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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성명서 및 유인물] 고등법원 최후진술/홍남순, 정동년, 김종배, 김상윤, 양강섭, 송선태, 정상용 1980.12.17.

본문

고등군법 최후진술


장소:광주 상무대 일시:1980. 12. 17 오전 10시부터



홍남순(변호사. 68세)

먼저 본인을 위시한 광주사태로인한 모든 구속자들이 서울로 가서 공판을 받아야 하는데 이곳 광주에서 고등군법회의 공판을 받게 조치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본인은 1심재판 과정을 보고 항소를 재기하지 않을려고 하였으나 이건 광주사태의 공판은 국내는 물론이려니와 국제적으로도 중대한 관심으로 결과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폭도대장으로 일컬으고 있는데 폭도대장이 항소를 않고 있으면 마치 1심공판에 승복한 인상을 받을우려가 있고 광주사태로 인하여 구속된 학생. 청년들의 간곡한 권유도 있었고 또한 역사적인 재판이기 때문에 항소를 하기에 이른것입니다. 금번 광주사태로 인하여 젊은 청년, 학생들 中에 사형선고를 받은분이 5명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본인을 비롯하여 7명인데 항소심 공판부터 유덕(有德)한 장군두분과 진실을 밝힐것으로 생각되는 법무사 세분, 심판관님들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본인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증거신청을 하였으나 이걸 모두 기각한것을 보고 1심과 항소심도 다를바가 없다라고 보여집니다.

본인이 제출한 항소이유서는 46페이지와 항소이유보충서 5페이지를 제출하였기 때문에 여러말씀 드리지 않고 간단히 몇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광주학생들의 시위는 5월 13일부터 교내시위로 시작되어 5월 16일까지 햇불시위를 마지막으로 5월19일부터 정상수업을 하자는 결과로 그야말로 평화적이고 질서정연한 시위였다는 것은 80만의 광주시민들은 한결 같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5월 17일 0시를 기하여 계엄확대 선포로 인하여 예비검속이 있을것이라는情報를 들었고, 많은친지들이 피신할것을 권유하였으나 예비검속이라는것은 공산치하의 사회안전법에 있어서나 해당되는 것이지 이번 사태는 상관이 없을것이라고 이에 권유를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친척들과 친지들의 간곡한 권유도 있었고 나의 둘째 아들이 연세대학재학중에 있기때문에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어 나와 내자와 잠깐다녀오기로하여 5월 19일전부 두절된 교통망을 뚫고 순천을 경유하여 서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5월 20일 서울서 들으니까 광주통신망이 모두 끈기고 교통이 모두 두절되었다는 말을 듣고 광주사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으로 생각되어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의 제2의 고향인 광주사태에 진상을 알아야하겠고 죽어도 나의 집에 가서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21일 광주에 도착하게 된것이다.

광주에 와서 사태를 보니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총을 가지고 다니은가 하면 온차량들이 계엄당국에서 지칭하는 폭도들에게 점유되어 시내를 종횡무진으로 질주하였고, 軍警들이 모두 철수하여 治安이 마비상태였던 것을 보고 이사태를 수습치 않으면 80만 광주시민이 생존과 死活의 문제라는 것을 직감하고 사태수습에 나서기로 하였고 광주경찰서 정보과 정영재를 비롯한 직원과 당시 副知事였던 정시채, 당시 副市長이였던 정채균등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사태수습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사태수습대책위원회가 세군데 있었는데 도청 부지사가 주관하는 도청수습위원회와 中央敎會 수습위원회와 남동성당 수습위원회가 있었는데 본인은 軍·官·民이 모두 합심하여 사태수습을 하자고 제의하였고, 속히 무기를 회수하여 治安은 경찰로 하여금 유지키로하자고 역설하였고 계엄당국과 연락하여 더이상 유혈을 막고자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하였던 것입니다.

