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월시 판화집」해설. 황지우(사람과 사람사이의 신호, 한마당, 199…
본문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월시 판화집』 해설
황지우
『오월시』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떤 죄 의식으로 먼저 온다. 그것은 그들의 시가 동시대에 일어난 불행에 대한 열렬한 추도사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시를 읽으면 나는 괴롭고 두렵다. 일군의 시적 집적 물들이 한 시대를 역사 앞에 소환하여 '너희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였느냐'를 추궁할 때 이 물음을 회피할 방도가 적어도 나에게는 없어서이다. 물론 『오월시』가 이 물음의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시대의 어둠을 명명 하도륵 부름을 받아, 그 순수한 구속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를 쓰는 자는 진정한 시인일 수 있다"(김진경, 「제3문학론」)는 것을 공동명의로 제시하고 있는 한, 『오월시』동인들은 이 물음을 시의 전폭으로, 끊임없이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완료되지 않은 물음을 이제 『오월시』는 판화의 농축된 공간과 제휴하여 흑백 대조법과 극명한 조명 아래 재활 시키고 있다.
『오월시』는 80년대 우리 삶과 문화의 가파른 카타스트로프에 대응해서 나타난 주요 시 동인지들 가운데 하나이다. 같은 시대의 파경에 대해 같은 시대의 말로써 응답한다는 것은, 시인으로서는, "바로 볼 수 없는 일"을 끝끝내 응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책무이다.
네가 가서 오지 않는 흙바람 속으로
눈을 감고 가야겠네
오월 하늘 밑 참꽃 붓꽃 피 망울져
피어도 어지러워 어지러워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 곳
-나종영, 봄을 위하여(방점 필자)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 곳"에서 두 눈으로 이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히 현기증 나는 일이다. 이 현기증 앞에 시인은 눈을 감을 수도 있고, 혹은 현기증까지도 응시하려고 덤비는 수도 있다.
『오월 시』 동인들 가운데 나 종영은 이 경우, 눈을 감는 쪽에 속해 있다. "눈을 감고" 가는 그의 오월 행은 "여윈 넋"을 찾아가는 초혼 굿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가령,
여윈 넋 찾아가리 에헤라
여윈 넋 찾아가리 에혜라
녹밧줄 어름에 별빛이 뜨네
덩더꿍 칠채가락 흰 부채 바람이 부네
-위의 시
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시가 가락의 내재적 규칙을 통과함으로써 빼어난 서정적 리듬을 포획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굿거리 장단에 침입은 바 크다. 그러나 모든 장단에 그런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칠채가락 흰 부채 바람"의 신명에 '덩더꿍', '에헤라' 하며 놀아나다 보면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 곳"의 슬픔·원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해 버리는 것으로 만족해 할 위험이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시에는 '풀이'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그 '풀이'-그 해소가 자칫 문제의 부재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묵인하도록 암암리에, 끈질기게 들볶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나종영의 「사육신은」그 한 예이다. 이 시는 명백히 군신주의의 시대착오적인 교훈(예 : "땅 위에 두 임금 섬길 수 없어/오뉴월 모래톱에 뿌린 붉은 피") 에 흘려 있다. 이것은 그의 현실인식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오월 행이 "눈을 감고" 가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눈을 감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맹목이다.
그런 점에서, 극히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편이긴 하지만, 박 주관의 「춘몽」도 오월의 '함성'을 순간적인 흥분의 사출로써 해소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폭포가 곤두박질하다가 떨어지는
그 순간의 사정처럼
아 하고 외치던 그날의 함성처럼
-박 주관, 「춘몽」(방점 필자)
그가 말하는 "봄에 관계하는 것들"이 "꿈같은 것"이라면, 그의 오월에 대한 인식은 어떤 의미에서 허무주의적이며, 나쁘게 말하면 경망스럽다고 일컬어질 수도 있다. 그 경망스러움은 그의 현실 대항이 성적인 욕설(예 : "가랑이를 벌리려거든," "신나게 벌려 주어라")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을-그것이 비록, 아무리, 참혹해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오래 바라보지 않고 빨리 소리지르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하얀 고무신」, 「아버지의 저녁」은 비교적 이런 결점으로부터 자유로와 보인다 그것은 그가 어두운 현실을 그러나 (밝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본다는 것은 반성의 시작이며 미래에의 투시, 즉 전망을 뜻한다. 곽재구의 「희망을 위하여」가 바로 이것을 보증한다.
두 눈을 뜨고 어둠 속을 질러오는
한 세상의 슬픔을 보리
네게도 가는 마음의 길이 굽어져
오늘은 그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곽재구 「희망을 위하여 」(방점 필자)
오늘은 희망으로 가는 길이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절망적인 현실을 "두 눈을 뜨고" (본다)는 것은,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곳이기에 "눈을 감고" 여윈 넋 찾아가는 초혼중과는 현저히 구별된다. 후자는 현실을 반성 이전의 세계에 방치해 둔다면, 전자는 그것을 반성적인 세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성 이전의 세계에서 현실은 맹목에 이끌려 가지만 반성적인 세계에서 현실은 목적을 갖게 된다 그 목적은 미래의 수태이다. 그러나 미래의 표적을 조준하는 기준은, 당연히, 현실에 대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되돌아 볼 때" 라야 가늠할 수 있다
시간적 거리를 두고 되돌아 볼 때 우리가 모이게 된 동기가 된 사건은 우리가 태어난 1950년대 이후 겪어온 모든 모순의 폭발점이며, 또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몇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싸움임을 깨닫게 된다.
-김 진경 , 「제3문학론」
이 깨달음(!)은 현실반성의 소산이다. 즉, 이것은 (오월)이, 분단된 민족의 자해행위였던 (유월)의 한국전쟁과, 분단을 고착시킴으로써 가중된 억압적인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파열되었던 (사월)의 학생 혁명을 가로지르고 있음에 대한 깨달음이다. 분단이 전 민족에 가해진 자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가 이 땅에 내렸다고 생각하는 삶의 뿌리는 도대체 누구의 뿌리이며 누구의 삶인가? 분단을 수락한 상태에서 우리가 이룩하는 삶이란 근본적으로 뿌리 뽑힌 것이 아닌가?"(김진경, 앞의 글)라고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분단 상황에 대한 인식이 시속에 투영되기 시작한 것은 비단 『오월 시』 동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70년대에 고 은에 의해서, 그리고 "위대한 청춘"의 계절, 오월의 명명자인 김준태에 의해서, 분단은 오늘 우리 모두를 묶고 있는 아픔의 족쇄이며 저주스러운 형극 임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교수 선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나간 북한 땅을 (여성)으로 호명하는 흑은 교접하는 그들의 경우(예 : "누이여. 버들 같은 누이여."-고은, 「두만강으로 부치는 편지」. "북한 여자는/ 내 살덩이를 삼팔선인양 울어 뜯으며"-김준태, 「북한여자」 와 달러, 『오월시』 동인들에게 분단 상황은 (교과서의 활자)에 의해 교육되어진 것이며, 따라서 어떤 이념, 어 떤 허위의식에 의한 조건 반사적인 공격성의 훈련을 강요받는 상환이었다. 이를테면 최두석의 「가투」는, 이'공격성이 '나방의 사정'으로 암시하고 있듯 (남성)의 가학성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콩꽃떨기마다 이상한 나방이 射精을 하고 다렸다. 그때 나는 국어 선생이었다. 깊이 자랑했던 이념의 말이 교과서 구석에 쓰여 있었다. (…) 학생들의 한 떼는 교련시간이었다. 엎드려 쏴 ! 찔러, 길게 찔러. 이파리는 사살되어 무참히 찢기 우고 고개를 돌렸을 때 교과서의 활자는 뻔뻔하게 그대로 박힌 채였다.
-최두석, 「가투」
이 시의 상황은 국어시간인 교실 안과 교련시간인 교실 밖으로 나뉘어 있다. 동떨어진 이 두 상황은, 그러나,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이념의 말"이 실은 교실 밖에서 들려오는 "엎드려 쏴 ! 찔러, 길게 찔러"라는 구령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읽는 이에게 추이해 시킴으로써 오늘의 분단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알레고리를 구성하고 있다. 이념의 이름으로, 엎드려 쏘고, 찌르고, 길게 찌를 때, 그 가학적인 자해의 깊이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최두석은 『오월시』 동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다른 『오월시』동인들과 스스로를 구분 짓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두드러진 점은 그 자해의 무참함을 얄미울 정도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 그는 시인으로서 노래하지 안고 이야기한다. 그 까닭은, 시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노래와 이야기」) 뿐이기 때문이라는 데, 바로 그러한 이야기의 기술적인 구조 때문에 그의 시가 다른 『오월 시』 동인들이 빠져들기 쉬운, 감상주의로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점은 유의할 만하다. 그 대가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의 시는 답답하다.
최두석의 「가투」에도 나타나 있듯이, 『오월시』 동인들이 분단상황을 시 속에 인각시킬 때 대부분 그것이 학교나 학교 다니던 유년 시절과 관련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것은 그들이 195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분단의 책임이 면제되어야 할 그들 세대에 학교는 분단상황을 떠받들고 있는(차가운 전쟁)의 논리를 교리문답 시켰던 것이다. 장차 자라서 시인이 된 그들은 시인의 천성인 깨어있는 의식으로, 그 교리문답의 폭력성 ·파괴성을 더듬는다. 정진경의 「큰 장수하늘소」와 윤재철의 「여의도 B 29」는 그것을 보여준다.
i) 선생님의 눈을 피해
우리들의 집게벌레는 책상 위를 돌진하고 있었다.
삼팔선을 넘어 나의 집게벌레가 돌진하면
너의 집게벌레는 책상의 끝으로 몰리고
너는 주먹으로 내 집게벌레를 으깨버렸다.
싸움이 벌어지고
-김진경, 「큰 장수하늘소」(방점 필자)
ii) 찰흙 비행기
어린 시절, 풀잎들의 나라
어쩌면 아름다운 꿈의 비행기.
