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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서평 / 광주 오월의 젊은 시인들. 임동확(민족현실과 지역운동, 1985. 12)

본문

광주 오월의 젊은 시인들


  임 동 확

                      o 나종영 시집 『끝끝내 너는』 , 창비사.
                      o 곽재구 시집 『전장포 아리랑』 , 민음사
                      o 이영진 기집 『 6.25와 참외씨 』 , 청사.
                      o 고광헌 시집 『신중산층 교실에서 』 , 청사.



  80년도 오월이 우리에게 준 상처와 충격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비록 지면을 통해 몇 가지 단편적 사실이나마 밝혀지고 국회에서조차 떠들 정도로 일반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웬일인지 솟구치는 분노와 서글픔을 금할 길이 없다. 그것은 사실이 왜곡되고 진실이 은폐당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편에서는 그것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법·불온시하며 쉬쉬 입막음에 바쁘고, 다른 한편에서 5월을 정치 구호화하거나 역사화하고 있지나 않는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여하튼 그들은 공통적으로 80년 :월에 대한 죄의식과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현지배층이 밥먹듯이 외쳐대는 화해나 화합이 대한 강조의 이면에는 그러한 정치적 계산 속이 섞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광주 5월은 한민족사(韓民族史)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해준 것만은 사실이라고 하겠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5월민중항쟁은 반쪽짜리 반도의 남쪽,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린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무기력하고 피폐해진 한반도의 역사와 현실을 온몸으로 거부한 꿈틀거림이었던 것이다. 즉 분단의 극복없이는 이 땅에 사는 이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아프게 일 깨워주고 있으며, 80년 5월을 전기로 하여 비로소 역사의 대열에 찬란하게 떠오른, 이름과 얼굴이 없던 민중들의 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번에 시집을 내게 된 나종영, 곽재구, 이영진 그리고 고광헌씨 등은 이러한 광주에서 태어나거나 수학하며 뼈를 굳힌 사람이거나 혹은 깊은 관련을 맺은 30대 초반의 젊은 시인들이다.
  한민족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전쟁으로 기록되는 6.25가 종결된 수삼년 직후에 태어나 성장한 젊은 네 시민들과 적지 않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필자는 여러 면에서 이번 시집의 발간 의미가 있다고 보여 진다. 우선 이들이 광주정신의 계승과 확산에 힘쓰고 있는 '5월시'동인들이라는 점과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치열한 시정신의 건강함과 탄탄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시대에 여전히 숙제로 남은 분단현실의 극복의지와 민중적 삶에 대한 신뢰와 애착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이 80년 중반기 들어선 젊은 시인들의 시각을 검토하는데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 생각해서 이다.
  특히 그들 각자가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에서 드러나는 민중정서와 구체성, 총체성등은 흔히 젊은 시인들이 빠져들기 쉬운 관념적 조작성이나 무분별한 언어의 작위 등을 슬기롭게 극복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각 독특한 방법으로 시대적 모순과 압제에 도전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주제 (소재)의 대부분이 올바른 문학적 태도와 역사의식, 사회의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이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며 면면히 이어온 광주정신, 즉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오면서도 끊임없이 싸워온 전라도인의 기상과 용기를 체질화하는 데서 온 것이라 하겠다. 또한 그들의 문학적 뿌리가 이러한 자기 땅과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맺어 있으면서도 객관적 현실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총체적 인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한 시편들이 진정한 민중 ·민족정서에로까지 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그동안 문화의 중앙집권화와 그에 따른 지역문화권에 대한 경시풍조가 있는 듯하다. 즉 그들의 많은 문학적 노력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자기방어적 문학집단형성과 일방통행식 '추켜세워 주기' 혹은 '깍아 내리기' 평론으로 하여 알게 모르게 문학에 대한 자해 (自害)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들이 또다른 문단중심적 사고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까닭인지 단지 지역을 지키고 있거나 지역출신의 작가라 해서 성실하고도 정당한 평가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문학인들이 문학적 형상화와 행동적 실천면에서 앞서는지 지극히 의문이지만 사실상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할 때 문제가 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한 시대의 복판에 서고자 하면서 인증적 삶의 가능과 한계를 자신들의 삶의 가능과 한계로 규정지으며 싸워 나가는 네 사람의 시를 살펴보기로 하자.

