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기획연재 / 90년대 젊은 시인들<8>- 벽이자 문인 (현대시학, 현대시학사. 1996. 4)
본문
기획연재 / 90년대 젊은 시인들<8>
벽이자 문인 (광주)
-- 임동확론
정 효 구(문학평론가.충북대 교수)
1. 글을 시작하며
내가 임동확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1980년 광주항쟁 문제를 그가 한 편의 연작시이자 한 권의 시집인 『매장시편』(1987년)에 담아낸 것을 통해서 였다. 그 때 나는 이 시집으로부터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해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역사적 사건의 시적 수용)이라는 글에서 그의 시세계에 나타난 특성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바가 있다(그 당시『현대문학』지의 이 난은 우리 시단에서 가장 젊은 층에 속하는 이른바 주목받을 만한 신세대 시인들의 시세계를 연속적으로 소개하기 위하여 마련된 특별기획란이었다).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임동확은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1990)과 『운주사 가는 길』(1992)그리고 『벽을 문으로』(1994)라는 세 권의 시집을 더 출간 함으로써 이제 확실하게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이 시대 짙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구축한 그만의 독자적인 시세계란 어떤 것인가. 위의 논의 과정에 의하여 이 점이 자연스럽게 밝혀지겠지만. 우선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가 구축한 시세계는 첫 시집 『매장시편』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출간된 네 번째 시집 『벽을 문으로』에 이르기까지 이네 시집 모두가 그에게·운명적인 악연이라고 말해야 마땅한 (광주) 혹은 (광주항쟁)을 화두로 삼아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임동확은, 1980년 광주항쟁에서부터 계산한다면 15년이 넘게, 그리고 그가 등단한 1987년부터 친다면 10년 가까이, (광주)혹은 (광주항쟁)의 문제에 매달려 씨름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달리 말해본다면, 그가 이 문제에 매달렸다기보다 그 문제가 임동확을 사로잡고 좀처럼 놓아주지를 않았기에 그는 방금 말했듯이 거의 운명적인 악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붙들고 그의 청춘을 다 보냈던 것이다. 나는 네 권의 분량이나 되는 시만큼 한 시인이 하나의 화두를 앞에 놓고 그 주위를 맴돌며 이렇듯 집요하게 그 문제에 투신한 경우를 우리 시사에서 그렇게 쉽사리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임동확이 광주항쟁이라는 문제에 보여준 관심은, 관심을 넘어 집착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문제는 그의 청춘 전체를 바치도록 이끌었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그의 인생을 강력하게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동안 임동확이 출간한 네 권의 시집을 찬찬히 읽어가는 동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사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강한 힘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들이는 다른 요소가 임동확이 시 속에 들어 있음을 계속하여 확인하였다. 그리고 마침내는 임동확의 시가 지닌 진정한 의미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외적 사실에서도 얼마간 찾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 이면에 놓인 다른 사실에서 찾아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임동확이 그토록 집요하게 다룬 광주항쟁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하여 잘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속하기 때문에, 그 소재 자체가 지닌 흥미는 오늘날에 와서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는 시 보다 다른 유형의 매체를 통하여 더욱 확실하고 실감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임동확의 시가 광주항쟁 문제를 다루었다는 외적 사실은 그렇게 관심을 받을 만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다. 더욱이 이 문제는 우리 시단에서도 지난 80년대를 통하여 적지 않은 시인들이 다루었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조금 진부하다는 느낌을 먼저 줄 수도 있는 소재이다. 그러므로 임동확이 네 권의 시집을 통하여 광주항쟁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그 사실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그가 이 문제를 탐구하는 데 바친 열의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일 뿐, 그것 자체가 특별하게 독자들을 감동하도록 이끈다거나 시사적 의미를 갖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점이 임동확의 시를 문제적인 것으로 이끌며, 그의 시를 읽고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일까.
나는 이 물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고자 한다. 첫째, 임동확의 시는 광주에서 출생하여 광주에서 성장하고 광주항쟁에 참여한 후 지금까지 광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만이 광주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세계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동확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서 광주를 그의 고향이자 성장지이며 거주지로 둔 사람이, 직접 광주항쟁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목격하고. 그의 시를 쓴 것이다. 둘째, 자기고백과 자기성찰의 힘이 임동확의 시를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문제를 다룬 임동확의 시는 객체로서의 광주 문제만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관련된 주체로서의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내적으로 점검하고 직시하고 성찰하며 고백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실은 그가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과 안으로 향하는 시선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임동확의 시가 문제적일 순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앞(혹은 그 속에 서 있는 자기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솔직하게 직시하고 그것을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그의 시를 통하여 나는 한 문제에 전인격을 바치는 한 인간의 우직한 (순정)을 훔쳐보았던 것이다. 진실로 무엇에 (순정)을 바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세속적인 논리에 비추어볼 때,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스럽고 위험스러운 짓인가. 그것이 애인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광주이든, 조국이든, 또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동확의 시에서 어떤 문제 앞에 (순정)을 바치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고, 그로부터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볼 수가 있다. 넷째, 한 인간이 하나의 문제에 인내심과 치열성을 가지고 바쳐온 (순정)이 드디어 그 힘을 발하여, 한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혜안을 갖도록 이끄는 모습을 확연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임동확은 광주항쟁을 하나의 화두로 삼고 그 문제에 순정을 바친 결과, 그로부터 인간과 인생과 세계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순정을 바친 광주항쟁이라는 문제는 그에게 엄청난 고통만을 안겨주고 그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생과 세계의 숨은 비밀까지도 알려준, 다시 말하자면 그로 하여금 길까지도 발견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다섯째,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는 그의 시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같은 인간이라고 믿었던 자들로부터, 아무런 잘못도 없이 , 무작정 집단으로 목숨을 유린당한 비극의 현장을 체험하고, 그 체험이 암처럼 변모하여 평생 풀길 없는 가슴 속 덩어리가 되어, 그 덩어리에 저당잡힌 채 인생을 신음하듯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있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암과 같은 덩어리를 풀지 않고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절벽 앞에서도 그러나 세끼 밥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고, 마침내는 그 벽과 같은 암덩어리조차도 문으로 만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상임을 우리는 그로부터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임동확의 시가 지닌 의미를 먼저 말한 것은 광주항쟁을 소재로 삼은 많은 시들과 그의 시가 어떻게 다르며, 그의 시에 대한 나의 접근 방법이 어떠한 것인가를 암시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임동확의 시를 단순하게 광주항쟁을 다룬 시라고 생각하는 선입견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그 선입견을 넘어서야만 임동확의 시가 지닌 내면의 참다운 세계에까지도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이었다.
2. 증언과 고백
일면 인간의 역사란 교양인의 얼굴을 한 야만의 역사이다. 그러기에 역사라는 이름의 폭력적인 수레바퀴 아래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발에 밟히는 한낱 개미처럼 소리도 없이 죽어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비극이 교과서 속의 지식이나 저 먼 곳에서 살고 있는 타인의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것이며 내 가족의 것이고 내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로 인하여 우리의 생 전체를 저당잡히는 불행에 시달릴 수가 있다. 더욱이 권선징악이니 사필귀정이니 하는 도덕 교과서 속의 말들과는 달리, 야만의 역사를 창출한 주인공들이 당대는 물론 대를 이어가며 부와 권력을 휘두르며 살아가고, 그 야만의 역사는 역사라는 자못 찬란한 이름을 빙자하여 개미 몇 마리의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도도하게 흘러갈 때, 그 개미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은 소수의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과 역사와 빼앗은 자의 폭력을 실감하며, 절망의 나락에서 암울하게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으로 운명이니 우연이니 하는 말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불운이 눈에 뻔히 보이는 자들의 폭력에 의하여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들에게 덮쳐 왔고. 그 있을 수 없는 일의 부당함과 그로 인한 고통을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야말로 넘어서기도 열어보기도 두드려 보기도 어려운 벽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적반하장 격으로 폭력의 주체인 사람들이 오히려 개미와 같은 처지에 떨어진 피해자들에게, 당신들이 폭력이 주체가 아니냐고 몰아 부치며 자신들의 도덕성과 적법성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런 가운데서 그들이 당당하게 역사를 이끌어가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때, 도대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몰린 개미와 같은 처지의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개미와 같은 처지가 되었거나, 그 개미와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대낮에 뜬눈으로 직접 보아야 하는 충격을 체험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은, 호랑이나 사자나 전염병균 같은 것이 아닌, 바로 같은 종족의 인간들이 가진 어두운 광기와 정권욕에 희생되어 바로 그 개미와 같은 처지가 되거나, 그런 처지가 된 이웃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피해자인 자신들이 오히려 가해자인 것처럼 왜곡되는 이중의 피해 속에서 그들은 몇 곁으로 상처받고 억눌리고 소외당한 아웃사이더가 되어 억울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엄청난 벽 앞에서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 바뀌어질 것 같지 않은 역사와 현실의 거대한 폭력이 어떤 것인가를 절감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했던 것이다. 임동확의 시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그러니까 바로 나 자신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친척과 이웃이, 1980년의 광주항쟁으로 인하여 눈을 감기 전에는 용서하기 어려운 상처와 한을 끌어안고 그것에 일생을 저당 잡혀 살아가는 비극적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시는 시작된다. 그의 시집 『매장시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 당시 임동확은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는 20대의 대학생으로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체험하여야 했고, 그것은 1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가 해결하거나 극복하거나 넘어설 수 없는 매듭이 되어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도저히 이 매듭을 풀지 않고는 진정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그 매듭풀기에 15년을 바친 사람, 그러나 아직도 그 매듭은 풀리지 않아, 여태껏 매듭풀기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 그러나 그 매듭 속에서 인생과 세계의 비밀을 읽어내고 오히려 그 매듭을 자신이 열고나갈 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더욱이 그 매듭이 두엄처럼 잘 썩어서 그 매듭으로부터 새싹이 돋고 향기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시를 통하여 나타난 임동확의 모습이다.
먼저 임동확은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 어떤 것이었나를 증언하려는, 이른바 증언자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 때 대학 2학년의 학생이었던 사람으로, 그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그 도시에 거주했던 사람으로, 그는 그가 보고 느끼고 들은 바를 마치 증언석의 증인처럼 열렬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우리는 임동확의 시로부터 문서상의 자료보다 더욱 실감있는 증언을 접할 수가 있다. 증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을 알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다. 진실이 왜곡된 현실을 보면서, 임동확은 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증언을 하였던 것이고, 그 증언은 아무리 계속되어도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그의 목소리는 더욱더 격앙되고 그의 증언은 무수한 시편을 통하여 반복된 것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두 번째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증언 앞에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증언을 통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그로 하여금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작용하여 증언을 거듭하게 만든다. 그 결과, 임동확의 시집 네 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증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첫 시집 『매장시편』,과 두 번째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은 뒤의 두 시집보다도 더욱 증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 스스로가 아예 (그동안 일기 대신 꾸준히 시로 메모한 것들의 일부를 정리하여 발표함을 밝혀 두고 싶다)고 첫 시집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 또한 (오월은 화두다/또는 거대한 벽이다/그래서 나치 모든 시는/그곳에 새겨진 음화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난/풍자에 의지하지 않았다/그렇다고 초월의 몸짓을 내 보이지도 않았다/다만 막힌 물이 지하로 스며들듯/그 (속 사실)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둘째 시집의 「自序(자서)」란을 통하여 밝히고 있듯이, 그의 제1시집과 제2시집은 특히나 증언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듯, 그는 체험한 자의 눈으로. 시인의 눈으로, 지식인의 눈으로. 1980년 (광주항쟁)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증언은 그의 시를 특징 짓는 하나의 요인이면서 동시에 그의 시가 관념이 아닌 실제의 역사적 체험과 사실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배태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고보면 임동확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쓴 것이 아니라, 광주항쟁이 그로 하여금 시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임동확의 시세계는 무엇보다도 증언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사실과 진실의 증언만으로 시가 될 수도 없으며. 그것만으로 감동을 주기도 무척 어렵다. 만약 임동확의 시가 바깥 세계를 관찰하고 바깥 세계를 향하여 말하는 증언의 성격만을 가졌다면 그것이 아무리 정확하고 세밀한 증언이었다 하더라도 진술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만약 단순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해놓고 자해자의 잘못을 증언하는 것만으로 일관했다면, 역시 그의 시는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임동확의 시에서 그의 시가 보여준 증언의 내용과 결합하여 그의 시가 단순한 증언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을 막았던 것일까.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그 하나는 그가 사실의 차원에 속해 있는 증언의 내용을 인간사 속에 스며 있는 보편적 진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상징의 차원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들은 광주항쟁의 사실적인 측면을 접하는 것과 아울러 그 광주항쟁의 사실적인 내용들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그로부터 생의 보편적인 진실을 인식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역사적 사실의 증언을 통하여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는 데 정보를 제공하면서 , 또한 인간사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품을 보자.