본인은 결과적으로 이사태 수습에 나섰던것이 죄가되어 48일동안을 거의 잠을 재우지 않고 수사를 강행하였고, 나의 妻, 세째아들을 인질로 감금하였고, 본인의 사무소 사무장 정광진군까지 구속 68일동안만에 가하였고 金大中씨로 하여금 2천만원을 받아 광주에 양대학에 자금으로 데주어 데모를 하게 끔 획책하였다는 진술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이미 광주사태는 다른피고인들께서 상세히 진술하였기때문에 더이상 언급을 않겠습니다만, 본인에게 둘러 씌여전 내란 중요임무종사등 죄에 관하여 원심사실판시중 문제가된 “이제와서 무기를 내놓는다는 것은 말도안된다.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목욕까지하고 왔다”라고 “김종배” “장상용”등에게 무력행쟁을 계속하도록 격려하였다라는 부분이다.

“이종기”변호사가 했다고 진술하고 “김종배”등은 자기들의 작성된 진술서는 고문에 못이겨 수사관들이 요구하는데로 강요된 진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내란죄를 적용 무기형을 선고한 것은 한마디로 각본에 의한것이다.

적어도 내란죄가 구성될려면 가장 기본적인것이 목적과 조직인것이다. 목적도 업소 조직도 없는데 어떻게 내란죄가 구성될 수 있겠는가.1 일본판례에 의하더라도 소화 5년때 당시 일본 수상이었던 이누가이를 일본 육해군청년장교 200명등이 수상 관저를 습격하여 저격 살해하였을시에도 수사당국은 내란죄등으로 기소하였으나 내란죄 부분을 무죄판결을 하였으며 神兵때사건, 혁명당사건때에도 내란죄등으로 기소하였으나 역시 내란부분에 관하여서는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고 조선총독부 사이또 미노루, 다까나 고려조등의 저격 사건때에도 역시 내란죄 부분에 관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였으며 일제식민지 통치하에서도 301041운동시 조선총독부 발표에 의하여도 총동원된 인원은 136만 3천 9백여명.

학살자 6천6백5십9명 부상자만 4천5백65명 구속자 52만 7천7백7십명이나되는 大獨立운동 사건때도 역시 내란죄로 처벌을 못했는데 어떻게 광주사태가 내란죄에 해당되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6.3데모때만 하더라도 학생시위를 체계있고 조직화 된것으로 광범위게 전개하여 한일 협정을 무효화 하라는데 있었을뿐 직접적으로 국가의 기본조직을 강압으로 해산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것이 아니었고 다만 민중이 시위에 호흥함으로써 폭동화대면 국회가 스스로 해산하리라는 사태의 현실을 예상한것에 불과한 것이므로 같은 피고인들이 국가를 문란케할 목적으로 폭동한것을 음모하였다거나 선동이라 볼수없다. 68도 1056호로서 판시한 사실로 보더라도 본인을 비롯한 광주사태로 인하여 구속된자 들중 내란죄 부분에 대하여는 당연히 무죄인것입니다.

그리고 사태수습에 임하였던 어린 學生과 청년들이 다섯명이나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을 일곱명이 받았는데 어떻게 해서 사형이고 무기가 되는지 법조인이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젊은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를 질어지고 나갈 사람들인데 이런 억울함이 없이 명백히 가려주어야하며 전두환 대통령에게로 보고를 하여 광주사태로 인하여 구속된 모든 사람들을 하루속히 석방되도록 德을 베풀고 국민의 화해를 추구하도록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만 저의 최후진술을 마치겠습니다(1시간 15분에 걸쳐 진술하였나 요지만 간출였음)

김성용(광주 남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이런모양으로나마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재판부 여러분과 나를 위해 오셔주신 윤대주교님을 비롯하여 동료 神父님들과 修女님 교형 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

