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성명서 및 유인물] 추기경 각하께 올리는 글/광주 사태 구속자 가족 일동 1980.12.10.
본문
추기경 각하께 올리는 글
각하께서 저희 광주사태 구속자 가족들에게 베출어주신 따뜻한 온정에 200여명의 구속자와 1,000여명의 구속자 가족들은 진심으로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받은 추기경 각하의 따뜻하신 사랑은 희망이요, 기쁨이요, 참된 위안이었습니다. 무슨 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추기경 각하!
여기 광주사태 구속자들이 얼마나 잔인한 고문 속에 부당한 수사와 재판을 받았는지를 사실 그대로 아뢸까 합니다. 이 부당하고 억울한 사실들을 부디 인지하시어 저희들의 한 맺힌 가슴들을 관계기관에 호소하여 주십시요. 저희들은 오직 추기경 각하의 바다와 같은 사랑에 호소할 수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다만 총망중에 작성한 글이오라 몇분의 중형자로만 예로 하였사오니 참고 하시옵소서!.
(1) 전남대학교 복학생 정동년(38세)의 경우를 보면 학생의 신분으로 내란수괴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5월17일 밤 예비감속되어 제 505 보안부대에서 포고령 위반 좌목으로 수사를 받다가 전남대 복적생 대표라는 이유로 7월 10일경부터는 내란죄로 몰아 내란수괴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날조된 조서를 꾸며가지고 무수한 고문을 가했고, 특히 현행 형법상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법정에서 수사관들을 뒤에 앉혀놓고 법무사 앞에서 선서를 시키고 폭행과 협박, 공갈로 가재판을 받았고 정식 재판정에서는 가재판 과정에서 선서를 했다는 이유로 부인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1 또한 예로는 공소장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서울에서 김대중씨에게 받았다는 5백만원의 사실을 보면 온몸이 멍이 들도록 때리고 갖은 고문을 해서 만들어낸 돈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증언할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 과정에서 본인이 진술했던 바로는 “처음에는 돈을 10만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하니까 수사관 말이 너무적다. 그럼 얼마로 할까요. 천만원이라 할까요 하니 그건 너무 많아 언제 그것을 다 쓴걸로 하겠느냐, 그럼 공평히 5백만원으로 합시다.”라고 해서 5백만원으로 결정되었으며 결정된 돈이 “이젠 쓰여진 명목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다그치기에 본인은 자기만의 피해로 이 날조된 공소장이 끝나야 되는데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어 자기만 죽어지면 끝날 것 같은 생각에서 만신창의 몸으로 입원해 있던 광주 국군 통합병원에서 동맥을 끓고 배를 가르고 머리를 부딪혀 자실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읍니까. 12명의 수사관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며 인간이하의 취급을 어찌 참아내겠습니까.1 날조된 모든 조서는 미리 작성해 놓고 무인을 찍은 뒤에 읽어야 된다면서 온갖 고문을 당한 것입니다.(법정에서 본인 진술) 그때 당시의 심한 고문으로 지금은 왼쪽 어깨가 마비상태인데 사형수라는 이유로 24시간 수갑을 차고 몸이 묶여 있습니다.
(2)조선대학교 학생, 사형수 김종배(29세)를 보면 광주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 학생측 위원장이란 직책때문에 27일 새벽 계엄당국에 연행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고문을 당하던 중 M16 총대로 맞으면서 앞니 2개를 부러뜨리고 안면과 이마를 심하게 구타당하여 지금도 그 흉터가 난ꁁ아 있고 세번씩이나 의시불명이 되는등 하갱으로서 뿐아니라 인간으로서 당할 수 없는 폭행과 고문을 당하여 허위 자백을 공소장에 무한을 찍게 하였으며
(3)운전사인 박남선(25세)은 이미 짜여진 각본에 맞추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야하는 목적에서 송곳에서 열손가락 손톱만을 콕콕찌르고, 손톱이 빠지면 등을 찌르고 치아를 두개나 빠지게 패고 맞아서 까무라친 구타의 횟수는 수 없이 많고 손톱이 빠져 도저히 무인을 찍을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사형)
(4 변호사인 홍남순씨는 68세된 노인으로 48일간 팬티 차림으로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에서 허위 진술을 자백 받았고
(5)김상윤(전남大 복학생 32세)은 5월 17일 예비 검속되어 포고령 위반으로 수사를 받던중 광주사태 책임자로 몰려 광주사태 구경한번 하지 못하고 조작에 의한 내란죄로 지목되어 인간으로서는 참아 낼수 없는 상황하의 고문속에서 허위 사실을 인정하게 하였고 날조된 조서로 기소되어 감철 심문 과정에서 모든것을 부인하자 다시 합동수사반으로 옮겨져 무수한 고문끝에 또 이미 작성된 기소장에 무인을 찍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재판도 받았는데 정동년씨의 겨우와 같습니다.(징역 20년)
(6)김영철은 광천동 새마을 지도자이며 YWCA신협에 근무하는데 27일 새벽 계엄군에 검거되었으며 검거된 직후부터 간첩혐의를 받아 무수하게 구타당하고 고문을 마침내는 견딜수 없어 억울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하여 감옥 쇠창살에 머리를 부딪혀 사경을 헤매다가 한달만에 의식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후유증이 심하게 남아 있습니다.