나는 거대한 익명의 섬에 갇혀 무엇으로 살아 왔던가
둘째날,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해 중앙국민학교 담벼락을 넘었다. 행여 그 학교에까지 쫓아와 수색할까봐 이층 복도에서 관망하다 황급히 5학년 몇 반 교실로 뛰어 들어 갔을 때, 공포에 질린 어린 여자애들이 지르던 비명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첫째날 동명로에서 한 일곱 살쯤 먹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학생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나이 먹은 경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연행 학생과의 교환을 협상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바로 전 그 꼬마애와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꼬마야, 왜 울고 있니」 「아저씨 돌멩이를 버리세요, 아빠가‥‥ 경찰관이란 말이예요」
그리고, 거리거리 골목마다 젊은 사람은 무조건 다 죽는다고, 가지 말라고 손을 붙들던 어머니들은 그 후에 시위대에 물을 떠주고, 밥을 짓다, 제 아들 딸들의 돌연한 죽음을 확인하며, 넋을 잃은 채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몇째 날인지 기억되지 않는 어느날, 송정리 광주 비행장 입구. 구식의 무기로 무장한 청년들과 읍민들이 탱크와 M16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군대와 맞서 있는 동안, 그때까지도 흰 교복 상의 까만 주름치마가 단정했던 태극기를 든 사레지오 여고생을 만나고 싶다. 「안돼, 저놈들이 순순히 귀가시켜 줄리 만무해 저들의 회유책이야」「그러면 당신이 이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사흘‥‥닷새, 엿새‥‥열흘의 아픔을 견디고도 영창에 가고. 또 다시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젊은 벗들. 나이와 여자라는 것을 두기로(그것마저 무시되기 일쑤였지만) 거리에 나와 육이오보다 더 처 참하다며 자신의 핏줄처럼 감싸주고 막아주던 사람들‥‥
고립무원의 도시를 무차별로 사격하던 거리거리의 총탄 속에서도
무섭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선무방송을 하던
여자 아나운서와 그때 그 현장을 가장 잘 목격했던 하수인들과
그것으로 진급한 지휘관들은 과연 누구였는지
지금도 그때의 병사들은 국난극복기장을 자랑스레 간직하고 있는지
그들을 이제 한번쯤 꼬옥 만나고 싶다
-「7 이제 그들은 무엇이 되어」의 부분
위의 인용작품에서 보듯이, 임동확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광주항쟁의 증언자이자 기록자라는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는가에 대해 사실적인 차원의 실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동확의 증언은 단순하게 사실 전달이라는 기능만을 담당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인간사의 보편적인 의미를 암시해주는 상징적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위 작품을 통해서 본다면 우선 제1연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성찰이라는 의미를. 제2연에서는 폭력과 순진성과 죄의식의 의미를, 제3연에서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의 갈등 속에 끼여 인간의 순진성이 고통받는 의미를, 제4연에서는 목숨의 의미를, 제5연에서는 야만의 역사 아래서 문명인의 얼굴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인간들의 의미를, .제6연에서는 순수한 영혼이 생과 사가 교차하는 현장에서 희생당한 것의 의미를. 제7연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어두운 진실의 의미를, 그리고 그런 어두운 진실을 일축하 듯 또 한편의 인간성 속에 내재된 동지애의 의미를, 제8연에서는 사나운 폭력과 차분한 폭력의 두 가지 모습이 지닌 의미를, 그리고 더 큰 폭력이 더 나은 성공의 원천이 되는 모순상의 의미를 탐구해볼 순 있다. 이렇듯, 임동확의 증언은 상징성을 함께 획득함으로써 보다 다층적인 울림의 세계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른 하나는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하여 외부세계를 증언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눈길을 자기자신의 안쪽으로 돌려 자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1980년 5월의 광주항쟁과 운명적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그 자신이 그 광주항쟁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어떤 내적 심리 상태에 있었는가를. 그는 있는 그대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발하는 일과 더불어 나약한 실존적 존재로서의 한 개인이 그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역사적 횡포 앞에서 어떤 모습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사실상, 외부세계를 비판하고 고발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와 맞물린 자기자신의 허점까지도 숨김없이 직시하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감동은 자기자신은 빠진 채 외분세계의 잘못만을 소리 높여 비판하는 데서보다 오히려 피와 살을 가진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기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는 것까지도 용기있게 표출할 때 일어난다. 그런 예로 임동확의 다음 작품을 제시해본다.
나는 황공하게도 용맹한 부족의 전사로 칭송되고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자랑스런 가문의 후예로 기록되고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생존자로 알려졌다
나는 사실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다
눈과 귀를 막은 채 불타 오르는 전쟁터
동료의 죽음과 울부짖음을 외면했다
나는 솔직히 비겁자였다. 부어오른 편도선과
발목의 부상을 핑계삼아 전설을 벗어났었다
무기력한 흰 손의 가판한 서정을 쫓는 시인지망생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는 위대한 시민으로 불려졌다
그리고 부끄럼과 죄의식이 면역성을 얻어 가는 동안
놀랍게도 너는 사랑하지 않고서도 육욕의 팔다리를 교환하며
계산된 용기로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순결을 버리고도
처녀성을 더욱 목말라 하는 퓨리턴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승리감에 도취한 몸 성한 나팔수로 둔갑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그때 너는 검문소를 피해 논두렁을 밟으며
어디로 가고 있었던 젓일까
그리고 무정한 세월이 복류하고 있는 동안
그대들이여
나는 보았다. 나의 안락함 뒤의 엄청난 부정을
너의 너그러운 미소 뒤에 감추어진 적의를.
그리고 나의 평화의 구호 속의 지독한 위선을,
너의 화려한 성장 속의 그늘을,
다시 너와 나의 일치 속에 숨어 있는 분열을,
나와 너의 약속 속에 번진 무서운 배반을,
천사 속의 악마, 악마 속의 천사를‥‥‥
-「4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의 부분
임동확은 위 작품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용맹한 부족의 전사로, 자랑스런 가문의 후예로,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생존자로 여기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그렇게 위대한 시민이 아니라, 단지 항쟁의 터에서 동료들의 죽음과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부어오른 편도선과 발목의 부상을 핑계삼아 전선을 벗어난 비겁자에 불과하, 그로 인한 죄의식과 부끄러움 속에서 머리로만 고뇌하는 무력한 서정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간이 갈수록 그로 인한 부끄러움과 죄의식도 점점 엷어져만가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 다른 편에서는 순수성에 대한집착이 보다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그는 또한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는, 타인의 죽음과 울부짖음의 대가로, 자신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았으면서, 오히려 자신이 승리감에 도취해서 으시대는, 그런 모순 속의 인간이었음을 고백하고있다. 실제로 인간이란 얼마나 커다란 모순덩어리이며, 인간의 얼굴은 얼마나 가변적이고 다채로운가 누가진정 나인지도 모를 만큼, 인간들은 수도 없이 많은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임동확은 광주항쟁이라는 큰 비극의 역사 앞에서 자신 또한 얼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 없는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분열되고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위 인용부분의 마지막 연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는 안락함 뒤의 부정을, 미소 뒤의 적의를, 평화 뒤의 위선을, 성장 속의 그늘을. 일치 속의 분열을, 약속 뒤의 배반을, 천사 속의 악마를, 악마 속의 천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광주항쟁 앞에서 임동확은 인간사의 모순성과 아이러니를, 그런가 하면 벌거벗은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비극의 역사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자신의 몸 속에 풀길 없는 모순의 얼굴을 하고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그는 숨김 없이 고백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자기성찰과 자기고백의 적나라함이 임동확의 시가 증언에서 오는 충격 이외에 설득력과 감등과 공감까지도 자아낼 수 있는 하나의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광주항쟁이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위대한 영웅들만의 투쟁 이야기가 아니라, 꼭 우리와 같이 밥먹고 숨쉬고 잠자는 보통 사람들의 투쟁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오히려 동질감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3, 순정인가, 순간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동확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승의 지옥이라고 부를 만한 얼굴로 달려든 1980년 5월의 광주에 청춘을 고스란히 저당 잡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5년이 넘는 동안 이 문제에 매달렸고 네 권이나 되는 시집을 이 문제의 탐구에 헌납하였다. 그것도 천부적으로 유머와 가벼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 그는 정말로 무겁고 진지한 자세로 시종일관 이 문제와 씨름하는 데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던 것이다. 그 스스로가 (난 너무도 오래 들여 마신 숨을 참아왔다)고 그의 작품 「뿌리에 대하여」의 한 구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는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그 암흑을 한 번 들여 마신 후, 그것을 남들처럼 쉽게 날숨으로 날려보내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와 달리 아예 역사란 허무한 환상이 아니냐고, 광주의 5월은 지나간 일이 아니냐고, 또한 불행은 단지 개인적 불행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인생의 목표는 순간의 쾌락에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과거 어두운 비극을 못본 척 가볍게 날숨으로 토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볍고 경쾌해진 몸으로 산뜻하게 인생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동확은 전혀 달랐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들여 마신 그 암흑이, 비록 그의 몸과 마음 전체를 검게 물들이며 그를 괴롭히는 암적 덩어리와 같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순정)을 다 바쳐 그 암적 덩어리를 끌어안고 신음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순진했고 순수했고 진지했다. 나는 물론 그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그의 인물 됨됨이를 전혀 알 바 없으나, 적어도 그의 시만을 놓고 볼 때, 그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순수하며 진지하다. 아마도 이 시대 젊은 시인들의 시 가운데 임동확의 시만큼 무겁고 진지하며 엄숙하고 치열한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체질적으로 잔꾀라곤 부릴 줄 모르는 사랑이 생의 업보나 형벌처럼 달라붙은 바위 덩어리를 지고 그의 몫이 탈진할 때까지 발걸음을 떼는, 그런 고단한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시인의 이런 순정과 고뇌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세상은, 더욱이 90년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 세상은 순정의 논리와 전혀 다른 세속의 논리를 따라 그가 바라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이 시대 속의 사람들은 각자만의 행복한 왕국을 건설하는 데 개미처럼 부지런하다. 참으로 편리하게, 참으로 날렵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와 그 속의 인간들은 (순정)이라는 말을 거추장스럽게 그들의 사전 속에 넣어두지 않는다. 순정을 고수하는 자는 언제나 손해만 본다는 것을, 순정에 연연해 하다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순정을 저버리지 못하는 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세속의 논리를 그들은 너무도 일찍이 터득해버렸기 때문이다. 순정을 갖는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한 번 들어 마신 숨을 오랫동안 날숨으로 토해내지 않는 일인데,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며 누가 순정으로 무겁고 답답해진 몸을 이끌며 살아가겠느냐고 그들은 반박할 것이다. 따라서 세속의 논리를 따르자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괴롭고, 진실을 안다거나 알고자 한다는 것은 더욱 괴롭다.
임동확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말끔하게 잊어버린 듯, 이 시대가 갑자기 행복해진 얼굴을 하고 희색이 가득한 모습으로 일렁이는 것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구체적으로 행복해진 시대 앞에서 사람들은 성능 좋은 자동차와 화려한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열을 올렸으며, 머리 좋은 컴퓨터와 대형 텔레비젼을 구입하느라고 분주했고, 무드 있는 외식과 격조 높은 해외여행을 즐기느라고 흥분하였으며,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는라고 평화로운 휴일을 맞이하였다. 따라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듯 세상이 좋아져만 가는데.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는 잊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교과서 속의 지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애써 과거의 비극을 성능이 다한 기계처럼 골방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임동확은 놀라움과 분노와 허탈감과 억울함과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참을 수 없는 단순함)과 역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받은 충격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시대를 가리켜 (무책임한 시대)라고, (판단불능의 시대)라고, (운좋게 살아남은 자들이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고, (절망할 줄 모르는 자들의 세상)이라고, (표정을 살필 수 없는 세상)이라고, (모욕의 시대)라고 개탄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극히 가벼운 시대와, 그 속에서도 끝까지 무겁게 살아가려는 사람의 심정을,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순한 시대에 순수를 지키려는 사람의 처지를,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진정한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외로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을 한 편 예로 들고 논의를 계속해보자.
