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도전과 응전의 시 정신 / 오월시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이은봉(실사구시의 시학, 세미, 1994…
본문
도전과 응전의 시정신
-'오월시'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
이은봉
빛이 쏟아지는 바다, 금남로로 가요
당신들이 내어던진 고기 통조림
그 날카로운 양철 아가리로 가요
살들이 좀 찢기면 어때요
피가 좀 나면
아, 이 죽음보다 명쾌한 투신, 얼마나 상쾌한데요
당신들은 죽어버린 내 얼굴에 푸르죽죽 페인트칠까지
해주는군요
얼룩달룩 귀두사자(귀두사자)
장갑차를 탄 밤도깨비 당신품에 안길까요
아, 모가지가 없어져서 美人이라구요
-이영진 「그로테스크한 詩」 부분
「오월시」 동인들이 판화시집『빼앗길 수 없는 노래』에는 동인들의 신작시 51편과 「민족미술협의회」의 판화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오월시」의 입장에서는 이전의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와 함께 판화시집으로서는 두번째의 시도가 되는 셈이다. 또한 이 책은 「오월시」동인들의 일곱번째 작품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81년 6월 첫번째 동인지가 나온 이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작품집이 상재되었는데, 그것이 모두 다섯 권, 거기에다 판화시집이 두 권 덧붙여지니 도합 일곱번째의 작품집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의 양만으로도 「오월시」동인들은 8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해 엄청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작품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80년대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변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의 운동화, 즉 역사와 함께 하는 문학의 완성에 그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능동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물론 문학운동이라고 했을 때와 운동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반 민중운동의 일반 이론 및 법칙을 공유한다. 요컨대 문학운동 또한 운동의 주체 및 대상, 목표 및 방법 등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운동은 마땅히 분야별 운동으로 분화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또한 각 분야별 운동은 당연히 저마다의 특수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운동의 단계와 국면에 따라 모든 분야별 운동이 각기 그 역할과 기능이 적절하고도 기동성 있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인데, 문학운동도 결국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월시」 동인들이 처음 작품의 생산과 보급을 통한 문학운동을 시작한 시기는 극한의 억압국면, 즉 극도의 탄압국면이었던 1980년대 벽두이다. 1981년 6월 첫 작품집이 상재될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 그 무시무시하던 공포의 시대를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여기서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오월시」 동인들은 그들의 엄청난 오월 체험을 증언하기 시작하는데, 서두에 인용된 이영진의 시는 1집 『이 땅에 태어나서』에 실려 있는 것으로, 그날 광주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오월시」 동인들이 80년대초에 보여준 운동으로서의 역할은 문학의 언론적 기능의 확보와 그것의 재생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모든 정보유통구조가 차단되고, 정치 사회 등 그밖의 어떠한 언론매체도 으깨지고 뭉개져 있던 시대에 오직 문학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일을 「오월시」 동인들은 기꺼이 선진적으로 떠맡았던 것이다. 그즈음 누가 감히 오월광주의 현장을 증언하고 그것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가 누가 감히 끔찍하게 처형되어 있던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를 소생시킬 힘과 용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가.
그러나 오늘 현재 광주항쟁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고스란히 되살아나 만개해 있고, 도처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운동의 전선이 학생 및 노동자, 그리고 재야인사들에 의해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 가고 있으며, 민중주체의 통일민족국가를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운동의 역할은 80년대 초와는 얼마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언론과 정보기능만으로도 온전히 제 몫을 다하던 시대가 이미 지나간지 오래인 이즈음 문학이 아직도 운동을 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에 관한 명확한 논리적 대답을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오월시」 동인들이 벌써 충분히 그리고 능동적으로 그에 잘 대처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문학운동이 제반 민중운동의 전위에 서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우리 시대에 문학, 특히 전문 문학인들이 떠맡아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오월시」 동인들이 이미 그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선명히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반 민중운동이 각기 그 운동의 단계와 국면마다 선진적으로 자기의 몫을 옳게 수행해가고 있다면 오늘날 전문 문학인으로서의 문학운동의 역할은 매우 자명하다. 문학이란 본래 정서적 언어형상이며 하나의 예술이다. 문학운동이 예술운동, 즉 질적 향상운동에 주력하는 것도 다름 아닌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운동의 선도그룹과 전선에서 차출된 문제와 이념적 지표(분명히 급진적이고 낯설고 생경하게 보일)들을 구체적인·삶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정서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문학운동의 정작의 과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즉 그것들을 좀더 섬세하게 일상성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 나아가 삶의 일부로 합법화하는 작업 등에서 문학운동의 당면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학운동의 역할을 일단 이렇게 규정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에 가장 가까운 동인집단으로 「오월시」를 택하는데 어느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다양한 노력 속에 우리는 우리시대 첨단의 문제들이 알맞게 육화된 형태로, 엷게 침투해 오는 서정의 형태로 두루 잘 드러나고 있음을 익히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집착하고 있는 시와 판화의 결합도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역사발전을 위한 운동의 한 몫으로서 문학의 민주화, 즉 대중화를 전제로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보급과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는 화급한 당위성 속에 그들의 시도는 위치지워 진다는 것인데, 누가 뭐래도 그들은 이러한 역사의 요청에 가장 능동적으로 응전해온 동인집단이라는 것이다.
