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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15

[군 투입 일지]5월 26일

본문

5월 26일

26일 04:00 - 06:00 외곽지역 주둔 계엄군 광주 진입

- 봉쇄병력 3개소에서 시가지를 향하여 전진이동

통합병원-공단입구 사거리

광주-나주간 도로 봉쇄지점 2킬로 전진 (말, 1988. 8)

- 통합병원 부근에 있던 계엄군, 탱크 5대를 앞세우고 1킬로미터 전진. 백운동 쪽도 송암동에서 대동고교까지 전진. 운암동 고속도로에 있던 계엄군, 무등경기장까지 진격. KBS방송을 통해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고 하면서 서울-목포간 고속도로 개통을 위해서 진격했다고 이유 설명.

- 새벽 4시부터 군인들이 학생들과 대치하고 있던 시내 쪽으로 다시 진입, 압축해 들어옴으로써 강경하게 됨. 이 때문에 수습의 전망이 보이던 광주사태는 더욱 혼란에 빠져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돌변. (월간조선, 1985. 7)

* "새벽 5시경 계엄군이 통합병원 부근에서 탱크를 앞세우고 시내로 진입중이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일반수습위원이 농성동으로 가 사태수습은 우리에게 맡기고 계엄군은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줄 것을 촉구했다. 계엄군의 시내진입 소문이 퍼진 결과 오전 8:30분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가 임시로 개최되었다." (구술 : 김태종, 현사연 조사)

- 광주시 농성동에서 계엄군이 진입한다는 첩보에 따라 양기남은 임성택, 구성회 및 상황실장과 함께 무장한 채 군용 지프차를 타고 농성동 한국전력 앞까지 순찰을 나가 동소 1백 미터 전방에서 계엄군 장갑차 1대를 발견하고 임성택은 진입을 저지할 목적으로 공중을 향하여 1발 위협사격을 가함. 구성회는 2발. (공소장)


07:20 계엄군의 시내진입을 알리는 방송

- 시위대들은 차량을 동원하여 계엄군의 진입소식을 알리고 다니며 도청 앞에 모여 총궐기하자고 호소.

- 계엄군의 시내 압축 소식을 전하며 데모 주동자들은 차량을 이용 벽보를 시내 요소요소에 부착. 궐기대회를 09:00에 개최한다고 하면서 '다 같이 죽자', '총질 가하라'는 등의 가두방송을 하고 있음. 도청 앞 분수대 중앙에 마이크 휴대자 4명, 주변 12명. (계엄사 상황일지)


09:30

- 미항모 코랄시호 제주도 남방 2백 마일 해상 한국해역에서 작전중. (육본 상황일지)


11:50

- 병기고 위치는 도청 구내식당 지하실과 정문 옆의 대기실. 3일 전부터 군투입설이 있어 범법자들, 불량배들은 밤에 잠이 안 온다는 등 불안, 근심. 투입설의 효과가 큼. (계엄사 상황일지)


16:06

- 한국화약 광주화약고 경계병 배치(31사 1/11). (말, 1988. 8)


18:00

- 전교사, 9관구 수송자동차 중대 도착(전작). 휴가 귀대 병력 복귀. (전교사 작전일지)


18:30 - 20:00

- 전교사, 사령관 외곽지대 순찰. (말, 1988. 8)


19:00

- 외국인 207명(미국인 134, 일본인 9, 영국인 3, 기타)이 광주시에서 철수함.


21:00 전교사 문관 도청 잠입

- 지하실 TNT 2상자 뇌관 분리 제거 후 복귀.

- 특전대 하사관, 편의대 복장으로 시내투입 정찰실시. (말, 198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