어디로 다들 가버렸나. 가파른 수직성으로 메마른
수목들만 뾰족하게 솟아오른 마음의 능선이여
모두들 아니라고 돌아서버린 산굽이를 넘어가노라니
지나온 연대의 계곡마다 함부로 사랑하고 버림받은,
또 그만큼 빨리 뒤집혀진 이념의 나무 뿌리로 가득하다
그새 그친 눈사태 같은 사나움의 세월도 잊은 채
떼지어 개종한 하산객들이 연호하는 공허한 메아리 ,
지레 수다스런 변명을 늘어놓는 골바람 소리만 차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젠 누군가 아주 당당하고
여유롭게 피 홀려 싸워온 지난날들을 야유하고
그리도 깊게 찔려 덜 아문 영혼의 생채기를 비웃고 있다
느닷없이 해산령을 받은 구한국의 병사처럼 쓸쓸하고
비장해진 우릴 저 밑 모를 죽음의 낭떠러지 ,
무장 해제의 설원으로 무작정 내몰고 있다
겨울산이여. 그래서 더욱 억울하기만 하는 대장정이여
그러나 그러기에 오직 스스로의 아픔으로 밝고
어두운 밤별 같은 지나온 길의 추억, 혹은 아름다움
아예 벽을 향해 도열한 결빙의 시간과 마주친다
그럴듯한 해탈도, 초월의 날개도 없이 그렇게
무한히 다양하고 경이로운 유일성의 우주를 이루는
마음의 별빛을 벗삼아 흐트러진 들메끈을 고쳐 매며
결코 유행일 수 없는 삶의 중심을 옹호한다
발등 찍을 후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설목지대
찬란한 슬픔의 연봉 너머 거기 그대로 천 년을
홀로, 여럿이 짝을 이루며 당당한 기억의 樹林(수림)을 본다
-「길 위에서-心經(심경) 24」의 전문
시인은 위 작품에서 과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민첩하게 등을 돌리는 것이 미덕인, 이른바 (개종의 시대)와 그 시대 속에서 떼지어 (개종한 인간들)을 본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보수적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들이나,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대충 덮어두고 가볍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좀처럼 쉽사리 개종할 수 없다. 그러나 애초부터 보수적 사고니, 순정이니 하는 것들을 헌신짝처럼 취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개종을 한다는 것은 감각과 같이 예민하게 직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현실을 보고 당황하지만. 그를 더욱더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순정을 바친다는 것에 보내는 야유의 표정이다. 이렇듯 행복해진 시대 속에서 당신들은 왜 과거를 붙들고 신음하느냐고 그대들의 우직한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것이냐고 비아냥대는 소리를 그는 듣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또한 더 이상 투쟁하고 고민할 명분이 어디 있느냐고, 이미 적은 사라졌다고, 그러니 총을 버리라고 외치며 자신들에게 구한국 병사처럼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는 이내 강제로 무장해제 당한 채 변방으로 무력하게 내몰리는 개종 안한 보수주의자들의 허탈감과 비애를 곱씹어본다. 하지만 위 작품을 통해서 볼 때, 시인은 섣부른 개종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개종이 진리로 통하는 세속의 논리와 전혀 다른 편에 서서 흐트러진 들메끈을 고쳐 매며 (결코 유행일 수 없는 삶의 중심성을 옹호한다)고 강하게 외친다. 진정한 절망도 분노도 투쟁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저 살아 남아 있음의 다행함에나 감사하며 언제라도 개종을 꿈꾸고 권하는 이 유동성의 현실 속에서, 그러나 시인은 중심성을 단단히 견지하며 (위대한 실패자) 혹은 (승리한 실패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그의 길은 외롭고 고통스럽다. ,
하지만 임동확은 순정파답게 그가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이왕 들어선 길이니 더 깊숙이 들어 가다보면, 무슨 수가 나지 않겠느냐고, 그는 생각한다. 또한 이왕 들여 마신 암흑이니 섣부르게 내뱉지 말고 그것이 가슴 속에서 발효되고 환한 밝음으로 승화될 때까지 알을 품듯 인내하다보면 뭔가 그 나름의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의지 때문이라기보다 어쩌면 자신이 보아버린 과거의 비극이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어서 도저히 그를 사로잡은 이 망령으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이 필연적으로 그곳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왜 이리 어려운 길을 고수하려고 하는 것일까. 순정 뒤에 따라오는 것은 진정 그를 보상해주고도 남을 것인가. 수백,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 역사 속에 무수해도 아침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떠오르고, 저녁 또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큼 다가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을텐데 그는 언제까지 이렇게 뜨거운 순정을 바칠 것인가.
이런 물음을 갖고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를 사로잡는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그 이미지가 들어 있는 부분을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무엇이든 삼켜 아무 것도 알아볼 수 없는
불길로 솟는 저 뜨거운 죽음의 분화구
아물려 들지 않는 상처 같은 진물을 흘리며
잘 썩어가는 두엄 자리를 넘보고 있다
「기억의 움집-心經(심경) 6」의 부분
인용 부분의 뒷 연에서 보이듯이, 임동확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는 (진물을 흘리며) 좀처럼 (아물려 들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뜻하지 않게 운명처럼 달려든 이 상처를 끌어안고, 그는 상처의 치유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노력이 더해져도 그 상처는 온전하게 치유되지 않은 채 덧나기를 거듭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임동확은 도저히 아물려 들지 않는 상처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진물을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잘 썩어가는 두엄자리)처럼, 그 상처의 내면이 아름답게 발효되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아물기 힘든 상처이기에 진물을 흘리는 아픔 속에서도, 결국에는 그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 상처가 두엄처럼 발효되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쓰라린 진물을 흘리면서도 잘 썩어가려는 두엄자리의 이미지는, 상처와 쉽게 화해할 수도, 그렇다고 상처를 무작정 덧나게만 할 수도 없는 갈등 속에서 , 그러나 상처의 진정한 발효를 꿈꾸는 시인의 생각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임동확이 광주항쟁에 바친 순정은 그 항쟁 속에 깃든 상처를 낱낱이 인식하고 절감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마침내는 그 상처가 두엄자리처럼 발효되는 경지까지도 갈 수 있는 그만의 통로를 마련하게 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1980년 5월의.광주는 그에게 지금까지 하나의 (벽)이었다. 시인 스스로가 자선의 시는 그 벽에 새겨진 음화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시는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그 거대한 벽을 향해 쓰여진 것이고 그것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기본적으로 광주라는 벽에서 출발하여 광주라는 벽을 향하고 있다. 이 벽을 마주한 시인에게 광주문제 이외의 것들은 여간하여 뚫고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광주라는 그 벽과 마주서서 필사적으로 그 벽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 벽을 넘어서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는 이 벽을 못 본 듯 피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기에는 이 시인이 가진 순정이 너무 대단하고 그가 본 1980년의 광주는 너무나 골깊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차피 이 벽은 그가 넘어야 할 필연적이자 운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벽이 좀처럼 열리거나 부서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을 이 벽 속에 갇혀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임동확은 하나의 신묘한 방안을 떠올린다. 그것은 바로 그 (벽을 오히려 문으로)삼아보자는 것이다. 문은 벽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벽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역설을 그는 체득한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역설적 진실의 체득은 광주라는 그 벽을 화두로 삼아 그 앞에 순정을 다 바친 한 인간에게 어느날 문득 선물처럼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벽을 오히려 문으로 삼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거니와, 그런 깨달음의 징후를 우리는 멀리 가지 않고 우선 앞의 인용시에서도 얼마간 찾아볼 수 있다. 앞의 인용시를 볼 것 같으면 임동확은 진물이 흐르는 상처와 발효되는 두엄자리를 동시에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전자가 벽의 상징이라면 후자는 벽이 문으로 전변되는 것의 상징이라고 이해된다. 이리하여 그는 어둠 속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나는 빛을, 벽 속에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을, 상처 속에서 그 아래 숨쉬는 새살을 보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럼으로써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은 벽 앞에서 그는 자기만의 문을 발견할 것 같은 그런 징후를 예감한 것이다. 그의 작품 「뿌리에 대하여」를 보기로 하자.
난 너무도 오래 들여마신 숨을 참아왔다 물론 잘못된 시대 탓이었다. 허나,원망하지 않겠다. 대신 난 어느새 몇 개의 파란 줄기를 내민 양파잎 같은 한숨을 토해낸다. 실내등마저 꺼버렸던 나의 가장 어두운 중심에서 말없는 말로 더할 수 없이 환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호흡을, 감각을, 리듬을 꿈꾸며 난 그걸 먼 곳으로만 찾아다녔다. 그러나 허무의 심연 속으로 두둥실 솟아오르는 태양을 본다. 오직 들키지 않는 곳에서만 엎드려 흐느껴온 먼 고향집 어머니 울음 같은 새소리를 듣는다. 그 동안 애써 모른체 발바닥 아래 가만 누르고 있던 수선화의 여린 꽃대 같은 날숨을 느낀다 이제사 제 의지만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인 사랑의 흰 뿌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뿌리에 대하여」치 부분
위 작품을 보면 임동확은 그가 들여 마시고 내뱉을 줄 몰랐던 어둠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돋아난 (몇 개의 파란 줄기)를 본다. 그리고 그는 실내등마저 꺼버렸을 만큼 어두웠던 자신의 몫 속에서 환하게 얼굴을 내미는 그만의 호흡과 감각과 리듬이 있음을 예견한다. 또한 그는 그가 끌어안고 살았던 허무의 심연 속에도 밝은 태양이 간직돼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발바닥 아래의 그어둠을 뚫고 수선화의 여린 꽃대가 솟아오르는 모양과, 억압 속에서도 하얗게 내리는 사랑의 뿌리가 있음을 예감한다. 어둠을 품어안고 보듬다 보면 마침내 그 어둠이 밝게 느껴지고, 그 어둠 속에도 아침을 준비하는 빛의 세계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임동확은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그 어둡고 두터운 벽 앞에서 면벽하다가 드디어 그 어둡고 두터운 벽에도 문을 가리키는 목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로 어떻게 벽이 문이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임동확의 시에서 우리는 그가 벽을 문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 벽을 문으로 만드는 것인지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오랜 시간동안 화두로 삼고 면벽의 세월을 보냈던 그 광주라는 벽이, 더 이상 절망적인 장애물이나 소모적인 어둠만으로 굳어 버리기를 그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청춘을 몽땅 빼앗은 그 광주라는 벽이 이제 그에게 희망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가 광주라는 벽에 날마다 절규하듯 울부짖으며 새긴 음화들이, 그대로 어둠 속에 매장되지 않고, 아름다운 꽃이 되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광주 앞에 바친 순정은 그를 오랫동안 어둠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그 어둠은 시인의 순정을 배반하지 않고, 마침내 자가발전기 같은 내적 힘에 의하여 유리병 속의 양파처럼 하얀 실 뿌리를 그의 몸 속에 내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어둠을 견디기도 힘이 들지만, 그 어둠 속에서 실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것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앞의 인용시 이외에 시인의 이런 생각을 잘 드러낸 대표작으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제목이면서 동시에 작품 제목이기도 한「벽을 문으로-心經 19」가 있다. 다음 장에서는 (벽을 문으로)라는 제목으로 이 점에 대하여 보다 깊이 논의하기로 한다.
4. 벽을 문으로
임동확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는 그가 세상을 읽는 경전과 같은 것이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빼놓고 그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그의 생각을 전개시킬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5월의 광주는 너무도 참혹하고 난해한 비극이어서 이 경전을 해독하기 위하여 그가 바친 노력과 세월은 엄청난 것이 되지 않을 아닐 수 없었다. 시인 스스로가 말했듯이 5월의 광주는 그의 삶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는 일종의 (화두)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처럼 어둡고 힘든 화두를 붙들고 참으로 힘겨운 시절을 통과하였으나, 그것은 좀처럼 쉽사리 앞으로의 전진을 허락하지 않는 벽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 벽 앞에서 무수하게 좌절하고 절망하교 한탄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이 벽을 마주하고 보낸 세월 속에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생의 숨겨진 비밀세계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1980년 5월의 광주는 그 깊은 어둠의 목구멍 속으로 이 시인을 삼켜 버린 블랙홀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 머무르는 자만이 판독할 수 있는 생과 세계의 비밀이 숨겨진 곳이기도 하였다. 그는 크나큰 시련을 겪은 자가 먼저 영웅이 되거나 현자가 되는 될 수 있는 세계사의 한 비밀처럼, 5월의 광주라는 그 시련을 겪음으로써 남보다 먼저 세계의 깊은 곳을 판독해낼 만큼 성숙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성숙의 대가는 얼마나 모질고 엄청난 것이었던가. 그럴 바에는 성숙을 포기하고서라도 그 끔찍한 비극과 시련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하지만 임동확에게는 그의 의도와 관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악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힘으로 그에게 강제적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고, 그는 이 강제적 시련 앞에서 절망만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 시련의 벽을 은으로 바꾸는 데까지 밀고 나아가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임동확은 그가 의식하는 사이에 혹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오직 어둠의 벽으로만 느껴졌던 5월의 광주를 통하여 생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숨은 문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가 5월의 광주라는 벽과 면벽의 시간을 보내며 그 벽 속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생의 비밀들을 열거해보기로 한다.