민중 주체의 통일민족국가를 이루기 위한 문학운동의 구체적 과제로 상정할 수 있는 시와 타 쟝르와의 결합으로서 우리는 이외에도 물론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시와 노래의 결합은 익히 시도되고 있는 바 있고, 시와 연극, 시와 조각, 시와 회화 등의 결합도 한 방법일 것이다.
「오월시」 동인들의 출발은 주지하다시피 1980년 5월의 광주 항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오월 광주의 역동적 힘과 역사 발전을 위한 뜨거운 운동 에너지가 이들 문학에 내재해 있는 주요 에꼴이라는 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오월시」 동인들의 작품 내면을 좀더 섬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첫째 경험적 관찰과 서정을 주조로 하는 세계, 둘째 정신적 치열성과 인식의 거듭남을 주조로 하는 세계로 대변됨을 알 수 있다.
첫째의 경우로는 곽재구·최두석·나해철·박주관·김진경을 들 수 있고, 둘째의 경우로는 이영진·고광헌·박몽구·윤재철·나종영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는 임의적 분류이며 그들 상호간의 변별점을 찾기 위한 의도적 구분일 뿐인데, 부분적으로는 예의 시세계가 상호 혼재해 있음도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각각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첫째의 경우가 방법적 성찰이 강한데 비해, 상대적으로 둘째의 경우는 자각과 실천에의 의지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첫째의 경우는 형상 내에 주제를 담으려 한다고 할 수 있고, 둘째의 경우는 주제 내에 형상을 담으려 한다고 까지 할 수 있다.
「오월시」 동인이라고 해서 그 시적 주제가 80년 이후 만개된 문학운동 일반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문학운동 중 그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월시」 동인들도 마찬가지로 민족민중의 이념을 창작의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는 것인데, 다음은 예의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에 실려 있는 나해철의 작품 「독립군을 찾으며」의 일부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그의 반외세를 통한 민족자주화에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어디 있는가
큰 걸음걸이
푸른 정신 모두 목타듯 그리운데
결코 죽을 수 없는 그대
갇히었나
가위눌렸나
어디에서 심장을 듣고 있는가
땅은 메말라 쩍쩍 금가 있고
돌보는 이들
아리따운 한국 사람들 모두들
떠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우리는 아직도
독립을 이루지 못했는데
쇠를 부르는 그대 목소리
꼭 들어야 하는데
이 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적 결구를 유도하고 있는 "아직도/독립을 이루지 못했는데"일 것이다. 이 구절에서 그가 현금의 민족모순에 얼마나 첨예하게 집착해 있는가를 알 수 있고, 나아가 이를 널리 인식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내용은 지나치게 하소연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따져보면 이는 시라는 문학양식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또 바로 이러한 차원을 이 시의 시인이 문학운동의 실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민족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것이 반외세의 문제일 것임은 異論(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조국분단과 6·25전쟁, 그로 말미암은 씻겨지지 않는 민족의 상처, 즉 민족 내의 헛된 적대의식이다. 조국의 분단이 단지 국토의 분단에 그치지 않고 사상과 의식, 정신까지도 분단시켰다는 점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민족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또 하나의 요점이 민족내의 동질성 회복, 즉 진정한 남북 화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최두석은 6·25전쟁이 적과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싸움임을, 우리들 내부 상호간의 터무니없는 살상임을 밝히기 위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깜박이는 불빛 따라 접근한
국방군부대
또 총소리 들리고
쓰러진 조선이나 한국의 사내
그들의 입에 눈에 흙이 들어가
꿈도 집념도 온갖 욕망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지리산 등성이 여기저기 누운
산사람 혹은 국방군
그들이 뒤엉켜 함께 피우는
찔레꽃
지리산 찔레꽃
-「지리산 찔레꽃」 부분
이 시 또한 그 핵심이 결구 부분에 응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리산에서 죽은 남북병사들을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6·25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암시하고 "그들이 뒤엉켜 함께 피우는/찔레꽃"이라는 구절로 시를 맺음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통일로의 전망을 드러내려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독자로 하여금 읽고 알게 할뿐 더 이상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가 시의 기능을 바로 이러한 차원, 즉 상상력을 통한 인식의 정서적 확산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생각은 항상 의심할 바 없이 옳은 것인가.
