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그레그 주한 미대사 독점인터뷰/5공시절 미국의 침묵은 실수였다. 정종문(신동아, 1990.5)
본문
「그레그」駐韓美大使 독점인터뷰
『5공시절 미국의 침묵은 실수였다』
韓國通이자 백악관通
「도털드 그레그」 通韓美大使(63)는 서울에 친구가 많다. 그래서 그는 美행정부 내에서 韓國通으로 불린 韓國通으로 불린다.「부시」美대통령의 부통령시절 그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그는 동시에 백악관통이기도 하다. 한국통과 백악관통이기도 하다. 한반도 주변관계에 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중대한 국면에서 이 점은 그가 가진 강점이 아닐 수 없다.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 되는 시점을 앞두고 미국대사관 대사실에서 그를 만났다. 단순히 광주사태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 못다한 이야기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미간 현안, 한반도 주변정세와 변화에 관한 미국의 시각, 남북한문제에 대한 미국의 인식 등 미국쪽의 견해를 포괄적으로 들어보기 위해서였다.脫이데올로기의 흐름으로 격변하는 국제정세와는 달리 우리 사회가 오히려 이데올로기화의 경향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서 차지해온 미국의 전통적인 위상에 구도변경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고, 이와 함께 미국의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있다. 「그레그」대사의 발언을 통해 전반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재조명해보려는 노력은 이런 관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첫째 관심은 한 ·미간 큰 틀의 관계보다는 광주민주화운동과 미국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 미국측은 이미 美국무부의 답변서를 통해 밝힌 것 이외에는 더 이상의 숨겨진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 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그 큰 이유는 물론 우리쪽에 있다.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 되는 지금에도 그리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섰다는 이 시점에도 광주시민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고, 발포책임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가 하면, 보상이냐 배상이냐 하는 정치권의 다툼도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이 「우리가 희생양이냐」는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과연 그러한가. 우선 광주문제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 몇 가지의 상징적인 질문을 제기해보았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新軍部정권의 설명은 「폭도들에 의한 폭동」이었다. 그러나6共 초기 광주문제는 「폭동」으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격상됐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미국 대사관의 최초 인식은 무엇이었는가.「폭동」이라는 한국정부의 주장에 동의했는가.「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사태는 국가적 비극이었다. 또 이 사건 에 관련된 분들에게는 개인적 비극 이기도 했다. 그 사건 후 거의 10년 이 지난 금년 1월 본인은 광주를 방문해서 광주시민들과 그 비극적 사건에 관찬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강렬하고 깊은 감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당시 광주에서 발생한 일들에 관해서는 오직 한국인들만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이 사건을 미국이 어떻게 이해했느냐는 질문에 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공표된 미국정부의 두 공식성명을 인용할 수 있다. 이 공식성명은 질문에 관한 분명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거의 10년전에 발표된 「1980년 5월 대한민국 인권상황에 대한 美정부 보고서」는 「5월18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시위와 이에 대한 포악한 군사적 대응은 광주에서 거의 2백명의생명을 앗아갔고 사실상의 봉기를 야기했다」고 밝히고 있다.또 지난해의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발생한 제반사건에 대한 미정부의 성명」은 「미국은 최종적으로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종합하기에 이르렀다. 「글라이스틴」대사는 특전사부대의 과잉반응이 비극의 기본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기술하고 있다』
-광주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이 특전사부대의 과잉반응이었다는 미 국무부의 견해에 주목한다. 미 국무부의 인권정책에 의하면 중대한 인권위반의 경우, 미국은 대개 그 책임의 소재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전사부대의 과잉반응에 관해 미국은 결정과정에 관련된 어떤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 책임이 어디, 또는 누구에게 있다고 판단하는가.『광주사태에 대해서는 미정부의 성명서가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특전사부대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갖지 않았고 그들의 광주이동도 알 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광주에서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국내문제인 한국문제에 관해 어느 특정한 한국인들이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운운하는 것은 미국의 역할이 아니다. 오직 한국인들만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언론통제로 미국입장 왜곡됐다』
-「12·12사태」와 광주사태에 관한 분노 우려 견제의 반응으로 강경자세를 보인 미국은 그후 빠른 속도로 신군부가 이끄는 새 정권을 인정했다.레이건」행정부가 첫 손님으로 全斗煥 전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미국의 여러가지 이유설명에도 불구하고 「새 정권 지지를 위한 미국정책의 급선회」로 해석됐고, 이어 한 ·미관계가 「현안이 없는 것이 현안」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새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강화됐다. 이는 단순히 「카터」행정부와 「레이건」행정부 사이의 정책적 차이 때문인가.『본인이 한국에 도착한 이래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계엄령선포와 광주사태가 발생했을 때부터 87년 6월 민주화선언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전두환정부가 유지했던 전반적 관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었다. 그 오해의 깊이는 엄청나다. 그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고 또 조장되었다. 예컨대 광주사태 당시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암시하도록 전두환정부는 언론 을 조작했다. 제5공화국의 전 기간동안 전두환정부는 그들의 모든 행위를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한 것처럼 묘사했다. 이는 모두 전두환씨와 그의 정부에 대한 합법성 부여를 위한 시도의 일환이었다.이와 마찬가지로 급진좌파는 그들의 국내 정적들에 대한 정적들에 대한 일반 한국인 의 분노를 북돋기 위해 광주사태에 서의 미국의 역할, 그리고 미국과 제5공화국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국민적 분노를 조성하기 위해 「외국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전세계에 걸쳐 이용돼온 진부한 정치적 전술이다.이같은 왜곡의 궁극적 효과는 깊은 오해로 나타났다. 세계의 보도매체들은 80∼87년 까지의 한·미 정부관계를 정직하게 보여줬다.
당시 한·미 정부간에는 많은 문제에 관해 견해를 같이하는 부분도 컸다. 그러나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의견차는 심각했다. 한국어만을 읽고 한국보도 매체들에만 접했던 일반 한국민 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반 한국인들이 접한 정부통제하의 언론이나 좌파의 지하인쇄물들은 미국과 전두환정부가 모든 문제에서 밀착되었음을 시사했다.미정부는 80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원칙들을 시종일관 밝혀왔다. 광주문제에 관해 우리는 5공정부 통제하의 보도매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를 겨냥한 사실왜곡에 대해 「당당한 침묵」의 정책을 채택했다. 광주 방문시 나는 이 「당당한침묵」의 정책이 광주시민 및 다른 한국인들의 의혹과 오해를 굳게 하고, 나아가 사무치게 한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됐다. 본인이 광주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우리의 오랜 침묵에 관해 사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침묵은 분명히 우리측의 실수였다.87년 여러 사실이 공개된 이래 우리는 한국국회의 광주사태조사에 전적으로 협력해왔다. 「광주사태에 관한 미정부성명」은 한국국회의 요청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국회에 광주특위가 설치된 88년에 시작해서 거의 1년에 걸친 조사끝에 마련된 것이다. 우리는 워싱턴에 보고된 주 한미대사관과 미군의 보고서를 검토했고, 워싱턴에서 열렸던 모든 회의 기록을 점검했으며, 「글라이스틴」전대사와 「위컴」장군 및 기타 인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모든 내용이 그 성명서에 포함돼 있다.우리가 81년 전두환대통령을 초청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아주 객관적으로 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해 1월 전두환씨가 한국정부의 지도자가 됐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많은 주요문제들에 관해 한 ·미양국은 협조할 필요가 있었고, 또 그러기를 바랐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의 또다른 전쟁도발 위험을 어떻게 억지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 ·미 양국은 또한 당시 한국이 경제침체를 벗어나도록 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 같은 문제들은 긴밀한 접촉과 대화를 필요로 했다. 한 ·미 양국정부는 이와 함께 당시 확고한 對 협력자세의 필요성을 인식 했다.우리의 시급한 관심사는 金大中씨에 대한 사-형 선고였다. 우리가 전두환씨를 조기에 초청함으로써 김대중씨는 사형에서 감형됐고, 후에 우리는 그가 풀려나도록 도왔다. 우리는전두환정부와 많은 문제들에 관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의 권력장악 방법이나 그의 정부에 의한 인권침해기록을 우리가 용인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두환정부에 대해 우리의 견해를 잘 이해하도록 알렸다. 다만 이 같은 사실이 한국의 매체들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결국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당사자는 오로지 한국국민들이다. 미국과 같은 국외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말과 제스처뿐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전능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같은 인상은 한국이전쟁의 황폐함에서 벗어나 자립하고자 애쓰고 우리는 이를 지원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오래전의 잔재라고 본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의미에서 동등한 동반자다. 이는 훨씬 더 건강한 관계이기도 하다』
『광주문제 해결에 협조하겠다』