    나종영 시인의 『끝끝내 너는』에 수록된 시는 56편에 달하는데 우선 시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며 퍽이나 다듬어져 있고 정제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작품 전체에서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시세계가 치열한 현실인식과, 시대정신과 맥이 닿아 있으면서도 생경한 관념노출과 이념주입에서 오는. 거부감이 일지 않는다.
  그것은 저자가 근본적으로 과도한 이념을 내세워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적 분리에서 오는 함정에 빠져들지 않고 묵묵히 제 몫의 할 일을 찾으며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가 후기에도 밝히고 있듯 "제대로 땅을 일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피멍이 들도록 기계를 돌리는 형제들이 땅의 어둠을 헤치고 진실되고 용기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건하고도 성실한 바라봄과 그들과 정신적으로나마 빈틈없이 유대를 가지려는 삶의 자세에서 온다고 할 것이다.
  나종영 시인의 관점은 다양하지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 절제된 애정과 굳건한 믿음일 것이다. 또한 짜임새 있는 시구성을 통해 동시대인들의 아픔과 절망을 구체적인 인물이나 소재를 바탕으로 담담히 자기의지를 확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즉 시언어는 그 시인의 정신을 표현하고 정치 경제 현실의 구체적인 현실과 사건들의 총체적 인식을 반영한다고 할 때, 소화되지 않는 관념적 구호의 외침이나 기회주의적 반항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타는 확신과 신뢰를 바탕으로 정확하고도 치밀한 지적 통제속에 이루어지는 씨의 시작업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그가 최근 들어 집요하게 질문하고 있는 '화해'의 문제는 누가 한번 이 시대에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감추고
  두 발 사이에 꼬리를 더 깊이 사려 넣는 개와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세워 흔드는 고양이 사이에는
  화해의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개와 고양이는 서로의 밥을 빼앗아 먹지 않고
  서로의 희망을 짓밟지 않으며
  한 집에서 사람들보다 잘 어울려 산다.
                  - 『화해에 대하여·I 』 7 ∼ 13연

  위에 인용한 「화해에 대하여·I1은 우선 개와 고양이를 현상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대립 물로써 설정해 보면서 인간들의 화해문제를 제기한단. 그런데 인간과는 달리 '개와 고양이'가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는 사실에 눈길을 돌린다. 그러나 「화해‥‥‥ 2 」에서는 과거의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일어난 원한과 갈등을 해소할 길이 없다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여전히 음흉한 흉계와 적의를 거세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과거를 잊고 타협하자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책 없이 무조건적으로 강요하는 거인과, 사회와의 화해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결론 짓는다. 「화해‥‥‥ 3·4 」에서는 약육강식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하는 무리들이 강조하는 화해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그들의 정체를 다양한 삽화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화해‥‥‥ 5 」에서는 화해란 " 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들려주는 것 "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또한" 빼앗아간 것이 없어서/내가 너에게 용서할 것이 없고/너 나 골고루 나누어/서로서로 타고난 제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위의 5편의 시를 통하여 화해를 대립적 관점에서 설정하면서 그것의 모순과 한계를 지양, 극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결론으로 화해란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사회에서만이 가능하며, 바로 현상태에서 화해란 "민주주의 나라로 가는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시각에서 그는 민족통일과 5월민중항쟁, 핍박받는 자들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고 하겠다. 「백두산」, 「조카의 금강산」 「형제여 」등과 같은 작품에서는 분단 사십년 해방 사십년에도 불구하고 외세와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의해 철저히 희생되고 있는 민족적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그것으로 인한 비애와 통일염원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이러한 남과 북의 첨예한 대결이 빛은, 4.19 이후 최대의 역사적 사건인 5월을「무등산」 「봄」, 「갈래꽃 」, 「택시」등의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자기 희생적 의지와 결단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광주의 비극이 분단과 그로 인한 기생적 지배집단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면서, 역사 속의 민중에 의한 숭고한 5월 정신의 뿌리를 꺾일 줄 모르는 자기확신과 신념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들꽃처럼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생의 의지로 견뎌내며 살아가는 '농사를 짓는 친구' 와 '호스티스 처녀 ', '뇌성마비 소년', '혼혈아', '권투선수' 등을 통해 다양한 개인들의 사랑과 파멸, 희망과 절망, 꿈 등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눈을 떠 다오
    티끌 한 점 따스운 사랑이 그리워
    쥐었던 맨주먹 너에게 무엇을 주랴
    이복형제 애끊는 아픔에 묻혀버린
    석자 너의 이름 되찾아주랴
              (중략 )
    쓰러져도 앞으로 쓰러지겠다는 너는
    물 건너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 땅에서도
    됫걸음질 치지 않고 부서져갔지만
              (중략 )
    찬 바람 속 들풀로 남아 울음 삼키는 우리가
    눈감은 너에게 돌려줄 사랑 한줌 없지만
    혼자 죽어서 별이 되기 싫은 너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은 가난의 땅
    똑바로 걷게 눈을 떠다오,득구야
                      - 『별이 되기 싫은 너에게 』 일부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민중의 아픈 현실을 잘 드러내고 추적하면서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이 땅의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간의 절대적인 신의 속에 만이 가능한 화해의 중요성에 깊이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조건들 - 분단극복과 파렴치한 매판 ·매국세력의 척결,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 - 을 항시 유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시 말해 척박한 현실과 많은 현대사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스스로 변증법적 합류과정을 통해 발전한다는 불타는 믿음과 확신을 체질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시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다고 본다. 그것은 작가가 시적 대상과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자칫하면 문학적 형상화와 행동을 따로 구분해서 사고 할 위험성과 함께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지적통제는 장점이면서도 결정적인 단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상에 대한 일정한 거리가 이 시대 지식인 (시인)으로서 흔히 빠져들기 쉬운 민중에 대한 당위로서의 애정, 동료의식 유대만에 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세계와 필연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을 자신의 삶 속으로 확대해 가는 작업이 요청된다. 왜냐하면 현재의 역사진행과정으로 보나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적 요청으로 보나 그가 택하고 가야할 길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종영 시인의 시는 요즘의 젊은 시인들과 다르다. 그는 필요 이상의 분노와 고함을 마구 원고지에 옳기거나 서두르진 않는다. 그의 시는 자신이 인식하고 행동한 만큼의 범위에서 쓰여지기 때문에 다작 (多作)을 하지 않으며 동시에 무리한 언어나 개인적 야당이 없어 보인다. 『끝끝내 너는』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은 바로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급변하는 속에서도 제 위치를 지키며 나아가는 한 젊은 시인의 정직성과 성실성을 보는 기쁨이었다. 따라서 그 이 시집을 통하여 '시보다 할 일이 많다는 생각' 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만큼, 그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깨어남으로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고 변신을 모색하는 시인의 앞날에 큰 기대를 걸어보아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곽재구 시인의 제 2시집 『전장포 아리랑』에 실린 61편의 시 (장시 1편 포함)들을 통해 우리는 암울하고 어두운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리고 찌들리며 살아가 사람들의 생활과 정서를 아름답게 노래한 서정시들을 보게 된다. 이미 제 1시집『사금역에서 』도 확인된 사실이지만 그는 단순하고 소박한 서민언어 와 긍정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작고 소외된 세계에 깊고 넓은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의 시에서 쉽게 드러나는데 그동안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나 몰락해 가는 개인과 사회, 사물 등의 아픔을 자연스런 리듬장치와 타고난 언어감각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는 다분히 과거지향적이고 감성적이면서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다운 시대에 태어나 진실로 아름다운 사랑과 희망의 시 한 편을 쓸 수 있는(저자 서문)" 미래에 대해서도 결코 소홀히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즉 그의 시는 급박한 시대상황과 더불어  발생하기 쉬운 목소리만 높고 감동이 없는 대다수 들뜬 시인들의 대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시에 나타나는 서정성은 현실인식에 있어서 무리한 시적 전개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작고 축소된 세계이나마 진실되고 따뜻하며, 감동적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누이가 정부미 포장지에 받아오는 콩나물은
펼쳐 보면 머리는 머리대로 뿌리는 뿌리대로
얼마나 오래 우리가 착한 시민이 되어
가지런한 기도와 가지런한 사랑과 가지런한 기다림을
배워야 하는지 역설의 몸짓으로 가르쳐 준다.
그런 날 밤에 나는 시 같은 걸 쓴다
찢어진 편지 봉투 뒷면 같은 데
내가 꼬박꼬박 힘을 주어 가며 박은 글자들은
그러나 그것들이 가장 깨끗한 기도와 사랑과
기다림으로 무장되었을 때
우리들이 한줌 콩나물의 몸짓으로
    정부미 포장지에 눕는 것을 거부한다.
                          - 『콩나물로 쓴 시 1 』 전문