최두석에게 있어서의 찔레꽃은 고광헌에게 이르면 山竹(산죽)으로 그 형상이 달라져 나타난다. 그러나 전자에 비해 후자는 훨씬 가치 편향적 이고 역사적 의미부여가 강하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민족사의 질곡 속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의 환생적 모습을 상징하고 있기는 하지만 「山竹」의 경우 좀더 명확히 민중적 관점에서 서 있다는 것이다. 「山竹 ·2」에서 시인 고광헌이 "아, 혼자가 아니구나/기다리다 지친 몸 이끌고 산으로 산으로/그리움 찾아 떠난 사람들의 부릅뜬 목소리/서걱서걱 속삭이고 갈길 찾지 못하고 떠돌며/채찍맞고 서 있는 종살림의 발길 속으로/그대가 새푸른 발길로 따라 오는구나"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 역시 시인에 의해 인식된 진실의 부드러운 진술에 그쳐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시에 내포되어 있는 시적 진실이 민족사의 참된 중용을 창출하기 위한 선진적 노력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한 따져보면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운동 이념의 정서적 보편화 및 일상화, 곧 대중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고광헌의 다음의 시「아침,집을 나서며」는 훨씬 뜨겁고 선동적인데, 우리는 그의 시의 한 일면을 이러한 작품에서 읽게 된다.
들린다,
나와 너희들 완강하게 가로막고 서 있는 벽
설움 많은 나라의 서러운 희망들이
길고 긴 회색의 담벼락 안에 갇혀
울고 있는 소리가
가슴 속으로 한 쪽 세상의 슬픔이 무너지며
늦은 가을 따뜻한 햇빛과 바람의 손길에
과수원 풋과일들의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가
그리고 또 들린다
못난 계절,
죽은 낱말들만 폐수처럼 흐르는 교과서 속에서
금기 속에 갇혀 튕겨 오르는
말들을 부르는 너희들의 목소리
충혈된 뇌세포, 가는 실핏줄 속에서
우리는 일으켜 세운다
그리하여, 싸워야 하리
온몸의 핏줄 온몸의 관절일으켜 세워
한꺼번에 무너지는 벽을 향하여
여린 발목들 불러 모아 튼튼한 발걸음 되어야 하리
물러설 수 없는 발길 옮겨야 하리,
근본적으로 좋은 문학은 모두 프로파간다라고 할 때의 프로파간다적 속성을 이 시는 보여준다. 민중주체의 통일민족국가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힘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오월시」 동인 전체의 시세계를 일별할 때 이러한 작품은 별로 많지 않다. 아직까지는 「오월시」 동인 일반의 세계인식과 실천적 자세가 거기에까지는 이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들의 시가 반드시 모두 다 거기에 이르러야 하는지는 물론 잘 알 수 없다. (1986)
-'오월시'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
이은봉
빛이 쏟아지는 바다, 금남로로 가요
당신들이 내어던진 고기 통조림
그 날카로운 양철 아가리로 가요
살들이 좀 찢기면 어때요
피가 좀 나면
아, 이 죽음보다 명쾌한 투신, 얼마나 상쾌한데요
당신들은 죽어버린 내 얼굴에 푸르죽죽 페인트칠까지
해주는군요
얼룩달룩 귀두사자(귀두사자)
장갑차를 탄 밤도깨비 당신품에 안길까요
아, 모가지가 없어져서 美人이라구요
-이영진 「그로테스크한 詩」 부분
「오월시」 동인들이 판화시집『빼앗길 수 없는 노래』에는 동인들의 신작시 51편과 「민족미술협의회」의 판화 42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오월시」의 입장에서는 이전의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어라』와 함께 판화시집으로서는 두번째의 시도가 되는 셈이다. 또한 이 책은 「오월시」동인들의 일곱번째 작품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81년 6월 첫번째 동인지가 나온 이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작품집이 상재되었는데, 그것이 모두 다섯 권, 거기에다 판화시집이 두 권 덧붙여지니 도합 일곱번째의 작품집으로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의 양만으로도 「오월시」동인들은 80년대의 한국문학을 위해 엄청난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작품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80년대 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변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문학의 운동화, 즉 역사와 함께 하는 문학의 완성에 그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능동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물론 문학운동이라고 했을 때와 운동 역시 기본적으로는 제반 민중운동의 일반 이론 및 법칙을 공유한다. 