원심때와는 달리 재판분위기가 대조적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화해로서 받아 드리고 싶다. 또한편 나는 유구무언이라고만 할까 했는데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말할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역사의 한장으로 기록되기 때문에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재판서에 있는 법무사들께서 신총하게 듣는 태도를 보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 재판할때부터 이군법 재판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1 그것은 조작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정하기로 했다. 재판석에 있는 여러분이나 나나 다 하나님의 심판앞에 나갈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있는 모든 이들이 증인 될것이며 神父인 나를 끼워주신 하나님의 섭리로 이렇게 된것이라괴 본다 또 이고등군법회의 건물도 증거가 되것이다(계속)

우리속담에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는데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격언이 있다. “불스복스 보삐리 복스데라는 말을 해석하면 백성의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일에 거부하고 역행하면 역천으로 망했다 나는 교도소에 가기가 정말 싫었다. 공군수사대의 수사고나에게 차라리 나를 총으로 쏴 죽여라 하고 말했다. 정말내가왜.1(수갑이 감겨있는 왼손을 들어보이면서)이러한 모스으로 있어야만 하는가 그러나 교도소에 있는동안 이것은 바로 나에게 주신 하葡님의 섭리임을 깨달았고 지금현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있는 것이다 광주사태는 이런 비유로 이야기할 수 있다 .

사자새끼들과 여들의 피에 잔치라고…… 젭회잔치는 광주사태를 통해서 잔치를 벌였고, 피에 굶주린 사자들은 포식을 했다. 제2회 피의 잔치는 505보안부대 지하실에서 개과에 속하는 무리들이 할탔다 제3회 피의잔치는 현재 이재판정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나는 인간이하의 수모를 당했다. 1심때는 박모소령이 나에게 넋두리를 하는등 수모를 했다(법무사가 개인적인 인신공격을 금하자라고 말하자 더큰소리로) 그사람을 통해 여럿을 얘기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재판부를 가리키며) 내가 당한 수모에 비하면 억분의 일도 안될것이다(잠시 감정을 억제하는것 같았음)…침묵…잠시휴정…또 성경이 말씀으로 비위를 들어 이야기하겠다. 사무엘하 11장 12장에 다윗은 성실한 살마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받세바를 범하였다. 받세받의 몸에 태기가 있다는것을 알고 우리아를 故場에서 불러들여 받세바와 동침을 시키려 했으나 우리아는 전쟁중에 있는 다른동료들을 생각하면 그럴수 없노라고 두번씩이나 거절하였다.

다윗은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위해 우리아를 죽게한다. 자기의 죄를 짓고 그 죄를 은폐하려고 계속적인 죄를 짖게된다. 그때에 나단이라는 예언자를 보내어 다윗은 회개하지만 그 벌로 죄악의 씨는 죽고 자식에의해 반란이 일아나고 그의 첩들으 내낮에 욕을 당하였다. 나단예언자의 역활을 바로 여기있는 학생들이 하고 있다.

결국 다윗은 회개했지만 현재 정권을 잡은다들은 회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화해의 마무리를 짓기위해서 광주사태진상이 자세히 밝혀져야 하며 복중의 중병환자를 살리기위해서는 아프고 견딜수없는 개복수술을 해야되지 않겠습니까.1(법무사가 고개를 끄덕임)누가복음(10장 25절에 보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인데 어떤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다죽게되어 길바닥에 쓰러져 있을때 자기동족인 사람은 모두 모른체 그냥 지나갔는데 자기동족이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 구해주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말은 테이프에 다실려있다. 여러분이 정말(재판부를 가리키며)착한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법무사 또한번 고개를 끄덕임)국형만은 제발없이 해달라고 애원했다. 결코 이름있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광주사태해결은그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사과만했으면 한마디로 사태는 즉시 회복되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간에 불화가 생기면 그점은 화해 해야한다. 잘못은 정책적으로 숨기려해서는 안되며 광주사태로 반듯이 화해되어야 한다. 공군부대 영창에서 나의 창문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께서 헬기로 내려 오는 것을 보았고 교도소에서 발간되는 자선 신문에서도 보았다. 광주사태는 없었던 걸로 돌리려고 한다는 것을, 나는 지금 15년형을 받았다.

