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관제 어용 단체/5.18광주 민중 항쟁과 반민족 행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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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어용 단체
5.18광주 민중 항쟁과 반민족 행위자들
5.18민중 항쟁은 이 땅의 민중들의 드높은 역량을 과시한 과정이었고 이후 민족 민주 운동의 가장 강력한 토대가 외었다. 반면에 역사적 반동으로 등장한 전두환 일당에게 반 민중성과 비 정통성의 낙인을 찍었고 미국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줌으로써 민족 민주 운동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치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수 천명에 이르는 사망자만으로도 단적으로 증명된다. 동족에 의해 ,민주화를 열방한 죄(?)로, 국민을 보호하는 데에 그 존재 의의가 있는 국군에 의해 자행된 무참한 살육전의 책임은 전두환 군부 집단과 병력 동원을 승인하고 각종 성명서를 통해 광주 항쟁을 비난했던 미 제국주의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80년 당시 미제와 군부 독재의 하수인이 되어 5.18을 매도하고 광주 민중을 규탄함으로서 전두환 군부 독재 등장에 일익을 담당했던 자들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해방 직후 민족적 과제였던 친일 분자의 제거가 미제와 이승만. 한민당 등에 의해 외면되고 오히려 친일 분자가 재 등용됨으로써 이후 남한의 역사가 반민족적 파행을 거듭해 왔음을 상기할 때 쉽게 간과될 수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전두환 군부 집단에 동원되어 5.18을 매도하고 전두환 군부 독재의 집권에 기여(?)했던 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상이군경회를 비롯하여 지배 세력의 이익과 필요한 관점에서 동원되는 관제 어용 단체, 독제 정권의 지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지식을 판 어용 지식인, 문제의 핵심은 간과한 채 현상적이고 지엽적인 말장난으로 독재 정권에 봉사한 제도 언론 등이다.
5.18직후 관제 어용 단체들은 일간지에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게재. 발표함으로서 그들의 반민족적 작태를 드러내었다. 그들은 5.18과 이후 전두환 군부 집단의 각본에 의한 일련의 정치 일정에 충실히 보조를 맞추면서 5.18은 '국기(國基)마저 위태롭게 한 국난(國難)'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은 '북괴의 남침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이하 국보위)의 설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고 현명한 결단'으로 이를 전폭 지지. 협조. 참여한다는 매국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먼저 성균관 유도회는 80년 6월1일자 성명서 (80년 6월3일 조선 일보에 게재)에서 그들의 반민족적 작태를 드러냈다. 그들은 5.18이 '불행한 소요 사태' '국기마저 위태로운 상황'이고, 이는 북한의 남침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보위의 설치는 소요 사태 등 일대 불안 요인을 과감히 제거하여 국내 질서를 확립함과 동시에 확고하게 외침(外侵)에 대 처 하였다는 점에서 시의 적절한 조치이며 국보위가 국가 발전의 저해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결의는 우국충정의 발로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도의 사상과 윤리 정신을 이념으로 한 우국충정을 지닌 성균관 유도회는 이를 전적으로 지지. 적극 협조. 솔선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
대한 상이군경회도 6월 2일자 성명서(조선 일보 6월3일 게재)에서 '70년대 유신 정권이 내외 도전에도 불구하고 선진 문화 국으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왔고'전제하면서 5.18은 '발생의 동기야 어디 있든 간에 국가 존재 자체마저 전복하려는 일대 국난'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5.18을 기뻐할 자는' 김일성과 그 추종 세력이라면서 '월남의 공산화'교훈 따위를 들먹이기도 했다. 따라서 국보위의 발족을 '구국보민을 위한 일대용단인 동시에 시의 적절한 조치'로 보고, 국보위의 결정을 '국민적 결의'로 받아들여 '적극 지원. 협조는 물론 목숨 다할 때까지 구국 대열(?)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신문 6월 5일자에 발표된 대한 상공회의소, 전국 경제인 연합회, 한국무엽협회, 중소 기업 협동 조합 중앙 회의 공동 명의 성명서도 5.18을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위험하고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등 국가 보위에 극히 위험한 상황'으로 보았다. 