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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 특위 청문회를 보고 / 광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문병란(금호문화, 1989. 1)

본문

광주특위 청문회를 보고

광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가

글·문병란<시인·조선대 교수>
사진·김서곤<프리랜서>



미국 정가의 소식으로나 듣던 국회 청문회가 열려 오랫만에 보도 매체의 새로운 효용성을 맛보았다. 바보 상자로 통했던 브라운관이 신선한 현실감으로 청중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러나, 청문회라는 것이 어떠한 취지와 어떤 법적 근거로 마련되었든 간에 필자의 소견으론 처벌 고발적 사법적 처리를 위함보다 어떤 갈등을 해소하고 용서하자는 뜻이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말하면 모르는 것을 알아내고 확인하는 면도 있지만 문제를 만들기보다는 없애고 그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켜버리는 작용도 한다는 뜻이다. 논리적 유추적 접근이 가능한 문제가 질의응답의 말장난 속에서 진상이 드러나기는커녕 오리무중이 되는 수도 있고 너무도 뻔한 사건들이 도피구가 생겨 승부없는 싸움으로 일관, 시청자들이 밑도 끝도 없는 홈드라마나 재미있는 쇼를 관람하는 것 같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로 대치되고 마는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였다.
  그 반면 지난 8년 동안 운동권이나 대학가에서 유인물과 강연 등으로 수백 수천회 떠들어 댄 5공화국의 부당성과 비리, 전씨 일가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파급효과가 더디었는데, TV나 라디오라는 대중 매체가 동원됨으로써 급기야 전씨 일가의 무더기 구속과 전두환씨의 현대판 귀양살이를 가져오는, 그 효과의 신통함을 감지하계 되었다. 미흡하나 광주진상규명 문제도 그런 정도의 효가를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이나 지금도 TV앞에 쭈구려 앉아 있는 사람이나 답답하기만 하고 무엇 하나 꼭 잡히는게 없어 헷갈리기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런 서론 아닌 서두를 적어 놓고 그 동안 설왕설래 거론된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와 광주문제에 관한 앞으로 남은 문제를 생각해 보겠다.