나도 교도소에 있으면 있을수록 영광이 되지만 국가는 손해일것이다. 나는 어제 아핌에 복음에서 너의는 재판을 공정하게 하라는 것을 읽었다.(중간에 도깨비잔치 잡견(똥깨)들의 잔치말이 나왔는데 정리하지 못했음나는 기독교 장로로서 신앙을 보객하는 심정으로 말하겠다. 칭찬을 받을만한 마땅한 행위가 내란죄가되어 10년 형을 선고받고 추운감방에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분명하신 음성을 듣고 이 고텅을 참을수가 있었다.

예수님이 3년동안 하늘의 복음를 선포함녀서 그를 믿음으로서 구원 받게하고, 가난한자 병든자 소외방하고 억압받는자 갖힌자들을 돌보면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것뿐인데 그당시위정자들이나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의 질시를 받아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았는가.1 예수님말씀에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 했지만 너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보복하지 말라 마태복음 5장 38~40절에는 누구든지 너의 오른뺨을 치거든 외편도 내밀어주라고 하셨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치아가 하나빠지면 두개를 빼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감정으로는 절대 안될것은 미움과 복수심은 파괴만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원수를 갚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고 당신께서 갚으리라고 하시면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나는 내가당한 수모와 광주사태로 받은 상처를 참아 내고있다. 그리고 참으로 그들이 “칼을 쓴는자는 칼로 망한다”하신 말씀을 깨달고 하느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회개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분명 이번 광주 사태로 미움과 미움 보복과 복수의 비참한 참극이었다. 22일에 광주에 와보니 15.6세되는 아이들까지 총기를 들고 거리를 질주하며 시체는 여기저기 버려진채 있고 시민들은 분노와 슬픔으로 아우성치는 기막힌 현장이었다. 누군들 보고만 있겠는가.1 하물며 기독교적인 양심과 학자의 본분을 가진나는 주위의 강력한 권유도 있고해서 이사태를 하루빨리 수습하여 한생명이라도 희생을 막아야겠다는 당연한 노력을 했는데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내란죄가 된단말인가.1 공소장에는 나를 정신분열자가 아닌바에야 도무지 앞뒤가 맞지않게 해놨다.(3가지 사항지적 중략)그리고 나흘동안 학생위우너장인 김창길은 죄명은 소요 포고인데 하루동안 위원장을 맡은 김종배는 어떻게 사형을 받아야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명예문제인데 기왕에 터무니없는 내란죄로 10년을 줄바에야 무기형이라도 좋으니 어린 학생들 밑에서 그 지시를 받아 놀아난 것처럼 꾸미지 말고 나를 차라리 수괴로 해달라 명색이 교수와 변화사 성직자들인데 수괴 정도가 더어울리지 않겠는가.1 그래야 사람들도 혹시나 하고 믿지 않겠느가.1 참 멍청한 재판부여 공소장이다.



정동년(전남대 복학생 38세 사형)

우선 후배들에게 미안한 감을 금치 못합니다)제가 수괴로 만들어진 이상 수괴의 역활이 너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할이야기를 후배들이 다한것 같습니다만 이번 광주사태에 길가는 시민들을 붙잡아 정말 수괴가 있었느냐고 물어보십시요 아마도 광주사태에 두목 즉 수괴가 있었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간 너무도 당했습니다. 수사받은 3개월간을 살이 부르터 찢어지고 뼈가 뿌러지며 온갖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수사받은 3개월간은 살이 부르터 찢어지고 뼈가 뿌러지며 온갖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정신병자가 된상태였습니다. 그많은 정신병자들이 영창안에서 악을 쓰면 당담 헌병은 발로짖이기고 때렸습니다. 제후배인 박용성이라는 정말 정신병자가들이 영창안에서 악을 쓰면 당담헌병은 발로 짖이기고 때렸습니다. 제후배인 박용성이는 정말 정신병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정말이애는 우리들의 산증인이 될것입니다. 1심때로 법무사나 모든 재판관들의 눈은 모두 감겨져 이었습니다.

