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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법치주의 없이 '명예혁명"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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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없이 '명예혁명"없다.



쿠데타는 단죄돼야 마땅하고 역사정리는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법치주의에 따라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굴절된 헌정사가 로 잡히고, 법과 정의가 바로 선다.

허 영(연세대 법과대 교수 법학)

지금 전개되고 있는 정치상황은 가위 혁명적이다. 일종의 명예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일이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17일 간격으로 전직 대통령 두사람이 구속 · 수감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한편 후련하면서도 아리송하고 어쩐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12 · 13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 유예처분과 5 18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이 있을 때만 하더라도 국민은 그러한 정치검찰의 모습에 분개하고 실망하면서도 오늘과 같은 사태 반전을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5 · 18에 대해서 12 · 12 사태와 행위적인 연관성을 강조하면서도 이른바 「성공한 쿠데타」의 법리를 내세워 처벌할 수 없다고 불기소결정을 했을 때 법학계와 재야법조계에서는 검찰논리의 법리적 부당성을지적하는 글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검찰결정에 대한 저항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긴 했어도 그러한 움직임이 오늘과 같은 갑작스런 반전으로 이어지리라고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여당의 입장이 너무나도 경직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헌법보호의 최후보루인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 심판을 통해 5 18에 대해서 정당한 결정을 하도록 촉구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국민의 이목이 헌법재관소에 집중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혼란스러운 12 · 12,5 18 해법

그러나 노태우씨의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이 터진 후 김대통령이 갑자기 5 · 18단죄를 위한 특별법제정을 지시하면서부터 사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헌법재판소의 내부적인 평의결과가 새난왔고, 검찰 태도도 12 12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준비하는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김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내부결정 내용을 미리 알고 정치적인 선수를 쳤다는 소문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위상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번에는 5. 18의 공소시효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내부적인 평의결과가 관심을 끌었다. 헌법재판소가 5 · 18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해서는 취소결정을 하겠지만, 이 사건의 공소시호에 관해서는 검찰의 견해에 동조해서 이미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취지의 결정을 하리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내부적인 평의는 특별법을 준비중인 정치권에 심각한 법리적 번민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헌법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유권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공소시효는 이미 끝났다는 취지의 판시를 하는 경우 그 후의 특별법제정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어긋나는 위헌적인 입법으로 평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리적인 딜레마를 의식한듯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들은 결정선고 하루 전에 헌법소원을 취하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산시킴으로써 특별법제정에 대한 위헌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비상조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진전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법치주의의 기본정신에 따라 당연히 검찰의 기소처분이 있었어야 할 12 · 12와 .5 · 18을 특별법제정이라는 비정상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된 것도 문제려니와, 헌법재판소의 내부적인 평의 결과가 사전에 유출된 것도 간과하기 어렵고,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특별법제정을 지시함으로써 헌법재판소의 중요한 결정을 무산시켜 그 위상을 떨어지게 만든 것도 큰 문제이다. 또 헌법재판소가 공소시효 문제를 그릇 판단함으로써 12 12와 5 · 18관련자들의 처벌이 마치 위헌적인 정치보복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된 것도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이다.

검찰이 대통령이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필 필요 없이 법의 정신에 따라 두 사건을 처음부터 기소처리했더라면 큰 말썽 없이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의 검찰과 정치현실이 아직은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체념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헌법보호의 최후보루라고 볼 수 있는 헌법재판소만은 좀더 면밀한 법리검토를 통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헌정질서를 안정시키는 방향으초 결정했어야 한다

