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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5,18 문학의 역사성과 현실 , 김해중(언어세계, 1996. 봄)

본문

5.18 문학의 역사성과 현실



김해중



1

  그 긴 역사 속에서 현대사의 질곡만큼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1945년 패망한 후로 우리의 역사는 너무나 숨가쁘게 우리를 몰아붙였다. 45년 분단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50년의 한국전쟁, 그리고 5.16 군부 쿠테타, 10.26, 12.12군부쿠테타. 그리고 또 5.17과 5.18이 그 뒤를 이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교과서적 표현에 의하면-아니, 광주시민민주항쟁은 현대사 전체를 다시 생각케 하는 커다란 물줄기였다.  12.12와 5.17을 주도했던 수뇌부들이 지금 법의 심판대 위에 올라 서 있다. 광주시민민주항쟁을 폭도들의 반란으로 규정했던 그들이, 역사의 법을 좌지우지했던 그들이 아이러니 하게도 법의 구원을 기다린다. 국민의 상처는 전혀 치유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역사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네들이 어찌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현대사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정리된 적이 없었기 재문이다.
  해방 후에 이승만 정권은 반민특위를 해체시키므로써 일제시대 활동했던 친일파들이 정권의 중심에서 있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미완의 혁명인 4.19가 5.16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것도 군부쿠테타 때문이었다. 그리고 12.12는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무력에 의한 군부 정권의 성립은 결국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올바른 과거청산 한 번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 것이라. 과거청산으로 역사를 바로잡자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요구이자 따라서 헌정을 파괴하고 정권을 잡기 위해 저지른 반인륜적 국민 실상 행위는 반드시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과거청산 속에서 역사적 진실이 드러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진정한 화해와 관련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실질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또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규명의 중요한 것은 역사가 정확해야 오늘을 사는 세대가 올바른 좌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이를 바탕으로 후세들은 역사의 옮지 못한 전철을 밟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5.18문학이 갖는 역사성은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그 가치는 크다. 여기서 5.18문학이라함은 5.18 광주시민민주항쟁을 중심으로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그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삶을 소설의 형태로 혹은 시로 형상화 시킨 작품으로 한정한다. 하지만 5.18문학의 현주소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것은 광주시민민주항쟁 조차도 명확하게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지금까지 발표된 작품 가운데 소설을 중심으로 5.18문학의 현 주소를 살펴 보겠다 멀지 않은 훗날에 광주시민민주항쟁의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양과 질적인 면에서 알찬 작품을 만날 때 다시 한 번 다루고자 한다.

2

  무엇보다 5.18문학의 가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후세에게 실감나게 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비디오에 의해서 5.18의 면면을 살필 수도 있다. (이는 이미 텔레비전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상영된 바 있다) 그러나 광주시민민주항쟁을 겪는 인물들의 내면과 갈등을 살필 수는 없는게 사실이다. 문학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때문에 소설을 면밀히 살펴 보면 그 중심 내용들이 크게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광주시민민주항쟁 이후 사람들의 고통스런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5.18문학 속에 드리워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설인 이런 측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5.18광주 시민민주항쟁을 반란으로 규명한 군부독재정권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었던 터이다. 그런 와중에도 작가들은 광주시민민주항쟁을 글로 써 냈다는 것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정리하던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을 지적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광주시민민주항쟁을 이끌었던 사람들의 심리적 상황 묘사가 부분적이나마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부각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 5.18을 앓는 사람들의 현실을 아주 세밀히 묘사하고 있어 광주의 아픔이 전혀 치유되진 않고 있음을 고발한다.
  기록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광주시민민주항쟁의 주도적 역할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작품으로 홍희담의 중편인 「깃발」(1988)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노동자 입장에서 본 광주시민민주항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노동자들의 눈으로 본 광주시민민주항쟁은 이중적 성격을 드러내는 지식인들과의 대립과 갈등으로 나타난다.

