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성명서 및 유인물]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님께/광주사태 구속자 가족 일동 1980.12.12.
본문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님께
자유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전권 특명대사로서 한미관계및 주변국가와의 제반업무를 관장하시느라 공사 다망하실 대사님께 이처럼 또 한번 번거러움을 끼쳐드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대사님께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공통된 이익을 위하여 노력을 아끼시지 않으메 말할수 없는 감사를 올립니다.
저희는 광주사태에 관련하여 구속된 피의자들의 가족의 연명으로 이처럼 탄원서를 올립니다.
생각해보면 저희들은 문화적 배경도 국가적 동일성도 서로가 다른 위치에도 있음에 불구하고 오늘날에 한국과 미국의 국가적 운명이 서로 뗄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음을 그 어떤 현실로 받아들리는바 이기에 이처럼 미국 대사님께 저희들이 소견을 말씀드려 봅니다.
돌이켜 보건데 저희한민족은 세계사에 있어서 가장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지닌 단일민족 국가로서 그 지나온길은 분단과 통일 그리고 외세의 틈입에서 자기것을 지키려했던 부단한 노력으로 점철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정치학적으로 육교적인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어쩔수없이 주변강대국과의 관련을 피할 수 없었음을 인정합니다.
생각해보면 36년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의 각축장이 되었던 그 암담한 시절로부터 벗어나게 된데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들의 노력을 세삼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이남에는 미군이 진주하며 군정을 펼쳤을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불가항력적으로 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전략지점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그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것 입니다.
일언지하로 미국은 우리민족의 운명을 근30여년이상 규정해 왔던것입니다.
돌이켜보건데 그동안 적어도 남한에서의 미국에 대한 민족감정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우호적인것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분단의 비극은 갈수록 영속화되었고 그 배후에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남한의 기존정치체재가 의도적으로 그 영속화를 조장하여 왔다는 정치학자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흘려 버릴수만은 없었습니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느끼는것이었지만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적인 견해는 우리들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곤 했습니다.
미국은 스스로 자부하듯 자발적인 식민과정에서 이루어진 더군다나 혈통과 지역적 출신이다는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형성된 이질국가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반만년의 동일한 공통적 경험을 가진 단일민족국가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한국세대에서 통일이란 단순히 감상적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분단이 영속화되고 있다는 그사실 자체가 시시각각으로 민족의 또하나의 비극을 가중 시키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이야기할때 많은 사람들이 또하나의 유일한 분단국인 독일의 예를들어 비교합니다.
그러나 독일은 세계 1차 2차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었고 인류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었던 민족말살정책을 극악한 방법으로 자행 했던것이 불과 30여년전의 일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배경이 두나라의 분단 현실은 동일한 자원의 관점에서 비교 한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현재 남한의 기성세대가 과거 30여년전 한국동란에서 얻었던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함을 일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오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즉 젊은 세대가 공산주의의 무서움을 몰라서라구요. 그러나 미국은 자유자본주의 국가인 타이완과 국교를 단절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중의 하나인 중공과 국교를 전면 정상화 하였습니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 세대가 30여년전 독일의 죄악을 이미 잊었거나 용서했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한국동란에 대한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실수 있을 겁니다.
저희들은 이런이야기로서 현재의 북한공산주의 체재를 옹호하려는 의향은 추호도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진 일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와의 야함으로 몰아서 제거하는데 말려들고 싶지는 않읍니다.
다만 이야기 드리고 싶은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의 정치적 실현의 왜곡이 어떤특수집단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를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만약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분단의 영속화를 조장하거나 그런 행위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면 그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중대한 실책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돌아가서 미국이 민정이양을하고 그 명목상의 정치적 권력을 우리나라의 소위 자체적 체재에 넘긴후에도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의 태도는 극히 착잡한것이었습니다.
더욱이나 그후 20여년 가까운 독재 정권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정권은 국내외의 여러가지 세력, 특히 국내의 지식인 및 학생들의 면면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민대중의 전반적인 반대에 봉착하지 않았던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읍니다 마는 우리가 보기에는 첫째 그 요인을 밝힐 수 없는 기적적 경제성장의 덕택으로 국민일반의 감정이 저항심과 상쇄되어 왔으며 둘째 군부사업계 그리고 기타 조직된 국민층이 박정권뒤에 그나름대로의 이유로 미국의 비호가 눈에 띄이지 않게 있었음을 인식하였고 셋째 남한처럼 잘 조작된 사회에서 반대세력을 통제하는데 있어 기존체제속에서 고도의 정비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26일 한국의 현대사에서 중대한 전기가 왔습니다.
