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오월시, 원죄의 몸부림들 / 「오월시」동인의 어제와 오늘. 이은봉(진실의 시학, 태학사, 1998. 8)
본문
오월시, 원죄의 몸부림들
-『오월시』 동인의 어제와 오늘
이은봉
잘 알다시피 『오월시』 동인의 탄생은 1980년 5월에서 비롯된다. 이름하여 '광주민주화운동', 만약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원죄'이다. 그날의 피가 그들을 모이게 했고, 견딜 수 없게 했고, 입을 열게 한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 크게 말하지도 웃지도 못하던 1980년 5월 직후 참으로 견딜 수 없었던 죄책감 속에서 그들은 이와 같이 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빠지게 된다. 『오월시』는 이러한 반성 속에서 태동되는데, 정작 5월에 대한 문학의 집단적 대응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쨌든 『오월시』는 동인 중 박주관의 발의에 의해 구체화된다. 그들이 첫 모임을 가진 것은 1980년 가을, 첫 결과가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은 이듬해 6월인데, 제목은 {이 땅에 태어나서}로 되어 있다. 김진경·박상태(박몽구)·나종영·이영진·박주관 동인의 시 총 52편이 실려 있는, 80면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책이다.
그러나 이 제1집을 일별하여 보면 장정이나 동인의 명칭 등을 제외하고는 딱히 5월 광주가 연상되지 않는다. 첫 동인지가 나올 무렵의 사회상황이 그들의 세계관을 여러 모로 제어한 때문이겠지만, 이는 지적되어 마땅하다. 물론 이에는 그들의 의욕이나 열정을 가로막는 나날의 삶과 생활 또는 엄연히 같은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제1집에 드러나 있는 5월 광주는 지극히 상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다음은 김진경의 「보리밭」의 일부이다.
네 주검은 낯선 향기가 숨어서 고개를 내민
푸른 보리들은 진한 코피를 흘리고
너의 다문 검은 입술
뚫어진 너의 눈자위
하늘은 깨어질 듯 쨍쨍 소리를 내고
빛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너의 무기는 네 손 위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징징징징 대낮의 고요를
너의 주검만이 거기 누워 듣고 있었다.
이 시에서 "보리들"은 그날의 희생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그러한 해석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지도 모른다. 제1집에서는 5월 광주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정도의 차원에서 그쳐 있다는 것인데, 따져보면 사실 당시로서는 이만큼의 표현도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즈음 누가 감히 5월을, 광주의 비극을 제대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영진의 「그로테스크한 시」에서 좀더 진전된 광주의 현실을 읽을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역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선험적 인식이 전제되었을 때 전체의 형상이 명쾌해지지만 말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미적 기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문학에 있어서 그것은 외따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정보·언론·교육·정치 등의 기능과 더불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나날의 사람살이가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 곧 혼란이 계속될 때 문학의 이러한 기능은 그 중의 하나가 특화되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올곧은 발언이 불법으로 규정된 시대에, 그리하여 문학만이 기존의 언어매체를 확보하고 있는 시대에, 그러니까 지난 80년대 초에 우리 문학이 정작 올곧게 할 수 있었던 일은 자명해진다. 우리 한국문학이 전통적으로 정치 혹은 정신 우위적 특성을 보지하고 있는 까닭도 물론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삼스러운 얘기기만 {오월시}는 이처럼 문학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중 어느 한 부분이 특화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태어난다.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그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문학의 언론적 기능의 회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성실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당대의 사회적 여과장치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때문에 앞의 시에서와 같은 한계, 즉 관념적 상징이 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월시}에게 요구되었던 문학의 언론적 기능은 일차적으로 5월 광주의 의미확산에 있다. 그것이 광주라는 한 지방의 내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사건이며, 민족사의 커다란 봉우리를 이루는 일대 민중항쟁이라는 사실을 광주에서 서울로, 그리고 전국으로 알리는 것이 당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역할을 처음부터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인지의 호수가 더해가면서 이는 점차 구체화되고, 그때마다 그들은 매번 그들의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모색하게 된다.