-광주민주화운동은 10년이 된 오늘에 이르러서도 사태와 관련된 세 가지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 가지 문제는 광주시민의 명예회복, 광주학살에 관한 발포명령자 색출, 그리고 보상 또는 배상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한국의 문제처리방식이 어떠한가『나 자신·지난 1월 광주를 방문하고 나서 절실하게 느꼈지만, 광주의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음을 한국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는 주요한 과제는 한국측에 속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관해 논평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우리(미국)로서도 너무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탓으로 광주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혹감을 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정기적으로 광주에 내려가 지난 1월에 시작한 광주시민들과의 대화를 계속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광주를 한국의 주요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실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들의 물음에 답하겠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분위기가 조용해지면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의 투자가들이 광주에 대해 흥미를 갖고 주목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광주의 공기는 맑고 공해가 적다. 물도 깨끗하다. 대학을 나왔으나 직장을 못 얻고 있는 양질의 인력도 많다. 호남지방은 외국투자가들의 매력을 끌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다만 문제는 정치적인 분위기다. 미국의 사업가들에게 광주를 말하면 미국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지는 곳이어서 별로 마음이 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광주의 시민들은 지성적이다. 나는 한·미 관계가 단순한 군사적 동맹관계로부터 경제적 동반자의 관계로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우리로서도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편에서 정치적 분위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어 투자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광주문제의 세가지 요소에 관한 질문은 한국적인 사정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답변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보십사오, 저는 한국인 모두에 대한 대사가 되고자 합니다. 저는 광주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80년의 사태에 관해 기꺼이 이야기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본인은 그 사건이 과거지사가 되도록 협조하겠으며, 계속해서 한국의 주요한 부분인 광주와 보다 긴밀하게 접촉할 것입니다」」
「반미주의는 식어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反美가 적은 나라의 하나로 지목돼 왔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미문화원이 공격당하고 대사관저 침입사건도 터졌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에 의해 미국국기인 성조기가 짓밟혔다.반미의 원인은 광주사태에 관한 미국의 역할일 수 있고, 권위주의정권에 대한 지지일 수도 있다. 민주화노력과 열망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기여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행동이었다. 그 결과 6·29 민주화선언 이전까지의 5공말기에 한국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가한 미국의 압력은 상당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정도다.문제는 88올림픽때부터 노골화된 반미사건 등이 미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가령 미 의회가 주한미군 감축론을 제기하는 것이 감축을 위한 합리적인 논리 외에도 그들 유권자들의 나빠지는 對韓감정을 은연중 의식한 데 따른 것이라면 사태는 단순하지 않다. 한국통인 「그레그」대사의 주요책무 ' 하나가 한국내의 반미감정 완화, 가중되는 미국의 대한통상 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반미주의가 겹쳐 한국의 반미문제는 난제의하나로 부각되었다. 더구나 서울이 미국인들의 안전지역에서 우려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미국인들의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의 정책이 베트남전쟁의 경우처럼 여론에 쫓기다가 「퇴보의 결정」 쪽으로 기운 사실들을 참작할 때 「과연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에 대해 냉철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제휴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의 반미감정을 어떻게소화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대사께서는 지난해 연말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의 반미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얘기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반미감정의 유발원인은 무엇이라고 판단하며, 많이 누그러졌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한국학자들은 두가지 종류의 반미 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감정에 바탕을 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념적」 반미주의로 불린다. 나도 이러한 분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감정적」 반미주의는 인간의 정상적 느낌에서 나온다. 미국은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또 양국의 문화적 배경이 무척 다르며 의견차 또한 있게 마련이다. 한국인들의 자존심 역시 한국의 발전에 따라 당연히 높아가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과 우열관계의 낌새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것도 참지 못한다. 이러한 종류의 반미주의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폭넓은 책임을 지닌 국가로서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감정과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식의 반미주의가 분명히 쇠퇴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또 양국관계가 성숙해감에 따라 계속 퇴조할 것으로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세계를 조망할 때 미국과 한국은 가장 활력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소련이나 동유럽국가들이 그들의 피폐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우리 양국의 어느 쪽도 양국관계가 감정에 의해 좌우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또다른 반미주의는 이념적인 것이다. 이른바 「악마론』으로, 미국은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비난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러한 반미주의도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실제로 아주 흔히 나타난다. 때때로 정부가 이를 이용할 때도 있다. 북한은 여전히 이러한 류의 반미주의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은 외세의 희생물이 된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부 한국인들이 현존하는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외국에 돌리는 것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념적 반미주의는 「위안」의 논리이다. 젊은이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닌 이념적 반미주의의 또 하나 이점은 단순하다는 점이다. 만일 한국이 잘못된 게 미국 탓이라면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해버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 같은 이론의 큰 결점은 물론 그 이론이 오류라는 데 있다. 어느 나라든 그들이 직면한 도전은 복잡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나라 국민들만이 닥쳐온 도전의 극복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이념적 반미주의에서 깨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가지 이유는 언론자유로 인해 보다 많은 편견 없는 정보와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 한국인들이 여행의 기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과거보다 훨씬 넓은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반미주의가 식어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 미간 '농업협조 추진』
-미국대사관저가 일단의 학생들로 부터 습격 받았었다. 유사한 침입사건이 다른 곳에서는 없었는가. 한국에서의 미국인 안전문제가 미국의 대한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i『6명의 과격학생들이 나의 관저를 침입한 사건 직후 우리 내외는 TV방송에서 이 사건으로 우리의 대한인식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사건을 과격한 생각을 지닌 소수 학생들의 행위로 보았으며, 일반 한국민들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나의 관저 침입과 같은 행동을 할만큼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문제점도 인정한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이해를통해서 반미강정의 주요원인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서다.두가지 주요한 문제는 앞서 논의한 광주의 비극과 한국농민의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지난 1월 광주방문시 나는 5명의 재야인사들과 4시간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대구 방문 때는 깊은 산골의 한 농부집 마루에 앉아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관해 직접 얘기를 듣기도 했다. 광주의 상처는 한국정부가 현재 진행중인 노력에 의해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오직 치유의 과정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농업문제에 경험 있는 미국단체들이 실제로 한국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방안들을 내놓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계속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또 나를 환대해주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전에 방문했던 농부의 집을 언젠가 다시 가보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한국내 반미감정에 대한 원인 모두를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대처해 나감으로써 그러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농산물은 대부분 민족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에 미국 농산물 수입을 더 늘리라는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은 경제적 불이익 이외에 반미감정을 일으키고 있는 주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미국이 농산물 수입압력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을 찾도록 본국정부에 건의할 생각은 없는가.『나는 농산물압력이란 표현대신 농산물협력이란 용어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에 부임한 이래 나는 한국의 농업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농민들 을 포함하여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이에 따라 이 문제의 민감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과거 많은 문제에서 그랬듯이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협력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양극간에 장기 적이고 생산적인 농업협력의 역사가 이룩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한국농업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해나갈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이른바 한국의 경제기적을 농민들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개발 시행하는 데 있어 이를 언제나 가능하고 적절히 지원하기 위해 한국의 농민 가공업자 협동조합 정부관리 그리고 학자들과 협력할 태세가 돼 있다.