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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 각계 저명인사 20인에게 듣는다(신동아, 1988. 2)

본문

신동아, 1988. 2
특별기획 <각계 저명인사 20인에게 듣는다>

광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한국 현대사의 최대의 비극이요 오점인 [광주사태]의 응어리는 지난번 대통령선거운동 과정고 득표의 지역적 분포에서 그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제 [광주사태]의 해결은 제 6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각계 인사 20명으로부터 [광주사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들어본다.(게재순서는 원고도착순)



순수 민간단체가 진상 규명해야

김 관 석<기독교방송명예사장>

  광주사태는 먼저 그 진상부터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 문제가 제기돼 정부 여당에서도 광주사태 진상에 대한 조사발표를 하고, 국회에서도 보고된 바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이 진상이라고는 믿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광주사태진상은 광주사태 당사자들이나 정부 한편이 주도적으로 조사 발표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주사태는 어디까지나 순수민간단체가 그 공신력을 걸고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진상에 대한 조사에 신빙성이 있게 된다.
  진상이 밝혀진 후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의 소재가 분명해질 것이다. 그 책임의 소재가 분명해 져야만 그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것이다. 광주 사태의 동기와 그 과정, 그리고 뒷처리에서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광주사태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에 있어서는 먼저 그들의 몸과 마음 두가지 면에서의 치유책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몸에 대한 보상은 부상자들과 그 가족들, 사망자들에 대한 생활대책으로서의 보장이다.
  이것은 일시적인 눈가림으로 하는 후생 사업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철저한 보상의 정신으로써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다음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문제이다. 폭도니 반란이니 하는 불명예스런 말들을 말끔히 없애야 한다. 이것은 광주사태의 진상이 밝혀지는 일과 직접 관계가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몸의 상처에 대한 보상보다 훨씬 힘들고 무거운 과제가 될 것이다. 희생자들이나 그 가족들의 마음의 상처는 희생의 보람을 인정하고 명예를 높임으로써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위령탑을 세운다는 말도 나돌고 있으나, 위령탑건립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희생자들의 죽음과 고난의 명분을 살려주는 일이 따라야 한다.
  이러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일을 성실하게 구상하고 실천해 가는 자세가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일시적인 호도책으로서의 선심공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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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와 관련, 성격 규명돼야

강 만 길<고려대 문과교수·한국사>

  첫 번째로 광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광주 [사태]에 대한 성격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그것이 [사태]로 불려지고 있다는 것은 전혀 성격 규정이 안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태]가 아니라 [항쟁]이나 [의거]가 되거나 반대로 [폭동]이나 [반란]이 되거나, 어떻든 성격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모든 역사적인 사실이 그러하지만 광주 [사태]도 그 성격규정을 위해선 그에 앞서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흔히 어떤 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위한 진상규명은 상당한 시일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의 정권이 옳은 의미의 민주정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정권 자체와 관계 있는 사건이라 해도 그 진상이 철저히, 또 올바르게 규명될 수 있어야 하며, 그 결과에 따라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순 있어야 할 것이다.
  세째, 광주 [사태]의 진상규명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성격규정이 [폭동]이나 [반란]으로 되지 않고 [의거]나 [민주항쟁]으로 될 경우, 그것은 멀리는 갑오농민전쟁과 3.1운동, 가까이는 4.19혁명이나 부마항쟁과 같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정의되고 가르쳐져야 할 것이다.
  네째, 광주 [사태]가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평가되는 경우, 그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예는 당연히 회복되어야 하고, 거기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애국선열의 위치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선 본인과 가족들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 따라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섯째, 우리는 지금 식민지시기 민족운동으로서의 항일운동에 참가했던 선열과 그 후손에게는 불만족스럽기는 하지만 일정한 영예를 주고 또 보상도 하고 있다. 그러나 해방 후 민족운동으로서의 민주화운동에 참가하여 회생된 사람들에게는 4.19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역사성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광주 [사태]의 해결이 하나의 표본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새로 성립된 정권이 어떤 성격의 정권인가를 논의하는 근거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정권이 광주[사태]의 진상을 얼마나 올바르게 밝힐 수 있으며 그 성격 규정을 어느 쪽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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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균형발전이 과제

장 경 학<前동국대대학원장·법학>

  우리 시대의 비극인 광주문제 해결에는 단기적 해결책 즉 사후 수습책과, 장기적으로 다시 그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양면을 생각할 수 있겠다. 단기적인 대책은 정부에서 진작 해결책을 실행했어야 하는데, 사건 발생 후 7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유야무야 시일을 끌면서 방치한 까닭에 작년 대통령 선거 때에도 그 해결이 큰 이슈가 되었다. 다가올 국회의원선거 때도 광주문제는 다시 태풍의 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저 문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여·야, 또는 광주시민을 포함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사태의 시말을 조사함으로써 사실이 명백히 밝혀져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그 사건이 폭동인가 항쟁인가 의거인가의 판단도 자연히 가능하리라 본다. 그런 연후에 위령탑건립, 유가족보상 등의 처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민선대통령이 선출되어 민주정치가 출범하려는 시기인 만큼, 전국민의 대화합이라는 민족적 열망을 토대로 광주문제의 해결도 역시 조속히 실현되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병에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광주의 불행을 역사의 큰 교훈으로 삼되, 한편으론 장기적 안목으로 그와 같은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광주, 넓게는 호남을 비유한다면 조선조시대의 삼수갑산과 같은 감이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지역적 격차는 경제적 불균형에 의한 것으로 그것은 나아가 계층적 격차를 낳고 어떤 면에서 지배와 피지배의 양상 마저 드러내었다.
  우리가 오늘날 근대정치를 하는 근대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하나 내실을 살펴본다면 의문이 많다. 제국주의 지배하에서의 해방과 동시에 국토가 분단되었고, 반쪽 땅에다 정부를 세웠으나 남북분단의 외부적 영향으로 내부적인 분열이 생겨 통합이 곤란하였다. 사회적으로는 낙후된 봉건의식의 잔재로 인해 국민 의식이 성숙되지 못했고, [주민]은 존재하되 시민의식이 투철한 [국민]으로까지 발전·성숙되지는 못했다. 법률상으로는 국가이나 사회상으로는 통합이 성취되지 못한 것이다. 국민 의식이 없는 군사통치로 인해 지역간의 격차는 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크게 벌어져 굳게 고착되었다.
  지역적인 주민의식을 탈피하여 국민의식이 성숙될 때 지역차별이 해소되고 과거와 같은 불행한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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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중심으로 문제 해결해야

