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소설가 임철우와 몇 마디. 조태일(시인은 밤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 나남출판, 1996. 11)
본문
소설가 임철우와 몇 마디
문학은 막힌 벽을 뚫어야
조태일
임 :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요며칠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문학이 할 몫'을 다시금 생각케 되더군요. 선배와의 대화도 그리워지고요. 오늘 이 자리에서는 80년대 문학의 성과와 반성, 광주 전남지역문학의 위상 등을 이야기해 보면서 90년대 문학에 거는 기대와 전망을 풀어나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 : 문학을 10년 단위로 반성, 전망해 본다는 게 조금 억지스럽기는 하지요. 70년대 상업주의 소설의 여러 가지 역기능이 노정되면서 80년대 문턱에서 "산문의 시대는 가고 시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무성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내놓고 봤을 때 80년대는 시와 산문의 동거시대였지요.
80년대 초반만 보면 광주항쟁이라는 외부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기동성과 발빠름을 살릴 수 있는 시 부문의 창작활동이 우세했지만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소절 쪽에서 무르익은 정과가 터져 나왔습니다.
임 : 초반에 시가 문학의 많은 영역을 메웠지만 후반기엔 소설이 큰 몫을 했다는 데 동감입니다. 문학에서 다룬 대상도 우리사회 변화와 궤를 같이 해 70년대와는 엄청나게 달라졌지요. 소재에 성역이 없어졌다 할까요. 활발한 민족문학 논쟁도 작품생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성의 확보나 계급성에 대한 논쟁도 어느 정토 정리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조 : 저는 어느 좌담회에서 80년대를 '이승과 저승이 구별 안되던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광주항쟁으로부터 시작해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과 희생이 있었습니까? 한마디로 가치 타락이 극악했던 시대였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문학이 '이런 시대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점검하고 깨우쳐 주는 데도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는 곳이 낙원이라면 문학도 필요 없을지 모르죠. 부재의식이나 책임의식이 문학인들에게 더러 '짐'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지만 밀폐·억압된 사회를 규명하고 풀어내는 데 있어 문학의 기능이 눈에 띄게 확대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혹자는 '작품으로서의 문학'보다는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우세했다는 평을 하기도 하더군요.
임 : 80년 광주항쟁이 던져준 의미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얼크러지고 설크러졌던 여러 논쟁이 더 이상 망설임의 여지를 가질 수 없었지요. 받침대 구실을 할 공통된 가치의식과 도덕성을 획득했다 할까요?
조 : 오월체험이 참여니 순수니 하는 탁상공론을 무화시키고 문학의 출발점을 제시했던 거지요. '문학이 사회성을 멀 수밖에 없다'는게 광주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으니까요.
임 : 여기가 바로 오월체험의 '진원지'였기 때문에 80년대 광주·전남문학 역시 많은 변모와 함께 비약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처음엔 '이러한 시대 글을 쓴다고 앉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이 지역의 젊은 문인들을 회의·갈등케 했기 때문에 성과라는 것도 미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탄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바깥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말이 한 변명이 될까요? 또 작품이 형상화되어 나오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적·공간적 간격이 있게 마련 아닙니까?
조 : 오월체험은 단순히 '광주'라는 지역적 의미를 떠난 이 땅 한반도 전체, 민족 전체를 껴안는 커다란 문제를 던져주었지요. 30년 동안 고향을 떠나 있다 이제 고향에 돌아온 지 1년에 불과한 저로서는 5월 체험이나 그로부터 비롯된 광주·전남문학을 섣불리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다만 지역성을 탈피하지 못한다거나 소재주의에 빠질 위험성은 새삼 지적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임 : 광주가 한반도 전체 모순구조를 포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타 지역에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이미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볼 수 있지요. 이 땅의 모순구조가 해결될 때까지 광주는 꾸준히 다루어질 겁니다. 하지만 광주 그 자체가 소재로 다루어지기보다는 그것이 제시해 준 반외세, 통일지향의 이념이 작품 속에 스며들리라고 봅니다. 광주·전남문학 역시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문학으로 틀짓기보다는 작가가 이 지역을 떠나 있어도 전라도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 문학이면 모두 폭넓게 포용해야겠지요.
