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성명서 및 유인물]새루운 깃발 아래 함꼐 나아가자/전라남도미주청년운도협의회 1984.11.18
본문
새로운 깃발 아래 함께 나아가자!
-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를 발족하면서 -
1980년 그 빛나던 5월. 환희와 비분이 엇갈리던 자유의 거리 광주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의 장래에 드리워진 암울한 어둠과 장애를 걷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어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우리에게는 피와 죽음의 구렁속에 함몰되어 암담한 현실을 방기했던 지난 4년이 아니었고, 유신시대 이래의 반독재 투쟁의 과정을 통하여 다져왔던 사회적 기반을 재점검하고 5월의 의미를 시민대중의 삶속에서 주체화시키고 다져야 했던 기간이었다. 이는 잿더미의 폐허 속에서 눈물을 씻으며 쓸만한 물건들을 추려내고 챙기는 세월이었다. 우리는 누더기가 다 되어버린 민중, 민주, 통일의 깃발을 다시금 깃대위에 드높게 매달아 민족사의 새로운 지평위에 나부끼게 하려한다.
5·18 광주 민중봉기는 항쟁의 전 과정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민중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폭발적인 대중 역량을 보여주었고, 그 혁명적 정세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자체 발전해 나아갔던 것이다.
5·18광주 민중봉기는 민주화 통일운동의 미래와 대중기반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가져다주는 한편, 미국으로 대표되는 신식민주의 세력과 국내의 반민족적인 압제자들과 그 동조자들의 음흉한 결탁을 폭로했으며, 우리가 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5·18 광주 민중봉기는 우리에게는 민주화 운동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전진적 계기로서의 일시적인 좌절을 가져다 주었고, 저들둁게는 잠깐의 정권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파렴치한 죄과를 안겨주었다. 따라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현정권은 압제와 폭력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해가면서 스스로 몰락해갈 운명밖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폭력과 강압 조치가 더욱 가중될수록 저들의 정권은 그만큼 약화되고 상황은 발전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주 민중봉기는 민주화 통일 운동의 전 민족적 실현을 위한 한 단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하였다. 즉, 광범한 대중기반의 확보라는 운동의 질적 전환을 우리에게 요구했던 한국 민족운동사의 불멸의 분수령이 되었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분단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욱 냉혹하게 고착되어 가고 있으며, 국토는 저들의 전략기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막강한 산업 생산의 능력과 자본시장의 구축으로 군수산업화의 단계에 들어서서 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변신한 일본은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미국과 더불어 냉전적 굴레속에 우리 민족의 생존권을 묶어두고 주체적인 작전 대상지역으로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 지난 80년 5월에 미국이 광주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예속된 국가에 대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속셈뿐만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표명하는척 하면서 민권의 싹을 밟아 버림으로써 민중에 등을 돌린 정부에 대한 종주권을 계속 행사 하겠다는 신식민주의적 속성이었다. 이는 통치구조 자체를 민족적 염원과 분리시켜서 온갖 이권을 한반도에서 영속적으로 점유하겠다는 정책을 스스로 노정시킬 것이며, 그후 우리는 행동을 통하여 이를 여러차례 경고했던 터이다.
지난 몇년 동안에 중동과 동남아시아 중남미에서 보여준 미국 행정부의 입장은 해당국 민중의 사람다운 삶을 위한 염원이나 생존권은 아랑곳없이 새로운 냉전 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공공연하게 중동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위하여 한반도를 핵공격의 희생양으로 쓰겠다는 군사 전략을 세계에 공표하였으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소련의 극동에 대한 군사력 강화로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민족적 울분과 굴욕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히로시마 원폭의 3백배에 이르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핵 미사일이 1200기나 우리의 국토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인 자료에 의하여 알고나서, 통일은 커녕 민족 절멸의 위급한 상황에 태평하게 살아있음을 탄한다.