이 우 정<한국여성단체연합회장>

  광주문제의 본질은 군사주의적 사고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군대는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 뿐이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역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된다는 무서운 사고방식이 가능해진다. 군사주의 문화에서는 명령과 일사불란한 규율과 복종만이 요구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 자유, 창의성 등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 된다. 때문에 이런 사태가 다시 생기지 않게 하는 근본적인 치유는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광주사태가 있은 후 1년이 지났을 때 광주에서 있었던 어떤 집회에서 {백년이 지나도 우리 광주사람들의 한은 풀리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짙은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밟힌 자의 아픔은 밟은 자나 제 3자는 모른다. 어디가 아픈지 그들에게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치유책은 그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그들은 그들의 맺힌 한을 풀어보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들의 몸짓은 추악한 지역감정으로 몰아부치는 여론으로 다시 한번 매를 맞았다. 그들의 소원이 무엇일지 겸허하게 들어주는 자세 없이 때린 자나 제 3자가 만들어낸 치유책이 오히려 그들의 분노를 더 자아내고 아프게 하지나 않을지 조심스럽다.
  무엇보다도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폭동이 아니고 의거라고 규정해서 광주시민의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 위령탑을 건립해야 한다, 유가족과 희생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등 여러 가지 구체적인 안이 나올 수 있지만 이것도 희생당한 자 쪽에서 나오는 안이어야 한다. 용서와 화해는 맞은자 측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지 때린자 측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광주시민, 그 중에서도 희생자들이 그 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서 구체적인 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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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윤 영 규<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장>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필자는 광주여상고 교사로 근무중이었다. 당시 공수부대원의 무자비한 살상, 특히 부상당하여 운신조차 못하는 젊은이들을 트럭에 짐짝부리듯 던져 싣고 가던 모습, 한낮에 남녀 불문하고 젊은이들을 팬티만 입혀 길가에 쭈구리고 앉게 하여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박달나무곤봉으로 머리통을 후려쳐 피를 흘리게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동족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분개치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군인들이 철수한 후 수천 점의 무기가 길거리에 나돌고 총기를 다룰 줄 모르는 청소년들이 오발사고로 부상·살상을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서 수습위원으로 참여, 집에 불이 났으니 빨리 불을 꺼야겠다는 심정으로 총기를 수거해 계엄사에 인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 역시 폭도로 낙인 찍혀 갖은 심문과 고문을 당했고, 고등군법회의에서 3년형에 5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5·18희생자의 한사람으로서 필자는 [광주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5·18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이 먼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광주항쟁의 규명에 임하는 새 정권의 진실성 여부가 바로 민주화합의지의 척도가 될 것이다. 진상이 밝혀진 뒤에는 그 진상을 바탕으로 제반 후속조치가 취해져야 찬다.
  둘째, 4·19혁명정신과 더불어 5·18광주민중항쟁정신을 새 정권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야 하며, 그래야만 이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새 대통령이 진정 광주사태와 관계가 없다는 전제하에서). 그 이외의 기념사업 보상문제 등은 그 정신에 따라 조치되어야 한다.
  세째, 위령탑 건립을 포함한 기념사업은 세계적 규모로 활동하고 있는 기존의 [5·18광주민중혁명 희생자위령탑건립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주관하고, 당국 및 여타의 사회단체는 협조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
  5·18광주민중항쟁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과제나 청산해야 할 찌꺼기가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정치적 이용물로 전락시키거나 광주시민 상호간의 불신감 조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특히 은폐 조작된 당국의 발표나 일반인들의 즉흥적 반응을 비롯하여, 언론매체가 진실을 호도하는 보도와 논평으로 광주시민을 이간시키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더구나 사회의 공기인 언론매체에서 [광주사태]라는 모호한 개념 규정을 내리는 반역사적인 태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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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을 동북아경제권시대의 발전기지로

