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여 무등이여 영원한 우리들의 깃발이여 /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 강형철(발효의 시학, 살림터, 199…
본문
광주여 무등이여 영원한 우리들의 깃발이여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
강형철
1 . 머리말
80년 5월은 당대 최고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직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미 분명한 자기 모습을 지니면서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역사 위에 돌출하였던 갑오농민혁명, 3·1운동, 6·10운동, 4·19 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민중의 역사적 주체로서의 자기 주장이라 할 수 있다.
80년 5월은 역사적 격변기에 민중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자기를 관철시키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의거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현 단계 우리 민족사의 가장 큰 질곡인 분단의 문제를 지정학적인 '금긋기'로만 이해하지 않게 하였고 우리의 밥상과 목숨 앞에 드리워진 근본적인 걸림돌임을 깨닫게 했다. 또한 이를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나 있는 군부독재의 척결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그 뒤에 얽혀 있는 외세의 축출까지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민족자주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전망과 민중이 개펄의 시학 혹은 뜨거운 삶 껴안기 핵심이 되는 민주주의의 수립이라는 명확한 미래로 이어지는 현 단계의 근본적인 세계관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변혁기에 문학 특히, 시는 가장 빠르게 가장 깊숙한 상처와 자기 전개를 보인다는 것은 자명하다. 80년 이후 우리 문학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인 것은 시이며 '시의 시대' 라는 수사적 표현까지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장르의 속성상 시적 수용양상은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른 한계가 있다는 것도 확실한 일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점검은 우리 문학사의 자기 정립이라는 과제에 값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글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위해 씌어지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80년 5월에 대한 사실 자체의 복원과 음미에 초점을 두고 시적 수용양상과 쟁점을 살피기 위해 씌어진다. 이를 위해 광주 5월 항쟁에 대한 증언, 의미부여 등을 먼저 살피고 문학사적 쟁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시에 있어서의 수용양상
먼저 광주항쟁의 여러 변모를 볼 수 있는 시를 살피기로 하겠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중에서]
그해 오월 나 광주에 있지 않았다
나 논에 있었다 낫 들고 밭에 있었다
그해 5월 나 광주 정말 모른다.
그해 5월 몸서리나는 총소리 탱크소리
두 귀 막고 그냥 벙어리처럼 모만 심었다
황토물 핏물 송장 썩은 물 뒤범벅
텃논에서 못줄도 없이 아무렇게 막모냈다
(중략)
그해 5월은 아직 덜 익은 보리밭
조선낫으로 죄없는 보리이삭 후려치며
허공 후리치며 밭둑에 멀거니 서 있는
수양버드나무 조선낫으로 찍었다
그해 5월 나 석우리 사는 한낱 농민이었다
-홍일선, [5월논 5월밭]
앞의 시는 광주항쟁 기간에 거기에 있었던 시인의 육성이다. '사람'의 순발력으로 굽이치는 누구에게나 알려진 시이다. 뒤의 시는 그때 거기에 있지 않은 농사꾼의 정직한 자기고백이다. 그러나 그것은 홍일선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자기 초상(肖像)이다. 자기 삶의 외줄타기에 지쳐 광주에서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몰랐던 우리 모두의 얼굴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연을 필연으로 감싸안으며 전진하기 때문이며 역사적 요청은 석우리에 사는 한 농민을 민중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우지 마라
꿈은 깨져야
삶으로 굽이치고
감들아 광야를 적시나니
이 어두움에 묶여
잠 못 드는 벗이여
날마다 찢어져도
날마다 뿌리쳐라
민중과 하나되는 그날까지
(중략)
이제 삼천리 천지는
외세의 반역과
민중과의 맞싸움으로만
가파르게 죄어졌나니
만약 여기서
한 발자욱이라도 물러서면
우리 모두 죽는다
-백기완, [민중과 하나되는 그날까지] 중에서
외세의 반역과 민중과의 맞싸움으로 역사가 대치되어 있을 때 이제 민중의 입장에서는 싸워 이기는 도리 외엔 없다. 그러나 현재의 민중 역량이 이를 전취할 수 있는가? 현실은 엄혹하다. 김남주는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다.