  이 시에서 보듯 그는 콩나물로 은유화 된 우리들의 "정부미 포장지에 눕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의 저항, 즉 누이가 정부미 포장지에 사온 작은 물건 하나에도 관심과 사랑을 쏟는 것이다. 그가 일상적으로 쓰는 추억·그리움·기다림·희망·사랑 ·슬픔 ·아름다음 · 눈물 ·절망 등의 언어는 과거의 자기체험과 현재의 현실적 갈등의 양면성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혹은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 대한 구도자적인 경건함과 이들에 때한 선의적인 시적 해석을 통하여, 그는 결코 미래를 포기하거나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시는 강한 휴머니즘과 생의 긍정정신을 바탕으로 하고있는데 이를테면 답답한 현실적 비애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은 끝내 바닥에 남은 자의
눌어붙은 허름한 가슴으로부터 왔다.
                            - 『처제 』 일부


자유는 언어의 해방이나 정신의 싸움이 아니라
이 세상 살아 있음의 뜨거운 믿음으로부터 온다
                            - 『따뜻한 자유 』 일부

는 것을 억지 (?)로라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요즘에 서서히 정신적 변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모밀짜장」이나 「귤동리 일박」, 「다산초당 가는 길」등에서 발견되는데 이 시대의 지식인이자 시인으로서 자각과 사명감을 인식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
  그는 결과없는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방황하는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으며, 그렇기 대문에 소시민적 안주나 지식인적 이상주의 속에만 웅크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에게 "모밀이면 모밀 짜장이면 짜장이지/모밀짜장은 또 뭐야"하고 반문 질타하면서 "사람과 시대와 스스로의 양심과 지식을 사랑한"다산의 생애를 통해 "나이 삼십에 들어 이제야 가슴 속에 부끄러운 성지 "를 마련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일련의 깨달음과 변모는 이미 주어진 이 땅의 운명을 도피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부단히 그것들과 맞서 싸우고 실천해 가는 것만이 진실로 의미 있는 일이며 인간다운 삶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정신은 속되게 말할 수 없지만
내 눈에 보이는 너의 속성은 비관적이다
그렇다 우리는 어느 틈에 비시적인
독설을 늘어놓을 만큼 몰락했고
너는 영화롭고 도도하게 강기슭을 굽이친다
그러나 몰락한 우리의 정신과 입을 빌어서도
너의 정신과 속성은 죽어 있다
        (중략 )
아름다움은 삶의 깊이나 사랑의 추억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행복 또한 오랜 기다림이나
뒤바뀐 역사에서 찾아오지 않는다.
                                            - 『한강』 일부