끊어진 임진강 철교 한토막이
다시 피묻은 매 한마리
은빛 날개, 폭음을 울리며
잠들 사이도 없이, 우수에 잠긴
내 꿈의 나라를 폭격하고
-윤재철, 「여의도 B29」(방점 필자)
i)은 초등 학교 자연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에 두 마리의 집게벌레를 놓고 싸움을 붙이다가 짝꿍과 싸움이 붙은 어린 시절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시적 동기가 되고 있다. "주먹으로 내 집게벌레를. 으깨"버린, 이 작은 폭락은 책상 가운데 칼로 자욱 낸 "삼팔선"(195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기억나리라)을 중으로 곧잘 일어나는 경계분재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이 분계선이 폭력과 싸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집게벌레를 으깬 짝꿍이 바로 전쟁 고아라는 사실을 밑받침대로 하여 떠올리고 있다. ("복도에서 벌을 서며, 너는 고아원을 탈출하겠노라고 / 여름 방학이 되도록 너의 책상은 비어 있었다. / 사람들은 네가 빨갱이 자식일 거라고도 하고"-「큰 장수하늘소」)
그렇지만 분단의 횡단 측면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김진경의 시는 다소 평면적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분단상황을 인과론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사실로서 파악한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반하여 분단상황을 사실로서, 그리고 사실 이상으로서, 포착하고 있는 윤재철의 「여의도 B29J는 그보다 훨씬 크게 울림이 들려 온다. 이 시는 아름답다. 거기에는 꿈 ·환상이 사물·사실과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시적 울림은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본 '여의도 B29'→어린 시절 공작시간에 만든 '찰흙 비행기'→기억 속에 살아있는 '피 묻은 매 한 마리'로 자유롭게, 빠르게 움직이는 이 시인의 상상력의 몫이다. 그러나 이 상상력은 동시에 외부 현실 (B 29)→유년(찰흙 비행기)→기억(매)이라는 퇴행적 순서에 따라 이미지를 전이시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ii)에서 찰흙 비행기가 임진강 철교를 끊고 "내 꿈의 나라를 폭격"하는 것은 다 (기억)속에 서의 일이다. 요컨대 파괴적인 분단상황에 대한 시적 제 시가 추억의 잔해나 흔적에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적은 윤재철 뿐만 아니라 김진경, 최두석에게도 골고루 적용된다.
분단상황이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으로, 상흔이 아니라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짧게 말해서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협박으로 인식되고 표현된 것은 『오월 시』 동인들 가운데 이영진에 이르러서야 이룩된다. 그의 「휴전선」은 인생과 죽음의 경계이며 그것은 현재 이 자리에 살고 있는 그의 "일상의 더 나아갈 수 없는 한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어느 날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이 죽음이다 싶을 때, 이상하게도 휴전선이 보였다.
책상 위에도, 거울 속에도, 재털이 위에도. 밥상이나
내 막막한 가난 위에도
휴전선이 보였다.
휴전선의 철조망은
내 목숨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내 목숨의 한계였다.
내 일상의, 내 꿈의
더 나아갈 수 없는 한계였다.
-이영진, 「휴전선」(방점 필자)
이영진에게는 분단의 경계가 '삼팔선'이 아니라 '휴전선'이라는 사실은 퍽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가 분단상황을, '교과서 속 활자'나 '책상 위 칼선'에서, 흑은 전쟁기념물인 'B29'에서 역사적 과거형으로 후 체험하는 앞의 세 시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몸무게가 실려있는 삶의 한 가운데서, 흑은 그 끝에서, 즉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사건의 현재형으로 만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휴전선'은 전쟁의 종결이 아닌 그것의류지기일 뿐이며, 그런 뜻에서 잠재적이긴 하지만 끊임없는 싸움의 현재형을 지시하는 선이다. 이 '휴전선'이"내 목숨의 한계"라는 탁월한 시적 통찰에 이영진이 이르게 된 점을 나는 축하하고 싶다. 분단에 대한 이 같은 통찰은, 전쟁시의 기념비적 수준에 머문 박봉우의 「휴전선」으로부터 이영진의 「휴전선」을 구분 짓는 중요한 차이 점이며, 분단을 남녀 상열지사적 그리움의 공간적 거리로 혹은 유년기 기억의 시간적 거리로 떨어져서 바라본 앞의 여러 시인들의 시각과도 다르다. 분단상황에 대한인식의 이러한 성숙이 이영진에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추측컨대, 그가 오월의 화염 속을 몸소 지나온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삶의 극점에서 즉 "인생이 죽음이다 싶을 때", 그가 "내 목숨의 한계"로서 '휴전선'이 보였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모이게 된 동기가 된 사건은 우리가 태어난 1950년대 이후 겪어온 모든 모순의 폭발점"이다라는 오월시 동인들의 공통된 인식에 대한 시적 보증,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휴전선'은 DMZ를 뜻할 뿐만 아니라, 그가 앉은 책상과 밥상 위로도, 그가 걷는 금남로와 광주천 위로도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휴전선은 언제나 무너질, 그리고 무너져야 할 선이다. 그것은 나누어져 있는 (둘)이 (하나)가 될 때까지의 전선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영진의 「휴전선」이 이러한 전선의 함의를 결여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휴전선」은 목숨의 한계이면서도 그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슬픔"일 뿐, 자기 목숨을 넘는 싸움은 아직 없다. 이것은 그의, 채 청산되지 못한 감상주의 탓이다.
하늘에도 휴전선은 가득 펼쳐져 있었고
나는 하늘을, 그 한계를
그 넘어갈 수 없는 슬픔을 고개를 젖히고 바라다보며
눈물이 났다.
-이영진, 「휴전선」(방점 필자)
휴전선의 슬픔을 누가 모른다고 했나? 그런 빤한 사실을 두고 '나는 눈물이 났다'고 말하는 것은 이 시가 모처럼 획득한 인식의 긴장감을 일시에 허물어 버린다 즉 휴전선은 전선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감상주의가 방해하고 있다. 내 생각에 그의 감상주의는, 휴전선의 의미를 현실 은유로 받아들일 때의 "휴전선의 저 끝/저 끝에서 오는 '찬란한 눈물"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바꿔 말해서 그것의 의미가 오월의 추도만으로'머물려고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찬란한 눈물'은 찬란한 만큼 기념이며 추도이다. 그러나 기념과 추도는 상황의 종결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휴전선을 없애는 방법, 즉 분단을 극복하는 방법은 감상주의에서는 찾아지지 않는다. 감상주의는 거부가 아니라 소모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분단극복은 모든 대항의 논리가 그런 것처럼, 말하자면, 변증법적인 사고에서만 발견된다. 이런 발견을, "교육원 붉은 벽돌담에 달라" 붙어 있는, '담쟁이'로부터 이끌어낸 윤재철의 주의력이 비상하다.
부정이 긍정이 되고
다시 긍정이 부정이 되는
소리 없는 싸움과 삶의 논리를
너는 뿌리 같은 네 몸으로 엮어
보이지 않는 작은사랑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작은 早리를 심으며
오늘 너는 소문 없이 기어오르고 있다.
-윤재철, 「담쟁이」(방점 필자)
"부정이 긍정이 되고 / 다시 긍정이 부정이 되는" 싸움과 삶의 논리가 다름 아닌 변증법이라는 것은 주지된 상식이다. 시의 섬세한 공간 안에 이런, 약간 무지막지한 상식을 끌어들였을 때 맞이하게 되는 위험을, 그러나 그의 시가 거뜬히 이겨내고 있다는 점이 시인으로서 윤재철의 남다른 점이다. 이 남다름은 상식으로서의 변증법(그 싸움과 삶의 논리 !)을 담쟁이의 '뿌리 같은 몸'의 생리로부터 추이할 수 있는 그의 돌출한 형상화 능력에 의존한다. '담쟁이'로 형상화되고 있는, '기어오름', 그리고 '넘어섬'의 의미는 이미 고착되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절망적인 분단 상황에 대단히 시사적인 빛을 던져 준다. 담쟁이가 분단( ! ), 그 절망의 벽에 뿌리 같은 몸을 대고 기어오르는 일, 즉 "뿌리 박고 넘어서는 일"을 알려주는 방식은, 휴전선( ! ), 그 목숨의 한계를, "그 넘어갈 수 없는 슬픔"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감상주의적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휴전선이 전선의 연장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것은 극복의 있고 없음의 차이일 터인데, 한 가지 더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극복의 움직임이 '소리 없는 싸움', '소문 없이 기어오름'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은 가령 나해철의 「강강수월래」에서 노래하는, 절규하는 '열망'을, 언뜻 성급한 것으로 보이게끔 할 수도 있다.
그 날이 오면 우리가 추는 춤
복된 춤 네가 되리라 강강수월래
손에 손을 맞잡고 가슴에 가슴을 이어
동쪽의 너도 서쪽의 너도
남과 북의 너와 너도 하나가 되어
얼싸 안고 뛰리라 강강수월래
-나해철, 「강강수월래」
왜냐하면 "남과 북의 너와 너도 하나가 되어/얼싸 안"을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전선이 해제된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손에 손", "가슴에 가슴"을 잇는 화해에의 열망은 가짜 화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족 재통일은 소리 높은 열망만으로 오지 않으며, 그것은 소리 없는, 소문 없는 기어오름 · 넘어섬의 의미를 이해했을 때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어떤 고지이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그래서 "아픔으로 가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아픔을 통과할 때라야만 .그 승리는 가짜 승리가 아니다.
누구의 손도 빌릴 수 없고
노곤한 근육으로
살을 파고드는 아픔으로 가야하는 길
저 아픔의 산 위에 빛나는 새벽이여
아무도 모르게 찾아 올 승리여
-박몽구, 「협곡」
승리를 맞는 새벽, 그러나 그 이전의 아픔의 산정에 누가 오를 것인가? 그 고지로 가는 길, "긴긴 외로움으로 빛나는 길"에 이제 아무도 가지 않는다면, 명백히 박몽구에게도 개인주의가 있다. 그의 이 개인주의가, 그러나 노출된 집단주의보다 지금은 더 이로운 상황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낱 벌레만 바스락거려도" 소스라치는, 그의 외로운 '잠행'이 적어도 자기고립의 협곡에 갇히지 않고 새벽의 산정으로 가고 있는 한!