  그네들은 부상자와 구속자 명단을 놓고 계급적으로 분류해 보았다. 사망자는 제외했다. 잘못 알려지면 그 숫자만 죽었다고 확정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사망자는 좋은 세상이 오면 정확하게 확인해야 될 일이었다. (중략) 유산계급-34명, 지식인계급-240명, 농민계급-47명, 무산자계급-822명. (중략)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를 꼭 기억해야 돼. 그러면 너희들은 알게 될 거야. 어떤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를‥‥ 그것은 곧 너희들의 힘이 될 거야.
                                                                                (풀빛, 281 ∼ 283쪽)

  사실 이런 잣대는 자칫 위험하다. 신승엽의 지적대로 "광주항쟁이 수 많은 노동자층의 참여와 희생 위에서 진행되었다 할지라도 노동자 계급의 주도로 이루어진 항쟁이라기 보다는 범시민적 항쟁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즉 지나치게 노동자 계급 중심으로 광주항쟁의 실상을 그려냄으로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정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깃발」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실-허구임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이다. 즉 5.18에 대해서 미국은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홍희담은 부각시킨다. 다음의 내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6일이었다.(중략)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대문이 열렸다. 고급 승용차들이  달려 나왔다. 어머니는 벽돌담 밑으로 리어카를 밀어붙이면서 숨을 크게 쉬었다.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열 몇 대가 지나쳤다. 차창 너머로 무엇에 쫓기는 듯한 얼굴들이 보였다. 모두가 미국인들이었다. 그들은 들쥐 떼처럼 도시를 빠져 나갔다.
                                                                                        (풀빛, 231쪽)

  이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 작전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군의 병력이등을 사전에 허가했을 것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5.18 이전에 미국인들이 광주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얼마든지 가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주항쟁에 대해서 미국은 분명히 책임이 있다. 군의 병력 이동은 곧 무력 탄압을 허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지금도 광주항쟁에 대해서 일체 관여한 바 없으며 책임도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태도가 쉽게  우리 국민들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은 왜 일까.
  「깃발」에서 우리가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광주항쟁이 실패하게 된 이유를 내면적인 면에서 보았다는 점이다. 노동자 중심의 시민군과 지식인 중심의 시민군은 서로 갈등을 빚으며 결합하지 못한다. 이는 이중적 성격을 보이는 지식인 중심의 시민군의 문제점을 지적함과 동지에 민중항쟁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는 노동자들이 지식인을 포용하는 장면을 삽입하여 일대 화해를 꾀한다. 결국「깃발」에서 홍희담은 민주주의 운동의 방향을 민족 자주 자강의 길로 물꼬를 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광주항쟁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반드시 알려야 함을 강조한 작품으로는 윤정모의 「밤길」(1985)을 들 수 있다. 아울러 국민의 군대인 군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되고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을 지켜야 될 군이 광주를 잘못 찾아 왔음을 알린다. 이는 앞으로도 군이 서 있어야 할 자리. 군이 지켜야 할 곳과 임무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 속으로 한 어린 소년이 뛰어들었지. 주먹만한 돌을 쥐고서... 우리 형아 살려내라! 우리 형아.. 그러자 웬 노파가 달려나가 그 꼬마를 등 뒤로 감싸며 소리쳤다. 병정들아, 여긴 전쟁터가 아니다. 너희들이 잘못 안 거야 돌아가라 어서!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밤길, 335쪽)