*얼마나 짐승처럼 비굴하게 굴어야
삶은, 겨우 길을 허락하는가
-「내릴 곳이 아닌 곳에」에서
*그건 영원히 혼자였음에도 전체인 듯 살아온 존재들의 운명적 항해였다
-「떠도는 행성」에서
*제가 확신하지 못한 생의 먼 길을
누가 있어 믿고 뒤따르겠는가
스스로가 두려워 눈 흩뿌리는 창가에
밤새 켜둔 저마다의 등불이여
-「새벽의 빛」에서
*저항할수록 청춘의 목덜미에 파고드는 면돗날들
-「고의적 형벌」에서
*말에 속지 않으려 말을 삼가왔다
-「희망의 근거」에서
*큰 길이 막히면 우린 더욱 둥글게 흩어져갔다
- 「마음의 행로」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을 가슴 속의 앙금일랑
점점 파고드는 옹이와 한께 성장해온
저 늙은 솔을 보며 내버려두라
어설픈 화해는 더 큰 불화로 이어지고
잘못 건드린 상처는 더 큰 아픔을 부르나니
-「음지 식물」에서
*아직 아픔을 모르기에 곧게 자란 갈대만 무성하다
여전히 생각 많은 마음의 물살을 헤집으며
모든 고통의 형상이 지워진 자리마다
상처의 힘으로 푸르른 나뭇잎들로 가득하다
-「꽃 피는 날에」에서
눈에 보이는 패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았지만, 이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임동확의 시 속에는 어둠의 동굴 속에 들어가 면벽의 세월을 보낸 사람만이 판독해낼 수 있는 생의 비밀들이 에피그람의 형식으로 땅 속 밑 보석처럼 이곳저곳에서 빛을 내며 숨어 있다. 그러므로 임동확의 시를 읽는 재미는 수도사처럼 어둠 앞에서 면벽하는 그의 무겁고 진지한 태도와 더불어 그가 이러한 시련 속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경구들을 접할 수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처럼 그가 발견하고 깨달은 생의 비밀스런 진실은 바로 그가 면벽의 시련 속에서 얻은 생의 문과도 같은 것이다.
한편 벽을 문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한 임동확은 이제 그 벽으로 만든 문을 열고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벽에 갇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그의 시야에 조금씩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곬으로 광주라는 벽 앞에 문을 잠그고 좌정해 있던 그가, 이제 자신의 몸 속에 암흑처럼 달라붙은 어둠이 부족하나마 조금씩 곰삭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힘겹게 자리를 옮겨보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 앞에 순정을 바쳤고, 그로 인해 생의 남다른 비밀을 나름대로 터득하는 지혜도 얻었지만, 워낙 엄청나게 견고한 광주라는 벽을 마주하였기에 그의 감각은 편협하게 되었고 그의 눈길 또한 유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광주라는 벽을 의식하면서도, 그 벽을 뚫고 조심스럽게 다른 세상의 비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럼으써 그 동안 경직되었던 그의 세계에 변화가 오고, 그의 관심 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볼수 있다 다음과 같은 작품을 보면 이 시인의 생각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잘 알 순 있을 것이다.
이제 조금씩 사소한 것들에 상처받기 시작한다
돌아보면 뭐가 그리 심각했었는지 모를 싱거운 부부 싸움 같은,
그런 가당치 않은 말들에도 자꾸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웃거린다
그러나 신성한 죄의식에 차여 있는 동안 그저 너그러이 대해왔던 것들이다
가시적인 불의가 판치고 있을 때 그처럼 화낼 일이 아니라고 애써 무시해왔던 일들이다
그런데도 한때 소년이 동경했던 서울행 기차가 대기하던 송정리역
늘 왠지 모를 그리움과 아쉬움 안고 건너던 극락교,
그리고 비상의 힘을 느끼게 하던 광주공항 입구를 지나도록
내 마음이 어두우니 환하게 피어 있는 벚꽃 터널의 광송간 가로수가
마치 무슨 죄수를 호송하는 집총 대열 같게만 느껴진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재진입을 시도하던 그날의 앞길을 가로 막아서던 육중한 쇳덩어리의 탱크,
허나 김지하 시인의 '황톳길'을 문득 떠올리며 힘없이 되돌아서야 했던
생의 열정들이 한꺼번에 암전되는 느낌에 휩싸여진다
어김없이 무슨 의례처럼 흑백의 현수막이 내걸린 기억의 회로를
이제 손수 운전해가는 자가용에 몸 실은 채 편하게 통과해가며
-「광송간 도로-심경 45」의 전문
우리는 인용시를 통하여 그가 1980년 5월의 광주가 가진 무게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사소하여 관심조차 두지 많았던 것들, 그러나 그 광주가 아무리 큰 무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는 것들에 비로소 자신도 (상처받기 시작한다)고 자신의 변화상을 고백하는 부분에 눈길을 모을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사소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에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의 속뜻은 그에게 이런 것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스스로가 말한 이른바 광주항쟁에 대한 (신성한 죄의식)은 엄청난 무게로 그를 압도한 것이었다. 따라서 다른 것들은 그 무게에 압도되어 그의 의식에 포착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나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그런 것들이 이제서야 서서히 그의 마음을 파고드는 변화가 자신에게 온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이런 변화가 찾아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의 마음 다른 한편에는 이보다 더 큰 무게로 1980년 5월의 광주가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광주와 송정리 간의 벚꽃나무 가로수를 평화로운 마음으로 즐기지 못한다. 그 대신 그는 이 가로수를 보며 참혹하게도 죄수를 호송하는 집총 대열을 연상하고, 더 심각하게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재진입을 시도하던 그날의 앞길을 가로 막아서던 육중한 쇳덩어리의 탱크)를 기억해낸다. 그러니 아직도 여전히 그의 몸과 마음은 1980년 5월의 광주에 저당 잡혀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이제 그 어두운 벽을 뚫고 서서히 다른 세계를, 그 가운데서도 너무 사소하여 무시당했던, 그러나 우리의 삶에 밀착돼 있는 수 많은 일상의 세계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의 다른 작품 「왜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있는가」를 보면 그는 이러한 일상성의 세계뿐만 아니라 無償性(무상성)의 세계에까지 눈길을 돌리며 자신이 여태껏 얼마나 무겁게만 살아왔으며, 그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고백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그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비롯된 문제를 그의 삶 속에 내면화시키면서, 더 나아가 일상성과 무상성의 세계에까지 인식과 관심의 폭을 확대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광주 문제에 맨몸으로 달려들어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임동확은 아직도 그 문제로부터 여전히 상처를 받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를 다스리고 품어 안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세계를 잉태시키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런 단계에서 상처의 통증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았던 작은 세계(그러나 소중한 세계)에도 점차 그의 진심을 주기 시작한다. 온전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그의 생을 오랫동안 지배하였지만, 그래도 그는 가능한 한 이 상처를 술처럼 곰삭여서 그의 마음 속에 잔잔하게 품어안아 보고 싶은 것이리라. 그의 작품 「내륙풍」은 이와 같은 시인의 심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고 망가져 너그러운 마음의 內海(내해)에 들어서니
무너트릴 수 없는 해벽 같은 절망감에 거품 물고 이빨을 갈며 보내온,
또 다른 상처를 만들며 통과해온 지난날의 흔적들이 조금은 겸연쩍고 아름다워진다.
아무렇지 않게 팔만사천의 노여움을 수장시키고 황금빛 출렁이는 노을의 다도해
그래도 다 못 감춘 슬픔의 혹처럼 무인도 몇 개 띄워놓은 덧난 격정의 종착지에 서니
이제사 불우했던 자신을 위해 소리내어 울어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어느새 내 안의 절벽에 봉두난발 달겨들어 그리움의 물이랑도 잦아들고
오직 향긋한 물냄새만 데불은 내륙풍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내륙풍-心經 52」의 부분
이 작품은 그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땅끝 마을에 가서 그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고 쓴 시이다. 위 시를 보면 시인에게 바다는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고 망가져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런 바다 앞에서 자신도 그런 바다와 같이 되고 싶어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바다를 보고 시인은 위안을 받는다. 그것은 부서짐과 망가짐과 투쟁 뒤에는 패배와 소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너그러운 바다처럼 보다 의연하고 성숙해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그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상처를 만들며 통과해온 지난날)과 (무너트릴 수 없는 해벽 같은 절망감에 거품 물고 이빨을 갈며 보내온) 지난날을, 조금은 경연적지만 아름답게 회상하며 품어 안아보고 싶어한다. 이런 소망은 그로 하여금 마침내 (아무렇지 않게 팔만사천의 노여움을 수장시키고 황금빛 출렁이는 노을의 다도해)를 보며 감동하도록 만든다.하지만 상처의 온전한 치유와 승화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황금빛 출렁이는 노을의 다도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다 못 감춘 슬픔의 혹처럼 무인도 몇 개 띄워놓고 덧난 격정의 종착지)를 함께 보고 있다. 이렇듯, 팔만사천의 노여움을 수장시키고 모성의 품안처럼 너그러워진 바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다스릴 수 없어 물 위로 떠오른 슬픔의 혹을 한꺼번에 본 것은 시인의 냉정한 자기인식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무작정 화해하고 용서할 수도, 그렇다고 상처를 계속하여 덧내기만 할 수도 없는 갈등 속에서, 시인은 마침내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잠재워서 넉넉한 바리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본다. 하지만 그것은 소망일 뿐 여전히 넉넉한 바다도 어쩔 수 없는 격정과 슬픔의 표정이 바다 위로 떠오른다는 이 시인은 보았거니와, 이런 인식이야말로 시인의 성숙한 안목을 반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임동확의 시에서 관심을 둘 만한 점은 그가 소위(여성성)혹은 (모성성)을, 막힌 통로를 뚫는 하나의 출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곡된 남성성의 폭력과 투쟁에 의하여 인간사는 엄청난 상흔으로 얼룩져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류사를 전쟁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전쟁은 인류사를 지배하였거니와, 이것은 바로 왜곡된 남성성이 이 땅에 저지를 가장 큰 해악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빚어진 비극도 사실상 따지고 보면 왜곡된 남성성의 폭력과 야욕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결국 왜곡된 남성성의 횡포는 죽음과 파멸을 불러왔으며, 그 흔적은 오랜 시간을 두고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임동확이 하나의 출구로 제시한 (여성성)은 바로 이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면 그가 인식하고 있는 여성성이란 어떤 것인가 작품을 인용하고 이 점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그처럼 정녕 여인들은 문득 사라진 해저 대륙 같은 거.
