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5.18 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회를 찾아
본문
5.18 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회를 찾아
(국민 신문 1988년 5월13일 발행)
이제 우리의 광주를 위하여 80년 5월의 봄은 되살려져야 할 때가 왔다.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기나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던 처절하도록 찬란한 오월이 온 것이다. 8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봄은 왔건만 오월 민주화의 꽃망울은 활짝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만개를 위한 오월에의 자양분의 일부가 되어 주고 있는 「5.18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 회」를 찾아 이지현 회장을 만나 동 단체의 발족 배경 및 관의 탄압 형태와 오월 희석 화 작업에 의 대책,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5.18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 회」는 언제 결성되었습니까
-80년 5월 공수부대와 계엄군에 의해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치료 후 아픔과 불구의 몸을 딛고 모임을 가지려 했으나 기관원들의 탄압에 의해 지연, 82년 8월1일 무진 교회에서 '5.18부상자 회'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관의 행태 와 현 부상자 회의 탄생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부상자에 대한 수사 과정을 통해 5.18항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들만을 선별, 급수로 구분하여 위로금을 주고 정말 부상이 심한 경우에도 깊히 개입되었던 부상자들은 위로금은 ㅋ녕 강제 퇴원을 당했습니다. 그때 당시 치료만 잘 했더라도 지금처럼 심한 불구의 몸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관에 의해 '전남 지역개발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부상자 회를 분열. 이간시키면서 오월을 호도 하기도 했지요.
또한 참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존엄한 생존 욕구를 이용 돈 몇 푼으로 회원들을 생존 욕구를 이용 돈 몇 푼으로 회원들을 분열시키고 '민화위' 등을 내세워 현 정권의 잔인성을 은폐, 오월 정신을 왜곡. 희석 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광주를 사랑하는 국민의 성금으로 자신들이 선심을 쓰는 척 몇 푼 뿌려 주고 어린이 대공원을 조성, 오월의 피가 대가로 유홍지나 만드는 몰염치성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당시 한쪽 눈을 설명한 탓으로 그 꼴을 두 눈으로 보지 않게 되어 다행이지요.(이지현 회장은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또한 노태우 덕분(?)에 영화 관람을 할 때는 남들과는 달리 반액만 주는 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하여튼 관의 계속적인 분열 책과 회유 등으로 관제 화 돼 버린 부상자 회와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운 박옥재. 박용순씨 등 회장단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항의를 하지만 모임을 사 조직화하고 회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정도, 구속력도 없는 한시적인 꼭두각시 기구에 불과한 '민화위'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5.18광주 민중 항쟁 정신이 부상자 회가 희석되어 체제 내화되어 버린 마당에 '오월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외세 척결을 위한 「5.18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회」 발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 단체는 88년 2월 8일 가톨릭 센타 7층에서 오월 제단체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가졌지요.
부상자 회 회원의 생활상은 어떤 지요.
-우리 단체 명이 대변해 주고 있다시피 회원 대부분이 부상당하고 불구의 몸이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님에게서조차 외면을 당하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더욱 슬픈 것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력을 상실하고 기본적인 부부 생활을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가 집을 나가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죠. 또한 가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저 같은 경우는 이일을 맡고 있어서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도 하지 못하고, 남들처럼 아내에게 싸구려 옷이라도 한 벌 쉽게 사다 주지 못하고 자식에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부끄러운 가장인 셈입니다.
'민화위'의 광주 치유책에 대한 대책과 오월을 맞이하여 부상자 회의 앞으로의 활동 방향은 어떠합니까.
-노태우가 보다 고도의 술책을 부리고 있는데, 자기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는 데다 아무래도 계속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광주 문제를 짚고 넘어 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민화위'라는 꼭두각시를 이용 5.18을 희석화 하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들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민화위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나 민간 차원에서 진상 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안닌 적나라한 진상 규명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보상을 받아야 할 걸로 압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만 나더라도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저들이 생색내려는 보상은 의당 있어야 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보상은 민중 생존권의 보장과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광주 학살을 교사 .원조한 미군의 철수 및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겠습니다. 동시에 망월 묘지와 도청은 성역화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피해자들이 생활해 갈 수 있도록 떳떳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겠습니다.
그리고 오월은 제 유관 단체와 협의. 연대하여 싸워 나갈 것이며 지난 1일 전국 각 대학에서 성지 순례단이 만들어 졌고 7일 명동성당에서 서울 지부가 결성될 예정입니다. 18일은 유관 단체의 장과 각 대학 학생회장이 앞장서서 영정을 들고 도청까지 침묵시위를 갖고 군중 집회를 열 것입니다.