미국의 쌀 생산업계는 쌀을 원료로 하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냄으로써 미국내 쌀소비를 늘리는 데 크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미국의 쌀생산업계가 한국의 쌀생산업 계와 협력해서 미국의 성공사례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검토해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최근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흠이 가게 하는 반미감정이 확산된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세계역사의 흐름 자체를 변하게 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한·미관계도 안보를 중심으로 한 종래의 형태로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다. 새로운 한·미 관계의 발전에 관한 대사의 견해는.『한·미관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나는 그 변화가 건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전적으로 군사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시대에서 경제와 세계적 정치발전에 관한 공통견해를 보다 많이 얘기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에 부임하기 전 나는 양국관계가 군사적 동맹으로부터,경제·정치적 동반자로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었다. 이는 지금도 나의 목표가 되고 있다. 또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발전에 매우기뻐하고 있다.북한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변화를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과 항구적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한국인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세계경제에서도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넓은 분야에서 공통적인 포부를 갖고 있으며 장래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함으로써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 소위에서 가진 청문회에서 미국방부의 고위관리는 주한미군을 줄이는 주된 이유가 예산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복합적이라고 말하고 예산외의 요인으로 남한의 자체능력과 한국의 기호가 바뀐 것을 지적했다. 바뀐 한국의 기호는 무엇을 말하는가.「한국은 인상적인 경제성장을 달성 했고, 활력 넘치는 민주주의를 확립해왔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양국관계의 일부 조정은 당연한 것이다. 최근 논의를 통해 양국정부는 안보관계에서 상호 건설적 변화를 택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한·미 안보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미국은 지원역할로 전환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러한 조정은 한 ·미 합동협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확고하며 우리의 주요한 전쟁억지력 역시 온전히 존속될 것이다』
군사동맹에서 정치 ·경제동반자로
-용산기지 이전문제에 관해 한국측은 이전비용의 공동부담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 원칙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공동부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한·미 양국정부는 용산의 주한미군사령부를 서울 밖으로 이전하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50년대 주한미군사령부가 현위치에 세워졌을 당시 용산은 서울중심부의 외곽지역 이었다. 용산소재 미군기지는 양국 정부 공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제 사정은 변했다. 미정부는 서울도심에 있는 이땅을 회수하고자하는 한국정부의 희망을 인지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90년대 중반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는 데 원칙적 합의를 보았다. 적절한 사용목적을 위해 이 지극히 가치있는 재산을 되찾게 될 한국정부가 이전에 따른 모든 주요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는 게 미국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을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한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이며,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에 대한 대응조치로 북한에 대해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한·미 양국정부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북한이 보다 현실적 태도를 취해 對南교류를 증가시킬 징후를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 최근 양국정부는 「팀스피리트 90」의 훈련규모 축소 및 주한미군의 점진적 조정계획 등을 포함한 일련의 일방적 긴장감소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월과 3월 나는 주한미군사령관과 국방부장관 및 외무부장관을 만나 상호관심사인 안보문제를 검토했다. 우리 네 사람은 이제 북한이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할 차례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북한은 긴장감소을 위한 가장 단순한 방안에조차 반발해왔다』주한미군 감축문제나 한·미간 통상마찰과 미국 통상정책은 그 자체로서 별도의 회견을 필요로 할 정도로 중요하다. 예컨대 주한미군 문제는 한 ·미연합체제의 변경시도에 따른작전권이 나 평시 · 전시 의 개념, 과연 물러간 미군이 유사시 한반도에 다시 돌아오겠느냐, 그리고 주한미군과 한반도 주변의 세력균형등 검토해야 할 쟁점이 엄청 나게 많다.특히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중개인과 균형자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주권자로서의 명분과 현실성을 토대로 시각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의 균형자 역할에 관해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바라는 우리로서는 의의를 과소평가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리고 소련같은 한반도와 유관한 강대국들도 주한미군의 그같은 역할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뜻은 쉽게 말해서 북으로부터든 남으로부터 든 어떠한 공격행위에 대해서도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의 첫째 관심은 그러한 미군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왜 그같은 정책결정이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더우기 미국의 정치 메카니즘이 의회주의 우선임을 고려할때, 그같은 배경에 혹시나 미국의 국민감정을 깔고 있지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의 그같은 여론이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한 ·미간의 통상문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과 한 ·미간 통상마찰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보다는 미국의 정치메카니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저류를 타진해보기 위해 이 문제를 반미문제와 연결시켜 질문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대사는 한 나라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현지책임자이다. 답변에서는 언제나 공식적인 노선을 넘지 않으려고 적절한 선을 긋고 만다.「그레그」대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령 5공 당시 미국이 알게 모르게 가한 민주화추진 얍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문제제기 자체에 난색을 표명했다.당시 미국의 고위 외교당국자는 5공정부의 지도층을 만나 외교적으로 표현된 한국민주화추진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것에 대한 반응이 없게되자 다시 보다 명확하게 미국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미행정부의 고위인사를 파견하려 했다. 이와 더불어 전두환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조기하야를 의미하는 거국체제 구성을 어느 민간인의 私信형식으로 제의했던 사실 등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번 회견을 통해서는 이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레이건」행정부가 추구했던 「조용한 외교」의 일면이라고 할까. 그러나 기자가 그 당시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보고 느낀 바로는 한국의 민주화달성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결정적인 상태」였다는 사실이다.공식입장과 조용한 외교는 미국대사의 기능에 관한 이중구조를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교관 등의 발언은 때때로 나타난 내용의 액면보다는 행간에 뜻을 더 많이 함축시키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북방정책 특히 대소련접근 문제에 대해서도 과연 그러한가. 물론 미행정부의 공식입장은 한 ·소관계증진을 환영하고 있고 속마음에 있어서도 그럴 수가 있다.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중점으로 한 북방외교와 북한 인식에 관련한 미국쪽의 시각을 물어보았다.
북방정책에 대한 미국의 시각
-오는 5월말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 ·소 정상 회담에서 한반도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거론될 것인가.『「부시」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나 미 ·소간 의제의 전영역에 걸쳐 토의를 가질 것이다. 여기에는 군축과 쌍무문제 및 지역문제, 그리고 테러리즘 환경문제와 같은초국가적 문제는 물론 인권문제 등도 포함될 것이다. 지역문제에서 「부시」대통령은 한국문제논의를 원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문제가 어떻게 취급될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金泳三 민자당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을 만났다. 그것은 최근 급속하게 발전되고 있는 한 ·소 관계의 새 양상을 상징한다. 이에 대한 대사의 소감은 어떠한가.「레이건」대통령은 소련의 행동방식에 관해 「믿기는 하겠으나 보여달라」는 소련속담을 인용, 충고한 일이 있다. 이 같은 「레이건」대통령의 충고는 盧泰愚대통령에 게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한국과 소련이 정치분야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상호관계를 증진시켜 나가고 있는 데 대해 미국은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한 ·소 관계의 정상화를 환영할 것이다. 소련이 여러가지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들과 직면해 있는 시기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시간을 내 김영삼씨를 만난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련이 한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맺기 위해 신속함을 보일 수 있을 만큼 현명하기를 희망한다. 귀하가 인용한 소련인들에 관한 속담은 「레이건」대통령이 군축협정이행의 검증과 관련해 얘기한 것으로 귀하도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속담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좋은 충고이다』