  그 진압군에 의해서, 죽어 너브러진 시체, 시체들. 그 형상을 전혀 알이 볼 수 없이 도청 안팎에 쌓여진 주검들. 곤봉으로 맞고 대검에 의해 난도질 당하고 총상에 의해 알 수 없이 짓뭉개진 사람들이 눈을 못감고 있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팔과 목이 잘려나간 시체와 가슴께가 너덜너덜한 시체들도 너브러져 있었던 죽음의 땅 광주는 진압군인 가해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87년에 발표된 정도상의 「십오방 이야기」는 진압군인 가해자가 피해자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컨대 광주항쟁의 상처는 시민군에게만 남겨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압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만복은 특수공작 도중에 동생 만수가 자신의 소대장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달하는 것을 목격한다. 제대 후 자신의 동생이라고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살해 명령을 내린 소대장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죄책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정신을 갖지 못한 만복은 살인자로 몰려 감옥에 들어가 운동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갖는다. 물론 처음에는 데모하는 자들 때문에 자신의 동생이 개입되었고 자신도 광주에 투입되었다고 믿는다. 권력층의 명령에 의해서 광주에 투입된 만복은 감방에서도 끊임없이 투쟁을 전개하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만복의 처지에서 군부를 장악한 독재권력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목도한다. 만복으로 하여금 동생을 쏴 죽이라고 했던 소대장은 바로 군부 권력의 상징이다. 동생을 죽이듯 광주 사람들에게 총, 칼을 겨눈 군부 권력의 반인륜적 행위를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광주에 대한 절도상의 인식은 광주가 광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광주의 지평을 확장하여 광주가 곧 서울이고 부산일 수 있다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광주항쟁이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 광주가 곧 서울이고 부산이라는 것은 광주항쟁의 영원성을 의미한다. 즉 광주항쟁은 독재 권력에 대한 투쟁이었고, 이는 서울이나 부산 그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뜻한다.
  아울러 진압군의 피해의식도 우리가 감싸 안아야 할을 지적한다. 즉 세계성, 보편성으로 보았을 때 진압군으로 파견된 그들이 특수성에서 인식될 사람이 아닙니다. 진압군을 별개로 보지말고 보편성 속에서. 이해하고 화합의 차원으로 안아주어야 한다. 특수성으로 인식될 사람들은 바로 진압군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군부 독재권력을 장악한 무리들이다.
  진압군으로 가해자의 고통을 다른 또 하나의 작품으로 이순원의「얼굴」(1990)을 들 수 있다 역시 진압군으로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의 심적 갈등을 통해 광주항쟁을 조명한다. 정토상의 작품과의 차이점이라면 그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텔레비젼과 비디오에서 공수부대원으로 활약하던 자신의 얼굴을 찾지만, 어디에도 그의 얼굴은 없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얼굴을 찾는다. 그것은 꺼진 텔레비젼에 비쳐졌지만 결국 자신의 얼굴은 마음 속에 있었다.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그의 얼굴에는 철모가 씌어져 있었다. 진압군으로서의 그는 영원히 자신의 행위를 잊지 못하며 고통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오월이 아직도 계속되고'있는 것이다. 그에게 광주의 열흘은 살아갈 날들을 광주의 진압군이라는 진공관에 묻게 만들었다. 한 인간에게 평생을 잊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광주에서의 살륙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는가. 그런데도 가해자의 주범-살해 명령을 내린, 혹은 발포를 지시한 자-은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있는데도 우리는 화해와 용서를 들먹여야 하는가.
  휴가 나갈 군인들을 잡아 놓고 사전에 데모 진압 훈련인 '충정훈련은 진압군을 '악'의 화신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했다. 생각해보라. 공수부대원들에게 충정훈련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공수부대원은 말 그대로 특수부대원이다. 그리고 '충정훈련'은 전형적으로 데모대를 진압하는 훈련이다. 그런데 왜 공수부대원들을 사전에 충정훈련을 시켰는가. 이는 광주항쟁에 대한 제압 이전에 정권장악을 위한 사전 포의를 짐작케하는 요소로 보일 수 있다.
  결국 가해자의 눈을 통해선 작가는 정권장악에 사로잡힌 군부세력의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렇기 본다면 익명의 공수부 대원들은 가해자자기 보다는 피해자차고 보아야 한다. 물론 광주항쟁에 직접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타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분명히 가해자였던 공수부대원의 눈-양심-을 통해 당시 군부의 만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또 많은 공수부대원들이 자신이 공수부패원인 것을 밝히진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광주항쟁에 대한 진압이 자의 적이지 알음을 시사한다.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명예회복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진압군으로 광주에 파견된 군인들은 평생을 우울하게 살아 같 수밖에 없다. 먼 훗날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떳떳하게 자신이 대한민국의 공수부대원이라고 밝히지 못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들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앞서 광주 사람들이 먼저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들을 조종한 수뇌부들이 모두 역사의 심판을 받은 연후에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 때가 되면 그들도 자신의 '얼굴'을 찾을 것이다

