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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법적 청산 문제 -민족정기 확립위해 '특검제'절실

본문

법적 청산 문제

민족정기 확립위해 '특검제'절실



12.12사건 처리 태도로 미루어 검찰은 5.18책입자들에게도 무혐의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한 프랑스 '반인륜법'과 같은 법의 제정도 촉구해 볼 만하다

정 웅 태(변호사)



5· 18 광주민중항쟁 문제해결은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기념사업, 피해배상, 명예회복이라는 5원칙이 관철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안 한다는 게 중론으로 돼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93년 5월13일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보다 전향적인 5· 18 해결책을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위의 5원칙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하지 못하여 그 태생적 한계를 드러냈다. 5.18문제의 해결은 조급하게 서두를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 끈기있게 차근차근 민주화의 진전에 발맞추어 추진해야 한다.

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발생한 5·18은 그 전의 12·12사건, 5·17비상계엄확대와 그 후 국회봉쇄,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설치, 90년 9월 전두환의 정권장악, 국가보위 입법회의 입법활동 등 일련의 행위와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진 다단계 쿠데타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를 포괄적으로 평가해야 함은 물론이다.

12· 12사건 기소유예 무혐의는 잘못

검찰은 12·12사건에 대하여 군형법상의 군사반란죄 성립을 인정하면서도 피의자의 긍(功), 국민감정, 국가발전, 남북통일 대비 등의 논거를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l2· I2는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한 경우' (군형법 제5조)에 해당하며 ,또 반란군은 비상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해 갔고 대통령에게 사후결재를 강요한 데다가 중앙청 점거,국방부장관 납치 등을 자행 했다.

이는 헌법 제91조의 국헌문란즉,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한 경우'여서 내란죄(형법 제87조)에 해당된다고 본다.

그런데 검찰이 내란수괴죄 및 내란목적살인죄 등 부분에 관하여 무험의처분출 내린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또한 군사반란죄의 수괴는 법정형이 사형밖에 없는 데도 이런 중한 죄를 법한 자에 대하여 기소유예처분을내렸다. 이는 국민의 법감정에 배치되고 법적용의 형평과 관행에도 반하며, 재량의 범위를 일탈한 기소편의주의의 남용으로 '위법이다'는 평가까지 가능한게 한다. 검찰의 기소유예결정은 정치적 결정이요, 정치적 고려에 굴복한 검찰의 자아상실 행태다. 김영삼대통령은 "12· l2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테타적 사건"이니 그 심판은 "역사에 맡기자"고 했다. 검찰은 이에 너무나도 충실하게 응답했다.

이렇게 중요한 국사범에 대해서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검찰에서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하여 반드시 사법적인 재판절차를 거쳐 법률적 판단을 받게 했어야 옳다고 본다.

내란죄와 군사반란죄의 차이

내란수괴죄의 법정형은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이고, 군사반란수괴죄의 경우 사형밖에 없다.그러므로 혹자는 12· 12와 관련하여 군사반란죄의 법정형이 더 무겁기 때문에 내란죄와 군사반란죄를 구별할 실익이 없는 것이거나 또는 군사반란죄가 더 중한 죄니 군사반란죄를 인정함으로써 충분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의미에서 볼 때 '내란죄'와 '반란죄' 는 전혀 다르다. 군 형법상의 군사반란죄는 12-12와 같이 전군의 통수체계를 전부 문란시키고 군사권을 장악하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단위부대, 다시'말해 사단내에서 사단장이나 혹은 연대장을 부하병사들이 병기를 휴대하고 작당해서 군지휘권을 박탈하는 것 역시 반란죄의 범주에 포함된다.즉, 군사행동에 의한 국가 전복기도도 반란죄가 성립하지만 그보다 차원이 낮은 단위부대의 군사행위도 포함되는 것이다. 다만 이런 군형법에 반란죄 수괴에 대한 형벌이 '사형'으로 내란죄보다 높게 규정되어 있는 것은 군이라고 하는 특수조직의 유지 필요상 그럴 뿐이다.

