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5.18 특별법 "YS식 결단" 그 배후와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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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특별법 "YS식 결단" 그 배후와 파장.
홍은택(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취임후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영삼대통령은 갑자기 저를 내란의 수괴라 지목하며 과거역사를 전면부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l2월2일 전두환 전대통정이 검찰소환에 불응, 연희등 자택을 떠나는 골목길에서 김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파괴하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이 한마디 사죄도 없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하는 비난(신한국당,민주당)이 쏟아지기도 했고 적어도 김대통령에게는 할말을 했다는 반응(새정치국민회의)도 나왔다
이 질문이 복합적인 반응을 낳은 것은 전 전대통령이 성명서에서 밝힌대로 김영삼정권은 『제5공화국의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제3공화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야권의 민주당, 3당이 지난 과거사를 모두 포용하는 취지에서 「구국의 일념」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연합하여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은 직접적인 반응을 피하면서도 익명의 고위 관계자 입을 빌어 『3당합당은 5 · 6 공세력의 자기반성을 전제로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설득력이 약했다.
당시 기록 어디를 봐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자 민정당총재가 과거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전 전대통령이 성명을 낭독하고 합천에 내려간지 19시간만에 검찰수사관을 보내 전격적으로 압송한 것이 "YS의 답변~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줬다. 전 전 대통령은 양심수들이 옥중항거 수단으로 삼았던 단식투쟁으로 YS에게 재차 회신을 요구하고 있다.
전 전대통령의 단식투쟁은 김대통령이 5 · 18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11월24일이후 정반대로 뒤바뀐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기증이 날 만클 상황이 급전한데 따라 어리둥절해 하는 반응들이 많다. 하지만 『뒤바뀌는 게 좋은 거라면 과정 따위는 무시해버려』하는 식의 중압감이 이런 반응들을 짓누르고 있다
특별법 서명은 해당행위?
이 중압감의 정체는 역사를 바로잡는 중차대한 일을 해나가는데 소소한 문제를 시비삼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현 정권뿐 아니라 많은 언론들이 채택하고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욕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과는 별도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과거청산이 다음 정권이나 후대에 또다시 청산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막기 어렵다
김대통령의 5 18특별법 제정 결절으로 빚어진 표면적인 혼란상은 이를테면 이환의의원(신한국)같은 경우다. 지난 9월16일 광주지역 재야 시민단체의 요구에 응해 5 · 18특별법 제정 촉구서에 서명했던 이의원은 해당분자로 낙인찍혀 일주일만에 광주지부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당시 민자당은 동조 음직임을 막기 위해 5 · 18특별법 촉구서에 서명하는 지구당위원장을 강력하게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제 이의원은 애당행위를 했다고까지는 못해도 당론의 변화를 선도한 선구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반면 .5. 18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해당분자로 몰렸다.
11월24일 강삼제사무총장은 5 · 18 특별법 제정 결정을 처음 밝히는 자리에서 박준병의원(자민련)을 첫번째 처벌대상으로 지목했다. 강총장은 기자들이 특별법의 처벌대상을 묻자 『모르겠다』면서도 『박의원은 포함될 것이다.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했다.그러나 3개월전 그가 민자당소속이었을 때 탈당설이 나돌자 김 대통령은 직접 나서 청와대로 불러들여 탈당을 만류했었다. 그 때는 당의 단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붙잡던 사람이 3개월만에 당이 추진하는 특별법의 처벌대상 1호로 전락한 것이다.
이 정도는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의 태도변화에 비하면 소소한 사례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지난 7월 검찰은 『성공한 내란에 의해 새로운 헌정질서가 창출되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5 18사건에 대해 「공소권없음」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4개월뒤 김대통령이 특별법 제정을 결정한지 6일만인 11월30일에는 12 · 12및 5 · 18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고, 설치한지 이틀만인 12월2일 전 전대통령을 전광석화처럼 구속했다.
최환서울지검장은 『기소유예한 사건이라도 피의자가 재범을 범했거나 개전의 정이 없을 경우에는 재수사해 처벌할 수 있다」는 법집행의 형식논리와 함께 최근 비자금사건으로 노태우 전대통령이 구속되는 사태가 빛어지고 국민들도 두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등 지난번 검찰 결정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는사정변경의 논리를 내세웠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검찰은 12 · 12와 5 · 17, 5 · I8을 같은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법조계에서는 지금까지 분리수사해왔던 12 · 12와 5 · 17, 5 · 18을 같은 사건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이미 「공소권없음」의 결정을 내린 5 18·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한 명분축적으로 해석했다 기소유예는 재수사할 여지가 있지만 공소권없음의 결정을 내린 5 · 18사건은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12 · 12와 함께 묶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조차 몇 개월만에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5 · 18 특별법은 위헌』
최지검장이 변경됐다고 열거한 사정들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12 12, 5.18·사건 자체와는 무관한 것이다. 노전대통령이 구속된 비자금사건은 대통령재임중에 일어난 일이고 12 · 12, 5 18은 취임전에 일어난 일이다. 뒤늦게 드러난 재임중의 부정이 취임전의 행위에 대한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해석이다.
이처럼 불분명한 인과관계를 사정변경의 사유로 삼는다는 것은 검찰이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빠져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전,노씨를 처벌하라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기 위해 법적인 안정성을 해치고 검찰의 독립성을 희생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검찰에 훼손당할 만큼 독립성이 보존돼 있었느냐는 반론도 있다. 일례로 검찰이 청와대 장병조 비서관이 최후의 배후인물이라고 했던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이나 노 전대통령에게 흘러갔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던 상무대 공사대금 횡령사건이 이번 비자금수사에서 모두 노 전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언제나 권력에 약했다 박계동의원(민주)은 12 · 12 및 5 18사건에 대한 불기소 결정도 어차피 검찰의 독자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정치적 판단에 종속됐던 것이라면 이제 와서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통합민주당은 5.18특별법의 제정과 전,노씨를 비롯한 쿠데타세력의 단죄를 위해서는 적어도 이 국면에서 검찰의 독립성이 논쟁의 초점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2 12와 5 · 18 사건에 대한 수사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노씨 비자금 사건에서는 검찰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대검중수부는 노씨의 비자금이 김 대통령의 14대 대선자금으로 얼마나 들어갔는지와 함께 노씨 비자금은 물론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여야 정치인들이 누구인가를 밝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의 독립성의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야당이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수사결과를 축소 또는 표적 수사로 비난할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검찰이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권 사정 나아가 정치권의 정화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낳는다. 이때문에 새정치국민회의의 박상천의원은 검찰의 독립성이 먼저 시급히 확보돼야할 과제 라고 주장했다..