{오월시} 동인지 제2집이 발간된 것은 1982년 3월이다. 제2집부터 윤재철·최두석·나해철이 참여하여 함께 하게 되는데,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이 그 표제이다. 제2집 역시 제1집에서의 인식이 토대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제2집의 시들은 제1집의 그것들보다 다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5월 광주로부터 이제는 조금쯤 비켜 서 있을 수 있게 되어 좀더 명징한 인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대적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그들이 제2집에서 그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에 대한 좀더 근원적 탐구를 보여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체로 그것은 역사 속에 묻혀져 있던 여러 인위적 죽임과 관련되거나 겹쳐져 드러난다. 그리하여 이 인위적 '죽임'과 그것에의 항거가 {오월시} 동인지 제2집을 관류하는 주요한 정서를 이룬다. 박주관의 시 「망원동에서 망우리까지」의 일부를 보자.
이제는 보리라 살아 있는 것도, 부끄럽고 죄스러운데 사람들은 너무나 멀리 바라다보다가 가까운 거리에 죽음이 있는 걸 모르고 있다.
시장바닥에 앉아 있는 닭집 옆의 인삼장수 할머니, 몸보신에 좋다며 닭 한 마리에 인삼 한 근 고아 먹으면 정말로 그걸 먹으면 다시 한번 힘깨나 쓸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5월 광주가 시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게 한 것으로, 아직은 얼마간 감상적 관념이 엉켜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제2집 이후에 드러나는 그들의 또 다른 깨달음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각기 깊은 통찰 속에서 5월 광주가 민족 분단의 다양한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형태로 구체화된 비극임을 지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된 분단, 그로 인한 안보 논리 속에서 바른 삶에의 우리의 욕구가 지금까지 얼마나 처참히 으깨져 왔는가.
제2집에 이르러 이영진은 분단문제 전반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반성을 제기한다. 물론 그는 이미 제1집에 실려 있는 「6.25와 참외씨」에서도 익히 문제의 핵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다음은 「어느 고지에서」의 일부이다.
이름 없는 무덤
그대 한 칸의 낡은 집
키 작은 잡목보다 낮은 그대의 지붕 위에
철모를 쓰고 앉아
2km 전방의 눈금
가늠쇠 속으로 드러나는 휴전선을 바라본다.
지리시간에 한 나라라고 배운
아득하게 먼 나라의 산천을 바라다본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땅
그래서 이미 나의 지역이 아닌 곳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식 자동소총 M-16이여
상속된 유산처럼 총구 앞에 머무는 땅이여
우리는 한번도 적을 만든 적도
스스로 적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하늘 아래 산들은
산들끼리 억센 어깨 든든히 걸쳐가며
첩첩이 모여 사는데
어디선지 빈 허공 속에서
나를 불러대는 것은 무엇이냐
애터지게 나를 불러대는 것은
총구 앞에서
마른 풀잎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5월 광주가 분단 비극의 한 산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몇몇 외세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면, 그것의 원흉에 대한 저항 또는 {오월시}의 중요한 테마가 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제3집이 나오면서부터 비로소 {오월시} 전체의 주요 정서로 부각된다. 그러면서 점차 그들은 민족·민중문학운동의 첨단에 서게 되는데, 그들이 맨 처음 자기들의 작업에 대한 논리적 방향을 제시한 것도 바로 이 때이다. 그리고 그것은 김진경의 「제3문학론」에 의해 구체화된다.
제3집은 「땅들아 하늘아 맡은 사람아」라는 제목으로 1983년 1월에 출간이 된다. 제3집에 이르러 {오월시}는 어느 정도의 시적 성취를 보여 주는데, 다소 폄하해서 말할 수 있다면 그제서야 그들은 정작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나종영의 「땅끝에서」, 곽재구의 「그리운 남쪽」, 이영진의 「휴전선」, 윤재철의 「빈대에게」, 나해철의 「노점상을 위한 노래」, 최두석의 「고라니」, 박몽구의 「담 너머 하늘」, 김진경의 「무지개」와 같은 수작이 이 제3집에 실려 있는 것이다. 제3집은 단지 작품의 성취와 논리적 방향탐구 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몇몇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소 산발적이고 개인적이던 그들의 세계인식이 이제는 적어도 그 나름의 꼴을 갖게 되고, 특히 이전까지 산재되어 보이던 모더니즘적 잔재가 이에 이르면 거의 청산되게 된다. 이는 그들이 좀더 확실히 민중적 정서를 획득했다는 것이고, 또한 나아가 좀더 분명히 시를 사적 차원에서 공적 차원으로 위치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제3집 이후 그들은 곧 이어 시와 판화와 결합을 시도하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못지 않게 그것을 널리 보급하는 것도 문학의 중요한 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오월시』가 시판화전을 시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문학과 타장르와의 연계를 문제 삼는다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시판화전을 연 것은 1983년 8월 광주 아카데미 미술관에서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 바로 같은 해 9월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으리』를 내놓는다. 그들의 주변에 조진호, 김경주같은 탁월한 판화가가 있었기 때문인데, 누가 뭐라고 해도 이는 그들에게 매우 큰 행운이지 않을 수 없다.