  광주 문제를 보는 기본 시각
  광주 문제에 관하여서는 여기다 저기다 수차 피력한 바 있지만 다시 되풀이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기본 시각이 있다.
  1980년 5월 당시 일부 야당 정치가들과 광주시민이나 운동권이 사전모의에 의하여 내란음모·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한 폭동이냐, 아니면, 5·16군사 쿠데타 이후 끊임없이 맛들여온 정치권력에 연연한 정치군인들이 10·26으로 상실할지 모를 재집권 기회를 만들기 위한 친위 쿠데타적 일종의 내란폭동에 의한 12·12사태의 연장으로서의 5·17 계엄확대, 5·18 민중학살극인 정권탈취를 노린 신종 쿠데타에 의한 또하나의 진짜 내란음모냐의 두 가지 기본적인 시각이다.
  유신정권의 붕괴와 더불어 발생한 12·12사태를 전후한 당시의 정국과 5·17계엄확대, 5·18 광주의 비극과 관련지어 당시의 역사를 조감해 볼 때 여러가지 객관적 정황으로 보아 전자가 아니라 후자라는 것은 단순한 유추로도 가능하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 설을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기엔 지난 8년 5공화국의 국민으로 그 정부 밑에서 살았고 또, 사실상 별다른 변화가 없는 군부잔존세력이 잡은 6공화국을 인정해야 하는 공범적 관계에 있는 국민으로서의 입장이 곤혹스러울 따름이지, 이제 와서 광주를 내란폭동으로 볼 수는 없게 되었다. 이미 판결이 나 버린 이 무의미한 재판을 청문회에 올려놓고 말장난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광주를 두번 죽이는 모독행위에 해당할지 모른다.
  증언대에 앉은 광주의 희생양과 같은 당시 내란음모의 수괴로 지목된 바 있는 정동년씨는 광주시민의 항거는 결코 내란음모나 폭동이 아니요, 오히려 정권탈취를 위하여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진짜 내란음모 폭동은 정권에 눈이 어두운 전두환 일당 정치 군인들이라고 강조하였다. 당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무기로 감형, 82년말엔 가석방되어 나온다. 정말 그가 내란음모 수괴였다면 어느 의원 말마따나 증언대에 설 수 있으며 사형선고가 진짜였다면 왜 2년이 채 못되어 석방시켰는가? 왜 잡혀가서 감옥에 갇혔는지 모르고 감옥에 갔다가 나을 때도 왜 나오게 되었는지 이유를 모르고 석방되었다고 했다. 그가 내란음모에 종사한 가짜 폭도란 것은 진짜 정권탈취 살상극을 일으켜 광주를 피바다로 만든 진짜 내란음모 종사자, 적반하장의 드라마를 연출, 한 도시를 죽음의 공포로 뒤덮고 8년간 폭도의 누명을 덮어씌운 사람이 잘 알 것이다.
  이 기본 시각이 정해진다면 그에 대한 구체적 증거를 포착하여 진짜 내란음모 폭동자를 위한 80년 당시의 가짜 군재가 아닌 진짜 재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치보복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전제로 하면서 진상을 밝힌다는 것은 매우 이율배반적인 양면을 갖고 있다. 정치 보복이냐, 정치질서를 바로잡는 역사의 정지작업이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역사의 당위성 앞에서 안정과 점진적 개혁을 내세우는 보수대연합의 작금 정가는 심판과 해결이 아니라 흥정과 타협으로 일관, 사건의 진실을 흐리게 하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를 끌어내어 나의 소견을 적고자 한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의 진상
  광주특위 1차청문회 증인으로 당시 군의 최고 책임자들이었던 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이 불려나왔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군부와 일부 군인정치가들의 계획된 각본에 의한 음모임을 완곡하게 돌려 인정하면서도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해주지 않고 난처하거나 키가 될 만한 대목이 오면 '모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소신이 없는 허수아비이거나 명목상만 그 자리를 지켰지 실제로 그 각본 작성자도, 지시자도, 행한 자도 따로 있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보아 무방하다. 그러면 범인은 누구인가? 그들은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하기 어려울 때 쓰는 용어가 '모른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른다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의 대답은 당시 야심가요 실권자인 전두환씨가 장본인이라는 고백이 아닌가한다.
  완전범죄설에 의하더라도, 하등의 증거가 없을 경우,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이익본 사람이 범인이라는 홈즈의 말과 같이 광주사태로 이익본 사람이 누구이며 이익본 집단이 누구인가? 전두환씨와 군부가 아닌가. 어떠한 궤변, 어떠한 변설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광주민중학살의 총책임자는 시작과 중간, 끝까지 모두 전두환씨와 그의 측근 참모들임은 두 말할 것 없다.
  증거가 부족하고 시나리오에 의하여 만들어 덮어씌운 광주문제 군재의 재판기록을 전부 거부하거나 백지화할 수 없어 말도 안 되는 공방의 말장난을 청문회라는 정치쇼로 되풀이할 것인가고 다시 한번 반문한다. 무책임성은 모른다를 남발하는 증인이나 그 모른다를 따라다니며 미궁에 빠지는 의원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용서하고 잊자는 전제가 아니고 적어도 역사적 진실에 입각, 숭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면 살인검 활인검의 교훈을 살려 법의 냉정성과 엄정성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반애원, 반공갈이 미묘하게 조립된 대통령 특별담화 때문에 갑자기 비판의 면도날이 일그러져 버렸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거듭 죽임을 당하는 우민으로서의 한을 못 씻고 말 것이다. 쉽게 용서하고 쉽게 잊는 것도 역사의식이 투철하지 못한 소치다. 광주시민이 폭도가 아니고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평가한다면 광주를 짓밟고 그 위에 세운 5공의 초특급권력을 누린 사람들의 반민주적 반국가적 반민족적 범법 행위에 대한 심판은 얼버무리는 용서가 아니라 납득할 만한 정치적 법률적 조치인 것이다.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했는데, 전직 대통령이고 장관들이라하여 보아넘긴다면 앞으로도 예상되는 정권 탈취의 권력강도행위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 과거에 대한 역사적 정리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주와 관련된 정권탈취자, 민중학살자에 대한 문제는 명확히 밝혀야 한다.