조 : 저는 '전라도=한국의 에스프리'라고 봅니다. 문학이 이 민족의 혼이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전라도의 외롭고 의로운 혼이야말로 우리 문학의 원형질을 이루고 있지요 정치인들은 호남에 대해 '배려'니 뭐니 하는 말을 들먹거리기 좋아하지만 우리가 언제 배려 속에서 살아온 적 있었습니까.
임 : '배부르고 편한 땅'이었다면 문학도 달랐겠지요. 이 지역에는 말하고 노래하고 소리지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오월체험만 보더라도 이 지역의 정서가 오늘 이 땅을 사는 동시대인들의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이 해야할 몫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조 :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 등 분단이래 이 땅 소설사에 큰 획을 긋는 대작들이 모두 이쪽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이 지역 출신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연으로 돌릴 수는 없지요.
현재 진행 중인 송기숙의 <<녹두장군>>도 그렇고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이러한 대하소설들이 5월 체험의 시각에서 다뤄졌다는 사실도 주목해 볼 만합니다. 노동·농촌문학으로 눈을 돌려봐도 이쪽 작가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인 것 같군요.
임 : 80년대 초반에 소설은 시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의 모습을 띤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작가들이 책임을 방기한 것은 아니었지요. 침묵의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충전의 시기였고, 대응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대하 소설이 크게 돌출됐다는 점도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단편 위주와 소설 문학에서 장편이 활성화되고 장편에 대한 독자층의 욕구와 수용이 증폭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장길산>> <<태백산맥>> 등 역사, 민족의식을 다룬 대형작품들이 거둔 성과는 90년대 문학에도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지요. 과거에 주변부에 속했던 존재나 힘이 중심부를 강타한 것으로 표현되는 노동문학의 성장 역시 90년대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노동자, 농민 등 기층민중의 급격한 부상과 함께 90년대 문학에서의 민중적 기반도 더욱 확장되리라는 전망입니다.
조 : 80년대의 전환기적 양상에 비춰 전환기 양식으로서 장시, 연작시, 서사시, 이야기시 등 체격이 큰 시들의 대두는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시가 장형화, 대형화되는 추세는 '장르간 서로 영역 허물어뜨리고 만나기'의 소산이기도 하고, 서사시 등이 억압의 시대에 시적으로 맞설 수 있는 유효한 응전양식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지요. 모순이 심화된 사회구조 안에서는 작가 개인만의 고립된 정서로는 생명력을 잃기 십상입니다.
임 : 70년대 문학이 분단이데올로기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80년대 문학은 분단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 두드러졌지요. 90년대는 이러한 탈이데올로기의 움직임이 더욱 가속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분단이데올로기=허구'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격과 문제의식을 파급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통일을 내세우는 당위적 주장만으로는 독자들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과학적, 이론적 틀을 획득하는 것이 90년대 통일문학의 한 방향성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조 : 통일문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문학에서의 세대간 단절구조나 갈등의 극복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 문학단체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거나 서로 등돌림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문학동네라는 것도 세상사람들 살아가는 모양새처럼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 남동생 할 것 없이 한데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서로 조금만 달라도 그 차이성이 강조되는데 동류로서의 기본적 애정이 앞서야 합니다. 새로운 피의 수혈은 문학을 활성화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임 : 우리세대는 선배들 세대에 비해 끈끈한 정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학에서는 공동체적인 화합과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상 우리 사는 모양에선 그러하지 못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요.