우리는 이 초토위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미래를 설계하며, 새로운 세대가 역사를 창조하여 이어 나가기를 순박하고 무력하게 염원하며 살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일본의 팽창주의는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을 방어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 개편을 꾀하였고, 민중의 생존에 대한 요구를 짓밟고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현정권은 허약한 자기기반을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와같은 이해 관계가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를 낳았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대한 경제정책은 국방과 안보라는 분단의 현실이 가져다준 내부적 모순과 민족적 약점을 이용하여 경제적 종속과 무역통상에서의 이권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속에서 국제화 선진화라는 상투적인 구호가 나타났고 조국은 저들 외국 자본의 전시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일본의 산업화와 올림픽이 우리의 경제적 근대화의 전형으로 추구되고 있으나, 오늘과 같이 민주화와 통일의 염원이 말살되고 분단이 강요된 우리의 현상황으로는 올림픽은 결국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이권과 위장된 평화주의의 전시효과를 충족 시켜주는 세계적 구경꺼리로 끝나버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세계의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에서 그 모순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이 없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해방에 대한 주체적인 해결 방안이 없이는 국제화 선진화는 허구이며 반민족적인 명제인 것이葡鑁.
80년 5월의 학살 만행을 통해 압제의 절정으로 올라선 현 정권이 국민 대중의 끓어오르는 불만을 잠재우고 은폐함으로써 국내외적인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화해적 유화국면”이며 이는 발톱을 감춘 기만 정책이다.
총칼과 돈과 권력과 매스큼과 온갖 선전매체를 장악한 저들은 자율화, 화해, 해금, 석방, 86.88스포츠, 총선, 개헌 등의 과제를 화려하게 내걸고 민주화 운동 자체 내부의 분열과 운동권의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조장하면서 장기 집권체제로 돌입하는 한편 권력기반을 재편 강화할 시간을 벌자는 것이다.
오늘의 이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첫째, 기층 민중의 일상적 요구를 구체적인 싸움속에서 실현해냄으로써 진정한 대중성의 획득과 신뢰를 다지는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민중의 생산현장 각 부문의 목소리와 이익을 대변하여 대중에 밀착된 운동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허구에 찬 한·미·일 안보체제, 유화의 거짓시늉, 권력형 부정부패, 민중 민주 운동에 대한 고립이간 및 폭력적 정책을 폭로하고 제도악법에 대해 과감한 정치투쟁과 공세를 통하여 대중적 연대를 확보해야만 한다.
셋째, 각 부문 운동 상호간의 분산 고립으로 인한 소모전적인 힘의 약화와 저들의 분열 책동을 극복하여, 운동역량의 집중과 역할 분담의 유기적 결합을 위한 진정한 조직운동을 통해 운동 기반과 그 영역을 양과 질에 걸쳐서 확대 강화할 것이 요구된다.
넷째, 우리의 운동은 기본적으로 민주화 통일 운동이라는 대전선의 한몫을 담당하면서, 각 부분별 조직과 행동의 방침을 교환 수령하고 집중적인 논의구조를 통하여 전체 운동권의 일반론과 대중 노선을 접합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제반 정세와 지금의 명제를 하나씩 점검해오면서 80년 5월 그날의 함성이 전 국토에 메아리치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광주의 비극”이라고 불리워지는 어떠한 동정과 회한의 말도 거부하며, 이제는 민주화운동의 제단에 바쳐진 영령들의 뜨거운 피로써 광주정신의 전민족화를 동시대의 청년들에게 갈망한다.
그렇다. 5월은 끝난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주의 5월은 비극적 참사가 아니라 전 민족의 환희의 광장으로 나서는 출발점이며, 우리는 그 5월을 기념비나 신화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신화의 지평위에 새로운 행동의 실천을 뿌리내려야 하며, 그런 뒤에야 죽은 이들의 피에 값하게 될 것이다. 정든 사람들, 빛나는 고향, 따사로운 이웃간의 피 어린 사랑이 꽃피었던 그 5월을, 이제는 한반도의 곳곳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광주의 5월 봉기를 운동선상의 장점이나 추억으로 축소시키지 말고 80년대의 민족주의의 표상으로서 온몸으로 드러내는 일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그간 전남은 5월의 선진적인 교훈을 현실적인 운동 과정속에서 실천해내기 위하여 학생운동이 주도가 되어 투쟁의 다양한 방법적 시도와 운동론의 모색이 다분히 고립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5·18부상자, 유족들의 극한적인 싸움은 그 사회적 반응을 분산적으로 드러냈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되돌아 보게 한다. 또한 최근의 “함평무안 9·2농민투쟁”은 연대 투쟁과 생산지 현장 투쟁의 발전적 시도란 점에서 앞으로의 운동 방침에 매우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부문운동의 고립적 진행이라든가 운동론의 분산적 논의, 투쟁양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타운동 영역에로의 발전적인 수용이 없었던 점은 깊이 반성되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전남 운동권의 80년 이후 4년은 대중운동으로서의 운동의 질적 전환이라는 상황적 요구를 지역적으로 실천 형성해내기 위한 자기모색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이제 전 국토에 넘치는 민주화 운동의 거센 파도가 들끓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각 지방운동의 연대와 전국화를 제안하는 바이다. 지방은 서울과 달리 판도가 작고 한 눈에 들어오는 한계가 있는 반면에 다분히 가족적인 분위기이며 결속은 오히려 강고한다. 포괄적인 정세 판단이 뒤늦을지언정 현장 특유의 순수한 지속성이 있으며, 대중의 연계를 쉽게 이루어낼 수가 있다.