  따라서 그는 「한강」을 통해 이 세상의 행복이나 아름다움은 뒤바뀐 역사에서 오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적 변모는 그동안 서정시의 한계로 지적되어 왔던 소시민적이고 왜소화된 감수성과 주관적 개인주의적 세계를 지양해 내면서『아버지의 들』 『사귀사설』과 같은 장형 (長形)의 시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객관적이고 전체적이며 공동체적 세계관을 획득해 내기 위한 작업의 필요성에 의해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의 들 」에서 농사짓는 아버지와 아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시대적 인물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입을 통해 참다운 삶의 자세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사귀사설」에서는 『대살귀』로 표현된 폭력경찰과 세간을 떠들썩했던 큰손『대수귀』, 권력층에 기생하여 하루 아침에 부상한 졸부인 『대도귀』, 망국 7사갈인『대수귀』를 판소리 가락과 기법을 통해 풍자화하고 회화화 시켜놓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전환에도 불구하고 그가 극복해야 할 점은 있다고 하겠다. 우선 첫째, 그는 현재를 사상(事象)시켜놓고 과거와 미래를 바라봄으로써 그의 시가 지니는 풍부한 민중언어와 참신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쉽게 읽혀지고 감동을 주고 있지만 자칫하면 감상적 민중주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무조건적인 화해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발전되면 막강한 지배체제내의 흡수, 이용당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적당량의 비판과 위안을 일삼는 수동적인 지식인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들째, 그의 부분부분 날카로운 현실인식이나 시대정신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적 인식의 부족이나 사회학적 상상력의 결핍에서 오는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시적 논리의 단순함과 비약, 끝구절 처리의 성급함과 애매함 등은 이러한 사실들을 반영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사귀사설』과 같은 판소리 형식의 우의적 기법으로 한 풍자는 항시 주체와 객체가 완전히 분리되면서 그 시대와 사회현실을 부정하기 마련인데, 이건 봉건적 폐쇄적 사회에서 민중들이 택한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꼭 그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풍자와 해학이 주류를 이루는 판소리 형식에 당대의 현실적 모순들의 내용을 수용 · 발전시켜 나간다는 절충주의적 입장은 형식주의가 갖는 일장일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회 현실의 논리적 체계화에 대한 냉소주의와 그로 인한 역사진보에 대한 예언의 불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어둡고 답답한 시대에서 곽재구의 투명하고 맑은 서정시를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단순명료한 시어와 이미지, 시적구조의 치밀함, 그리고 민중언어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편들은 곽재구 시인의 재능과 티없는 심성이 낳은 결과라 보여진다. 따라서 우리가 『전장포 아리랑』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자 노력하면서 사회와 인간, 현실과 이상, 정치와 삶의 관계를 감칠맛 나는 서정으로 뜨겁게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영진 시인은 『 6.25와 참외씨 』에 실린 68편의 시를 통해 분단 현실과 5월의 역사적 의미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그로 인한 다양한 개인들의 비극적인 삶과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무리에게 있어서 6.25에 대한 문학적 수용이 극악한 이데올로기 대립과 반공체제의 유지로 그동안 자유스럽지 못한 이유 외에도 언제부터인가 마치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체험 한 세대만이 6.25를 쓸수 있다는 각질화 된 인식과 고정관념이 지배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비극이 38선과 직접 닿아 있고 다시 38선으로 인해 이 땅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면, 소위 전쟁체험세대니 전후세대니 하는 말처럼 무의미한 이야기가 따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을 체험한 세대를 대부분이 오히려 그 비극적 사실과 아픔에 집착하여 그것의 구조적 전체적 진실들 음·양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알게 모르게 분단체제를 옹호하고 방관해 오면서 기존체제에 편입된 세대들이 논리적 이념적으로 무장한 젊은 층의 발언과 행동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방해 ·제지해온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6.25를 추체험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주목된다고 하겠다. 즉 그가 분단종식의 책임과 의무를 물려받고 있는 연령충에 속해 있다고 할 때 「휴전선 」를 비롯한 『중부전선』,「경계 」, 「어느 고지에서 」에서부터 최근에 쓴 『휴전선이 하는 말 1.2 」에 이르기까지 분단을 바라보는 날카롭고 독특한 통찰력은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알다시피 태어난 지 스물 다섯하고도 일 개월 재
순수국산 토종인 나에겐
전쟁 이 없다
언제나 이맘때쯤이면 그러하듯이
올해는 전우야 시체가
잘도 잘도 넘고 넘는다만
        (중략 )
TV여 라디오여 사이렌이여 국립묘지 혼령들이여
그대들과 합작한 사기꾼 모리배여 6.25의 쓰리꾼이여
오늘 내 귓가의 모든 소리여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
              (중략 )
30여년에 가깝도록 그 죽음과 전쟁을 배워보려고 노력한 나에게
더 이상 강요하지 말라.
                            - 『 6 . 25와 참외씨 』 일부