몸매가 작아 내 누이 같고
허리가 길어 내 여인 같은 나라여
누구의 영토도 넘본 적이 없는
비둘기와 황소의 나라 내 조국이여
누가 너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느냐
누가 네 마을과 네 도시를 아비규환의 아수라로
만들어놓았느냐
누가 허리 꺾인 네 상처에 꽃잎 대신
철가시바늘을 꽂아놓았느냐
정전 위 판문점에서 너를 대표한 자 누구이며
도마 위에 너를 올려놓고 초치고 장치고 포치고 차치고
내 조국의 운명을 요리하는 자 누구냐
입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뒷전에서는 원격조정의 끄나불로 꼭둑각시를 앞장세워
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을
계획적으로 학살하는 아메리카여 !
보아다오 너희들과 너희들 똘만이들이 저질러놓은
범죄를 범죄와 음모와 착취로 뒤덮인 이 땅들
보아다오 너희들이 팔아먹은 탄환으로 벌집투성이가 된 내 조국의 심장을
너희들 표현으로는 전략적으로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보아다오, 대검에 찔린 아이 밴 어머니와 배를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들의 청량한 눈동자를
-김남주, [학살·1 전문]
이 시는 분단 이후 40년의 역사를 시로써 형상화한 고은의 시와 함께 분단사의 적절한 축약이며 80년 5월의 참혹함에 대한 위대한 증언이다. 민족을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 그 뜨거운 시인의 호흡이 행간마다 살아 분단의 책임에 연루된 모든 이에게 보내주는 정의의 화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정진한 시편들이 있다. 당시 항쟁기간 줄곧 참여한 박몽구의 연작시 [십자가의 꿈] 75편이다.
요행히 살아남아 그날 진압군의 모습을, 탈환한 금남로의 평화로움을 증언하고 있으며, 무기명으로 역사의 핵심에 말없이 노동을 보태던 민중들이 어떻게 항쟁에 합류하는지를 냉혹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을 삶의 가장 깊은 체험으로 간직한 일단의 젊은 시인들에게 광주 5월은 사건이 아니라 그대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저기 오네 그 사람 오월
피 묻어도 가슴째 일어나는 사람
눈부시게 번뜩이는 얼굴로 다가오네
망설이는 벗들아 서둘러 가자
지난 겨울 영산강을 녹였던 눈물일랑
가슴마다 채우고 떠나자
당신의 당신의 쓰라린 패배 그 잔물곁 아스라한
징역의 아픔
징역의 꽃 한 송이 피우고 살았던
생명 가득찬 도시 광주여
-이승철, [오월노래] 중에서
지난 역사를 지난 일의 기록이라는 사실로 남겨두지 않고 지금 호흡하는 숨결로 느낄 때 그것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며 박제화된 사실이 아니라 움직이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속에도
당신은 있습니다
어린것들의 눈망울 속에도 당신은 있습니다
숨죽여 기다리는 우리들의 가슴에도 당신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커오는 해일입니다
다시 한 번 죽음보다 더 멀리 버려진 이 노예의 땅에서
당신의 아들들을 탈환하려는 해일입니다.
-김진경 [광주]중에서
역사적 사실과 현재적 자기 삶의 확연한 일치 , 풀잎과 해일이 만나 이룩해 내는 민중적 전망의 획득, 그것은 민족자주에 입각한 통일과 참된 민주주의의 수립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이유로 이제 5월을5월로써 노래하지 않고 현재의 민중 삶에 뿌리내리는 시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점이 80년대 시의 가장 커다란 역할이었다. 80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운동개념으로서의 문학, 민족문학론의 심화, 민중문학론의 광범위한 확산이 바로 그러한 천착으로부터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그 동안 생산된 시작품에 대한 필자의 몇 가지 비판적 단상을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5월 하면 무조건 구호나 흥분이 앞서는 5월 소재주의나 5월 감상이다. 광주 5월이 아직도 총체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시점에 이러한 견해를 피력함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의견이라 하겠으나 광주 5월이 현재에도 계속되는 과제이고 그야말로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실천을 담보함으로써 완성시킬 수 있는 세계관이라면 이제는 냉혹한 자세가 요청된다 하겠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지만 두번째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죄책감이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모습을 비판점으로 제시할 수 있겠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억울하게 죽은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원혼들을 참으로 편하게 하는 일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일이다. 추모나 패배감은 이제 어제의 일이다. 민중의 주재세력으로 노동자의 역량이 성숙하여 있고 또한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존재하는데 더 이상 패배감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 그렇다고 일군의 시인들이 보인 바 있는 터무니없는 화해나 사랑으로의 도피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아무도 역사는 승리한다는 등식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힘 없는 평화, 싸움 없는 화해란
어디에도 없는 것
터무니없는 희망의 등식은
노래하지 말아야 한다.