(7)전남대 명노근, 송기숙 교수
잠재우지 않기와 포플라 생나무 뭉치로 보안부대 지하실에서 무수히 구타 당했습니다.
(8) 박용성(전남대 학생)의 경우를 보면 6월 3일 아버지의 권유로 합동수사반에 자수하여 자수 직후부터 6월7일까지 무수히 구타 고문당하여 척추에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 되었는데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으나 병원측에서 성의있는 치료를 하지 않고 계속 진통제를 복용케하여 말을 할수 있는 기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실어증) 현재 공소중지 상태로 병보석을 신청했는데 기각당하여 지금까지 임원해있는 중환자입니다.
추기경 각하!
이상의 8개 사항만 대표적 실례로 적었습니만 광주사태로 구속된 사람들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민주국가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사실들이 묵인되어야 합니까.1 저희 가족들은 업드려 간곡히 호소하오니 부터 정당한 재판을 받게끔 관계기관에 호소하여 주시옵고 죄없는 죄수들이 극형만은 면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오직 추기경각하의 사랑에 저희 구속자 가족들을 모든 희망을 걸고 있사오니 이 응어리진 가슴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
왜 남들은 기쁘게 성탄을 맞는데 저희들은 눈물의 성탄을 맞아야 합니까.1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이 변호사와 학생이 교수와 신부가 내란에 참가했다면 이 나라는 진정 희망이 없지 않겠습니까.1 또한 광주사태 구경한번 못한 복학생이 광주사태 주모지로 몰리다니 이런일이 어찌 있을 수 있사옵니까.1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니 부디 모든 방법을 행하시어 억울한 자들을 구하여 주십옵소서.
끝으로 각하의 건강을 天主님께 전 구속자 가족들은 비옵니다. 글이 두서 없음을 용서합소서.
1980. 12. 10
광주사태 구속자 가족 일동 올림
각하께서 저희 광주사태 구속자 가족들에게 베출어주신 따뜻한 온정에 200여명의 구속자와 1,000여명의 구속자 가족들은 진심으로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받은 추기경 각하의 따뜻하신 사랑은 희망이요, 기쁨이요, 참된 위안이었습니다. 무슨 말로 감사의 말씀을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추기경 각하!
여기 광주사태 구속자들이 얼마나 잔인한 고문 속에 부당한 수사와 재판을 받았는지를 사실 그대로 아뢸까 합니다. 이 부당하고 억울한 사실들을 부디 인지하시어 저희들의 한 맺힌 가슴들을 관계기관에 호소하여 주십시요. 저희들은 오직 추기경 각하의 바다와 같은 사랑에 호소할 수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다만 총망중에 작성한 글이오라 몇분의 중형자로만 예로 하였사오니 참고 하시옵소서!.
(1) 전남대학교 복학생 정동년(38세)의 경우를 보면 학생의 신분으로 내란수괴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5월17일 밤 예비감속되어 제 505 보안부대에서 포고령 위반 좌목으로 수사를 받다가 전남대 복적생 대표라는 이유로 7월 10일경부터는 내란죄로 몰아 내란수괴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날조된 조서를 꾸며가지고 무수한 고문을 가했고, 특히 현행 형법상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법정에서 수사관들을 뒤에 앉혀놓고 법무사 앞에서 선서를 시키고 폭행과 협박, 공갈로 가재판을 받았고 정식 재판정에서는 가재판 과정에서 선서를 했다는 이유로 부인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정말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1 또한 예로는 공소장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서울에서 김대중씨에게 받았다는 5백만원의 사실을 보면 온몸이 멍이 들도록 때리고 갖은 고문을 해서 만들어낸 돈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증언할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 과정에서 본인이 진술했던 바로는 “처음에는 돈을 10만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하니까 수사관 말이 너무적다. 그럼 얼마로 할까요. 천만원이라 할까요 하니 그건 너무 많아 언제 그것을 다 쓴걸로 하겠느냐, 그럼 공평히 5백만원으로 합시다.”라고 해서 5백만원으로 결정되었으며 결정된 돈이 “이젠 쓰여진 명목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라고 다그치기에 본인은 자기만의 피해로 이 날조된 공소장이 끝나야 되는데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어 자기만 죽어지면 끝날 것 같은 생각에서 만신창의 몸으로 입원해 있던 광주 국군 통합병원에서 동맥을 끓고 배를 가르고 머리를 부딪혀 자실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읍니까. 12명의 수사관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며 인간이하의 취급을 어찌 참아내겠습니까.1 날조된 모든 조서는 미리 작성해 놓고 무인을 찍은 뒤에 읽어야 된다면서 온갖 고문을 당한 것입니다.(법정에서 본인 진술) 그때 당시의 심한 고문으로 지금은 왼쪽 어깨가 마비상태인데 사형수라는 이유로 24시간 수갑을 차고 몸이 묶여 있습니다.