역시 '남침을 경고하면서 '국난의 처치에서 국가 보위를 위한 조치는 시의 적절한 것'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끝으로 산하 60개 단체를 열거한 총력 안보 중앙 협의회는 6월4일자 성명서(한국 일보 6월5일자 게재)에서 '전국민을 놀라게 한 광주 사태는 실로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불행한 일'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광주 일원에서 벌어진 폭동 사태는 총기를 탈취한 무장 폭도들의 난동과 파괴로 무려260여 억원의 엄청난 물적 손실과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은 역시 '남침 우려'가 있다면서 '국가 존립과 국민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와 함께 국보위를 설치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이며 현명한 결단'으로 , '전폭적으로 지지. 환영. 협조하겠다'고 다짐했다. 60개 단체 중에 앞서 말한 단체 외에도 광복회, 라이온스 협회, 로타리클럽, 대한 반공 청년회, 대한 어머니 회, 재향경우회, 재향군인회, 변협, 조계종, 대한 노인회, 이북5도민회, 주부 교실, 반공 연맹, 천도교, 신문 협회, 예총, 방송 협회, 무역 협회, 노총, 한국 여성 단체 협의회, 청년 회의소 , 한국 부인회, 기타 각종 경제 단체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제 어용 단체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반공'의 허울 아래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일체의 행위를 반국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안보 이데올로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민주화 투쟁은 혼란이고 혼란은 남침 위험을 야기하고 따라서 국가보위를 위해 응징. 탄압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5.18의 원인 따위는 무시 해 버리고 5.18의 물질적 피해가 인명 피해보다 우선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살인자(국보위)들의 결정을 국민의 결의로 착각하고 잔인한 살육전을 '애국'의 개념으로 호도하고 있다.
정말 한심스러운 반민족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관제 어용 단체들의 준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일제 침략의 하수인이 되었던 일진회를 비롯한 각종 친일 단체, 가깝게는 해방 직후 반탁과 단정이 라는 매국의 논리로 온갖 민족 인사를 탄압. 폭행 살해했던 반공 청년 단체들 서북 청년단, 대동 청년단, 독립촉성 중앙 협의회청년단 등이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준동이 그치지 않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차제에 우리는 반공으로 가려진 그들의 반민족적이고 추악한 모습들을 낱낱이 들춰내어 민족의 양심 앞에 심판함으로써 해방 이후 뒤틀려진 민족적 정기를 바로 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5.18광주 민중 항쟁과 반민족 행위자들
5.18민중 항쟁은 이 땅의 민중들의 드높은 역량을 과시한 과정이었고 이후 민족 민주 운동의 가장 강력한 토대가 외었다. 반면에 역사적 반동으로 등장한 전두환 일당에게 반 민중성과 비 정통성의 낙인을 찍었고 미국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줌으로써 민족 민주 운동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치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수 천명에 이르는 사망자만으로도 단적으로 증명된다. 동족에 의해 ,민주화를 열방한 죄(?)로, 국민을 보호하는 데에 그 존재 의의가 있는 국군에 의해 자행된 무참한 살육전의 책임은 전두환 군부 집단과 병력 동원을 승인하고 각종 성명서를 통해 광주 항쟁을 비난했던 미 제국주의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80년 당시 미제와 군부 독재의 하수인이 되어 5.18을 매도하고 광주 민중을 규탄함으로서 전두환 군부 독재 등장에 일익을 담당했던 자들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해방 직후 민족적 과제였던 친일 분자의 제거가 미제와 이승만. 한민당 등에 의해 외면되고 오히려 친일 분자가 재 등용됨으로써 이후 남한의 역사가 반민족적 파행을 거듭해 왔음을 상기할 때 쉽게 간과될 수 없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전두환 군부 집단에 동원되어 5.18을 매도하고 전두환 군부 독재의 집권에 기여(?)했던 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상이군경회를 비롯하여 지배 세력의 이익과 필요한 관점에서 동원되는 관제 어용 단체, 독제 정권의 지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지식을 판 어용 지식인, 문제의 핵심은 간과한 채 현상적이고 지엽적인 말장난으로 독재 정권에 봉사한 제도 언론 등이다.
