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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김종배/민주 입당한 광주사태 투위위원장(월간조선, 198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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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1988. 1)

뉴스의 人物

金宗培 民主 입당한 光州사태 鬪委위원장

지난 대통령선거 유세 동안 민주당유세장에 단골연사로 등장했던 金宗培씨(34)는 광주사태 때 시민ㆍ학생 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가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의 경력, 인맥, 지연들을 따진다면 그가 선택할 정당은 아무래도 민주당보다는 평민당 쪽이 훨씬 자연스럽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런 그가 지난 11월26일 민주당에 입당,당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겸 정무위원으로 임명돼 정가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나름대로 정연한 민주당 입당의 논리를 갖고있다.『모든 국민이 후보단일화를 원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마당에 한쪽으로 세를 모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읍니다』당시 시점에서 金씨는 눈앞의 가장 큰 목표가 군정종식이고,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과 평민당의 힘의 균형을 깨「보다 가능성이 있는」민주당이「상대적 힘의 우위」를 지닐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경상도에서 평민당을 밀어주지 않으니까 호남인인 자신이 솔선해 민주당을 밀어줌으로써 지역감정도 극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동서대립, 즉 지역감정도 해소하지 못하면서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그의 얘기였으며,때문에 자신이 민주당을 택한 것은 특정지역이나 특정인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역사, 민족 앞에 서고자 한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그가 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당시 선거국면에 대한 나름대로의 세(勢) 판단에 따른 선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이런 선택과정에서 느낀 갈등을 「얼마나 답답했으면」 「군정정종식을 시켜야 한다는 다급하고 절박한 심정에서」등의 표현을 빌어 곧잘 얘기했다. 여하튼 그는 입당후 곧바로 유세장에 투입돼 민주당이 평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로느끼고 있는 광주사태 문제를 선거이슈로 집중거론했다.그는 광주사태 당시 조선대생으로 시민ㆍ학생 투쟁위원회 위원장에 뽑혀 도청에서 저항하다 끝까지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사람.

그후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감형돼 풀려난 뒤 지난7월9일 사면복권됐다. 석방된 뒤에는 5.18 구속자 협의회 사무차장, 광주 민중항쟁동지회 부의장 등의 일을 맡으면서 광주사태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작가 황석영씨가 쓴 광주사태 기록「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자료를 모으는 데도 상당히 협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직접적인 체헙 탓인지는 몰라도 광주사태의 진상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며 사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유세장에서마다 주장했다. 그는 광주사태를『12ㆍ12사태로 군권을 장악한 몇명의 정치군인들이 잔인하게 시민들을 짓밟아 버린 사건』이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군인들이 들어와 맨손으로 저항할 수 없어서 예비군초소를 습격 ,무기를 빼내 무장투쟁한 것입니다』

그는『광주시민들이 치안부재 상태에서도 자구책으로 질서를 지켰는데 저들은 불순분자의 책동, 폭동으로 몰아쳤다』면서『군정을 종식시켜야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세장에서의 그의 이런 연설은 12ㆍ12사태를 주요 선거이슈로 내세운 민주당에 큰 보탬이 된 것은 사실이다. 「12ㆍ12사태가 없었으면 광주사태도 없었다」는 민주당의 선거이슈 부각과 합께 광주사태 문제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는 인상을 동시에 심어주는역할을 한 것이다. 金泳三총재도 그의 입당과 관련,『민주당에 재야 범국민 야권의 힘이 모이고 있는 증거』라며『백만원군을 얻은 기분』이라고 흡족해 했었다.

그러나 그가 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아무래도 金相賢 총재직무대리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있다. 金총재 직무대리를『존경하는 선배』로 부르며 따랐었기 때문에 金총재 직무대리가 선택한 민주당을 자신도『광주에서 돌팔매를 맞더라도』 들어오게됐다는 것이다. 그의 시국관이나 통일논리도 따지고 보면 金총재직무대리의 논리와 거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를 하지 않던 그가 선거시기에 민주당에 들어가 나이에 걸맞지 않는(?)중책을 맡으면서 현실정치를 얼마나 소화해낼 수 있을는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