이번에 헌법소원취하의 직접 동기가 된 공소시효 문제만 해도 그렇다. 12 ·12에서 시작해서 .5 · 17과 5 18을 거쳐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취임으로 이어지는 군사반란 내지 국헌문란행위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처음부터 12 · 12와 5 · 18을 따로 떼서 평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12 12를 기점으로 하는 군사반란내지 국헌문란의 내란행위는 전두환씨가 새 헌법상의 대통령에 취임한 1981년 3월3일에야 비로소 일단 외 형상으로 종결된 단계적 (다단계 ) 군사쿠데타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5 · 18의 공소시효는 그 때부터 시작해서 내년 3월2일에야 끝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검찰의 논리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공소시효 기산점으로 잡았다는 최규하씨의 하야는 단계적 쿠데타의 진행과정으로 쿠데타 세력이 그들의 뜻대로 정권탈취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일 뿐 그것으로 쿠데타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그후에도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돌발적인 정치적인 상황변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쿠데타세력 내부에 분열이 생긴다든지, 국민의 저항이 거세져서 쿠데타 진행이 지연된다든지 쿠데타 자체가 좌절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쿠데타 세력과 대통령 권한

그렇기 때문에 국가철학에서도 쿠데타의 성공여부 내지는 그 성공시점을 판단하는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일반적으로 쿠테타의 성공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은 집권목표달성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집권과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권좌위에서 물러난 쿠테타세력에 대한 국민의 수용자세이다.또 쿠테타의 성공시점을 정함에 있어서도 상황번전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는지의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쿠데타의 성공평가에 이처럼 인색하고 쿠데타 성공시점을 되도록 늦추어 잡으려는 국가철학자들의 이론적인 노력은 본질적으로 불법적인 쿠데타의 성공을 가능하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번뇌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국민의 저항권 행사기간을 늘려 잡음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틀이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의 학문적 연구

결과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검찰과 헌법재판소가 성급하게 최규하 전대통령의 하야일을 쿠데타의 성공시점으로 앞당겨 잡은 것은 국가철학에서 확보된 보편적인 이론과도 조화가 안되는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견해가 아닐 수 없다.

그에 대해 12 · 12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가 대통령재직중에 정지한다고 해석했던 헌법재판소가 5 · 18사건의 경우에는 내란죄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정지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면, 그것은 헌법의 통일성과 기능을 무시한 법실증주의적 문리해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신분상 특권을 규정한 헌법 제84조는 어디까지나 평화로운 정권교체로 합헌적인 절차와 방법에 따라 취임한 민주적인 대통령을 전제로 한 헌법보호의 제도적인 표현이다. 즉 아무리 국민이 선택해서 민주적으로 추대한 대통령일지라도 그 재직중에 내란이나 외환을 일으켜 자유민주적 헌법질서를 침해하면 형사소추를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대통령으로 하여금 취임선서에서 서약한 대로 국헌을 성실하게 준수하도록 촉구하는 규정이다.

대통령이 국헌준수의 취임선서를 어기고 헌법을 침해해서 탄핵결정을 받으면 단순히 파면에 그치지 않고 형사상 책임을 따로 묻도록 헌법 (제65조 제4항)이 정하고 있는 것도 헌법 제'84조와 기능적인 연관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신분상 특권에 관한 헌법 제(84조는 군사쿠데타를 통해서 집권함으로써 사실상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을 상정하고 마련한 헌법규정이 결코 아니다.

처음부터 국헌을 침해하는 군사반란과 내란을 일으켜 강압적인 수단으로 국민에게 선택을 강요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그의 재직중에 그를 내란죄로 소추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헌법을 보호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통치권의 민주적 정당성과 통치권행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중요시하는 자유민주주의 헌법질서는 군사쿠데타와 같은 반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행태를 상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헌법이 그러한 불법적인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도구적인 규범으로 기능할 수도 없다.

따라서 쿠데타 세력이 대통령으로 재직중에는 당연히 내란죄 공소시효가 정지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는 헌법해석이다. 더욱이 검찰과 헌법재판소가 12 12와 5· 18을불가분의 연관성 있는 행위로 보는 이상 12 · 12 행위에 대해서 대통령 재직중 공소시효가 정지한다고한 헌법재판소의 판시취지는 당연히 5-

18에도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이러한 사리에 비추어 볼 때 5 ·18의 공소시효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제기하는 특별법제정에 대한 일부 위헌론은 전혀 타당성이 없는 법이론이다.