그예를 들면 제공소장에서 제일 중요한 5월 5일 서울에 간적이 없다는 증거물이 될 수 있는 학원 업무일지에 대하여 재판부의 태도입니다. 그업무일지에는 제가 5월5일에 학원에 갔다는 것이 기재되어있고 학생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시간에도 저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 업무일지를 합수단에서 수사를 받을때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증거로 채택 했는데 심판부에서는 합수단에 조회했는데 회신이 없다고 하여 이것을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이번 재판만은 그렇게는 않겠지하는 한가닥 희망이었는데 역시 지금도 심판부의 눈은 감겨져 있습니다. 전제 정치하에서도 세조는 사육신들을 친국하면서 죄가 있다고 역적질을 했노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그들에게 다만 잘못했다고만 해라 그러면 용서를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전제군주로서도 내란 역적질을 인정한 죄인에게 까지도 의사를 물었습니다. 하물면 정치가 빌달한 민주정치하에서 국민의 소리를 무사하고 눈을 감고 있는 재판부에게 아무런 할말이 없습니다.

나는 더이상 이재판부에 할말이 없습니다.


김종배(조선대 26세 사형)

먼저 추운 날씨인데도 이 재판을 방청하시기 위해 뒤에 앉아계신 여러분께 가사드리며 이재판을 구관하신 재판부에 사의를 표합니다. 구약성서에 보면 다윗이란 왕은 동서고금을 통해 성군이라고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초대왕이었던 사물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모든 전쟁에서 전승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히시므로 날로 백성들에게 그 신망토가 높고 다윗은 만만이요 사울은 천천이라는 노래까지 부르게 되니 사물왕은 다윗이 왕이 될까봐 다윗을 죽이려고 결심했습니다. 그걸 안 다윗은 사울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물왕을 죽일수 있는 기회가 세번씩이나 있었으나 죽이지 아니하고 사울을 살려 보냈 다윗은 원수를 죽이지 아니하는 크나큰 덕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다우시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이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라를 다스려 성군이라 불리었습니다. 오늘 이시점에서 십자가가 없는 종교계를 볼때 통감아니할 수 없으며 택임있는 정치인과 행정당국이 책임을 지지 못하는 이 비참한 현실속에 니나라의 둁겨사를 더듬어보면 역대로 통치자는 있어어도 참다운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이땅위에서 모든 비리와 부정과 부패는 존재해서는 안될것이며 이땅위에 정의로운 사회가 이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는 새벽마다 다윗과 같은 참다운 지도자가 탄생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옥에 있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이제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하고 억눌리며 억울한자와 친구가 되어 주셨던것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유태인들에게 고발 당해 죄인 취급을 받고 빌라드 법정에서 정죄 함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광주사태는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할것입니다. 허나 광주사태에 대해 재판을 하는 재판부가 굳이 광주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내가 혼자서 이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고 달게 십자가를 지게해 주십시요.


김상윤(전남대 복학생 32세 징역 20년)

먼저 정동년 선배에게 사과 드릴랍니다(살짝 뒤를 돌아보면서)정동년 선배 미안합니다. 저는 지금 20년형이지만 저도 사형을 생각했었습니다. 교도소 독방으로 이감와서 정말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받으면 가죽 수정을 찰텐데 밥은 어떻게 먹을까 손이 묶여져 있는데 걸려져 있는 수건을 어떻게 내릴까.1 생각하고 연습을 했습니다.

심지어 대변을 보고 밑을 닦는 연습도 했습니다. 죽는구나 정말 죄없이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평소에 잊어 버렸던 모든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다섯여섯살때 살던 시골의 골목길 중학교때의 일들이 정말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한순간에 죽는것이 아니고 죽음을 대한다는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개인 얘기는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만 오늘은 하겠습니다.