요컨대 문학운동 또한 운동의 주체 및 대상, 목표 및 방법 등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운동은 마땅히 분야별 운동으로 분화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또한 각 분야별 운동은 당연히 저마다의 특수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운동의 단계와 국면에 따라 모든 분야별 운동이 각기 그 역할과 기능이 적절하고도 기동성 있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인데, 문학운동도 결국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월시」 동인들이 처음 작품의 생산과 보급을 통한 문학운동을 시작한 시기는 극한의 억압국면, 즉 극도의 탄압국면이었던 1980년대 벽두이다. 1981년 6월 첫 작품집이 상재될 무렵의 사회적 분위기, 그 무시무시하던 공포의 시대를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여기서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러한 시기에 「오월시」 동인들은 그들의 엄청난 오월 체험을 증언하기 시작하는데, 서두에 인용된 이영진의 시는 1집 『이 땅에 태어나서』에 실려 있는 것으로, 그날 광주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오월시」 동인들이 80년대초에 보여준 운동으로서의 역할은 문학의 언론적 기능의 확보와 그것의 재생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모든 정보유통구조가 차단되고, 정치 사회 등 그밖의 어떠한 언론매체도 으깨지고 뭉개져 있던 시대에 오직 문학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일을 「오월시」 동인들은 기꺼이 선진적으로 떠맡았던 것이다. 그즈음 누가 감히 오월광주의 현장을 증언하고 그것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가 누가 감히 끔찍하게 처형되어 있던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를 소생시킬 힘과 용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가.
그러나 오늘 현재 광주항쟁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고스란히 되살아나 만개해 있고, 도처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운동의 전선이 학생 및 노동자, 그리고 재야인사들에 의해 견고한 진지를 구축해 가고 있으며, 민중주체의 통일민족국가를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운동의 역할은 80년대 초와는 얼마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언론과 정보기능만으로도 온전히 제 몫을 다하던 시대가 이미 지나간지 오래인 이즈음 문학이 아직도 운동을 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이에 관한 명확한 논리적 대답을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오월시」 동인들이 벌써 충분히 그리고 능동적으로 그에 잘 대처해 왔음을 잘 알고 있다. 문학운동이 제반 민중운동의 전위에 서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우리 시대에 문학, 특히 전문 문학인들이 떠맡아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오월시」 동인들이 이미 그 스스로의 작업을 통해 선명히 말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제반 민중운동이 각기 그 운동의 단계와 국면마다 선진적으로 자기의 몫을 옳게 수행해가고 있다면 오늘날 전문 문학인으로서의 문학운동의 역할은 매우 자명하다. 문학이란 본래 정서적 언어형상이며 하나의 예술이다. 문학운동이 예술운동, 즉 질적 향상운동에 주력하는 것도 다름 아닌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운동의 선도그룹과 전선에서 차출된 문제와 이념적 지표(분명히 급진적이고 낯설고 생경하게 보일)들을 구체적인·삶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정서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문학운동의 정작의 과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즉 그것들을 좀더 섬세하게 일상성 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 나아가 삶의 일부로 합법화하는 작업 등에서 문학운동의 당면과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문학운동의 역할을 일단 이렇게 규정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에 가장 가까운 동인집단으로 「오월시」를 택하는데 어느 누구도 머뭇거리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다양한 노력 속에 우리는 우리시대 첨단의 문제들이 알맞게 육화된 형태로, 엷게 침투해 오는 서정의 형태로 두루 잘 드러나고 있음을 익히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집착하고 있는 시와 판화의 결합도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역사발전을 위한 운동의 한 몫으로서 문학의 민주화, 즉 대중화를 전제로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보급과 확산에 주력해야 한다는 화급한 당위성 속에 그들의 시도는 위치지워 진다는 것인데, 누가 뭐래도 그들은 이러한 역사의 요청에 가장 능동적으로 응전해온 동인집단이라는 것이다.