이에 반해 내란죄는 국가조직의 기본제도를 다중의 폭력에 의하여 불법으로 파괴 함으로써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다.본질적으로 군사반란죄보다 중하고 죄질이 불량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번 12.12사건에 대해 매우 의미깊은 입장을 밝혔다.헌법재판소가 창립된 후 기대이상의 과감성을 보여준 것이다.대통령재임기간 불소추특권을 보장한 헌법 제 84조 규정에 따라 재직기간중 형사소추가 불가능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반란죄에 대하여 각각 7년과 5년의 공소시효가 더 남아있다는 장을 받아 들인것이다.이점은 매우 바람직하다.그러나 뒤이어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적법한 것으로 보아 헌법소원을 기각한 것(95.1.20선고)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모습이다.헌법의 수호기관으로서 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활동이 기대되는 면에 부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94년 5궉 13일 5.18전신계승 및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 대대장급 이상 5·18학살책임자 35명에 대해 형법 제87조,제88조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 죄목으로 서울지검에 고소.고발했다.

검찰은 12· 12사건의 내란목적살인 부분에 관하여 피의자들이 병력을 동원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육군참모총장 등 군수뇌부를 체포한 사실은 인정되나 당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등 헌법기관이 그대로 유지된 점에 비추어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무혐의라고 판단하였다고 했다.그렇지만 검찰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12.12사건이 단계적 쿠테타의 첫단계이고 국헌문란의 상태를 초래한 내란죄임이 명백한데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은 잘못이다.

5.18의 경우 군사반란죄가 성립되는가

5.18 발포명령과 관련하여 당시 공수부대 지휘관이 상부에 발포 건의를 한 사실이 있었고 공수부대의 정식 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31사단 및 전교사는 발포건의를 받은 사실이 없으며 당시 공수부대는 이미 31사단 및 전교사의 지휘통제를 벗어나 있어 정식 지휘계통에 있지 않앗던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발포건의를 받았었다. 이로 보아 군의 지휘체계가 이원화 되어 문란한 면이 있다.그러나 5.18당시 군 책임자들이 군사권을 이미 장악한 상태였다.그러므로 12.12의 경우처럼 군의 통수체계를 문란시키고 군사권을 장악한하려는 군사반란죄의 성립은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다.따라서 국민위원회는 5.18책임자들을 처음부터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죄로 고소를 제기하였다.

검찰이 5· 18팡주항쟁에 대해서 어떠한 처분을 내릴 것인가?

현재와 같이 정치적 독립성·중립성이 보장되지 못한 우리 검찰제도의 속성으로 보아 어느정도 예측가능하다. 12 12의 경우처럼 온갖 수사(말솜씨)를 동원 다음에 국토를 참절(대한민국의 영토권을 침해)하거나 국헌을 문란(헌법 기관을 전복 또는 그 권한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할 록적이 없다고 하여 무혐의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들의 공, 국민감정, 국가발전, 남북통일 대비 등의 논거를 들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릴 승산도 있다. 어찌됐든 결국 기소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일련의 내란행위중에서 12·12만을 절단하여 무혐의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더구나 그 이후에는 피고소인들이 국민투표 등을 통하여 합법성을 가장해 정권을 장악하였으므로 5· 18만을 따로 떼어서 판단을 내릴 경우 내란죄를 인정하려들 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이 점에서 필자는 12·12피해자들과 5.18피해자들이 12· 12 때부터 국가보위 입법회의 발족으로 인한 정권탈취까지를 함께 뭉뚱그려서 고소를 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검찰로서는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평면적·형식적 시각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세계사의 보편적 흐름이고 5· 18의 정당한 평가가 우리 민족정기를 확립하는 중차대한 과업임을 인식하여 5·18이 12·12때부터 이루어진 다단계 쿠데타의 기승전결중에 '전'에 해당되는 부분임을 입체적 ·실질적으로 판단하여 기소해야 할 것이다.

공소시효의 함정

헌법재판소는 반란죄의 경우 상술한 바와 같이 대통령 재직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고 적절히 판단하였다. 그러나 내란죄의 경우 헌법 제84조의 문언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재직중에도 공소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아 12· 12의 경 우 그로부터 15년이 경과한 94년 12꿜 12일에 공소시효가 모두 완성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헌법재판소가 내란죄와 반란죄의 공소시효 진행에 대해 이렇게 서로 달리 보는 입장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5·18문제에 미묘하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초래한다.