그동안 정치체제및 미국의 우려에 의하면 남한에서 특정 정치 권력의 공백기간동안 이북의 대남 도발이 있었어야 했을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차에 걸친 국난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까지남침은 자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로서 독재체제의 가장 큰 존립근거가 되어왔던 이북의 남침은 독재체제로서 막을수 있는것이 아니라 미국의 개입으로서 저지되는것임을 뚜렷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에서의 국우익 군부독재는 사실상 미국의 관여를 기본전제로서만 존립할 수 있다는 귀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지식층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일어섰다는 것은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남한의 현대사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해방의 기간이 도래하였습니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은 대사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민주주의를 향한 자그마한 태동의 움직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저희들 선량한 가족의 일원들이 사형 5명 무기 7명 그리고 10년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300여명가량 최종적인 결과를 극한적 우려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보기로는 이세계의 초강대국들 특히 미국과 소련은 여러가지이유. 무엇보다도 안보경제상의 이유로 독재국가들은 고객으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중 미국의 지난 에를 보건대 바로전까지는 가장 친미국가인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미국적인 모든 것들이 배척을 받았던 사례가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게재되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정부가 상대국의 정치권력과는 뜻을 같이 했던 반면 그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국민과는 갈수록 거리를 더 했던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군사정권이 20여년전의 군사정권과 많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그중 가장 뚜렷한 차이중의 하나가 미국과 관련된것입니다. 20여년전 군사혁명 정권이 출범할 당시엔 우리 국민에게 미국은 구원의 천사로 비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권이 들어설때 그의도적인 조작으로 인하여 국민의 감정은 미국으로부터 이반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조가 어떤 귀결로 이어질지는 역사만이 증거할 것입니다.
이제 주의를 돌아본건대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태도는 실로 무서운 변화가 야기되었습니다. 그중 몇가지 예를 보자면 미국 대사관점거 또는 한국주재하는 미국공관원의 납치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얼마전에 광주문화원에 화재가 발생 했을 당시 그소식을 듣는 사람들마다 방화라는 단정에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실제의 내막또는 급속하게 퍼져 나갔읍니다.
이제 저희들은 한국과 미국이 동시에 불행해지는 일이 눈앞에 보이는듯 합니다.
저희들에 생각에는 적으나 크나 한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는 첫째 굳은 도덕적 확신 둘째 올바른 역사감각 셋째 응당필요한 정치철학 넷째 국민 또는 국민주체세력의 장기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 권력체제를 보면 이 네가지가모두 결여되어 있고 단지 무력과 시운이 합치되어 야기된 체제입니다.
우리가 듣기론 민중의 진정한 의향이 최고 권력 엘리뜨 층에 도달하기전에 수정되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이 말한대로 일부의 국민을 영구히 속일수도 있고 모든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일수도 있지만 모든 국민을 영구히 속일수 없다는 그이야기가 바로 우리 민족과 미국의 앞날에 관건이 되는 이야기 인듯 합니다.
현체제가 출범할때 국내의 전파 매개체를 통한 보도는 세계 여론의 진정한 보도로 황당무계하게 동떨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 고 박대통령이 자신의 정보 책임자에 의해 시해 됐던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 였겠습니까.1
당시 정보 책임자는 국민의 진정한 민의 그리고 진정한 세계 여론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즉 당시의 정권이 현시로부터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유래되어 있었다는것을 잘 알았기때문에 그런 엄청난 일을 감행하였던것겁니다.