3

  광주시민민주항쟁을 가장 먼저 소설화한 작가는 임철우로 알려져 있다. 1984년에 발표된 「봄날」은 피해자의 의식이 정신병으로 확대된 상황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운동권의 언저리에서 맴돌았던 상주는 친구 명부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들리고 괴로워 하다가 정신병을 얻게 된다. 물론 명부는 진압군에 의해서 죽었다. 다만 명부가 상주의 집 앞에서 구원을 요청했을 때 상주네 집 식구들이 듣고도 못들은 척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주네 식구들은 못들었다고 하나 상주는 분명히 들었다면서 자해를 하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목할 것은 '명부'가 죽기 직전에 구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광주항쟁시에 광주의 시민들이 한반도의 모든 민중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호응은 보이지 않을 만큼 미진 하였다. 그리고 아파하는 일부 양식인들이 바로 '상주'하고 할 수 있다. 알면서도 모른체 한 우리들의 낯 두꺼움을 풍자한 소설이 「봄날」이 아닌가 한다.
  아직까지 이 장에는 '상주네 식구들'이 적지 않다. 상주네 식구들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체하는 세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도 아마 이것일게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또 하나의 문제는 이제 그만 잊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세태는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봄날」을 중심으로 상주의 친구 병기의 말을 빌려 보자 "아니 벌써 2년이 지난 일이잖아. 남들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잘들만 살고 있는데 대관절 그 자식만 왜 아직도 그 지경"이냐는 말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또 공선옥의 단편인「목마른 계절」(1993)에서도 "이젠 아줌마도 광주에서 벗어나야 해요. 2, 30년대의 신파가 그 보단 낫거든. 한마디로 아직도 광주? 웬 광주"에서 엿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조적인 표현도 엿 보인다. 그렇다면 광주는 이제 잊혀진 땅의 잊혀진 일인가? 아니다. 분명히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잊는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의 한 끈을 잡고 살아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반도라는 작은 땅덩어리에서 서로 살 부비고 사는데 어찌 이웃의 일을 나몰라라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작가는 이런 역설적인 문장을 통해 오히려 광주항쟁들 부각시키는 것이리라. 다음의 인용문이 이들 보다 명확하게 보여 준다

  "그만 얘기하고 그만 덮어두고 그만 울고 그만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 역사란 그런 거야. 갑오년이 따로 없고 기미년이 따로 없다구. 그러드키 오일팔이 따로 있는게 아냐. 기미년의 삼일운동은 임신년에도 삼일운동으로 이어지듯이 경신년의 오일팔은 계유년의 오일팔로 새로 시작되는 거라구. 역사는 귀신이여. 귀신은 상관 있는 놈도 물고 늘어지지만 상관 있는 놈하고 끈이 맺어진 상관없는 놈들도 끌고 가거든. 그것이 바로 역사 귀신이거든. 상관 없는 년이 어쩌다 상관 있는 놈을 만나 덜커덕 물린 게라고. 그 귀신한테, 배곯은 귀신한테 잡아 먹힌 거거든. 거 멋이냐, 역사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는 거거든. 그런 거거든 "
                                                                    (창작과 '비평사, 목마른 계절 32쪽)
 