검찰수산와 특별법 제정이 동시에 이뤄진 과정도 문제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검찰에서 전,노씨를 구속했고 다른 관련자들을 소환, 수사하고 있는데 또 다른 법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 차이는 전,노씨는 재임기간중 공소시효가 정지돼 있던 군사반란죄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다른 관련자들은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처벌하기 위해서는 내란죄 가담행위에는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5 · 18특별법은 소멸된 공소시효를 복원해 전,노씨 이외의 다른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그러나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았는 데도 검찰이 전, 노씨의 공범들을 소환, 수사를 벌인 점은 정상적 절차로 보기 어렵다 검찰은 당장 이들을 기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수사시점에서는 없었던 특별법이 앞으로 제정될 것을 전제로 한 수사이기 때문에 수사논리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공소시효를 복원하는 문제가 행위시의 법률로만 처벌을 받는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시비가 잇따르고 있다. 자민련의 김종필총재는 12월11일 기자회견을 통해 5 · 18특별법을 「위헌적 소금입법」이라고 규정했다.그의 말은 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파괴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설득력 이 반감되기는 하지만 주장만큼은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신한국당의 姜在涉의원도
같은 주장이다
『지난 7월 검찰의 의견대로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을 공소시효 기산점으로 놓고 본다면 이미 시효가 95년 8월l5일로 만료됐다. 전, 노씨의 공범들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 이 근거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행위시의 법률로만 처벌할 수 있다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지금은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특별법 제정을 지선으로 떠받들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나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신한국당의 현경대 5. 18특별법기초위원장은 『공소시효는 범죄의 실체에 관한 것이 아니고 절차에 관한 규정 이며 국제법상 반인륜적 범죄를 응징할 목적으로 시효의 폐지나 연장을 의무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이 11월29일 헌법이 문제가 된다면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처벌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위헌성여부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위헌시비가 제기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김영삼정권의 검찰이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을 때 기소유예 또는 공소권 없음을 결정 , 면죄부를 준 데서 파생된 것이다. 더구나 김대통령이 헌정파괴범죄를 다스리기위해 헌법조차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은 임기중 개헌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던 개헌논의에 대한 금기를 스스로 깬 것이다.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듯한 우려가 제기되자 김 대통령은 하루만에 개헌시사 발언을 백지화했다.
김대통령은 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5 · 18특별법의 제정을 발표, 헌재 결정을 무력화시켰다. 헌재는 대통령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린데 이어, 소청인들이 사전 유출된 결정내용에 불만을 품고 소를 추하해버리는 바람에 선고 자체가 무산되는 위기에 빠졌다. 12월15일 헌재소장의 직권에 의해 선고를 내리기는 했지만 이미 헌재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김대통령이 이처럼 법적 안정성을 뒤흔드는 결단을 통해서만 「헌정파괴범j들에 대한 단죄가 가능했던 것인지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사례들이다
TK, YS결단에 냉담
김대통령은 역적사바로잡기를 통해 국민화합을 이루겠다고 언명했다. 12월12일「12 12사태 발생 16년이 되는 날을 맞아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보면 『이 나라에 정의와 법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하고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 이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지역신문들이 전하는 여론을 보면 지역별로 매우 편차가 심하다
지난 11월28일 「광주매일」이 광주사회 조사연구소에 의뢰해 광주시민 4백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5 · 18학살책임자에 대한 단죄에 찬성한 의견 92.8%였다.반면 12월3일 대구에 있는 국제리서치가 대구시민 4백명을 대상으로 한 5 · 18특별법제정에 관한 여론조사결과는 응답자의 65%가 법제정에 찬성.16%는 반대 19%는 「모르겠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일보」가 대구 경북지역 3백4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보다 수치가 낮아 정부의 과거청산작업에 대해 56.2%만이 「잘하고 있다. 고 응답했고 40.6%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설문 문항의 차이를 무시하고 거칠게나마 단순 비교해보면 두 지역의 편차는 30% 이상이다. 대체로 다른 지역에서는 5. 18특별법에 대한 지지도가 80% 이상 되는 것과 비교해볼 때 대구경북지역의 여론은 다른 지역보다 차갑다고 할 수 있다.특히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는 신한국당의 지지도가 매우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에 있는 여론조사기관인 온조사연구소(소장 위현복)는 「매일신문」의 의뢰를 받아 지난 12월2일 대구경북지역 주민 1천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8백명쯤 했을 때인 다음날 오전 전 전대통령이 구속됐다. 그러자 여론조사를 중단했다. 그때까지 신한국당의 지지도는 대구에서는 8.2% 경북지역에서는 10%인 것으로 나타났다.온조사연구소가 조사를 중단하고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전씨 구속전의 조사결과로는 전씨 구속이 집행된 시점에서의 여론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위소장은 『전씨 구속 이후 새로 조사했다면 이 수치는 더욱 내려갔을 것』이라며 『특별법 제정에는 찬성하는 여론이 60%정도 되지만 신한국당의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위소장은 "5.18특별법 제정 결정 이전까지 민자당(신한국당)의 지지도는 대구는 12%, 경북은 21.2% 정도는 됐다"며 『특히 경북은 지지도 하락폭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위소장은 『지역주민들의 정서는 노 전대통령이 추악한 모습으로 구속된 이후 자존심이 상해 있다가 전 전대통령을 친다는 발가 나오고 전씨가 배짱 두둑하게 버티는 것을 보자 자존심을 회복해가는 차에 전씨를 새벽에 서울로 끌고가자 YS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것」이라고 지지도 하락의 이유를 분석했다. 김대통령이 절차나 준비 없이 발표함으로써 혼선이 유발되고,이를 막기위해 전씨를 서들러 구속하고, 더구나 고향에서 전씨 조모의 제삿날 새벽에 압송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구 경북지역의 민심을 악화시켰다는 얘기다.