바다속 또다른 바다를 감춘 채 점점 텅 비어가는 자궁,
점점 어두워가고 깊어지는 내부의 동공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온갖 죽음과 망상, 저주와 광란의 똥오줌을 가리지 않고
흡입하여 끝내 연한 식물성의 쑥갓 향기를 피우는 마음의 텃밭,
벽이자 문인 (광주)
-- 임동확론
정 효 구(문학평론가.충북대 교수)
1. 글을 시작하며
내가 임동확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우리 현대사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1980년 광주항쟁 문제를 그가 한 편의 연작시이자 한 권의 시집인 『매장시편』(1987년)에 담아낸 것을 통해서 였다. 그 때 나는 이 시집으로부터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음해 『현대문학』 3월호에 발표한 (역사적 사건의 시적 수용)이라는 글에서 그의 시세계에 나타난 특성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바가 있다(그 당시『현대문학』지의 이 난은 우리 시단에서 가장 젊은 층에 속하는 이른바 주목받을 만한 신세대 시인들의 시세계를 연속적으로 소개하기 위하여 마련된 특별기획란이었다).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임동확은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1990)과 『운주사 가는 길』(1992)그리고 『벽을 문으로』(1994)라는 세 권의 시집을 더 출간 함으로써 이제 확실하게 그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이 시대 짙은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구축한 그만의 독자적인 시세계란 어떤 것인가. 위의 논의 과정에 의하여 이 점이 자연스럽게 밝혀지겠지만. 우선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가 구축한 시세계는 첫 시집 『매장시편』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출간된 네 번째 시집 『벽을 문으로』에 이르기까지 이네 시집 모두가 그에게·운명적인 악연이라고 말해야 마땅한 (광주) 혹은 (광주항쟁)을 화두로 삼아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임동확은, 1980년 광주항쟁에서부터 계산한다면 15년이 넘게, 그리고 그가 등단한 1987년부터 친다면 10년 가까이, (광주)혹은 (광주항쟁)의 문제에 매달려 씨름을 해 온 것이다. 그러나 달리 말해본다면, 그가 이 문제에 매달렸다기보다 그 문제가 임동확을 사로잡고 좀처럼 놓아주지를 않았기에 그는 방금 말했듯이 거의 운명적인 악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이 문제를 붙들고 그의 청춘을 다 보냈던 것이다. 나는 네 권의 분량이나 되는 시만큼 한 시인이 하나의 화두를 앞에 놓고 그 주위를 맴돌며 이렇듯 집요하게 그 문제에 투신한 경우를 우리 시사에서 그렇게 쉽사리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임동확이 광주항쟁이라는 문제에 보여준 관심은, 관심을 넘어 집착이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문제는 그의 청춘 전체를 바치도록 이끌었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그의 인생을 강력하게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동안 임동확이 출간한 네 권의 시집을 찬찬히 읽어가는 동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사실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강한 힘으로 독자들을 이끌어들이는 다른 요소가 임동확이 시 속에 들어 있음을 계속하여 확인하였다. 그리고 마침내는 임동확의 시가 지닌 진정한 의미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외적 사실에서도 얼마간 찾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그 이면에 놓인 다른 사실에서 찾아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다른 사실)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임동확이 그토록 집요하게 다룬 광주항쟁 문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하여 잘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속하기 때문에, 그 소재 자체가 지닌 흥미는 오늘날에 와서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는 시 보다 다른 유형의 매체를 통하여 더욱 확실하고 실감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임동확의 시가 광주항쟁 문제를 다루었다는 외적 사실은 그렇게 관심을 받을 만한 부분이 아닐 수도 있다. 더욱이 이 문제는 우리 시단에서도 지난 80년대를 통하여 적지 않은 시인들이 다루었던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조금 진부하다는 느낌을 먼저 줄 수도 있는 소재이다. 그러므로 임동확이 네 권의 시집을 통하여 광주항쟁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그 사실만 놓고 본다면, 그것은 그가 이 문제를 탐구하는 데 바친 열의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것일 뿐, 그것 자체가 특별하게 독자들을 감동하도록 이끈다거나 시사적 의미를 갖기에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점이 임동확의 시를 문제적인 것으로 이끌며, 그의 시를 읽고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일까.
나는 이 물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고자 한다. 첫째, 임동확의 시는 광주에서 출생하여 광주에서 성장하고 광주항쟁에 참여한 후 지금까지 광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만이 광주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세계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동확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을 갖춘 사람으로서 광주를 그의 고향이자 성장지이며 거주지로 둔 사람이, 직접 광주항쟁에 참여하거나 그것을 목격하고. 그의 시를 쓴 것이다. 둘째, 자기고백과 자기성찰의 힘이 임동확의 시를 설득력 있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광주문제를 다룬 임동확의 시는 객체로서의 광주 문제만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관련된 주체로서의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내적으로 점검하고 직시하고 성찰하며 고백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실은 그가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과 안으로 향하는 시선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임동확의 시가 문제적일 순 있고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앞(혹은 그 속에 서 있는 자기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인간적인 차원에서 솔직하게 직시하고 그것을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그의 시를 통하여 나는 한 문제에 전인격을 바치는 한 인간의 우직한 (순정)을 훔쳐보았던 것이다. 진실로 무엇에 (순정)을 바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세속적인 논리에 비추어볼 때,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스럽고 위험스러운 짓인가. 그것이 애인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광주이든, 조국이든, 또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임동확의 시에서 어떤 문제 앞에 (순정)을 바치는 한 인간의 순수하고 우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고, 그로부터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볼 수가 있다. 넷째, 한 인간이 하나의 문제에 인내심과 치열성을 가지고 바쳐온 (순정)이 드디어 그 힘을 발하여, 한 인간으로 하여금 인생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혜안을 갖도록 이끄는 모습을 확연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임동확은 광주항쟁을 하나의 화두로 삼고 그 문제에 순정을 바친 결과, 그로부터 인간과 인생과 세계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순정을 바친 광주항쟁이라는 문제는 그에게 엄청난 고통만을 안겨주고 그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생과 세계의 숨은 비밀까지도 알려준, 다시 말하자면 그로 하여금 길까지도 발견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다섯째,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는 그의 시로부터 어느날 갑자기, 같은 인간이라고 믿었던 자들로부터, 아무런 잘못도 없이 , 무작정 집단으로 목숨을 유린당한 비극의 현장을 체험하고, 그 체험이 암처럼 변모하여 평생 풀길 없는 가슴 속 덩어리가 되어, 그 덩어리에 저당잡힌 채 인생을 신음하듯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한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실감있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암과 같은 덩어리를 풀지 않고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절벽 앞에서도 그러나 세끼 밥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고, 마침내는 그 벽과 같은 암덩어리조차도 문으로 만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실상임을 우리는 그로부터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임동확의 시가 지닌 의미를 먼저 말한 것은 광주항쟁을 소재로 삼은 많은 시들과 그의 시가 어떻게 다르며, 그의 시에 대한 나의 접근 방법이 어떠한 것인가를 암시하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임동확의 시를 단순하게 광주항쟁을 다룬 시라고 생각하는 선입견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그 선입견을 넘어서야만 임동확의 시가 지닌 내면의 참다운 세계에까지도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함이었다.
2. 증언과 고백
일면 인간의 역사란 교양인의 얼굴을 한 야만의 역사이다. 그러기에 역사라는 이름의 폭력적인 수레바퀴 아래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발에 밟히는 한낱 개미처럼 소리도 없이 죽어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비극이 교과서 속의 지식이나 저 먼 곳에서 살고 있는 타인의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것이며 내 가족의 것이고 내 자신의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로 인하여 우리의 생 전체를 저당잡히는 불행에 시달릴 수가 있다. 더욱이 권선징악이니 사필귀정이니 하는 도덕 교과서 속의 말들과는 달리, 야만의 역사를 창출한 주인공들이 당대는 물론 대를 이어가며 부와 권력을 휘두르며 살아가고, 그 야만의 역사는 역사라는 자못 찬란한 이름을 빙자하여 개미 몇 마리의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도도하게 흘러갈 때, 그 개미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은 소수의 힘으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현실과 역사와 빼앗은 자의 폭력을 실감하며, 절망의 나락에서 암울하게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으로 운명이니 우연이니 하는 말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불운이 눈에 뻔히 보이는 자들의 폭력에 의하여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들에게 덮쳐 왔고. 그 있을 수 없는 일의 부당함과 그로 인한 고통을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야말로 넘어서기도 열어보기도 두드려 보기도 어려운 벽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적반하장 격으로 폭력의 주체인 사람들이 오히려 개미와 같은 처지에 떨어진 피해자들에게, 당신들이 폭력이 주체가 아니냐고 몰아 부치며 자신들의 도덕성과 적법성을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런 가운데서 그들이 당당하게 역사를 이끌어가는 현실을 목도하게 될 때, 도대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몰린 개미와 같은 처지의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개미와 같은 처지가 되었거나, 그 개미와 같은 처지의 이웃들을 대낮에 뜬눈으로 직접 보아야 하는 충격을 체험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은, 호랑이나 사자나 전염병균 같은 것이 아닌, 바로 같은 종족의 인간들이 가진 어두운 광기와 정권욕에 희생되어 바로 그 개미와 같은 처지가 되거나, 그런 처지가 된 이웃들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피해자인 자신들이 오히려 가해자인 것처럼 왜곡되는 이중의 피해 속에서 그들은 몇 곁으로 상처받고 억눌리고 소외당한 아웃사이더가 되어 억울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 엄청난 벽 앞에서 도저히 자신들의 힘으로 바뀌어질 것 같지 않은 역사와 현실의 거대한 폭력이 어떤 것인가를 절감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했던 것이다. 임동확의 시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그러니까 바로 나 자신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친척과 이웃이, 1980년의 광주항쟁으로 인하여 눈을 감기 전에는 용서하기 어려운 상처와 한을 끌어안고 그것에 일생을 저당 잡혀 살아가는 비극적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그의 시는 시작된다. 그의 시집 『매장시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그 당시 임동확은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는 20대의 대학생으로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체험하여야 했고, 그것은 1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가 해결하거나 극복하거나 넘어설 수 없는 매듭이 되어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도저히 이 매듭을 풀지 않고는 진정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그 매듭풀기에 15년을 바친 사람, 그러나 아직도 그 매듭은 풀리지 않아, 여태껏 매듭풀기를 계속하고 있는 사람, 그러나 그 매듭 속에서 인생과 세계의 비밀을 읽어내고 오히려 그 매듭을 자신이 열고나갈 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 더욱이 그 매듭이 두엄처럼 잘 썩어서 그 매듭으로부터 새싹이 돋고 향기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시를 통하여 나타난 임동확의 모습이다.
먼저 임동확은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 어떤 것이었나를 증언하려는, 이른바 증언자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 때 대학 2학년의 학생이었던 사람으로, 그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 그 도시에 거주했던 사람으로, 그는 그가 보고 느끼고 들은 바를 마치 증언석의 증인처럼 열렬히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우리는 임동확의 시로부터 문서상의 자료보다 더욱 실감있는 증언을 접할 수가 있다. 증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실을 알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다. 진실이 왜곡된 현실을 보면서, 임동확은 그 현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증언을 하였던 것이고, 그 증언은 아무리 계속되어도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그의 목소리는 더욱더 격앙되고 그의 증언은 무수한 시편을 통하여 반복된 것이다. 하지만 그 스스로도 두 번째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마치 달걀로 바위치기와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증언 앞에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증언을 통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그로 하여금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작용하여 증언을 거듭하게 만든다. 그 결과, 임동확의 시집 네 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증언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첫 시집 『매장시편』,과 두 번째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은 뒤의 두 시집보다도 더욱 증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그 스스로가 아예 (그동안 일기 대신 꾸준히 시로 메모한 것들의 일부를 정리하여 발표함을 밝혀 두고 싶다)고 첫 시집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 또한 (오월은 화두다/또는 거대한 벽이다/그래서 나치 모든 시는/그곳에 새겨진 음화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나 난/풍자에 의지하지 않았다/그렇다고 초월의 몸짓을 내 보이지도 않았다/다만 막힌 물이 지하로 스며들듯/그 (속 사실)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둘째 시집의 「自序(자서)」란을 통하여 밝히고 있듯이, 그의 제1시집과 제2시집은 특히나 증언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듯, 그는 체험한 자의 눈으로. 시인의 눈으로, 지식인의 눈으로. 1980년 (광주항쟁)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 증언은 그의 시를 특징 짓는 하나의 요인이면서 동시에 그의 시가 관념이 아닌 실제의 역사적 체험과 사실에 근거하여 필연적으로 배태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고보면 임동확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쓴 것이 아니라, 광주항쟁이 그로 하여금 시를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임동확의 시세계는 무엇보다도 증언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사실과 진실의 증언만으로 시가 될 수도 없으며. 그것만으로 감동을 주기도 무척 어렵다. 만약 임동확의 시가 바깥 세계를 관찰하고 바깥 세계를 향하여 말하는 증언의 성격만을 가졌다면 그것이 아무리 정확하고 세밀한 증언이었다 하더라도 진술의 세계를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만약 단순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해놓고 자해자의 잘못을 증언하는 것만으로 일관했다면, 역시 그의 시는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임동확의 시에서 그의 시가 보여준 증언의 내용과 결합하여 그의 시가 단순한 증언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을 막았던 것일까. 나는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그 하나는 그가 사실의 차원에 속해 있는 증언의 내용을 인간사 속에 스며 있는 보편적 진실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상징의 차원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시를 읽는 독자들은 광주항쟁의 사실적인 측면을 접하는 것과 아울러 그 광주항쟁의 사실적인 내용들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그로부터 생의 보편적인 진실을 인식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역사적 사실의 증언을 통하여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 잡는 데 정보를 제공하면서 , 또한 인간사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유도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작품을 보자.