박 은 태<미주산업(주)회장>

  민주대화합의 기치를 내걸고 새출발을 하는 제 6공화국은 [광주문제]를 어떻게든 후유증없이 치유하고 해결해야 할 역사적 소명을 갖는다고 본다.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만 볼 때 우리 민족의 미래는 매우 밝은 것으로 전망된다. 20여년 후 우리 한민족은 1억인구(남한 6천만, 북한 3천만, 해외동포 1천만)에 GNP 1조 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 그동안 경험했던 외세의 침략과 예속의 역사를 벗고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도약의 해가 될 88년에도 지난 7년동안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는 [광주문제]의 응어리를 풀지 않고서 과연 [대화합]의 정치가 이루어질지 의구심이 인다. 우리는 무엇보다 가슴에 손을 얹어 부끄러움 없는 해결책을 마련, 불의에 죽어간 광주 영령들의 희생에 응분의 명예가 회복되도록 해야 할 것이고, 그에 걸맞는 물적 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광주문제]의 직접적인 해결방안이 아닐는지는 몰라도 차제에 경제적 대처방안의 하나로서 지역간의 경제불균형을 시정키 위해 서해안지역에 많은 임해 및 배후공단을 유치, 동서간의 균형경제를 이룩하고, 이것을 기폭제로 하여 호남을 동북아경제권시대의 발진기지로 육성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광주사태는 말로써 아무리 좋은 해결책을 거론한다 해도 그것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 한 국가의 불행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광주문제가 단기간에 치유할 수 있는 아픔이 아니고, 역사가 판단하고 우리 민족 전체가 되씹어야 할 [교훈]일진대, 우리는 광주의 희생을 빚으로 생각하고, 조국의 발전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의 역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건국 이후 40년만에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화를 병행해 나가는 전환점에서 지난 선거과정 중 빚어진 것과 같아 혹시라도 [광주사태]가 지역대결의 한 요인이 된다면 그것은 광주에서 숨져간 희생의 뜻을 무가치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이야기들은 분열보다는 우리 민족의 대도를 밝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경제인으로서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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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권 정치역량의 시험대

김 용 구<언론인>

  마치 태양의 흑점처럼 [빛의 고을] 광주는 우리 현대사의 흑점이다. 광주의 봉기는 1980년 봄에 일어났지만, 천체의 폭발로 생기고 폭발이 소멸된 뒤에도 엄청난 에네르기를 발산하는 천체의 혹점처럼, 광주의 [폭발]은 그때 거기서 꺼졌지만, [광주문제]는 남아서 계속 엄청난 에네르기를 발산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전에서 광주문제가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된 것은 필연의 추세였고, 각 후보자는 저마다 광주문제를 풀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런데 광주사태가 발생한 당시, 그러니까 5공화국출범의 주역의 한 사람인 노태우대통령 당선자가 광주문제를 풀어야 할 일을 맡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이제 광주문제는 큰 정치의 첫 의제로 올라 노정권의 정치적 역량을 시험할 중대한 첫 과제가 되고 있다. 광주사태의 응어리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정치적 치유를 시도해야 할 때인 것만은 확실하다. 노태우대통령당선자의 광주문제를 보는 시각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화합]을 내걸어 가해자와 피해자, 즉 당사자간의 용서와 화해를 추구하고,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보상 및 위령탑 건립을 약속하고 있다.
  광주사태 희생자의 혼령을 달래는 탑비를 세우고 부상자 및 유족에게 적절한 예우를 하여야 함은 광주의 한을 풀 당연하고 필요한 조처에 속한다. 하지만 그 점은 필요조건이지 분명 충분조건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시대인은 광주사태의 당사자들이 [무엇]을 용서하고 또 [무엇]에 대해 화해할 것인가를 그리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이 아니다. 많은 것을 보고 들었으며, 또 많은 얘기를 읽은 것이다.
  예컨대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의 진실을 지금까지 어떤 사정이 있어서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지금 새삼스러운 정치적 해결이 요구된다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일의 첫 순서로서 광주사태의 진상을 밝히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본다. 진정한 화해는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광주사태의 진상파악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서 양식 있고 신뢰받는 인물들로 특별조사단을 구성하여 가려진 면들이 있다면 그것을 짚고 가야 한다. 이들의 활동에 발맞춰, 언론 매체는 광주사태의 진실을 전할 언론자유를 가져야 한다. 한을 푸는 일은 사무적으로는 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고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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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권 발동으로 진상규명

박 찬 종<국회의원·무소속>

  광주의 비극은 민족 역사상 유례없는 수난이다. 광주의 호곡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호곡소리는 민족적인 비애이고 반역사적인 비극이다.
  문제는 양민들을 쏘고 찌르고 했다는 데 있다. 영어로는 [브루털](Brutal)로 표현되었다. 전쟁이 아니었는데도 질서 유지하러 들어간 군인이 살상을 하여 바로 그 과정에서 도망가던 어린 아이들까지 망월동묘지에 묻히는 일들이 생긴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광주 비극의 참상에 대해 국정조사권을 발동,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이것이 밝혀지지 않는 한 이 나라의 국민화합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어떤 면에서 한의 민족이라고 한다. 역사적인 엄청난 비극과 슬픔을 안으로 감내, 축적해 오면서 한편으로는 그 한을 승화시켜 저력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광주의 한은 [원한]으로 맺혀 있다. 시간이 흘러가면 해결될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광주항쟁은 불순분자의 책동을 받아 일어난 폭동이나 내란이 아니다. 온 국민이 염원하는 민주화의 기로에서 군 당국의 무차별 진압에 의해 온 시민의 가슴으로 이어져 마침내는 민중의 신음으로 비화한 민중운동이다. 그런데도 군의 책임은 불문에 붙여진 채 시민들의 책임만이 추궁되었을 뿐이다.
  진정한 민족적 화해와 화합을 이루기 위해 정당한 보상은 꼭 이루어져야 하나, 유족을 지원한다는 명문 아래 온갖 술책으로 유족의 분열·불신을 야기시키는 행위는 중지되어야 하고, 묘지 이장의 기만극도 중단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광주의 명예를 회복시켜 민족수난사 위에 빛날 위령탑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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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시민운동의 연속으로 평가돼야