민중 주체의 통일민족국가를 이루기 위한 문학운동의 구체적 과제로 상정할 수 있는 시와 타 쟝르와의 결합으로서 우리는 이외에도 물론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시와 노래의 결합은 익히 시도되고 있는 바 있고, 시와 연극, 시와 조각, 시와 회화 등의 결합도 한 방법일 것이다.
「오월시」 동인들의 출발은 주지하다시피 1980년 5월의 광주 항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오월 광주의 역동적 힘과 역사 발전을 위한 뜨거운 운동 에너지가 이들 문학에 내재해 있는 주요 에꼴이라는 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오월시」 동인들의 작품 내면을 좀더 섬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첫째 경험적 관찰과 서정을 주조로 하는 세계, 둘째 정신적 치열성과 인식의 거듭남을 주조로 하는 세계로 대변됨을 알 수 있다.
첫째의 경우로는 곽재구·최두석·나해철·박주관·김진경을 들 수 있고, 둘째의 경우로는 이영진·고광헌·박몽구·윤재철·나종영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는 임의적 분류이며 그들 상호간의 변별점을 찾기 위한 의도적 구분일 뿐인데, 부분적으로는 예의 시세계가 상호 혼재해 있음도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각각의 특징을 살펴본다면 첫째의 경우가 방법적 성찰이 강한데 비해, 상대적으로 둘째의 경우는 자각과 실천에의 의지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첫째의 경우는 형상 내에 주제를 담으려 한다고 할 수 있고, 둘째의 경우는 주제 내에 형상을 담으려 한다고 까지 할 수 있다.
「오월시」 동인이라고 해서 그 시적 주제가 80년 이후 만개된 문학운동 일반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문학운동 중 그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월시」 동인들도 마찬가지로 민족민중의 이념을 창작의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는 것인데, 다음은 예의 판화시집 「빼앗길 수 없는 노래』에 실려 있는 나해철의 작품 「독립군을 찾으며」의 일부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무엇보다 그의 반외세를 통한 민족자주화에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지금 어디 있는가
큰 걸음걸이
푸른 정신 모두 목타듯 그리운데
결코 죽을 수 없는 그대
갇히었나
가위눌렸나
어디에서 심장을 듣고 있는가
땅은 메말라 쩍쩍 금가 있고
돌보는 이들
아리따운 한국 사람들 모두들
떠나가고 돌아오지 않는데
우리는 아직도
독립을 이루지 못했는데
쇠를 부르는 그대 목소리
꼭 들어야 하는데
이 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적 결구를 유도하고 있는 "아직도/독립을 이루지 못했는데"일 것이다. 이 구절에서 그가 현금의 민족모순에 얼마나 첨예하게 집착해 있는가를 알 수 있고, 나아가 이를 널리 인식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내용은 지나치게 하소연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따져보면 이는 시라는 문학양식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또 바로 이러한 차원을 이 시의 시인이 문학운동의 실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민족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가장 먼저 집중해야 할 것이 반외세의 문제일 것임은 異論(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조국분단과 6·25전쟁, 그로 말미암은 씻겨지지 않는 민족의 상처, 즉 민족 내의 헛된 적대의식이다. 조국의 분단이 단지 국토의 분단에 그치지 않고 사상과 의식, 정신까지도 분단시켰다는 점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환기할 필요가 있다. 민족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또 하나의 요점이 민족내의 동질성 회복, 즉 진정한 남북 화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최두석은 6·25전쟁이 적과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싸움임을, 우리들 내부 상호간의 터무니없는 살상임을 밝히기 위해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깜박이는 불빛 따라 접근한