제3집 이후 그들은 5월 광주에 대한 좀더 정확한 인식 못지 않게 새로운 양식과의 결합 및 확산에 주력한다. 그 실제의 징후는 산문시적 경향으로 드러나는데, 이미 제3집에서도 상당 부분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제4집에 이르면 이는 좀더 뚜렷한 모습을 보여준다. 산문시적 경향은 특히 최두석, 박몽구, 박주관 등에 의해 비롯되는데, 제4집에서 윤재철과 박몽구의 장시, 즉 「난민가」와 「십자가의 꿈」으로 그 결실이 나타난다.
1984년 3월에 간행된 이 제4집은 그 표제가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로 되어 있고, 상기의 장시 이외에도 일종의 몇몇 단편서사시와 더불어 최두석의 논문 「시와 리얼리즘]이 실려 있다. 이 제4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앞에서 말한 두 편의 장시일 것이다. 시적 성취와 관계없이 이는 매우 현격한 『오월시』의 발전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여기서 윤재철은 단군 이래의 민중 반란사를 통시적으로 노래하고 있고, 박몽구는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의 하루하루를 공시적으로, 사실적으로 현상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동인들이 쓴 단편서사시들도 전보다 훨씬 삶과 밀착되어 드러나는데, 이에는 상기한 최두석의 창작방법론 「시와 리얼리즘」도 크게 기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르면 민족 분단의 직접 책임자로서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오월시』 전구성원의 주요 시적 모티프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침투에 대한 곽재구의 풍자시는 가히 압권이라 할만하다.
제4집 이후 『오월시』를 사로잡은 화두는 대개 분단극복, 장시에로의 확산, 지역문화운동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주로 제5집을 내는 과정에 분명해지는데, 점차 총체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돌아보는 가운데 이들은 예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제기하게 된다. 특히 1985년 4월에 간행된 제5집 {5월}에 실려 있는 김진경의 「지역문화론」과 『한국문학』 5월호의 좌담 「5월시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거기서 그들이 중점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문화운동의 한 방법으로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이다. 실제로 그들은 제5집에서 광주의 후배 문인들과 연대하여 공동창작시 「들불야학」을 선보인 바 있기도 하다.
제5집에는 또한 새로운 동인으로 고광헌이 참여하여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고, 최두석의 장시 「임진강」과 박몽구의 연작장시 「십자가의 꿈」이 실려 있어 동인지의 성과를 빛내고 있다. 「임진강」은 통일운동가이며 경제학자인 김낙중씨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히고 감동적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십자가의 꿈」도 또한 훨씬 세련된 분위기와 사실적 증언을 드러내고 있다. 고광헌의 참여는 『오월시』 전체가 그로 인해 좀더 확실한 힘과 해방의 정서를 갖게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특히 기억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5월 광주는 아직도 원죄로 남아 있다. 따라서 그들이 5월 광주를 앞으로도 내내 원죄의 관점으로만 인식할 때, 그리하여 민중운동의 미래와 능동적으로 얽혀들지 못할 때, 민중은 불원간 그들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광주는 이미 우리 민족의 전체 민중사적 맥락속에 명백히 그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이는 그들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적 언론매체가 이룩한 싸움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5월 광주가 단지 {오월시}의 시적 자양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 이제 그들은 좀더 열린 자세로 지금 이곳의 문학운동 전반에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사심 없는 헌신 속에서만이 그들은 그들의 바램대로 이 땅의 다양한 지역문학운동을 총체적으로 수렴할 수 있을 것이고, 민주화의 앞날을 열 수 있을 것이다. (1985)
-『오월시』 동인의 어제와 오늘
이은봉
잘 알다시피 『오월시』 동인의 탄생은 1980년 5월에서 비롯된다. 이름하여 '광주민주화운동', 만약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원죄'이다. 그날의 피가 그들을 모이게 했고, 견딜 수 없게 했고, 입을 열게 한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시란 무엇인가. 크게 말하지도 웃지도 못하던 1980년 5월 직후 참으로 견딜 수 없었던 죄책감 속에서 그들은 이와 같이 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빠지게 된다. 『오월시』는 이러한 반성 속에서 태동되는데, 정작 5월에 대한 문학의 집단적 대응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어쨌든 『오월시』는 동인 중 박주관의 발의에 의해 구체화된다. 그들이 첫 모임을 가진 것은 1980년 가을, 첫 결과가 책으로 묶여져 나온 것은 이듬해 6월인데, 제목은 {이 땅에 태어나서}로 되어 있다. 김진경·박상태(박몽구)·나종영·이영진·박주관 동인의 시 총 52편이 실려 있는, 80면 정도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책이다.