여지껏 간단하나마 우리들이 우리주변이 상황을 미국과 관련하여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대사님께 이야기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국동란이래로 가장 처참했던 지난 5월의 광주사태에 관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있는 약 300여명의 가족의 이름으로 현 정권이 얼마만큼 현실에서 유리되고 국내 국제적으로 진상을 왜곡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듣기론 대사님께서 누구인가를 가리켜 “늑대는 어떤 얼굴을 써도 늑대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이토록 정치경제문화가 발달될수 있는 나라에서 저질러진 참혹한 사건의 진상을 어느정도나마 밝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주사태와 관련된 피의자들이 겉으로는 김대중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국내신문에 보도되고 또 김대중 재판조차 사법절차에 의한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실 극히 최근까지의 외신 보도를 보더라도 김대중이 광주사태에 직접적 주모자라는 주장을 전혀 버리지 않고 있으며 김대중및 광주사태 관련 피의자 재판이 순수 사법절차에 따른것이 아니고 순수정치적인 재판임을 명약관하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법적으로는 김대중이 광주사태의 혐의가 벗어진후에도 수차에 걸쳐 광주사태배후조종자가 김재중이었음을 주장하기에 현 국가원수조차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김대중의 사주를 받아 광주사태를 사전 조각하였다는 소위 수괴로 호칭되는 정동년의 경우를 아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생각하면 너무도 황다무개하고 억지로 꾸며진 일이기에 우선 무엇을 어떻게 호소해야 할지 가슴이 막힙니다.
정동년은 1965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당시 한일 양국에 극렬한 시위를 초래하였던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에 가담하였다가 제적당하였습니다. 그후 1980년 3월 12일 15년만에 복학되기 이전까지 정치적인 면에서는 전연 무관한 상태로 단지 어려운 가계를 꾸려나가는데 보냈습니다.
복학된 한달후 즉 4월 13일 본인이 강사로 있는 한미냉동기술학원의 업무차 서울에 상경하였다가 아침 잠깐 시간을 내어 평소에 멀리서나마 바라보았던 김대중씨댁을 인사차 돌렸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겠습니다마는 그 당시 짧았던 자유민주주의 해방기간동안 그런식으로 김대중씨를 방문하였던 사람은 셀수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어찌 됐건 본인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고 출장업무를 볼 예정시간에 쫓겨 방명록에 이름만 적은채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듯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아무것도 아닌 이사실 하나가 광주사태라는 그어마어마한 비극의 총모의자로 변신케 할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1 더더군다나 돈을 받았다거나 한일은 하늘을 두고 맹세하되 전혀 터무니 없는 날조된 주장입니다.
이젠 전 세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읍니다.
얼마전에 아시안 월 스트리트져널이라는 미국 신문에 전두환 대통령의 저면 대담에 의하면 39살먹은 복학생이 김대중에게 자금과 지령을 받아 광주사태를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꿈에도 생각 할 수 없는 날조극입니다.
지난 5월 18일 영시를 가해 남한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기 이전에 이미 정동년은 군수사관에 의해 압송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으로 부터 5백만원을 받았다는 5월5일도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 2명이나 있는데도 그 모든 사실이 조작되어 버린것입니다.
모든것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중요한 모든 근거나 날조되었고 상상을 할 수 없는 고문을 통해 허위진술로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반박을 하자면 끝이 없을것입니다.
정동년과 더불어 광주사태를 일으켰다는 혐의를 받은 모두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전에 연행됐거나 또 일어난후에는 사후 수습과정에서 눈에 뜨이게 된 사람들뿐입니다.
현금의 사태를 볼때 미국 정부가 전두환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천도와 인권을 무시한 가공할 만한 권력을 위한 권력정부와 언제까지 미국의 비호속에 커나갈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일분일초가 흐를때마다 미국정부는 한국국민으로부터 아니면 한국 국민의 진정한 염원으로부터 자진해서 멀어져가고 있는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에 이르기전에 다시한번 상황을 검토해야 할지 않겠습니까.1 첫부분에 말씀드렸듯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국민의인식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미국의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을 한 우방으로 남기고 싶을때 과연 저간의 정책들이 그에 부합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회의르러 던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대통령을 대표하시는 대사님께 또 다시 갚은 사려 있으시기를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미국이 물러서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이란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미국은 물러서지 않을수 밖에 없었던 이란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미국은 그렇게 밖에 할수없었겠습니까.1 그리고 한반도를 미국정책 실패의 또 하나의 예로 남길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좌시하고만 있어야 되겠습니까.1
대사님!
우리가 이렇게 하소연 하는것도 항상 가능한것은 아닐것입니다.
한국동란이후 가장 극심했던 경제침체속에 어두운 한해가 저물어 감을 보내면서 삼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대사님과 대사관 직원께 기원하며 그 성탄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탄원하옵니다.
1980년 12월 22일
광주사태 구속자 가족 일동 드림
자유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미합중국 대통령의 전권 특명대사로서 한미관계및 주변국가와의 제반업무를 관장하시느라 공사 다망하실 대사님께 이처럼 또 한번 번거러움을 끼쳐드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대사님께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공통된 이익을 위하여 노력을 아끼시지 않으메 말할수 없는 감사를 올립니다.