-이영진, 「나팔꽃」 중에서
진실된 싸움, 살을 에이는 싸움이 없이 화해란 고양이와 쥐의 거짓 화해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나 비판적 점검을 뛰어넘는 시작품은 아직도 줄기차게 산출되고 있다. 문병란의 시편들은 물론 비교적 젊은 시인들의 세계관은 정직하게 변모하면서 발전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3. 몇 가지 쟁점
앞에서 우리 시에 나타난 5월의 모습을 살폈다. 이제 시문학과 관련하여 몇 가지 쟁점을 점검하기로 하자.
80년 5월이 있은 후 초기에는 광주에서의 사실이 광주 밖에서는 유언비어로 바뀌어 경범죄 수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새삼스럽게 이를 언급하는 것은 당시의 열악한 언론상황을 떠올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절에 처음에는 은유나 상징의 기법을 빌어 지극히 단순 소박한 사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었기에 81년에 간행된 동인지 {5월시} {시와 경제} 등은 이후 소집단운동 혹은 지역문화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의 저층에는 참된 변혁이란 광범한 민중의 협력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흐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중심의 문화 비대화 현상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이전의 동인지운동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친분관계 위주의 친목모임에 불과하던 것에서 일정한 이념과 뜻을 같이 한 조직운동의 맹아적 형태로 결집되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어 간행된 {삶의 문학} {마산문화} {토박이} {남민시} {해방시} 등등의 소집단운동이 이를 담보해 내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토대가 되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운동으로서의 문학의 실질적 내용을 이룬 것이다.
시문학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는 문제로 장르 확산의 문제, 공동창작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시문학의 장르상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서사성의 부족을 확보하기 위해 연작시, 서사시 등등의 논의는 물론 시와 다른 예술 (특히 판화와 시의 결합은 단적인 예이다)과의 결합도 거론, 시도되었고 공동창작의 문제도 활발히 거론되었다. 가령 {삶의 문학} 6집에서 공동창작시 [옹매듭두 풀구유], {5월시} 5집에 실린 전남대 비나리패의 공동창작시 [들불야학]이 그 예이다. 「들불야학」은 광주의 광천동에서 뜻있는 청년들이 모여 야학운동을 해오다가 80년 5월을 만나면서 그곳에 속한 강학(講學)들이 어떻게 합류했는가를 형상화한 서사구조의 장시이다.
밤을 세워 등사기를 밀어
새벽별 총총한 오월 이십일
우리들 모두는 뛰었다
품에는 <투사회보>를 들고
한 편은 외곽도로를 지나 백운동으로
한 편은 신안동 서방 지나 산수동으로
그리고 또 한 편은 살기등등한 시내버스
칼날같이 몸을 숨겨 금남로 지나 도청 지나
학동 지나 남광주 지원동으로
선지피 낭자한 <투사회보>를
뿌렸다 남김없이
어디선지 모르게 총탄이
머리에 구멍을 뚫을지라도
(중략)
우리들이 이어갈 우리들의 땅
우리가 이끌어갈 무리들의 나라
우리만이 간직해야 할 우리들의 역사
부딪쳐 다시 깨어지고
실려가고 짓밟혀
선지피 붉게 터질지라도
그것은 우리들이 일구는 우리들의 꿈
광활한 호남벌 구석구석에
불피워라 세 발 죽창을 깎아라
등짝을 꿰뚫는 큰 칼 갈아라
불 피워라 큰 칼 잡고 죽창 들고
반도를 목조르는 사방의 이리떼
제국주의 모가지 댕강댕강 후려치고
해방의 그 나라로 달려나가자
파쇼의 허리춤 댕강댕강 후려치고
아침의 바다로 달려나가자
-「들불야학」 중에서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광주자체에 대한 일정한 시각도 유지하면서, 서사구조로의 본격적 진입으로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본격적인 소설작품으로 광주5월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임철우의 [그리운 남쪽] [직선과 독가스], 윤정모의 [밤길]등등이 그것인 바 최근 발표된 윤정모의 [님]은 광주 5월의 또 다른 확산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시문학적 쟁점의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문제로 반외세 혹은 반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의 획득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시인들의 시적 사유에 반외세의 문제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4. 결론에 대신하여
이제까지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이란문제에 대해서 얼마간 살펴보았다. 부분적인 언급은 하였지만 이 글은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오늘 여기에서 문제되는 바를 추출해 보기 위해 진행된 거친 스케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위해서는 문학이 왜 운동이어야 하는가? 문학운동과 문화운동 나아가 민족운동과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점검하는 일이 필요한 일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작업은 또한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광주 5월에 참답게 이르는 일이 될 것이다.