임 희 섭<고려대문과대교수·사회학>

  미증유의 비극 광주사태는 정치적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먼저 광주시민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광주사태가 역사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어떻게 규정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광주시민들은 그 불행했던 사건이 [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되었던 사실을 가장 가슴아프게 여기고 있으면, 그 사건은 오히려 [의거]로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광주자태가 60년대 이후 계속 되어 온 [민주화 시민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평가받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유신 이후 광주시민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민주화의 정치적 개혁과 발전을 열망해 온 게 사실이다. 그와 같은 배경에서 집단행동으로 표출된 광주시민의 열망이 과잉진압에 대한 항쟁으로 번져 나갔으며, 광주사태는 그 과정에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던 불행한 정치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광주사태에 대한 공정하고 정확한 역사적 해명과 정치적 규정이 선행되어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첩경이라고 믿는다. 그를 위해서 공신력있는 진상조사단의 구성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성의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새 정부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밝히고 공명정대한 해결방책을 찾아 나가는 데 조금도 인색하거나 주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광주사태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규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광주시민의 명예가 회복된다면, 위령탑건립이나 유가족 보상문제 등은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광주사태를 「시민 민주화투쟁」으로 규정하는 데 대해서 이견을 갖는 정치적 주장이나 견해도 있을 수 있겠으나, 광주시민들과 대다수 국민이 공정한 입장에서 내리는 평가에 대해 극단적인 주장들은 자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광주문제의 현명한 해결은 앞으로의 정치발전과 민주화를 위한 또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국민의 관심속에 공명정대하고 신속하게 추진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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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차별 지양, 화합의 대도펴야

현 승 종<한림대학장>

  하루아침에 광주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긴 세월을 두고 꾸준한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당장에 해야 할 일은 우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있는 사람의 도의적 법적 인책을 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위령탑을 건립하는 등으로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유가족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의 방법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명령들이 고이 잠들고 있는 망월동묘역에 대해서도 신중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는 노태우대통령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전 광주방문도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조치만으로 문제가 종국적으로 해 결된다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상을 규명하게 되면 문제발생의 원인도 윤곽이 잡히겠지만,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광주문제라는 현대사상의 일대 비극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치유하는 방도일 것이다.
  먼저 공직인사에서 공정을 기하여야 한다. 특히 고위관료의 출신지역이 특정도에 편중됨으로써 호남지역주민의 감정을 크게 자극하였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또 경제면에 있어서 지역개발에 현격한 불균형을 노정하였다는 사실이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되었으며, 이것이 또한 결국 광주문제를 야기한 한 원인이 되었음을 거울로 삼아, 영·호남간에 지역개발의 균형이 잡히도록 정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회개발자 문화육성에 있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는 정치·경제·사회·문화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차별을 지양하고 사심이나 사욕이 없이 객관적으로 공정한 입장에서 정책을 펴 나가되, 지금까지의 호남지역 낙후현상을 조속히 시정하여 영남지역과 형평상 동일한 선상에 끌어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실마리를 푸는 관건이 되리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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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세계사적 차원에서 풀어야

백 기 완<통일문제연구소장>

  광주민중봉기 문제를 해결하자는 빈말들 가운데는 먼저 몸서리쳐지는 수렁이 파져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고 믿는다.
  첫째, 광주의 일어남은 분명 군사독재를 끝장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군사독재세력의 연장인 노태우정권이 광주문제 해결 운운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말이다. 그것은 민중의 일어남의 참뜻을 해체하여 반민주적 통치구조에 통합해 가자는 술수임을 지적코자 한다.
  둘째, 광주의 일어남은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1980년으로 끊기는 싸움이 아니라, 8·15 이후의 분단 독재, 분단 억압과의 싸움이요, 따라서 그것은 민족의 해방 통일을 위한 싸움으로 이어가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한 민주화문제로 보는 것은 그 민중적 성격을 왜곡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세째, 광주학살로 인한 응어리는 이 땅의 온 민중, 민중의 역사, 그리고 세계양심의 피맺힌 응어리다. 따라서 그 응어리는 민족사적 차원에서, 아니 세계사적 차원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지, 이를 편향적으로 풀자 했을 때 그것은 광주의 일어남의 민족사적 성격을 속비우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분열주의로 됨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광주의 일어남, 그 원통한 학살과정은 어떻게 해야 해결될 수 있겠는가.
  첫째는 민중이 주도하여 5·18 이래의 군부 독재를 극복해 내야만 광주의 응어리는 풀릴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상의 군정이 끝장나기 전에는 광주의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광주의 응어리를 푸는 시늉이라도 한다치면, 광주학살의 온 과정이 자유로운 시민의 토론, 학살에 참가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고백, 그리고 언론매체의 전면적인 보도를 통해서 샅샅이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민족양심의 발동에 힘입어 공권력을 동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형사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실로 광주학살문제를 놓고서 우리는 한바탕 마음놓고 울어버릴 수 있는 대성 통곡의 한판을 만들지 않고서는 이 민중의 원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울어서 될 일인가. 썽풀이가 한바탕 있지 않고서는 결코 아니 될 것이다. 썽풀이란 죽었던 자가 일어나 원한을 풀러 나섬이요, 판놀음으로 벌였던 것을 사회적으로 실천하러 나서는 것이다. 이것을 노정권이 대신할 수는 전연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가 80년5월의 혁명적 요구를 대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광주의 원한은 몇 푼으로 보상되는 것이 아니라, 해방 통일의 싸움 속에 다시 살아야만 해결된다. [광주]는 사실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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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론에 따라 대국적으로 대처하자