  위에 인용한 『 6.25와 참외씨 』에서는 직접 분단에 관여하거나 책임이 없는 그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인식하면서 "한 가닥 분노와 참혹함이 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그런 과정에서 의무교육과 모범 사병 생활을 통해서 전쟁을 배우고 또한 그 분노와 슬픔을 배워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기억에도 없는 전쟁을 강요하는 지배체제의 매카너즘을 인식하면서 그것을 강요하지 말라고 절규한다. 즉 그것은 놀랍게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도발된 비극이었고 세계 양차대전보다 많은 인적 물적 손실을 감당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것이 거기에 끝나지 않고 분단의 고착화와 더불어 그에 따른 민족적 동질감의 파괴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최전방의 군대체험을 통하여 분단현장을 직접 확인한다.

적처림, 원수처럼 단단하게 굳은 시멘트 조각처럼
「시간」만이 눈 앞에 서 있을 뿐
나는 이것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싶을 뿐
나는 어떤 적을 향하여 서 있는 것일까?
                                        - 『경계 일부』


우리가 알기도 전에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땅
그래서 이미 나의 지역이 아닌 곳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고 있다
                                - 『어느 고지에서 』 일부

  여기서 우리는 한 개인으로서는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성채를 구축하며 가로막고 있는 실체자 국토분단이라는 '괴물' 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즉 그것은 주어진 해방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찾아온 미군정과 이승만의 등장, 동족상쟁 등의 민족적 비애의 악순환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와중에서 항시 피해자였던 두 당사자들이 아이러너칼하게도 절대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적으로 맞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가 분단을 서로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거나 양쪽의 민중들을 억압하는데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사회와 조직 속에서 하나의 조립된 부품처럼 조작하고 명령하는 것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슬퍼한다. 그리하여 그는 한 민족의 동질성이 파괴되기에 충분한 「시간」을 응시하면서 이미 지리책에 그려진 영토와는 무관하게 적지 (適地)가되어 북쪽을 바라보며 과연 누가 우리의 적인가 아프게 반문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휴전선」이라는 시를 통하여 "휴전선의 철조망은/내 목숨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고/그것은 내 목숨의 한계였다"고 진술하면서 분단에 의해 규정된 개개인의 삶의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다 하겠다. 즉 6.25때 남하하여 포항 시가전과 원산 시가전에 참가한 아버지와, 만주에 거주하는 아버지의 이산 형제들을 둔 시인은 (휴전선이 하는 말 1.2 )를 통해 아직도 이 땅에 "죽어서도 넘어서는 안될 선 "이 있음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하겠다.
  한편 최현대사의 휴전선 이남에서 분단의 직접적 확인장이 된 광주오월에 대한 그의 의미부여 작업과 오월정신의 현재화를 위한 노력은 남다르다고 하겠다. 우선 그는 『아무도 멈춰 서지 않는다』에서 "그 뜨겁던 죽음은 끝이 아니라/비로소 커다란 시작이었다"고 선언하면서 『나팔꽃』, 『아카시아』,『단 한 줄의 시도 쓸 수가 없다』『성묘』,『어떤 인연』등의 작품을 통해 오월싸움의 참된 의미와 의지를 표현한다.

지난 날 용케도 내 귀 밑을 스쳐 지나갔던 총알이
누군가의 육신을 꿰뚫고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가 싶었던 총알이
오늘은 문득 내 등 뒤 그것도 뒷통수를 향하여 날아들고 있었다
피할 수도 없이

그러나 그것은 결코 피해서는 안될 어떤 것
피하면 피할수록 자라고 커져서
더욱 빠르게 되돌아오고야 마는 것
                                            -『 어떤 인연』1.2연


관현아
이제 아무도 역사는 승리한다는
등식을 외치지 말아야 한다
힘없는 평화, 싸움없는 화해란
어디에도 없는 것
터무니없는 희망의 등식은
노래하지 말아야 한다
                                              -『나팔꽃 』 끝연

