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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어머니 해방, 여성해방, 인간해방. 조태일(시인은 밤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 나남출판, 1996. 11)

본문

어머니 해방, 여성해방, 인간해방



조태일



  나는 작년에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마당극을 본 일이 있다. 광주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절름발이 남자와 곱사등이 여자가 사건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둘은 온전하지 못한 육신에 천덕꾸러기 신세를 걸머지고 있으나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주면서 마침내는 육신이 멀쩡한 떡두꺼비같은 아들놈을 낳게 된다. 이 아들놈은 천대받고 몸이 온전치 못한 부모의 유일한 희망과 기쁨으로 의젓하게 커 가는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광주민중항쟁 속에서 아들놈은 폭도로 몰려 죽어서 어미 앞에 돌아온다. 그 주검과 넋을 자신의 흉물스런 곱사등에 걸머지고야마는 어미는 처절한 고통 속에 갇혀 몸부림을 쳐댄다. 그러나 그 주검은 더러운 오명을 벗어버리고 다시 부활을 하고 마침내는 그 어미와 아비도 자신들의 질곡을 끊어내며 온전한 인간으로 서게 된다. 특히 그 어미는 평생의 삶에서 풀 길 없는 숙명처럼 달고 다녔던 곱사등이를 떨쳐낸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삶을 옭아맨 멍에를 풀어헤치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 온전하게 일어설 수 있는 해방에 이르기까지 그 어미가 감수하고 이겨내던 고통스러움이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고정희 씨의 장시집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를 읽으면서 그때 나를 강타했던 감동의 의미가 다시금 새롭게 되살아옴을 느꼈다. 그것은 그 마당굿과 그 노래굿 시집이 모두 어머니라는 대상을 통하여 구원과 해방으로 참된 인간의 길이 열려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옥죄고 내리쳤던 모든 질곡과 모순이 결국은 어머니를 통해 치유되고 서로 갈라져서 반목했던 것들이 화해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모순인 분단구조를 허물어 내며 통일의 길로 향하는 구원의 표상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자리매김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초혼제>> 이후 두 번째 장시집이 된 이 굿시집은 저자 자신이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 '글쓰고 연출해서 마당에 설 수 있도록 여자 셋의 힘이 한데 어울려 멋진 중판을 펼칠 의도로 씌어진 시집'이다. 그러니만큼 작품 전체의 짜임이 굿거리 형식으로 이루어져 그 리듬과 가락이 걸팡지고 구성진 점이 특색이라 하겠다.
  첫째 거리인 축원마당에서 출발하여 일곱째 거리인 통일마당과 마지막 뒷풀이에 도달하고 있는 이 장시는 씻김굿의 주제인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영혼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달랜다. 여기에서 원통한 영혼들이란 문학평론가 박혜경 씨가 지적했듯이 잘못되고 폭압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죄없이 죽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부당한 제도와 힘에 의해 억눌리고 유린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처받은 산 사람들의 영혼까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응집된 대상이 바로 어머니인 것이다.
  첫째 거리인 축원마당에서는 사람의 본(本)으로서의 어머니가 끊임없이 눌려 지내온 한많은 여자로 드러나서 이에 대한 해방을 발원하고 있다. 어머니라는 대상이 갖는 의미는 성적, 개인적 차원을 떠나서, 부당하게 억눌리고 희생당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보편적인 표상이듯이 여기에서 발원하는 해방은 역사와 민족의 맥락에 접목되어 민족 전체에 대한 해방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둘째 거리인 해원마당과 셋째 거리인 본풀이 마당에서 민족의 통한과 수난이 역사와 현실 속의 어머니를 통해 드러난다. 넷째 거리인 진혼마당에서는 광주민중항쟁을 배경으로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80년 오월의 광주가 우리 사회의 모든 질곡과 모순의 폭발이었으며 이 땅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한 그 자체이듯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 돋아/하늘도 파랗고/들도 산도 파란 오월에/일천 간장 각뜨는 수백 수천 무덤 앞에/아들 젯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딸 젯상 차려놓고 어머니 웁네다" 이렇게 통곡하는 어머니의 한을 푸는 것은 오월의 원혼을 불러 그들의 피를 닦아주는 일이며, 민족 전체의 가슴에 박힌 한과 염원을 풀어내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마침내 분단의 벽을 허무는 큰 강물, 통일의 강물로 흐르게 되며, 다섯째 거리인 길닦음 마당에서는 해방세상 길을 닦는 행동이 이루어지고 지금껏 이를 방해해 왔던 오만가지 원인들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여섯째 거리인 대동마당에서는 앞에서 갈고 닦은 해방의 터에 반듯하게 세워지는 민주집과 참된 사람들의 세상, 그 화복대길을 노래하고, 일곱째거리 통일마당에서는 다시금 우리민족의 분단현실을 극심한 아픔으로 강조하면서 간절한 소망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화해와 치유와 만남으로, 세상 갈라서고 찢어진 모든 것들을 한데 손잡게 했던 어머니-한반도의 어머니며 인류생명의 어머니-그 어머니의 강물은 마침내 통일의 강물로 삼천리 방방곡곡에 굽이치며 흘러가고 마지막 뒤풀이에서는 딸들의 노래로서 어엿하게 돌아오는 어머니의 해방강토와 통일산천을 찬미하고 있다.
  아무튼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에서 애절하고도 구성지게 펼쳐지는 어머니의 해방은 모든 여성의 해방으로,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해방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는 반만년 동안 한결같이 갈구해 온 우리 민족 모두의 모든 것에 걸친 회개와 치유, 화해를 통한 해방의 영원인 동시에 전 인류의 해방에까지 울려 퍼지는 염원인 것이다.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