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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민중항쟁 주제 단편시리즈<7>/백성우의 '불나방'(월간예향, 1989. 9)

본문

백성우의 불나방



  장마가 시작될 무렵부터 초소 안에선 머지않아 부대가 이동하리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떠돌았다. 해안 초소에서 전경 부대를 철수 시키고 대 신 육군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빌어먹을, 조용히 살다가 옷 벗을라고 했드만 말년에 또 훈련받게 생겼으니. 하여튼 군대복이라곤 좆도 없는 놈이야, 내가."
  그 소식에 제일 먼저 반응을 나타낸 사람은 역시 제대를 석 달 남겨둔 양수경이었다.
  "한 달 동안 특수훈련을 시켜 갖고 시위 진압용으로 써 묵을 모양이든디요. 또, 미문화원 경비를 슬 것이라는 소리도 들리고 저 쪽 분초에 있는 새끼들 말로는 삼청 교육대 조교로 갈 것이라고도 허드만요."
  초소 안에서 가장 입이 싼 서 일경이 너스레를 떨자 대원들이 덩달아 한마디씩을 내뱉기 시작했다.
  나는 바다 쪽으로 향한 내무반 창가에 다가서서 밖의 풍경들을 내려 다 보고 있었다.
  한 차례의 폭우가 핥고 간 갯바닥은 지친 모습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지치다 못해 숫제 악에 바친 듯한 표정 같기도 했다. 뭍을 향해 점령군처럼 거칠게 밀려와 한동안 기승을 떨치던 파도도 이젠 바다 저쪽으로 멀찌감치 밀려나 앉아 언제 그랬냐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골이 찌잉 울렸다. 귓속에서 이명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끓어 오르는 신열 때문에 간밤 내내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 들어 가까스로 눈을 붙이긴 했지만 차도가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나는 유리창에 지급이 이마를 가져다 댔다. 비를 피해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는 하얀 나방들이 턱없이 크게 확대되어 눈앞에 떠올랐다.
  핏기 없는 얼굴들, 하얗게 점에 질린 얼굴들, 진동하는 포르말린 냄새 속에 꿈마저 표백 당해 버린 얼굴들‥‥
  나는 바지 호주머니 속의 종이쪽을 꼭 손에 쥐었다. 형편없이 구겨져 버린 형의 젊음이 기껏 여섯 글자로 압축되어 그 속에 들어가 있었다.
  독한 약기운으로 머리털이 뭉텅이로 빠져나간 형의 흉칙한 몰골이 떠올랐다. 결국 그렇게 가는구나.
  나는 신음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어제 오후 본부에서 건너 온 전령이 그 전보지를 건네주었을 때,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심정으로 그걸 받아 들었다.
  -형 위독 급 귀가.
  미리 짐작하던 일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예상과는 달리 조금 빨리 온 것뿐이었다.
  형이 죽는다는 건 어쩌면 형수나 조카에게는 다행한 일일지도 모른다. 전혀 소생할 가망이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 시달리며 산다는 것은 어차피 괴로운 일이었으므로.
  그러나 간밤에 나는 더욱 참기 어려운 열병에 시달렸다. 스타카토 식으로 끊어진 전보 지의 그 여섯 음절이 머릿 속을 가시처럼 들쑤셔대던 것이었다. 그 동안 헤어나지 못해 발버둥치던 그 해 오월의 악몽이 그새 또 바람을 타고 해일처럼 한꺼번에 덮쳐 오는 것 같았다.
  이래저래 참담했던 시절이었다.
  대학입시에 한 번 떨어지고 나서 몇 달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우선 취직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으로 고시학원에를 다니던 참이었다. 그건 전적으로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었고 시골 면사무소 계장으로 있는 아버지의 끈질긴 충고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무사 안일히 싫기는 했지만 가정 형편으로 봐서도 도리 없는 일이었다.
  그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에 나는 그 엄청난 사건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진부한 얘기로만 들릴지 몰라도 그 때 그 순간에는 정말로 끔찍한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시내는 온통 얼룩무늬 사내들의 천지였다.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구잡이가 아니었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는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게 틀에 맞춰진 것이었다. 그들의 손에 들려진 진압봉은 외마디 고함소리와 함께 틀림없이 상대방의 정수리에 가격되었고 이어 군화발이 실수 없이 복부를 강타했다. 마치 무술시범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공용 터미널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지나가는 차들을 세워 공수대원들이 일일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차안에 젊은 사람이 타고 있으면 누구든지 끌어내 예의 무술 시범을 보였다.