-한국이 모스크바로 가는 길은 서울-모스크바 直行과 워싱턴 경유의 길로 크게 두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서울-모스크바 길로 한·소간의 관계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데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헝가리와의 수교와 6자회담 제의때의 直行방식에 미국이 나타낸 실망을 전해듣고 있다.『미국정부는 한·소 관계 정상화를 환영한다. 미국은 일관되게 북방정책을 지지해왔다. 우리는 한 ·소 관계 정상화가 한 ·미 쌍무관계에 문제점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영국 ·소련관계나 서독 ·소련관계가 우리에게 문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정부가 6개국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면 우리도 가능한 방법으로 기꺼이 이를 지원할 것이다.나는 지난 3월 서울에서 있은 모스크바-서울간 직항로 개설기념 리셉션에 개인적으로 참석했는데 그 기념행사가 역사적인 것이라고 느꼈고 거기 참석한 게 기뼜다』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김영삼씨는 「이제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안심해도 좋다」고 선언했다. 한반도의 평화조건이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어느 특정인사에 관한 논평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의 평화조건에 관해 말하고 싶다. 한국의 북방정책은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소련과의 점증하는 관계는 소련이 북한에 대해 건설적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하겠다는 개별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한반도 상황에 유익한 효과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매우 긍정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북한은 기본적으로 매운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북한은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함에 따라 그들의 태도 결정에 당황하고 있다. 북한의 동맹국들은 한국을 승인하고 있고 그래서 그들은 동유럽으로부터 유학생들을 데려가고 있다. 한국이 북한의 개방을 권장할 수 있는 대북한카드를 현명하게 사용하면서 교류를 유도해 낸다면 그것 이 최선의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자폐돼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게도 난제인 상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는 이것을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도 지도자의 변동을 통해서든 또는 예측키 어려운 방법을 통해서든 조만간 보다 다원주의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그때까지는 한국과 미국은 강력하게 공동대처해야 하며 온전한 저지력을 견지해야 된다. 북한이 비상수단을 써야 되겠다고 느낄 정도로 그들을 궁지로 몰아부쳐서도 안되겠지만 그러나 북한은 결코 한국을 공격할 수 없으며, 또 한국과 미국을 분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보자. 며칠전 나는 對 긴장이 완화되고 있으므로 아시아에서 군을 빼내도 좋다는 칼럼을 보고 「워싱턴 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었다. 「사정이 다르다. 소련과의 긴장은 약화되고 있지만, 북한과의 긴장은 매우 위험한 상태로 남아 있다」.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스스로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우리의 저지자세를 강력하게 유지해야 하며 인내를 가지고 좀더 기다려야 된다. 「부시」대통령의 생각도 똑같다. 그분에 관한 내 경험으로 보아 그분의 생각이 북한과 같은 정권을 다루는 최선의 길은 우유부단한 입장이 아니라 힘의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련은 그들이 어떻게 도움을 줄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核안전협정 이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에 대해 이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소련에 대해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고 소련은 한반도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소련이 북한에 대해 건설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잠재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소련의 행동을 지켜보자. 소련은 북한에 대해 핵 원조를 제공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 안전협정을 이행토록 하는 것은 바로 소련의 책임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안정효과를 가져을 것이다』
『한반도의 군축, 추진되고 있다』
-미행정부 내에도 북한의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견해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北京에서 북한측과 접촉을 벌여온 결과로 보아 이같은 견해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주한미군의 감축은 북한에 대해 오히려 현재의 대 남 정책노선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알다시피 우리는 북경에서 북한측과 7차례의 정치참사관급 회합을 가졌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회합을 갖는 게 유용하다고 믿는다. 매번 양측은 실질적 문제를 거론했으나 외교접촉의 관례상 논의내용을 공표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회합의 전후에 한국외무부와 긴밀히 접촉, 한국정부측에 그 내용을 충분히 알리고 있다.재미있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신임 부대사 「레이먼드 버가트」씨는 지난 여름까지 북경주재 미 대사관의 정치참사관으로 있었다. 그는 몇 차례 북한측 대표와 만났으며 그의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다』
-파리의 미 ·소 고위외교실무회당에서 한반도의 군축문제가 논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반도의 군축문제에 관한 견해는『파리의 미 ·소 고위외교실무회당에서 한반도의 군비통제문제가 거론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의 군축국장이 최근 서울을 다녀간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지만, 군축국장으로서는 처음이다.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이제 검토되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럽에서 소련과 함께 성취한 신뢰 구축이다. 궁극적으로 신뢰구축은 군비축소협정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한반도의 사정은 다르다.그래서 유럽에서 경험을 쌓은 「레만」국장이 서울에 와 그의 경험을 토의하게 된 것은 매우 유익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현명한 견해를 가졌었다. 그는 군축은 시간을 요구하며 인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때로는 좌절하겠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을 한국측에서도 귀담아 들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나눠갖자는 것뿐이다. 한국은 우리의 경험을 활용해서 북한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데려온 이유도 바로 그 점이었다. 그는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결코 강요가 아니다. 행동방법에 관한 결정은 전적으로 한국이 내려야 한다』
3당합당과 미국의 역할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아시아의 평화공동체와 경제협력방안 등에 관해 몇 가지의 제의를 내놓았다. 아시아에 있어서의 군사력감축과 신뢰구축 등 소련의 제안에 대해 미국의 대응은 어떤 것인가. 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냉전의 대결시대가 종식되고 있다고 보는가.『최근 수년간 미 ·소 당국자들 사이에 논의된 주요 문제중의 하나가 東北아시아 상황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 지역의 긴장완화에 유익한 기여를 해왔다. 소련과 중국은 국경선획 정에 관한 협상을 벌여왔고 국경지역의 군비감축을 발표했다. 그러나 소련은 여전히 북아시아에 강력한 육해공군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틀 때 아시아에서의 소련위협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을 포함한 이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보다 건설적으로 나오는 소련의 태도에 대한 전망도 마찬가지로 낙관 할 수 있다. 나는 소련이 북한내 핵 감시를 위해 핵 안전검사에 관한 포괄계획에 서명하도록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이 문제는 한미양국의 당연한 관심사다」「新東亞」를 위해 독점적으로 갖게된 「그레그」대사와의 회견을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다. 3黨통합으로 조성된 한국정치의 새로운 국면 등 국내정치 문제에 관해 외국대사의 논평을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태도는 아니다. 한국경제의 전망이나 한국인을 보는 눈에 관련된 질문은 경제의 국제적인 상호의존성과 남에게 비쳐지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가에 대한 호기심을 생각하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미 관계의 특수성이나 민주주의의 신장을 대외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이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정치문제를 포함한 국내문제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한국의 3당은 스스로 정당을 해체하고 하나의 거대정당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치평가가 여전히 대립되고 있다. 일부는 3당통합을 찬성하지만 일부는 정당통합이라는 매우 이상스러운 공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국과 정치상황에 관한 논평을 듣고 싶다. 3당통합과정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항간의 소문을 들었는가.『한국의 변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 부임하기 전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나에게 한국의 정치는 항상 흥미진진하고 종종 충격적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나도 3당합당소식에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놀랐다. 나는 이 소식을 발표되기 하루 전 한 한국 실업인 으로부터 들었다. 또 이 3당합당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어쨌든 민주주의체제에서 그 체제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정당의 숫자가 아니다. 2개 정당 혹은 4개 정당 또는 10개 정당이나 그 이상으로 구성된 민주주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체제를 움직이도록 하는 국민들의 의지다』
『한국의 장래 낙관한다』
-한국정부는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진정한 요인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많다. 한국경제의 전망에 관해 제3자의 시각으로 어떻게 관찰하고 있는가.『86∼88년에 두 자리 숫자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던. 한국의 최근 경제상황에 관해 우려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89년 한국경제가 기록한 7% 가까운 GNP실질성장은 어떤 식으로 평가하든 인상적인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성장을 이를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뻐 할 것이다. 더욱 이 정도의 성장률은 앞서 한국정부가 현 단계의 경제 개발에 대해 예견했던 최대성장률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실업 및 인플레율은 비교적 낮고 외채도 줄어 올해에는 순채권국이 될 정도에 이르렀다.한국이 몇가지 어려운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정도는 70년대초 내가 한국에서 처음 근무할 당시와 비교하면 훨씬 덜 심각 한 것 같다. 한국민들은 경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대단한 적응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을 보여왔다. 나는 한국인들이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을 다루어나갈 때도 이러한 능력을 계속 보일 것으로 확신한다. 미래에 있어 지역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경제적 통상적 기회의 문은 한국에 열려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향후 10년간 극적으로 증가하리라고 본다. 한국은 국제경제활동의 중심적 위치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한국은 금융 운수 통신분야 등을 포함한 경제의 국제화조치를 계속 취해 나가야할 것이다』-대사는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아는 知韓인사로 알려져 있다. 대사의 눈에 비쳐지는 한국인의 기질은 어떠한가.『70년대 약 2년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해서 한국인들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 2년동안 좋은 한국인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한국인의 「기질」이 어떻든 간 에 그 기질을 병에 담아 수출할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제한된 자원이나 북으로부터의 간단없는 군사위협만을 보아온 사람들에게 한국의 경제적 번영은 상상외의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기간동안 세계는 재능있는 국민들의 다년간에 걸친 노력의 성과를 직접 볼 수 있었다.이에 못지 않게 인상적인 것은 한국인이 경제적 급변을 거치면서도 가족제도 등 전통적 가치들을 보존해왔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크게 존경한다. 풍부한 재능과 동기 그리고 자긍심을 지닌 한국민들의 미래는 밝다. 나는 한미 양국이 보다 새롭고 나은 세계로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돼 기쁘다』