  그는 「어떤 인연 1을 통해 오월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자기 대신 누군가 죽어야 했던 사실을 인식한다. 그런데 그는 그 현장에서 '사라졌는가 싶었던 총알' 이 그의 '뒷통수' 를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는 여기서 오월 광주가 장소와 시간이 달라졌더라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것은 또한 퍼할 수도 피해서도 안되는 역사적 항거였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악한 인연 ' 를 정면으로 맞서 싸워 척결해내지 않는 한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처참한 죽음의 공포를 지울 수 없고,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나팔꽃」이라는 시를 통해 삶과 죽음, 양심과 행동을 일치시키다 산화한 '박관현 ' 이라는 인물을 주목한다. 즉 오늘날의 현실은 책상머리에 앉아 단선적이고 관념적인 역사의 진보를 외칠 때가 아니라 구체적인 싸움과 힘의 축적이 필요한 시기라고 보고 있다.그는 그것들이 선행되지 않는한 비극의 연속은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오직 우리 모두의 의식과 행동의 일치만이 빈사상태에 빠진 현세기를 구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그는 고난과 질곡에 찬 역사 속에 살아가는 민중적 삶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그것은 때로 자신의 가난함과 생활고 때문에 굴종과 타협에 빠지려는 스스로를 질책하는 시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칼의 빛은 칼로 갚아야 한다', '혀 대신 칼을 달라고'절규하면서 도 뛰어난 역사적 투시력과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나주평야」와 같은 투박하면서도 강한 리얼리티를 획득해 내고 있다 하겠다.
  그런데 굳이 흠을 지적한다면 그의 최근의 시를 볼 때 우려할 점이 나타난다. 즉 그것은 아무 것이나 짓이기고 먹어치우는 블랙홀 같은 서울생활과 상황의 불투명에서 오는 위기 의식 때문인지는 몰라서 다소 모험주의적인 행동의 강요가 시 속에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그의 현실인식 태도에 있어서 전면부정적인 시각의 이면에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무기력한 존재로 파악, 궁극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정신적 조급성이 들어있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그가 한 개인의 양심과 행동의 결코 이 땅의 모든 불합리와 불평등이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조직과 구조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편입하는 게 숙제로 남는다고 할 것이다.
  아무튼 이영진 시인의 6.25에 대한 놀라운 역사적 안목과 발언은 분단 40년이 넘어가는 오늘의 싯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었고, 동시에 5월의 현재화를 위한 노력과 의미부여 작업은 그의 시적 밑거름이 튼튼함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고팡헌의 『신중산층교실에서 』에 실린 65편의 시는 분단과 제도교육, 그리고 스포츠 같은 일련의 우민화정책 사이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그가 한때 농구선수였다는 선입관이 크게 작용했는 지는 몰라도 별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채 직접 힘으로 몰아 부치는 인상에서 우리는 그의 시적 비밀과 의식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하겠다. 즉 시적 형식미를 갖추려고 하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 부딪쳐 가면서 이 땅의 아픔을 몸으로 껴안으려는 태도와 관련된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의 자세는 먼저 이 시대의 양심과 양식을 가진 교사 혹은 시인으로서 인간화와 자기실현이라는 교육적 목표를 도외시한 채 적자생존의 원칙만이 엄격히 적용되어 오직 입시전사(戰士)를 키우고 있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 오늘의 학교교육을 통탄하면서 시작된다.

히틀러 유겐트 대원이 그랬을까
무서운 음모의 손길 사지선다의 숲에서
25%의 정답을 쫓던 눈길로
25%의 정답을 골라쓰던 눈길로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 가슴으로
종살이를 가르치는 죽은 가슴들에
카네이션을 달아 주었을까
                        - 『신중산층교실에서 . 4 』 2연

중간고사 수험시험 시간에
수십 번의 혼절을 견디며 낙하훈련을 하던 내 학생
수천 피트의 시험지의 행간 속을
필사적으로 뛰어들어 더듬다
그 녀석은 저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쌌다
그 녀석의 자율신경을 탓할까
이 나라, 교육 40년의 자율신경을 탓할까
                  - 『신중산충교실에서 ·, 12 』 3연 일부