5.18직후 관제 어용 단체들은 일간지에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게재. 발표함으로서 그들의 반민족적 작태를 드러내었다. 그들은 5.18과 이후 전두환 군부 집단의 각본에 의한 일련의 정치 일정에 충실히 보조를 맞추면서 5.18은 '국기(國基)마저 위태롭게 한 국난(國難)'이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은 '북괴의 남침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이하 국보위)의 설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고 현명한 결단'으로 이를 전폭 지지. 협조. 참여한다는 매국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먼저 성균관 유도회는 80년 6월1일자 성명서 (80년 6월3일 조선 일보에 게재)에서 그들의 반민족적 작태를 드러냈다. 그들은 5.18이 '불행한 소요 사태' '국기마저 위태로운 상황'이고, 이는 북한의 남침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보위의 설치는 소요 사태 등 일대 불안 요인을 과감히 제거하여 국내 질서를 확립함과 동시에 확고하게 외침(外侵)에 대 처 하였다는 점에서 시의 적절한 조치이며 국보위가 국가 발전의 저해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결의는 우국충정의 발로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도의 사상과 윤리 정신을 이념으로 한 우국충정을 지닌 성균관 유도회는 이를 전적으로 지지. 적극 협조. 솔선 참여할 것을 다짐했다.
대한 상이군경회도 6월 2일자 성명서(조선 일보 6월3일 게재)에서 '70년대 유신 정권이 내외 도전에도 불구하고 선진 문화 국으로 전진에 전진을 거듭해 왔고'전제하면서 5.18은 '발생의 동기야 어디 있든 간에 국가 존재 자체마저 전복하려는 일대 국난'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5.18을 기뻐할 자는' 김일성과 그 추종 세력이라면서 '월남의 공산화'교훈 따위를 들먹이기도 했다. 따라서 국보위의 발족을 '구국보민을 위한 일대용단인 동시에 시의 적절한 조치'로 보고, 국보위의 결정을 '국민적 결의'로 받아들여 '적극 지원. 협조는 물론 목숨 다할 때까지 구국 대열(?)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서울 신문 6월 5일자에 발표된 대한 상공회의소, 전국 경제인 연합회, 한국무엽협회, 중소 기업 협동 조합 중앙 회의 공동 명의 성명서도 5.18을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위험하고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등 국가 보위에 극히 위험한 상황'으로 보았다. 역시 '남침을 경고하면서 '국난의 처치에서 국가 보위를 위한 조치는 시의 적절한 것'으로 환영한다고 했다.
끝으로 산하 60개 단체를 열거한 총력 안보 중앙 협의회는 6월4일자 성명서(한국 일보 6월5일자 게재)에서 '전국민을 놀라게 한 광주 사태는 실로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불행한 일'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광주 일원에서 벌어진 폭동 사태는 총기를 탈취한 무장 폭도들의 난동과 파괴로 무려260여 억원의 엄청난 물적 손실과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은 역시 '남침 우려'가 있다면서 '국가 존립과 국민 생존권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와 함께 국보위를 설치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이며 현명한 결단'으로 , '전폭적으로 지지. 환영. 협조하겠다'고 다짐했다. 60개 단체 중에 앞서 말한 단체 외에도 광복회, 라이온스 협회, 로타리클럽, 대한 반공 청년회, 대한 어머니 회, 재향경우회, 재향군인회, 변협, 조계종, 대한 노인회, 이북5도민회, 주부 교실, 반공 연맹, 천도교, 신문 협회, 예총, 방송 협회, 무역 협회, 노총, 한국 여성 단체 협의회, 청년 회의소 , 한국 부인회, 기타 각종 경제 단체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제 어용 단체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반공'의 허울 아래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일체의 행위를 반국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안보 이데올로기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민주화 투쟁은 혼란이고 혼란은 남침 위험을 야기하고 따라서 국가보위를 위해 응징. 탄압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그들은 5.18의 원인 따위는 무시 해 버리고 5.18의 물질적 피해가 인명 피해보다 우선적인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살인자(국보위)들의 결정을 국민의 결의로 착각하고 잔인한 살육전을 '애국'의 개념으로 호도하고 있다.
정말 한심스러운 반민족적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관제 어용 단체들의 준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일제 침략의 하수인이 되었던 일진회를 비롯한 각종 친일 단체, 가깝게는 해방 직후 반탁과 단정이 라는 매국의 논리로 온갖 민족 인사를 탄압. 폭행 살해했던 반공 청년 단체들 서북 청년단, 대동 청년단, 독립촉성 중앙 협의회청년단 등이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준동이 그치지 않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차제에 우리는 반공으로 가려진 그들의 반민족적이고 추악한 모습들을 낱낱이 들춰내어 민족의 양심 앞에 심판함으로써 해방 이후 뒤틀려진 민족적 정기를 바로 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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