남쪽의 사랑 남쪽의 부둥켜안음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에 갑니다
입맞춤과 입맞춤이 끝끝내 살아 있는 곳
어깨춤과 어깨춤이 생살로 넘실대는 곳
파랑새로 날으라면 파랑새로 날아올라
우리 이제 그리운 광주로 갑니다
아아 흰옷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남쪽의 몸부림 남쪽의 둥그러운 사랑
새들과 하늘 첫사랑의 광주로 갑니다
논밭마다 깊이깊이 쟁기질하는 아버지
항아리마다 씨앗을 가득 채우는 어머니
우리 이제 그리운 광주에 갑니다
찔레꽃과 접시꽃도 하이얀 광주에 갑니다
-김준태, [광주로 가는길]
분단극복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가는 길은 여행이나 추모의 순례가 아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당대 우리 삶의 최고의 세계관을 껴안고 이를 성취하러 가는 길이다.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
강형철
1 . 머리말
80년 5월은 당대 최고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이직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미 분명한 자기 모습을 지니면서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의 역사 위에 돌출하였던 갑오농민혁명, 3·1운동, 6·10운동, 4·19 등과 맥락을 같이 하는 민중의 역사적 주체로서의 자기 주장이라 할 수 있다.
80년 5월은 역사적 격변기에 민중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자기를 관철시키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의거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현 단계 우리 민족사의 가장 큰 질곡인 분단의 문제를 지정학적인 '금긋기'로만 이해하지 않게 하였고 우리의 밥상과 목숨 앞에 드리워진 근본적인 걸림돌임을 깨닫게 했다. 또한 이를 총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나 있는 군부독재의 척결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그 뒤에 얽혀 있는 외세의 축출까지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민족자주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전망과 민중이 개펄의 시학 혹은 뜨거운 삶 껴안기 핵심이 되는 민주주의의 수립이라는 명확한 미래로 이어지는 현 단계의 근본적인 세계관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변혁기에 문학 특히, 시는 가장 빠르게 가장 깊숙한 상처와 자기 전개를 보인다는 것은 자명하다. 80년 이후 우리 문학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인 것은 시이며 '시의 시대' 라는 수사적 표현까지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장르의 속성상 시적 수용양상은 장점도 있지만 그에 따른 한계가 있다는 것도 확실한 일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분석과 점검은 우리 문학사의 자기 정립이라는 과제에 값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글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위해 씌어지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80년 5월에 대한 사실 자체의 복원과 음미에 초점을 두고 시적 수용양상과 쟁점을 살피기 위해 씌어진다. 이를 위해 광주 5월 항쟁에 대한 증언, 의미부여 등을 먼저 살피고 문학사적 쟁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시에 있어서의 수용양상
먼저 광주항쟁의 여러 변모를 볼 수 있는 시를 살피기로 하겠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아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중에서]
그해 오월 나 광주에 있지 않았다
나 논에 있었다 낫 들고 밭에 있었다
그해 5월 나 광주 정말 모른다.
