워하고 있는 진관 스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전혀 의외의 일이 아니다.
울며 발을 구르며
바위굴 속에 기어들어가
눈물 한바탕 흘리고
기어나와 하늘을 본다
하늘엔 땅이 내려와 눕고
흔들거린 心血의 공터에 남은 몸
이것을 버리지 못해 울었나
창문 밖 어둠 속에 죽어간 이들
소리치며 날개를 찾아도
들에는 피어나지 못할 진달래꽃과
울지 못할 새들이 날길 있나
울며 발을 구르며
오늘도 죽어가는 이들의
얼굴을 마주 대하고
울고 있다
-<일몰>
여기에서 볼 수 있듯 그는 거꾸로 진달래꽃과 새들이 노니는 옛날의 모습으로 후퇴하여 울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극심한 외로움을 <여름>, <외출>, <우리는 아무래도>, <어찌하오리> 등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자기 삶에 대해 너무 부대끼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 감정에 부대끼고 앞에 닥친 현실에 부대낀 채 그 앞에서 엉망진창 일그러진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동시대인의 슬픈 초상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이 갖는 미덕은 그러한 삶의 모습이 솔직하게 반영된다는 점이다. 이 점이 그의 가장 귀중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사회과학적 인식의 냉혹함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그것이 박진관 스님이 시인으로 남을 수 있는, 거꾸로 말하면 그의 간절한 소망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하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의 또 다른 시 <까마귀 우는 산>, <피의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차분하면서도 뜨거운 삶의 노래와 우리가 만나기 때문이다.
4. 삶과 표현의 통일을 향하여
그의 또 다른 대응양상을 보기 전에 살펴볼 점이 있다.
현실의 제반문제를 올바로 보듬고 거기에서 생생하게 건립되는 사람살이의 정서가 회복될 때 이를 당대 민족문학의 참다운 모습이라 하자는 잠정적인 규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참다운 사람의 정서회복이란 엄밀한 자기검증과 반성을 선결요인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미래에의 확실한 전망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러한 정서회복을 말한다. 이 점을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이라고 우리가 앞서 말했던 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전형성의 획득'이라든가 '리얼리티의 획득'이라는 말의 의미를 명백히 알게 된다.
박진관 시인의 작품을 볼 때에 이러한 기준에 비추면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이 말은 80년 이후의 죽음을 대하는 눈이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고통스러운 자기인식을 전제하고서라도 그의 작품은 아직 그러한 과정에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판자촌 골방에 엎드려
길게길게 숨을 내쉬고 울던 나비
오늘은 벌거벗은 알몸으로
오늘을 그림 그리고 있구나
밀려갈 것은 밀려가고
쫓겨갈 것은 쫓겨가는 날
저렇게도 많은 이들의 울음 소리를
나비는 붉은 나비는 듣고 있는가
비늘마다 은빛이 나리고
비늘조각마다 한 세상이 밀리는데
어데를 가야 할지 모르는 하루
땅에서 쫓겨가는 일만 가르쳐주는구나
나비야
나비야
판자촌에서 날아온 나비야
-<판자촌에서 날아온 나비>에서
철거민의 얘기를 다룬 것으로 짐작되는 위의 시를 보자. 여기에서는 판자촌과 거기에서 울고 있는 사람과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는 작자의 냉철한 눈이 마주서 있다. 이어서 나비처럼 춤추는 자유가 꼭 오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품의 필연성이 주는 어떤 결론이라기보다는 작자의 간절한 바람 혹은 소망이 그저 노정되고 만다.
특히 여기에서 한 가지 검토할 것은 그의 시가 보여주는 '공리성의 반복'이라는 측면이다. 그의 어떤 시를 읽어보아도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고(…러라, …이라, …이어라 등등의 어미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 도덕적 교사로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 점은 그의 작품이 극복해야 할 중요한 난관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거의 극복되고 있는 또 다른 작품도 가끔 볼 수 있다.
우리는 꿈에도 못 본 곳이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평양의 거리 평양의 여인 평양의 깜둥이
세상에 살다보니 이럴 수가
눈에 흘린 눈물을 닦고
전송사진으로 본 북한 농촌 노동자들
어쩌면 우리와 똑같다
어쩌면 우리들과 똑같이 생겼다
내가 생각하기에
분명 다른 인종인 줄로만 알았다
평양의 거리엔 인민들이 없어도
평양의 지하철은 우리와 같았다
이것이 꿈이냐
이것이 생시냐
춘향이와 이도령이 서로 만나듯이
우리는 서울과 평양이 서로 만났다
평양에도 비가 오고
평양에도 사람이 있다
-<평양의 거리>에서
이 시에서는 앞서의 우려가 어느 정도 극복되어 있다.