  그렇다. 앞에서 논했듯이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한자락 끈을 잡고 살고 있다. 그렇기에 역사 앞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싫든 좋든 5.18광주시민민주항쟁을 누구나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숙명이다. 시민들만이, 혹은 역사가나 작가들만 광주항쟁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주체는 바로 우리 모두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주관자로서 우리는 광주항쟁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것만이 광주의 한을 품고 떠도는 영령들을 고이 쉬게하는 일임을 알아야 된다
  1992년에 발표된 정찬의 「완전한 영혼」과 공선옥의「목숨」도 살아남은 자의 고통스런 삶을 추적하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완전한 영혼」은 '87년 대선이 실패로 끝난 뒤-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열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군부 독재 권력자에게 정권을 넘겼으므로 실패로 규정-광주의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보다 큰 좌절을 느낀다. 역사적 사실의 규명 작업이 또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은 무리에서 떨궈진 이리의 한스런 포효라고 볼 수 있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어디로 갔는가. 그 뜨거웠던 열망, 가슴을 치던 함성, 과연 그것은 우리의 손에 닿을 수 없는 열망이었던가.
                                                                              (풀빛, 완전한 영혼 47쪽)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암담함을 느끼며 혹독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열망이 좌절되면서 광주를 지나온 사람들의 고통을 강도를 더했다. "가끔 괴로운 소리가 들립니다. 무엇인가 허물어지는 소리, 혹은 생명이 파괴되는 잔인한 소리들‥‥하지만 저는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생명들이 저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라는 조금은 긴 인용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아름다운 생명'은 군부 독재 하프를 위해, 주인된 나라를 얻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광주의 열렬들이다. 그래, 아직은 그들의 죽음을 위해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작가는 은폐되고 가려진 진실 속에서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에 공선옥의「목숨」에서 보여지는 광주는 광주 이전의 역사적 사건들과 광주와의 연계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는 공선옥이「목마른 계절」에서 보여준 것처럼 역사는 모두 연결되고 있다는 맥락과 같다. 즉 주인공 재호는' 광주에만 연루된 것이 아니다. 그의 가족은 빨치산의 공비로 이어진다. 여수 반란 사건과 지리산의 공비로 이어지는 '역사의 장' 전라도는 광주항쟁과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역사적으로 아직도 매듭지어지지 않은 여수, 순천 반란 사건과 광주항쟁은 역사의 틀바구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대변한다. 주인된 나라에서 주인답게 살기 위한 것이 그들의 작은 꿈이다.
  공선옥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씨앗불 」(199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도 광주 이후의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광주시민민주항쟁의 환영 속에서 살아가는 위준은 주변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얼룩무늬 군복만 보아도 분노와 공포로 온 몸을 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찌 위준뿐이겠는가. 그런 그들에게 군부독재정권은 쥐꼬리만한 생활보조금으로 광주항쟁을 희석시키려 한다. 몸이 망가진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도 뭐해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마음까지 팔릴 수 없었던 위준의 친구 기정의 분신 자살은 우리의 광주가 현재 어느 위치에 처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돈 삼백 받아묵었는갑더라 어쪄겄냐, 병신 몸에다가 그래도 그놈의 것은 살아서 그새 또 새끼 하나 더 늘었지. 묵고 살길이 아득해서 받았는갑더라. 너라도 안그러겄냐. 안 받겠다고 내빼도 자꾸 주겄다고, 줘야 쓰것다고 꼬드겨싸면 우선 보면 존 것이 돈인디 받아 부렀제. (중략) 지 마누라는 돈 몇푼에 좋아 죽겄다만 저는 속이 팍 썩어문드러졌등갑더라. 술은 술대로 들어가고 속은 속대로 썩어가고, 지 마누라라고 그런 서방 좋겠냐. 지 남편 몸 팔아 마음 팔아 받은 돈 보자리에 싸갖고 날라부줬단다. (중략) 요놈이 인자 마누라 없어졌제 새끼들 없어졌제 몸은 망가졌제, 불 댕기는 수 말고 뭔 수 있어?"
                                                                      (창작과 비평사, (씨앗불) 280쪽)

  이것은 독재정권의 또 다른 학살이다. 만물의 명장인 인간에게 자신의 양심마저 팔아 넘기도록 한 정책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한 처사다. 양심을 지닌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없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정권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살긴 위해서라도, 오일팔 귀신들의 '씨앗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광주의 진실을 밝혀내야만 한다.

4

  마지막으로 5.18문학에 비춰진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논해보자. 인간의 존엄.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인간의 마지막 몸부림이 광주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왜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산화하며 투쟁했는가.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 사람다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85년 발표된 윤정모의 「밤길」에서도 그들의 투쟁을 역사에 알리기 위해 살아 남은 자의 심리를 마지막에 그려 넣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이 이 소설의 가치일 것이다. 마음 속에 드리워진 늙은 신부의 말을 인용해 보자.