이것은 지 역을 초월한 전국민적인 대의명분이 될 수 있었던 5 · 18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문제를 김대통령 또는 검찰이 사려깊지 못한 방법으로 처리함으로써 또 다시 지역간 반목을 낳는,그래서 5 18의 전국민적인 명분을 훼손하는 결과가 돼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이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 5 · 18결단을 내렸다고 하지만 대구 경북지역은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신한국당에 대해 그나마 조금밖에 없던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김 대통령의 의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5 · 18특별법 제정의 전격적 발표는 지역주의를 약화키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대구경북에서는 역효과까지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5共식」 언론보도
광주지역에서도 김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라갔다고 보기 어렵다. 특별법 제정에 만장치에 가까운 찬성을 보이면서도 ,5.18특별법 제정의도를 역사청산과 사회정 실현이라고 해석한 응답자는 10.3%에 불과한 반면 △대선자금시비 희석 50.8% △정국주도권 장악 7.3% △총선을 대비한 선전용 l5.0% △여론에 밀려서 2.3% △호남정서 달래기 4.8% △지역분할 정치구도타파 1.8% 등 정략적인 의도로 해석한 응답자가 80%를 넘었다(「광주매일」여론조사결과) . 김대통령의 제정의도를 불순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5 · 18결단을 가장 효과적으로 뒷받침한 부문은 TV였다.MBC의 「제4공화국」과 SBS의 「코리아게이트」는 다규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여서 꼭 사실만을 다뤄야 한다는 압박이 덜한 탓인지 고증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처럼 그려냈다 이 드라다를 통해 신군부세력은 재판을 받기전 이미 심판을 당했다. 한 방송국이면 몰라도 두 방송국이 서로 시차를 두고 똑같은 소재를, 신군부세력들을 흥폭하게 묘사하는 같은 시각으로 다루는데 영향을 받지 않을 시청자는 드물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TV뉴스에 이 드라마의 장면들이 배경화면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12 12사건의 경우 비디오로 찍어놓은 자료화면이 없는 사정도 있겠지만 제대로 고증되지 않았다고 물의를 빛은 드라마의 장면들이 자주 뉴스의 배경화면으로 나왔다. 한번은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한번은 이 드라마의 화면을 뉴스 배경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 이중의 왜곡이 가해진 것이다.
12월9일자 기자협회보를 보면 SBS기협지회 (지회장 이선명 )는 6일 총회를 열고「최근 불공정보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최근 일부 뉴스가 권력층의 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미화함으로써 언론의 비판적인 기능을 저버린 것은 물론 상식에 비춰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공정보도로 전락했다』고 비판한 것으로 나타났다. SBS 기자들은 이 총회에서 최근의 상황을 『뉴스의 생명인 공정성과 신뢰도가 의심받는, 창사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또 같은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KBS기협지회 (지회장 박인섭)도 5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특별법제정과 관련된 보도가 「5공식」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지회는 8일 성명을 통해 △5 · 18특별법에 관한 보도가 모든 공을 김영삼대통령에게 돌려버리고 있으며 △노씨 비자금 문제의 핵심사안인 대선자금 부분이 뉴스에서 간과하고 있고 △검찰의 5 18관련자 불기소나 공소권 없음 결정 등 YS와 권력에 흠이 될 여론조사는 하지 않고 전씨 구속에 관한 조사는 신속하게 하는 등 여론조사보도가 자의적이고 △해외반응도 YS에 대해 좋은 평가만 보도하고 △그동안 자제해왔던 시민반응을 갑작스럽게 등장시켜 YS조치의 합당성을 부추기는 여론몰이식의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5 · 18 특별법, YS 단독결정
뿐만 아니라 비자금정국이 한참 진행되던 11월20일에는 MBC의 강성구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가 사흘만에 이를 번복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정확한 사의 표명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MBC기자들은 방송보도내용과 관련한 청와대의 불만이 전해져 사의를 표했다가 철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MBC가 노태우씨의 비자금보도에 치중해 김대통령의 UN순방기사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 등 청와대 기사를 소홀히 다룬데 대해 청와대의 질책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대통령이 『정의와 법 그리고 양심이 국가와 민족의 항구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확고한 기반이 되도록 하겠다』며 벌이고 있는 「명예혁명」의 와중에서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야당의 활동이 어느 시간에도 좌절의 나락을 빠져들지 않았듯이 언론 역시 어느날 갑자기 정치권력의 홍보매체로 전락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언론과 야당이 권력의 울타리를 쳐주지 못할 때 권력은 만족할 줄 모르는 마성에 따라 절대권력을 향해 치닫게 된다는 사실은 역사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악이듯이 야당과 언론이 권력에 대한 통제기능을 잃었을 때 그것도 역시 결과적으로 악의 방조자로 전락하는 비극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대통령이 신민당총재시절인 80년 2월28일 관훈토론회에서 「자유언론과 민주정치」라는 제목으로 행한 연설의 일부다. 이 연설이 l5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이 명연설을 한 YS 가 집권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 새삼스럽게 와닿는 이유가 뭘까. 한 대목만 더 인용해보자.
「나는 강력하고 효을적인 지도력이란 힘의 원천을 국민의 자발적인 지지에서 구해야 하며. 힘의 행사는 도덕성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강력하고 효율적인 지도력에서는 건전하고 강인한 자유언론인이 그 불가결의 요소임을 확신합니다. 자유언론은 정치가 수행해야 할 변화하는 국민의 희망을 부단히 전달하고 정치의 앞길에 놓인 암초를 제거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강력한 정치 지도력과 강력한 자유언론은 결코 상호모순됨이 없는 맹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대중정치인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김 대통령과 같은 현대정치사를 대표하는 대중정치인은 시대의 소산이기도 하지단 대중과 호흡하는 타고난 능력도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중정치인은 자신에 대한 호악을 손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장법을 쓰면 유권자들 몇 명과 악수만 해봐도 선거의 당락을 안다는 것이다 의정사상 최다선인 9선의 관록을 쌓은 김대통령이 누구보다도 민심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92년 11월18일에 펴낸 『나의 정치비망록』(도서출판 심우)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부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국민 국민 하는데 나는 국민이 무엇인지 숱한 선거를 통해서 안다. 나는 민중 속에서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자랐다. 수많은 인파 속에 파묻히면 그 속에서 민중의 숨결,소망, 기대를 듣는다. 국민들이 나를 알듯이 나도 국민들을 안다』
대통령 직에 취임하고 3년 가까이 된 지금에 와서도 이런 자부심을 견지하고 있을까.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김대통령이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전화번호부에 빽빽이 이름이 적힌 과거 친지들과의 전화통화 외에는 언론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언론이 비판을 못 견며 하는 김대통령의 성향을 생각해 김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도한다면, 대중들과 격리돼 있는 김대통령으로서는 민심의 동향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95년 6.27지방선거 참패후 많은 여권 인사들은 김 대통령을 만나 통치스타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겸손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주문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신한국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제 김대통령에게 통치스타일을 바꾸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김대통령의 스타일과 안맞으면 내가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체념조로 말했다.