남과 북의 모습을 전혀 다른 집단인 것처럼 갈라놓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의 모습이라면, 그러한 현실의 벽을 서로의 사람이라는 모습 속에서, 사람의 정과 살이 오갈 수 있는 동포라는 의식 속에서 허물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대응양태를 그의 두번째 대응양태 즉,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이라는 말로 규정 지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직 그의 문학적 작업을 참다운 민족문학의 길로 열심히 지향되고 있는 도정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시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집 이후의 그의 문학적 성과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열심히 이땅의 진실과 참다운 역사 전개의 날에 이르는 제반 삶의 길을 향해 몸 던지는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는 기대감일 것이다.
5. 전망과 결론
앞에서 우리는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문학과 현실의 대응양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을 이루어내는 주체, 즉 시인 자신에 대한 문제도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즉 시인의 경우 그가 영위하고 있는 삶이 문제 삼아진다는 말이다.
시인 자신의 삶이 얼마만큼 자기의 현실적 토대 위에 굳건하게 서있는가, 혹은 절실하게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질문이다.
이 점에서 살펴보면 박진관 시인의 경우 그의 작품의 모습처럼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이 병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뜻있는 젊은 승려들과 함께 민중불교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불교의 민주화를 위해 명상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버팀돌로 <<실천불교>>지를 창간하여 3집까지 간행하였음은 물론 불교계에서조차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禪客>이라는 희곡을 무대에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문학작품에서는 시조 형식도, 소설 형식도 모두 시도하면서 그야말로 숨가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미흡한 점이 있다. 그것은 그가 입고 있는 법복 자체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라는 측면이다.
이 말은 그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고 있는 현실적 삶 자체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그에게 바쳐지는 한 번의 '공양'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땀이 배어 있는 것일진대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그 밥 한 사발에 얽힌 보통사람들의 땀과 정성에 닿아가는 시편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는 그가 속한 불교계 자체의 문제로서 <법정을 비판하며>를 위시한 10·27 불교법란을 다룬 작품을 보여주었지만 그가 명상수도하고 있는 '절집'의 이야기는 쓰지 않고 있다.
l,600여 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 불교계에서 사람의 가슴을 휘감을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이해되지 않는다.
'절집'의 삶이 그의 삶, 아니 시의 대상으로 회복될 수 있을 때 어쩌면 앞서 말한 '내용과 형식의 유기적 통일성'에 이른 작품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 시대는 자기의 종교를 포기하고 삶 그 자체로 녹아드는 것이 오히려 역으로 죽음을 참되이 극복하고 비극적 삶을 종결하는 참다운 종교의 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참다운 문학이란 늘 자기 삶과의 건강한 만남이 기초가 될 때 태어난다는 말을 신뢰하고 있음에 더 말해 무엇하랴.
또 한가지 글을 맺기 전에 살펴볼 점은 그러한 절실한 삶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려 질 종교와 민족주의, 민주주의, 분단조국의 통일 등등의 명제들과의 갈등현상이다.
그러한 갈등의 전망은 이 글의 한계를 넘는 문제이니 차치하기로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한 인간의 삶으로 절절히 녹아 아름다운 조화와 함께 글로 체현되어 우리가 만해에게서 볼 수 있었던 참다운 시인, 행동가, 사상가의 풍모를 진관 스님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여태까지의 모습으로 보아 그러한 미래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작품 자체로는 이 시대 삶의 총체성에 도달하는 데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을지언정 그의 삶 자체는 그러한 총체성을 향해 진실로 숨가쁘게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 자체는 글로 씌어진 그의 어떤 시보다도 훨씬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갖은 곤경을 무릅쓰고 이땅의 민주화에 앞장서서 살아가며 당하는 아픔이, 그리고 검정색 법복과 바랑을 짊어지고 깡마른 모습으로 우리 사람의 현장에 녹아 사랑이고자 하는 진관 스님의 열정이 우리의 문학적 결실로 남겨 지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