나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분석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도는 그들 시의 의미론적 편람을 작성하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의 시 한편 한편이 한 장 한 장의 판화와 만났을 때 점화되는 의미의 각기 다른 불꽃을 보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한편의 시와 한증의 판화가 맞부딪쳐 일으키는 의미의 이중충돌을 이해하려면 『오월 시』 동인들을 『오월 시』 동인들이 게 하는 어떤 전체적인 게스탈트에 대한 선 이해가 앞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개별적인 작품도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것의 전체성에 대한 선입견 Vorurteil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한 궤로 꿸 수 있는, 하나의 전체적 형태를 추려내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작업을 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작품의 개별성을 묵살했던 것이다. 나는 의미분석을 했고 또 그것만 했다. 그렇지만 그 의미분석이 한편의 시 전체가 아니라 몇 행의 텍스트에만 의존할 때, 한 작품의 전체가 갖는 의미와 그것의 부분이 갖는 의미 사이에는 무시 못할 편차가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니, 이 글에서 내가 추려냈다고 생각하는 『오월 시』에 전체상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를 알아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일이다. 같은 시를 다르게 읽는 일은 언제나 있어야 한다. 독자에게도 할 일이 있다.
나는 기쁘다. 무엇보다도 좋은 '판화가' 조진호와 김경주를 만난 때문이다. 조진호와 김경주를 판화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판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대개 그렇듯이, 이들에게도 판화는 자신의 회화적 작업의 연장으로 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45점의 판화를, 그리고 작업에 임하는 자신의 태도를 적은 글들을 보면, 이들에게 판화는 단순히 회화적 양식의 막다른 출구로서 추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들은 판화의 본질, 즉 (의사소통)의 한 방식으로서 판화가 갖는 회화적 내용-형식의 의의를 꿰뚫어 보고 있다. 조진호는 말한다. "판화의 특성이 대중과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나의. 성격과 즐겁게 맞아 일반 회화작업을 하면서 판화작업을 하고 있다. " 그리고 김경주도 말한다. "유독 미술이라는 작업만은 그 일품 성 때문에 전시장 안의 미라가 되거나 특정 애호가의 독점 물이 되고 만다는 사 실이, 복제 가능한 장르인 판화로 하여금 (전달)이라는 기능의 확산을 수행토록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렇다. 판화는 중세 독일에서 성했던 성서 도해로부터 시작한 그것의 발생 배후가 말하고 있듯이, (이야기)에 전달 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판화가 흥한 시대는 할 말이 많은 시대이며, 그런 만큼 혼미한 시대이다. 바꿔 말하면 판화는 한 시대의 혼미에 대한 저항에 사역하는 칼이며 침이다. 판화의 황금시대를 일으킨 독일 르네상스는 종교개혁과 농민전쟁으로 유혈이 낭자한 시대였다. 고야의 연작판화 「전쟁의 참화」 82점은 1808년 5월 마드리드학살의 회화적 목격에 다름 아니다. 20세기에 판화를 부활시킨 독일 표현주의자들은 점점 다가오는, 그리고 끝내 저질러진 양 차 세계대전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했다. 보다시피 판화가 판치는 시대는 결코 행복한 시대는 아니다. 그것은 역으로, 판화가 한 시대에 창궐해 있는 무지와 폭력적인 도그마에 대한 (싸움)으로서, 혹은 야만에 대한 (경고)로서 대결하교 있음을 뜻한다. 깨움이든, 경고이든 판화가 이렇듯 (깨어 있는 정신)의 소산이며 동시에 잠든 정신을 깨우는 각성제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조형적 계몽주의에 종사한다. 이 계몽주의는 (이야기)를 손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판화의 독특한 표현성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대저 (이야기)란 몹쓸 마법에 걸려 있는 현실 세계를 깨우는 이성의 주문이다. 그러나 깨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환멸인가 ? 내가 판화에 '눈독'들이게 된 개인적 내력은 (멕시코문명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에서 보았던 포사다 Posada와 멘대즈Mendez등의 판화로부터 비롯된다. 그때 내가 보았던 포사다의 「총살」, 「사파타의 병사」, 「우에르타의 해골」과 같은 동판화들은 내 눈에는 너무나 가혹한 공간이었다. 해골들을 먹고 있는 해골 전갈, 해골 밭을 달러는 말을 탄 해골 병사, 구두를 수선하는 해골들, 춤추는 해골들의 파티 등 가히 해부학적인 끔찍스러움으로 가득찬 그의 판화공간은, 그러나, 오랜 스페인 압정에 대한 투쟁과 1910년 멕시코혁명 과정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살아온 그의 삶의 면적이자 멕시코 현대 역사의 파샤드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판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 역사적 메시지는 (끔찍스러운 것)이 아니라 (끔찍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바르다. 그의'풍자는 현실을 환멸로 이끌며 그것과 대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조진호가 제작한 고무 판화들은 내가 포사다의 동판화들에서 받았던, 풍자의 전율적인 인상을 되살린다. 가령 사제의 검은 두건을 쓴 해골이 교회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여의도 B29」는 한 시대의 암장된 주검에 대한 풍자를 노골화한다. 교회의 겁은 내부에 들어 앉혀진 무덤들과 하얀 십자가들, 그리고 이 횐 십자가와 교회 청 탑 위의 검은 십자가 사이의 대비가 나의 이런 느낌을 지지하고 있다. 나의 이런 느낌은, 아버지인 듯한 사나이 가 그의 딸인 듯한 시신을 들고 서 있는 「희망을 위하여」 에도 연장된다. "흑과 백, 이 두 가지야말로 내가 가진 전부다"고 한, 베커만의 말을 나는 기억한다. 조진호가 구축하고 있는 「희망을 위하여」의 공간도 철저한 흑/백 대비의 기법에 의해 나뉘어 있다. 즉 아버지/딸, 살아있음/죽어 있음, 서 있음/누워 있음의 대비가 아버지를 새긴 음각(흰 색)/딸을 새긴 양각(검은 색)의 대비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죽은 딸을 안고 서 있는 아버지-그러나 그가 (절망)에 무릎 꿇지 않고 (희망)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을 붙잡은 이 작품은 판화의 기법인 (대비)를 정신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한 예이다. 그것은 그가 곽재구의 시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의 텍스트를 먼저 받아 놓고 판화작업을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판화가 반드시 시의 정화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도해일 필요는 없다. 판화는 시를 설 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또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조진호의 『노래를 위하여」는 단순히 나해철의 「노래를 위하여」의 조형적 복사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노래를 위하는데 있어서 판화는 '노래'의 뜻을, (통곡)과 동등하게 놓고 있는 시와 달리, (함성)의 몸짓으로 돌려버리고 있다. 하늘을 향해 벌린 입, 빗으로 빗은 듯이 흩날리는 머리카락, 가슴 앞으로 내민 손을 측면으로, 그리고 강한 운동성을 나타내는 사선 구도로 포착하고 있는 조진호의 판화 공간은 확실히,
목이 쉬고 가슴이 타면
혼을 쥐어짜서 네가 외친다면
노래라 부르며 통곡한다면
-나해철, 「노래를 위하여」(방점 필자)
"차라리 너(가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해철의 시적 공간보다 더 저항적으로 보인다. 확실히 조진호에 판화 적 특징은 저항적인 선에 있다. 그의 「이화중선」, 「분노」, 「가난한 나라의 꽃」은 그의 과감한 칼질이 남긴 선 의 정기는 듯한 힘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낫을 쥐고 웅크리고 앉은 두 농부의 모습을 새긴 「영산포 7」은 내 눈에는 그의 걸작으로 들어온다. 거기에는, 농부들의 휘둥그래 뜬 눈, 혹은 부릅뜬 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저항의 밑바닥에 공포가 있음이 잘 새겨져 있다. 반면에 그의 「소국」은 실패작이다. 그의 칼질이 하나의 집중된 형상화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판화 속에 주입할 것인가에 대한 자각된 조형의지를 갖지 않았음을 말한다. 곧 이야기하게 될 김 경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조진호의 판화 세계에는 그가 판화로써 대하고 있는 현실에의 보다 심층적인 인식이 아직은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여의도 B 29」에서 그는, 시인의 상상력이 인도하고 있는 분단상황에 대한 인식의 길을 한발자국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여의도의 B29를 보지 않고 순 복음 교회만 본 것이다.
김경주의 판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의 나이가 우선 궁금했다. 판화에 나타난 그의 소묘능력이 너무 월등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약력은 그가 1956년 강진에서 태어나 지금은 지방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것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 흔한 그룹전이나 공모전 한번 가진 적이 없는(그래서 나는 그를 모른다), 이 무명의 청년 예술가로부터 내가 천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나의 만용일까? 아니면 맹점일까? 그러나 이 만용과 맹점을, 가령 그의 「춘몽」, 「풀벌레」, 「가투」, 「아버지의 저력」,「강강수월래」와 같은 작품들이 작품 자체로써 견디어 낸다. 흑·백의 절묘한 배합에 의한 명·암의 입체감, 농·담의 중량감을 획득하고 있는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예컨대 표현주의자들이 판화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표현성의 마력을 그가 터득했음을 예시한다. 그리고 그가 판화 촉에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오브제들'은 능히 시적이라고 할만큼, 그의 표상능력은 탁월하다.
완숙할 손에 의해 파내어지는 정경주의 판화공간이 우리에게 감동을 동반하는 것은, 사실, 사선을 넘어 온 삶에 대한 그의 관통하는 듯한 응시 때문이다. 그의 꿰뚫는 듯한 눈은,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어떤 적개심도 품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패배를 울부짖는 절망감으로 가득찬 것도 아니다. 그는 묵음된 고통을 침착하게 투시하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그의 판화 속에는 침묵이 깊다. 과연, 그가 세기고 있는 인물들-일하는 사람들, 장례를 치르는 여인들, 심지어는 징을 치는 놀부까지도 입을 꾹꾹 다물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숙 주의는 나에게는, 마치 한 시대의 소리 즉일 부음을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우리는 모두 토의 판화 앞에 상책으로 서 있다. 확연히, 고대 이집트 미술의 '정면성의 원리'를 떠올리는 그의 「봄을 위하여」, 『춘몽』, 「봄밤에 비는 내리고」 등은 봄의 장례를, 보는 이로 하여금 측면으로 보게 한다. 그 행렬을 측면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이들이 기차를 측면으로 그리는 것처럼 지각구조상 그 행렬을 가장 잘 보이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보는 이가 행렬에 가담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일 수도 있다-다시 말해서 상객에게 죽음은 역시 손님일 따름이다. 봄의 죽음이 나의 그것임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판화의 평면성을 기법으로 그가 어떻게 극복하느냐 에도 달려 있을 것이다. 가령 그의 「사육신」은 이에 대한 답 가운데 하나인 겉 같다.