나는 거대한 익명의 섬에 갇혀 무엇으로 살아 왔던가
둘째날, 나는 미처 피하지 못해 중앙국민학교 담벼락을 넘었다. 행여 그 학교에까지 쫓아와 수색할까봐 이층 복도에서 관망하다 황급히 5학년 몇 반 교실로 뛰어 들어 갔을 때, 공포에 질린 어린 여자애들이 지르던 비명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첫째날 동명로에서 한 일곱 살쯤 먹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학생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나이 먹은 경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연행 학생과의 교환을 협상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바로 전 그 꼬마애와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꼬마야, 왜 울고 있니」 「아저씨 돌멩이를 버리세요, 아빠가‥‥ 경찰관이란 말이예요」
그리고, 거리거리 골목마다 젊은 사람은 무조건 다 죽는다고, 가지 말라고 손을 붙들던 어머니들은 그 후에 시위대에 물을 떠주고, 밥을 짓다, 제 아들 딸들의 돌연한 죽음을 확인하며, 넋을 잃은 채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이제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몇째 날인지 기억되지 않는 어느날, 송정리 광주 비행장 입구. 구식의 무기로 무장한 청년들과 읍민들이 탱크와 M16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군대와 맞서 있는 동안, 그때까지도 흰 교복 상의 까만 주름치마가 단정했던 태극기를 든 사레지오 여고생을 만나고 싶다. 「안돼, 저놈들이 순순히 귀가시켜 줄리 만무해 저들의 회유책이야」「그러면 당신이 이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사흘‥‥닷새, 엿새‥‥열흘의 아픔을 견디고도 영창에 가고. 또 다시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젊은 벗들. 나이와 여자라는 것을 두기로(그것마저 무시되기 일쑤였지만) 거리에 나와 육이오보다 더 처 참하다며 자신의 핏줄처럼 감싸주고 막아주던 사람들‥‥
고립무원의 도시를 무차별로 사격하던 거리거리의 총탄 속에서도
무섭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선무방송을 하던
여자 아나운서와 그때 그 현장을 가장 잘 목격했던 하수인들과
그것으로 진급한 지휘관들은 과연 누구였는지
지금도 그때의 병사들은 국난극복기장을 자랑스레 간직하고 있는지
그들을 이제 한번쯤 꼬옥 만나고 싶다
-「7 이제 그들은 무엇이 되어」의 부분
위의 인용작품에서 보듯이, 임동확은 그의 작품을 통하여 광주항쟁의 증언자이자 기록자라는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는가에 대해 사실적인 차원의 실감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동확의 증언은 단순하게 사실 전달이라는 기능만을 담당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인간사의 보편적인 의미를 암시해주는 상징적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위 작품을 통해서 본다면 우선 제1연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간의 성찰이라는 의미를. 제2연에서는 폭력과 순진성과 죄의식의 의미를, 제3연에서는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의 갈등 속에 끼여 인간의 순진성이 고통받는 의미를, 제4연에서는 목숨의 의미를, 제5연에서는 야만의 역사 아래서 문명인의 얼굴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인간들의 의미를, .제6연에서는 순수한 영혼이 생과 사가 교차하는 현장에서 희생당한 것의 의미를. 제7연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어두운 진실의 의미를, 그리고 그런 어두운 진실을 일축하 듯 또 한편의 인간성 속에 내재된 동지애의 의미를, 제8연에서는 사나운 폭력과 차분한 폭력의 두 가지 모습이 지닌 의미를, 그리고 더 큰 폭력이 더 나은 성공의 원천이 되는 모순상의 의미를 탐구해볼 순 있다. 이렇듯, 임동확의 증언은 상징성을 함께 획득함으로써 보다 다층적인 울림의 세계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른 하나는 그가 자신의 시를 통하여 외부세계를 증언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 눈길을 자기자신의 안쪽으로 돌려 자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1980년 5월의 광주항쟁과 운명적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그 자신이 그 광주항쟁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어떤 내적 심리 상태에 있었는가를. 그는 있는 그대로 우리 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고발하는 일과 더불어 나약한 실존적 존재로서의 한 개인이 그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역사적 횡포 앞에서 어떤 모습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사실상, 외부세계를 비판하고 고발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와 맞물린 자기자신의 허점까지도 숨김없이 직시하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는 일이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감동은 자기자신은 빠진 채 외분세계의 잘못만을 소리 높여 비판하는 데서보다 오히려 피와 살을 가진 나약한 인간으로서 자기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하는 것까지도 용기있게 표출할 때 일어난다. 그런 예로 임동확의 다음 작품을 제시해본다.
나는 황공하게도 용맹한 부족의 전사로 칭송되고 있었다
나는 어처구니 없게도 자랑스런 가문의 후예로 기록되고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생존자로 알려졌다
나는 사실 끝까지 남아 있지 않았다
눈과 귀를 막은 채 불타 오르는 전쟁터
동료의 죽음과 울부짖음을 외면했다
나는 솔직히 비겁자였다. 부어오른 편도선과
발목의 부상을 핑계삼아 전설을 벗어났었다
무기력한 흰 손의 가판한 서정을 쫓는 시인지망생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는 위대한 시민으로 불려졌다
그리고 부끄럼과 죄의식이 면역성을 얻어 가는 동안
놀랍게도 너는 사랑하지 않고서도 육욕의 팔다리를 교환하며
계산된 용기로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고
아무런 미련도 없이 순결을 버리고도
처녀성을 더욱 목말라 하는 퓨리턴이 되어 있었다
나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승리감에 도취한 몸 성한 나팔수로 둔갑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그때 너는 검문소를 피해 논두렁을 밟으며
어디로 가고 있었던 젓일까
그리고 무정한 세월이 복류하고 있는 동안
그대들이여
나는 보았다. 나의 안락함 뒤의 엄청난 부정을
너의 너그러운 미소 뒤에 감추어진 적의를.
그리고 나의 평화의 구호 속의 지독한 위선을,
너의 화려한 성장 속의 그늘을,
다시 너와 나의 일치 속에 숨어 있는 분열을,
나와 너의 약속 속에 번진 무서운 배반을,
천사 속의 악마, 악마 속의 천사를‥‥‥
-「4나는 보았다.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의 부분
임동확은 위 작품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용맹한 부족의 전사로, 자랑스런 가문의 후예로, 끝까지 진지를 사수한 생존자로 여기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고 있다. 자신은 그렇게 위대한 시민이 아니라, 단지 항쟁의 터에서 동료들의 죽음과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부어오른 편도선과 발목의 부상을 핑계삼아 전선을 벗어난 비겁자에 불과하, 그로 인한 죄의식과 부끄러움 속에서 머리로만 고뇌하는 무력한 서정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시간이 갈수록 그로 인한 부끄러움과 죄의식도 점점 엷어져만가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 다른 편에서는 순수성에 대한집착이 보다 크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그는 또한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때는, 타인의 죽음과 울부짖음의 대가로, 자신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았으면서, 오히려 자신이 승리감에 도취해서 으시대는, 그런 모순 속의 인간이었음을 고백하고있다. 실제로 인간이란 얼마나 커다란 모순덩어리이며, 인간의 얼굴은 얼마나 가변적이고 다채로운가 누가진정 나인지도 모를 만큼, 인간들은 수도 없이 많은 얼굴을 동시에 지니고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임동확은 광주항쟁이라는 큰 비극의 역사 앞에서 자신 또한 얼마나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 없는 존재인가를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얼마나 분열되고 모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았던 것이다. 이를테면 위 인용부분의 마지막 연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는 안락함 뒤의 부정을, 미소 뒤의 적의를, 평화 뒤의 위선을, 성장 속의 그늘을. 일치 속의 분열을, 약속 뒤의 배반을, 천사 속의 악마를, 악마 속의 천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광주항쟁 앞에서 임동확은 인간사의 모순성과 아이러니를, 그런가 하면 벌거벗은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비극의 역사보다 더 비극적인 것이 자신의 몸 속에 풀길 없는 모순의 얼굴을 하고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그는 숨김 없이 고백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자기성찰과 자기고백의 적나라함이 임동확의 시가 증언에서 오는 충격 이외에 설득력과 감등과 공감까지도 자아낼 수 있는 하나의 근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광주항쟁이 저 높은 곳에 존재하는 위대한 영웅들만의 투쟁 이야기가 아니라, 꼭 우리와 같이 밥먹고 숨쉬고 잠자는 보통 사람들의 투쟁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오히려 동질감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3, 순정인가, 순간인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동확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승의 지옥이라고 부를 만한 얼굴로 달려든 1980년 5월의 광주에 청춘을 고스란히 저당 잡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15년이 넘는 동안 이 문제에 매달렸고 네 권이나 되는 시집을 이 문제의 탐구에 헌납하였다. 그것도 천부적으로 유머와 가벼움을 모르는 사람처럼 , 그는 정말로 무겁고 진지한 자세로 시종일관 이 문제와 씨름하는 데 청춘을 고스란히 바쳤던 것이다. 그 스스로가 (난 너무도 오래 들여 마신 숨을 참아왔다)고 그의 작품 「뿌리에 대하여」의 한 구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는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그 암흑을 한 번 들여 마신 후, 그것을 남들처럼 쉽게 날숨으로 날려보내지 못하였다. 어쩌면 이와 달리 아예 역사란 허무한 환상이 아니냐고, 광주의 5월은 지나간 일이 아니냐고, 또한 불행은 단지 개인적 불행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인생의 목표는 순간의 쾌락에 있는 게 아니냐고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과거 어두운 비극을 못본 척 가볍게 날숨으로 토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볍고 경쾌해진 몸으로 산뜻하게 인생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동확은 전혀 달랐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들여 마신 그 암흑이, 비록 그의 몸과 마음 전체를 검게 물들이며 그를 괴롭히는 암적 덩어리와 같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순정)을 다 바쳐 그 암적 덩어리를 끌어안고 신음을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만큼 그는 순진했고 순수했고 진지했다. 나는 물론 그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그의 인물 됨됨이를 전혀 알 바 없으나, 적어도 그의 시만을 놓고 볼 때, 그는 너무나도 순진하고 순수하며 진지하다. 아마도 이 시대 젊은 시인들의 시 가운데 임동확의 시만큼 무겁고 진지하며 엄숙하고 치열한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 체질적으로 잔꾀라곤 부릴 줄 모르는 사랑이 생의 업보나 형벌처럼 달라붙은 바위 덩어리를 지고 그의 몫이 탈진할 때까지 발걸음을 떼는, 그런 고단한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시인의 이런 순정과 고뇌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세상은, 더욱이 90년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 세상은 순정의 논리와 전혀 다른 세속의 논리를 따라 그가 바라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이 시대 속의 사람들은 각자만의 행복한 왕국을 건설하는 데 개미처럼 부지런하다. 참으로 편리하게, 참으로 날렵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와 그 속의 인간들은 (순정)이라는 말을 거추장스럽게 그들의 사전 속에 넣어두지 않는다. 순정을 고수하는 자는 언제나 손해만 본다는 것을, 순정에 연연해 하다가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순정을 저버리지 못하는 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세속의 논리를 그들은 너무도 일찍이 터득해버렸기 때문이다. 순정을 갖는다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한 번 들어 마신 숨을 오랫동안 날숨으로 토해내지 않는 일인데,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며 누가 순정으로 무겁고 답답해진 몸을 이끌며 살아가겠느냐고 그들은 반박할 것이다. 따라서 세속의 논리를 따르자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괴롭고, 진실을 안다거나 알고자 한다는 것은 더욱 괴롭다.
임동확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을 말끔하게 잊어버린 듯, 이 시대가 갑자기 행복해진 얼굴을 하고 희색이 가득한 모습으로 일렁이는 것에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구체적으로 행복해진 시대 앞에서 사람들은 성능 좋은 자동차와 화려한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열을 올렸으며, 머리 좋은 컴퓨터와 대형 텔레비젼을 구입하느라고 분주했고, 무드 있는 외식과 격조 높은 해외여행을 즐기느라고 흥분하였으며, 대통령을 직선으로 선출하는라고 평화로운 휴일을 맞이하였다. 따라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듯 세상이 좋아져만 가는데.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는 잊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은 교과서 속의 지식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애써 과거의 비극을 성능이 다한 기계처럼 골방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임동확은 놀라움과 분노와 허탈감과 억울함과 배신감을 느낀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참을 수 없는 단순함)과 역시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받은 충격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런 시대를 가리켜 (무책임한 시대)라고, (판단불능의 시대)라고, (운좋게 살아남은 자들이 즐기는 축제의 장)이라고, (절망할 줄 모르는 자들의 세상)이라고, (표정을 살필 수 없는 세상)이라고, (모욕의 시대)라고 개탄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극히 가벼운 시대와, 그 속에서도 끝까지 무겁게 살아가려는 사람의 심정을,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순한 시대에 순수를 지키려는 사람의 처지를,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진정한 희망을 노래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외로운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을 한 편 예로 들고 논의를 계속해보자.