그해 5월 몸서리나는 총소리 탱크소리
두 귀 막고 그냥 벙어리처럼 모만 심었다
황토물 핏물 송장 썩은 물 뒤범벅
텃논에서 못줄도 없이 아무렇게 막모냈다
(중략)
그해 5월은 아직 덜 익은 보리밭
조선낫으로 죄없는 보리이삭 후려치며
허공 후리치며 밭둑에 멀거니 서 있는
수양버드나무 조선낫으로 찍었다
그해 5월 나 석우리 사는 한낱 농민이었다
-홍일선, [5월논 5월밭]
앞의 시는 광주항쟁 기간에 거기에 있었던 시인의 육성이다. '사람'의 순발력으로 굽이치는 누구에게나 알려진 시이다. 뒤의 시는 그때 거기에 있지 않은 농사꾼의 정직한 자기고백이다. 그러나 그것은 홍일선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자기 초상(肖像)이다. 자기 삶의 외줄타기에 지쳐 광주에서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몰랐던 우리 모두의 얼굴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연을 필연으로 감싸안으며 전진하기 때문이며 역사적 요청은 석우리에 사는 한 농민을 민중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우지 마라
꿈은 깨져야
삶으로 굽이치고
감들아 광야를 적시나니
이 어두움에 묶여
잠 못 드는 벗이여
날마다 찢어져도
날마다 뿌리쳐라
민중과 하나되는 그날까지
(중략)
이제 삼천리 천지는
외세의 반역과
민중과의 맞싸움으로만
가파르게 죄어졌나니
만약 여기서
한 발자욱이라도 물러서면
우리 모두 죽는다
-백기완, [민중과 하나되는 그날까지] 중에서
외세의 반역과 민중과의 맞싸움으로 역사가 대치되어 있을 때 이제 민중의 입장에서는 싸워 이기는 도리 외엔 없다. 그러나 현재의 민중 역량이 이를 전취할 수 있는가? 현실은 엄혹하다. 김남주는 다음과 같이 울부짖는다.
몸매가 작아 내 누이 같고
허리가 길어 내 여인 같은 나라여
누구의 영토도 넘본 적이 없는
비둘기와 황소의 나라 내 조국이여
누가 너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느냐
누가 네 마을과 네 도시를 아비규환의 아수라로
만들어놓았느냐
누가 허리 꺾인 네 상처에 꽃잎 대신
철가시바늘을 꽂아놓았느냐
정전 위 판문점에서 너를 대표한 자 누구이며
도마 위에 너를 올려놓고 초치고 장치고 포치고 차치고
내 조국의 운명을 요리하는 자 누구냐
입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뒷전에서는 원격조정의 끄나불로 꼭둑각시를 앞장세워
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을
계획적으로 학살하는 아메리카여 !
보아다오 너희들과 너희들 똘만이들이 저질러놓은
범죄를 범죄와 음모와 착취로 뒤덮인 이 땅들
보아다오 너희들이 팔아먹은 탄환으로 벌집투성이가 된 내 조국의 심장을
너희들 표현으로는 전략적으로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보아다오, 대검에 찔린 아이 밴 어머니와 배를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들의 청량한 눈동자를
-김남주, [학살·1 전문]
이 시는 분단 이후 40년의 역사를 시로써 형상화한 고은의 시와 함께 분단사의 적절한 축약이며 80년 5월의 참혹함에 대한 위대한 증언이다. 민족을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 그 뜨거운 시인의 호흡이 행간마다 살아 분단의 책임에 연루된 모든 이에게 보내주는 정의의 화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정진한 시편들이 있다. 당시 항쟁기간 줄곧 참여한 박몽구의 연작시 [십자가의 꿈] 75편이다.
요행히 살아남아 그날 진압군의 모습을, 탈환한 금남로의 평화로움을 증언하고 있으며, 무기명으로 역사의 핵심에 말없이 노동을 보태던 민중들이 어떻게 항쟁에 합류하는지를 냉혹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을 삶의 가장 깊은 체험으로 간직한 일단의 젊은 시인들에게 광주 5월은 사건이 아니라 그대로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저기 오네 그 사람 오월
피 묻어도 가슴째 일어나는 사람
눈부시게 번뜩이는 얼굴로 다가오네
망설이는 벗들아 서둘러 가자
지난 겨울 영산강을 녹였던 눈물일랑
가슴마다 채우고 떠나자
당신의 당신의 쓰라린 패배 그 잔물곁 아스라한
징역의 아픔
징역의 꽃 한 송이 피우고 살았던
생명 가득찬 도시 광주여
-이승철, [오월노래] 중에서
지난 역사를 지난 일의 기록이라는 사실로 남겨두지 않고 지금 호흡하는 숨결로 느낄 때 그것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며 박제화된 사실이 아니라 움직이는 현실이다.
