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고 있는 키워드를 검색해보세요.

DRAG
CLICK
VIEW

아카이브

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민중항쟁 주제 단편시리즈<5>/이명한의 '저격수'(월간예향, 1989. 7)

본문

명한의  저격수



  태양은 눈부시게 흰빛의 화살을 대지 위에 내리꽂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신록의 가로수들이 그것들을 아프게 안아 들일 때마다 바람을 타고 아스라한 곳에서 함성이 울려왔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게 되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함성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앳되고 귀여운 모습들이었으나 너무나 볕에 그을렸기 때문에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웬일인지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물이나 콜라를 아무리 마셔도 그치지 않는 갈증이었다. 그들의 외침은 누군가가 물러가라는 것이었고 석방하라는 것이었으며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가당치 않는 소리였다. 위대했던 그 분만 죽지 않았더라도 세상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이제서 알 것 같아. 아마도 그 양반은 세종대왕이나 링컨 대통령보다도 훌륭한 인물이었을 것이여.
  송달수씨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잠시 망설였다. 아내와 자식도 없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예비군 중대장 김인규가  머리에 떠올랐다. 답답한 가슴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발이 역팔자로 벌어지는 그의 발걸음은 자꾸만 뒤뚱거렸다. 중대장 네 집 문 앞에 서서 검지를 뻗어 차임벨을 눌렀다. 기다릴 참도 없이 문이 덜컥 열렸다.
  "자네, 나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려."
  "아이구, 누구라고·. 통장님이시구만요."
  중대장은 얼굴이 함박꽃처럼 펴지며 방문자를 반겼다. 요사이는 중대사무실에 나가 있기도 뭣하고 하니까, 이따금 데모 구경을 하다가 지치면 집에 돌아와 화투패나 떼면서 소일하던 처지라 통장의 방문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나오소. 술이나 한잔씩 하세."
  송달수씨는 상대의 의향이야 어떻건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둬 번 쳐서 의사를 전달한 다음 휘적휘적 걸어 나왔다. 중대장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 문을 방긋이 열고 아내에게,
  "나 통장님 하구 같이 잠깐 나갔다 올께."
  하고 나서 벼락같이 문을 닫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통장은 중대장이 따라오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슬쩍 뒤를 한번 돌아보고 나서 의심없이 해남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자네, 언젠가 말했었제?"
  송달수씨는 의자에 엉덩이를 내리자마자 중대장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인디요?"
  "그것 말일세. 저어, 조선 놈이란 것은 날마다 한 번씩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안 했는가?"
  "오! 나는 또 무슨 말씀이라고-아따 그런 말씀 같으면 술이나 한잔씩 들고 나서 해도 늦지 않겠소."
  "그래 그래, 아주머니 어서 소주 한 병 주시오. 그나저나 내가 잊어 뿌릴까 무서우니까 그런 다 마시. 어서 빨리 대답부터 하소."
  "그것은 내가 그 때 제일 존경했던 사단장님이 한 말이 있지라우. 그런디 우리 사단장님도 그 말을 일본 고관한테 들었답디다. "
  "맞아, 그랬닥 했제. 그런디 내가 어째서 그 말을 물었냐 할 것 같으면 요새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두 같잖아서 그러네. 내가 반장 오 년에 통장 칠 년 해오고 있지만 요새 같이 이 몸이 끝발없이 된 것은 처음이라 마시."
  "그야 통장님은 죽어 뿌린 대통령만 마음으로 모시고 있은께 그러시지라우. 하지만 저는 차라리 마음 편하게 되었구만이라우. 오죽하면 예비군 동원해서 종놈 부리듯 하니, 애기들 보기에도 민망해 죽겄어라우. 그런디 요즘은 그런 것 없어졌은께·.."
  "그런 소리 마소. 후딱 예비군이라도 동원해서 어떻게 해뿌러야제 어디 쓰겠는가? 영국 기자란 사람이 했다는 말 못 들어 봤는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닥 않던가,"
  "통장님도 그런 말씀 마시요. 우리가 하면 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껴. 수박이 아니면 호박이라도 열겠지요"
  "저런 다니까. 중대장이 되어 갖구 그렇게 말하면 못써."  중대장 같은 장교출신이나 공무원은 으레 자기의 의견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 송달수씨의 평소 생각이었다.
  "사실은요, 처음에는 우리 사단장을 존경했었는데요, 조선 놈을 때려 잡아야 한다는 소리 듣고 너는 좃이다,  해부렀습니다. "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들으면서 해남댁의 깍두기에 콩나물 안주를 곁들여 소주 한 병을 들고 나 왔다. 진열장 안에는 족발과 구운 전어 나부랭이가 있었지만 통장의 성미를 뻔히 아는 처지라 안주 어쩌겠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중대장은 대원들한테 대접받던 입맛이 있어서 서운하긴 했지만 찡그리고 쓴 소주를 마시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놈들이 어린 학생들을 마구 찌르고 때려서 죽인답니다. "
  해남댁이 방금 다년간 손님한테 들었다며 시내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 방금 무어라고 했소?"
  송달수씨는 시치미를 떼고 해남댁한테 물었다. 광주사람 치고 요새 시내에서 벌어진 어마어마한 일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처지이지만 그는 통장이라는 체통과 의무감에서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떤 대화를 할 때마다 항상 동장님과 시장님을 의식했다. 그분들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대화를 했을까 하는 것을 감안한 다음, 그에 걸맞게 말을 맞추어 꺼내곤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통장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고 본분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군인들이 학생들을 몽땅 때려죽이고 있다니 까요. 통장님은 그놈들 하는 짓이 옳단 말인가요?"
  해남댁의 눈빛은 이편을 경멸하고 있었다. 송달수씨는 가슴이 뜨끔했다. 통장이라는 허울에 가려진 스스로의 인격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하지만이 무엇이요? 통장님은 인정도 양심도 없는 분이구먼요"
  설득을 통해 통장으로서의 위신을 되찾아보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그녀의 쌀쌀하고 야무진 통박에 의해서 운조차 뗄 수가 없었다. 이전 같으면 이런 경우 높은 양반들의 본을 따라 점잖게 타이르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는데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게 확실했다. 오늘은 어쩐지 중대장도 그의 주장에 어긋어긋 반론을 펴는 것 같고, 더구나 해남댁의 추궁은 그에게 심한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그는 온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소주잔을 들고 연거푸 몇 잔을 들이마셨다. 그래 내가 잘못인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그들이 옳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나는 통장이지 않는가. 이 통장의 너울을 쓰고 있는 동안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렇지 않는 통장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너무 높은 양반들 생각만 본뜨고 있는지도 몰라. 송달수씨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한 젊은이가 허겁지겁 뛰어들어왔다.