『5공시절 미국의 침묵은 실수였다』
韓國通이자 백악관通
「도털드 그레그」 通韓美大使(63)는 서울에 친구가 많다. 그래서 그는 美행정부 내에서 韓國通으로 불린 韓國通으로 불린다.「부시」美대통령의 부통령시절 그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던.그는 동시에 백악관통이기도 하다. 한국통과 백악관통이기도 하다. 한반도 주변관계에 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중대한 국면에서 이 점은 그가 가진 강점이 아닐 수 없다.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 되는 시점을 앞두고 미국대사관 대사실에서 그를 만났다. 단순히 광주사태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 못다한 이야기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미간 현안, 한반도 주변정세와 변화에 관한 미국의 시각, 남북한문제에 대한 미국의 인식 등 미국쪽의 견해를 포괄적으로 들어보기 위해서였다.脫이데올로기의 흐름으로 격변하는 국제정세와는 달리 우리 사회가 오히려 이데올로기화의 경향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가운데 한국에서 차지해온 미국의 전통적인 위상에 구도변경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고, 이와 함께 미국의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있다. 「그레그」대사의 발언을 통해 전반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재조명해보려는 노력은 이런 관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첫째 관심은 한 ·미간 큰 틀의 관계보다는 광주민주화운동과 미국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 미국측은 이미 美국무부의 답변서를 통해 밝힌 것 이외에는 더 이상의 숨겨진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 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그 큰 이유는 물론 우리쪽에 있다.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이 되는 지금에도 그리고 「민주화 정권」이 들어섰다는 이 시점에도 광주시민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고, 발포책임의 소재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가 하면, 보상이냐 배상이냐 하는 정치권의 다툼도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이 「우리가 희생양이냐」는 불만을 갖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과연 그러한가. 우선 광주문제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 몇 가지의 상징적인 질문을 제기해보았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新軍部정권의 설명은 「폭도들에 의한 폭동」이었다. 그러나6共 초기 광주문제는 「폭동」으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격상됐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미국 대사관의 최초 인식은 무엇이었는가.「폭동」이라는 한국정부의 주장에 동의했는가.「19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사태는 국가적 비극이었다. 또 이 사건 에 관련된 분들에게는 개인적 비극 이기도 했다. 그 사건 후 거의 10년 이 지난 금년 1월 본인은 광주를 방문해서 광주시민들과 그 비극적 사건에 관찬 얘기를 나누었다. 나는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강렬하고 깊은 감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당시 광주에서 발생한 일들에 관해서는 오직 한국인들만이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이 사건을 미국이 어떻게 이해했느냐는 질문에 관해서는 이미 오래전에 공표된 미국정부의 두 공식성명을 인용할 수 있다. 이 공식성명은 질문에 관한 분명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거의 10년전에 발표된 「1980년 5월 대한민국 인권상황에 대한 美정부 보고서」는 「5월18일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시위와 이에 대한 포악한 군사적 대응은 광주에서 거의 2백명의생명을 앗아갔고 사실상의 봉기를 야기했다」고 밝히고 있다.또 지난해의 「19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발생한 제반사건에 대한 미정부의 성명」은 「미국은 최종적으로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종합하기에 이르렀다. 「글라이스틴」대사는 특전사부대의 과잉반응이 비극의 기본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기술하고 있다』
-광주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이 특전사부대의 과잉반응이었다는 미 국무부의 견해에 주목한다. 미 국무부의 인권정책에 의하면 중대한 인권위반의 경우, 미국은 대개 그 책임의 소재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전사부대의 과잉반응에 관해 미국은 결정과정에 관련된 어떤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 책임이 어디, 또는 누구에게 있다고 판단하는가.『광주사태에 대해서는 미정부의 성명서가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특전사부대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갖지 않았고 그들의 광주이동도 알 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광주에서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어쨌든 국내문제인 한국문제에 관해 어느 특정한 한국인들이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운운하는 것은 미국의 역할이 아니다. 오직 한국인들만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언론통제로 미국입장 왜곡됐다』
-「12·12사태」와 광주사태에 관한 분노 우려 견제의 반응으로 강경자세를 보인 미국은 그후 빠른 속도로 신군부가 이끄는 새 정권을 인정했다.레이건」행정부가 첫 손님으로 全斗煥 전대통령을 초청한 것은 미국의 여러가지 이유설명에도 불구하고 「새 정권 지지를 위한 미국정책의 급선회」로 해석됐고, 이어 한 ·미관계가 「현안이 없는 것이 현안」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새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강화됐다. 이는 단순히 「카터」행정부와 「레이건」행정부 사이의 정책적 차이 때문인가.『본인이 한국에 도착한 이래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계엄령선포와 광주사태가 발생했을 때부터 87년 6월 민주화선언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전두환정부가 유지했던 전반적 관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이었다. 그 오해의 깊이는 엄청나다. 그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고 또 조장되었다. 예컨대 광주사태 당시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암시하도록 전두환정부는 언론 을 조작했다. 제5공화국의 전 기간동안 전두환정부는 그들의 모든 행위를 미국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한 것처럼 묘사했다. 이는 모두 전두환씨와 그의 정부에 대한 합법성 부여를 위한 시도의 일환이었다.이와 마찬가지로 급진좌파는 그들의 국내 정적들에 대한 정적들에 대한 일반 한국인 의 분노를 북돋기 위해 광주사태에 서의 미국의 역할, 그리고 미국과 제5공화국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국민적 분노를 조성하기 위해 「외국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전세계에 걸쳐 이용돼온 진부한 정치적 전술이다.이같은 왜곡의 궁극적 효과는 깊은 오해로 나타났다. 세계의 보도매체들은 80∼87년 까지의 한·미 정부관계를 정직하게 보여줬다.
당시 한·미 정부간에는 많은 문제에 관해 견해를 같이하는 부분도 컸다. 그러나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의견차는 심각했다. 한국어만을 읽고 한국보도 매체들에만 접했던 일반 한국민 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반 한국인들이 접한 정부통제하의 언론이나 좌파의 지하인쇄물들은 미국과 전두환정부가 모든 문제에서 밀착되었음을 시사했다.미정부는 80년은 물론 그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인권에 관한 원칙들을 시종일관 밝혀왔다. 광주문제에 관해 우리는 5공정부 통제하의 보도매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우리를 겨냥한 사실왜곡에 대해 「당당한 침묵」의 정책을 채택했다. 광주 방문시 나는 이 「당당한침묵」의 정책이 광주시민 및 다른 한국인들의 의혹과 오해를 굳게 하고, 나아가 사무치게 한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됐다. 본인이 광주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우리의 오랜 침묵에 관해 사과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침묵은 분명히 우리측의 실수였다.87년 여러 사실이 공개된 이래 우리는 한국국회의 광주사태조사에 전적으로 협력해왔다. 「광주사태에 관한 미정부성명」은 한국국회의 요청에 의해 발표된 것으로, 국회에 광주특위가 설치된 88년에 시작해서 거의 1년에 걸친 조사끝에 마련된 것이다. 우리는 워싱턴에 보고된 주 한미대사관과 미군의 보고서를 검토했고, 워싱턴에서 열렸던 모든 회의 기록을 점검했으며, 「글라이스틴」전대사와 「위컴」장군 및 기타 인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모든 내용이 그 성명서에 포함돼 있다.우리가 81년 전두환대통령을 초청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이 아주 객관적으로 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해 1월 전두환씨가 한국정부의 지도자가 됐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많은 주요문제들에 관해 한 ·미양국은 협조할 필요가 있었고, 또 그러기를 바랐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의 또다른 전쟁도발 위험을 어떻게 억지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한 ·미 양국은 또한 당시 한국이 경제침체를 벗어나도록 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 같은 문제들은 긴밀한 접촉과 대화를 필요로 했다. 한 ·미 양국정부는 이와 함께 당시 확고한 對 협력자세의 필요성을 인식 했다.우리의 시급한 관심사는 金大中씨에 대한 사-형 선고였다. 우리가 전두환씨를 조기에 초청함으로써 김대중씨는 사형에서 감형됐고, 후에 우리는 그가 풀려나도록 도왔다. 우리는전두환정부와 많은 문제들에 관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의 권력장악 방법이나 그의 정부에 의한 인권침해기록을 우리가 용인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전두환정부에 대해 우리의 견해를 잘 이해하도록 알렸다. 다만 이 같은 사실이 한국의 매체들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결국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당사자는 오로지 한국국민들이다. 미국과 같은 국외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말과 제스처뿐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전능에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같은 인상은 한국이전쟁의 황폐함에서 벗어나 자립하고자 애쓰고 우리는 이를 지원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오래전의 잔재라고 본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의미에서 동등한 동반자다. 이는 훨씬 더 건강한 관계이기도 하다』
『광주문제 해결에 협조하겠다』
