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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연재 / 광주민중항쟁 서사시 / 광주여, 빛고을이여. 고은(월간예향, 1989. 5)

본문

광주여 빛고을이여 1


고 은



-삼가 이 노래를 광주민중항쟁의 전사 여러분께 바친다



<머리노래>

밤이거든 저 검푸르른 밤하늘 독수리자리 별들은 안다
대낮이거든 이제 모든 것들이 안다
간밤 비가 내렸다
아침 푸른 하늘 속바람 인다
저 무등산은 안다
여기 태어난 자
여기 있는 자
여기 떠난 자
그 누구 할 것 없이
그들 모두의 아버지인 무등산은 안다
여기 죽은 자
그 누구에게도
낱낱이 그들의 어머니인 무등산은 안다
왜바람쳐도 끄떡없이 다 알고 있다
무등산 천왕봉은 안다
표고 1천1백87미터 저 위에서
지왕봉은 안다
인왕봉은 안다
무등의 천 ·지 ·인은 안다
그리하여 그 밑
서석대 입석대
저쪽 규봉의 광석대 벼랑바위들은 안다
저녁 헛살 받아 수정병풍 빛나는 서석대
그 아래로 자우룩히 펼쳐진 장불재 등성이
가을의 가랑잎들이여
빈 데 없이 난장이 푸나무 단풍 들어
울긋불긋 오르내려 눈부신 날
으스스 아쓱 핥아가는 가랑잎 바람 끝 서슬이여
겨울의 소스라치는 얼음꽂이여
눈 쌓이고 쌓인 켜켜의 침묵이여
이윽고 봄이 와
어이할 수 없이 볕 바른 데 풀잎 돋아난다
그러다가 홀연 5월이 오면
무등산 전체로 진달래 피어나고
붉은 철쭉 피고
저 화순쪽 규봉 삼존석 돌기등 둘레도


온통 꽃으로 꽃불로 덮여 정 가득해진다
옛날 봉건조선의 태조 일컫기를
이 산을 함부로 무정한 산 무정 산이라 했건만
어찌 저 산이 무정하겠는가
어찌 저 산에 대하여
여기 사는 자 파슬파슬 무정하겠는가

무등산 각 봉우리들 항상 넉넉한 가슴으로
어디 하나 모진 데 드러내지 안은 큰마음으로
홀의 마음으로
그렇게도 오랫동안 참아온 세월과
그렇게도 오래 동안 참다가  참다가
끝내는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분노의 날이 온다
때로는 무등산 아래
장원봉 향노봉까지 밋밋하게 내려가
무등 무등등의 내 자식들 사는 빛고을 이룩한다
때로는 바랑산 매봉
화산 노적봉 쥐봉으로
때로는 금당산 화방산으로
그 남쪽 봉우리에서
똑바로 북쪽으로
담양 쪽 월각산 바라본다
무등산 그 아래 아래 증심 광주천 그것들이
저 나주벌 극락 영산강으로 흘러간다
불가물 땅가물에 부황나던
호남 농투산이 살고 죽는 땅으로 흘러가며
산 자와 죽은 자 함께 목추겨준다
듣거라 귀머거리한테도 물소리 난다 바람 소리난다
그렇게 흘러  흘러
저 다도해 내 고향 남쪽바다로 간다
호남이 풍년이면
천하는 굶주리지 않는다는데 자손 이어간다는데
만년의 슬픔 영산강이 흐른다

저 무등 있어
여기 광주 있나니
여기 광주 있어
저 무등 천왕 지왕 인왕 있나니
백제 이후
애로부터 이 고을 무진주 땅
주에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현에서 다시 주로 복구되었다가
또 강등되었다가
또다시 승격되었다가
그러다가 주가 부로 바뀌기도 하였다가
목에서 군으로 내려가기도 하였다가
무룻 봉건으로 다스리는 자
사람에게
본디 있던 평등 조져버리고
거기 반상을 두어
하늘에 걸린 일곱 빛깔 무지개와
그 아래 땅바닥 숨죽은 푸성귀 사이로 차별하고
떠그랄 끌끌
사람에게 등급을 먹여
높고 낮게 계급을 두게 되니
거기에 어디메 사람이겠는가
그저 만백성 노예로 짐승으로 다스려지고
이에 질세라
사람 뿐 아니라
사람 사는 땅도
높고 낮게 차별하여 주니 현이니 하고 다스렸구나
이 노룻이 하루 볕 아래 있던 일이 아니고
몇 천년 세월 어림없는 세월이라
여기에 설움 깊어 강이 되고
여기에 노여움 넓어
저 토말 앞바다 되어
여기 사는 사람의 노래에 담은 뜻
가을 건들바람 넘어
저 하늘 가 떠돌더라
무등산 아래
무진주 광주의 백성들이
이런 세월 견디