조 : 문학이란 막힌 벽을 뚫고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자기다운 거, 광주다운 거, 전라도다운 거, 그리고 민족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문학이 나오리라 봅니다. (1990)
문학은 막힌 벽을 뚫어야
조태일
임 :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요며칠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문학이 할 몫'을 다시금 생각케 되더군요. 선배와의 대화도 그리워지고요. 오늘 이 자리에서는 80년대 문학의 성과와 반성, 광주 전남지역문학의 위상 등을 이야기해 보면서 90년대 문학에 거는 기대와 전망을 풀어나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 : 문학을 10년 단위로 반성, 전망해 본다는 게 조금 억지스럽기는 하지요. 70년대 상업주의 소설의 여러 가지 역기능이 노정되면서 80년대 문턱에서 "산문의 시대는 가고 시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무성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내놓고 봤을 때 80년대는 시와 산문의 동거시대였지요.
80년대 초반만 보면 광주항쟁이라는 외부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기동성과 발빠름을 살릴 수 있는 시 부문의 창작활동이 우세했지만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소절 쪽에서 무르익은 정과가 터져 나왔습니다.
임 : 초반에 시가 문학의 많은 영역을 메웠지만 후반기엔 소설이 큰 몫을 했다는 데 동감입니다. 문학에서 다룬 대상도 우리사회 변화와 궤를 같이 해 70년대와는 엄청나게 달라졌지요. 소재에 성역이 없어졌다 할까요. 활발한 민족문학 논쟁도 작품생산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성의 확보나 계급성에 대한 논쟁도 어느 정토 정리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조 : 저는 어느 좌담회에서 80년대를 '이승과 저승이 구별 안되던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광주항쟁으로부터 시작해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죽음과 희생이 있었습니까? 한마디로 가치 타락이 극악했던 시대였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문학이 '이런 시대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점검하고 깨우쳐 주는 데도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는 곳이 낙원이라면 문학도 필요 없을지 모르죠. 부재의식이나 책임의식이 문학인들에게 더러 '짐'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지만 밀폐·억압된 사회를 규명하고 풀어내는 데 있어 문학의 기능이 눈에 띄게 확대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혹자는 '작품으로서의 문학'보다는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우세했다는 평을 하기도 하더군요.
임 : 80년 광주항쟁이 던져준 의미가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얼크러지고 설크러졌던 여러 논쟁이 더 이상 망설임의 여지를 가질 수 없었지요. 받침대 구실을 할 공통된 가치의식과 도덕성을 획득했다 할까요?
조 : 오월체험이 참여니 순수니 하는 탁상공론을 무화시키고 문학의 출발점을 제시했던 거지요. '문학이 사회성을 멀 수밖에 없다'는게 광주를 통해 확연히 드러났으니까요.
임 : 여기가 바로 오월체험의 '진원지'였기 때문에 80년대 광주·전남문학 역시 많은 변모와 함께 비약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처음엔 '이러한 시대 글을 쓴다고 앉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이 지역의 젊은 문인들을 회의·갈등케 했기 때문에 성과라는 것도 미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폭탄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바깥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말이 한 변명이 될까요? 또 작품이 형상화되어 나오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적·공간적 간격이 있게 마련 아닙니까?
조 : 오월체험은 단순히 '광주'라는 지역적 의미를 떠난 이 땅 한반도 전체, 민족 전체를 껴안는 커다란 문제를 던져주었지요. 30년 동안 고향을 떠나 있다 이제 고향에 돌아온 지 1년에 불과한 저로서는 5월 체험이나 그로부터 비롯된 광주·전남문학을 섣불리 이야기한다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합니다. 다만 지역성을 탈피하지 못한다거나 소재주의에 빠질 위험성은 새삼 지적해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임 : 광주가 한반도 전체 모순구조를 포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타 지역에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이미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볼 수 있지요. 이 땅의 모순구조가 해결될 때까지 광주는 꾸준히 다루어질 겁니다. 하지만 광주 그 자체가 소재로 다루어지기보다는 그것이 제시해 준 반외세, 통일지향의 이념이 작품 속에 스며들리라고 봅니다. 광주·전남문학 역시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의 문학으로 틀짓기보다는 작가가 이 지역을 떠나 있어도 전라도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 문학이면 모두 폭넓게 포용해야겠지요.
