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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차가 멈춰 데려간 곳은 은침한 장소였다(국민신문, 1988. 7)

본문

차가 멈춰 데려간 곳은 음침한 장소였다



지난 5월 18일부터 시작된 5.18 항쟁 관련 사상자 신고가 6월 30일로 마감되었다. 이로써 광주시청과 전남도청에 접수된 사상자수는 사망 9명, 행방불명 86명,부상 548명, 기타 14명 등 모두 657명으로 분류 집계됐다. 아직 5.18당시의 두려움이 온존해 있고 서류구비 조건이 까다로와 아직 신고되지 않은 사상자가 많으리라 추측되지만 관청에 접수된 이 숫자만으로도 당시의 엄청난 참혹상을 말해주고 있다. 업수된 신고 내용을 보면 노인에서 어린애, 일가족 행방불명의 눈물겨운 사연까지 다양하다. 그중에는 공수부대원에 의해 18세의 순결이 짓밟힌 여고생의 기막힌 사연까지 끼어 있어 보는 이를 분노케 한다. 그해 5월 어느날 아무 죄없이 공수대원에게 끌려가 순결을 짓밟힌 유 모양(현재 25세,전남 나주군 남평면 풍림1구). 그녀는 그 때의 충격으로 정신질환까지 일으켜 현재 보성의 어느 암자에서 요양중에 있다.전남도청에 접수된 유모양의 피해 진술서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주)

본인은 당시 경신여고 1학년 재학중이었다. 1980년 5월 19일 오후 4시경 학교에서 귀가중 유동 삼거리에 도착하였을 때 데모군중과 군인들이 대치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강제로 시민들을 구타하고 붙잡아가는 것을 보고 무서워 골목길로 피해 도망갈려고 할 때 갑자기 군인 두명이 와서 팔을 붙잡고 머리를 때리며 억지로 군인차에 승차하게 되었다. 차를 타니 치마로 얼굴을 가리게하고 주위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차는 한참 가다가 남자들을 모두 내리게하고 나와 다른 두여자만 남게 되었다. 차가 멈춰 데리고 간곳은 음침한 장소였다. 그곳엔 군인 뎃명이나와 나와 다른 여자는 강제로 윤간을 당하였다. 몸부림치면서 사정하고 반항하였지만 구타만 수없이 당하였다. 결국 군인들은 자기들의 욕구를 채우고 내보내주었다. 나는 겁이나서 정신없이 그곳을 나와 허탈한 마음과 지친 몸을 지탱하며 밤중에 남평 집까지 걸어서 왔다. 본인은 그때부터 불안감과 공포속에 지내다 자꾸만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어려운 형편속에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치료를 해보았지만 병은 더 악화되고 낫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여 광주 무등복지원에서 1년 정도 지내게 되었다.

그곳에 서 강제로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또한 미쳐 다니던 중 무안에 있는 갱생원에 끌려가 6개월간 감금 생활을 하다가 보호자가 확인되어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계속 치료해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정신병원 입원 절차를 밟아 나주정신병원에 입원하였으나 매달 입원비 26만원을 지불하기에는 농촌생활에 부담이되어 감당치 못하고 다시 집에왔다. 병은 더 악화만되고 불안하여 지금 거주하는 보성자원사절에 의지하고 있다. 당시 피해로 인해 청춘과 인생을 송두리채 파멸되어버린 나를 누구에게 원망해야될지 고통과 좌절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는 본인의 피해를 간곡히 간청하오니 담당자님께서 좋은 선처를 바랍니다. 다시는 나와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빌면서 두서없이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