  위에 인용한 『신중산층‥‥‥ 4 』에서 그는 나찌의 군국적 전제정치하에서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희생시켜야 했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하면서, 히틀러· 유겐트 대원처럼 자신의 학생들이 흑백논리와 국가주의 교육사상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인가 반문한다. 그러면서 그는 무섭도록 이기적인 경쟁의식만 배양하면서 선택의 여지없이 지배자들의 체제유지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던 교육 현실에 분노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교육구조의 결과로 그들의 책받침에까지 침투하여 우상이 된 외국 가수나 배우, 팝송, 일본배우, 디스코장에서 불타죽은 아이들, 프로야구나 유명가수 이야기 등으로 낙을 삼는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그들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소위 요즘 청소년 비행문제를 떠
들고 있는 측들이 어쩌면 '병주고 약주자는 격 ' 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비록 이러한 사회 ·교육구조에서 낙오하거나 전쟁과 같은 '입시지옥' 에서 희생된 재물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분단 40년의 교육이 '전인교육' 이라든가 '인격완성 ' 을 염두하지 않은 채 진행되어온 결과의 현상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신중산층' 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황에서 어떤 것이고 무슨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일까. 추측컨데 그가 말하는 신중산층은 개인의 절대적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내세웠던 서양의 시민혁명기의 일단의 시민계급을 염두해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우리가 흔히 소시민 혹은 부르죠아계급이라고 부르는, 시민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해방과 시민사회 형성이라는 역사창조행위에 참여한 일단의 계급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신중산층은 결코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그들은 사이비 근대화에 따른 뿌리없는 부(雷)의 축적과 무조건적으로 지배층에 합류하려는 상층지향의식만 팽배한 무리들을 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 까닭으로 지배계층과 민중 사이에 완충역할을 해내며 사회를 이끌어 나갈만한 세력의 부재가 필연적으로 나타나면서 극한대립과 갈등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말하는 신중산층의 의미는 위의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땅의 고등교육이 이러한 상층지향의 의식을 형성시켜 주고 가능케 하는 유일한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민중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실현없이 날로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이 심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역사의식 없이 다만 남을 짓밟지 않으면 도태당하는 현실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오늘의 교육적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안개마을의 자장가』라는 13편의 연작시에서 교활한 지배정치의 하나로 이용되는 스포츠와 그의 체험적 이야기를 통해 집단마취 되어가는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비록 대대로 뺏기고 살아온 종살림
종살림의 배고픔 때문이거나
남달리 키가 크기 때문에 사각의 눈물바닥을
쉬임없는 사막의 숨가쁨으로
달리고 뛰고 때릴지라도
오, 그날 형제들의 억울한 죽음 이후에
갑작스럽게 몇 배로 늘어난 우리들의 어린광대짓이
형제들의 주먹에 맞아 멍든 감각세포의 아픔을 잊게 하는
몽혼의 자장가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새벽 바람에 풀잎 위를 달아나는 이슬방울처럼
우리들의 미세한 식물성 근육을 빠져 달아는 땀들이
가난한 마음들 더욱 주눅 들게 하고
그날의 슬픔을 또 한번 죽이는
안개마을의 자장가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나
                  - 『안개마을의 자장가 」서시 』 일부

  그는 대중매체의 비대화등 소위 3S정책에 의해 자신들도 모르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일깨우고자 몸부림친다. 그것은 국가와 개인적 위기에 대한 (눈가림)의 목적하에서 진행되어 왔고 맹렬한 기세로 계속되고 있는 동시에 나와, 나와 너, 그리고 우리와 세계의 (낯설음)를 가속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난한 운동선수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목에 건 메달의 이면에는 온갖 불평등과 구조악 속에서 홀로 탈출했다는 의미밖에 없음을 말한다. 즉 그들이 필사적으로 땀과 눈물을 흘려 얼은 개인적 영광은 그야말로 개인적 영광인 뿐 대다수 사람들은 복권당첨과 같은 행운들과는 상관없이 대리욕구를 충족받으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안개마을』로 상징화한 조국현실을 바라보는 고광헌 시인은 「안개마을‥‥3 」를 통해 "위대한 게르만, 위대한 평화의 베일을 쓴/대잔치를 준비하고/새로운 독재자는/보다 많이, 보다 유리하게 보다 오래/이용할 구실을 찾아/세계 젊은이들을 초대한다는 허울밑에서/아우슈비츠에 어둠의 철조망을 설치했 "던 베르린 올림픽을 떠올리면서 시간과 공간은 다를지라도 상황이 유사해져 가는 오늘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이 획일화되고 말초신경적인 자극만을 좇아 방황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이 모든 것이 분단과 지배세력때문이라고 결론 짓는다. 
  따라서 그는 남과 북을 하나의 민족국가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국토분단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다른 차원에서 결합의 가능성이 보이는 동·서독간의 축구경기의 삽화를 통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한편 이러한 인식태도에서 「 통일로」라는 작품들을 쓰고 있다고 보여 진다.

반 토막 꿈 속에선
생살 찢어버리고 싶은 노여움이나 체념 어쩌지 못해
사십여 년 난자당해 피멍든 가슴 이끌고
임진각에 가면서
파주나 문산 혹은,
더이상 우리를 지킨다고 믿을 수 없는
아들의 면회를 가면서
언제든지 집단 피의자가 되어주어야 하는
검문소를 지나는 발길들 위에
군용차량은
우리들의 질긴 꿈보다 먼저 와
절망할 수 없는 이 땅의 사지 위에 못을 박아버린다.
                            - 『통일로 · 2 』 2연

