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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민족문화 대로를 위한 몇가지 생각. 김준태(5월과 문학, 남풍, 1988. 8)

본문

민족문학의 대로를 위한 몇 가지 생각



  전국에 걸쳐 횃불처럼 타오르던 민주 ·민중에의 열망이(특히 6월 항쟁 같은), 87년 12월 대통령선거 이후, 잠시(잠시라면 얼마나 좋으랴) 멈춰 있는 듯 하다. 아니 멈춰 있는 그 상태만이 아니라 좌절과 허탈, 가치관의 갈등마저 초래하여 국민간의 위화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급기야는 분열현상을 재촉하고 있는 터이다. 이것은 민족사의 오늘과 앞날을 위하여 심히 걱정스러운 바 크다. 게다가 민족정기의 구현과 그 발전을 위하여 전국민의 일체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고 있는 터에, 올바라야 할 국민의식이 그렇듯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그 이상의 고통과 그림자를 던지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들은 지금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다시 온 마음과 육체에 충전을 가하여 저 민족사의 올바른 대행진을 앞당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운동의 한 장을 담당해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또 그럴 수밖에 없이 민족사의 행진 속에서 부문운동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할 문학쪽 사람들 혹은 그들이 하는 작업들을 보면 역시 예의 곤혹스러움이 안겨져 버린다.
  그 곤혹스러움은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또 새들이 제 갈 길을 향하여 날으고 있는 터인데도, 우리 국민들은, 그리고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문학 쪽은 '넉 아웃'된 권투선수처럼 아직껏 의식이 몽롱한 상태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재야 운동권의 분열·붕괴·자괴감의 팽배 못지 않게,아니 글쎄 문학 쪽을 보면 과연 어떠한 얘기들이 설왕설래하고 과연 얘기다운 얘기들이 찾아지고 있다 할 수 있을는지‥‥‥‥ 민족문학의 큰길(대로)을 찾기 위한 생각들을 곰곰이 해보다가, 그 곰곰이 생각한 것마저 영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슬프게도 최근 우리 문학계의 소위 '성급한 생각들'또는 '역사에 겸손치 못한 발언들', 또는 미로찾기에나 버금가는 지식인 세계 위주의 논투 내지는 사투 같은 것을 목격해 버렸다. 아울러 그래도 정과리 같은 (물론 정과리도 이론의 모호성이 더러 보이고 아직은 곰삭지 않았지만) (『문학과 사회』제 1권 참조) 평론가가 나타나 소위 그 논투의 현장, 즉 분단모순(민족 모순)과 기본모순(계급모순)과 권력모순(제도모순)을 꿰뚫어가며, 걱정을 내비치는 경우가 있어 관심이 간다. 내 생각으론 정과리는 우리 시대의 훌륭한 평론가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그 역시 논투나 사투의 중 가운데 놓여 지식인적 문학인의 한계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한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 특히 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문학평론가는 문학평론가 이전에' 보다 훤출한 역사비평가, 사회비평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극화된 이론의 가운데를 왔다 갔다 하는 인터프리터Interpretey이 한계를 뛰어 넘어, 크리티크Critic의 자세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정과리도 한국 비평문학의 수준 혹은 바로 그 한계를 감수할 수밖에는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김명인, 홍정선과 더불어 아직은 소중한 씨앗들인지라 두고 볼 일이다. 고인이 된 채광석처럼, 적어도 오늘의 분단 한국문학에선 자기의 온몸을 내보일 줄 아는 그런 투박스러우나 솔직한 비평이론가가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기도 한다.
  사회 과학계 쪽과 문단의 일각에서 벌어지는 논투, 예컨대 '모순이 정체를 어디에 두느냐, 어디에 먼저 두느냐에 따른 논투에 이어서, 내가 최근 읽은 글 중에서 느낀 것 중의 또 하나는 우리 시대의 논객이랄 수 있는 백락청씨의 글이었다. (『창작과 비평』복간호. 1988) 다 알다시피 백낙청씨는『사상계』가 사실상 사라져버린 70년대에 (지금도 그렇지만), 그가 해박한 식견에서 찾아낸 '시민문시론'등으로 이 땅의 문학계에, 그리고 양심세력의 가운데에 큰 의미와 시원함을 가져다 준 문학평론가치다. 그러나 80년 이후, 더 정확히 가까이 말해 즉 지난 87년 대통령선거 기간 이후 그는 앞서 말한'논투'속에서 급기야는 젊은 세대의 비평가들에게 혼 쭐 (?)이 나고 있는 중이다. 그는 대구에서의 심포지엄(1987. 10) 이후, 적어도 우리 모두가 느끼듯이, 좀 밀린 듯한, 좀 변명에 가까운 논리를 펼쳐 오히려 '논투 속의 그'로 하여금 혹을 하나 더 붙도록 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백낙청씨가 바른 해석인지, 아니면은 젊은 세대의 해석이 바른 것인지, 그런 '논투' 관계를 떠나, 아니 어쩌면 '노선싸움'의 지경에까지 이를지 모르는 그런 '논투치 분위기를 여기 짧은 지면에선 다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80년 이후의 그 어떤 '세월의 흐름'을 깊이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그것은 나뿐이 아니리라‥‥‥‥ 하지만 우리 문학계 쪽에선 단순히 '세월의 흐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저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을 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사의'큰길' 앞엔 '역사와 흐름'을 향한 겸손한, 그러면서 굳센 의지가 도래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그런데 최근 문학평론가 백낙청씨의 글( 창· 비 ·복간호. 1988)은, 그의 '모순'을 놓고 하는 '논투' 관계 이야기는 젖혀 두고서라도, 80년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얘기는 참으로 성급하고 아슬아슬하였다. 남녘 이곳 광주에서 우리가. 느끼기론 적어도 그러하였으며,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가 평소 펼치고 펼쳐온 '민족문학론씩 위상까지 스스로 의심스럽게 만들지 모르는 그런 '미성숙한' 말을 하여 버렸다. 물론 그의 글이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문학을 위한 충정 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긴 하겠지 만, 또 그렇게 믿고 싶지만! 백낙청씨는 's · 18 광주민중항쟁'을 '지역문제의 성격이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하게 된' '다분히 미성숙한 민중항쟁'으로 호도해 버렸다. 이윽고는 저 60년대의 신동엽의 시구를 그야말로 성급하게', '무책임하게', '비성찰'속에서 끌어 들여와 오늘은 '5월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보내야 할 때인 것이다'라고 못박아 결론을 내렸다. 정말 이 얼마나 무책임한, 무성의한, 한 원로 문학 비평가의 혹언인가.