  요섭아. 우리도 지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고 있는게 아니란다. 거기에도 장벽은 있다 그 장벽을 깨뜨려 달라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거야. 우린 그걸 해내야 돼. 비록 이 발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해도 이젠 서둘러야 한다.
                                                                                  (풀빛, (깃발) 374쪽)

  이는 살아남은 자들의 의무를 분명하게 표현한다. 살아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을 풀어야 한다. 누명을 벗겨 주어야 된다. 그들은 결코 폭도가 아니고 불순분자도 아니었음을 세상에 알려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 왜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를 역사에 기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광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임을 작가는, 영령들은 당부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홍희담의「깃발」에서도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정자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진압군이 도청을 무력으로 제압할 때 느낀다. 최악의 순간에 느끼는 인식에 대한 믿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시민군은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인식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신의 희생의 좋은 세상을 위한 밑거름으로 인지 한다.

  "죽는 것 두렵지 않아요 어디 산에 파묻히기라도 하면 다행이죠. 살이 썩으면 흙은 영양분을 얻게 되어, 이름 모를 풀꽃을 피우게 할 수도 있겠죠. 재수가 좋으면 진달래를 피울 수도 있구요. 어릴 때 배고프면 산에서 진달래를 많이 따 먹었지요. 내가 죽어서 피운 진달래를 배고픈 어린애들이 따먹으면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
                                                                                  (풀빛, (깃발) 274쪽)

  얼마나 순진 무구하고 아름다운 자기 희생정신인가. 이런 시민군의 죽음에 대한 순박한 인식을 무참하게 깨버리는 폭압적 독재정권을 아무런 역사적 규명없이 화해와 용서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군부 독재정권에 부하뇌동한 보수 언론들도 이제는 올바른 역사 앞에 그 부끄러움을 낱낱히 밝혀야 한다. 문학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존엄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우리는 아직도 투쟁의 선상에 서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5.18문학의 역사성 확립을 위해 한계전도 분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광주시민민주항쟁의 역사성에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부분의 작가들도 이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점에 연연해 하는 것은 우리의 광주항쟁이 역사적으로 그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까닭일 게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은 광주항쟁이 역사 속에서 제자리를 당당하게 찾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서 작가들은 사실적 상황의 천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각도에서 광주항쟁을 조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아직도 그 중심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김영삼 정부는 쫓기듯이 5.18특별법을 만들었고, 이에 저항하는 과거 군부독재 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애초에 국민적 합의를 무시했던 김영삼 정부가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발표한 5.18특별법이 얼마나 제 역할을 다할지 모르겠다. 항간의 우려처럼 4.11 총선이 끝나면 정치적 타협으로 유야무야 또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 것은 노파심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루어 볼 때 5.18문학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그래서 큰 것이다. 문학은 인간과 사회의 거울 역할을 한다. 그 거울이 흐리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고 그저 막막할 뿐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사회 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문학이 제자리를 지킬 때 우리의 역사도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5.18문학의 향후 방향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무엇보다 편향성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이 기록이지만 역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5.18문학은 광주항쟁에 드리워진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집중되어야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1988년에 발표된 최윤의 「저긴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5.18문학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이 작품은 정신질환을 알고 있는 14세의 소녀가 광주항쟁으로 어머니를 잃고 피해의식 속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행태를 집중적으로 추적한다. 소녀의 눈에 비쳐진 광주는 어른들의 눈에 비쳐진 광주와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눈을 벌려 바로 본 광주 이후의 세상은 어른들의 시점과는 다르다. 또 자신에게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광주의 상흔-을 지우고자 노력하는 것은 안스럽기까지 하다. 소녀가 공동 묘지를 찾아 무덤마다 꽃 한송이를 꽂아주는 장면은 광주항쟁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하는가를 암시한다. 투쟁만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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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해 중(문학평론가/시인) : 1961년 경기도 안성 출생 / 한양대 사학과 졸업 / 언어세계 평론부분 신인상수상 / 시집「달을 잉태한 해바라기」/ 주요평론<어둠에 끌어낸 존재의 성찰> <박완서의 세상보기> <인성과 감성의 줄다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