그의 「사육신」에서는 봄날의 장지로 가는 길이 원근법 적 깊이를 지님으로써 보는 이도 그 길을 함께 따라가고 있다는 실감을 준다. 검은 대지, 순교의 흰 길을 끝간 데 까지 고개 떨구고 가고 있는 원경의 두 사람, 그리고 그 들이 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더 따라 갈 수 없는 곳에서 하늘 향해 고개를 쳐들고 서 있는 근경의 모녀‥‥‥‥ 이러한 모티브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하늘을 탓하고 원망하는 듯한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과 대조적으로, 기울어진 하늘 저 너머로 다가올 어떤 희망을 꿈꾸는 듯, 혹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듯, 눈감은 딸의 얼굴이다. 어떠한 저주도 어떠한 절망도 없는, 어떠한 고통의 각인도 들어가 있지 않은 이 지순한 얼굴은 바로 순교의 미래이다. 왜냐하면 이 딸은 자라나는 세대이니까 ! 그런 점에서 정경주는 순교의 의미를 과거에서 끌어오고 쏘는 나종영의 '사육신' 해석을 수정한 셈이다. 김경주 판화의 테마는 이 같은 오월의 추도(i) 외에도 분노와 비애의 결합(ii), 일하고 놀이하는 민중의 현실(iii), 화해의 날들에 대한 열망(iv)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ii) 「우체국에서」, 「눈길」, 「과꽃」, iii) 「아버지의 저녁」, 「별」, 「보리밭 가에서」, iv) 「강강수월래」, 「가투」 등이 그의 판화주제의 연속적인 프로그램을 이루고 있는 일련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그의「아버지의 저녁」은 (성숙한 리얼리즘)의 한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도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쇠스랑으로 밭을 가는 농부, 빈 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아내, 멀리 연기를 피워 올리는 공장 굴뚝을 전경에서 배경까지 각각 배치하고 있다. 이런 배치가 언뜻 보기에 부자연스럽고 비연속적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한 배치는 비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성숙한 리얼리즘'의 전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아야 할 현실)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자연주의와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셀즈 Selz가 그의 저서 『독일 표현주의 회화』의 첫 장에, "화가는 일상적으로 우리 눈에 저절로 들어오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아야만 하는 것, 또 우리가 볼 수도 있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을 그린다"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는 까닭을 나는 알 것 같다. 글쎄, 모름지기 판화란 현실의 재현도 반영도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이것은 어디 판화뿐이랴 ! 그런 점에서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을 대립시킨 루카치의 관심이 참 편협했구나 하는 것을 나는 느낀다 왜냐하면 현실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의 경계란 사실 흐물흐물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판화든, 그 속에서 (이야기된) 현실이란 그것의 표현매체, 즉 말이나 막막한 평면의 불 완전성 때문에 그것을 나타낼 때는 어느 정도의 이상화 ·양식화 과정을 어차피 거친 것이 아닌가. 성숙한 리얼리즘은 이미 표현 성을 잉태하고 있다.
공장의 연기와 농부 아내의 빈 바구니 사이의 의미 관련은, 조금 현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하부 구조"(메를로 퐁티)를 드러내며, 이 드러냄 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그것의 표현이다. 텅 비어 있는, 그 캄캄한 바구니 속을 농부 아내가 물끄러미 들여 다 보고 있는 것은 그녀의 몰수된 현실에 대찬 응시이자 그것의 시위이기도 하다. 공장의 연기가 그녀의 바구니 속에 들어 있어야 할 결실의 증발을 나타낸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스랑으로 밭을 내리 찍는 이 농부에 게, 과연 "일하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 단순해 근육의 수축-팽창인가? 정경주의 『아버지의 저녁」은 바로 이것을 묻고 있다. 그것은 물음이 아니라 거의 창의에 가깝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갖는 커다란 예술적 설득력을 그러한 물음을, 항의를, 고성방가로써가 아니라, 예민한 손끝으로 파헤쳐진 선의 절제된 외침으로써 제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근육의 섬유질 같은 세선이 무늬져 있는 하늘도 나에게는 우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별」, 「보리밭 가에서」 「아버지의 저녁」과 같은 리얼리즘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정경주는 현실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과감한 생략과 그것의 양식화를 통해 현실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작품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의 『가투』, 「강강수월래」, 「은행나무」 등이 그런 작품인데, 이것은 명백히 리얼리즘의 월경이다. 나는 그의 월경을 탓하지 않는다. 그는 넘어가서도 현실 알레고리가 풍부한, 또 다른 기특한 조형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피의 「가투」는 마치 고려시대 동자희희상을 보는 것 같다. 개구리 같이, 다족류 벌레같이, 뛰노는 사람들을 문양화시킨 이 작품은 우습고 징그럽다. 반면에 그의 「강강수월래」는 뭔가 비장하고 협찬남성을 강조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 두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유희'의 의미는 사뭇 대조적이다. 놀고 있는 사람이 양각으로 표현되었느냐 음각으로 표현되었느냐에 차이도 있지만, 전자가 '낮'의 놀이라면 후자는 '밤'의 놀이다. 낮의 놀이는 얼싸덜싸 패거리를 지었지만 분산되고 왜소화된 개인들의 집합인데 반해서, 밤의 놀이는 알몸으로서의 만남, 온 몸으로서의 만남이며, 그러니까 화해와 통합의 모임이다. 밤과 달의 여성의 원무인 '강강수월래'를 남성의 나상으로 대체시킨 김경주의 상상력이 경이롭다.
특히 쓰러질 듯 일어서는 힘과 그것을 붙들어 주고 당기고 밀고 하는 팔뚝들의 연결은 팽팽한 긴장감을 화면에 불어넣는다. 이런 긴장감은 둥근 칼로 동체를 뚝뚝 떠낸 그의 빠른 칼질에서 기인하지만, 굵은 허벅다리에 돋아난 근육과 함께 강한 역동성을 이 작품에 부여한다. 그런데 왠지 이 역동성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으로 온다. 밤을 표상하는 흑색 바탕과 달빛 받은 남성의 알몸의 대 비가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탓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료인 목판에 나무, 새, 아이를 착색하여 앉힌, 김경주의 「은행나무」는 아예, 시다. 그리고 지나치게 시적이다. 특히 나무 및 속에서 세 마리의 백조가 유영하는 수면을 보도록 사물을 제 마음대로 고쳐버리는 그의 시적 환기력은 감쪽같다. 물론 시와 그림이 등가 교환체계를 이룬 행복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지나치게 시적이라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은 김 경주에게 예술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의미한다. 그의 「은행나무」는, 말 할 것도 없이, 참신하고 좋다. 나무 뿌리에서 나뭇잎 상단에까지 '포커스 아우트'되어 있는 청록색의 은은한 변화는 치솟는 수액처럼 싱싱하다. 그가 나무 속에서 물을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일텐데, (푸른 성장)을 표상하는 이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는 한없이 안온한 휴식을 느낀다. 아, 우리는 얼마나 쉬고 싶어하는가! 그러나 이 휴식은 정지이고 마비이고 영면이고‥‥‥꼭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그렇고 그렇게 되어 버릴 위험이 많다. 예술주의의 위험은 예술을 휴식을 위한 장식화에로 곧바로 가져간다는 점에 있다.
그의 「까마귀」, 「과꽃 2」와 같은 작품들은 정말, 장식적이다. 거기에는, 「은행나무」에서와』같은 시적 통풍도 없고, 그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메시지도 없다. 이를테면 「과꽃 2」는 한낱 신문소설의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조진호와 정경주의 판화 45점을 이 글에서 다 판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한번 쭉 통독(나는 판화도 읽는다!)한 후 내가 받은 느낌은 그것들이 각각 짝짓고 있는 시와의 내적 의미 관련이 기대했던 것 이하로 약하다는 점이었다. 『오월 시』 동인을 대신하여 김진경은 시와 판화의 만남이 그것들의 의미 관련 Sinn-Zusammenhangen을 통한 삶의 총체성을 폭넓게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길 바랬던 것 같은데, 이런 주문이 조진호와 김경주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리라. 시 ·판화의 만남은 그들에게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판화로 옮길 때의 서로 다른 매체에서 모는 저항력 때문에 양자의 의미 관련을 잃는 것은, 즉 김경주가 말한 것처럼 '시는 시대로 판화는 판화대로' 분절되는 것은 시 ·판화의 자율성도 그것의 총체성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일례로 「보리밭 가에서」나 「송광사에서」와 같은 작품은 시 따로 판화 따로 이다. 『오월 시 판화 집』에서 시도되고 있는 시와 판화와 만남이 이렇듯 그것들 사이의 내적인 의미 연계를 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표현매체의 상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 이전에 시 쓰는 사람과 판화 만드는 사람이 각각 현실을 보는 인식의 차이에 있다. 『오월 시』에 공통되게 표현되고 있는 분단 현실이 조진호와 김경주에게는 망막의 맹점에 위치한다. 분단 현실이 그들에게도 자각되도록 시인들과 판화 가들 사이의 공통감각의 확인이 마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내가 『오월 시 판화 집∼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에 대해 갖는 작은 불만이다 그리고 이 작은 불만은 『오월 시 판화 집』에 대한 나의 너무 클 사랑의 짜증이다. 말하기 어려운, 오늘의 적요한 삶을 절망의 극점에서 희망의 극점으로 인도하늘 『오월시 판화집』은 우리 모두의 고통스러운 문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월 시 판화 집, 1983.9]
-『오월시 판화집』 해설
황지우
『오월시』는 우리에게 언제나, 어떤 죄 의식으로 먼저 온다. 그것은 그들의 시가 동시대에 일어난 불행에 대한 열렬한 추도사이기 때문일까? 그들의 시를 읽으면 나는 괴롭고 두렵다. 일군의 시적 집적 물들이 한 시대를 역사 앞에 소환하여 '너희는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였느냐'를 추궁할 때 이 물음을 회피할 방도가 적어도 나에게는 없어서이다. 물론 『오월시』가 이 물음의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시대의 어둠을 명명 하도륵 부름을 받아, 그 순수한 구속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시를 쓰는 자는 진정한 시인일 수 있다"(김진경, 「제3문학론」)는 것을 공동명의로 제시하고 있는 한, 『오월시』동인들은 이 물음을 시의 전폭으로, 끊임없이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이 완료되지 않은 물음을 이제 『오월시』는 판화의 농축된 공간과 제휴하여 흑백 대조법과 극명한 조명 아래 재활 시키고 있다.