어디로 다들 가버렸나. 가파른 수직성으로 메마른
수목들만 뾰족하게 솟아오른 마음의 능선이여
모두들 아니라고 돌아서버린 산굽이를 넘어가노라니
지나온 연대의 계곡마다 함부로 사랑하고 버림받은,
또 그만큼 빨리 뒤집혀진 이념의 나무 뿌리로 가득하다
그새 그친 눈사태 같은 사나움의 세월도 잊은 채
떼지어 개종한 하산객들이 연호하는 공허한 메아리 ,
지레 수다스런 변명을 늘어놓는 골바람 소리만 차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젠 누군가 아주 당당하고
여유롭게 피 홀려 싸워온 지난날들을 야유하고
그리도 깊게 찔려 덜 아문 영혼의 생채기를 비웃고 있다
느닷없이 해산령을 받은 구한국의 병사처럼 쓸쓸하고
비장해진 우릴 저 밑 모를 죽음의 낭떠러지 ,
무장 해제의 설원으로 무작정 내몰고 있다
겨울산이여. 그래서 더욱 억울하기만 하는 대장정이여
그러나 그러기에 오직 스스로의 아픔으로 밝고
어두운 밤별 같은 지나온 길의 추억, 혹은 아름다움
아예 벽을 향해 도열한 결빙의 시간과 마주친다
그럴듯한 해탈도, 초월의 날개도 없이 그렇게
무한히 다양하고 경이로운 유일성의 우주를 이루는
마음의 별빛을 벗삼아 흐트러진 들메끈을 고쳐 매며
결코 유행일 수 없는 삶의 중심을 옹호한다
발등 찍을 후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설목지대
찬란한 슬픔의 연봉 너머 거기 그대로 천 년을
홀로, 여럿이 짝을 이루며 당당한 기억의 樹林(수림)을 본다
-「길 위에서-心經(심경) 24」의 전문
시인은 위 작품에서 과거에 연연해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민첩하게 등을 돌리는 것이 미덕인, 이른바 (개종의 시대)와 그 시대 속에서 떼지어 (개종한 인간들)을 본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보수적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들이나, 해결되지 않은 과거를 대충 덮어두고 가볍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좀처럼 쉽사리 개종할 수 없다. 그러나 애초부터 보수적 사고니, 순정이니 하는 것들을 헌신짝처럼 취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개종을 한다는 것은 감각과 같이 예민하게 직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시인은 이런 현실을 보고 당황하지만. 그를 더욱더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순정을 바친다는 것에 보내는 야유의 표정이다. 이렇듯 행복해진 시대 속에서 당신들은 왜 과거를 붙들고 신음하느냐고 그대들의 우직한 행동이 얼마나 멍청한 것이냐고 비아냥대는 소리를 그는 듣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또한 더 이상 투쟁하고 고민할 명분이 어디 있느냐고, 이미 적은 사라졌다고, 그러니 총을 버리라고 외치며 자신들에게 구한국 병사처럼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는 이내 강제로 무장해제 당한 채 변방으로 무력하게 내몰리는 개종 안한 보수주의자들의 허탈감과 비애를 곱씹어본다. 하지만 위 작품을 통해서 볼 때, 시인은 섣부른 개종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개종이 진리로 통하는 세속의 논리와 전혀 다른 편에 서서 흐트러진 들메끈을 고쳐 매며 (결코 유행일 수 없는 삶의 중심성을 옹호한다)고 강하게 외친다. 진정한 절망도 분노도 투쟁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그저 살아 남아 있음의 다행함에나 감사하며 언제라도 개종을 꿈꾸고 권하는 이 유동성의 현실 속에서, 그러나 시인은 중심성을 단단히 견지하며 (위대한 실패자) 혹은 (승리한 실패자)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그의 길은 외롭고 고통스럽다. ,
하지만 임동확은 순정파답게 그가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이왕 들어선 길이니 더 깊숙이 들어 가다보면, 무슨 수가 나지 않겠느냐고, 그는 생각한다. 또한 이왕 들여 마신 암흑이니 섣부르게 내뱉지 말고 그것이 가슴 속에서 발효되고 환한 밝음으로 승화될 때까지 알을 품듯 인내하다보면 뭔가 그 나름의 길이 열리지 않겠느냐고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의지 때문이라기보다 어쩌면 자신이 보아버린 과거의 비극이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어서 도저히 그를 사로잡은 이 망령으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이 필연적으로 그곳에 머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왜 이리 어려운 길을 고수하려고 하는 것일까. 순정 뒤에 따라오는 것은 진정 그를 보상해주고도 남을 것인가. 수백,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 역사 속에 무수해도 아침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떠오르고, 저녁 또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큼 다가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을텐데 그는 언제까지 이렇게 뜨거운 순정을 바칠 것인가.
이런 물음을 갖고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를 사로잡는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그 이미지가 들어 있는 부분을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무엇이든 삼켜 아무 것도 알아볼 수 없는
불길로 솟는 저 뜨거운 죽음의 분화구
아물려 들지 않는 상처 같은 진물을 흘리며
잘 썩어가는 두엄 자리를 넘보고 있다
「기억의 움집-心經(심경) 6」의 부분
인용 부분의 뒷 연에서 보이듯이, 임동확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는 (진물을 흘리며) 좀처럼 (아물려 들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뜻하지 않게 운명처럼 달려든 이 상처를 끌어안고, 그는 상처의 치유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노력이 더해져도 그 상처는 온전하게 치유되지 않은 채 덧나기를 거듭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임동확은 도저히 아물려 들지 않는 상처와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진물을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잘 썩어가는 두엄자리)처럼, 그 상처의 내면이 아름답게 발효되는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아물기 힘든 상처이기에 진물을 흘리는 아픔 속에서도, 결국에는 그 고통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 상처가 두엄처럼 발효되는 변화를 가져오게 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쓰라린 진물을 흘리면서도 잘 썩어가려는 두엄자리의 이미지는, 상처와 쉽게 화해할 수도, 그렇다고 상처를 무작정 덧나게만 할 수도 없는 갈등 속에서 , 그러나 상처의 진정한 발효를 꿈꾸는 시인의 생각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임동확이 광주항쟁에 바친 순정은 그 항쟁 속에 깃든 상처를 낱낱이 인식하고 절감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마침내는 그 상처가 두엄자리처럼 발효되는 경지까지도 갈 수 있는 그만의 통로를 마련하게 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1980년 5월의.광주는 그에게 지금까지 하나의 (벽)이었다. 시인 스스로가 자선의 시는 그 벽에 새겨진 음화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시는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그 거대한 벽을 향해 쓰여진 것이고 그것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기본적으로 광주라는 벽에서 출발하여 광주라는 벽을 향하고 있다. 이 벽을 마주한 시인에게 광주문제 이외의 것들은 여간하여 뚫고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광주라는 그 벽과 마주서서 필사적으로 그 벽을 넘어서고자 했던 것이지만, 그 벽을 넘어서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는 이 벽을 못 본 듯 피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기에는 이 시인이 가진 순정이 너무 대단하고 그가 본 1980년의 광주는 너무나 골깊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차피 이 벽은 그가 넘어야 할 필연적이자 운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벽이 좀처럼 열리거나 부서지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을 이 벽 속에 갇혀 보내야만 하는 것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임동확은 하나의 신묘한 방안을 떠올린다. 그것은 바로 그 (벽을 오히려 문으로)삼아보자는 것이다. 문은 벽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벽 속에도 있을 수 있다는 역설을 그는 체득한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역설적 진실의 체득은 광주라는 그 벽을 화두로 삼아 그 앞에 순정을 다 바친 한 인간에게 어느날 문득 선물처럼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벽을 오히려 문으로 삼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거니와, 그런 깨달음의 징후를 우리는 멀리 가지 않고 우선 앞의 인용시에서도 얼마간 찾아볼 수 있다. 앞의 인용시를 볼 것 같으면 임동확은 진물이 흐르는 상처와 발효되는 두엄자리를 동시에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전자가 벽의 상징이라면 후자는 벽이 문으로 전변되는 것의 상징이라고 이해된다. 이리하여 그는 어둠 속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나는 빛을, 벽 속에서 그 안에 들어 있는 문을, 상처 속에서 그 아래 숨쉬는 새살을 보기에 이르른 것이다. 그럼으로써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은 벽 앞에서 그는 자기만의 문을 발견할 것 같은 그런 징후를 예감한 것이다. 그의 작품 「뿌리에 대하여」를 보기로 하자.
난 너무도 오래 들여마신 숨을 참아왔다 물론 잘못된 시대 탓이었다. 허나,원망하지 않겠다. 대신 난 어느새 몇 개의 파란 줄기를 내민 양파잎 같은 한숨을 토해낸다. 실내등마저 꺼버렸던 나의 가장 어두운 중심에서 말없는 말로 더할 수 없이 환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호흡을, 감각을, 리듬을 꿈꾸며 난 그걸 먼 곳으로만 찾아다녔다. 그러나 허무의 심연 속으로 두둥실 솟아오르는 태양을 본다. 오직 들키지 않는 곳에서만 엎드려 흐느껴온 먼 고향집 어머니 울음 같은 새소리를 듣는다. 그 동안 애써 모른체 발바닥 아래 가만 누르고 있던 수선화의 여린 꽃대 같은 날숨을 느낀다 이제사 제 의지만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인 사랑의 흰 뿌리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뿌리에 대하여」치 부분
위 작품을 보면 임동확은 그가 들여 마시고 내뱉을 줄 몰랐던 어둠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돋아난 (몇 개의 파란 줄기)를 본다. 그리고 그는 실내등마저 꺼버렸을 만큼 어두웠던 자신의 몫 속에서 환하게 얼굴을 내미는 그만의 호흡과 감각과 리듬이 있음을 예견한다. 또한 그는 그가 끌어안고 살았던 허무의 심연 속에도 밝은 태양이 간직돼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발바닥 아래의 그어둠을 뚫고 수선화의 여린 꽃대가 솟아오르는 모양과, 억압 속에서도 하얗게 내리는 사랑의 뿌리가 있음을 예감한다. 어둠을 품어안고 보듬다 보면 마침내 그 어둠이 밝게 느껴지고, 그 어둠 속에도 아침을 준비하는 빛의 세계가 숨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임동확은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그 어둡고 두터운 벽 앞에서 면벽하다가 드디어 그 어둡고 두터운 벽에도 문을 가리키는 목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실제로 어떻게 벽이 문이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임동확의 시에서 우리는 그가 벽을 문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 벽을 문으로 만드는 것인지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오랜 시간동안 화두로 삼고 면벽의 세월을 보냈던 그 광주라는 벽이, 더 이상 절망적인 장애물이나 소모적인 어둠만으로 굳어 버리기를 그가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그는 자신의 청춘을 몽땅 빼앗은 그 광주라는 벽이 이제 그에게 희망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가 광주라는 벽에 날마다 절규하듯 울부짖으며 새긴 음화들이, 그대로 어둠 속에 매장되지 않고, 아름다운 꽃이 되어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광주 앞에 바친 순정은 그를 오랫동안 어둠의 세계로 이끌었지만, 그 어둠은 시인의 순정을 배반하지 않고, 마침내 자가발전기 같은 내적 힘에 의하여 유리병 속의 양파처럼 하얀 실 뿌리를 그의 몸 속에 내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어둠을 견디기도 힘이 들지만, 그 어둠 속에서 실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것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앞의 인용시 이외에 시인의 이런 생각을 잘 드러낸 대표작으로는 그의 네 번째 시집 제목이면서 동시에 작품 제목이기도 한「벽을 문으로-心經 19」가 있다. 다음 장에서는 (벽을 문으로)라는 제목으로 이 점에 대하여 보다 깊이 논의하기로 한다.