중앙이 지방에 대하여 가진 우월감이나 지방이 지역적 폐쇄성에 빠지는 일은 양편에서 지양되어야 하며, 지방 운동권은 자체 지역의 민중의 생존적 운동과 강고히 결합되면서 지방끼리의 연대를 통하여 새로운 운동 영역을 구축해내야 한다.
우리는 이 절박한 민족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저 모든 탄압과 폭력을 몸으로 겪고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한 시대의 증인이자, 이름없이 죽어간 영령들의 절규를 짊어진 생존자로서, 우리가 바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야할 것을 밝히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의지의 실천적 대응으로서 “전남 민주 청년운동협의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진정한 운동 역량은 정세 파단이나 빈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에서 쌓여지는 것이며 성숙한 때를 기다리기에는 출발은 언제나 늦기 마련이다. 움직이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때이며 그 시점에부터 힘이 자라는 것이다. 5월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것은, 상황이 우리를 끌고 나가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 아니던가.
오늘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의 발족이 한반도 전체의 민중, 민주, 통일 운동의 발전적 계기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면서, 이의 대중적 확산과 결집력의 확보를 위해 모든 청년 동지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책임있는 개입을 기대한다. 5월의 온 도시를 뒤엎었던 대중 기반의 광범한 지평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들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이 광야에 “전청협”의 깃발을 들고 일어섰다.
광주여 영원하라!
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
전남민주청년운동 협의회 만세!
1984년 11월 18일
전라남도민주청년운동협의회
-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를 발족하면서 -
1980년 그 빛나던 5월. 환희와 비분이 엇갈리던 자유의 거리 광주의 현장에서, 우리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의 장래에 드리워진 암울한 어둠과 장애를 걷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어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우리에게는 피와 죽음의 구렁속에 함몰되어 암담한 현실을 방기했던 지난 4년이 아니었고, 유신시대 이래의 반독재 투쟁의 과정을 통하여 다져왔던 사회적 기반을 재점검하고 5월의 의미를 시민대중의 삶속에서 주체화시키고 다져야 했던 기간이었다. 이는 잿더미의 폐허 속에서 눈물을 씻으며 쓸만한 물건들을 추려내고 챙기는 세월이었다. 우리는 누더기가 다 되어버린 민중, 민주, 통일의 깃발을 다시금 깃대위에 드높게 매달아 민족사의 새로운 지평위에 나부끼게 하려한다.
5·18 광주 민중봉기는 항쟁의 전 과정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민중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폭발적인 대중 역량을 보여주었고, 그 혁명적 정세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자체 발전해 나아갔던 것이다.
5·18광주 민중봉기는 민주화 통일운동의 미래와 대중기반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가져다주는 한편, 미국으로 대표되는 신식민주의 세력과 국내의 반민족적인 압제자들과 그 동조자들의 음흉한 결탁을 폭로했으며, 우리가 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이었는가를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5·18 광주 민중봉기는 우리에게는 민주화 운동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한 전진적 계기로서의 일시적인 좌절을 가져다 주었고, 저들둁게는 잠깐의 정권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파렴치한 죄과를 안겨주었다. 따라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현정권은 압제와 폭력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해가면서 스스로 몰락해갈 운명밖에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폭력과 강압 조치가 더욱 가중될수록 저들의 정권은 그만큼 약화되고 상황은 발전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주 민중봉기는 민주화 통일 운동의 전 민족적 실현을 위한 한 단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하였다. 즉, 광범한 대중기반의 확보라는 운동의 질적 전환을 우리에게 요구했던 한국 민족운동사의 불멸의 분수령이 되었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분단은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욱 냉혹하게 고착되어 가고 있으며, 국토는 저들의 전략기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막강한 산업 생산의 능력과 자본시장의 구축으로 군수산업화의 단계에 들어서서 세계적인 군사대국으로 변신한 일본은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미국과 더불어 냉전적 굴레속에 우리 민족의 생존권을 묶어두고 주체적인 작전 대상지역으로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 지난 80년 5월에 미국이 광주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예속된 국가에 대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속셈뿐만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와 관심을 표명하는척 하면서 민권의 싹을 밟아 버림으로써 민중에 등을 돌린 정부에 대한 종주권을 계속 행사 하겠다는 신식민주의적 속성이었다. 이는 통치구조 자체를 민족적 염원과 분리시켜서 온갖 이권을 한반도에서 영속적으로 점유하겠다는 정책을 스스로 노정시킬 것이며, 그후 우리는 행동을 통하여 이를 여러차례 경고했던 터이다.