불필요한 위헌논쟁은 이제 그만

따라서 폭넓게 형성된 국민의 공감대에 따라 잘못된 우리의 지난 헌정사를 정리하고 넘어가려는 이 역사적인 시점에 불쑥 튀어나온 타당성도 없고 불필요한 위헌논쟁은 마땅히 그만두어야 한다. 위헌론이 논거로 삼고 있는 헌법상의 형벌불소급 원칙은 형벌에 관한 실체법에 적용되는 헌법상의 기속원리지 공소시효와 같은 절차법에 적용되는 원리가 아니다.

법치주의의 선진국인 독일에서도 65년 공소시효연장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 일이 있고 독일연방헌법재판소도 이 특별법의 위헌성을 부인하면서 범죄의 공소시효가 아직 완료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그 공소 시효를 연장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위배하는 것이 아니며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라는 판시를 한 바 있다. 또 독일통일때 체결한 동 · 서독 통일 조약에는 『동독정권 치하의 행위에 대한 사법처리는 행위지법 원칙대로 동독법률에 따른다』는 명문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독일은 옛 동독치하의 반인도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 공소시효적응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옛 동독정권이 행한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는 통일된 날(90년 10월 3일)로부터 진행하게 되어 있다.

지금 독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른바 「통일재판」은 바로 이 특별법을 근거로 한 것이다. 물론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95년5월23일 옛동독 첩보조직 책임자(마쿠스 볼프)를 분단시대 대서독 첩보활동을 이유로 소추할 수 없다고 판시 함으로써 이 특별법의 효력을 일부 제한하는 결정을 한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옛동독에 근거지를 두고 였동독 내에서만 활동한 첩보책임자에 대해서는 소추권을 부인한 독일연방헌법 재판소도 옛서독에서 첩보활동을 한 옛동독의 일선첩보요원들에 대해서는 소추권을 인정했을뿐 아니라 분단시대에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살인 내지 살인교사죄에 대해서는, 그것이 옛동독 법률상 정당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처벌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따질때 처벌가능한 시점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국제적으로 확립된 법인식을 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정치상황은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81년 3월3일을 분기점으로 그동안 외형상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단계적 군사쿠테타가 뒤늦게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권좌에서 물러난 쿠데타 주도세력을 국민이 용서하지 않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에 「실패한 쿠데타에 대한 주권자와 법의 응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법의 응징이 이처럼 늦어진 이유는 유효투표 과반수의 득표를 하지 않고도 대통령에 뽑힐 수 있도록 정한 불합리한 대통령선거제도에도 원인이 있지만, 중간평가를 반드시 받겠다고 공약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그 공약을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일부 야당지도자가 양해해 줌으로써 그의 집권기간을 늘려준 데도 책임이 있다. 또 정치지도자들이 정략적인 3당합당을 통해 주권자가 총선거에서 내린 여소야대의 정치적 결단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왜곡시킨 비민주적이고 반대의적인 정치행태에도 그원인이 있다

정치인들이 보여준 사리사욕적 이고 당리당략적인 그러한 정치행태는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법 제정을 들러싼 여야정당들의 명분 약한 줄다리기와 일부 야당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도 그러한 정치행태의 한 징표이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12 · 12로 시작된 쿠데타 진행과정에서 저질러진 갖가지 불법적인 행위를 준엄하게 단죄하고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는 동안 관행이 된 권력형 부정부패를 완전히 척결함으로써 힘이 아닌 법과 정의가 마지막에는 이긴다는 사실을 집증적으로 확실히 보여달라는 것이다.