4. 벽을 문으로
임동확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는 그가 세상을 읽는 경전과 같은 것이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빼놓고 그는 세상으로 나아갈 수도, 그의 생각을 전개시킬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5월의 광주는 너무도 참혹하고 난해한 비극이어서 이 경전을 해독하기 위하여 그가 바친 노력과 세월은 엄청난 것이 되지 않을 아닐 수 없었다. 시인 스스로가 말했듯이 5월의 광주는 그의 삶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 있는 일종의 (화두)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이처럼 어둡고 힘든 화두를 붙들고 참으로 힘겨운 시절을 통과하였으나, 그것은 좀처럼 쉽사리 앞으로의 전진을 허락하지 않는 벽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 벽 앞에서 무수하게 좌절하고 절망하교 한탄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이 벽을 마주하고 보낸 세월 속에서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생의 숨겨진 비밀세계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1980년 5월의 광주는 그 깊은 어둠의 목구멍 속으로 이 시인을 삼켜 버린 블랙홀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속에 머무르는 자만이 판독할 수 있는 생과 세계의 비밀이 숨겨진 곳이기도 하였다. 그는 크나큰 시련을 겪은 자가 먼저 영웅이 되거나 현자가 되는 될 수 있는 세계사의 한 비밀처럼, 5월의 광주라는 그 시련을 겪음으로써 남보다 먼저 세계의 깊은 곳을 판독해낼 만큼 성숙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성숙의 대가는 얼마나 모질고 엄청난 것이었던가. 그럴 바에는 성숙을 포기하고서라도 그 끔찍한 비극과 시련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하지만 임동확에게는 그의 의도와 관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악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힘으로 그에게 강제적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고, 그는 이 강제적 시련 앞에서 절망만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 시련의 벽을 은으로 바꾸는 데까지 밀고 나아가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임동확은 그가 의식하는 사이에 혹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오직 어둠의 벽으로만 느껴졌던 5월의 광주를 통하여 생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숨은 문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가 5월의 광주라는 벽과 면벽의 시간을 보내며 그 벽 속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 생의 비밀들을 열거해보기로 한다.
*얼마나 짐승처럼 비굴하게 굴어야
삶은, 겨우 길을 허락하는가
-「내릴 곳이 아닌 곳에」에서
*그건 영원히 혼자였음에도 전체인 듯 살아온 존재들의 운명적 항해였다
-「떠도는 행성」에서
*제가 확신하지 못한 생의 먼 길을
누가 있어 믿고 뒤따르겠는가
스스로가 두려워 눈 흩뿌리는 창가에
밤새 켜둔 저마다의 등불이여
-「새벽의 빛」에서
*저항할수록 청춘의 목덜미에 파고드는 면돗날들
-「고의적 형벌」에서
*말에 속지 않으려 말을 삼가왔다
-「희망의 근거」에서
*큰 길이 막히면 우린 더욱 둥글게 흩어져갔다
- 「마음의 행로」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을 가슴 속의 앙금일랑
점점 파고드는 옹이와 한께 성장해온
저 늙은 솔을 보며 내버려두라
어설픈 화해는 더 큰 불화로 이어지고
잘못 건드린 상처는 더 큰 아픔을 부르나니
-「음지 식물」에서
*아직 아픔을 모르기에 곧게 자란 갈대만 무성하다
여전히 생각 많은 마음의 물살을 헤집으며
모든 고통의 형상이 지워진 자리마다
상처의 힘으로 푸르른 나뭇잎들로 가득하다
-「꽃 피는 날에」에서
눈에 보이는 패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았지만, 이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임동확의 시 속에는 어둠의 동굴 속에 들어가 면벽의 세월을 보낸 사람만이 판독해낼 수 있는 생의 비밀들이 에피그람의 형식으로 땅 속 밑 보석처럼 이곳저곳에서 빛을 내며 숨어 있다. 그러므로 임동확의 시를 읽는 재미는 수도사처럼 어둠 앞에서 면벽하는 그의 무겁고 진지한 태도와 더불어 그가 이러한 시련 속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경구들을 접할 수 있는 데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처럼 그가 발견하고 깨달은 생의 비밀스런 진실은 바로 그가 면벽의 시련 속에서 얻은 생의 문과도 같은 것이다.
한편 벽을 문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고자 한 임동확은 이제 그 벽으로 만든 문을 열고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1980년 5월의 광주라는 벽에 갇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그의 시야에 조금씩 포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외곬으로 광주라는 벽 앞에 문을 잠그고 좌정해 있던 그가, 이제 자신의 몸 속에 암흑처럼 달라붙은 어둠이 부족하나마 조금씩 곰삭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힘겹게 자리를 옮겨보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 앞에 순정을 바쳤고, 그로 인해 생의 남다른 비밀을 나름대로 터득하는 지혜도 얻었지만, 워낙 엄청나게 견고한 광주라는 벽을 마주하였기에 그의 감각은 편협하게 되었고 그의 눈길 또한 유연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여전히 광주라는 벽을 의식하면서도, 그 벽을 뚫고 조심스럽게 다른 세상의 비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럼으써 그 동안 경직되었던 그의 세계에 변화가 오고, 그의 관심 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볼수 있다 다음과 같은 작품을 보면 이 시인의 생각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잘 알 순 있을 것이다.
이제 조금씩 사소한 것들에 상처받기 시작한다
돌아보면 뭐가 그리 심각했었는지 모를 싱거운 부부 싸움 같은,
그런 가당치 않은 말들에도 자꾸 고개를 돌리고 귀를 기웃거린다
그러나 신성한 죄의식에 차여 있는 동안 그저 너그러이 대해왔던 것들이다
가시적인 불의가 판치고 있을 때 그처럼 화낼 일이 아니라고 애써 무시해왔던 일들이다
그런데도 한때 소년이 동경했던 서울행 기차가 대기하던 송정리역
늘 왠지 모를 그리움과 아쉬움 안고 건너던 극락교,
그리고 비상의 힘을 느끼게 하던 광주공항 입구를 지나도록
내 마음이 어두우니 환하게 피어 있는 벚꽃 터널의 광송간 가로수가
마치 무슨 죄수를 호송하는 집총 대열 같게만 느껴진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재진입을 시도하던 그날의 앞길을 가로 막아서던 육중한 쇳덩어리의 탱크,
허나 김지하 시인의 '황톳길'을 문득 떠올리며 힘없이 되돌아서야 했던
생의 열정들이 한꺼번에 암전되는 느낌에 휩싸여진다
어김없이 무슨 의례처럼 흑백의 현수막이 내걸린 기억의 회로를
이제 손수 운전해가는 자가용에 몸 실은 채 편하게 통과해가며
-「광송간 도로-심경 45」의 전문
우리는 인용시를 통하여 그가 1980년 5월의 광주가 가진 무게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사소하여 관심조차 두지 많았던 것들, 그러나 그 광주가 아무리 큰 무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는 것들에 비로소 자신도 (상처받기 시작한다)고 자신의 변화상을 고백하는 부분에 눈길을 모을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사소하다고만 생각했던 것들에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한 것의 속뜻은 그에게 이런 것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스스로가 말한 이른바 광주항쟁에 대한 (신성한 죄의식)은 엄청난 무게로 그를 압도한 것이었다. 따라서 다른 것들은 그 무게에 압도되어 그의 의식에 포착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나야만 했었다. 하지만 그는 여태껏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그런 것들이 이제서야 서서히 그의 마음을 파고드는 변화가 자신에게 온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이런 변화가 찾아왔지만, 아직도 여전히 그의 마음 다른 한편에는 이보다 더 큰 무게로 1980년 5월의 광주가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광주와 송정리 간의 벚꽃나무 가로수를 평화로운 마음으로 즐기지 못한다. 그 대신 그는 이 가로수를 보며 참혹하게도 죄수를 호송하는 집총 대열을 연상하고, 더 심각하게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재진입을 시도하던 그날의 앞길을 가로 막아서던 육중한 쇳덩어리의 탱크)를 기억해낸다. 그러니 아직도 여전히 그의 몸과 마음은 1980년 5월의 광주에 저당 잡혀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이제 그 어두운 벽을 뚫고 서서히 다른 세계를, 그 가운데서도 너무 사소하여 무시당했던, 그러나 우리의 삶에 밀착돼 있는 수 많은 일상의 세계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의 다른 작품 「왜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있는가」를 보면 그는 이러한 일상성의 세계뿐만 아니라 無償性(무상성)의 세계에까지 눈길을 돌리며 자신이 여태껏 얼마나 무겁게만 살아왔으며, 그러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고백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그가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비롯된 문제를 그의 삶 속에 내면화시키면서, 더 나아가 일상성과 무상성의 세계에까지 인식과 관심의 폭을 확대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광주 문제에 맨몸으로 달려들어 상처투성이가 되었던 임동확은 아직도 그 문제로부터 여전히 상처를 받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를 다스리고 품어 안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세계를 잉태시키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런 단계에서 상처의 통증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았던 작은 세계(그러나 소중한 세계)에도 점차 그의 진심을 주기 시작한다. 온전히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그의 생을 오랫동안 지배하였지만, 그래도 그는 가능한 한 이 상처를 술처럼 곰삭여서 그의 마음 속에 잔잔하게 품어안아 보고 싶은 것이리라. 그의 작품 「내륙풍」은 이와 같은 시인의 심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고 망가져 너그러운 마음의 內海(내해)에 들어서니
무너트릴 수 없는 해벽 같은 절망감에 거품 물고 이빨을 갈며 보내온,
또 다른 상처를 만들며 통과해온 지난날의 흔적들이 조금은 겸연쩍고 아름다워진다.
아무렇지 않게 팔만사천의 노여움을 수장시키고 황금빛 출렁이는 노을의 다도해
그래도 다 못 감춘 슬픔의 혹처럼 무인도 몇 개 띄워놓은 덧난 격정의 종착지에 서니
이제사 불우했던 자신을 위해 소리내어 울어봐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어느새 내 안의 절벽에 봉두난발 달겨들어 그리움의 물이랑도 잦아들고
오직 향긋한 물냄새만 데불은 내륙풍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내륙풍-心經 52」의 부분
이 작품은 그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땅끝 마을에 가서 그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고 쓴 시이다. 위 시를 보면 시인에게 바다는 (차라리 산산이 부서지고 망가져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런 바다 앞에서 자신도 그런 바다와 같이 되고 싶어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바다를 보고 시인은 위안을 받는다. 그것은 부서짐과 망가짐과 투쟁 뒤에는 패배와 소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너그러운 바다처럼 보다 의연하고 성숙해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그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상처를 만들며 통과해온 지난날)과 (무너트릴 수 없는 해벽 같은 절망감에 거품 물고 이빨을 갈며 보내온) 지난날을, 조금은 경연적지만 아름답게 회상하며 품어 안아보고 싶어한다. 이런 소망은 그로 하여금 마침내 (아무렇지 않게 팔만사천의 노여움을 수장시키고 황금빛 출렁이는 노을의 다도해)를 보며 감동하도록 만든다.하지만 상처의 온전한 치유와 승화란 지극히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황금빛 출렁이는 노을의 다도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다 못 감춘 슬픔의 혹처럼 무인도 몇 개 띄워놓고 덧난 격정의 종착지)를 함께 보고 있다. 이렇듯, 팔만사천의 노여움을 수장시키고 모성의 품안처럼 너그러워진 바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다스릴 수 없어 물 위로 떠오른 슬픔의 혹을 한꺼번에 본 것은 시인의 냉정한 자기인식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무작정 화해하고 용서할 수도, 그렇다고 상처를 계속하여 덧내기만 할 수도 없는 갈등 속에서, 시인은 마침내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잠재워서 넉넉한 바리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본다. 하지만 그것은 소망일 뿐 여전히 넉넉한 바다도 어쩔 수 없는 격정과 슬픔의 표정이 바다 위로 떠오른다는 이 시인은 보았거니와, 이런 인식이야말로 시인의 성숙한 안목을 반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임동확의 시에서 관심을 둘 만한 점은 그가 소위(여성성)혹은 (모성성)을, 막힌 통로를 뚫는 하나의 출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곡된 남성성의 폭력과 투쟁에 의하여 인간사는 엄청난 상흔으로 얼룩져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인류사를 전쟁사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전쟁은 인류사를 지배하였거니와, 이것은 바로 왜곡된 남성성이 이 땅에 저지를 가장 큰 해악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빚어진 비극도 사실상 따지고 보면 왜곡된 남성성의 폭력과 야욕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다. 결국 왜곡된 남성성의 횡포는 죽음과 파멸을 불러왔으며, 그 흔적은 오랜 시간을 두고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 되었다. 임동확이 하나의 출구로 제시한 (여성성)은 바로 이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러면 그가 인식하고 있는 여성성이란 어떤 것인가 작품을 인용하고 이 점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그처럼 정녕 여인들은 문득 사라진 해저 대륙 같은 거.
바다속 또다른 바다를 감춘 채 점점 텅 비어가는 자궁,
점점 어두워가고 깊어지는 내부의 동공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온갖 죽음과 망상, 저주와 광란의 똥오줌을 가리지 않고
흡입하여 끝내 연한 식물성의 쑥갓 향기를 피우는 마음의 텃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