  발포 명령자와 자위권
  비상계엄이란 어떤 경우에 내려지는 조치일까? 평상시에는 내릴 수 없는 적에 의한 전쟁위험이나 그에 준하는 국가의 비상사태, 글자 그대로 국가의 존망의 위기에 내려지는 조치일 것이다. 박대통령시역과 관련한 비상계엄의 장기화도 설득력이 없고 5월 17일 그것의 확대는 더욱더 그렇다. 또 적지도 아닌데 광주 시위군중을 향해 특별한 명령없이 자위권발동으로 발포를 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광주시민이 먼저 무장했거나 총을 탈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맨주먹 시위군중을 향해 말단의 지휘관 명령으로 가능했을까? 그러나, 굳이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광주의 학살을 불가피한 불상사로 간주, 정권탈취 음모의 미리 예정된 작전에 의한 각본이 아님을 내세우기 위함이요, 오히려 발포책임을 광주시민의 시위에 책임전가시키려는 저의인 것이다. 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수만은 없는 저항권 발동에 의한 시민군의 무력항쟁을 정당한 것보다는 살상이나 무력진압의 불가피성으로 낙착, 광주의 학살을 폭동진압으로 상쇄시키려는 어희가 숨어 있다. "다 잘했는데 꼭 하나 유감스러운 것은 광주 시민이 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식의 논조로 광주의 위대한 저항을 간접적으로 아직도 폭도시하는 저의를 드러냈다. 또 어느 면 시민들로 하여금 총을 들도록 유도한 바람잡이 중 특수정보요원이 시위대에 끼어 유도한 흔적이 있었고 실제로 당시 특수요원(방첩대나 보안대 )중 시위군중으로 가장, 폭동을 유도, 방화, 무기고 습격 등을 도발시켰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총을 들게 하여 자기네들의 학살을 정당화시키고 그런 상황을 빙자 정권장악의 기회로 삼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리가 추리에서 끝나겠지만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발포명령 자는 없는가. 모두 자위권에 의하여 발포되었는가. 이 대답 역시 강원도로 귀양살이 간 전두환씨만이 대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청문에 응하는 두 세 타입의 증언자
  증언석에 앉아 있는 증언자는 3가지가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군인이지만 직책상 관여하였지, 당초에 계획된 정치권력에의 야심이 없었거나 그런 입장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 즉 정승화씨나 정웅씨 같은 분들이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 또 한 타입은 가해자의 입장이거나 그들을 도운 합수반, 군검찰관 등이다. 세번째로는 피해자로서의 광주시민을 대표한 내란음모종사자로서 연행되어 구속됐거나 시민군으로서 정당방위를 위한 저항을 했던 사람이다. 금번 행해지는 민중 앞에서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청문회 취지에 따른다면 가장 숨김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처지는 피해자였던 광주시민 대표측 증인이고, 정치적 야심파 군부이건 아니건 그쪽 입장이나 하수인격이었던 군검찰측은 진실을 털어놓기가 어려웠던 게 아니었을까 한다. 궤변, 부정적 사례의 합리화, 발뺌, 왜곡, 적반하장적 책임전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상황설명의 과장 등 너무도 뻔한 무책임성을 들 순 있었다. 법률적 사건의 객관화라는 것이 얼마나 맹랑한 것인가는 마음과 양심이 어떻게 생겼는가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고 공동묘지의 수많은 무덤 속 별볼일 없는 망령들도 자기 나름의 구차한 변명거리는 살인 강도에서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 앞에 머리숙여 참회하는 자세 문제이다. 5·18광주진상 규명과 관련하에 나온 가해자 입장의 증언자의 참회하는 자세는 참으로 아쉬웠다. 객관적 법률상의 증거 위주의 법률상 위증이란 게 어떠해야 됨을 떠나서 이미 그들은 양심의 위증을 하고 있음이 빙빙 돌리는 말과 그 표정에 역력했다. 더구나 거기에다 박자 맞추며 가재는 게편이라고 애써 관변측 변호에 맞춘 여당의원의 질문은 가해자의 정당성이나 자위권의 부득이함을 두둔하고 증언대의 희생양인 피해자측의 증언자를 골탕먹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언동으로 일관, 아직도 광주문제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한 아쉬움을 주었다. 진압의 공로로 훈장을 탄 객관적 기록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와 광주에서 민중의 이름으로 수배하고 있는 광주민중학살 원흉 5인(거명은 생략)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런 태도라면 사과도 아니고, 더더구나 해결하고는 멀며, 광주시민의 응어리진 마음의 상처를 풀어주고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는 정부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처사가 아닌가 한다. 그러한 태도라면 청문회를 보는 광주시민의 마음에 다시 적의가 솟을 것이요,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광주에는 민정당이 발붙일 곳이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여당이 증언대에 앉은 광주시민 대표를 보고 위증이니 뭐니 호통칠 것이 아니라 솔선해서 위로하는 적극적 애정을 보여줘야 옳았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당시 정권탈취야욕이 여실히 드러난 그들 일당의 군인들의 만행이 큰 윤곽으로 드러난 이상 세세한 면을 트집잡듯 광주시민의 저항권을 부정하려는 것은 악의로밖에 간주될 수 없다. 객관적 증거 운운하지만 그 모든 증거가 바로 위증의 뚜렷한 모체인 5공화국이다. 없어야 했던 5공화국이 있는데, 더 이상의 증거를 어디서 찾으려는가. 광주문제를 푸는 데는 여야의 견해가 다를 수 없다. 좀더 애정어린 눈으로 당시의 정황을 통찰해야 할 것이다.