-광주민주화운동은 10년이 된 오늘에 이르러서도 사태와 관련된 세 가지의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 가지 문제는 광주시민의 명예회복, 광주학살에 관한 발포명령자 색출, 그리고 보상 또는 배상문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적인 사고방식으로 보면 한국의 문제처리방식이 어떠한가『나 자신·지난 1월 광주를 방문하고 나서 절실하게 느꼈지만, 광주의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음을 한국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는 주요한 과제는 한국측에 속하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관해 논평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우리(미국)로서도 너무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온 탓으로 광주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혹감을 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정기적으로 광주에 내려가 지난 1월에 시작한 광주시민들과의 대화를 계속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광주를 한국의 주요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실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들의 물음에 답하겠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분위기가 조용해지면 미국인을 포함한 외국의 투자가들이 광주에 대해 흥미를 갖고 주목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광주의 공기는 맑고 공해가 적다. 물도 깨끗하다. 대학을 나왔으나 직장을 못 얻고 있는 양질의 인력도 많다. 호남지방은 외국투자가들의 매력을 끌 수 있는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다만 문제는 정치적인 분위기다. 미국의 사업가들에게 광주를 말하면 미국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지는 곳이어서 별로 마음이 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광주의 시민들은 지성적이다. 나는 한·미 관계가 단순한 군사적 동맹관계로부터 경제적 동반자의 관계로 변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우리로서도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편에서 정치적 분위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어 투자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광주문제의 세가지 요소에 관한 질문은 한국적인 사정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답변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보십사오, 저는 한국인 모두에 대한 대사가 되고자 합니다. 저는 광주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80년의 사태에 관해 기꺼이 이야기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본인은 그 사건이 과거지사가 되도록 협조하겠으며, 계속해서 한국의 주요한 부분인 광주와 보다 긴밀하게 접촉할 것입니다」」
「반미주의는 식어가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反美가 적은 나라의 하나로 지목돼 왔었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미문화원이 공격당하고 대사관저 침입사건도 터졌다. 그리고 일부 학생들에 의해 미국국기인 성조기가 짓밟혔다.반미의 원인은 광주사태에 관한 미국의 역할일 수 있고, 권위주의정권에 대한 지지일 수도 있다. 민주화노력과 열망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기여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한국국민들에게 실망을 준 행동이었다. 그 결과 6·29 민주화선언 이전까지의 5공말기에 한국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가한 미국의 압력은 상당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정도다.문제는 88올림픽때부터 노골화된 반미사건 등이 미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가령 미 의회가 주한미군 감축론을 제기하는 것이 감축을 위한 합리적인 논리 외에도 그들 유권자들의 나빠지는 對韓감정을 은연중 의식한 데 따른 것이라면 사태는 단순하지 않다. 한국통인 「그레그」대사의 주요책무 ' 하나가 한국내의 반미감정 완화, 가중되는 미국의 대한통상 기에 이데올로기적인 반미주의가 겹쳐 한국의 반미문제는 난제의하나로 부각되었다. 더구나 서울이 미국인들의 안전지역에서 우려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미국인들의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의 정책이 베트남전쟁의 경우처럼 여론에 쫓기다가 「퇴보의 결정」 쪽으로 기운 사실들을 참작할 때 「과연 이대로 방치해도 좋은가」에 대해 냉철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와 제휴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의 반미감정을 어떻게소화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대사께서는 지난해 연말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에서 한국의 반미감정이 많이 누그러졌다고 얘기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반미감정의 유발원인은 무엇이라고 판단하며, 많이 누그러졌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한국학자들은 두가지 종류의 반미 주의가 있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감정에 바탕을 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념적」 반미주의로 불린다. 나도 이러한 분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감정적」 반미주의는 인간의 정상적 느낌에서 나온다. 미국은 한국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또 양국의 문화적 배경이 무척 다르며 의견차 또한 있게 마련이다. 한국인들의 자존심 역시 한국의 발전에 따라 당연히 높아가고 있다. 한국인들은 미국과 우열관계의 낌새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것도 참지 못한다. 이러한 종류의 반미주의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나라에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폭넓은 책임을 지닌 국가로서 우리는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고 있고, 또한 이러한 감정과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식의 반미주의가 분명히 쇠퇴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또 양국관계가 성숙해감에 따라 계속 퇴조할 것으로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세계를 조망할 때 미국과 한국은 가장 활력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소련이나 동유럽국가들이 그들의 피폐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나는 우리 양국의 어느 쪽도 양국관계가 감정에 의해 좌우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또다른 반미주의는 이념적인 것이다. 이른바 「악마론』으로, 미국은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비난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러한 반미주의도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실제로 아주 흔히 나타난다. 때때로 정부가 이를 이용할 때도 있다. 북한은 여전히 이러한 류의 반미주의를 공급하고 있다. 한국은 외세의 희생물이 된 역사를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부 한국인들이 현존하는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외국에 돌리는 것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이념적 반미주의는 「위안」의 논리이다. 젊은이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닌 이념적 반미주의의 또 하나 이점은 단순하다는 점이다. 만일 한국이 잘못된 게 미국 탓이라면 미국의 「영향력」을 제거해버리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 같은 이론의 큰 결점은 물론 그 이론이 오류라는 데 있다. 어느 나라든 그들이 직면한 도전은 복잡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나라 국민들만이 닥쳐온 도전의 극복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이념적 반미주의에서 깨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가지 이유는 언론자유로 인해 보다 많은 편견 없는 정보와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 한국인들이 여행의 기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과거보다 훨씬 넓은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반미주의가 식어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 미간 '농업협조 추진』
-미국대사관저가 일단의 학생들로 부터 습격 받았었다. 유사한 침입사건이 다른 곳에서는 없었는가. 한국에서의 미국인 안전문제가 미국의 대한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i『6명의 과격학생들이 나의 관저를 침입한 사건 직후 우리 내외는 TV방송에서 이 사건으로 우리의 대한인식이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사건을 과격한 생각을 지닌 소수 학생들의 행위로 보았으며, 일반 한국민들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나의 관저 침입과 같은 행동을 할만큼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는 문제점도 인정한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이해를통해서 반미강정의 주요원인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서다.두가지 주요한 문제는 앞서 논의한 광주의 비극과 한국농민의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지난 1월 광주방문시 나는 5명의 재야인사들과 4시간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대구 방문 때는 깊은 산골의 한 농부집 마루에 앉아 농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관해 직접 얘기를 듣기도 했다. 광주의 상처는 한국정부가 현재 진행중인 노력에 의해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오직 치유의 과정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지난 3월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농업문제에 경험 있는 미국단체들이 실제로 한국농민들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방안들을 내놓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계속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또 나를 환대해주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전에 방문했던 농부의 집을 언젠가 다시 가보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한국내 반미감정에 대한 원인 모두를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대처해 나감으로써 그러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농산물은 대부분 민족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에 미국 농산물 수입을 더 늘리라는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은 경제적 불이익 이외에 반미감정을 일으키고 있는 주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미국이 농산물 수입압력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을 찾도록 본국정부에 건의할 생각은 없는가.『나는 농산물압력이란 표현대신 농산물협력이란 용어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에 부임한 이래 나는 한국의 농업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나는 농민들 을 포함하여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다. 이에 따라 이 문제의 민감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다. 우리는 과거 많은 문제에서 그랬듯이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협력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양극간에 장기 적이고 생산적인 농업협력의 역사가 이룩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한국농업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해나갈 준비가 돼 있다. 우리는 이른바 한국의 경제기적을 농민들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개발 시행하는 데 있어 이를 언제나 가능하고 적절히 지원하기 위해 한국의 농민 가공업자 협동조합 정부관리 그리고 학자들과 협력할 태세가 돼 있다.미국의 쌀 생산업계는 쌀을 원료로 하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냄으로써 미국내 쌀소비를 늘리는 데 크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미국의 쌀생산업계가 한국의 쌀생산업 계와 협력해서 미국의 성공사례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의 여부를 검토해주도록 요청하고 있다』