지난 몇년 동안에 중동과 동남아시아 중남미에서 보여준 미국 행정부의 입장은 해당국 민중의 사람다운 삶을 위한 염원이나 생존권은 아랑곳없이 새로운 냉전 질서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그뿐 아니라 미국은 공공연하게 중동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위하여 한반도를 핵공격의 희생양으로 쓰겠다는 군사 전략을 세계에 공표하였으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소련의 극동에 대한 군사력 강화로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는 민족적 울분과 굴욕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히로시마 원폭의 3백배에 이르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핵 미사일이 1200기나 우리의 국토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인 자료에 의하여 알고나서, 통일은 커녕 민족 절멸의 위급한 상황에 태평하게 살아있음을 탄한다.
우리는 이 초토위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미래를 설계하며, 새로운 세대가 역사를 창조하여 이어 나가기를 순박하고 무력하게 염원하며 살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일본의 팽창주의는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을 방어하기 위한 새로운 세력 개편을 꾀하였고, 민중의 생존에 대한 요구를 짓밟고 폭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현정권은 허약한 자기기반을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와같은 이해 관계가 한·미·일 삼각 안보 체제를 낳았던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대한 경제정책은 국방과 안보라는 분단의 현실이 가져다준 내부적 모순과 민족적 약점을 이용하여 경제적 종속과 무역통상에서의 이권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속에서 국제화 선진화라는 상투적인 구호가 나타났고 조국은 저들 외국 자본의 전시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일본의 산업화와 올림픽이 우리의 경제적 근대화의 전형으로 추구되고 있으나, 오늘과 같이 민주화와 통일의 염원이 말살되고 분단이 강요된 우리의 현상황으로는 올림픽은 결국 선진 자본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이권과 위장된 평화주의의 전시효과를 충족 시켜주는 세계적 구경꺼리로 끝나버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세계의 모순이 집약된 한반도에서 그 모순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이 없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해방에 대한 주체적인 해결 방안이 없이는 국제화 선진화는 허구이며 반민족적인 명제인 것이葡鑁.
80년 5월의 학살 만행을 통해 압제의 절정으로 올라선 현 정권이 국민 대중의 끓어오르는 불만을 잠재우고 은폐함으로써 국내외적인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 궁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화해적 유화국면”이며 이는 발톱을 감춘 기만 정책이다.
총칼과 돈과 권력과 매스큼과 온갖 선전매체를 장악한 저들은 자율화, 화해, 해금, 석방, 86.88스포츠, 총선, 개헌 등의 과제를 화려하게 내걸고 민주화 운동 자체 내부의 분열과 운동권의 대중으로부터의 고립을 조장하면서 장기 집권체제로 돌입하는 한편 권력기반을 재편 강화할 시간을 벌자는 것이다.
오늘의 이 상황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첫째, 기층 민중의 일상적 요구를 구체적인 싸움속에서 실현해냄으로써 진정한 대중성의 획득과 신뢰를 다지는 작업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민중의 생산현장 각 부문의 목소리와 이익을 대변하여 대중에 밀착된 운동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허구에 찬 한·미·일 안보체제, 유화의 거짓시늉, 권력형 부정부패, 민중 민주 운동에 대한 고립이간 및 폭력적 정책을 폭로하고 제도악법에 대해 과감한 정치투쟁과 공세를 통하여 대중적 연대를 확보해야만 한다.
셋째, 각 부문 운동 상호간의 분산 고립으로 인한 소모전적인 힘의 약화와 저들의 분열 책동을 극복하여, 운동역량의 집중과 역할 분담의 유기적 결합을 위한 진정한 조직운동을 통해 운동 기반과 그 영역을 양과 질에 걸쳐서 확대 강화할 것이 요구된다.