남 재 희<국회의원·민정당정책위원장>

  {광주사태는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 모두의 아픔입니다. 응어리와 한을 신속히 풀어야지요. 피해자의 명예를 되찾게 하고 유가족에 대한 응분의 정신적·물질적 보상을 할 생각입니다. 또 이런 민족적 비극을 역사의 기록에 남기고 위령탑을 전국민의 참여 아래 건립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읍니다}
  대통령 당선자인 노태우민정당총재는 광주사태 해결을 위한 구상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현실적으로 광주사태 해결을 위한 논의는 그 구상을 출발점으로 하여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이 광주사태라는 충돌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것이다. 충돌이라 하면 자칫 한쪽은 좋고 다른 한쪽은 나쁘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런데 세상의 충돌을 살펴보면 ①좋은 것과 좋은 것이 충돌하는 경우 ②좋은 것과 나쁜 것이 충돌하는 경우 ③나쁜 것과 나쁜 것이 충돌하는 경우 등과 그 세 가지 형의 이런저런 변형이 있다.
  광주사태의 경우는 제 1의 형이 아닌가 한다. 민주화 일정의 계속을 주장하여 들고 일어선 시민들의 입장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편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저지에 나선 계엄군 당국의 입장도 불가피성이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국적인 관점에서 양시론에 따라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당선자의 구상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그 경우에 있어서도 진상을 우선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남을 수 있다. 양시론을 안 따르고 당국이 전적으로 잘못이었다고 보는 측은 물론이고, 양시론에 따르는 사람 가운데도 일단은 가혹행위의 진상을 조사하자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또다시 쟁점이 될 것이고, 새 국회에 있어서의 여·야의 대립·논란·협상의 대상이 될 것이다. 국정조사권의 발동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노태우대통령당선자는 지난 선거때 서울 유세에서 {부정·부패척결에 있어서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동안의 각종 대형사건이나 의문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는 등 엄하게 다스릴 것입니다}라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한 기본 자세를 광주사태에 적용시켜 생각한다면 새 국회에서 광주사태로 국정조사권을 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측이 끝내 고집한다면 말이다. 또한 여·야란 당파성을 초월한 거국적 지도자위원회의 구성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조사를 한다고 하여 광주사태의 해결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상처를 다시 긁고 소금을 뿌리는 격이 될 수도 있다. 문제를 좀 크게 본다면 광주사태의 해결을 위해서는 민주발전도 보다 착실하게 진전시켜야 할 것이고, 지역의 균형발전과 공정인사 등을 통해 지역감정대립을 해소하는 데도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서는 시간의 약효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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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유족들과 허심탄회한 논의를

이 영 섭<前대법원장>

  이른바 광주사태는 당시의 집권층에서 볼 때에는 폭동 내지 내란에 속하지만 이 사태에 참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민주항쟁으로 주장되고 있다.
  광주사태의 진상이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어라고 단정적으로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사회에 나도는 얘기로는 초동진압에서 공수부대를 투입, 지나칠 만큼 참혹하게 데모대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 흥분한 광주시민들까지 합세하여 사태는 극대화되고 심지어 무기탈취로 인한 공권력과의 교전에까지 이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은 급기야 계엄군에 의하여 진압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피해(사망·행방불명·상해)가 있었고, 또 적지 않은 가담자들이 옥고를 치렀다.
  [광주사태]라는 홍역을 치른 광주시민들 내지 광주를 에워싼 호남인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마치 이방인이나 되는 것처럼 그 지역출신 후보자에게 몰표를 던져 주었고, 다른 지역출신 후보자는 선거유세조차 자유스럽게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더우기 영남출신 후보자에게 대해서는 격심한 적대감정까지 분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태우대통령당선자가 현 시점에서 유념해야 될 일 중의 하나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이 사태의 피해자 및 그 유족들의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들을 어루만져주는 동시에 그 실추된 명예를 번듯하게 회복시켜 주는 일일 것이다.
  우선 그 피해자 및 유족들 대표와 지방유지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여 좋은 방도를 찾는 것이 최상책일 것으로 생각한다. 집권층에서 볼 때 거기에서 논의되는 방도가 다소 합리성을 「일탈」한 범위라고 생각되더라도 용단을 내려 흔쾌히 응하는 것이 광주 사태를 깨끗이 마무리 짓는 방도라고 생각된다.
  위령탑 건립도 좋고, 피해자 측에 만족할 만한 위자료 지급도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더 보람된 일이라면 노태우대통령당선자가 직접 현지를 방문, 피해자측을 일일이 위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주사태로 형을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복역 중이라면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하루 빨리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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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권 수립이 최상의 보상