다 못하여
맨 몸으로 들고일어나는 싸움에
오랜 봉건의 때 거두는 꿈 서려
피눈물 아롱졌으니
이런 백성 짓밟고
저런 백성 다 뜯어먹고는 가렴주구와 맞서
우당창 맨몸들 들고일어나는 싸움이여
이런 백성의 거사 아니거든
나라가 여지없이 짓밟힐 때
그 포악한 침노 외세와 맞서 싸우는
이 땅의 이름이었나니
이 땅의 힘이었나니
무진주 광주 역대 백성들이여
옳거니
고려 조선 이어오는 세월
호적과 왜적 물리친
전라도 백성의 영예여
그리하여 한 다도해 수군 장수 일컫기를
만약 호남 업으면 나라가 업으리라

지난 날 임진왜란 젊은 의병장 덕령장군
무등산 두메 기운 받아 무술 닦더니
그 지략 그 용맹 그 충정으로 써
왜적을 사그리 물리치고도
양반 놈들 고약한 모함으로 처형당하고 말았는데
그때 감옥에서 부른 노래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불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내 없는 불 일어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이 노래 속의 산 무등산
저 무등산과
내 마음 속 무등산의 뼈저리는 절규여
이렇게 죽어가고
이렇게 이어서 오늘이거늘
어느 봄인들 살아있는 자 가슴속
다 타 들어가는 숯덩이 불
내 노여운 잉걸불
어느 시절의 소나기 삼 형제가 꺼주겠는가
그러나 여기 빛고을이여 광주여
그 이름에 값하는 역사의 땅 광주여
일찌기 고려 건국 때
무진주를 광주로 이름하여 1천년을 두고
오늘에 이르는 어둠과 죽음 넘어 광주여
일찌기 고려에 앞서
후백제 견훤의 한 도읍이던 저항의 광주
고려 조선
일제 식민지를 지나
갑오농군의 싸움과
광주학생의 싸움 지나
비로소 오늘이 오늘다운가
여기 광주여 빛고을이여
그대 있어
고려 3천리 아스라히 높은 땅이여

5월이 온다
5월이 온다
1980년 5월이 온다
그 싸움으로
그 죽음으로
그 역사의 극치로
5월이 온다
해마다 온다
1980년 5월 이래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때때마다
이 땅의 모든 도시와
수많은 마을에까지
그 5월이 온다
그 5월이 와서
광주는 광주만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도시와 마을들이
기필코 광주일 수밖에 없다
저 무등산은
저 무등산으로부터
지리산 소백산
오대산
금강산
묘향산
백두산 열 여섯 봉우리로
거기서 멀리 날아가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달려가
여기에도
저기애도 무등산 있다
이제 분 같은 3천리 강토의 무등이어라
이제 온 세상 곳곳마다 무등이어라
신록 싱그러운
그 5월의 광주항쟁으로
그 피바다 광주학살의 죽음으로
그 죽음마다
그 죽음마다 솟아올라
민중인 그대 그대 일어나는 무등이어라
이제 광주는
온 나라 온 세상 환히 비추는 빛고을이여
어린 아이 총칼에 찔려 쓰러져서
여학생의 젖가슴 두부처럼 잘려 쓰러져서
임신부가 찔려 죽어서
무등산의 아들딸 그 젊은이들이
광주의 청춘
그 이름으로
아니 이름도 없는 밑바닥 사람들이
한사코 그 야만과 싸우다 죽어간
그 이름으로
이제 무등산 광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안는다
오늘도 구름 걷혀
원한으로 짙푸른 하늘 속
언제나 그대로인 무등산이여
그 아래 도도한 역사
아 광주여 빛고을이여 조국이여
무등 무등등의 세상이여


바람친다
깃발 휘날려
아 내 조국의 역사 결연히 나아간다
저 까마아득할 손 다함없는 내일로
바람친다
바람친다
광주로 하여금
이 땅의 6천만 민족이여
일제히 소리 질러 하늘 속으로 일어선다

그 이름 광주여 빛고을이여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