『오월시』는 80년대 우리 삶과 문화의 가파른 카타스트로프에 대응해서 나타난 주요 시 동인지들 가운데 하나이다. 같은 시대의 파경에 대해 같은 시대의 말로써 응답한다는 것은, 시인으로서는, "바로 볼 수 없는 일"을 끝끝내 응시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책무이다.
네가 가서 오지 않는 흙바람 속으로
눈을 감고 가야겠네
오월 하늘 밑 참꽃 붓꽃 피 망울져
피어도 어지러워 어지러워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 곳
-나종영, 봄을 위하여(방점 필자)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 곳"에서 두 눈으로 이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분명히 현기증 나는 일이다. 이 현기증 앞에 시인은 눈을 감을 수도 있고, 혹은 현기증까지도 응시하려고 덤비는 수도 있다.
『오월 시』 동인들 가운데 나 종영은 이 경우, 눈을 감는 쪽에 속해 있다. "눈을 감고" 가는 그의 오월 행은 "여윈 넋"을 찾아가는 초혼 굿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가령,
여윈 넋 찾아가리 에헤라
여윈 넋 찾아가리 에혜라
녹밧줄 어름에 별빛이 뜨네
덩더꿍 칠채가락 흰 부채 바람이 부네
-위의 시
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시가 가락의 내재적 규칙을 통과함으로써 빼어난 서정적 리듬을 포획하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굿거리 장단에 침입은 바 크다. 그러나 모든 장단에 그런 것이 있게 마련이지만 "칠채가락 흰 부채 바람"의 신명에 '덩더꿍', '에헤라' 하며 놀아나다 보면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 곳"의 슬픔·원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해 버리는 것으로 만족해 할 위험이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시에는 '풀이'의 기능이 있다. 그러나 그 '풀이'-그 해소가 자칫 문제의 부재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묵인하도록 암암리에, 끈질기게 들볶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나종영의 「사육신은」그 한 예이다. 이 시는 명백히 군신주의의 시대착오적인 교훈(예 : "땅 위에 두 임금 섬길 수 없어/오뉴월 모래톱에 뿌린 붉은 피") 에 흘려 있다. 이것은 그의 현실인식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오월 행이 "눈을 감고" 가는 길이기 때문이리라. 눈을 감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맹목이다.
그런 점에서, 극히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편이긴 하지만, 박 주관의 「춘몽」도 오월의 '함성'을 순간적인 흥분의 사출로써 해소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폭포가 곤두박질하다가 떨어지는
그 순간의 사정처럼
아 하고 외치던 그날의 함성처럼
-박 주관, 「춘몽」(방점 필자)
그가 말하는 "봄에 관계하는 것들"이 "꿈같은 것"이라면, 그의 오월에 대한 인식은 어떤 의미에서 허무주의적이며, 나쁘게 말하면 경망스럽다고 일컬어질 수도 있다. 그 경망스러움은 그의 현실 대항이 성적인 욕설(예 : "가랑이를 벌리려거든," "신나게 벌려 주어라")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을-그것이 비록, 아무리, 참혹해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오래 바라보지 않고 빨리 소리지르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하얀 고무신」, 「아버지의 저녁」은 비교적 이런 결점으로부터 자유로와 보인다 그것은 그가 어두운 현실을 그러나 (밝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본다는 것은 반성의 시작이며 미래에의 투시, 즉 전망을 뜻한다. 곽재구의 「희망을 위하여」가 바로 이것을 보증한다.
두 눈을 뜨고 어둠 속을 질러오는
한 세상의 슬픔을 보리
네게도 가는 마음의 길이 굽어져
오늘은 그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곽재구 「희망을 위하여 」(방점 필자)
오늘은 희망으로 가는 길이 비록 "보이지 않더라도", 절망적인 현실을 "두 눈을 뜨고" (본다)는 것은, "두 눈뜨고 설 수 없는" 이곳이기에 "눈을 감고" 여윈 넋 찾아가는 초혼중과는 현저히 구별된다. 후자는 현실을 반성 이전의 세계에 방치해 둔다면, 전자는 그것을 반성적인 세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성 이전의 세계에서 현실은 맹목에 이끌려 가지만 반성적인 세계에서 현실은 목적을 갖게 된다 그 목적은 미래의 수태이다. 그러나 미래의 표적을 조준하는 기준은, 당연히, 현실에 대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되돌아 볼 때" 라야 가늠할 수 있다
시간적 거리를 두고 되돌아 볼 때 우리가 모이게 된 동기가 된 사건은 우리가 태어난 1950년대 이후 겪어온 모든 모순의 폭발점이며, 또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으로 몇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싸움임을 깨닫게 된다.
-김 진경 , 「제3문학론」
이 깨달음(!)은 현실반성의 소산이다. 즉, 이것은 (오월)이, 분단된 민족의 자해행위였던 (유월)의 한국전쟁과, 분단을 고착시킴으로써 가중된 억압적인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파열되었던 (사월)의 학생 혁명을 가로지르고 있음에 대한 깨달음이다. 분단이 전 민족에 가해진 자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가 이 땅에 내렸다고 생각하는 삶의 뿌리는 도대체 누구의 뿌리이며 누구의 삶인가? 분단을 수락한 상태에서 우리가 이룩하는 삶이란 근본적으로 뿌리 뽑힌 것이 아닌가?"(김진경, 앞의 글)라고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분단 상황에 대한 인식이 시속에 투영되기 시작한 것은 비단 『오월 시』 동인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70년대에 고 은에 의해서, 그리고 "위대한 청춘"의 계절, 오월의 명명자인 김준태에 의해서, 분단은 오늘 우리 모두를 묶고 있는 아픔의 족쇄이며 저주스러운 형극 임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역사적 교수 선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나간 북한 땅을 (여성)으로 호명하는 흑은 교접하는 그들의 경우(예 : "누이여. 버들 같은 누이여."-고은, 「두만강으로 부치는 편지」. "북한 여자는/ 내 살덩이를 삼팔선인양 울어 뜯으며"-김준태, 「북한여자」 와 달러, 『오월시』 동인들에게 분단 상황은 (교과서의 활자)에 의해 교육되어진 것이며, 따라서 어떤 이념, 어 떤 허위의식에 의한 조건 반사적인 공격성의 훈련을 강요받는 상환이었다. 이를테면 최두석의 「가투」는, 이'공격성이 '나방의 사정'으로 암시하고 있듯 (남성)의 가학성과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콩꽃떨기마다 이상한 나방이 射精을 하고 다렸다. 그때 나는 국어 선생이었다. 깊이 자랑했던 이념의 말이 교과서 구석에 쓰여 있었다. (…) 학생들의 한 떼는 교련시간이었다. 엎드려 쏴 ! 찔러, 길게 찔러. 이파리는 사살되어 무참히 찢기 우고 고개를 돌렸을 때 교과서의 활자는 뻔뻔하게 그대로 박힌 채였다.
-최두석, 「가투」
이 시의 상황은 국어시간인 교실 안과 교련시간인 교실 밖으로 나뉘어 있다. 동떨어진 이 두 상황은, 그러나, 교실 안에서 가르치는 "이념의 말"이 실은 교실 밖에서 들려오는 "엎드려 쏴 ! 찔러, 길게 찔러"라는 구령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읽는 이에게 추이해 시킴으로써 오늘의 분단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알레고리를 구성하고 있다. 이념의 이름으로, 엎드려 쏘고, 찌르고, 길게 찌를 때, 그 가학적인 자해의 깊이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최두석은 『오월시』 동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다른 『오월시』동인들과 스스로를 구분 짓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두드러진 점은 그 자해의 무참함을 얄미울 정도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 그는 시인으로서 노래하지 안고 이야기한다. 그 까닭은, 시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노래와 이야기」) 뿐이기 때문이라는 데, 바로 그러한 이야기의 기술적인 구조 때문에 그의 시가 다른 『오월 시』 동인들이 빠져들기 쉬운, 감상주의로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점은 유의할 만하다. 그 대가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의 시는 답답하다.
최두석의 「가투」에도 나타나 있듯이, 『오월시』 동인들이 분단상황을 시 속에 인각시킬 때 대부분 그것이 학교나 학교 다니던 유년 시절과 관련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것은 그들이 195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분단의 책임이 면제되어야 할 그들 세대에 학교는 분단상황을 떠받들고 있는(차가운 전쟁)의 논리를 교리문답 시켰던 것이다. 장차 자라서 시인이 된 그들은 시인의 천성인 깨어있는 의식으로, 그 교리문답의 폭력성 ·파괴성을 더듬는다. 정진경의 「큰 장수하늘소」와 윤재철의 「여의도 B 29」는 그것을 보여준다.
i) 선생님의 눈을 피해
우리들의 집게벌레는 책상 위를 돌진하고 있었다.
삼팔선을 넘어 나의 집게벌레가 돌진하면
너의 집게벌레는 책상의 끝으로 몰리고
너는 주먹으로 내 집게벌레를 으깨버렸다.
싸움이 벌어지고
-김진경, 「큰 장수하늘소」(방점 필자)
ii) 찰흙 비행기
어린 시절, 풀잎들의 나라
어쩌면 아름다운 꿈의 비행기.