저희는 광주사태에 관련하여 구속된 피의자들의 가족의 연명으로 이처럼 탄원서를 올립니다.
생각해보면 저희들은 문화적 배경도 국가적 동일성도 서로가 다른 위치에도 있음에 불구하고 오늘날에 한국과 미국의 국가적 운명이 서로 뗄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음을 그 어떤 현실로 받아들리는바 이기에 이처럼 미국 대사님께 저희들이 소견을 말씀드려 봅니다.
돌이켜 보건데 저희한민족은 세계사에 있어서 가장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지닌 단일민족 국가로서 그 지나온길은 분단과 통일 그리고 외세의 틈입에서 자기것을 지키려했던 부단한 노력으로 점철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정치학적으로 육교적인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어쩔수없이 주변강대국과의 관련을 피할 수 없었음을 인정합니다.
생각해보면 36년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의 각축장이 되었던 그 암담한 시절로부터 벗어나게 된데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국들의 노력을 세삼 감사히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북에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이남에는 미군이 진주하며 군정을 펼쳤을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불가항력적으로 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전략지점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그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것 입니다.
일언지하로 미국은 우리민족의 운명을 근30여년이상 규정해 왔던것입니다.
돌이켜보건데 그동안 적어도 남한에서의 미국에 대한 민족감정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우호적인것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분단의 비극은 갈수록 영속화되었고 그 배후에 미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남한의 기존정치체재가 의도적으로 그 영속화를 조장하여 왔다는 정치학자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흘려 버릴수만은 없었습니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느끼는것이었지만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적인 견해는 우리들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곤 했습니다.
미국은 스스로 자부하듯 자발적인 식민과정에서 이루어진 더군다나 혈통과 지역적 출신이다는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형성된 이질국가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반만년의 동일한 공통적 경험을 가진 단일민족국가와는 너무도 다릅니다.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찡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한국세대에서 통일이란 단순히 감상적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분단이 영속화되고 있다는 그사실 자체가 시시각각으로 민족의 또하나의 비극을 가중 시키고 있음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이야기할때 많은 사람들이 또하나의 유일한 분단국인 독일의 예를들어 비교합니다.
그러나 독일은 세계 1차 2차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었고 인류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었던 민족말살정책을 극악한 방법으로 자행 했던것이 불과 30여년전의 일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배경이 두나라의 분단 현실은 동일한 자원의 관점에서 비교 한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현재 남한의 기성세대가 과거 30여년전 한국동란에서 얻었던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함을 일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오용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즉 젊은 세대가 공산주의의 무서움을 몰라서라구요. 그러나 미국은 자유자본주의 국가인 타이완과 국교를 단절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산주의 국가중의 하나인 중공과 국교를 전면 정상화 하였습니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 세대가 30여년전 독일의 죄악을 이미 잊었거나 용서했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한국동란에 대한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실수 있을 겁니다.
저희들은 이런이야기로서 현재의 북한공산주의 체재를 옹호하려는 의향은 추호도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진 일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와의 야함으로 몰아서 제거하는데 말려들고 싶지는 않읍니다.
다만 이야기 드리고 싶은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의 정치적 실현의 왜곡이 어떤특수집단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단과 통일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를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만약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분단의 영속화를 조장하거나 그런 행위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면 그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중대한 실책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돌아가서 미국이 민정이양을하고 그 명목상의 정치적 권력을 우리나라의 소위 자체적 체재에 넘긴후에도 한미관계에 대한 국민의 태도는 극히 착잡한것이었습니다.
더욱이나 그후 20여년 가까운 독재 정권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정권은 국내외의 여러가지 세력, 특히 국내의 지식인 및 학생들의 면면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민대중의 전반적인 반대에 봉착하지 않았던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었겠읍니다 마는 우리가 보기에는 첫째 그 요인을 밝힐 수 없는 기적적 경제성장의 덕택으로 국민일반의 감정이 저항심과 상쇄되어 왔으며 둘째 군부사업계 그리고 기타 조직된 국민층이 박정권뒤에 그나름대로의 이유로 미국의 비호가 눈에 띄이지 않게 있었음을 인식하였고 셋째 남한처럼 잘 조작된 사회에서 반대세력을 통제하는데 있어 기존체제속에서 고도의 정비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10.26일 한국의 현대사에서 중대한 전기가 왔습니다.