  한 젊은 여자가 겁에 질려 택시 안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자 공수대원 세 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거칠게 끌어 내렸다. 한 사내가 밖으로 끌려 나온 그녀의 멱살을 잡아 낚아챘다. 옷이 찢겨져 나가면서 그녀의 허연 속살이  드러났다. 그들은 칼끝으로 아예 브레지어까지 잘라냈다 그녀의 노출된 유방이 강렬한 햇살을 받아 커다랗게 부풀려져 보였다. 보다 못한 운전기사가 뛰쳐나와 그들에게 대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기사의 머리통을 개머리판으로 여지없이 내리쳤다. 기사는 금세 벌건 피를 뿌리며 아스팔트 위에 고꾸라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그 쪽을 향해 일제히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우 우-.
  야, 이 씨팔놈들아 1
  얼룩무늬들이 우리 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한 사내의 고함소리를 신호로 해서 순식간에 이쪽을 향해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좁은 골목 안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뒤를 쫓고 있었다. 나는 엉겁결에 집 담을 넘어 다짜고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악, 누구야 !
  방에 있던 한 여자가 질 겁을 하며 일어섰다. 숨이 턱에 닿아 목이 컥컥 막혀왔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다행히도 사태를 직감한 듯 잽싸게 다락문을 열어 주었다.
  얼른요, 빨리 들어가요.
  컴컴한 다락 속으로 기어 들어간 나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낮게 엎드렸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나는 목을 죄여 오는 공포감에 수없이  몸을 떨었다.
  다행히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많은 시간을 그 속에 엎드려 있었다. 여자가 다락문을 열고 이젠 괜찮으니 내려오라고 할 때에야 나는 비로소 고개를 내밀었다.
  알고 보니 여인숙 골방이었다 화장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을 나는 여자에게 꼼짝없이 붙잡혀있었다. 여자가, 위험해서 안 된다며 굳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도 내 스스로 감히 그 방을 나서지도 못 했을 거였다.
  다른 손님이 있을 턱이 없었으므로 여인숙은 조용하기만 했다. 여자는 이따금씩 골목 밖에까지 나가 바깥소식을 귀동냥해 오곤 했다. 모두가 겁 나는 얘기들뿐이었다. 나는 다락방의 어둠보다도 더 암담한 절망감으로 치를 떨었다.
  오월의 햇살 아래 허옇게 드러나던 어느 젊은 여자의 젖무덤.  서슬 퍼렇게 뒤를 좇던 군화발 소리, 숨이 끊어질 듯 답답하던 다락방 속의 좁은 공간, 공포의 얼룩무늬,  날이 선 대검, 진압봉, 그리고 피냄새 ‥‥
  불청객으로 뛰어 든 한 남자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다독거려 주던 그 창녀는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누나처럼 혹은 애인처럼 정이 들던 그녀는 지공도 그 여인숙 골방에서 수많은 사내들의 뜨거운 입김에 깔리며 오늘을 보내고 있을까.
  나는 가슴을 끌어당겨 길게 숨을 내 쉬었다. 머릿속이 찡하게 울려 왔다.
  나는 다시 호주머니 속의 전보지를 와락 움켜쥐었다.  유리에 붙은 창백한 빛깔의 나방들이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툭툭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예에? 뭐라고요?‥‥ 안 된다고요?'
  분초장은 구식 전화기 통을 끌어당기며 바락바락 악을 써대고 있었다.
  "그래요. 예, 알았습니다. 충성 ! "
  수화기를 놓고 난 그는 가래침을 돋우어 시멘트 바닥 위에 칵 뱉어냈다.
  "이거 어떻게 한다? 안 된다는데. 비상대기라서 외출외박 절대금지라는 거야. 더구나 사망이라면 몰라도 위독은‥‥‥
  그는 정말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말로 부대가 이동할란 개비네요."
  옆에서 총구를 부시고 있던 방위병이 눈치 없이 끼여 들었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힘없이 상황실들 빠져 나왔다.
  절대금지, 절대 금지, 절대 금지‥‥빌어먹을 나는 음충하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머리가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쿡쿡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었다. 불현듯 술 생각이 났다. 차라리 술에라도 취해 만사를 잊고 싶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패배주의에 빠져선 안돼. 어떻게든 일어서서 다시 싸워야 돼.