넷째, 우리의 운동은 기본적으로 민주화 통일 운동이라는 대전선의 한몫을 담당하면서, 각 부분별 조직과 행동의 방침을 교환 수령하고 집중적인 논의구조를 통하여 전체 운동권의 일반론과 대중 노선을 접합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제반 정세와 지금의 명제를 하나씩 점검해오면서 80년 5월 그날의 함성이 전 국토에 메아리치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광주의 비극”이라고 불리워지는 어떠한 동정과 회한의 말도 거부하며, 이제는 민주화운동의 제단에 바쳐진 영령들의 뜨거운 피로써 광주정신의 전민족화를 동시대의 청년들에게 갈망한다.
그렇다. 5월은 끝난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광주의 5월은 비극적 참사가 아니라 전 민족의 환희의 광장으로 나서는 출발점이며, 우리는 그 5월을 기념비나 신화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신화의 지평위에 새로운 행동의 실천을 뿌리내려야 하며, 그런 뒤에야 죽은 이들의 피에 값하게 될 것이다. 정든 사람들, 빛나는 고향, 따사로운 이웃간의 피 어린 사랑이 꽃피었던 그 5월을, 이제는 한반도의 곳곳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광주의 5월 봉기를 운동선상의 장점이나 추억으로 축소시키지 말고 80년대의 민족주의의 표상으로서 온몸으로 드러내는 일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그간 전남은 5월의 선진적인 교훈을 현실적인 운동 과정속에서 실천해내기 위하여 학생운동이 주도가 되어 투쟁의 다양한 방법적 시도와 운동론의 모색이 다분히 고립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5·18부상자, 유족들의 극한적인 싸움은 그 사회적 반응을 분산적으로 드러냈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를 되돌아 보게 한다. 또한 최근의 “함평무안 9·2농민투쟁”은 연대 투쟁과 생산지 현장 투쟁의 발전적 시도란 점에서 앞으로의 운동 방침에 매우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그러나 부문운동의 고립적 진행이라든가 운동론의 분산적 논의, 투쟁양상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타운동 영역에로의 발전적인 수용이 없었던 점은 깊이 반성되어져야 할 것이다. 결국 전남 운동권의 80년 이후 4년은 대중운동으로서의 운동의 질적 전환이라는 상황적 요구를 지역적으로 실천 형성해내기 위한 자기모색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이제 전 국토에 넘치는 민주화 운동의 거센 파도가 들끓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각 지방운동의 연대와 전국화를 제안하는 바이다. 지방은 서울과 달리 판도가 작고 한 눈에 들어오는 한계가 있는 반면에 다분히 가족적인 분위기이며 결속은 오히려 강고한다. 포괄적인 정세 판단이 뒤늦을지언정 현장 특유의 순수한 지속성이 있으며, 대중의 연계를 쉽게 이루어낼 수가 있다.
중앙이 지방에 대하여 가진 우월감이나 지방이 지역적 폐쇄성에 빠지는 일은 양편에서 지양되어야 하며, 지방 운동권은 자체 지역의 민중의 생존적 운동과 강고히 결합되면서 지방끼리의 연대를 통하여 새로운 운동 영역을 구축해내야 한다.
우리는 이 절박한 민족사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저 모든 탄압과 폭력을 몸으로 겪고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한 시대의 증인이자, 이름없이 죽어간 영령들의 절규를 짊어진 생존자로서, 우리가 바로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야할 것을 밝히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의지의 실천적 대응으로서 “전남 민주 청년운동협의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진정한 운동 역량은 정세 파단이나 빈 이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에서 쌓여지는 것이며 성숙한 때를 기다리기에는 출발은 언제나 늦기 마련이다. 움직이기 시작한 때가 바로 그때이며 그 시점에부터 힘이 자라는 것이다. 5월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것은, 상황이 우리를 끌고 나가기 전에 우리가 그것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 아니던가.
오늘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의 발족이 한반도 전체의 민중, 민주, 통일 운동의 발전적 계기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면서, 이의 대중적 확산과 결집력의 확보를 위해 모든 청년 동지들의 애정 어린 비판과 책임있는 개입을 기대한다. 5월의 온 도시를 뒤엎었던 대중 기반의 광범한 지평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들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이 광야에 “전청협”의 깃발을 들고 일어섰다.
광주여 영원하라!
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
전남민주청년운동 협의회 만세!
1984년 11월 18일
전라남도민주청년운동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