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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연구소

5·18 온라인 기념관

들불열사 윤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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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남 광산군 임곡면 출생

1971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입학, 친구 김석균, 정오현과 함께 전남대 연극반 가입

1975년 군 복무를 마치고 삶에 결정적 계기가 된 김상윤(국문 68)과 만남

1978교육지표사건을 듣고 근무하던 서울의 주택은행을 그만두고 광주로 귀향

1978년 광천공단에 있는 한남 플라스틱에 취업

1979년 들불야학 1기 교사로 일반사회과목을 16개월 간 강의

1980년 인천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자연맹 결성 집회에 발기인으로 참석, 광주·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중앙위원으로 선임

1980518일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공수부대에 맞서 싸우기 시작

 

왜 총을 들었는가

윤상원은 5·18항쟁이 시작되자 들불야학 식구들과 투사회보를 발행해 광주학살의 참상을 알리고 투쟁을 조직적으로 이끌었다. 26일 도청에서 시민수습대책위 대변인 자격으로 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윤상원은 왜 총을 들었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권력을 강도질하려는 전두환 쿠데타군의 음모를 만천하에 까발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광주시민은 떨쳐 일어났습니다.”

27일 새벽 4시 전남도청에서 공수부대에 맞서 싸우다가 최후를 맞았다. 1982년 윤상원을 들불야학에 인도한 박기순과 영혼결혼식을 가질 때 님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 불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