문 병 란<시인·전남사회운동협의회공동의장>

  무엇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 금번 대통령선거에서 광주·전남 일원이 어떤 특정 후보에게 사상 초유의 몰표를 준 것은 그 후보의 인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이 고장의 그 동안 쌓여진 원한이 선거를 계기로 표출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대통령당선자가 전국 유권자 전체의 3분의 1밖에 표를 얻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할 때, 6공화국의 미래는 이 부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부표는 광주문제와 직접 간접의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굳이 광주문제에 대한 어떤 해결방안을 제시하라고 한다면 원칙문제와 철저한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원칙과 진상규명에 있어 납득할 만한 조치가 행해진다면 그 뒤에 따르는 문제, 이를테면 정신적 물질적 보상문제나 위령탑 건립 같은 것은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6·29 직후에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고 [문민정권 수립을 통한 민주화만이 최상의 보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만 12월16일의 선거 이후의 결과에 대한 집권층과 광주인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이 원칙 문제의 해결에 난점이 있다. 즉, 여당은 직선제를 받아들여 민주화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정통성을 얻었고 광주문제에 대한 치유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광주의 입장은 그와는 달리 부정선거에 의한 승리이므로 「선거 자체가 무효」라는 입장이다. 이 상이한 입장에서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초당적인 입장의 특별기구를 만들어 객관적인 진상규명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당사자인 광주와 학계 언론계 사회계 종교계 등 양심적 민주인사들로 이루어진 진상조사단이 만들어진다면 거기서 올바른 해결방안도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이 같은 작업이 진지하게 선행된다면 구체적 방안인 광주의 명예회복 문제, 사태냐 의거냐 항쟁이냐의 개념정리, 유가족에 대한 보상문제, 위령탑건립, 묘역정리 등 어느 것 하나 어려울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비판작업이 선행되지 않고 적당한 시혜정책으로서 무마하려 한다면 오히려 상처를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또 이 지역만 하더라도 유가족·부상자·운동권의 입장이 약간씩 다르고, 유족의 경우도 두 단체가 있는 것으로 안다. 두 단체의 입장이 고루 수렴되지 않고 협상이 「수월한」 어느 한쪽과의 일방적 대화로써 처리된다면 부작용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광주문제는 이제 어느 개인 어느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전체의 문제로서 사려깊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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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적 치유는 민주자주통일국가 건설

명 진<개운사주지>

  80년 5월의 광주사태는 18년 동안 박정권의 군사통치와 유신독재가 10·26정변으로 막을 내리면서 진정으로 이 땅에 「민주의 꽃」을 피워보려던 국민 대다수의 열망과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을 꾀하는 소수 집권층 사이의 마찰로 인해 빚어진 엄청난 비극이었다.
  특히 시위대중에 대한 계엄군의 과잉진압은 이 사건을 더욱 처참하게 만든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그 결과,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민주화의 꽃은 피지도 못한 채 꺾였으며 정치군부는 또다시 「힘」을 배경으로 재집권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제5공화국은 통치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로 시위가 끊일 날이 없었다. 또한 「광주사태」 해결에 중재역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됐던 미국이 방관 내지는 집권층에 동조함으로써 우리 국민은 [미국의 실체]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것은 이후 반미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때문에 광주사태의 근본적 해결은 사태 발생의 원인에 대한 치유, 즉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피흘리며 열망했던 민주화의 구현과 민족자주통일국가의 건설일 뿐이다. 6천만 겨레와 수십만 광주시민, 그리고 아직도 구천에서 떠돌고 있는 수많은 민주명령은 군부독재의 청산과 자주적 민주통일국가의 수립을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위령탑 건립, 망월동묘지 성역화, 유가족 보상 등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을 뿐더러 진정한 치유도 되지 않을 것이다.
  1천명이 넘는 구속자의 석방, 사면·복권, 수배해제, 언론·출판·집회·결사·파업의 자유, 부의 균등한 분배를 위한 노력 등으로 제반의 민주적 제도와 억압적 권위주의를 과감히 혁파하고, 그 동안 정치·경제적으로 억압·착취당하고 사회·문화적으로 소외 받았던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제반조건을 창출하여야 한다.
  이러한 혁신과 아울러 광주사태의 진상이 소상히 규명, 공제되고 그 책임의 소재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그런 연후에 [역사의 죄인]들은 민주명령 앞에 깊이 참회하고, 그때의 희생자들이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딸이었음을 내외에 선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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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대범하고 진지하게

김 원 우<소설가>

  우선 광주사태의 진상이 좀더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때까지의 진상해명 내지 설명이란 것은 정부측에서 보고용으로 또는 질의에 대한 답변용으로 작성한 것들로서 그것들은 광주사태를 그야말로 사태로 보는, 말하자면 다분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개괄한 주마간산격 [언어의 희롱]이었다. 그런 시각을 논외로 친다면 피해자측(또는 유가족측)이 [항쟁]이라는 관점에서 광주의거를 다큐멘타리식으로 기록한 것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이상의 두 가지 진상, 곧 사태쪽으로 몰고 가는 관점과 항쟁 내지 의거로 정의내린 시각만이 팽팽하게 공존하고 있다.
  어떤 불행한 사건, 그것도 역사의 한 장으로 수렴될 만한 인명의 살상 전말은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파악한 이유와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 요컨대 이제까지의「언어의 낭비」는 단순한 호도책이었을 뿐이고, 서로가 감정의 넋두리만을, 감상의 찌꺼기만을 남발하는 데 급급하여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제에 어느 쪽도 솔직하고 대범해질 당위성이 충분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88 서울올림픽이 제5공화국을 끌고 간 견인차였다면, 광주「사태」는 그 무거운 멍에였다. 제6공화국은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하고, 그 멍에를 벗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제13대 총선 후 새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이 유족측의 주장과 실상과 관점을 낱낱히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진상조사단의 두툼하고 제대로 골격이 잡힌 보고서에 의해 위령탑 건립, 유가족보상 등의 해결 방안을 마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1월 초순인 지금 한창 그 인선이 진행중이라는 [민주화합추진위원회]가 대통령 취임 전에 큰 업적을 남기기 위해 광주 [사태]의 해결을 너무 졸렬하게 서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벌써 사건 발생 8년째에 접어드는데도 그 [한풀이]의 불씨가 내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물리적·물질적인 [해결]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한풀이]로 일관하게 만든 제도전·행정적·정치적인 파행도 이번 기회에 깊이 반성·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풀이]만으로 시야를 좁히는 젊은 학생들도 차제에 그 진상과 사후 보상이 유야무야로 끝난 저 수많은 우리의 역사적 사건들, 가령 거창양민학살사건, 제주도 4·3폭동사건 등을 더듬어 보면서 광주 [사태]희생자의 [숫자놀음]이나 [해명하라]등의 [겉도는] 구호만을 남용할 것이 아니라, [진지한 해결]로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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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름뿌리 빠져야 새 살 돋아