끊어진 임진강 철교 한토막이
다시 피묻은 매 한마리
은빛 날개, 폭음을 울리며
잠들 사이도 없이, 우수에 잠긴
내 꿈의 나라를 폭격하고
-윤재철, 「여의도 B29」(방점 필자)
i)은 초등 학교 자연시간에 선생님 몰래 책상에 두 마리의 집게벌레를 놓고 싸움을 붙이다가 짝꿍과 싸움이 붙은 어린 시절의 사건에 대한 기억이 시적 동기가 되고 있다. "주먹으로 내 집게벌레를. 으깨"버린, 이 작은 폭락은 책상 가운데 칼로 자욱 낸 "삼팔선"(195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기억나리라)을 중으로 곧잘 일어나는 경계분재에 다름 아니다. 시인은 이 분계선이 폭력과 싸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집게벌레를 으깬 짝꿍이 바로 전쟁 고아라는 사실을 밑받침대로 하여 떠올리고 있다. ("복도에서 벌을 서며, 너는 고아원을 탈출하겠노라고 / 여름 방학이 되도록 너의 책상은 비어 있었다. / 사람들은 네가 빨갱이 자식일 거라고도 하고"-「큰 장수하늘소」)
그렇지만 분단의 횡단 측면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김진경의 시는 다소 평면적이라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그가 분단상황을 인과론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사실로서 파악한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반하여 분단상황을 사실로서, 그리고 사실 이상으로서, 포착하고 있는 윤재철의 「여의도 B29J는 그보다 훨씬 크게 울림이 들려 온다. 이 시는 아름답다. 거기에는 꿈 ·환상이 사물·사실과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시적 울림은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본 '여의도 B29'→어린 시절 공작시간에 만든 '찰흙 비행기'→기억 속에 살아있는 '피 묻은 매 한 마리'로 자유롭게, 빠르게 움직이는 이 시인의 상상력의 몫이다. 그러나 이 상상력은 동시에 외부 현실 (B 29)→유년(찰흙 비행기)→기억(매)이라는 퇴행적 순서에 따라 이미지를 전이시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ii)에서 찰흙 비행기가 임진강 철교를 끊고 "내 꿈의 나라를 폭격"하는 것은 다 (기억)속에 서의 일이다. 요컨대 파괴적인 분단상황에 대한 시적 제 시가 추억의 잔해나 흔적에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적은 윤재철 뿐만 아니라 김진경, 최두석에게도 골고루 적용된다.
분단상황이 추억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으로, 상흔이 아니라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짧게 말해서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협박으로 인식되고 표현된 것은 『오월 시』 동인들 가운데 이영진에 이르러서야 이룩된다. 그의 「휴전선」은 인생과 죽음의 경계이며 그것은 현재 이 자리에 살고 있는 그의 "일상의 더 나아갈 수 없는 한계"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어느 날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이 죽음이다 싶을 때, 이상하게도 휴전선이 보였다.
책상 위에도, 거울 속에도, 재털이 위에도. 밥상이나
내 막막한 가난 위에도
휴전선이 보였다.
휴전선의 철조망은
내 목숨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것은 내 목숨의 한계였다.
내 일상의, 내 꿈의
더 나아갈 수 없는 한계였다.
-이영진, 「휴전선」(방점 필자)
이영진에게는 분단의 경계가 '삼팔선'이 아니라 '휴전선'이라는 사실은 퍽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가 분단상황을, '교과서 속 활자'나 '책상 위 칼선'에서, 흑은 전쟁기념물인 'B29'에서 역사적 과거형으로 후 체험하는 앞의 세 시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몸무게가 실려있는 삶의 한 가운데서, 흑은 그 끝에서, 즉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사건의 현재형으로 만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휴전선'은 전쟁의 종결이 아닌 그것의류지기일 뿐이며, 그런 뜻에서 잠재적이긴 하지만 끊임없는 싸움의 현재형을 지시하는 선이다. 이 '휴전선'이"내 목숨의 한계"라는 탁월한 시적 통찰에 이영진이 이르게 된 점을 나는 축하하고 싶다. 분단에 대한 이 같은 통찰은, 전쟁시의 기념비적 수준에 머문 박봉우의 「휴전선」으로부터 이영진의 「휴전선」을 구분 짓는 중요한 차이 점이며, 분단을 남녀 상열지사적 그리움의 공간적 거리로 혹은 유년기 기억의 시간적 거리로 떨어져서 바라본 앞의 여러 시인들의 시각과도 다르다. 분단상황에 대한인식의 이러한 성숙이 이영진에게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추측컨대, 그가 오월의 화염 속을 몸소 지나온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삶의 극점에서 즉 "인생이 죽음이다 싶을 때", 그가 "내 목숨의 한계"로서 '휴전선'이 보였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모이게 된 동기가 된 사건은 우리가 태어난 1950년대 이후 겪어온 모든 모순의 폭발점"이다라는 오월시 동인들의 공통된 인식에 대한 시적 보증, 바로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휴전선'은 DMZ를 뜻할 뿐만 아니라, 그가 앉은 책상과 밥상 위로도, 그가 걷는 금남로와 광주천 위로도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휴전선은 언제나 무너질, 그리고 무너져야 할 선이다. 그것은 나누어져 있는 (둘)이 (하나)가 될 때까지의 전선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영진의 「휴전선」이 이러한 전선의 함의를 결여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휴전선」은 목숨의 한계이면서도 그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슬픔"일 뿐, 자기 목숨을 넘는 싸움은 아직 없다. 이것은 그의, 채 청산되지 못한 감상주의 탓이다.
하늘에도 휴전선은 가득 펼쳐져 있었고
나는 하늘을, 그 한계를
그 넘어갈 수 없는 슬픔을 고개를 젖히고 바라다보며
눈물이 났다.
-이영진, 「휴전선」(방점 필자)
휴전선의 슬픔을 누가 모른다고 했나? 그런 빤한 사실을 두고 '나는 눈물이 났다'고 말하는 것은 이 시가 모처럼 획득한 인식의 긴장감을 일시에 허물어 버린다 즉 휴전선은 전선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감상주의가 방해하고 있다. 내 생각에 그의 감상주의는, 휴전선의 의미를 현실 은유로 받아들일 때의 "휴전선의 저 끝/저 끝에서 오는 '찬란한 눈물"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바꿔 말해서 그것의 의미가 오월의 추도만으로'머물려고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찬란한 눈물'은 찬란한 만큼 기념이며 추도이다. 그러나 기념과 추도는 상황의 종결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일 수 있다.
휴전선을 없애는 방법, 즉 분단을 극복하는 방법은 감상주의에서는 찾아지지 않는다. 감상주의는 거부가 아니라 소모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분단극복은 모든 대항의 논리가 그런 것처럼, 말하자면, 변증법적인 사고에서만 발견된다. 이런 발견을, "교육원 붉은 벽돌담에 달라" 붙어 있는, '담쟁이'로부터 이끌어낸 윤재철의 주의력이 비상하다.
부정이 긍정이 되고
다시 긍정이 부정이 되는
소리 없는 싸움과 삶의 논리를
너는 뿌리 같은 네 몸으로 엮어
보이지 않는 작은사랑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작은 早리를 심으며
오늘 너는 소문 없이 기어오르고 있다.
-윤재철, 「담쟁이」(방점 필자)
"부정이 긍정이 되고 / 다시 긍정이 부정이 되는" 싸움과 삶의 논리가 다름 아닌 변증법이라는 것은 주지된 상식이다. 시의 섬세한 공간 안에 이런, 약간 무지막지한 상식을 끌어들였을 때 맞이하게 되는 위험을, 그러나 그의 시가 거뜬히 이겨내고 있다는 점이 시인으로서 윤재철의 남다른 점이다. 이 남다름은 상식으로서의 변증법(그 싸움과 삶의 논리 !)을 담쟁이의 '뿌리 같은 몸'의 생리로부터 추이할 수 있는 그의 돌출한 형상화 능력에 의존한다. '담쟁이'로 형상화되고 있는, '기어오름', 그리고 '넘어섬'의 의미는 이미 고착되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절망적인 분단 상황에 대단히 시사적인 빛을 던져 준다. 담쟁이가 분단( ! ), 그 절망의 벽에 뿌리 같은 몸을 대고 기어오르는 일, 즉 "뿌리 박고 넘어서는 일"을 알려주는 방식은, 휴전선( ! ), 그 목숨의 한계를, "그 넘어갈 수 없는 슬픔"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감상주의적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휴전선이 전선의 연장인가 아닌가 하는 차이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것은 극복의 있고 없음의 차이일 터인데, 한 가지 더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극복의 움직임이 '소리 없는 싸움', '소문 없이 기어오름'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은 가령 나해철의 「강강수월래」에서 노래하는, 절규하는 '열망'을, 언뜻 성급한 것으로 보이게끔 할 수도 있다.
그 날이 오면 우리가 추는 춤
복된 춤 네가 되리라 강강수월래
손에 손을 맞잡고 가슴에 가슴을 이어
동쪽의 너도 서쪽의 너도
남과 북의 너와 너도 하나가 되어
얼싸 안고 뛰리라 강강수월래
-나해철, 「강강수월래」
왜냐하면 "남과 북의 너와 너도 하나가 되어/얼싸 안"을 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전선이 해제된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손에 손", "가슴에 가슴"을 잇는 화해에의 열망은 가짜 화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민족 재통일은 소리 높은 열망만으로 오지 않으며, 그것은 소리 없는, 소문 없는 기어오름 · 넘어섬의 의미를 이해했을 때 비로소 다다를 수 있는 어떤 고지이다. 거기에 이르는 길은 그래서 "아픔으로 가야 하는 길"이다. 그리고 아픔을 통과할 때라야만 .그 승리는 가짜 승리가 아니다.
누구의 손도 빌릴 수 없고
노곤한 근육으로
살을 파고드는 아픔으로 가야하는 길
저 아픔의 산 위에 빛나는 새벽이여
아무도 모르게 찾아 올 승리여
-박몽구, 「협곡」
승리를 맞는 새벽, 그러나 그 이전의 아픔의 산정에 누가 오를 것인가? 그 고지로 가는 길, "긴긴 외로움으로 빛나는 길"에 이제 아무도 가지 않는다면, 명백히 박몽구에게도 개인주의가 있다. 그의 이 개인주의가, 그러나 노출된 집단주의보다 지금은 더 이로운 상황에 우리가 속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낱 벌레만 바스락거려도" 소스라치는, 그의 외로운 '잠행'이 적어도 자기고립의 협곡에 갇히지 않고 새벽의 산정으로 가고 있는 한!