  형의 목소리는 느긋하면서도. 다부진 힘이 있었다. 모르핀 주사를 한 대 맞고 나면 형은 늘 그렇게 딴판이 되곤 했다.
  "패배주의가 아냐, 이건."
  나는 취사장의 식탁 앞에 앉아 국그릇에 소주를 따랐다.
  "야, 그러고 있지만 말고 특별휴가를 내 달라고 졸라봐, 임마."
  당번인 최 일경이 깍두기 접시를 내려놓으며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러니까 임마, 애초에 위독이 아니라 사망이라고 구라를 틀었으면 될 거 아냐."
  나는 그릇을 단숨에 비우고 나서 그에게 건넸다. 알코올 기운이 싸하게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정말 지긋지긋한 장마로군."
  최는 묵중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애써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 맞아. 형은 처음부터 죽은 시체나 다름없었어.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지."
  화제를 돌리고 싶어하는 최를 향해 나는 쐐기를 박듯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랬다. 도청이 함락되던 그 새벽에 총 맞아 죽지 못한 것을 형은 두고두고 통탄해 마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그 동안에 치른 형과 가족들의 고통이 그만큼 끔찍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형은 두 차례의 죽음을 경험했다.
  -폭도들에게 경고한다. 너희들은 완전 포위되었다.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 투항하면 살려 주겠다.
  계엄군의 스피커 소리에 그는 힘없이 총을 놓았다.  살고자 하는 본능은 그토록 구차한 것인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창자가 터져 뒹구는 동지의 시체들 사이를 기어 나올 때  형의 자존심은 이미 자신을 처참하게 죽이고 일었다.
  -본인은 한때 불순분자의 책동에 넘어가 폭력으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 했던 과오를 인정하며 차후에 조금이라도 불순한 행동을 하였을 때에는 어떠한 처벌이라도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
  체포된 지 한달 보름 후, 최종 각서에 손도장을 누르며 형은 벌써 두 번째의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이제 형은 마지막으로 죽는 것인가.
  "그 누구도 이제 형을 다시 죽이진 못할 거야."
  나는 다시 국그릇에 소주를 따라 부었다. 빈 창자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어쨌든 뭔가 수를 써야 될 거 아냐.  정 안되면 집에 전화 연락이라도 취해 보든지."
  훈련소 동기인 최는 가슴이 답답한 듯 창 밖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렇게 합리적인 성격을 지닌 놈이었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것조차도 싫어했다.
  그의 시선이 멎어진 곳에서 바다는 다시 출렁거리고 있었다. 고깃배의 발동소리가 흐릿하게 멀어졌다가는 이따금씩 바람을 타고 지척으로 가까워지곤 했다.
  성급한 낮술로 나는 왜 취해 있었다. 젓가락을 들다 말고 나는 식탁 위에 고개를 쳐박았다.
  탄식처럼 낮고 음울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아프게 저며왔다.
  -나 때문에 괴로워 말고 잘 다녀 오거라. 그러고 그 동안에 혹‥‥혹시 내가 죽거든 니 형수하고 병섭이 잘 좀 돌봐 다오. 부탁이다.
  입대를 하루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병원에 들렀을 때  형은 못내 서운한 표정이었다. 형수는 옆 침대의 보호자인 듯한 뚱뚱한 아주머니와 화투를 치고 있었고 병섭이는 텔레비전의 만화영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수는 이미 남편의 간병과 뒤치다꺼리에 진력이 나있는 눈치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로서 그 동안 형수가 겪은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대인동의 여인숙 골방에서 창녀와 함께 있을 때부터 형수의 고초는 시작되었다.
-세상에 연락도 없이 그렇게 식구들 애간장을 태운 다요! 한 두 살 묵은 애기도 아니고 그것이 대체 뭣 하는 짓거리요.
  이틀만에 겨우 집을 찾아 들어갔을 때 형수는 눈가에 닭똥 같은 눈물을 매달고 있었다.
  형은 집에 없었다. 바로 전날 오후에 나를 찾는다며 나가더니 형마저도 종내 무소식이라는 거였다.
  형수는 병섭이를 들쳐업고 문 밖으로 나서며 나를 재촉했다.