국방군부대
또 총소리 들리고
쓰러진 조선이나 한국의 사내
그들의 입에 눈에 흙이 들어가
꿈도 집념도 온갖 욕망도
바람에 날려 보내고
지리산 등성이 여기저기 누운
산사람 혹은 국방군
그들이 뒤엉켜 함께 피우는
찔레꽃
지리산 찔레꽃
-「지리산 찔레꽃」 부분
이 시 또한 그 핵심이 결구 부분에 응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리산에서 죽은 남북병사들을 나란히 병치시킴으로써 6·25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암시하고 "그들이 뒤엉켜 함께 피우는/찔레꽃"이라는 구절로 시를 맺음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통일로의 전망을 드러내려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지 독자로 하여금 읽고 알게 할뿐 더 이상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그가 시의 기능을 바로 이러한 차원, 즉 상상력을 통한 인식의 정서적 확산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생각은 항상 의심할 바 없이 옳은 것인가.
최두석에게 있어서의 찔레꽃은 고광헌에게 이르면 山竹(산죽)으로 그 형상이 달라져 나타난다. 그러나 전자에 비해 후자는 훨씬 가치 편향적 이고 역사적 의미부여가 강하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민족사의 질곡 속에서 죽어간 젊은 영혼들의 환생적 모습을 상징하고 있기는 하지만 「山竹」의 경우 좀더 명확히 민중적 관점에서 서 있다는 것이다. 「山竹 ·2」에서 시인 고광헌이 "아, 혼자가 아니구나/기다리다 지친 몸 이끌고 산으로 산으로/그리움 찾아 떠난 사람들의 부릅뜬 목소리/서걱서걱 속삭이고 갈길 찾지 못하고 떠돌며/채찍맞고 서 있는 종살림의 발길 속으로/그대가 새푸른 발길로 따라 오는구나"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도 실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 역시 시인에 의해 인식된 진실의 부드러운 진술에 그쳐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시에 내포되어 있는 시적 진실이 민족사의 참된 중용을 창출하기 위한 선진적 노력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또한 따져보면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운동 이념의 정서적 보편화 및 일상화, 곧 대중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고광헌의 다음의 시「아침,집을 나서며」는 훨씬 뜨겁고 선동적인데, 우리는 그의 시의 한 일면을 이러한 작품에서 읽게 된다.
들린다,
나와 너희들 완강하게 가로막고 서 있는 벽
설움 많은 나라의 서러운 희망들이
길고 긴 회색의 담벼락 안에 갇혀
울고 있는 소리가
가슴 속으로 한 쪽 세상의 슬픔이 무너지며
늦은 가을 따뜻한 햇빛과 바람의 손길에
과수원 풋과일들의 참을 수 없는 웃음소리가
그리고 또 들린다
못난 계절,
죽은 낱말들만 폐수처럼 흐르는 교과서 속에서
금기 속에 갇혀 튕겨 오르는
말들을 부르는 너희들의 목소리
충혈된 뇌세포, 가는 실핏줄 속에서
우리는 일으켜 세운다
그리하여, 싸워야 하리
온몸의 핏줄 온몸의 관절일으켜 세워
한꺼번에 무너지는 벽을 향하여
여린 발목들 불러 모아 튼튼한 발걸음 되어야 하리
물러설 수 없는 발길 옮겨야 하리,
근본적으로 좋은 문학은 모두 프로파간다라고 할 때의 프로파간다적 속성을 이 시는 보여준다. 민중주체의 통일민족국가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힘의 집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하지만 「오월시」 동인 전체의 시세계를 일별할 때 이러한 작품은 별로 많지 않다. 아직까지는 「오월시」 동인 일반의 세계인식과 실천적 자세가 거기에까지는 이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들의 시가 반드시 모두 다 거기에 이르러야 하는지는 물론 잘 알 수 없다.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