조 : 저는 '전라도=한국의 에스프리'라고 봅니다. 문학이 이 민족의 혼이 되어야 한다는 면에서 전라도의 외롭고 의로운 혼이야말로 우리 문학의 원형질을 이루고 있지요 정치인들은 호남에 대해 '배려'니 뭐니 하는 말을 들먹거리기 좋아하지만 우리가 언제 배려 속에서 살아온 적 있었습니까.
임 : '배부르고 편한 땅'이었다면 문학도 달랐겠지요. 이 지역에는 말하고 노래하고 소리지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항상 있어 왔습니다. 오월체험만 보더라도 이 지역의 정서가 오늘 이 땅을 사는 동시대인들의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 지역이 해야할 몫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조 :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 등 분단이래 이 땅 소설사에 큰 획을 긋는 대작들이 모두 이쪽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거나 이 지역 출신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연으로 돌릴 수는 없지요.
현재 진행 중인 송기숙의 <<녹두장군>>도 그렇고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이러한 대하소설들이 5월 체험의 시각에서 다뤄졌다는 사실도 주목해 볼 만합니다. 노동·농촌문학으로 눈을 돌려봐도 이쪽 작가들이 거의 점령(?)하고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인 것 같군요.
임 : 80년대 초반에 소설은 시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의 모습을 띤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작가들이 책임을 방기한 것은 아니었지요. 침묵의 시간은 어떤 의미에서 충전의 시기였고, 대응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대하 소설이 크게 돌출됐다는 점도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단편 위주와 소설 문학에서 장편이 활성화되고 장편에 대한 독자층의 욕구와 수용이 증폭된 것은 특기할 만한 일입니다. <<장길산>> <<태백산맥>> 등 역사, 민족의식을 다룬 대형작품들이 거둔 성과는 90년대 문학에도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지요. 과거에 주변부에 속했던 존재나 힘이 중심부를 강타한 것으로 표현되는 노동문학의 성장 역시 90년대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노동자, 농민 등 기층민중의 급격한 부상과 함께 90년대 문학에서의 민중적 기반도 더욱 확장되리라는 전망입니다.
조 : 80년대의 전환기적 양상에 비춰 전환기 양식으로서 장시, 연작시, 서사시, 이야기시 등 체격이 큰 시들의 대두는 자연스런 현상이었습니다.
시가 장형화, 대형화되는 추세는 '장르간 서로 영역 허물어뜨리고 만나기'의 소산이기도 하고, 서사시 등이 억압의 시대에 시적으로 맞설 수 있는 유효한 응전양식으로 부각되었기 때문이지요. 모순이 심화된 사회구조 안에서는 작가 개인만의 고립된 정서로는 생명력을 잃기 십상입니다.
임 : 70년대 문학이 분단이데올로기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80년대 문학은 분단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이 두드러졌지요. 90년대는 이러한 탈이데올로기의 움직임이 더욱 가속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분단이데올로기=허구'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격과 문제의식을 파급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야 합니다. 통일을 내세우는 당위적 주장만으로는 독자들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과학적, 이론적 틀을 획득하는 것이 90년대 통일문학의 한 방향성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조 : 통일문학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문학에서의 세대간 단절구조나 갈등의 극복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 문학단체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거나 서로 등돌림을 하는 것은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문학동네라는 것도 세상사람들 살아가는 모양새처럼 아버지, 어머니, 누이동생, 남동생 할 것 없이 한데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서로 조금만 달라도 그 차이성이 강조되는데 동류로서의 기본적 애정이 앞서야 합니다. 새로운 피의 수혈은 문학을 활성화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임 : 우리세대는 선배들 세대에 비해 끈끈한 정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학에서는 공동체적인 화합과 평화를 내세우면서도 실상 우리 사는 모양에선 그러하지 못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지요.
조 : 문학이란 막힌 벽을 뚫고 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자기다운 거, 광주다운 거, 전라도다운 거, 그리고 민족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문학이 나오리라 봅니다.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