5월 28일 상무대 영창에 앉아 있는데 제방에서 밖이 보입니다 여자들이 있다고 해서 밖을 보니 제 아내가앉아있고 처재가 앉아 있었답니다. 가슴이 덜걱 내려 앉았습니다.이것이 무슨일이냐 조금 있으니까 수사 받으러 나가는 사람들의 명단속에서 제동생 이름이나와 쳐다보니 5월초에 제대한 제동생놈이 포도들이 하는 자세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정말 이것이 무엇이다냐고 생각했습니다.

며칠후에 수사관이 불러서 나가보니 사진한장을 내주며 아는 사람인가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평소 동생처럼 지내고 제 서점에서 같이 일하던 윤상원이 입이 꽉 다물려 있는 상태로 꿇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 내가 이렇게 죽었구나 죽은이라는 것이 이렇게 처절한 것이구나 어쩌다가 우리 섬에서 일하다가 그렇게 되었냐 어떻게든 살아나가서 네 무덤에 풀이라도 깍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며칠후에 버젓한 수사관들이 동생 아내 자제를 풀어주겠다는 조건을 세워 날조된 사실을 가지고와 인정하게끔 중용했고 거절하면 무수히 터졌습니다.

검찰에 기소되고 난후에도 검찰관은 한사람은 나가야하고 아내를 조건화 시켰습니다. 아내는 3월 4일에 나갔는데 이때는 검찰기소장에 무인을 찍은후 였습니다. 지금도 저는 하나 잘못한것이 없고 별 생각이 없습니다만 정동년 형을 위해서라면 무릎을 꿇겠습니다. 정말 이것이 장난이라면 이런 아슬아슬한 정난을 제발 그만 둡시다. 하나의 이야기 더 하겠습니다.

미국 바로 아랫쪽에 조금한 공화국 도미니크란 나라가 있습니다. 이나라 경제는 미국와의 사탕쿼터로 꾸며 나갔는데 미국이 갑자기 사탕 수입을 중지해 이나라 경제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혼란을 해결하기위해 의원들이 모였는데 신용한 의견이 나오지 않고 걱정만 하고 있는데 가장 젊은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내가 미국 전쟁사를 살펴보니 미국과 싸워 이긴냐라는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미국에서 진나라는 다 살드라 우리가 미국과 전쟁을 하면 최근에 진 일본보다는 잘살것이라고 이야기 하니 모두 그럴듯하며 찬성하고 전쟁준비를 서두르는데 한나이 먹은 노의원이 만약 우리가 미국에 이긴면 어쩐다냐 우리는 쫄딱 망할것이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정하지 못하고 논쟁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문제의 촛점은 찾지 못한다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재판정도 그렇습니다. 학생들에게 내란죄를 씌우고 있는 재판부도 그반대편도 모두 언어의 마술에 걸려 있는것 같습니다.

제발 언어의 마술에 걸려 있는것 같습니다.

제발 언어의 마술에서 풀려 순수한 입장으로 돌아가 문제의 촛점을 찾아봅시다

더이상 말할 기회도 없고하니 이제 남은것은 행동뿐입니다.

이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양강섭(전대학생회 총무부장 징역 10년)

전남대학교 학생회장단이 총무부장을 맡은 사람으로서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남대 학생회는 천이백명의 학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속에 탄성했습니다. 이런 학생회를 몇몇사람이 움직이고 조정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정동년이 무엇이고 김상윤이 무엇입니까.1 학생회 간부로 정말 이해 할 수 없고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남대 학생회는 학교 당국이 인정하고 4월에 민준식 총장이 임명하고 또 학교당국은 학생회를 부활하기로 문교부 당국의 지시에 의해서였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선거 문교부 당국의 합의에 의해 탄생된 합법적인 기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어디에가고 간부들만이 책임을 지고 이자리에서 내란죄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1 그렇다면 다같이 서야합니다. 문교부 당국도 학교당국도 만이천여명이 학우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들에게 벌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저희들만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회장단은 6년만에 부활했기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있었고 다만 학생들이 저지른 일들을 수습하러 다녔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1학년 입영 문제를 들수 있습니다. 민주화 대세에 따른 전국학생들의 움직임에 전남대 학생들도 움직였던것 뿐이빈다.