  폭동진압이냐 살육이냐
  이 경우에 있어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광주시민이 내란음모에 의해서 폭동을 일으켰다면 폭동진압일 것이고, 그 진압과정에 나온 실상은 국가보위라는 차원에서 정당화 될 것이다.
  그러나, 광주시민이 내란음모에 의한 폭동이 아니고, 일부 정치군인이 특수부대 또는 정규군을 이용, 자기들 야욕을 채우는 도구로 악용하여 민주시민을 학살했다면 이는 살육작전이요, 이야말로 내란음모이다. 광주시민 대표로 증언대에 나선 사람 정동년씨나 김종배씨는 한결같이 그 점을 역설하고 있었다. 이 상반된 증언을 토대로 하여 청문회 결산에 따른 위헌, 범법유무가 가려지겠지만, 아무리 악법이라도 인간의 양심을 처형하지는 못한다. 광주문제도 그렇다. 모든 것 다 무력으로 짓밟을 수 있었지만, 끝끝내 양심을 처형할 수 없어 결국 8년만에 그 음모가 민중의 힘에 의해 뒤집혀졌고, 광주의 양심회복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역사가 부활한 것이다. 대검으로 찌르고 곤봉으로 부수고 그리고 또 총으로 쏜 이중 삼중의 상처를 입고 죽은 시체가 있다면 그것도 자위권 발동에 의한 부득이한 발포인가. 오죽했으면 젖가슴을 도려냈다고(미확인) 노래까지 등장했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특수한 흥분제를 먹였느니, 며칠간 잠을 안 재워 증오심과 적개심을 돋운 다음 잔혹행위를 하게했다고 하는 말이 떠돌만큼 잔혹한 과잉진압을 했는데, 어찌 그것을 부득이한 자위권 발동으로 볼 수 있는가. 그러기 때문에 청문회를 말장난이라 하는 것이다. 폭동진압을 위한 사살이 아니라 철저한 목적범의 잔혹성이 가미된 학살 살육작전이었다는 광주의 주장은 충분한 이유와 증거가 있다. 그것이 곧 망월동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살아있는 많은 시민의 눈과 귀와 입이 있다. 똥뺏지가 아니고 진정 금뺏지라면 올바로 질문해야 할 것이다. 밤잠을 안자고 TV브라운관을 응시하는 우리의 눈이 다시 분노하는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최대의 보상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가 무엇인가? 5공화국과 6공화국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치학상으로 인식이 명확해져야 하고 전두환씨와 노태우씨가 어떤 관계이며 무엇이 다른가 납득되어야 한다. 이 문제에 부딪친 광주시민들의 곤혹스러움은 청문회가 기백 번 전개되어도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광주에 대한 최대의 보상은 정말 뒤에 숨어 있는 역사적 배반을 밝혀내는 철저한 진상규명이요, 그에 따른 참된 보상이나 명예회복은 진정한 민주화이기 때문이다. 광주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폭도가 안되기 위해서는 민주화운동을 위하여 죽은 영령에 대한 보상도 허우대 멀쑥한 기념탑보다는 이 땅의 참된 민주화가 이룩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민주화의 길로 가고 있는가? 5 18민중항쟁 정신의 새로운 계승을 위한 87년의 6월항쟁을 6·29는 어떻게 기만했는가? 기존의 여당이었던 민정당의 온존과 5공화국 면장선상의 문제인물들에 의하여 행해진 우민적 선거놀이, 야당분열작전, 신판 지역감정 유발, 막대한 부정적 선거자금 살포, 운동권 와해공작, 민주인사의 계속적 감금, 학생운동권의  교대식 구속석방의 악순환, 여야공동으로 보여주는 정치흥정과 타협, 이러한 작태가 계속되고 있다면 5공화국의 비리를 척결할 자격을 6공화국은 정통성을 가졌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권력 핵심부의 모 인물은 "내 입을 열면 여러 명이 불행해진다"고 했는데 그 여러 명이 누구인가 밝혀져야 한다.
  작년 대선 때 '4명의 노태우가 탈을 쓰고 띈다'는 풍자만화의 진의는 우리를 당혹시켰다. 미국은 이 땅의 민주화와 이익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장애요인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이 여론조사에서도 거의 대부분임이 드러났다. 미국을 업고 민주주의와 남북통일을 하겠다는 정치가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답하라!  워싱톤 D·C에 충성을 다하면서 이 나라의 민중이 원하는 민족 민주 민중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이 원활히 이룩된다고 믿는가. 이제 진정한 의미의 진보적 민족주의자들은 청문회가 아닌 민족의 양심으로 민중의 예리한 눈으로 위증하는 가짜 민주주의의 작태를 심판할 것이다. 오오 광주는 진정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민주화 남북 통일의 그날까지 !

문병란 {죽순밭에서} {땅의 연가} {동소산의 머슴새}등의 시집과 {저 미치게 푸른 하늘}등 다수의 문집이 있으며 현재 조선대 국문과에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