5 · 18특별법 제정도 여의도연구소를 비롯해 내부적으로 건의한 보고서가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김대통령 단독의 결정이라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혼자 결정하다보니 법리적인 문제를 충분히 검토할 수가 없었고 결정 이후 바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해 혼선이 빛어졌다 강삼재총장이 처음에 김대통령으로부터 5 18특별법 제정결정을 듣고 기자들이 12 · 12도 해당되느냐고 묻자 12-12는 제외된다고 답변했다가 이날 오후 늦게 윤여구 청와대대변인이 부랴부라 12- 12까지 포함된다고 수정한 것도 사전 준비부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반대의견 들을 필요없다』
김대통령이 흔자 결정하는 습관은 매우 오랜 경험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중요한 결정은 혼자서 한다. 두 가지쯤의 이유가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상의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논해서 그거 반대다 한다 해서 그 의견을 받아들일 것도 아니다. 그럴때 나는 의논하지 않는다.
내가 1970년 지명전에 나서기로 하던때 동료나 선배 측근들과 상의를 안 했다·선언하고 나니까 중진 노장 원로들이 일제히 내게 포문을 열었다. 나는 십자포화를 맞는 형세였다. 내 동료 동지들은 의논도 안 하고 혼자서 붙쑥 해 버렸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경솔하다고 비방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분들은 내가 사전에 의논했으면 안된다고 했을 사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정세를 보자고 했을 사람들이다‥‥결국 의논했다 하더라도 「내가 만류했는데」「내가 반대했는데,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고 할 사람들이었다. 내가 결정하고 결행한 많은 일들이 그랬다』(나의 정치비망록) |
5 18특별법 제정도 이와 상황이 유사했다. 김대통령의 한 측근은 법제정 결정과정에 관련해 『나의 정치비망록」에 나온 대목과 놀랄 만큼 흡사한 설명을 해줬다.
『만약 대통령께서 백사람에게 물어봤으면 백이면 구십은 반대했을 것이다. 그걸 당에 물어볼 수 있겠는가. 「아직 5.66공과 단절할 때가 아니다」거나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온다」는 등 안 물어봐도 뻔히 짐작할 수 있는 반발이 나와, 상의하는 순간 5 · 18특별법 제정이 무산될지도 모른다 일단 전격적으로 발표해 기정사실화한 뒤 이에 따르는 문제점들은 부차적으로 다뤄나가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 때도 그랬다. 김대통령이 실명제 실시에 대해 의견을 묻자 모두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임기중반기에나」 등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김대통령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한사람에게 은밀히 준비를 지시했다』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 『바깥에서는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강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왔어도 소수파다.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개혁을 하는 동안에는 정말 관료 언론 기업 정치인 등 주위가 온통 기득권 세력들로 포위돼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들의 견제와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을 끓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일부에서 비판하고 있는 YS의 「깜짝쇼_」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변호다.그러나 처음부터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갖고 진행한 일인지(밖으로 내색은 안해도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 일이지) 아니면 정치적인 상황변화에 의해 갑작스럽게 취한 조치(깜짝쇼)인지는 과정을 조금만 지켜보면 쉽게 판명된다. 이번 ,5. 18특별법 제정이 그렇다.김대통령이 재임중 언젠가는 전, 노씨와 단절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이번에 그걸 실천에 옮긴 것이라기보다는 노씨의 비자금이 발각됨으로써 초래된 정치적 상황변화에 따라 취해진 돌발적인 조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11월16일 노씨가 구속수감되는 날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역사와 대화한다는 자세로 이번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전했다 이어 강삼재총장이 11월24일 5. 18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김대통령의 결정을 전하는 자리에서는 '역사바로잡기'라는 표현이 나왔다.
전, 노씨 문제를 덮어주고 감싸주다가 이제 전, 노씨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급선회 하면서 이전까지 해온 일과 지금부터 하는 비약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가 등장한 것이다.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것 이상 가는 대의명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와 대화하는 자세'라는 표현은 식자층으로부터 심한 반감을 샀다. 국민회의의 임 정의원은 '대통령이 역사의 자기 페이지를 스스로 쓰겠다는 오만한 태도이며 심하게는 독점욕이 강한 그의 성격에 비춰볼 때 역사까지 사유화하려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굳이 이런 비난에 의지하지 않아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에 따라 법대로 하면 되는 현직 대통령이 역사와의 대화를 운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거창하거나 어색한 말이다.
사실 전,노씨의 문제 또는 12 · 12 . 5.18이 지금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남아있었던 것도 역사를 바로세우려는 의식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11월24일 이전 김대통령의 통치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자 구체제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은 뒤집어보면 구체제를 지탱하고 있던 최후의 보루가 김대통령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김대통령 스스로 총성없는 「명예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역 사바로잡기의 대상에는 김 대통령이 '불명예'스런 사람들과 손잡고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이들을 비호해온 굴절된 현재사가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김대통령 스스로 역사 앞에 겸손히 고개숙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랬을 때 국민들의 정신적인 혼미는 가시고 과거청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은택(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취임후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영삼대통령은 갑자기 저를 내란의 수괴라 지목하며 과거역사를 전면부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지난 l2월2일 전두환 전대통정이 검찰소환에 불응, 연희등 자택을 떠나는 골목길에서 김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이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파괴하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람이 한마디 사죄도 없이 저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하는 비난(신한국당,민주당)이 쏟아지기도 했고 적어도 김대통령에게는 할말을 했다는 반응(새정치국민회의)도 나왔다
이 질문이 복합적인 반응을 낳은 것은 전 전대통령이 성명서에서 밝힌대로 김영삼정권은 『제5공화국의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제3공화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야권의 민주당, 3당이 지난 과거사를 모두 포용하는 취지에서 「구국의 일념」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연합하여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은 직접적인 반응을 피하면서도 익명의 고위 관계자 입을 빌어 『3당합당은 5 · 6 공세력의 자기반성을 전제로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설득력이 약했다.