슬프다! 지금도 光州는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른단 말인가.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이 낱낱이 밝혀지기는커녕, 구속 자·부상자·사망자의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이 적어도 광주 시민측으로 봐선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 시점에서, 그 날 이후 기안 8여 년이 넘어 섰지만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 시점에서, 백낙청씨는 앞서 말한 예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해버린 것이다. 그날 행방 불명이 된 자식을 아직도 찾지 못한 부모들이 저렇듯 시퍼렇게 두 눈물 뜨고 살고 있는데, 아무리 '많이 안다는 문학 비평가라 해도, 그렇게 함부로 속단을 내려 버린다는 것은 결국 한 문학비평가의 민족 관과 세계관을, 우리로 하여금 의심케 만든다.
  그렇다. 아직은 우리들 그 누구도, 아무도 모른다. 80년 저 광주의 5월을 그런데 백낙청씨는 그해 '5월'을 향해, 무엇을 두고 알맹이라 하는지, 무엇을 두고 껍데기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무리 그럴 듯한 시구라 하더라도 또 빼어난 참신한 시구라 하더라도, 그 뜻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文人이라면 함부로 그 어떤 '역사' 앞에 그 시구를 오려 붙일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마디 더 얹힌다면, 60년대의 '4월'과 80년의 '5월'은 다르다. 그해 4월이 반봉건적 투쟁이었다면, 80년 5월은 그후 드러난 이것저것들만 보더라도 반봉건적·반 식민적 항쟁의 성격까지 갖고 있을진대, 어찌 그해의 알맹이와 껍데기를 막무가내 5월에까지 교접시키려 드는지‥‥‥‥ 동학혁명, 3 · 1운동,  4 · 19, 5 · 18민중항쟁의 흐름 속에서-나는 제발 그 '많이 안다는' 지식인들이 속전속결하듯 성급한 판단을 내려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겸손할 때, 그리하여 그 역사의 목소리를 고개 숙여 들을 때야, 우리는'5월'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저 민족사의 혹은 민족문학의 대로에 떳떳이 두 발을 옮겨 놓을 수 있고, 부끄러움 없이 통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토를 달아본다면, 역사는 한 사람의 識者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모든 사람이 몸으로 느꼈을 때 대다수의 모든 사람의 눈이 그들 자신에 의해 뜨여지고 존재하는 거기에서 작동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80년 5월도 그랬었음으로.

                              (광주 · 전남민족문학인협의회보, 198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