만약 5· 18의 경우 검찰이 내란죄를 인정하고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고 하자. 그럴 결우 당연히 헌법소원이 제기될 것이다. 그때 헌법재판소가 이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을 95년 5월 27일 이후에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헌법재판소로서는 각 죄의 피의사실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되어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을 때에 해당하여 기소유예처분의 적부에 관해 판단할 것도 없이 부적법 각하를 면치 못한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내란죄의 공소시효 진행이 대한 적법성 여부를 따져보기도 전에 이미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로 종결돼 버리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과연 성공한 내란죄에 대하여 공소시효 제도가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가. 내란범들이 내란에 성공하여 집권을 하게 되면 국가형벌권 자체가 그들의 수중에 있게 되므로 그들을 내란죄로 형사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그들의 집권기간 동안에도 시효는 진행되므로 성공한 내란죄에 대해 공소시효 제도를 그대로 고집할 경우 내란죄라는 형법규정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만다. 현행 내 란죄의 시효 진행에 이런 모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우리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여기서 이런 공소시효 제도의 법리에 대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판례로 알려진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프랑스판례는 "시효는 유효하게 소추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하여 진행하지 아니한다"하는 법언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곧 국가의 소추권이 유효하게 행사될 수 있는 경우에만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12· 12나 5· 18에 대한 검찰의 이런 태도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 검찰만의 배타적인 권한으로 돼 있는 '검찰 기소독점주의 ' 에 심각한 문게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잘못된 역사적 사실일지라도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게 현행법의 한계다. 검찰이 이처럼 위법, 부당하게 무혐의·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고 있는바 과연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는 타당한 것인가? 이 제도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이 보장되어야 제대로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다. 현재 우리 나라와 같이 검찰의 정치적 종속성이 강하고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 존재하는 한 검찰은 검찰총장 한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우리 형사소송법은 지금과 달랐다. 1954년형사소송법 제정 당시에는 검사의 기소재량을 견제하기 위해 모든 범죄에 대하여 재정신청 제도를 두고,검사가 기소하지 않을 때는 당해 고등법원에 그 당부에 관하여 재판부가 결정해 주도록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신 이후 재정신청의 허용범위를 모든 범죄에서 공무원의 직권남용과 관련된 3개의 범죄에만 가능하도록 대폭 축소하여 재정신청 제도는·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원천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따라서 재정신청의 허용범위를 본래의 모습으로 개경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l2·12나 5·18의 경우처럼 특히 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안이나 권력형 부정부패에 관한 사안 들에서는 기소법정주의의 채택이 현행의 검찰제도 하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검사의 기소재량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는 헌법재판소가 불기소처분에 대해 심사를 하여 기소명령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6년여에 결쳐 기소명령이 내리진 것은 총 8백35건 중에서 22건에 불과하고. 검사가 그 명령대로 따르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위의 재정신청제도의 확대 및 한정적 기소법정주의의 채택은 더 이상 미를 수 없는 과제다.

'반인류법 ' 제정 촉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정치적 의혹이 짙은 사건의 경우 그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기대하기 어렵지 때문에 진실이 밝혀질 수 없고, 밝혀지더라도 기소하지 못한다는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함정을 극복하고 정당한 조사활동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런 유력한 방안 중의 하나가 특별검사제의 도입 이다. 실제로 특별검사제가 여소야대 시절 5공비리 수사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성안된 바 있었다. 그러나 법사위에서 제안 설명만 마친 채 3당합당 사태로 인하여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 이 안에 따르면 국회가 대통령에게 특별검사 임명을 요청하면 대통령은 법무부장관에게 법무부장관은 대한변호사협회에 각각 요청하고, 그 역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는 프랑스의 '반인류법'과 유사한 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길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반인류법은 나치협력자들 중 아동·양민·부녀자학살등 반인류적 범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남으로써 이들을 처 벌할 수 없게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뉘른베르크 국제 전범 재판소에서 나치 전범자에게 적용했던 법률이다.공소시효없이 무제한적으로 처벌할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법 제정을 위하여 국민청원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