당시 기록 어디를 봐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자 민정당총재가 과거에 대해 부정적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전 전대통령이 성명을 낭독하고 합천에 내려간지 19시간만에 검찰수사관을 보내 전격적으로 압송한 것이 "YS의 답변~이 아닐까 하는 인상을 줬다. 전 전 대통령은 양심수들이 옥중항거 수단으로 삼았던 단식투쟁으로 YS에게 재차 회신을 요구하고 있다.
전 전대통령의 단식투쟁은 김대통령이 5 · 18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11월24일이후 정반대로 뒤바뀐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기증이 날 만클 상황이 급전한데 따라 어리둥절해 하는 반응들이 많다. 하지만 『뒤바뀌는 게 좋은 거라면 과정 따위는 무시해버려』하는 식의 중압감이 이런 반응들을 짓누르고 있다
특별법 서명은 해당행위?
이 중압감의 정체는 역사를 바로잡는 중차대한 일을 해나가는데 소소한 문제를 시비삼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현 정권뿐 아니라 많은 언론들이 채택하고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욕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과는 별도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의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의 과거청산이 다음 정권이나 후대에 또다시 청산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막기 어렵다
김대통령의 5 18특별법 제정 결절으로 빚어진 표면적인 혼란상은 이를테면 이환의의원(신한국)같은 경우다. 지난 9월16일 광주지역 재야 시민단체의 요구에 응해 5 · 18특별법 제정 촉구서에 서명했던 이의원은 해당분자로 낙인찍혀 일주일만에 광주지부장직을 내놓아야 했다. 당시 민자당은 동조 음직임을 막기 위해 5 · 18특별법 촉구서에 서명하는 지구당위원장을 강력하게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제 이의원은 애당행위를 했다고까지는 못해도 당론의 변화를 선도한 선구자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반면 .5. 18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해당분자로 몰렸다.
11월24일 강삼제사무총장은 5 · 18 특별법 제정 결정을 처음 밝히는 자리에서 박준병의원(자민련)을 첫번째 처벌대상으로 지목했다. 강총장은 기자들이 특별법의 처벌대상을 묻자 『모르겠다』면서도 『박의원은 포함될 것이다.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거명했다.그러나 3개월전 그가 민자당소속이었을 때 탈당설이 나돌자 김 대통령은 직접 나서 청와대로 불러들여 탈당을 만류했었다. 그 때는 당의 단합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붙잡던 사람이 3개월만에 당이 추진하는 특별법의 처벌대상 1호로 전락한 것이다.
이 정도는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의 태도변화에 비하면 소소한 사례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지난 7월 검찰은 『성공한 내란에 의해 새로운 헌정질서가 창출되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5 18사건에 대해 「공소권없음」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4개월뒤 김대통령이 특별법 제정을 결정한지 6일만인 11월30일에는 12 · 12및 5 · 18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고, 설치한지 이틀만인 12월2일 전 전대통령을 전광석화처럼 구속했다.
최환서울지검장은 『기소유예한 사건이라도 피의자가 재범을 범했거나 개전의 정이 없을 경우에는 재수사해 처벌할 수 있다」는 법집행의 형식논리와 함께 최근 비자금사건으로 노태우 전대통령이 구속되는 사태가 빛어지고 국민들도 두 사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등 지난번 검찰 결정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는사정변경의 논리를 내세웠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검찰은 12 · 12와 5 · 17, 5 · I8을 같은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법조계에서는 지금까지 분리수사해왔던 12 · 12와 5 · 17, 5 · 18을 같은 사건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이미 「공소권없음」의 결정을 내린 5 18·사건을 재수사하기 위한 명분축적으로 해석했다 기소유예는 재수사할 여지가 있지만 공소권없음의 결정을 내린 5 · 18사건은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12 · 12와 함께 묶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조차 몇 개월만에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5 · 18 특별법은 위헌』
최지검장이 변경됐다고 열거한 사정들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12 12, 5.18·사건 자체와는 무관한 것이다. 노전대통령이 구속된 비자금사건은 대통령재임중에 일어난 일이고 12 · 12, 5 18은 취임전에 일어난 일이다. 뒤늦게 드러난 재임중의 부정이 취임전의 행위에 대한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억지에 가까운 해석이다.
이처럼 불분명한 인과관계를 사정변경의 사유로 삼는다는 것은 검찰이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빠져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전,노씨를 처벌하라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기 위해 법적인 안정성을 해치고 검찰의 독립성을 희생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검찰에 훼손당할 만큼 독립성이 보존돼 있었느냐는 반론도 있다. 일례로 검찰이 청와대 장병조 비서관이 최후의 배후인물이라고 했던 수서택지 특혜분양사건이나 노 전대통령에게 흘러갔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던 상무대 공사대금 횡령사건이 이번 비자금수사에서 모두 노 전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언제나 권력에 약했다 박계동의원(민주)은 12 · 12 및 5 18사건에 대한 불기소 결정도 어차피 검찰의 독자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정치적 판단에 종속됐던 것이라면 이제 와서 검찰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말했다. 통합민주당은 5.18특별법의 제정과 전,노씨를 비롯한 쿠데타세력의 단죄를 위해서는 적어도 이 국면에서 검찰의 독립성이 논쟁의 초점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12 12와 5 · 18 사건에 대한 수사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노씨 비자금 사건에서는 검찰의 독립성이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대검중수부는 노씨의 비자금이 김 대통령의 14대 대선자금으로 얼마나 들어갔는지와 함께 노씨 비자금은 물론 기업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여야 정치인들이 누구인가를 밝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검찰의 독립성의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야당이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수사결과를 축소 또는 표적 수사로 비난할 여지가 생긴다 그리고 검찰이 이런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수사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권 사정 나아가 정치권의 정화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불가능하다는 문제를 낳는다. 이때문에 새정치국민회의의 박상천의원은 검찰의 독립성이 먼저 시급히 확보돼야할 과제 라고 주장했다..