  "좀 숨겨 주세요 좇기고 있어요."
  그는 숨을 어깨로 울려 쉬면서 두리번거렸다. 해남댁은 재빨리 안방 문을 열고 그를 들어가게 한 다음, 제자리로 돌아와 도마 위에 몇 줄기의 파를 올려놓고 땅 땅,소리가 나게 쪼아댔다. 잘려진 파도 막이 후둑후둑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윽고 뒤를 쫓아온 얼룩무늬 군복들이 문을 발칵 열어 젖히고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잠깐동안 주변을 휘둘러본 다음 곧장 방문을 열어 젖혔다. 방안에는 추적자들이 들어온 것을 알고 벽장으로 뛰어 오르려던 젊은이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진 채 우뚝 서 있었다. 군복들은 여유를 두지 않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그의 목덜미를 낚아채면서 곤봉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젊은이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들은 쓰러진 그를 질질 끌어내어 밖에 대기하고 있던 군용트럭에 던져 올렸다. 분홍의 선혈이 방바닥과 문턱에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이놈들아!  저 죽일 놈들 ! "
  해남댁이 분을 참지 못하고 트럭 옆에 서성거리고 있는 군복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 쌍년 .!"
  포악 하는 소리를 듣고 한 군복이 되돌아와서 해남댁의 등을 개머리판으로 힘껏 내리 찍었다. 그녀는 윽,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시멘트 바닥에 꼬꾸라졌다. 손에 들려 있던 은빛 식칼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저 만치 날아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의자 위에 앉아 있던 두 사람도 미쳐 말릴 겨를이 없었다.  아니 말릴 겨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슬로 봐서 만일 말리기라도 했다면 가림 없이 작살 낼 형세였다.
  차량 속에는 방금 잡혀간 젊은이말고도 여러 사람이 팔을 뒤로 묶인 패 엎드린 꼴로 실려 있는 게 보였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숨쉬는 일을 멈추고 오직 제복을 입은 사람들만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살이 붙어 있고 피가 도는 생명체라기보다는 어린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보였다. 중세의 대륙을 짓밟았던 로마군단이나 유럽을 휩쓸었던 게쉬타포의 죽은 유령들이 다시 살아나서 설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부릉부릉, 군인들의 차가 떠나버린 다음에야 송달수씨는 비로소 정지바닥에 쓰러져 있는 해남댁을 내려다봤다.  이미 중대장인 김인규가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어깨가 결단이 났는지 그녀는 한쪽을 비비꼬며 비명을 질렀다.
  "염 병 할 놈들. 저 원수들. 이놈들 .! "
  이를 악물며 해남댁은 악을 쓰고 있었다.
  "죽일 놈들 !"
  송달수씨도 군인들이 떠나버린 길거리를 돌아보며 소릴 질렀다. 그러고나서 그는 찔끔하고 놀랐다. 아무리 그렇기로 통장인 내가 질서를 잡으러 은 군인들한테'죽일 놈들'이라니‥‥ 동장과 시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도 마음이 시끄럽지 않았다. 죽일 놈들이니까 죽일 놈들이라고 했지. 암 죽일 놈들이구 말구. 송달수씨는 중대장을 부축하여 해남댁을 방안으로 옮겼다.
  "죽일 놈들."
  그는 다시 눈알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윗사람들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대신 방금 초죽음이 되어 개처럼 끌려 나간 젊은이의 모습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뒤에 거리를 누비고 있는 군중들의 면면들이 겯혔다.  함성도 들렸다. 그들의 눈은 먹구름처럼 알알이 빛나고 치열했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얼굴들에서는 눈물만치도 사악하고 비굴한 빛이 보이지 않았다. 공명심도 물질적 욕망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이제까지 그는 통장의 몸이니까 당연히 그릇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윗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에 의해서 자신들의 판단을 맞추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며칠 전에 그는 금남로 에서 벌어진 횃불시위를 구경했었다. 그것도 마을사람 가운데 행여나 누군가가 그런 곳에 나가서 본데없이 날뛰는 놈이라도 있는가를 살피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절도 있고 장엄한 광경을 보고 여러 차례 탄성을 올렸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자책하면서도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시위자들은 고도의 도덕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행여나 횃불을 든 사람이 사고를 낼까봐 옆에서 두 사람이 보호하게 하고 여러 가지 수칙을 반복해서 반복했었다. 과연 그 시위는 무사하게 끝났었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면서 그들을 비난해야 한다고 작정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부정적인 대상으로 변해갔다. 그는 시장과 도지사는 물론, 내무장관과 대통령 표창까지를 받은 모범 통장이었다. 어떤 이유건 간에 떠들어서 세상을 시끄럽게 구는 짓은 악으로 규정하는 일에 그는 익숙해 있었다.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모든 일을 판단하면 모든 일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 송달수씨의 마음에 지금 회오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해남댁의 아들 용근이가 그의 친구 상구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너 일 하지 않고 어쨌다고 그냥 돌아 오냐? 아이구구  해남댁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일어서려다 말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방바닥에 쓰러졌다.
  "엄마.! 어서 업혀요. 병원엘 가게요."
  용근이는 등을 내밀었다.
  "무슨 놈의 병원이냐? 병원에 갈 만큼 심하지는 않다. 천한 사람은 그냥 괜찮아져야."
  "그러지 말고 얼른 업히세요."
  "안간닥해도 그래."
  해남댁은 고집을 꺾을 것 같지 않았다.
  "상구 너는 직장 할라 그만 두었다면서야. 어, 어떻게 살라고 그랬냐? 아이구구..."
  "그만 두긴요.  쫓겨났습니다. 야학을 나간다고 해서 그리되었어요."
  "느그 회사는 어떤 놈의 회사 간데 공부한다는 사람을 다 쫓아낸다냐?"
  "그 사람들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시위대가 외치는 함성이 들려왔다.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기려다가 완강히 거절하는 통에 어쩌지도 못하고서 있던 용근이의 눈이 빛을 내며 이글거렸다. 다시 함성이 이제는 가까이서 들렸다. 최루탄이 터지는지 둔탁한 폭발음도 섞여서 흘려왔다.
  "빌어묵을 것"