저는 5월 13일 학생들이 시외로 나간다는 이야기를 학생회 간부실에서 전화로 연락을 받고 정문앞으로 나가보니 교문밖으로 학생들이 진출하려는 찰라였습니다. 그때 저는 몸을 던져 막았습니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교수님들도 몇분 양심있는 교수를 제외하고는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을 학생회 총무부장으로 막았던 것입니다. 14일에도 학생회의실에서 잔무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6천여명의 학생들이 도청광장에 모여 학생회장을 찾고 있다는 전화였습니다. 계속 여러번 전화가 왔었습니다. 박관련 회장이 나가서 수습을 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도청 광장으로 나가 민주화 성전을 수습하게 된것입니다. 15일은 도청광장을 학생회 간부들이 나가서 깨끗하게 청소했으며 16일 햇불행진에는 도경국장 민준식 총장, 학생회 간부가 모여 최대한 보호와 협조를 하겠다는 도경국장과 민총장의 합의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결과는 그야말로 평화적이고 질서있는 행위였습니다. 경제 역사적으로 어려움이 처해있는 이시대에 저희들의 힘도 갈수 있도록 해주십시요.


송선태(전남대생 징역 5년)

(비꼬는 소리로) 먼곳에서 이재판을 위하여 내려와 주신 심판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께서는 위에서 어떠한 지시를 받아 이재판을 진행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렇게 오판되고 있는 이재판에서 조금이라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줌의 양심을 갖는것이 당연한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나는 영어의 몸이라서 우리집 김장이 끝났는지 도대체 소식을 모르고 살지만 차라리 고아였다면 마음 편할것 같습니다. 또 지금 심정은 동해 서해 남해 바다에 풍덩 빠져죽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해야할 말을 하고도 받아야할 보상은 깜깜한 감옥에서 울분과 신음 고통과 오열을 보상 받을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재판은 한시바삐 무죄 석방해야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욱 어둡게 만들어 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어둡기만한 이땅에서 저희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것입니까.1

당연히 옳은 소리를 옳고 반영되는 밝고 예의바른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몇개의 돌맹이와 몇개의 햇불로서 정부가 전복될수 있습니까.1 만약 그런 약체의 정부라고 생각하였다면 우리들은 일찍부터 공장원이나 산업전선에 뛰어 들었지 이렇게 공부를 하지 않았을것입니다. 이재판정에서 3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보존 공개 사과의 3가지 입니다. 첫째 보존하라! 이번 광주사태에 관해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존하고 모든 자료를 수집 보존하여 훗날 여러사람들이 정확하게 알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둘째, 공개하라! 지금까지의 모든과정 체포, 수사, 기소, 재판과정을 하나의 왜곡도 없이 또 정치적 야심을 가진 정치가들에게 이용됨이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공개해 주어야겠습니다.

셋째, 사과하라! 모든 무고한 사람들에게 재판부는 당연히 사과를 해야합니다. 지금 저는 국민학교 4학년때 배운 인사말이 생각납니다.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심판부는 우리에게 안녕히 가십시요. 우리는 실례했습니다. 또 미안합니다에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총과 칼로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화해속에서 만나야 할것입니다.(중략)


정상용(회사원 징역 무기)

우리는 떳떳하고 자랑스럽다. 역사 앞이나 뒤에계시는 가족들 앞에서도 (제일 감동적인 최후 진술이었는데 정리가 되지 않았음 재판정이 눈물 바다가 되었음)

민주주의 만세! 자유 광주시민 만세!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