  우리는 혹시 나 하는 마음으로 전남대 병원을 찾아갔다. 시체들이 영안실 앞마당에까지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우리는 정신없이 형의 시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몇 번씩 찾아보고 또 들여다봐도 형은 없었다.
  여기 저기서 시체를 확인한 가족들의 오열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한 손에 소주병을 거머쥔 채 아들의 시체를 보듬어 안고 악을 바락바락 쓰는 늙은 아비도 있었고  가족들이 나와 벌써 염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어처구니없게도 죽은 시체를 타고 앉아 멱살을 휘어잡고 뺨을 후려갈기는 노인도 있었다.
  -이 나쁜 노무 새끼야! 아비보다 몬자 디지는 놈이 천하에 어딨냐, 이 호로노무 새끼야아 !
  그러다가도 그는 정말 죽었는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아들의 살을 꼬집어  보기도 하고 사타구니를 더듬어보기도 했다. 보다 못해 옆 사람들이 뜯어 말렸지만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총알이 스쳐간 정강이뼈 부분은 인두에 데인 것처럼 시커멓게 흠이 깎여 있고 가장자리는 시퍼렇게 독이 올라있었는데 쇠파리 테가 날라 들어 시체의 상처 부위에서 열심히 피고름을 빨아대고 있었다.
  우리는 더위 속을 헤매며 시내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조 대 병 원, 기독병 원, 적십자병원 등 원만히 큰 병원은 다 돌아왔지만 그 그득하게 쌓인 시체와 환자들 속에 형의 모습은 영 보이질 않았다.
  땀에 젖은 러닝셔츠가 등허리에 척척하게 감겨 왔다.  젖 빨 시간도 없이 쫄쫄 굶은 채 병섭이는 형수의 등을 기대고 잠이 들어 있었다.
  -혹 잡혀간 것이 아니 까요?
  도청 앞 분수대를 중심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선 인파 속을 뚫고 나오며 형수가 말했다.
  -차라리 그러기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나는 상무관 앞에 관을 실어 내리고 있는 운구차를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꺾었다.
  시민 군 차량 몇 대가 도청 전문을 나와 학동 목을 향해 빠른 속력으로 내닫고 있었다. 차들이 지나간 길 가장자리에는 키 낮은 펜지꽃 들이 강렬한 오월의 햇살 아래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다음날, 부처의 탄생을 봉축하는 연등의 백지장이 피로 물들던 사월 초파일에도 우리는 시내를 쏘다녔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광주는 이제 완전한 해방 구였다. 유사이래 차음으로 광주는 지배자가 없는 도시가 되었다. 지배하는 자 없이도 가장 평온하고 가장 아름다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도청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연일 구름 떼처럼 모여 들고 있었다. 분수대를 구심점으로 하여 정연하게 모여 앉은 수천 수만의 시민들은 이따금씩 내리 퍼붓는 소낙비에도 전혀 동요하는 빛이 없었다. 군중집회가 끝난 뒤에도 그 넓은 광장에는 휴지 한 장 나뒹구는 법 없이 언제나 말끔했다.
  형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27일 새 벽 도청의 하얀 벽이 다시 피로 얼룩지고 위장된 평화가 찾아온 뒤에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집안의 분위기는 초상집처럼 어수선하고 침울했다.  부랴부랴 시골에서 올라 온 아버지는 할 말을 잊은 듯 아예 침묵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은 끝내 살아 돌아오고 야 말았다. 어느날 새벽 그는 유령처럼 집에 나타났다. 꼭 한 달 보름만 이었다.
  그는 반병신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에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는 그의 풀려진 눈동자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뒷방 아랫목에 형이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장독이 풀리면 곧 회복하려니 했다. 그러나 형의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그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때늦은 조치였다. 골수염이라고 했다. 뼛 속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었다. 그 동안 방치해 둔 것이 큰 실 수였다. 그러나 형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초적인 이유를 따진다는 건 사실 무의미했다.
  몇 달 안 가서 형은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잘라 냈다기 보다는 썩어서 뽑아낸 것이었다.
  고통의 나날이었다. 고통 때문에 형의 성질 부림은 갈수록 난폭해져 갔다. 형수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갖은 욕설을 다 퍼부어 대기도 하고 손에 잡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진통제 주사를 한 대 맞고 나면 두 세 시 간 동안은 조용했다. 금방 딴사람이 되어 형수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집안 걱정을 하기도 했다. 때로는 오월의 그날들을 떠올리며 입가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주먹을 부르르 떨며 터무니없이 분개하기도 했다.
