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로 6주기 맞는 박관현, '나팔꽃 씨가 그를 죽였는가?' 의문을 추적한다 분수대의 명언 설 1980년 5월 16일 -. 그날 밤 광주는 '횃불의 바다'를 이루었다. 3만여명의 대학생들이 횃불 시위를 마친 뒤 전남 도청 앞 광장에 다시 모인 것은 밤 9시 30분께.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분수대가 있었다. 금남로 지하도 공사로 하마터면 헐릴 뻔했던 분수대는 그대로 훌륭한 연단이 되었다. 어둠을 밝히려는 횃불 같은 다짐을 시위대의 가슴에 뭉클뭉클 만들어 내며 연설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 수업을 팽개…
역사적인 피고인들의 법정 최후진술,전·노등 16명.최보식(월간조선, 1996.9)
육사11기의 6인 실력자, 천금성(신동아, 1998, 1) 「12· 12사태」의 정리를 위해 「5· 16」과 「5·17」을 일으킨 군부세력들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주도한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두 가지가 다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 내기 위해 구국이염의 차원에서 부득이 군인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그들 나름의 주장이 일치한다는 점과, 둘째로는 거사→군부 장악이 결국에는 정권 장악으로 연결되었다는 결과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통점이 있…
20사단 광주작전일지(80년 6월 작성 원본)/전교사 작전회의, 발포명령 결정 (월간조선) 「경고하라, 접근하면 하복부로 발포 허용」 이라는 군부대 자위권 발동 지침을 내린 전교사 작전회의의 참석자는 누구인가 이 작전일지는 1980년 5월21일부터 29일까지 광주사태 진압에 투입되었던 한국군 20사단(사단장 박준병 소장)에서 작성한 것이다. 20사단은 광주사태가 악화돼 광주시태가 「시민군」에 의해 장악돼 가고 있던 21일에 광주외곽으로 투입되어, 27일에는 광주시탈환의 주력 부대로 들어갔었다. 20사단이 쟁점이 되는 …
국회공방 완전수록 정웅의 '광주를 쏜 사람들' - 제142회 임시국회 제16차 본회의 속기록 완전수록 - 7월 5일 국회본회의에서 있었던 '광주발포책임공방'은 평민당측에서 즉각 '오자복 국방부장관의 답변이 위증'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어민정당은 '평민당이 책임전가를 위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반박하는 등 당대당의 제2차 공방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정웅·김정길 두 의원의 질문과 오자복 국방부장관의 답변 내용을 완전 수록했다. < 정웅의원 질의 > 의장·선배·동…
첫 방영때 교민들 울음바다 5· 18현장비디오 「오, 광주 ! 」 제작한 민승연씨 80년 5월 해외에서 「5.18」을 전해 듣고 그 역사적 현장필름들을 여기저기서 모아 편집,「오, 광주!」라는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교포 사회에 배포한 재미교포 민승연 (52)씨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민씨는 미국 동부쪽 교포사회에서는 잘 알려진 이름이나 국내에는 아직 생소한 편이다. 민씨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금년 1 월 말께. 그 동안 들추어 내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었던 금단의「광주」가 민화위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
정도상 의 '저기 아름다운 꽃 한송이' 금남로에 쏟아지는 오월의 햇살은 가시처럼 따가웠다. 목민 스님은 전일빌딩에서 금남로 2가의 황금다방을 향해 걸었다. 닷새후면 초파일이기 때문에 이것 저것 볼일을 보러 광주에 나온 김에 사촌동생을 만나기로 하였다. 오랜만에 광주에 나와서 사촌동생을 안 만나고 암자로 돌아가기란 새벽 예불을 빼먹고 맞이하는 아침처럼 개운치가 않았다. 사촌동생은 승복을 입은 지난 세월동안 끝내 잘라지지 않고, 질기고 끈끈하게 이어져온 사바세계의 유일한 인연이었다. 오늘따라 금남로에는 팽팽한 활시위 …
철우의 어떤 넋두리 오라 참, 그랬었제. 내 정신 조까 보소이. 이제 보니까 전번에 찾아왔던 바로 그 젊은이들구마는‥‥ 날씨도 이리 더운디 뭣할라고 또 여그까쟝 찾아 왔으까이. 또 그 일 때문에 왔능가? 허참, 그거 이 무신 하기 좋고 듣기 좋은 이야기라고 자꼬 그래쌌능가 모르겄네 이‥‥ 하기사 실은 나도 저번 참에 해 줄 말도 없다고 함서 그냥 젊은이들을 보내놓고 나서 생각한께, 조까 미안하기도 하고, 괜히 여그까장 애쓰고 찾아온 젊은 사람들을 너무 매정하게 쫓아 부렀능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여간 후회스럽기도 하든 참이었…
그날에 살아 남은 자의 통과제의 -임동확론 1 왜, 90년대에도 광주의 그날을 노래해야 하는가 1980년 5월의 그 처참한 정치적 상황을 체험한 시인들은, 과연 그들이 앞으로 시를 계속 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시를 쓰려는 욕망이 그런 처참한 현실로부터 얼마나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가, 혹은 시의 간접적인 쓰임새란 그런 현실에 대한 다급한 책임으로부터 얼마나 비켜나 있는가에 대한 착잡한 물음과 더불어 그런 고뇌는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과연 파렴치한 현실과 서정시의 심미적 속성…
특집/5·18 뒤안길에 묻힌 사연 '광주 알리기' 눈물과 땀 아롱진 창작실 -5월 문예운동 산실 '등나무집' 한송주 이제 등나무집은 새시대를 맞아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올 4월의 '등꽃제'는 어느 때보다 즐겁고 환한 잔치판이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이곳을 '등나무집' 이라 부른다. 광주광역시 서구 사동 16의 2번지, 대지 2백평에 목조 3층 건물. 자잘한 방이 여남은 개가 있는 일제 때 적산(敵産)가옥. 허름한 외양과는 달리 온 집을 감싸고 있는 등나무꽃이 유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