(2)조선대학교 학생, 사형수 김종배(29세)를 보면 광주사태 수습 대책 위원회 학생측 위원장이란 직책때문에 27일 새벽 계엄당국에 연행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고문을 당하던 중 M16 총대로 맞으면서 앞니 2개를 부러뜨리고 안면과 이마를 심하게 구타당하여 지금도 그 흉터가 난ꁁ아 있고 세번씩이나 의시불명이 되는등 하갱으로서 뿐아니라 인간으로서 당할 수 없는 폭행과 고문을 당하여 허위 자백을 공소장에 무한을 찍게 하였으며
(3)운전사인 박남선(25세)은 이미 짜여진 각본에 맞추기 위해 허위 자백을 받아야하는 목적에서 송곳에서 열손가락 손톱만을 콕콕찌르고, 손톱이 빠지면 등을 찌르고 치아를 두개나 빠지게 패고 맞아서 까무라친 구타의 횟수는 수 없이 많고 손톱이 빠져 도저히 무인을 찍을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사형)
(4 변호사인 홍남순씨는 68세된 노인으로 48일간 팬티 차림으로 잠을 못자게 하는 고문에서 허위 진술을 자백 받았고
(5)김상윤(전남大 복학생 32세)은 5월 17일 예비 검속되어 포고령 위반으로 수사를 받던중 광주사태 책임자로 몰려 광주사태 구경한번 하지 못하고 조작에 의한 내란죄로 지목되어 인간으로서는 참아 낼수 없는 상황하의 고문속에서 허위 사실을 인정하게 하였고 날조된 조서로 기소되어 감철 심문 과정에서 모든것을 부인하자 다시 합동수사반으로 옮겨져 무수한 고문끝에 또 이미 작성된 기소장에 무인을 찍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재판도 받았는데 정동년씨의 겨우와 같습니다.(징역 20년)
(6)김영철은 광천동 새마을 지도자이며 YWCA신협에 근무하는데 27일 새벽 계엄군에 검거되었으며 검거된 직후부터 간첩혐의를 받아 무수하게 구타당하고 고문을 마침내는 견딜수 없어 억울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하여 감옥 쇠창살에 머리를 부딪혀 사경을 헤매다가 한달만에 의식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후유증이 심하게 남아 있습니다.
(7)전남대 명노근, 송기숙 교수
잠재우지 않기와 포플라 생나무 뭉치로 보안부대 지하실에서 무수히 구타 당했습니다.
(8) 박용성(전남대 학생)의 경우를 보면 6월 3일 아버지의 권유로 합동수사반에 자수하여 자수 직후부터 6월7일까지 무수히 구타 고문당하여 척추에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 되었는데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났으나 병원측에서 성의있는 치료를 하지 않고 계속 진통제를 복용케하여 말을 할수 있는 기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실어증) 현재 공소중지 상태로 병보석을 신청했는데 기각당하여 지금까지 임원해있는 중환자입니다.
추기경 각하!
이상의 8개 사항만 대표적 실례로 적었습니만 광주사태로 구속된 사람들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민주국가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사실들이 묵인되어야 합니까.1 저희 가족들은 업드려 간곡히 호소하오니 부터 정당한 재판을 받게끔 관계기관에 호소하여 주시옵고 죄없는 죄수들이 극형만은 면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오직 추기경각하의 사랑에 저희 구속자 가족들을 모든 희망을 걸고 있사오니 이 응어리진 가슴들을 굽어 살펴 주소서.
왜 남들은 기쁘게 성탄을 맞는데 저희들은 눈물의 성탄을 맞아야 합니까.1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이 변호사와 학생이 교수와 신부가 내란에 참가했다면 이 나라는 진정 희망이 없지 않겠습니까.1 또한 광주사태 구경한번 못한 복학생이 광주사태 주모지로 몰리다니 이런일이 어찌 있을 수 있사옵니까.1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니 부디 모든 방법을 행하시어 억울한 자들을 구하여 주십옵소서.
끝으로 각하의 건강을 天主님께 전 구속자 가족들은 비옵니다. 글이 두서 없음을 용서합소서.
1980.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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