그동안 정치체제및 미국의 우려에 의하면 남한에서 특정 정치 권력의 공백기간동안 이북의 대남 도발이 있었어야 했을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차에 걸친 국난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까지남침은 자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로서 독재체제의 가장 큰 존립근거가 되어왔던 이북의 남침은 독재체제로서 막을수 있는것이 아니라 미국의 개입으로서 저지되는것임을 뚜렷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에서의 국우익 군부독재는 사실상 미국의 관여를 기본전제로서만 존립할 수 있다는 귀결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일부지식층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일어섰다는 것은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남한의 현대사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해방의 기간이 도래하였습니다. 그동안에 있었던 일은 대사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때 민주주의를 향한 자그마한 태동의 움직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저희들 선량한 가족의 일원들이 사형 5명 무기 7명 그리고 10년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300여명가량 최종적인 결과를 극한적 우려속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보기로는 이세계의 초강대국들 특히 미국과 소련은 여러가지이유. 무엇보다도 안보경제상의 이유로 독재국가들은 고객으로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중 미국의 지난 에를 보건대 바로전까지는 가장 친미국가인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미국적인 모든 것들이 배척을 받았던 사례가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게재되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미국정부가 상대국의 정치권력과는 뜻을 같이 했던 반면 그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국민과는 갈수록 거리를 더 했던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군사정권이 20여년전의 군사정권과 많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는데 그중 가장 뚜렷한 차이중의 하나가 미국과 관련된것입니다. 20여년전 군사혁명 정권이 출범할 당시엔 우리 국민에게 미국은 구원의 천사로 비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권이 들어설때 그의도적인 조작으로 인하여 국민의 감정은 미국으로부터 이반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조가 어떤 귀결로 이어질지는 역사만이 증거할 것입니다.
이제 주의를 돌아본건대 미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태도는 실로 무서운 변화가 야기되었습니다. 그중 몇가지 예를 보자면 미국 대사관점거 또는 한국주재하는 미국공관원의 납치등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얼마전에 광주문화원에 화재가 발생 했을 당시 그소식을 듣는 사람들마다 방화라는 단정에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실제의 내막또는 급속하게 퍼져 나갔읍니다.
이제 저희들은 한국과 미국이 동시에 불행해지는 일이 눈앞에 보이는듯 합니다.
저희들에 생각에는 적으나 크나 한국가를 다스리는 지도자들에게는 첫째 굳은 도덕적 확신 둘째 올바른 역사감각 셋째 응당필요한 정치철학 넷째 국민 또는 국민주체세력의 장기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 권력체제를 보면 이 네가지가모두 결여되어 있고 단지 무력과 시운이 합치되어 야기된 체제입니다.
우리가 듣기론 민중의 진정한 의향이 최고 권력 엘리뜨 층에 도달하기전에 수정되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링컨이 말한대로 일부의 국민을 영구히 속일수도 있고 모든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일수도 있지만 모든 국민을 영구히 속일수 없다는 그이야기가 바로 우리 민족과 미국의 앞날에 관건이 되는 이야기 인듯 합니다.
현체제가 출범할때 국내의 전파 매개체를 통한 보도는 세계 여론의 진정한 보도로 황당무계하게 동떨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 고 박대통령이 자신의 정보 책임자에 의해 시해 됐던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 였겠습니까.1
당시 정보 책임자는 국민의 진정한 민의 그리고 진정한 세계 여론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었다는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즉 당시의 정권이 현시로부터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유래되어 있었다는것을 잘 알았기때문에 그런 엄청난 일을 감행하였던것겁니다.
여지껏 간단하나마 우리들이 우리주변이 상황을 미국과 관련하여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대사님께 이야기 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국동란이래로 가장 처참했던 지난 5월의 광주사태에 관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있는 약 300여명의 가족의 이름으로 현 정권이 얼마만큼 현실에서 유리되고 국내 국제적으로 진상을 왜곡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드려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듣기론 대사님께서 누구인가를 가리켜 “늑대는 어떤 얼굴을 써도 늑대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이토록 정치경제문화가 발달될수 있는 나라에서 저질러진 참혹한 사건의 진상을 어느정도나마 밝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광주사태와 관련된 피의자들이 겉으로는 김대중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국내신문에 보도되고 또 김대중 재판조차 사법절차에 의한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실 극히 최근까지의 외신 보도를 보더라도 김대중이 광주사태에 직접적 주모자라는 주장을 전혀 버리지 않고 있으며 김대중및 광주사태 관련 피의자 재판이 순수 사법절차에 따른것이 아니고 순수정치적인 재판임을 명약관하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법적으로는 김대중이 광주사태의 혐의가 벗어진후에도 수차에 걸쳐 광주사태배후조종자가 김재중이었음을 주장하기에 현 국가원수조차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김대중의 사주를 받아 광주사태를 사전 조각하였다는 소위 수괴로 호칭되는 정동년의 경우를 아야기 드리고자 합니다.
