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당시 발포거부 전남도경국장의 광주비망록 80년 광주의 학살은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신군부의 발포명령을 거부하다 동빙고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자진 사표를 써야했던 5·18당시 전남도경국장 안병하씨. 그는 5공의 폭압 속에 말 못할 ‘광주의 한’을 끌어안은 채 신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지난해 광주로 완전 이주한 그의 부인이 그의 광주사랑을 잇고 있어 화제다. 이재의 (광주일보 예향 기자) ‘5·18 피해자’된 전남도경국장 지난 93년 7월 중순 이색적인 한 사람이 5·18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로 신고서를 접수시…
3공수여단 12대대 작전병 출신의 실명수기/전투는 있었지만 학살은 없었다.김치년(월간조선, 1996. 4)-서버에러
'착한 자식 죽은 것도 서러운디' 김춘수 5·18유가족회회원 광주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시 조대부고 3학년생이었던 아들을 도청에서 잃은 한 어머니가 「분하고 서러웠던 7년세월」을 한숨처럼 토해 놓았다. 아들에 이어 남편마저 홧병으로 잃은 「광주의 한많은 母情」은 세월만으로 치유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斷腸의 역사를 광주의 말투 그대로 지상녹음하여 이 시대의 아픔을 진단해본다. (기록1이봉환) 298 월간경향 1988. 4 "친구가 죽어부렀어요" 오늘은 참 하늘이 청청도 허요. 우…
8년 동안 기다려도 소식은 없고… 일가족 4명 행방불명의 진상 "도대체 죽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지금 제가 찾아 온 것도 행방불명 신고이고 수색 신청을 하는 겁니다." 6월8일 오전 평민당 서구갑 지구당의 5.18피해자 신고소를 찾아온 김금희씨(35.무안군 몽탄면 다산리 282번지)는 자신의 신고소 방문이 가족의 죽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5.18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의 신고는 많았지만 일가족 4명이 한 꺼분에 실종 되 사건 접수는 처음이었다. "5월 초순에 …
광주와 미국, 45년 9월과 80년 이재의(말) 80년 5월 해방광주는 미국의 '배후조종'에 의해 함락됐다. 그러나 44년 전 미국은 배후조종이 아닌 직접공격으로 광주를 점령했다. 광주를 두 번이나 배신한 미국, 그들은 어떻게 광주시민의 자치에 '해방의 죽음'을 선사했는가. '역사를 살아온' 어느 할머니의 자각 80년 5월 21일 오후. 도청을 중심으로 한 금남로에 에서는 공수부대가 쏜 총탄에 맞아 시민들이 풀썩풀썩 쓰러지고 있었다. M16과 기관총의 사격소리에 시민들의 카빈소총이 불꽃을 튀기면서 교차되었다. 수많은 시…
1947년 개원에서 1989년 폐쇄까지 광주 미문화원 공훈의(월간예향) " 공보사업의 본질적인 방향도 변화를 겪었다. 60년대까지는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모든 계층의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계몽활동을 벌였었다. 70년대 들어서는 이른바 중점주의 공보사업을 벌이게 되었다. 대학교수, 관공서 고급간부, 문화계 및 언론계 인사등 소위 사회계층에 있는 인사들이 광주미국문화원의 초청대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초청인사가 도착하면 오찬은 사회지도계층 인사들과, 만찬은 소장 엘리트들과 함께 하는 패턴을 유지했다."…
1979~80년 미 국무부 비밀 외교문서 4천 페이지 철저 분석 /전두환, 카터를 농락하다 조동준(월간조선) 박정희 사망에서 전두환 취임까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은 1961년 군사 쿠데타이후 형성되어온 체제를 재편시키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18년 동안 한 사람의 최고 권력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체제에서 일순간 체제경영의 중추가 사라졌다. 1979년 10월26일 오후 7시35분부터 시작된 체제개편은 81년 2월 전두환씨가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공식적으로 끝났다. 이 과정은 결코 평화롭게 …
80년대의 민중문화예술운동 윤재걸 70년대를 비극적으로 마감한 10·26이후, 우리 사회는 여러 부면에서 극심한 변화와 갈등을 경험하였다. 80년대 진입 후 중반기로 접어드는 오늘날 이러한 변화와 갈등들은 점차 하나의 [꼴]을 형성해가면서 뭔가 나름대로 정리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변화와 갈등을 경험한 사회의 여러 부면중 특히 우리 문화·예술계가 겪은 몫은 여타의 어느 부면보다도 의미있는 대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직 평가할 단계에는 이르지는 못했다손 치더라도, [민중]을 공약수로 한 이러한 문화인식은 확…
국회공방 완전수록 정웅의 '광주를 쏜 사람들' - 제142회 임시국회 제16차 본회의 속기록 완전수록 - 7월 5일 국회본회의에서 있었던 '광주발포책임공방'은 평민당측에서 즉각 '오자복 국방부장관의 답변이 위증'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어민정당은 '평민당이 책임전가를 위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반박하는 등 당대당의 제2차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정웅·김정길 두 의원의 질문과 오자복 국방부장관의 답변 내용을 완전 수록했다. < 정웅의원 질의 > 의장·선배·동…
영상속의 광주 오! 꿈의 나라 글·조 헌 영 공연법위반, 상영중지, 백한명 영화인의 악법철폐 성명 등으로 우리의 관심을 모았던「오! 꿈의 나라」(2.26∼3.1) 광주공연이 있었던 날 금남로에서는 부시 방한 결사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묘한 일이다 싶었다.「오! 꿈의 나라」가 5·18광주항쟁에있어서 미군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어 오늘날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생각케 하는 작품이었는데 광주공연이 있던 날 그는 다섯 시간도 채 머물지 못하고 떠났다.「오! 꿈의 나라」에 대한 광주인의 관심은 지대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