-최근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흠이 가게 하는 반미감정이 확산된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세계역사의 흐름 자체를 변하게 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한·미관계도 안보를 중심으로 한 종래의 형태로부터 조금씩 변하고 있다. 새로운 한·미 관계의 발전에 관한 대사의 견해는.『한·미관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나는 그 변화가 건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전적으로 군사문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던 시대에서 경제와 세계적 정치발전에 관한 공통견해를 보다 많이 얘기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에 부임하기 전 나는 양국관계가 군사적 동맹으로부터,경제·정치적 동반자로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었다. 이는 지금도 나의 목표가 되고 있다. 또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발전에 매우기뻐하고 있다.북한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변화를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과 항구적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한국인 이 지역의 경제발전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세계경제에서도 역할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넓은 분야에서 공통적인 포부를 갖고 있으며 장래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함으로써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하원 외교위 아시아·태평양 소위에서 가진 청문회에서 미국방부의 고위관리는 주한미군을 줄이는 주된 이유가 예산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복합적이라고 말하고 예산외의 요인으로 남한의 자체능력과 한국의 기호가 바뀐 것을 지적했다. 바뀐 한국의 기호는 무엇을 말하는가.「한국은 인상적인 경제성장을 달성 했고, 활력 넘치는 민주주의를 확립해왔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양국관계의 일부 조정은 당연한 것이다. 최근 논의를 통해 양국정부는 안보관계에서 상호 건설적 변화를 택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은 한·미 안보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미국은 지원역할로 전환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러한 조정은 한 ·미 합동협의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확고하며 우리의 주요한 전쟁억지력 역시 온전히 존속될 것이다』
군사동맹에서 정치 ·경제동반자로
-용산기지 이전문제에 관해 한국측은 이전비용의 공동부담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 원칙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공동부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한·미 양국정부는 용산의 주한미군사령부를 서울 밖으로 이전하는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50년대 주한미군사령부가 현위치에 세워졌을 당시 용산은 서울중심부의 외곽지역 이었다. 용산소재 미군기지는 양국 정부 공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제 사정은 변했다. 미정부는 서울도심에 있는 이땅을 회수하고자하는 한국정부의 희망을 인지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90년대 중반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는 데 원칙적 합의를 보았다. 적절한 사용목적을 위해 이 지극히 가치있는 재산을 되찾게 될 한국정부가 이전에 따른 모든 주요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는 게 미국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을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한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무엇이며, 주한미군의 점진적 감축에 대한 대응조치로 북한에 대해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한·미 양국정부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북한이 보다 현실적 태도를 취해 對南교류를 증가시킬 징후를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 최근 양국정부는 「팀스피리트 90」의 훈련규모 축소 및 주한미군의 점진적 조정계획 등을 포함한 일련의 일방적 긴장감소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월과 3월 나는 주한미군사령관과 국방부장관 및 외무부장관을 만나 상호관심사인 안보문제를 검토했다. 우리 네 사람은 이제 북한이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해야 할 차례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까지 북한은 긴장감소을 위한 가장 단순한 방안에조차 반발해왔다』주한미군 감축문제나 한·미간 통상마찰과 미국 통상정책은 그 자체로서 별도의 회견을 필요로 할 정도로 중요하다. 예컨대 주한미군 문제는 한 ·미연합체제의 변경시도에 따른작전권이 나 평시 · 전시 의 개념, 과연 물러간 미군이 유사시 한반도에 다시 돌아오겠느냐, 그리고 주한미군과 한반도 주변의 세력균형등 검토해야 할 쟁점이 엄청 나게 많다.특히 미국이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중개인과 균형자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주권자로서의 명분과 현실성을 토대로 시각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의 균형자 역할에 관해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바라는 우리로서는 의의를 과소평가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리고 소련같은 한반도와 유관한 강대국들도 주한미군의 그같은 역할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뜻은 쉽게 말해서 북으로부터든 남으로부터 든 어떠한 공격행위에 대해서도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의 첫째 관심은 그러한 미군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며, 왜 그같은 정책결정이 이뤄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더우기 미국의 정치 메카니즘이 의회주의 우선임을 고려할때, 그같은 배경에 혹시나 미국의 국민감정을 깔고 있지않겠느냐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의 그같은 여론이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한 ·미간의 통상문제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주한미군과 한 ·미간 통상마찰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보다는 미국의 정치메카니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저류를 타진해보기 위해 이 문제를 반미문제와 연결시켜 질문의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대사는 한 나라의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현지책임자이다. 답변에서는 언제나 공식적인 노선을 넘지 않으려고 적절한 선을 긋고 만다.「그레그」대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령 5공 당시 미국이 알게 모르게 가한 민주화추진 얍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문제제기 자체에 난색을 표명했다.당시 미국의 고위 외교당국자는 5공정부의 지도층을 만나 외교적으로 표현된 한국민주화추진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 그것에 대한 반응이 없게되자 다시 보다 명확하게 미국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미행정부의 고위인사를 파견하려 했다. 이와 더불어 전두환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조기하야를 의미하는 거국체제 구성을 어느 민간인의 私信형식으로 제의했던 사실 등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물론 이번 회견을 통해서는 이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레이건」행정부가 추구했던 「조용한 외교」의 일면이라고 할까. 그러나 기자가 그 당시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보고 느낀 바로는 한국의 민주화달성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결정적인 상태」였다는 사실이다.공식입장과 조용한 외교는 미국대사의 기능에 관한 이중구조를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교관 등의 발언은 때때로 나타난 내용의 액면보다는 행간에 뜻을 더 많이 함축시키는 경우가 있다. 한국의 북방정책 특히 대소련접근 문제에 대해서도 과연 그러한가. 물론 미행정부의 공식입장은 한 ·소관계증진을 환영하고 있고 속마음에 있어서도 그럴 수가 있다.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중점으로 한 북방외교와 북한 인식에 관련한 미국쪽의 시각을 물어보았다.
북방정책에 대한 미국의 시각
-오는 5월말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 ·소 정상 회담에서 한반도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거론될 것인가.『「부시」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나 미 ·소간 의제의 전영역에 걸쳐 토의를 가질 것이다. 여기에는 군축과 쌍무문제 및 지역문제, 그리고 테러리즘 환경문제와 같은초국가적 문제는 물론 인권문제 등도 포함될 것이다. 지역문제에서 「부시」대통령은 한국문제논의를 원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문제가 어떻게 취급될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金泳三 민자당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을 만났다. 그것은 최근 급속하게 발전되고 있는 한 ·소 관계의 새 양상을 상징한다. 이에 대한 대사의 소감은 어떠한가.「레이건」대통령은 소련의 행동방식에 관해 「믿기는 하겠으나 보여달라」는 소련속담을 인용, 충고한 일이 있다. 이 같은 「레이건」대통령의 충고는 盧泰愚대통령에 게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한국과 소련이 정치분야를 포함한 많은 분야에서 상호관계를 증진시켜 나가고 있는 데 대해 미국은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한 ·소 관계의 정상화를 환영할 것이다. 소련이 여러가지 긴급하고 중대한 문제들과 직면해 있는 시기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시간을 내 김영삼씨를 만난 사실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소련이 한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맺기 위해 신속함을 보일 수 있을 만큼 현명하기를 희망한다. 귀하가 인용한 소련인들에 관한 속담은 「레이건」대통령이 군축협정이행의 검증과 관련해 얘기한 것으로 귀하도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 속담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좋은 충고이다』