검찰수산와 특별법 제정이 동시에 이뤄진 과정도 문제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검찰에서 전,노씨를 구속했고 다른 관련자들을 소환, 수사하고 있는데 또 다른 법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의아해한다.
그 차이는 전,노씨는 재임기간중 공소시효가 정지돼 있던 군사반란죄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다른 관련자들은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처벌하기 위해서는 내란죄 가담행위에는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5 · 18특별법은 소멸된 공소시효를 복원해 전,노씨 이외의 다른 관련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그러나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았는 데도 검찰이 전, 노씨의 공범들을 소환, 수사를 벌인 점은 정상적 절차로 보기 어렵다 검찰은 당장 이들을 기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수사시점에서는 없었던 특별법이 앞으로 제정될 것을 전제로 한 수사이기 때문에 수사논리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공소시효를 복원하는 문제가 행위시의 법률로만 처벌을 받는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시비가 잇따르고 있다. 자민련의 김종필총재는 12월11일 기자회견을 통해 5 · 18특별법을 「위헌적 소금입법」이라고 규정했다.그의 말은 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헌정을 파괴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설득력 이 반감되기는 하지만 주장만큼은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신한국당의 姜在涉의원도
같은 주장이다
『지난 7월 검찰의 의견대로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을 공소시효 기산점으로 놓고 본다면 이미 시효가 95년 8월l5일로 만료됐다. 전, 노씨의 공범들을 처벌할 근거가 없다. 이 근거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행위시의 법률로만 처벌할 수 있다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지금은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특별법 제정을 지선으로 떠받들지만 앞으로 두고두고 나쁜 선례로 남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신한국당의 현경대 5. 18특별법기초위원장은 『공소시효는 범죄의 실체에 관한 것이 아니고 절차에 관한 규정 이며 국제법상 반인륜적 범죄를 응징할 목적으로 시효의 폐지나 연장을 의무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것이 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이 11월29일 헌법이 문제가 된다면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처벌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위헌성여부가 신경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위헌시비가 제기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김영삼정권의 검찰이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을 때 기소유예 또는 공소권 없음을 결정 , 면죄부를 준 데서 파생된 것이다. 더구나 김대통령이 헌정파괴범죄를 다스리기위해 헌법조차 바꿀 수 있다고 한 것은 임기중 개헌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던 개헌논의에 대한 금기를 스스로 깬 것이다.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 듯한 우려가 제기되자 김 대통령은 하루만에 개헌시사 발언을 백지화했다.
김대통령은 또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앞서 5 · 18특별법의 제정을 발표, 헌재 결정을 무력화시켰다. 헌재는 대통령에게 선수를 빼앗겨버린데 이어, 소청인들이 사전 유출된 결정내용에 불만을 품고 소를 추하해버리는 바람에 선고 자체가 무산되는 위기에 빠졌다. 12월15일 헌재소장의 직권에 의해 선고를 내리기는 했지만 이미 헌재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김대통령이 이처럼 법적 안정성을 뒤흔드는 결단을 통해서만 「헌정파괴범j들에 대한 단죄가 가능했던 것인지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사례들이다
TK, YS결단에 냉담
김대통령은 역적사바로잡기를 통해 국민화합을 이루겠다고 언명했다. 12월12일「12 12사태 발생 16년이 되는 날을 맞아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보면 『이 나라에 정의와 법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하고 진정한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 이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그러나 최근 지역신문들이 전하는 여론을 보면 지역별로 매우 편차가 심하다
지난 11월28일 「광주매일」이 광주사회 조사연구소에 의뢰해 광주시민 4백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5 · 18학살책임자에 대한 단죄에 찬성한 의견 92.8%였다.반면 12월3일 대구에 있는 국제리서치가 대구시민 4백명을 대상으로 한 5 · 18특별법제정에 관한 여론조사결과는 응답자의 65%가 법제정에 찬성.16%는 반대 19%는 「모르겠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일보」가 대구 경북지역 3백4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보다 수치가 낮아 정부의 과거청산작업에 대해 56.2%만이 「잘하고 있다. 고 응답했고 40.6%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설문 문항의 차이를 무시하고 거칠게나마 단순 비교해보면 두 지역의 편차는 30% 이상이다. 대체로 다른 지역에서는 5. 18특별법에 대한 지지도가 80% 이상 되는 것과 비교해볼 때 대구경북지역의 여론은 다른 지역보다 차갑다고 할 수 있다.특히 정당지지도 조사에서는 신한국당의 지지도가 매우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에 있는 여론조사기관인 온조사연구소(소장 위현복)는 「매일신문」의 의뢰를 받아 지난 12월2일 대구경북지역 주민 1천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다. 8백명쯤 했을 때인 다음날 오전 전 전대통령이 구속됐다. 그러자 여론조사를 중단했다. 그때까지 신한국당의 지지도는 대구에서는 8.2% 경북지역에서는 10%인 것으로 나타났다.온조사연구소가 조사를 중단하고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전씨 구속전의 조사결과로는 전씨 구속이 집행된 시점에서의 여론을 정확하게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위소장은 『전씨 구속 이후 새로 조사했다면 이 수치는 더욱 내려갔을 것』이라며 『특별법 제정에는 찬성하는 여론이 60%정도 되지만 신한국당의 지지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위소장은 "5.18특별법 제정 결정 이전까지 민자당(신한국당)의 지지도는 대구는 12%, 경북은 21.2% 정도는 됐다"며 『특히 경북은 지지도 하락폭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위소장은 『지역주민들의 정서는 노 전대통령이 추악한 모습으로 구속된 이후 자존심이 상해 있다가 전 전대통령을 친다는 발가 나오고 전씨가 배짱 두둑하게 버티는 것을 보자 자존심을 회복해가는 차에 전씨를 새벽에 서울로 끌고가자 YS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것」이라고 지지도 하락의 이유를 분석했다. 김대통령이 절차나 준비 없이 발표함으로써 혼선이 유발되고,이를 막기위해 전씨를 서들러 구속하고, 더구나 고향에서 전씨 조모의 제삿날 새벽에 압송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구 경북지역의 민심을 악화시켰다는 얘기다.
