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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성명서 및 유인물] 신문에 싣지 못한 소식-5.17군사 쿠테타의 내막/현직기자 박, 김, 신 1980.5.

본문

신문에 싣지 못한 소식


─ 5·17 군사 쿠데타의 내막 ─



1. 배경

수세에 몰린 전두환 군부 일파는 드디어 지난 5월 12일, 서부전선의 군대를 서울로 빼돌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미군의 강력한 개입으로 실패하였다(신문보도:서부전선 비무장지대 남방에서 미군이 정체불명의 군인들과 총격전). 이같은 소식을 전해 들은 학생들은 이러한 흉계에 분격하여 가두시위를 결의하고 13일부터 시가로 진출, 14일, 15일에 이르기까지 3일간 ‘계엄철폐’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이에 공화당도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게 µ 으로써 20일 임시국회에서의 계엄령 해제 결의는 명약관화한 것이 되었다. 이로써 재야·신민·공화·학생세력간에 일시적인 연합세력이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전두환, 신현확 일파는 결정적인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2. 실행

눈앞에 다가선 패배에 당황한 전두환은 중동에서 귀임한 최 대통령을 방문, 군사 쿠데타에 앞장서 줄 것을 강요했으나 이를 거부하자(“내 목과 내 생명을 걸어도 그 짓은 못해…”라고) 대통령을 젖히고 신현확 총리를 시켜 비상각의를 주재케 하여 십여 분 만에 일부 정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쿠데타 안을 통과시켜 합법성을 위장하였다. 그리하여 쿠데타는 비상계엄 확대 형식으로 선포되었다. 미 국무성은 이것을 ‘비열한 쿠데타’라고 논평했다. 이미 김대중, 김종필, 재야인사, 국회의원, 학생 등 모든 정치세력이 계엄령 확대 선포 이전에 체포되었고, 쿠데타에 반대한 김옥길 장관을 비난하는 수만 장의 전단이 시내에 살포되었다. 이와 함께 김옥길 이하 최 대통령 세력을 내각에서 제거시키기 위해 개각을 단행하였다. 전두환, 신현확 일파의 원래 계획은 김대중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즉각 처형하고, 김종필을 부정축재로 하여 매장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김대중의 처형 계획에 쐐기를 박았고, 술렁대는 대전시의 움직임은 김종필 문제를 쉽게 처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부산·마산·대구의 봉기를 경계하여 김영삼을 체포하지 못한 전두환은 호남지역의 강력한 반박에 부딪쳐 곤욕을 치루고 있다. 또한 실제로 중부·동부 전선의 사령관들과 장성들, 그리고 지방군인은 전혀 전두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또 9사단을 휴전선에서 빼내 미군과 교전을 했는데(16일 신문보도 : 정체불명의 사람과 교전 또는 북괴도발이라고 왜곡 보도시킴), 이로써 전두환은 자기 세력유지를 위해 국군을 북방의 외부로부터 세 번 이탈시킨 것이다.(12.12, 5.12, 5.15사태). 현재 박충훈 꼭두각시 내각의 배후에는 15인군사혁명위원회가 결성되어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3. 전망

광주일원과 목포 등 전남지역의 시민 희생자는 총 4천여 명(5월 25일 현재 사망 6백여명)에 이르고 있으며, 광주의 자체수습이란 것도 정부와 타협하는 대화의 수습이 아니라 새로운 탄압의 시작을 위한 자체정비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방향으로 정국이 치닫을 때 현 군사정부는 두 달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을 가지게 되었다고 분석자들은 말한다. 한국의 한 정치가는 “그는 군부에 너무 많은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는 안전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주 봉기가 일어나자 전두환은 거의 매일 밤 숙소를 바꾸기 시작했다. 내부집단의 극소수만이 그가 어디에 머무는지 알고 있다.

정부가 신경을 주로 시민 소요사태에 집중시키고 있는 동안 집권세력 내부에는 또다른 분쟁지대가 있으니, 그것은 경제문제이다. 한국이 외자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전두환의 권력유지는 해외투자가들을 위협했다. 소요가 있기 전에도 많은 중역들이 불안해 했다. 한국은 이제 더이상 저임노동의 시장이 아니며, 임금은 지난 3년 동안 두 배로 올랐다. 20%가 넘는 인플레로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요구를 계속할 것이다. 덧붙여 한국은 자연자원이 부족하고 노동분규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이다. 국고는 민간차관 20억불 이상을 꾸어들일 필요가 있는데, 정치적 상황의 혼란은 이 차관 유치를 어렵게 하고 있다. “금년 말이면 한국인들은 아마 비축금을 다 써 버릴 것입니다”라고 한 미국의 은행가는 말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1981년은 재앙의 해일 것입니다”

한국내의 사태들은 워싱턴을 놀라게 했다. 박 대통령 피살이 있은 후 줄곧 카터 행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반체제 인사들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 둘 것을 격려했다. 또한 백악관은 광주사태를 다뤄 나가는 전두환의 방식에 대해 불쾌함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관리들은 “단 하나의 고무적인 표시는 전두환이 북Â 전선에서 군대를 뽑아내고 있다는 내용을 미국에 알려 왔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전두환이 지난해 12월 군사 쿠데타를 꾀할 때는 미국에 사실을 알리는 일을 무시했었다.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지난주의 폭동사태는 전라도 지방에 국한되었지만, 한국내의 다른 지방에서도 저항은 있었으며 더 많은 난관의 표징이 앞에 가로놓여있다. 서울의 신문기자들은 정부의 검열에 항의하여 업무를 거부했다. 국회의 야당의원들은 대거 사임했으며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미 지하로 잠적해 버렸다.

만일 전두환이 반체제 세력을 계속 탄압한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폭발은 더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 반체제 운동가들이 무기더미 위에 앉게 될 때는 싸움은 이전보다 훨씬 참혹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분석가들은 사태의 전개과정이 걷잡을 수 없는 내전이나 혹은 박정희 보다도 더 야만적인 독재의 확립으로 종식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어느 반체제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도 자유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또 하나의 쿠데타를 이 나라가 겪어 내는 일입니다”

(제한된 부수이오니, 이것을 주으신 분은 되도록 여러 사람과 나누어 보아 이 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합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의로운 민주운동가들이 계속 체포되고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 자신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청되고 있습니다. 또 한 번 수십 년 독재를 허용하느냐는 우리 국민 모두의 확고한 민주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민주주의 만세!)


현직기자 박, 김,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