생각하면 너무도 황다무개하고 억지로 꾸며진 일이기에 우선 무엇을 어떻게 호소해야 할지 가슴이 막힙니다.
정동년은 1965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당시 한일 양국에 극렬한 시위를 초래하였던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에 가담하였다가 제적당하였습니다. 그후 1980년 3월 12일 15년만에 복학되기 이전까지 정치적인 면에서는 전연 무관한 상태로 단지 어려운 가계를 꾸려나가는데 보냈습니다.
복학된 한달후 즉 4월 13일 본인이 강사로 있는 한미냉동기술학원의 업무차 서울에 상경하였다가 아침 잠깐 시간을 내어 평소에 멀리서나마 바라보았던 김대중씨댁을 인사차 돌렸습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겠습니다마는 그 당시 짧았던 자유민주주의 해방기간동안 그런식으로 김대중씨를 방문하였던 사람은 셀수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어찌 됐건 본인은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고 출장업무를 볼 예정시간에 쫓겨 방명록에 이름만 적은채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듯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아무것도 아닌 이사실 하나가 광주사태라는 그어마어마한 비극의 총모의자로 변신케 할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1 더더군다나 돈을 받았다거나 한일은 하늘을 두고 맹세하되 전혀 터무니 없는 날조된 주장입니다.
이젠 전 세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읍니다.
얼마전에 아시안 월 스트리트져널이라는 미국 신문에 전두환 대통령의 저면 대담에 의하면 39살먹은 복학생이 김대중에게 자금과 지령을 받아 광주사태를 일으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꿈에도 생각 할 수 없는 날조극입니다.
지난 5월 18일 영시를 가해 남한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기 이전에 이미 정동년은 군수사관에 의해 압송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으로 부터 5백만원을 받았다는 5월5일도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을 제외하고 2명이나 있는데도 그 모든 사실이 조작되어 버린것입니다.
모든것은 너무나 터무니없고 중요한 모든 근거나 날조되었고 상상을 할 수 없는 고문을 통해 허위진술로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에 일일이 반박을 하자면 끝이 없을것입니다.
정동년과 더불어 광주사태를 일으켰다는 혐의를 받은 모두가 광주사태가 일어나기전에 연행됐거나 또 일어난후에는 사후 수습과정에서 눈에 뜨이게 된 사람들뿐입니다.
현금의 사태를 볼때 미국 정부가 전두환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천도와 인권을 무시한 가공할 만한 권력을 위한 권력정부와 언제까지 미국의 비호속에 커나갈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일분일초가 흐를때마다 미국정부는 한국국민으로부터 아니면 한국 국민의 진정한 염원으로부터 자진해서 멀어져가고 있는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선에 이르기전에 다시한번 상황을 검토해야 할지 않겠습니까.1 첫부분에 말씀드렸듯이 북한의 위협에 대한 국민의인식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미국의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을 한 우방으로 남기고 싶을때 과연 저간의 정책들이 그에 부합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한 회의르러 던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대통령을 대표하시는 대사님께 또 다시 갚은 사려 있으시기를 간절하게 애원합니다.
미국이 물러서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이란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미국은 물러서지 않을수 밖에 없었던 이란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미국은 그렇게 밖에 할수없었겠습니까.1 그리고 한반도를 미국정책 실패의 또 하나의 예로 남길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좌시하고만 있어야 되겠습니까.1
대사님!
우리가 이렇게 하소연 하는것도 항상 가능한것은 아닐것입니다.
한국동란이후 가장 극심했던 경제침체속에 어두운 한해가 저물어 감을 보내면서 삼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대사님과 대사관 직원께 기원하며 그 성탄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탄원하옵니다.
1980년 12월 22일
광주사태 구속자 가족 일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