이것은 지 역을 초월한 전국민적인 대의명분이 될 수 있었던 5 · 18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문제를 김대통령 또는 검찰이 사려깊지 못한 방법으로 처리함으로써 또 다시 지역간 반목을 낳는,그래서 5 18의 전국민적인 명분을 훼손하는 결과가 돼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이 국민화합을 이루기 위해 5 · 18결단을 내렸다고 하지만 대구 경북지역은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신한국당에 대해 그나마 조금밖에 없던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김 대통령의 의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5 · 18특별법 제정의 전격적 발표는 지역주의를 약화키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 대구경북에서는 역효과까지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5共식」 언론보도
광주지역에서도 김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라갔다고 보기 어렵다. 특별법 제정에 만장치에 가까운 찬성을 보이면서도 ,5.18특별법 제정의도를 역사청산과 사회정 실현이라고 해석한 응답자는 10.3%에 불과한 반면 △대선자금시비 희석 50.8% △정국주도권 장악 7.3% △총선을 대비한 선전용 l5.0% △여론에 밀려서 2.3% △호남정서 달래기 4.8% △지역분할 정치구도타파 1.8% 등 정략적인 의도로 해석한 응답자가 80%를 넘었다(「광주매일」여론조사결과) . 김대통령의 제정의도를 불순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5 · 18결단을 가장 효과적으로 뒷받침한 부문은 TV였다.MBC의 「제4공화국」과 SBS의 「코리아게이트」는 다규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여서 꼭 사실만을 다뤄야 한다는 압박이 덜한 탓인지 고증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처럼 그려냈다 이 드라다를 통해 신군부세력은 재판을 받기전 이미 심판을 당했다. 한 방송국이면 몰라도 두 방송국이 서로 시차를 두고 똑같은 소재를, 신군부세력들을 흥폭하게 묘사하는 같은 시각으로 다루는데 영향을 받지 않을 시청자는 드물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TV뉴스에 이 드라마의 장면들이 배경화면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12 12사건의 경우 비디오로 찍어놓은 자료화면이 없는 사정도 있겠지만 제대로 고증되지 않았다고 물의를 빛은 드라마의 장면들이 자주 뉴스의 배경화면으로 나왔다. 한번은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한번은 이 드라마의 화면을 뉴스 배경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 이중의 왜곡이 가해진 것이다.
12월9일자 기자협회보를 보면 SBS기협지회 (지회장 이선명 )는 6일 총회를 열고「최근 불공정보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 『최근 일부 뉴스가 권력층의 소리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미화함으로써 언론의 비판적인 기능을 저버린 것은 물론 상식에 비춰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공정보도로 전락했다』고 비판한 것으로 나타났다. SBS 기자들은 이 총회에서 최근의 상황을 『뉴스의 생명인 공정성과 신뢰도가 의심받는, 창사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또 같은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KBS기협지회 (지회장 박인섭)도 5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고 특별법제정과 관련된 보도가 「5공식」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BS지회는 8일 성명을 통해 △5 · 18특별법에 관한 보도가 모든 공을 김영삼대통령에게 돌려버리고 있으며 △노씨 비자금 문제의 핵심사안인 대선자금 부분이 뉴스에서 간과하고 있고 △검찰의 5 18관련자 불기소나 공소권 없음 결정 등 YS와 권력에 흠이 될 여론조사는 하지 않고 전씨 구속에 관한 조사는 신속하게 하는 등 여론조사보도가 자의적이고 △해외반응도 YS에 대해 좋은 평가만 보도하고 △그동안 자제해왔던 시민반응을 갑작스럽게 등장시켜 YS조치의 합당성을 부추기는 여론몰이식의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5 · 18 특별법, YS 단독결정
뿐만 아니라 비자금정국이 한참 진행되던 11월20일에는 MBC의 강성구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가 사흘만에 이를 번복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정확한 사의 표명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MBC기자들은 방송보도내용과 관련한 청와대의 불만이 전해져 사의를 표했다가 철회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MBC가 노태우씨의 비자금보도에 치중해 김대통령의 UN순방기사와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 등 청와대 기사를 소홀히 다룬데 대해 청와대의 질책이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대통령이 『정의와 법 그리고 양심이 국가와 민족의 항구적인 발전을 보장하는 확고한 기반이 되도록 하겠다』며 벌이고 있는 「명예혁명」의 와중에서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야당의 활동이 어느 시간에도 좌절의 나락을 빠져들지 않았듯이 언론 역시 어느날 갑자기 정치권력의 홍보매체로 전락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 언론과 야당이 권력의 울타리를 쳐주지 못할 때 권력은 만족할 줄 모르는 마성에 따라 절대권력을 향해 치닫게 된다는 사실은 역사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악이듯이 야당과 언론이 권력에 대한 통제기능을 잃었을 때 그것도 역시 결과적으로 악의 방조자로 전락하는 비극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대통령이 신민당총재시절인 80년 2월28일 관훈토론회에서 「자유언론과 민주정치」라는 제목으로 행한 연설의 일부다. 이 연설이 l5년이 지난 지금, 그리고 이 명연설을 한 YS 가 집권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 새삼스럽게 와닿는 이유가 뭘까. 한 대목만 더 인용해보자.
「나는 강력하고 효을적인 지도력이란 힘의 원천을 국민의 자발적인 지지에서 구해야 하며. 힘의 행사는 도덕성을 기초로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강력하고 효율적인 지도력에서는 건전하고 강인한 자유언론인이 그 불가결의 요소임을 확신합니다. 자유언론은 정치가 수행해야 할 변화하는 국민의 희망을 부단히 전달하고 정치의 앞길에 놓인 암초를 제거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뜻에서 강력한 정치 지도력과 강력한 자유언론은 결코 상호모순됨이 없는 맹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대중정치인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특히 김 대통령과 같은 현대정치사를 대표하는 대중정치인은 시대의 소산이기도 하지단 대중과 호흡하는 타고난 능력도 겸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중정치인은 자신에 대한 호악을 손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과장법을 쓰면 유권자들 몇 명과 악수만 해봐도 선거의 당락을 안다는 것이다 의정사상 최다선인 9선의 관록을 쌓은 김대통령이 누구보다도 민심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가 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92년 11월18일에 펴낸 『나의 정치비망록』(도서출판 심우)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정부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국민 국민 하는데 나는 국민이 무엇인지 숱한 선거를 통해서 안다. 나는 민중 속에서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자랐다. 수많은 인파 속에 파묻히면 그 속에서 민중의 숨결,소망, 기대를 듣는다. 국민들이 나를 알듯이 나도 국민들을 안다』
대통령 직에 취임하고 3년 가까이 된 지금에 와서도 이런 자부심을 견지하고 있을까.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김대통령이 민심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전화번호부에 빽빽이 이름이 적힌 과거 친지들과의 전화통화 외에는 언론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언론이 비판을 못 견며 하는 김대통령의 성향을 생각해 김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으로 보도한다면, 대중들과 격리돼 있는 김대통령으로서는 민심의 동향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95년 6.27지방선거 참패후 많은 여권 인사들은 김 대통령을 만나 통치스타일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겸손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주문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신한국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제 김대통령에게 통치스타일을 바꾸라고 요구하기보다는 김대통령의 스타일과 안맞으면 내가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체념조로 말했다.