  용근이가 땅바닥을 탕.1 하고 구르면서 소릴 질렀다.
  "어째서 그래? 너, 너 오늘 어미 죽는 꼴을 볼라고 그러냐?"
  해남댁이 누운 채 잦아드는 소리로 나무랐다.
  "아저씨들도 보셨지요? 참을 수가 없어요."
  병원엘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어머니를 놔두고 떠날 수도 없는 처지라 용근이는 안절부절 하지 못해 연방 손을 맞잡아 비틀고 있었다.
  "용근아! 네가 아무리 그래 봤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
  송달수씨는 통장이라는 입장에서 그런 정도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말끝을 흐려버리고 말았다.
  "온 시민이 치를 떨고 있어요. 상구는 야학 때문에 쫓겨났지만 나도 직장 집어 치웠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
  용근이는 말을 마치자 진열장을 열고 소주병을 꺼내 이빨로 뚜껑을 딴 다음 그것을 커다란 컵에 채웠다. 한잔을 꿀꺽 마시고 또 한 잔을 따라서 상구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 병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통장과 중대장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골목 안이 왁자하니 떠들썩하더니 한패의 군중이 스치고 지나갔다. 흥분한 그들은 고래 소릴 지르며 누군가를 규탄하고 있었다. 용근이와 상구는 마시던 술잔을 집어 던지고 그들의 뒤를 따라 밖으로 뛰어 나갔다.
  "용근아.! 너, 너는 독, 독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애비도 없는 놈이 뒤에 남은 엄씨는 어쩌라고 그래! "
  해남 댁은 토막토막 끊어지는 목소리로 아들을 나무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골목 어귀에 있는 전봇대를 돌아 큰길로 사라지고 없었다.
  송달수씨는 문득 아들 경식이를 생각했다. 아버지 체면을 생각해서 시위대에 가담하지 말라고 당부할 때마다 경식이는 예, 예, 하면서 순종을 했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수상쩍은 대목이 없지 않았다. 이따금 숨을 헐떡거리고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는 수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으레 지독스러운 최루가스 냄새가 풍기곤 했었다.
  "너 데모하고 왔냐?"
  라고 물으면
  "아니어요. 다른 애들이 하는 것 구경하다가 벼락을 맞았지요."
  라고 변명을 했지만, 단순히 구경만 하고 돌아온 놈한테서 그렇게 지독스러운 가스 냄새가 난다는 게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요사이 휴교령까지 내려진 판에 오늘도 어디를 나갔는지, 걱정스러웠다. 아까의 젊은이처럼 계엄군에게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내가 홀아비 몸으로 저를 교육시키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설마 아비 말 안 듣고 그런데 뛰어들기야 했을라구. 
  중대장 김인규로 말하더라도 걱정이 없지 않아 있었다. 소집을 해 놓고 명령을 할 때는 그렇게 고분고분한 놈들이 풀어만 놔두면 제멋대로였다. 시위대 속에서 목이 터져라 악을 쓰고 있는 대원도 여러 놈 목격했었다. 상부에서는 그런 놈들을 단속하라고 벌써 여러 차례 공문이 하달되었지만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만일그놈들이 크게 사고라도 저지른 날이면 중대장 목이 달아나고 몇 푼씩 받고 있는 급료도 끊어질 게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고 있었다. 금남로에 나가 구경을 하고 있으면 중대장인 재 몸이 들썩거리고 주먹이 쥐어지는데 쫄짜들이야 오죽하겠느냐 싶었다.