  그는 벽구멍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민족적 비애를 절감하면서 국토통일에 대한 염원과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즉 그는 제 땅에 살면서도 단지 계산된 위기의식과 냉전논리 때문에 집단 피의자가 되어야 하거나 모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암담한 조국현실을 아파하면서, 「통일로 」는 '단순히 막연한 미래에 다가오리라는 환상적 통일'을 위해 만들어져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참다운 통일을 위해 땀과 피를 쏟아야 할 길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고 속에만 현지배집단의 정치적 구호와 협상만으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깔려 있고 민중적 요구의 수렴없는 통일논의는 허구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몰개성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적인 삶의 의미상실과 가난, 소외에 고통받고 있는 민중적 실상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의 시집 제 1부의 「낙골 산동네 101번 종점 」, 「만근이네 루핑집」,『편지』, 「유세 1·2·3 」등은 그러한 사실들을 잘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힘차고 동적인 시상전개에도 불굴하고 그의 대부분의 시가 분명 비판적인 안목에서 쓰여지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즉 어느 정도 사회과학적 인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이면 지닐 수있는 비판의식이 작품에 곧바로 투영되고 있는데, 비판적 사실주의의 한계로 지적되는 대안없는 고발정신과 시적진술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의 시가 부분적으로 어려워지거나 애매해짐은 무엇인가 독자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독단이 잠재되어 있고 아직도 시와 삶, 시적 행동과 정치적 행동 사치에서 오는 딜레마를 극복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한 가닥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고광헌 시인의 시집을 통해 우리는 그가 잘 훈련된 운동선수에서 교사로, 양심적인 교사에서 실천적인 지성과 양심을 갖춘 시인으로 부단히 변모 발전해 오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또한 그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 "현실상황이 그에게 부여하는 '몫' 에 충실하게 값하는 시적 형상화를 위해 먼저 열심히 될 것 "을 각오하고 있는 바, 지켜보는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네 사람의 오월시 동인들을 통하여 그들의 공통적인 포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은 그들이 사회적 삶과 문학적 자아를 일치시켜 나가면서 시쓰는 행위에 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시세계가 바로 이것들을 잘 증명해 주고 있으며, 특히 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민중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시적 전개가 현실과의 정면대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서울이나 기타 지역에서 민중적인 시를 쓴다는 축들이 사실은 대부분 서구적, 도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반해, 그들은 출발부터 강렬한 민중·민족 정서에 바탕한 언어와 내용으로 시작업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들이 시적 대상으로 하는 분단과 오월, 그리고 민중적 삶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조여오는 상황 속에서도 지지 않고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80년대 민중문학(혹은 노동자문학)에 대한 기대와 요구에도 불구하고 과연 기층민중의 주체적 지속적 창작활동이 가능한 것인가의 문제와 그러한 이면에는 노동자문학을 일방적으로 추켜세우는 진보적 지식인의 허위의식이 잠재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최근에 얼굴을 드러낸 무크지 '창작과 비평 '에 실린 백낙청씨의 『민중·민족 문화의 새단계』의 새 단계 」는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할 것이다.
  여하튼 80년대 광주 오월을 통해 우리는 민족 ·민중 운동의 주체이행이라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그것은 곧 문학에 있어서도 70년대 식의 문학운동만으로는 안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우여곡절 끝에 이론적 작품적 성과를 쌓아올린 민족문학론이 다시 민중문학론으로 후퇴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는 그동안 민족문학론이 다분히 시민혁명적 성격을 띄우고 있었다고 한다면 민중문학론은 (민중에 대한 논리적 구구함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계급적 분석과 전체 운동 속에서 그들의 사회사적 위치를 조명하면서 시작되어 야할 것이라 믿는다.
  70년대 문학운동이 일단 민중지향적인 측면이 강했고 어쨌든지 몇몇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80년 중반기에 들어선 지금 그 비평적 기준과 윤리를 의심케 하는 도식적, 자기 폐쇄적 논리의 전개는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시집을 내게 된 네 시인은 모두 오월시 동인들이다. 오월시에 대한 평가작업은 가까운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 시도되리라 믿지만 우선 그들이 인간적 성실과 유대를 토대로 꿋꿋히 문학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동인지에 나타나는 시작업과「제 3문학론 」과 「시와 리얼리즘」,「지역문화론」등은 그들이 유행적인 논리나 과도한 이념만을 내세우지 않는 문학집단임을 실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80년대 시인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한 두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식의 문학적 논리의 전개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 뭔가 석연치 않는 기분이 든다. 예를 들어 광주 오월항쟁이 일어난지 얼마 안되어 나온 하종오 시인이 쓴 「 4월에서 5월로」등은 그의 시적 안목의 기발함과 특이함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만 쓰여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광주 5월을 체험한 사람만이 오월을 독점화해야 된 것이 아니라 진정 오월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덕적 정열이나 순수한 역사의식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재의 이야기 아닌, 먼 옛날이야기처럼 되어버린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월시에 대한 전체적 평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개인적인 문학작품의 평가도 중요하겠지만 이들 집단이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닌 만큼 80년대 문학운동에 차지한 비중은 적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그들이 정당한 평가를 바란다는 것은 아니지만 5집까지 발표된 시들을 볼 때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일관되게 추구하면서도 구체적인 문학적 성과를 참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십자가의 꿈 」과 「임진강」등의 창시작업과 구체성과 총체적인식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일련의 시편들이 강한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시인의 시에서 공통작으로 나타나는 단편적 사실들을 중심으로 몇가지 이야기해 보았다. 또한 그들이 현재 여러 면으로 완성된 시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 얻은 느낌은 그들이 한결같이 사회의 변화·발전을 구체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감성적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서야 할 땅과 사랑들을 인식하면서 문학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서 온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