그러나 이 제1집을 일별하여 보면 장정이나 동인의 명칭 등을 제외하고는 딱히 5월 광주가 연상되지 않는다. 첫 동인지가 나올 무렵의 사회상황이 그들의 세계관을 여러 모로 제어한 때문이겠지만, 이는 지적되어 마땅하다. 물론 이에는 그들의 의욕이나 열정을 가로막는 나날의 삶과 생활 또는 엄연히 같은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제1집에 드러나 있는 5월 광주는 지극히 상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다음은 김진경의 「보리밭」의 일부이다.
네 주검은 낯선 향기가 숨어서 고개를 내민
푸른 보리들은 진한 코피를 흘리고
너의 다문 검은 입술
뚫어진 너의 눈자위
하늘은 깨어질 듯 쨍쨍 소리를 내고
빛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너의 무기는 네 손 위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징징징징 대낮의 고요를
너의 주검만이 거기 누워 듣고 있었다.
이 시에서 "보리들"은 그날의 희생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그러한 해석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지도 모른다. 제1집에서는 5월 광주에 대한 인식이 이러한 정도의 차원에서 그쳐 있다는 것인데, 따져보면 사실 당시로서는 이만큼의 표현도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즈음 누가 감히 5월을, 광주의 비극을 제대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영진의 「그로테스크한 시」에서 좀더 진전된 광주의 현실을 읽을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역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선험적 인식이 전제되었을 때 전체의 형상이 명쾌해지지만 말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미적 기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문학에 있어서 그것은 외따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정보·언론·교육·정치 등의 기능과 더불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나날의 사람살이가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 곧 혼란이 계속될 때 문학의 이러한 기능은 그 중의 하나가 특화되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올곧은 발언이 불법으로 규정된 시대에, 그리하여 문학만이 기존의 언어매체를 확보하고 있는 시대에, 그러니까 지난 80년대 초에 우리 문학이 정작 올곧게 할 수 있었던 일은 자명해진다. 우리 한국문학이 전통적으로 정치 혹은 정신 우위적 특성을 보지하고 있는 까닭도 물론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삼스러운 얘기기만 {오월시}는 이처럼 문학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 중 어느 한 부분이 특화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태어난다.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그들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문학의 언론적 기능의 회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성실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당대의 사회적 여과장치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 때문에 앞의 시에서와 같은 한계, 즉 관념적 상징이 노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오월시}에게 요구되었던 문학의 언론적 기능은 일차적으로 5월 광주의 의미확산에 있다. 그것이 광주라는 한 지방의 내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사건이며, 민족사의 커다란 봉우리를 이루는 일대 민중항쟁이라는 사실을 광주에서 서울로, 그리고 전국으로 알리는 것이 당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역할을 처음부터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인지의 호수가 더해가면서 이는 점차 구체화되고, 그때마다 그들은 매번 그들의 새로운 역할과 임무를 모색하게 된다.