정 호 경<한국가톨릭농민회지도신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광주의 비극! 잊고 싶고 애써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지난 일에 얽매이기보다 오늘과 내일의 일에 몰두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그러나 개인의 문제든 사회·역사의 문제든, [잊어서는] 더 꼬이는 법. 풀어가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이 되는 법이다. 사회·역사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그러하다. 더군다나 광주의 아픔은 어제의 것만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것이며, 광주의 아픔만이 아니라 나라와 겨레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광주의 비극은 결코 [잊을 거리]일 수 없고, [풀 거리]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어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오복음 18·18). 예수의 말이다. 고름이 어찌 살이 되겠는가? 고름 뿌리가 빠져야 생살이 돋는 법이다.
  광주사태는 민주세력과 군부독재, 민중과 특권세력, 민족세력과 외세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 광주라는 특정지역에서 불거진 비극이요 상처이며 한이다.
  그러면 광주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가장 바람직한 길은 마땅히 민중·민주·민족세력이 주체가 되어 푸는 길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음과 같은 차선의 길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광주사태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12·12에서 5·17까지, 5·17에서 5·26까지. 5·17이전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으면 5·17이후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수 없다고 본다. 왜 막강한(?) 경찰력을 두고 공수부대를 투입했는지 따위가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령자는 누구였고 그같은 명령을 내리게 된 과정도 밝혀야 하며, 군·정부·언론의 왜곡진상도 밝혀져야 한다.
  두번째로, 군·정부·.사법부·언론은 광주시민과 온 국민, 겨레와 역사 앞에 [공개사죄]해야 한다고 본다.    세 번째는 피해자보상 복권 위령탑건립 등의 [제자리 회복]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네번째로는 군의 정치중립화, 민족자주의 대외관계 재정립, 민족자립 및 민생 경제구조를 구현해야 한다. 군·검·경찰의 민주화와 철저한 지방자치를 시급히 실천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여야 공동발의로 [특별법]을 제정하여 피해자·인권 및 종교단체·언론단체 등으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며 그 구체적인 치유 및 승화 방안을 강구·실천케 해야 할 것이다.
  고름뿌리를 시원스레 뽑고 싱싱한 새살을 창조하는 국민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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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해자·가해자의 합동조사단 구성돼야

전 계 량<5·18광주의거유족회장>

  우리에게 있어 5·18은 이 나라 역사에 찬연히 빛날 민주·민족사적 운동의 출발점이었으며, 불의를 배격하고 신성한 인간의 양심과 주권을 사수하기 위하여 처절하게 몸바쳐 독재에 항거했던 위대한 민중 승리의 항쟁사이다.
  군부독재 집단에게 있어 5·18은 권력욕에 눈이 어두워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려 했던 가장 치욕적인 동족상잔의 참극이었다. 인간이 인간을 그토록 잔인하치 살육하고도, 더더구나 동족이 동족에게 그토록 무자비하게 총부리를 겨누고도 7년이 지나는 동안 일말의 회개나 사죄는커녕 오히려 폭도의 누명을 뒤집어 씌워 온갖 탄압을 자행하지 않았던가. 총칼로 국민을 가해한 자들은 오직 국민으로부터 용서받을 자격밖에 없는 것이지 화해나 치유를 운운할 자격이 있을 수 없다.
  5·18은 민족적 상처로서 속죄할 수 없는 현 군부독재의 원죄이다. 5·18의 완전한 치유는 비명에 간 수많은 젊은이들을 되살리는 일일진대, 아무리 대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무모하게 죽일 수는 있어도 다시 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광주는 끝나지 않고 아직도, 아니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이 땅에서 광주의 5월을 치유할 수 없는 정권은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으며, 광주민중항쟁의 정당한 평가 없이는 설령 민주화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 역사는 한 치도 진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정권이 5·18의 상처를 완전 치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나, 다만 치유를 위한 몇 가지 방편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가해자의 회개와 국민과 광주시민에 대한 사죄, 그리고 철저한 진상규명이다. 진상규명 없이는 희생자를 포함한 보상대상의 파악조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보자면 첫째, 6하 원칙에 의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1) 가해자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내어 적법한 절차에 의해 객관타당한 문책이 따라야 한다. (2) 피해자(현재 밝혀져 있는 피해자 외에 여러 곳에 대량의 암매장과 화장, 그리고 군용 차량과 헬리콥터로 수송해 간 시체와 행불자 및 미확인 부상자등)의 진상이 정확히 확인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보상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3) 이를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및 상호 관련자로 구성된 조사단을 만들되, 그 신분보장이 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후, 둘째로 광주시민과 피해자들의 명예와 권리를 회복시켜야 하며, 세째 5·18광주의거의 날을 국경일로 제정해야 하고, 네째 피해자를 국가유공자인 보훈대상자로 예우해야 하며, 다섯째 5·18항쟁의 중심지를 성역화해야 한다(도청, 상무관, 분수대).
  여기에다 5·18기념관과 5·18충혼탑을 건립해야 한다. 여섯째는 망월동묘지의 성역화이다. 광주시내 사직공원자리(시외로 이전계획)에 5·18묘지를 이장 성역화하고 그곳에 위령탑을 건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피해보상에 있어서는 (1) 피해 당사자들과의 합의에 의한 물질적 보상과 (2) 7년 동안 폭도, 용공좌경불순분자, 감시, 연금, 도청, 납치 등 폭력과 탄압으로 신체자유에 대한 온갖 탈권행위와 건강장해 및 한맺힌 응어리를 풀어 줄 정신적·육체적 보상이 따라야 하며, 여덟째로 5·18직후 국내외에서 모금된 피해복구비를 유용하여 건립한 광주 어린이대공원의 경영권을 유족회에 되돌려 주어 장기적인 생계대책으로 삼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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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은 금물