(국민 신문 1988년 5월13일 발행)
이제 우리의 광주를 위하여 80년 5월의 봄은 되살려져야 할 때가 왔다.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향한 기나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던 처절하도록 찬란한 오월이 온 것이다. 8년이 지난 오늘 또다시 봄은 왔건만 오월 민주화의 꽃망울은 활짝 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만개를 위한 오월에의 자양분의 일부가 되어 주고 있는 「5.18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 회」를 찾아 이지현 회장을 만나 동 단체의 발족 배경 및 관의 탄압 형태와 오월 희석 화 작업에 의 대책, 활동 방향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5.18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 회」는 언제 결성되었습니까
-80년 5월 공수부대와 계엄군에 의해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치료 후 아픔과 불구의 몸을 딛고 모임을 가지려 했으나 기관원들의 탄압에 의해 지연, 82년 8월1일 무진 교회에서 '5.18부상자 회'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관의 행태 와 현 부상자 회의 탄생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부상자에 대한 수사 과정을 통해 5.18항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들만을 선별, 급수로 구분하여 위로금을 주고 정말 부상이 심한 경우에도 깊히 개입되었던 부상자들은 위로금은 ㅋ녕 강제 퇴원을 당했습니다. 그때 당시 치료만 잘 했더라도 지금처럼 심한 불구의 몸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관에 의해 '전남 지역개발 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부상자 회를 분열. 이간시키면서 오월을 호도 하기도 했지요.
또한 참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존엄한 생존 욕구를 이용 돈 몇 푼으로 회원들을 생존 욕구를 이용 돈 몇 푼으로 회원들을 분열시키고 '민화위' 등을 내세워 현 정권의 잔인성을 은폐, 오월 정신을 왜곡. 희석 화 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광주를 사랑하는 국민의 성금으로 자신들이 선심을 쓰는 척 몇 푼 뿌려 주고 어린이 대공원을 조성, 오월의 피가 대가로 유홍지나 만드는 몰염치성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당시 한쪽 눈을 설명한 탓으로 그 꼴을 두 눈으로 보지 않게 되어 다행이지요.(이지현 회장은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었다.)또한 노태우 덕분(?)에 영화 관람을 할 때는 남들과는 달리 반액만 주는 혜택을 받기도 합니다.
하여튼 관의 계속적인 분열 책과 회유 등으로 관제 화 돼 버린 부상자 회와 사리사욕에만 눈이 어두운 박옥재. 박용순씨 등 회장단에게 각성을 촉구하고 항의를 하지만 모임을 사 조직화하고 회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정도, 구속력도 없는 한시적인 꼭두각시 기구에 불과한 '민화위'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5.18광주 민중 항쟁 정신이 부상자 회가 희석되어 체제 내화되어 버린 마당에 '오월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외세 척결을 위한 「5.18광주 민중 혁명 부상자 동지회」 발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 단체는 88년 2월 8일 가톨릭 센타 7층에서 오월 제단체와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가졌지요.
부상자 회 회원의 생활상은 어떤 지요.
-우리 단체 명이 대변해 주고 있다시피 회원 대부분이 부상당하고 불구의 몸이기 때문에 때로는 부모님에게서조차 외면을 당하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더욱 슬픈 것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력을 상실하고 기본적인 부부 생활을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가 집을 나가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죠. 또한 가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하더라도 저 같은 경우는 이일을 맡고 있어서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도 하지 못하고, 남들처럼 아내에게 싸구려 옷이라도 한 벌 쉽게 사다 주지 못하고 자식에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부끄러운 가장인 셈입니다.
'민화위'의 광주 치유책에 대한 대책과 오월을 맞이하여 부상자 회의 앞으로의 활동 방향은 어떠합니까.
-노태우가 보다 고도의 술책을 부리고 있는데, 자기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는 데다 아무래도 계속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광주 문제를 짚고 넘어 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민화위'라는 꼭두각시를 이용 5.18을 희석화 하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희들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민화위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나 민간 차원에서 진상 규명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안닌 적나라한 진상 규명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개적인 보상을 받아야 할 걸로 압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만 나더라도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저들이 생색내려는 보상은 의당 있어야 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보상은 민중 생존권의 보장과 민주주의와 민족 통일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광주 학살을 교사 .원조한 미군의 철수 및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겠습니다. 동시에 망월 묘지와 도청은 성역화 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 피해자들이 생활해 갈 수 있도록 떳떳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겠습니다.
그리고 오월은 제 유관 단체와 협의. 연대하여 싸워 나갈 것이며 지난 1일 전국 각 대학에서 성지 순례단이 만들어 졌고 7일 명동성당에서 서울 지부가 결성될 예정입니다. 18일은 유관 단체의 장과 각 대학 학생회장이 앞장서서 영정을 들고 도청까지 침묵시위를 갖고 군중 집회를 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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