나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분석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의도는 그들 시의 의미론적 편람을 작성하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의 시 한편 한편이 한 장 한 장의 판화와 만났을 때 점화되는 의미의 각기 다른 불꽃을 보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한편의 시와 한증의 판화가 맞부딪쳐 일으키는 의미의 이중충돌을 이해하려면 『오월 시』 동인들을 『오월 시』 동인들이 게 하는 어떤 전체적인 게스탈트에 대한 선 이해가 앞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떠한 개별적인 작품도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것의 전체성에 대한 선입견 Vorurteil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한 궤로 꿸 수 있는, 하나의 전체적 형태를 추려내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작업을 하면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작품의 개별성을 묵살했던 것이다. 나는 의미분석을 했고 또 그것만 했다. 그렇지만 그 의미분석이 한편의 시 전체가 아니라 몇 행의 텍스트에만 의존할 때, 한 작품의 전체가 갖는 의미와 그것의 부분이 갖는 의미 사이에는 무시 못할 편차가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니, 이 글에서 내가 추려냈다고 생각하는 『오월 시』에 전체상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과연 그런지 안 그런지를 알아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일이다. 같은 시를 다르게 읽는 일은 언제나 있어야 한다. 독자에게도 할 일이 있다.
나는 기쁘다. 무엇보다도 좋은 '판화가' 조진호와 김경주를 만난 때문이다. 조진호와 김경주를 판화가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판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대개 그렇듯이, 이들에게도 판화는 자신의 회화적 작업의 연장으로 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준 45점의 판화를, 그리고 작업에 임하는 자신의 태도를 적은 글들을 보면, 이들에게 판화는 단순히 회화적 양식의 막다른 출구로서 추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들은 판화의 본질, 즉 (의사소통)의 한 방식으로서 판화가 갖는 회화적 내용-형식의 의의를 꿰뚫어 보고 있다. 조진호는 말한다. "판화의 특성이 대중과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나의. 성격과 즐겁게 맞아 일반 회화작업을 하면서 판화작업을 하고 있다. " 그리고 김경주도 말한다. "유독 미술이라는 작업만은 그 일품 성 때문에 전시장 안의 미라가 되거나 특정 애호가의 독점 물이 되고 만다는 사 실이, 복제 가능한 장르인 판화로 하여금 (전달)이라는 기능의 확산을 수행토록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요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그렇다. 판화는 중세 독일에서 성했던 성서 도해로부터 시작한 그것의 발생 배후가 말하고 있듯이, (이야기)에 전달 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판화가 흥한 시대는 할 말이 많은 시대이며, 그런 만큼 혼미한 시대이다. 바꿔 말하면 판화는 한 시대의 혼미에 대한 저항에 사역하는 칼이며 침이다. 판화의 황금시대를 일으킨 독일 르네상스는 종교개혁과 농민전쟁으로 유혈이 낭자한 시대였다. 고야의 연작판화 「전쟁의 참화」 82점은 1808년 5월 마드리드학살의 회화적 목격에 다름 아니다. 20세기에 판화를 부활시킨 독일 표현주의자들은 점점 다가오는, 그리고 끝내 저질러진 양 차 세계대전의 불안과 공포를 표현했다. 보다시피 판화가 판치는 시대는 결코 행복한 시대는 아니다. 그것은 역으로, 판화가 한 시대에 창궐해 있는 무지와 폭력적인 도그마에 대한 (싸움)으로서, 혹은 야만에 대한 (경고)로서 대결하교 있음을 뜻한다. 깨움이든, 경고이든 판화가 이렇듯 (깨어 있는 정신)의 소산이며 동시에 잠든 정신을 깨우는 각성제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조형적 계몽주의에 종사한다. 이 계몽주의는 (이야기)를 손쉽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판화의 독특한 표현성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대저 (이야기)란 몹쓸 마법에 걸려 있는 현실 세계를 깨우는 이성의 주문이다. 그러나 깨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환멸인가 ? 내가 판화에 '눈독'들이게 된 개인적 내력은 (멕시코문명전)(국립현대미술관, 1979년)에서 보았던 포사다 Posada와 멘대즈Mendez등의 판화로부터 비롯된다. 그때 내가 보았던 포사다의 「총살」, 「사파타의 병사」, 「우에르타의 해골」과 같은 동판화들은 내 눈에는 너무나 가혹한 공간이었다. 해골들을 먹고 있는 해골 전갈, 해골 밭을 달러는 말을 탄 해골 병사, 구두를 수선하는 해골들, 춤추는 해골들의 파티 등 가히 해부학적인 끔찍스러움으로 가득찬 그의 판화공간은, 그러나, 오랜 스페인 압정에 대한 투쟁과 1910년 멕시코혁명 과정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살아온 그의 삶의 면적이자 멕시코 현대 역사의 파샤드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판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 역사적 메시지는 (끔찍스러운 것)이 아니라 (끔찍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바르다. 그의'풍자는 현실을 환멸로 이끌며 그것과 대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조진호가 제작한 고무 판화들은 내가 포사다의 동판화들에서 받았던, 풍자의 전율적인 인상을 되살린다. 가령 사제의 검은 두건을 쓴 해골이 교회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여의도 B29」는 한 시대의 암장된 주검에 대한 풍자를 노골화한다. 교회의 겁은 내부에 들어 앉혀진 무덤들과 하얀 십자가들, 그리고 이 횐 십자가와 교회 청 탑 위의 검은 십자가 사이의 대비가 나의 이런 느낌을 지지하고 있다. 나의 이런 느낌은, 아버지인 듯한 사나이 가 그의 딸인 듯한 시신을 들고 서 있는 「희망을 위하여」 에도 연장된다. "흑과 백, 이 두 가지야말로 내가 가진 전부다"고 한, 베커만의 말을 나는 기억한다. 조진호가 구축하고 있는 「희망을 위하여」의 공간도 철저한 흑/백 대비의 기법에 의해 나뉘어 있다. 즉 아버지/딸, 살아있음/죽어 있음, 서 있음/누워 있음의 대비가 아버지를 새긴 음각(흰 색)/딸을 새긴 양각(검은 색)의 대비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죽은 딸을 안고 서 있는 아버지-그러나 그가 (절망)에 무릎 꿇지 않고 (희망)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을 붙잡은 이 작품은 판화의 기법인 (대비)를 정신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한 예이다. 그것은 그가 곽재구의 시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의 텍스트를 먼저 받아 놓고 판화작업을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판화가 반드시 시의 정화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도해일 필요는 없다. 판화는 시를 설 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또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조진호의 『노래를 위하여」는 단순히 나해철의 「노래를 위하여」의 조형적 복사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노래를 위하는데 있어서 판화는 '노래'의 뜻을, (통곡)과 동등하게 놓고 있는 시와 달리, (함성)의 몸짓으로 돌려버리고 있다. 하늘을 향해 벌린 입, 빗으로 빗은 듯이 흩날리는 머리카락, 가슴 앞으로 내민 손을 측면으로, 그리고 강한 운동성을 나타내는 사선 구도로 포착하고 있는 조진호의 판화 공간은 확실히,
목이 쉬고 가슴이 타면
혼을 쥐어짜서 네가 외친다면
노래라 부르며 통곡한다면
-나해철, 「노래를 위하여」(방점 필자)
"차라리 너(가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해철의 시적 공간보다 더 저항적으로 보인다. 확실히 조진호에 판화 적 특징은 저항적인 선에 있다. 그의 「이화중선」, 「분노」, 「가난한 나라의 꽃」은 그의 과감한 칼질이 남긴 선 의 정기는 듯한 힘을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낫을 쥐고 웅크리고 앉은 두 농부의 모습을 새긴 「영산포 7」은 내 눈에는 그의 걸작으로 들어온다. 거기에는, 농부들의 휘둥그래 뜬 눈, 혹은 부릅뜬 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저항의 밑바닥에 공포가 있음이 잘 새겨져 있다. 반면에 그의 「소국」은 실패작이다. 그의 칼질이 하나의 집중된 형상화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판화 속에 주입할 것인가에 대한 자각된 조형의지를 갖지 않았음을 말한다. 곧 이야기하게 될 김 경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무엇보다도 조진호의 판화 세계에는 그가 판화로써 대하고 있는 현실에의 보다 심층적인 인식이 아직은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여의도 B 29」에서 그는, 시인의 상상력이 인도하고 있는 분단상황에 대한 인식의 길을 한발자국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는 여의도의 B29를 보지 않고 순 복음 교회만 본 것이다.
김경주의 판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의 나이가 우선 궁금했다. 판화에 나타난 그의 소묘능력이 너무 월등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약력은 그가 1956년 강진에서 태어나 지금은 지방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것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 흔한 그룹전이나 공모전 한번 가진 적이 없는(그래서 나는 그를 모른다), 이 무명의 청년 예술가로부터 내가 천재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나의 만용일까? 아니면 맹점일까? 그러나 이 만용과 맹점을, 가령 그의 「춘몽」, 「풀벌레」, 「가투」, 「아버지의 저력」,「강강수월래」와 같은 작품들이 작품 자체로써 견디어 낸다. 흑·백의 절묘한 배합에 의한 명·암의 입체감, 농·담의 중량감을 획득하고 있는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예컨대 표현주의자들이 판화에서 발견했던 것과 같은 표현성의 마력을 그가 터득했음을 예시한다. 그리고 그가 판화 촉에 구성하고 있는 이른바 '오브제들'은 능히 시적이라고 할만큼, 그의 표상능력은 탁월하다.
완숙할 손에 의해 파내어지는 정경주의 판화공간이 우리에게 감동을 동반하는 것은, 사실, 사선을 넘어 온 삶에 대한 그의 관통하는 듯한 응시 때문이다. 그의 꿰뚫는 듯한 눈은,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어떤 적개심도 품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패배를 울부짖는 절망감으로 가득찬 것도 아니다. 그는 묵음된 고통을 침착하게 투시하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그의 판화 속에는 침묵이 깊다. 과연, 그가 세기고 있는 인물들-일하는 사람들, 장례를 치르는 여인들, 심지어는 징을 치는 놀부까지도 입을 꾹꾹 다물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숙 주의는 나에게는, 마치 한 시대의 소리 즉일 부음을 듣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우리는 모두 토의 판화 앞에 상책으로 서 있다. 확연히, 고대 이집트 미술의 '정면성의 원리'를 떠올리는 그의 「봄을 위하여」, 『춘몽』, 「봄밤에 비는 내리고」 등은 봄의 장례를, 보는 이로 하여금 측면으로 보게 한다. 그 행렬을 측면으로 보이게 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이들이 기차를 측면으로 그리는 것처럼 지각구조상 그 행렬을 가장 잘 보이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보는 이가 행렬에 가담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일 수도 있다-다시 말해서 상객에게 죽음은 역시 손님일 따름이다. 봄의 죽음이 나의 그것임을 깨우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판화의 평면성을 기법으로 그가 어떻게 극복하느냐 에도 달려 있을 것이다. 가령 그의 「사육신」은 이에 대한 답 가운데 하나인 겉 같다.