-한국이 모스크바로 가는 길은 서울-모스크바 直行과 워싱턴 경유의 길로 크게 두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서울-모스크바 길로 한·소간의 관계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데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헝가리와의 수교와 6자회담 제의때의 直行방식에 미국이 나타낸 실망을 전해듣고 있다.『미국정부는 한·소 관계 정상화를 환영한다. 미국은 일관되게 북방정책을 지지해왔다. 우리는 한 ·소 관계 정상화가 한 ·미 쌍무관계에 문제점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영국 ·소련관계나 서독 ·소련관계가 우리에게 문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정부가 6개국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면 우리도 가능한 방법으로 기꺼이 이를 지원할 것이다.나는 지난 3월 서울에서 있은 모스크바-서울간 직항로 개설기념 리셉션에 개인적으로 참석했는데 그 기념행사가 역사적인 것이라고 느꼈고 거기 참석한 게 기뼜다』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김영삼씨는 「이제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안심해도 좋다」고 선언했다. 한반도의 평화조건이 그렇게 간단한 것인가.『어느 특정인사에 관한 논평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의 평화조건에 관해 말하고 싶다. 한국의 북방정책은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소련과의 점증하는 관계는 소련이 북한에 대해 건설적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하겠다는 개별적인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한반도 상황에 유익한 효과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매우 긍정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북한은 기본적으로 매운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북한은 전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함에 따라 그들의 태도 결정에 당황하고 있다. 북한의 동맹국들은 한국을 승인하고 있고 그래서 그들은 동유럽으로부터 유학생들을 데려가고 있다. 한국이 북한의 개방을 권장할 수 있는 대북한카드를 현명하게 사용하면서 교류를 유도해 낸다면 그것 이 최선의 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북한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자폐돼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에게도 난제인 상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는 이것을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도 지도자의 변동을 통해서든 또는 예측키 어려운 방법을 통해서든 조만간 보다 다원주의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그때까지는 한국과 미국은 강력하게 공동대처해야 하며 온전한 저지력을 견지해야 된다. 북한이 비상수단을 써야 되겠다고 느낄 정도로 그들을 궁지로 몰아부쳐서도 안되겠지만 그러나 북한은 결코 한국을 공격할 수 없으며, 또 한국과 미국을 분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보자. 며칠전 나는 對 긴장이 완화되고 있으므로 아시아에서 군을 빼내도 좋다는 칼럼을 보고 「워싱턴 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이 기고했었다. 「사정이 다르다. 소련과의 긴장은 약화되고 있지만, 북한과의 긴장은 매우 위험한 상태로 남아 있다」.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스스로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우리의 저지자세를 강력하게 유지해야 하며 인내를 가지고 좀더 기다려야 된다. 「부시」대통령의 생각도 똑같다. 그분에 관한 내 경험으로 보아 그분의 생각이 북한과 같은 정권을 다루는 최선의 길은 우유부단한 입장이 아니라 힘의 입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소련은 그들이 어떻게 도움을 줄수 있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核안전협정 이행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에 대해 이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 소련에 대해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고 소련은 한반도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소련이 북한에 대해 건설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잠재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소련의 행동을 지켜보자. 소련은 북한에 대해 핵 원조를 제공하기 때문에 북한이 핵 안전협정을 이행토록 하는 것은 바로 소련의 책임이다. 그것은 한반도에 안정효과를 가져을 것이다』
『한반도의 군축, 추진되고 있다』
-미행정부 내에도 북한의 변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견해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北京에서 북한측과 접촉을 벌여온 결과로 보아 이같은 견해에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주한미군의 감축은 북한에 대해 오히려 현재의 대 남 정책노선을 더욱 강화시켜주는 결과가 되지 않겠는가.『알다시피 우리는 북경에서 북한측과 7차례의 정치참사관급 회합을 가졌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회합을 갖는 게 유용하다고 믿는다. 매번 양측은 실질적 문제를 거론했으나 외교접촉의 관례상 논의내용을 공표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회합의 전후에 한국외무부와 긴밀히 접촉, 한국정부측에 그 내용을 충분히 알리고 있다.재미있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신임 부대사 「레이먼드 버가트」씨는 지난 여름까지 북경주재 미 대사관의 정치참사관으로 있었다. 그는 몇 차례 북한측 대표와 만났으며 그의 이러한 경험은 한국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다』
-파리의 미 ·소 고위외교실무회당에서 한반도의 군축문제가 논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반도의 군축문제에 관한 견해는『파리의 미 ·소 고위외교실무회당에서 한반도의 군비통제문제가 거론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의 군축국장이 최근 서울을 다녀간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지만, 군축국장으로서는 처음이다. 한국에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이제 검토되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유럽에서 소련과 함께 성취한 신뢰 구축이다. 궁극적으로 신뢰구축은 군비축소협정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한반도의 사정은 다르다.그래서 유럽에서 경험을 쌓은 「레만」국장이 서울에 와 그의 경험을 토의하게 된 것은 매우 유익했다. 그리고 그는 매우 현명한 견해를 가졌었다. 그는 군축은 시간을 요구하며 인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때로는 좌절하겠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말을 한국측에서도 귀담아 들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나눠갖자는 것뿐이다. 한국은 우리의 경험을 활용해서 북한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데려온 이유도 바로 그 점이었다. 그는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결코 강요가 아니다. 행동방법에 관한 결정은 전적으로 한국이 내려야 한다』
3당합당과 미국의 역할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아시아의 평화공동체와 경제협력방안 등에 관해 몇 가지의 제의를 내놓았다. 아시아에 있어서의 군사력감축과 신뢰구축 등 소련의 제안에 대해 미국의 대응은 어떤 것인가. 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냉전의 대결시대가 종식되고 있다고 보는가.『최근 수년간 미 ·소 당국자들 사이에 논의된 주요 문제중의 하나가 東北아시아 상황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 지역의 긴장완화에 유익한 기여를 해왔다. 소련과 중국은 국경선획 정에 관한 협상을 벌여왔고 국경지역의 군비감축을 발표했다. 그러나 소련은 여전히 북아시아에 강력한 육해공군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그렇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틀 때 아시아에서의 소련위협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을 포함한 이 지역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보다 건설적으로 나오는 소련의 태도에 대한 전망도 마찬가지로 낙관 할 수 있다. 나는 소련이 북한내 핵 감시를 위해 핵 안전검사에 관한 포괄계획에 서명하도록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이 문제는 한미양국의 당연한 관심사다」「新東亞」를 위해 독점적으로 갖게된 「그레그」대사와의 회견을 마무리해야 될 시간이다. 3黨통합으로 조성된 한국정치의 새로운 국면 등 국내정치 문제에 관해 외국대사의 논평을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태도는 아니다. 한국경제의 전망이나 한국인을 보는 눈에 관련된 질문은 경제의 국제적인 상호의존성과 남에게 비쳐지는 자신의 얼굴이 어떤가에 대한 호기심을 생각하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미 관계의 특수성이나 민주주의의 신장을 대외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는 미국이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정치문제를 포함한 국내문제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한국의 3당은 스스로 정당을 해체하고 하나의 거대정당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가치평가가 여전히 대립되고 있다. 일부는 3당통합을 찬성하지만 일부는 정당통합이라는 매우 이상스러운 공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국과 정치상황에 관한 논평을 듣고 싶다. 3당통합과정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항간의 소문을 들었는가.『한국의 변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변화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 부임하기 전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나에게 한국의 정치는 항상 흥미진진하고 종종 충격적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이 옳았다. '나도 3당합당소식에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놀랐다. 나는 이 소식을 발표되기 하루 전 한 한국 실업인 으로부터 들었다. 또 이 3당합당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어쨌든 민주주의체제에서 그 체제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정당의 숫자가 아니다. 2개 정당 혹은 4개 정당 또는 10개 정당이나 그 이상으로 구성된 민주주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체제를 움직이도록 하는 국민들의 의지다』
『한국의 장래 낙관한다』
-한국정부는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진정한 요인에 대해서는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많다. 한국경제의 전망에 관해 제3자의 시각으로 어떻게 관찰하고 있는가.『86∼88년에 두 자리 숫자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던. 한국의 최근 경제상황에 관해 우려를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89년 한국경제가 기록한 7% 가까운 GNP실질성장은 어떤 식으로 평가하든 인상적인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성장을 이를 수 있다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뻐 할 것이다. 더욱 이 정도의 성장률은 앞서 한국정부가 현 단계의 경제 개발에 대해 예견했던 최대성장률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실업 및 인플레율은 비교적 낮고 외채도 줄어 올해에는 순채권국이 될 정도에 이르렀다.한국이 몇가지 어려운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정도는 70년대초 내가 한국에서 처음 근무할 당시와 비교하면 훨씬 덜 심각 한 것 같다. 한국민들은 경제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대단한 적응력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을 보여왔다. 나는 한국인들이 현재와 미래의 도전들을 다루어나갈 때도 이러한 능력을 계속 보일 것으로 확신한다. 미래에 있어 지역적으로나 세계적으로 경제적 통상적 기회의 문은 한국에 열려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향후 10년간 극적으로 증가하리라고 본다. 한국은 국제경제활동의 중심적 위치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한국은 금융 운수 통신분야 등을 포함한 경제의 국제화조치를 계속 취해 나가야할 것이다』-대사는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아는 知韓인사로 알려져 있다. 대사의 눈에 비쳐지는 한국인의 기질은 어떠한가.『70년대 약 2년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해서 한국인들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 2년동안 좋은 한국인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한국인의 「기질」이 어떻든 간 에 그 기질을 병에 담아 수출할 수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제한된 자원이나 북으로부터의 간단없는 군사위협만을 보아온 사람들에게 한국의 경제적 번영은 상상외의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기간동안 세계는 재능있는 국민들의 다년간에 걸친 노력의 성과를 직접 볼 수 있었다.이에 못지 않게 인상적인 것은 한국인이 경제적 급변을 거치면서도 가족제도 등 전통적 가치들을 보존해왔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크게 존경한다. 풍부한 재능과 동기 그리고 자긍심을 지닌 한국민들의 미래는 밝다. 나는 한미 양국이 보다 새롭고 나은 세계로 함께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돼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