그리하여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속에도
당신은 있습니다
어린것들의 눈망울 속에도 당신은 있습니다
숨죽여 기다리는 우리들의 가슴에도 당신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커오는 해일입니다
다시 한 번 죽음보다 더 멀리 버려진 이 노예의 땅에서
당신의 아들들을 탈환하려는 해일입니다.
-김진경 [광주]중에서
역사적 사실과 현재적 자기 삶의 확연한 일치 , 풀잎과 해일이 만나 이룩해 내는 민중적 전망의 획득, 그것은 민족자주에 입각한 통일과 참된 민주주의의 수립이라는 전망으로 이어진다. 당연한 이유로 이제 5월을5월로써 노래하지 않고 현재의 민중 삶에 뿌리내리는 시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점이 80년대 시의 가장 커다란 역할이었다. 80년 이후 활발하게 전개된 운동개념으로서의 문학, 민족문학론의 심화, 민중문학론의 광범위한 확산이 바로 그러한 천착으로부터 비롯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그 동안 생산된 시작품에 대한 필자의 몇 가지 비판적 단상을 피력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5월 하면 무조건 구호나 흥분이 앞서는 5월 소재주의나 5월 감상이다. 광주 5월이 아직도 총체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시점에 이러한 견해를 피력함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의견이라 하겠으나 광주 5월이 현재에도 계속되는 과제이고 그야말로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실천을 담보함으로써 완성시킬 수 있는 세계관이라면 이제는 냉혹한 자세가 요청된다 하겠다. 같은 맥락의 이야기이지만 두번째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죄책감이나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모습을 비판점으로 제시할 수 있겠다.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억울하게 죽은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원혼들을 참으로 편하게 하는 일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일이다. 추모나 패배감은 이제 어제의 일이다. 민중의 주재세력으로 노동자의 역량이 성숙하여 있고 또한 광범위한 연합세력이 존재하는데 더 이상 패배감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 그렇다고 일군의 시인들이 보인 바 있는 터무니없는 화해나 사랑으로의 도피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아무도 역사는 승리한다는 등식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힘 없는 평화, 싸움 없는 화해란
어디에도 없는 것
터무니없는 희망의 등식은
노래하지 말아야 한다.
-이영진, 「나팔꽃」 중에서
진실된 싸움, 살을 에이는 싸움이 없이 화해란 고양이와 쥐의 거짓 화해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나 비판적 점검을 뛰어넘는 시작품은 아직도 줄기차게 산출되고 있다. 문병란의 시편들은 물론 비교적 젊은 시인들의 세계관은 정직하게 변모하면서 발전적인 모습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3. 몇 가지 쟁점
앞에서 우리 시에 나타난 5월의 모습을 살폈다. 이제 시문학과 관련하여 몇 가지 쟁점을 점검하기로 하자.
80년 5월이 있은 후 초기에는 광주에서의 사실이 광주 밖에서는 유언비어로 바뀌어 경범죄 수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새삼스럽게 이를 언급하는 것은 당시의 열악한 언론상황을 떠올리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절에 처음에는 은유나 상징의 기법을 빌어 지극히 단순 소박한 사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었기에 81년에 간행된 동인지 {5월시} {시와 경제} 등은 이후 소집단운동 혹은 지역문화운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이러한 움직임의 저층에는 참된 변혁이란 광범한 민중의 협력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흐르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중심의 문화 비대화 현상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이전의 동인지운동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친분관계 위주의 친목모임에 불과하던 것에서 일정한 이념과 뜻을 같이 한 조직운동의 맹아적 형태로 결집되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어 간행된 {삶의 문학} {마산문화} {토박이} {남민시} {해방시} 등등의 소집단운동이 이를 담보해 내고 있다. 이러한 역량이 토대가 되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운동으로서의 문학의 실질적 내용을 이룬 것이다.