특별검사제도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따라서 특별검사제도에 대한 여야의 견해 차이 때문에 특별법제정 그 자체가 무산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주객이 전도된 가치관의 혼란이 아닐 수 없다.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법과 정의 세워야

물론 79년 12 · 12로 시작해서 81년 3월3일에 끝난 단계적 군사쿠데타가 13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땅에 뿌려놓은 여러가지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군사통치의 유산과 권력형 부정부패의 악습을 하루 아침에 모두 바로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은 쿠데타 단죄와 역사정리의 의지는 강하게 가져야 하지만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법치주의에 따라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한다.

4월의 총선거를 위한 선거전략적인 차원에서 12 · 12와 5' 18문제를 다루거나,정치적인 경쟁자에게 상처를 주는 수단으로 이 문제를 악용한다면, 쿠데타 단죄라는 절체절명의 역사적 과제는 용두사미로 끝난 채 자칫 또 다른 정치적인 불행을 자초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 절호의 기회에 이 땅에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정치적인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여야정치 지도자들은 사사로운 이해타산을 떠나 민의 뜻에 따른다는 마음가짐으로 힘을 합해야 한다. 특별법의 내용에 관한 불필요한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특별법은 반드시 여야 합의로 제정해야 한다.

검찰도 이번 기회에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특별법 제정의 원인제공자도 검찰이고 특별검사제가 주장된 이유도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제부터라도 정치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 검찰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려는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이 라고 하더라도 2년 임기제에 의해서 그 신분이 보장되는 법제도 아래 검찰이 공소권을 행사하는데 대통령의 눈치를 살펴야 할 이유는 없다.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으로 승진하고 퇴임 후에는 여당 공천을 받아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려는 출세 목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다 보면 임명권자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긴 안목으로 본다면 그러한 구차한 출세보다는 투철한 관직사명을 가지고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때 더 큰 명예가 따른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하고 재수사를 서두르는 검찰의 허등대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그렇지만 그간의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어차피 시작한 쿠데타 단죄를 위한 재수사나마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철저히 함으로써 국민의 불신을 없애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노태우씨의 부정축재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 처리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또다시 착잡하고 우울해진다. 검찰이 여전히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법집행이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을 때 또다시 역사적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게 마련이다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단호하면서도 공정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모처럼의 역사정리는 또 다른 역사정리 가능성만 남긴채 미완성의 명예혁명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때 일어날 커다란 정치적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국민과 언론 책임도 크고 무겁다

우리 국민도 이번 기회를 자아비판과 자기혁신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헌정사가 일그러진 가장 큰 책임은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쿠데타정권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과 6월항쟁을 통해 어렵게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으면서도, 대통령선거에서는 엉뚱하게도 쿠데타 주모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쿠데타 단죄의 적절한 시기를 놓친 책임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또 지난 13년간의 군사통치시대에 쿠데타정권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국민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영달과.출세만을 위해 현실타협적 생활을 해온 국민이 훨씬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민주시민으로서 비판적인 복종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양심을 지켜온 국민이 많았더라면 쿠데타 세력에 대한 국민의 단죄가 늦어지고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

사회의 양심임을 자처하면서 정론을 추구하는 언론도'제 구실을 다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쿠데타 세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적인 정서를 대변하기보다는 정권유지를 노린 군사정부의 상투적인 안보논리를 전파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 우리 언론이었다. 그러한 언론이 오늘은 쿠데타 세력의 철저한 단죄를 주장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영합적 언론의 징표인 카멜레온의 변신이지, 국민의 민주적인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계몽적 언론의 참된 모습은 아니다.

언론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이 어렵고 복잡한 정치상황이 성공적인 명예혁명으로 수습될 수 있도록 철학을 가진 정론을 펴야 한다 때로는 정부를 향해서 또 국민을 향해서 옳은 것은 옮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바른 말을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여론몰이식 정치행태에 이용되거나 끌려다니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이 역사적인 시점에 언론의 역할로 국력을 결집시켜 법과 정의가 바로 서게 될 때 굴절된 우리와 헌정사는 바로 잡힐 것이고 우리 국민도 비로소 사필귀정하는 역사적 필연을 믿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