  나는 형에게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었다.
  -다녀 오께요.
  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의 손목을 잡은 그의 손이 희미하게 열리고 있었다. 애써 웃음을 지어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안면 근육은 흉측하게 일그러져 갔다. 괴물의 울음소리 같은 비명이 그의 입가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통증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형수는 화투장을 내리치다 말고 형의 그런 꼴을 마뜩 찮은 시선으로 건너다보고 있었다. 형이 몸부림을 칠 때마다 하얀 시트 위에는 끈적한 피고름이 쏟아져 흘렀다. 한 쪽 다리가 통째로 잘려나간 엉덩이에의 그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피고름이었다. 형수는 별 수 없다는 듯 일어서서 형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화장지를 뭉뚱그려 그 부위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형수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숫제 악에 바쳐 토해내는 형의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 나왔다.
  그것이 형과의 마지막 삼면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다시 식탁 위의 소주병을 잡았다.
  "야, 이러 단 큰일 나겠다. 그만 마셔 술만 마신다고 일이 해결이 되냐."
  최가 소주병을 낚아채며 말했다.
  "뭐, 해결? 그래 네 말이 맞다. 당장에 해결될 일이 아니지 대명천지에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만 저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누가 책임져 주고 누가 해결해 준단 말이야. 그래 네 말이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이다. 이 개새끼야."
  나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렸다. 나는 한 손으로 탁자를 짚었다. 그 바람에 소주병이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야, 안되겠다. 너무 취했어."
  최가 일어서서 나의 팔을 껴안았다.
  "놔 둬, 난 안 취했어. 나 혼자 갈 수 있어. 난 가야 돼. 비상대기고 개나발이고 나한테는 지금 형이 더 중요해. 날 잡지마, 이 X새끼야"
  정신을 차리려고 이를 앙당 물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세 발짝도 더 못 나아가고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누군가가 어깨를 흔들어 잠을 깼다. 눅눅한 습기가 살갗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지하창고 안이었다.
"정신 차려. 근무 나갈 시간이야."
  철모와 탄띠를 건네주며 최가 나직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모포를 젖히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머릿골이 욱신거리고 목안에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기억 안나? 악을 바락바락 쓰고 난리를 피우더라구. 그래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이리로 끌고 왔지. 자 자, 빨리 준비하고 나가자."
  밖은 지척을 분간 못할 정도로 어두웠다. 조금때라서 달빛도 없었다. 더구나 장마철에는 달빛 구경하기가 참 힘들었다. 멀리서 밤 공기를 가르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발을 더듬거리며 건물 뒤편을 돌아 나왔다.  그때 갑자기 눈앞에 강렬한 플래시 불빛이 비쳤다.
  "이 새끼들. 뛰어 !"
  양 수경이었다. 우리는 그에게로 뛰어가서 차려 자세를 했다.
  "교대시간이 언젠데 이러고 있어! 그러고 너 김 일경, 점호시간에 어디로 내뺏어? 술 먹었지?"
  그는 사냥개처럼 코를 벌름거리며 나의 입가에 얼굴을 들이댔다.
  "개새끼들. 지금이 어느 때라고 감히 술 처먹고 다녀. 그따위 정신으로 니들이 데모를 막으러 가? 놀고들 있네. 꼴아 박어! "
  우리는 철모를 쓴 채로 땅바닥에 머리를 꽂았다. 그 순간 그는 군화발로 우리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 차버렸다. 우리는 진흙탕 위에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꺼져. 이 새끼들아."
  우리는 뒤뚱거리며 탐조등실로 뛰어 올라갔다.
  "저 자식 말이야. 편한 시절 다 보냈다고 불평해 쌓드니 괜히 우리한테 화풀이하고 있어. 씨팔, 우리가 언제 저한테 데모 막으라고 그랬나? 그나저나 나 눈 좀 붙일 테니까 삼십 분·후에 교대하자."
  최는 벽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아예 판초 우의를 뒤집어 샜다
  살 냄새를 맡고 모기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야. 네 형은 치료비를 한푼도 보상 못 받았니?"
  조금 후에 최가 생각난 듯 다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나는 순간 개머리판으로 그의 따귀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밀었지만 지긋이 눌러 참았다. 아무리 광주 사람이 아니라 하지만 그토록 남의 일 얘기하듯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더구나 형의 회생을 몇 푼의 돈과 결부시키는 것은 정말 싫었다.