시문학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는 문제로 장르 확산의 문제, 공동창작의 문제 등을 들 수 있다.
시문학의 장르상 한계로 지적될 수 있는 서사성의 부족을 확보하기 위해 연작시, 서사시 등등의 논의는 물론 시와 다른 예술 (특히 판화와 시의 결합은 단적인 예이다)과의 결합도 거론, 시도되었고 공동창작의 문제도 활발히 거론되었다. 가령 {삶의 문학} 6집에서 공동창작시 [옹매듭두 풀구유], {5월시} 5집에 실린 전남대 비나리패의 공동창작시 [들불야학]이 그 예이다. 「들불야학」은 광주의 광천동에서 뜻있는 청년들이 모여 야학운동을 해오다가 80년 5월을 만나면서 그곳에 속한 강학(講學)들이 어떻게 합류했는가를 형상화한 서사구조의 장시이다.
밤을 세워 등사기를 밀어
새벽별 총총한 오월 이십일
우리들 모두는 뛰었다
품에는 <투사회보>를 들고
한 편은 외곽도로를 지나 백운동으로
한 편은 신안동 서방 지나 산수동으로
그리고 또 한 편은 살기등등한 시내버스
칼날같이 몸을 숨겨 금남로 지나 도청 지나
학동 지나 남광주 지원동으로
선지피 낭자한 <투사회보>를
뿌렸다 남김없이
어디선지 모르게 총탄이
머리에 구멍을 뚫을지라도
(중략)
우리들이 이어갈 우리들의 땅
우리가 이끌어갈 무리들의 나라
우리만이 간직해야 할 우리들의 역사
부딪쳐 다시 깨어지고
실려가고 짓밟혀
선지피 붉게 터질지라도
그것은 우리들이 일구는 우리들의 꿈
광활한 호남벌 구석구석에
불피워라 세 발 죽창을 깎아라
등짝을 꿰뚫는 큰 칼 갈아라
불 피워라 큰 칼 잡고 죽창 들고
반도를 목조르는 사방의 이리떼
제국주의 모가지 댕강댕강 후려치고
해방의 그 나라로 달려나가자
파쇼의 허리춤 댕강댕강 후려치고
아침의 바다로 달려나가자
-「들불야학」 중에서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광주자체에 대한 일정한 시각도 유지하면서, 서사구조로의 본격적 진입으로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다. 본격적인 소설작품으로 광주5월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임철우의 [그리운 남쪽] [직선과 독가스], 윤정모의 [밤길]등등이 그것인 바 최근 발표된 윤정모의 [님]은 광주 5월의 또 다른 확산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시문학적 쟁점의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문제로 반외세 혹은 반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의 획득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시인들의 시적 사유에 반외세의 문제가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4. 결론에 대신하여
이제까지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이란문제에 대해서 얼마간 살펴보았다. 부분적인 언급은 하였지만 이 글은 광주항쟁의 문학적 수용에 대한 본격적인 접근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오늘 여기에서 문제되는 바를 추출해 보기 위해 진행된 거친 스케치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위해서는 문학이 왜 운동이어야 하는가? 문학운동과 문화운동 나아가 민족운동과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점검하는 일이 필요한 일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작업은 또한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광주 5월에 참답게 이르는 일이 될 것이다.
남쪽의 사랑 남쪽의 부둥켜안음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에 갑니다
입맞춤과 입맞춤이 끝끝내 살아 있는 곳
어깨춤과 어깨춤이 생살로 넘실대는 곳
파랑새로 날으라면 파랑새로 날아올라
우리 이제 그리운 광주로 갑니다
아아 흰옷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짊어지고
남쪽의 몸부림 남쪽의 둥그러운 사랑
새들과 하늘 첫사랑의 광주로 갑니다
논밭마다 깊이깊이 쟁기질하는 아버지
항아리마다 씨앗을 가득 채우는 어머니
우리 이제 그리운 광주에 갑니다
찔레꽃과 접시꽃도 하이얀 광주에 갑니다
-김준태, [광주로 가는길]
분단극복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가는 길은 여행이나 추모의 순례가 아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당대 우리 삶의 최고의 세계관을 껴안고 이를 성취하러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