5 · 18특별법 제정도 여의도연구소를 비롯해 내부적으로 건의한 보고서가 있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김대통령 단독의 결정이라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혼자 결정하다보니 법리적인 문제를 충분히 검토할 수가 없었고 결정 이후 바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해 혼선이 빛어졌다 강삼재총장이 처음에 김대통령으로부터 5 18특별법 제정결정을 듣고 기자들이 12 · 12도 해당되느냐고 묻자 12-12는 제외된다고 답변했다가 이날 오후 늦게 윤여구 청와대대변인이 부랴부라 12- 12까지 포함된다고 수정한 것도 사전 준비부족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반대의견 들을 필요없다』
김대통령이 흔자 결정하는 습관은 매우 오랜 경험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중요한 결정은 혼자서 한다. 두 가지쯤의 이유가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상의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논해서 그거 반대다 한다 해서 그 의견을 받아들일 것도 아니다. 그럴때 나는 의논하지 않는다.
내가 1970년 지명전에 나서기로 하던때 동료나 선배 측근들과 상의를 안 했다·선언하고 나니까 중진 노장 원로들이 일제히 내게 포문을 열었다. 나는 십자포화를 맞는 형세였다. 내 동료 동지들은 의논도 안 하고 혼자서 붙쑥 해 버렸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경솔하다고 비방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분들은 내가 사전에 의논했으면 안된다고 했을 사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정세를 보자고 했을 사람들이다‥‥결국 의논했다 하더라도 「내가 만류했는데」「내가 반대했는데,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고 할 사람들이었다. 내가 결정하고 결행한 많은 일들이 그랬다』(나의 정치비망록) |
5 18특별법 제정도 이와 상황이 유사했다. 김대통령의 한 측근은 법제정 결정과정에 관련해 『나의 정치비망록」에 나온 대목과 놀랄 만큼 흡사한 설명을 해줬다.
『만약 대통령께서 백사람에게 물어봤으면 백이면 구십은 반대했을 것이다. 그걸 당에 물어볼 수 있겠는가. 「아직 5.66공과 단절할 때가 아니다」거나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온다」는 등 안 물어봐도 뻔히 짐작할 수 있는 반발이 나와, 상의하는 순간 5 · 18특별법 제정이 무산될지도 모른다 일단 전격적으로 발표해 기정사실화한 뒤 이에 따르는 문제점들은 부차적으로 다뤄나가야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 때도 그랬다. 김대통령이 실명제 실시에 대해 의견을 묻자 모두 「지금은 경제가 어려워서」 「임기중반기에나」 등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명했다. 김대통령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한사람에게 은밀히 준비를 지시했다』그는 이런 얘기도 했다. 『바깥에서는 대통령이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강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왔어도 소수파다.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개혁을 하는 동안에는 정말 관료 언론 기업 정치인 등 주위가 온통 기득권 세력들로 포위돼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들의 견제와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을 끓기 위해서는 충격요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일부에서 비판하고 있는 YS의 「깜짝쇼_」에 대한 매우 설득력 있는 변호다.그러나 처음부터 어떤 목적과 방향을 갖고 진행한 일인지(밖으로 내색은 안해도 스스로 준비하고 있는 일이지) 아니면 정치적인 상황변화에 의해 갑작스럽게 취한 조치(깜짝쇼)인지는 과정을 조금만 지켜보면 쉽게 판명된다. 이번 ,5. 18특별법 제정이 그렇다.김대통령이 재임중 언젠가는 전, 노씨와 단절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이번에 그걸 실천에 옮긴 것이라기보다는 노씨의 비자금이 발각됨으로써 초래된 정치적 상황변화에 따라 취해진 돌발적인 조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11월16일 노씨가 구속수감되는 날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김 대통령은 역사와 대화한다는 자세로 이번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전했다 이어 강삼재총장이 11월24일 5. 18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김대통령의 결정을 전하는 자리에서는 '역사바로잡기'라는 표현이 나왔다.
전, 노씨 문제를 덮어주고 감싸주다가 이제 전, 노씨를 처벌하는 방향으로 급선회 하면서 이전까지 해온 일과 지금부터 하는 비약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가 등장한 것이다.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것 이상 가는 대의명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와 대화하는 자세'라는 표현은 식자층으로부터 심한 반감을 샀다. 국민회의의 임 정의원은 '대통령이 역사의 자기 페이지를 스스로 쓰겠다는 오만한 태도이며 심하게는 독점욕이 강한 그의 성격에 비춰볼 때 역사까지 사유화하려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굳이 이런 비난에 의지하지 않아도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에 따라 법대로 하면 되는 현직 대통령이 역사와의 대화를 운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거창하거나 어색한 말이다.
사실 전,노씨의 문제 또는 12 · 12 . 5.18이 지금까지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남아있었던 것도 역사를 바로세우려는 의식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11월24일 이전 김대통령의 통치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자 구체제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은 뒤집어보면 구체제를 지탱하고 있던 최후의 보루가 김대통령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김대통령 스스로 총성없는 「명예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는 역 사바로잡기의 대상에는 김 대통령이 '불명예'스런 사람들과 손잡고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이들을 비호해온 굴절된 현재사가 예외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김대통령 스스로 역사 앞에 겸손히 고개숙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랬을 때 국민들의 정신적인 혼미는 가시고 과거청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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