  "대역죄를 지은 폭도가 어떻게 감히 보상을 받냐. 단순가담자로 분류시켜 쉽게 풀어준 것만도 고마워해야 될 판인데."
  나는 어깨에서 총을 풀어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최 일경처럼 지극히 합리적인 젊은이들마저 광주에 대해 철저하게 전도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곧 비극이었다.
  광주는 반역의 도시였다. '극렬분자'와 '폭도'와 '빨갱이'가 득실거리는 무법천지였다. 정부는 곯아 색은 종기를 도려내는 비감한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그곳에 메스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군사 파쇼 정권과 제도언론이 만들어 낸 훌륭한 합작 품이었다. 그들은 악어와 악어새처럼 언제나 그렇게 다정한 공생 관계를 맺어 왔다.
  "최 일경, 너는 지금 속고 있어. 너 뿐만이 아니지. 광주를 모르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 집단최면에 걸려 있어. 빨리 깨어나지 않는 한 네 고향도 언젠가는 광주가 될 수 있어, 광주는 이때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야. 깨어나야 돼, 잠에서. 빨리."
  나는 어둠의 저 편을 응시하며 선지자처럼, 혹은 대사를 외는 연극배우처럼 한껏 절박하게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돌아보니 어이없게도 최는 벌써 코를 골고 있었다.
  사방은 적요했다. 바닷가 솔숲에서 이는 바람소리만이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 올뿐이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잠들면 안돼, 안돼'하면서도 의식은 자꾸만 심연의 아득한 깊이로 꺼져들어 갔다.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부표처럼 흔연히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형이었다.
  형은 단아한 모습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옥양목 흰 저고리가 눈에 부셨다.
  형의 영정을 앞세운 꽃상여 뒤로는 수천 수만의 만사가 펄럭였다. 만사에는 핏빛 글씨로 갖가지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수십만의 군중이 상여를 에워싸고 행진을 하고 있었다.
  도청 앞 광장이었다. 상무관 쪽에서 로마 병정처럼 무장을 한 전투 경찰들이 꾸역꾸역 몰려 나왔다. 방패를 앞세운 그들은 일렬 횡대로 늘어서서 상여의 행렬을 막았다. 군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올렸다. 북 소리, 꽹과리 소리가 도심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순간 경찰들이 한꺼번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형의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을 방패로 내리 찍었다. 피가 튀겼다. 형의 웃음 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진압 봉과 군화 발이 어지럽게 군중 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상여가 심하게 요동을 쳤다.
  안돼 ! 형을 다시 죽이지마!
  나는 목이 찢어지도록 소리를 내질렀다.
  형은 다시 웃고 있었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산산이 부서진 유리조각 속에서도 형은 끝내 웃고 있었다. 옥양목 횐 저고리 어깨 위에서 찬란한 오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래며 나는 잠을 깼다. 온몸이 후줄근하게 땀으로 젖어 있었다. 실로 잠깐동안의 숙면이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커먼 바다가 눈앞에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발전기의 스위치를 울렸다. 탄소막차가 부딪치면서 시퍼런 섬광이 반짝였다. 이어 바다의 동체가 불빛아래 허옇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탐조등을 서서히 돌렸다. 괴물처럼 엎드려 있던 바다가 불빛을 받아 조금씩 살아 꿈틀거렸다. 나는 탐조등을 한 지점에 고정시켰다. 멀리 수평선이 열려 있는 부분이었다.
  바다 저 편에서 흰 나방들이 때지어 날아들고 있었다. 탐조등의 불빛을 거슬러 올라오는 흰 나방들은 수천 수만의 군중이었다. 방패로 찍고 칼로 베어도 쓰러지고 피 흘리며 달려드는 성난 군중이었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럴수록 나는 이를 악물고 군중을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얼굴을 가린 철망이 날카로운 살이 되어 이마를 깎고 들어왔다. 솜이불처럼 두꺼운 방한복이 가슴을 조였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이 눈앞을 가렸다.
  나방들은 끊임없이 날아와 뜨거운 반사경에 몸을 부딪쳤다.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타다탁, 푸지지직-
  그것은 뼈와 살이 타는 소리, 형의 시체가 타는 소리, 어둠 속에서 빛을 부르는 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