그의 「사육신」에서는 봄날의 장지로 가는 길이 원근법 적 깊이를 지님으로써 보는 이도 그 길을 함께 따라가고 있다는 실감을 준다. 검은 대지, 순교의 흰 길을 끝간 데 까지 고개 떨구고 가고 있는 원경의 두 사람, 그리고 그 들이 고개를 넘어가기 전에 더 따라 갈 수 없는 곳에서 하늘 향해 고개를 쳐들고 서 있는 근경의 모녀‥‥‥‥ 이러한 모티브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하늘을 탓하고 원망하는 듯한 어머니의 일그러진 얼굴과 대조적으로, 기울어진 하늘 저 너머로 다가올 어떤 희망을 꿈꾸는 듯, 혹은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듯, 눈감은 딸의 얼굴이다. 어떠한 저주도 어떠한 절망도 없는, 어떠한 고통의 각인도 들어가 있지 않은 이 지순한 얼굴은 바로 순교의 미래이다. 왜냐하면 이 딸은 자라나는 세대이니까 ! 그런 점에서 정경주는 순교의 의미를 과거에서 끌어오고 쏘는 나종영의 '사육신' 해석을 수정한 셈이다. 김경주 판화의 테마는 이 같은 오월의 추도(i) 외에도 분노와 비애의 결합(ii), 일하고 놀이하는 민중의 현실(iii), 화해의 날들에 대한 열망(iv)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ii) 「우체국에서」, 「눈길」, 「과꽃」, iii) 「아버지의 저녁」, 「별」, 「보리밭 가에서」, iv) 「강강수월래」, 「가투」 등이 그의 판화주제의 연속적인 프로그램을 이루고 있는 일련 작품들이다. 이 가운데 특히 그의「아버지의 저녁」은 (성숙한 리얼리즘)의 한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도전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쇠스랑으로 밭을 가는 농부, 빈 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아내, 멀리 연기를 피워 올리는 공장 굴뚝을 전경에서 배경까지 각각 배치하고 있다. 이런 배치가 언뜻 보기에 부자연스럽고 비연속적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러한 배치는 비사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성숙한 리얼리즘'의 전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이,(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보아야 할 현실)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자연주의와의 차이는 거기에 있다. 셀즈 Selz가 그의 저서 『독일 표현주의 회화』의 첫 장에, "화가는 일상적으로 우리 눈에 저절로 들어오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아야만 하는 것, 또 우리가 볼 수도 있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을 그린다"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는 까닭을 나는 알 것 같다. 글쎄, 모름지기 판화란 현실의 재현도 반영도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이것은 어디 판화뿐이랴 ! 그런 점에서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을 대립시킨 루카치의 관심이 참 편협했구나 하는 것을 나는 느낀다 왜냐하면 현실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표현주의와 리얼리즘의 경계란 사실 흐물흐물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판화든, 그 속에서 (이야기된) 현실이란 그것의 표현매체, 즉 말이나 막막한 평면의 불 완전성 때문에 그것을 나타낼 때는 어느 정도의 이상화 ·양식화 과정을 어차피 거친 것이 아닌가. 성숙한 리얼리즘은 이미 표현 성을 잉태하고 있다.
공장의 연기와 농부 아내의 빈 바구니 사이의 의미 관련은, 조금 현학적인 용어를 빌리면, "보이는 것의 보이지 않는 하부 구조"(메를로 퐁티)를 드러내며, 이 드러냄 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그것의 표현이다. 텅 비어 있는, 그 캄캄한 바구니 속을 농부 아내가 물끄러미 들여 다 보고 있는 것은 그녀의 몰수된 현실에 대찬 응시이자 그것의 시위이기도 하다. 공장의 연기가 그녀의 바구니 속에 들어 있어야 할 결실의 증발을 나타낸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스랑으로 밭을 내리 찍는 이 농부에 게, 과연 "일하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 단순해 근육의 수축-팽창인가? 정경주의 『아버지의 저녁」은 바로 이것을 묻고 있다. 그것은 물음이 아니라 거의 창의에 가깝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갖는 커다란 예술적 설득력을 그러한 물음을, 항의를, 고성방가로써가 아니라, 예민한 손끝으로 파헤쳐진 선의 절제된 외침으로써 제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근육의 섬유질 같은 세선이 무늬져 있는 하늘도 나에게는 우연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별」, 「보리밭 가에서」 「아버지의 저녁」과 같은 리얼리즘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정경주는 현실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과감한 생략과 그것의 양식화를 통해 현실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작품들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의 『가투』, 「강강수월래」, 「은행나무」 등이 그런 작품인데, 이것은 명백히 리얼리즘의 월경이다. 나는 그의 월경을 탓하지 않는다. 그는 넘어가서도 현실 알레고리가 풍부한, 또 다른 기특한 조형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피의 「가투」는 마치 고려시대 동자희희상을 보는 것 같다. 개구리 같이, 다족류 벌레같이, 뛰노는 사람들을 문양화시킨 이 작품은 우습고 징그럽다. 반면에 그의 「강강수월래」는 뭔가 비장하고 협찬남성을 강조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 두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유희'의 의미는 사뭇 대조적이다. 놀고 있는 사람이 양각으로 표현되었느냐 음각으로 표현되었느냐에 차이도 있지만, 전자가 '낮'의 놀이라면 후자는 '밤'의 놀이다. 낮의 놀이는 얼싸덜싸 패거리를 지었지만 분산되고 왜소화된 개인들의 집합인데 반해서, 밤의 놀이는 알몸으로서의 만남, 온 몸으로서의 만남이며, 그러니까 화해와 통합의 모임이다. 밤과 달의 여성의 원무인 '강강수월래'를 남성의 나상으로 대체시킨 김경주의 상상력이 경이롭다.
특히 쓰러질 듯 일어서는 힘과 그것을 붙들어 주고 당기고 밀고 하는 팔뚝들의 연결은 팽팽한 긴장감을 화면에 불어넣는다. 이런 긴장감은 둥근 칼로 동체를 뚝뚝 떠낸 그의 빠른 칼질에서 기인하지만, 굵은 허벅다리에 돋아난 근육과 함께 강한 역동성을 이 작품에 부여한다. 그런데 왠지 이 역동성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으로 온다. 밤을 표상하는 흑색 바탕과 달빛 받은 남성의 알몸의 대 비가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탓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료인 목판에 나무, 새, 아이를 착색하여 앉힌, 김경주의 「은행나무」는 아예, 시다. 그리고 지나치게 시적이다. 특히 나무 및 속에서 세 마리의 백조가 유영하는 수면을 보도록 사물을 제 마음대로 고쳐버리는 그의 시적 환기력은 감쪽같다. 물론 시와 그림이 등가 교환체계를 이룬 행복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지나치게 시적이라는 말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이 말은 김 경주에게 예술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의미한다. 그의 「은행나무」는, 말 할 것도 없이, 참신하고 좋다. 나무 뿌리에서 나뭇잎 상단에까지 '포커스 아우트'되어 있는 청록색의 은은한 변화는 치솟는 수액처럼 싱싱하다. 그가 나무 속에서 물을 발견한 것도 이 때문일텐데, (푸른 성장)을 표상하는 이 은행나무를 보고 있으면 나는 한없이 안온한 휴식을 느낀다. 아, 우리는 얼마나 쉬고 싶어하는가! 그러나 이 휴식은 정지이고 마비이고 영면이고‥‥‥꼭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그렇고 그렇게 되어 버릴 위험이 많다. 예술주의의 위험은 예술을 휴식을 위한 장식화에로 곧바로 가져간다는 점에 있다.
그의 「까마귀」, 「과꽃 2」와 같은 작품들은 정말, 장식적이다. 거기에는, 「은행나무」에서와』같은 시적 통풍도 없고, 그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현실-메시지도 없다. 이를테면 「과꽃 2」는 한낱 신문소설의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조진호와 정경주의 판화 45점을 이 글에서 다 판독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한번 쭉 통독(나는 판화도 읽는다!)한 후 내가 받은 느낌은 그것들이 각각 짝짓고 있는 시와의 내적 의미 관련이 기대했던 것 이하로 약하다는 점이었다. 『오월 시』 동인을 대신하여 김진경은 시와 판화의 만남이 그것들의 의미 관련 Sinn-Zusammenhangen을 통한 삶의 총체성을 폭넓게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길 바랬던 것 같은데, 이런 주문이 조진호와 김경주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으리라. 시 ·판화의 만남은 그들에게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를 판화로 옮길 때의 서로 다른 매체에서 모는 저항력 때문에 양자의 의미 관련을 잃는 것은, 즉 김경주가 말한 것처럼 '시는 시대로 판화는 판화대로' 분절되는 것은 시 ·판화의 자율성도 그것의 총체성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일례로 「보리밭 가에서」나 「송광사에서」와 같은 작품은 시 따로 판화 따로 이다. 『오월 시 판화 집』에서 시도되고 있는 시와 판화와 만남이 이렇듯 그것들 사이의 내적인 의미 연계를 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표현매체의 상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현 이전에 시 쓰는 사람과 판화 만드는 사람이 각각 현실을 보는 인식의 차이에 있다. 『오월 시』에 공통되게 표현되고 있는 분단 현실이 조진호와 김경주에게는 망막의 맹점에 위치한다. 분단 현실이 그들에게도 자각되도록 시인들과 판화 가들 사이의 공통감각의 확인이 마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내가 『오월 시 판화 집∼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에 대해 갖는 작은 불만이다 그리고 이 작은 불만은 『오월 시 판화 집』에 대한 나의 너무 클 사랑의 짜증이다. 말하기 어려운, 오늘의 적요한 삶을 절망의 극점에서 희망의 극점으로 인도하늘 『오월시 판화집』은 우리 모두의 고통스러운 문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월 시 판화 집, 19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