{오월시} 동인지 제2집이 발간된 것은 1982년 3월이다. 제2집부터 윤재철·최두석·나해철이 참여하여 함께 하게 되는데,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이 그 표제이다. 제2집 역시 제1집에서의 인식이 토대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제2집의 시들은 제1집의 그것들보다 다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5월 광주로부터 이제는 조금쯤 비켜 서 있을 수 있게 되어 좀더 명징한 인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대적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어쨌든 그들이 제2집에서 그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에 대한 좀더 근원적 탐구를 보여 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대체로 그것은 역사 속에 묻혀져 있던 여러 인위적 죽임과 관련되거나 겹쳐져 드러난다. 그리하여 이 인위적 '죽임'과 그것에의 항거가 {오월시} 동인지 제2집을 관류하는 주요한 정서를 이룬다. 박주관의 시 「망원동에서 망우리까지」의 일부를 보자.
이제는 보리라 살아 있는 것도, 부끄럽고 죄스러운데 사람들은 너무나 멀리 바라다보다가 가까운 거리에 죽음이 있는 걸 모르고 있다.
시장바닥에 앉아 있는 닭집 옆의 인삼장수 할머니, 몸보신에 좋다며 닭 한 마리에 인삼 한 근 고아 먹으면 정말로 그걸 먹으면 다시 한번 힘깨나 쓸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5월 광주가 시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게 한 것으로, 아직은 얼마간 감상적 관념이 엉켜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제2집 이후에 드러나는 그들의 또 다른 깨달음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각기 깊은 통찰 속에서 5월 광주가 민족 분단의 다양한 비극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형태로 구체화된 비극임을 지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세에 의해 강제된 분단, 그로 인한 안보 논리 속에서 바른 삶에의 우리의 욕구가 지금까지 얼마나 처참히 으깨져 왔는가.
제2집에 이르러 이영진은 분단문제 전반에 대해 매우 근본적인 반성을 제기한다. 물론 그는 이미 제1집에 실려 있는 「6.25와 참외씨」에서도 익히 문제의 핵심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다음은 「어느 고지에서」의 일부이다.
이름 없는 무덤
그대 한 칸의 낡은 집
키 작은 잡목보다 낮은 그대의 지붕 위에
철모를 쓰고 앉아
2km 전방의 눈금
가늠쇠 속으로 드러나는 휴전선을 바라본다.
지리시간에 한 나라라고 배운
아득하게 먼 나라의 산천을 바라다본다.
우리가 알기도 전에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땅
그래서 이미 나의 지역이 아닌 곳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러나 아메리카식 자동소총 M-16이여
상속된 유산처럼 총구 앞에 머무는 땅이여
우리는 한번도 적을 만든 적도
스스로 적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하늘 아래 산들은
산들끼리 억센 어깨 든든히 걸쳐가며
첩첩이 모여 사는데
어디선지 빈 허공 속에서
나를 불러대는 것은 무엇이냐
애터지게 나를 불러대는 것은
총구 앞에서
마른 풀잎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5월 광주가 분단 비극의 한 산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몇몇 외세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면, 그것의 원흉에 대한 저항 또는 {오월시}의 중요한 테마가 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제3집이 나오면서부터 비로소 {오월시} 전체의 주요 정서로 부각된다. 그러면서 점차 그들은 민족·민중문학운동의 첨단에 서게 되는데, 그들이 맨 처음 자기들의 작업에 대한 논리적 방향을 제시한 것도 바로 이 때이다. 그리고 그것은 김진경의 「제3문학론」에 의해 구체화된다.
제3집은 「땅들아 하늘아 맡은 사람아」라는 제목으로 1983년 1월에 출간이 된다. 제3집에 이르러 {오월시}는 어느 정도의 시적 성취를 보여 주는데, 다소 폄하해서 말할 수 있다면 그제서야 그들은 정작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나종영의 「땅끝에서」, 곽재구의 「그리운 남쪽」, 이영진의 「휴전선」, 윤재철의 「빈대에게」, 나해철의 「노점상을 위한 노래」, 최두석의 「고라니」, 박몽구의 「담 너머 하늘」, 김진경의 「무지개」와 같은 수작이 이 제3집에 실려 있는 것이다. 제3집은 단지 작품의 성취와 논리적 방향탐구 면에서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몇몇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소 산발적이고 개인적이던 그들의 세계인식이 이제는 적어도 그 나름의 꼴을 갖게 되고, 특히 이전까지 산재되어 보이던 모더니즘적 잔재가 이에 이르면 거의 청산되게 된다. 이는 그들이 좀더 확실히 민중적 정서를 획득했다는 것이고, 또한 나아가 좀더 분명히 시를 사적 차원에서 공적 차원으로 위치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제3집 이후 그들은 곧 이어 시와 판화와 결합을 시도하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 못지 않게 그것을 널리 보급하는 것도 문학의 중요한 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오월시』가 시판화전을 시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문학과 타장르와의 연계를 문제 삼는다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시판화전을 연 것은 1983년 8월 광주 아카데미 미술관에서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 바로 같은 해 9월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 있으리』를 내놓는다. 그들의 주변에 조진호, 김경주같은 탁월한 판화가가 있었기 때문인데, 누가 뭐라고 해도 이는 그들에게 매우 큰 행운이지 않을 수 없다.