박 완 서<소설가>

  아무리 훌륭한 외과의도 자신의 환부를 자신의 손으로 수술하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이번 선거에서 노태우씨는 한정된 최단시일 안에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으로 국민의 [마음에 들게]고쳐 나갔다. 반면 양김씨는 단일화의 실패로 국민을 실망시키고부터는 신들린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국민의 꿈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이전투구라는 말이 그렇게 딱 들어맞을 수가 없는 그들의 싸움에 대해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그들에게 걸었던 우리의 꿈에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태우씨는 양김씨보다 4백만표나 적은 지지밖에 못 받았다.
  왜였을까? 광주사태의 해결 없이는 진정한 민주화도 진정한 안정도 이룩될 수 없을 뿐더러 광주사태 당시 군의 핵심에 있었던 그가 광주사태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유언비어라기보다 상식이므로, 그런 그의 손으로 그 불행한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국민적인 회의가 그 까닭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해결책 중에는 마땅히 진상이 밝혀질 것과 그런 가공할 잘못을 저지른 자에 대한 척결이 포함돼야 할 것이나, 그에게 그것을 기대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쪽이 먼저 낯간지러워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단 마음으로부터의 위로와 보상은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큰 마음 먹고 무언가를 베푼다는 식의 생색을 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숱한 젊음이 목숨 걸고 부르짖던 군정종식이나 민주화를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해서 6·29선언으로 마음껏 생색을 내고 베풀듯이 말이다.
  광주시민이 위령탑을 건립하고 싶어하든 망월동 묘지를 성역으로 가꾸고 싶어하든 그들의 뜻에 맡겼으면 싶다. 간섭이나 방해도 말 일이지만 지원한답시고 생색을 내서 관주도형의 실속없는 것으로 만들지 말일이다. 광주시의 명예회복이나 유가족보상도 그들이 당당하게 요구해서 정당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해야지 시혜처럼 생색내고 베풀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그보다도 대통령당선자가 보통사람처럼 격식 갖추지 않고 훌쩍 광주를 방문해서 방탄유리 없이 직접 광주의 고통에 접해 보는 게 더 시급할지도 모른다. 그가 약속한 대로 고통을 나누기 위해선 먼저 그 고통의 진상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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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인하고 국민앞에 사죄해야

신 기 하<국회의원·평화민주당>

  노태우 민정당총재는 그의 대통령 취임 전에 5·18광주의거 문제의 해결의 비롯, 온갖 미사여구로 장식된 민주화의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역사의 현장은 그렇지 못하니 신뢰감이 전혀 없다.
  1980년 5월, 당시 광주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이 일으킨 정의의 횃불이 오직 우국충정에서 나온 민주의거였다 함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5·18광주민중항쟁은 광주지역에 국한된 사건이나 사실이 아니라 세계사 속에 찬연히 빛나는 민중민주의거인 것이다.
  만일에 현정권이 80년 5월의 광주의거에 대해 진실을 명확히 규명하지 않고 이를 또다시 축소 왜곡규정하여 적당히 넘어가는 선에서 어물쩡 책임을 피하려 한다면 역사와 민족의 준엄한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5·18 광주의거에 대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지고 그에 대한 가치판단이 내려져야 하며 국민적인 예우가 있어야 한다.
  첫째, 가해자인 현정권 담당자는 당시의 상황을 사실대로시인하고 진실로 반성하는 태도로 국민 앞에 엄숙히 사죄한 후 용서를 빌어야 하며,아울러 7년여 독재통치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통해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양심의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둘째, 하루라도 빨리 국회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 그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어 만천하에 공표되어야 한다. 여기에 행정부를 비롯한 전공공기관은 5·18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을 비롯한 모든 희생간에 대한조사에 거국적으로 협력하여 진상을 밝히는 데 진력하여야 한다.
  셋째, 5·18광주항쟁이 민중의 민주의거임을 명실공히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 공표되어야 하며, 5월 18일을 광주민주의거 기념일로 결의, 공표되어야 한다.
  넷째, 당시 민주의거에 참여한 모든국민과, 특히 민주제단에 생명을 바친 민주명령들과 부상자들은 국가유공자로서 국민적인 예우를 받도록 국회에서 결의되어 시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광주직할시 북구 망월동 소재 시공동묘지 일우에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다시피한 영령들의 묘지를 더 넓고 큰 지역을 선정하여 옮겨서 성역화하고 그곳에 모든 국민이 와서 추모할 수 있게 국민의 이름으로 위령탑이 건립되어야 한다.
  여섯째, 민주정부수립 후에는 앞으로 이전할 예정으로 있는 전라남도청 청사 자리에 5·18민주의거기념관을 신축하고 도청 앞 광장을 [민주의 광장]으로 명명하여 부르며, 그곳에 5·18광주민주의거기념탑을 건립하여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적어도 가해자인 현정권 담당자로서는 위와 같은 사실시인과 사죄 및 용서 비는 일만이 있을뿐, 여타의 일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의 결의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