제3집 이후 그들은 5월 광주에 대한 좀더 정확한 인식 못지 않게 새로운 양식과의 결합 및 확산에 주력한다. 그 실제의 징후는 산문시적 경향으로 드러나는데, 이미 제3집에서도 상당 부분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제4집에 이르면 이는 좀더 뚜렷한 모습을 보여준다. 산문시적 경향은 특히 최두석, 박몽구, 박주관 등에 의해 비롯되는데, 제4집에서 윤재철과 박몽구의 장시, 즉 「난민가」와 「십자가의 꿈」으로 그 결실이 나타난다.
1984년 3월에 간행된 이 제4집은 그 표제가 『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로 되어 있고, 상기의 장시 이외에도 일종의 몇몇 단편서사시와 더불어 최두석의 논문 「시와 리얼리즘]이 실려 있다. 이 제4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앞에서 말한 두 편의 장시일 것이다. 시적 성취와 관계없이 이는 매우 현격한 『오월시』의 발전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여기서 윤재철은 단군 이래의 민중 반란사를 통시적으로 노래하고 있고, 박몽구는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의 하루하루를 공시적으로, 사실적으로 현상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동인들이 쓴 단편서사시들도 전보다 훨씬 삶과 밀착되어 드러나는데, 이에는 상기한 최두석의 창작방법론 「시와 리얼리즘」도 크게 기여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르면 민족 분단의 직접 책임자로서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오월시』 전구성원의 주요 시적 모티프로 등장하게 된다. 특히 '코카콜라'로 상징되는 미국식 자본주의 침투에 대한 곽재구의 풍자시는 가히 압권이라 할만하다.
제4집 이후 『오월시』를 사로잡은 화두는 대개 분단극복, 장시에로의 확산, 지역문화운동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주로 제5집을 내는 과정에 분명해지는데, 점차 총체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돌아보는 가운데 이들은 예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제기하게 된다. 특히 1985년 4월에 간행된 제5집 {5월}에 실려 있는 김진경의 「지역문화론」과 『한국문학』 5월호의 좌담 「5월시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거기서 그들이 중점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문화운동의 한 방법으로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이다. 실제로 그들은 제5집에서 광주의 후배 문인들과 연대하여 공동창작시 「들불야학」을 선보인 바 있기도 하다.
제5집에는 또한 새로운 동인으로 고광헌이 참여하여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고, 최두석의 장시 「임진강」과 박몽구의 연작장시 「십자가의 꿈」이 실려 있어 동인지의 성과를 빛내고 있다. 「임진강」은 통일운동가이며 경제학자인 김낙중씨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히고 감동적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십자가의 꿈」도 또한 훨씬 세련된 분위기와 사실적 증언을 드러내고 있다. 고광헌의 참여는 『오월시』 전체가 그로 인해 좀더 확실한 힘과 해방의 정서를 갖게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특히 기억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5월 광주는 아직도 원죄로 남아 있다. 따라서 그들이 5월 광주를 앞으로도 내내 원죄의 관점으로만 인식할 때, 그리하여 민중운동의 미래와 능동적으로 얽혀들지 못할 때, 민중은 불원간 그들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광주는 이미 우리 민족의 전체 민중사적 맥락속에 명백히 그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물론 이는 그들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적 언론매체가 이룩한 싸움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5월 광주가 단지 {오월시}의 시적 자양분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 이제 그들은 좀더 열린 자세로 지금 이곳의 문학운동 전반에 능동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사심 없는 헌신 속에서만이 그들은 그들의 바램대로 이 땅의 다양한 지역문학운동을 총체적으로 수렴할 수 있을 것이고, 민주화의 앞날을 열 수 있을 것이다.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