  어제 밤에도 경식이란 놈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송달수씨는 금남로 에 일찌감치 나갈 볼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이 지어 올린 아침상을 받고 도 몇 숟갈 뜨다 말고 물려 버렸었다. 여기 저기서 사람이 다치고 죽었다는 소문뿐인데, 그놈이 돌아오지 않으니 끼니고 뭐고 경황이 없었다.
  "자네 우리 경식이 못 봤는가?"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를 만나기만 하면 다짜고짜 물어봤으나 어느 누구도 알고 있다는 놈은 없었다. 처음 며칠이야 친구들도 있고 하는 놈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했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혹시 시위의 앞장을 섰다가 끌려가 버린 것은 아닐까. 만일 그런 일이 있어서 동장이나 시장한테 알려지는 날이면 이제까지 쇠심줄 같이 질긴 끈으로 이어진 그들과의 유대가 끊어져버리고 통장이라는 자리도 위태롭게 괼 게 뻔한 일이었다. 공로자 아들이라 해서 주고 있는 장학금도 중단될 것이고- 아니야  아니야, 통장모가지나 장학금은 아무래도 좋으니 그저 경식이만 무사한 몸으로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확 붙들어 잡고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겠어. 허리에 끈을 매어둘 수는 없겠지만 변소에 갈 때만 철저하게 감시한다면 다른 때는 함께 방에 있으면 될 테니까 걱정이 없겠지.
  그는 두리번거리며 군중들 사이를 이리저리 째어 다녔다. 경식이 비슷하게 생긴 놈만 있으면 아무리 심한 북새통이라도 뚫고 들어가 확인한 다음에야 물러섰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차 목적하는 일을 잃고 흐려지기 시작했다. 군중을 따라 손을 하늘 높이 뻗기까지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는 급기야 구호를 외치기까지 하게 되었다. '물러가라.!'하고 그들과 같이 소리를 질러버린 것이다. 그랬다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피고 나서야 안심을 하고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한번 입이 터진 뒤로는 그 다음에 31치는 일은 예사로 왔다. 물론 한 사람의 목소리종이야 모기소리에 불과한 것이지만 전체의 음량을 높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미 송달수라는 개인이라기보다는 군중 속의 한 사람으로서 그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버린 존재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곧 군중의 마음이었고 군중의 마음이 곧 그의 마음이 되어있었다. 이제 송달수씨 에게는 작년 겨울에 죽은 대통령이나 동사무소나 시청의 어른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시위자들의 대 열에 끼어 이렇게 외치고 돌아다녔으니 뒤에 남은 일은 그들이 이쪽으로 따라오거나 이쪽에서 떠나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몰랐다. 그 동안에 그는 경식이를 찾는다는 일조차 잊고 있었다. 지쳐버린 그는 일단 한가한 장소로 빠져 나왔다
  경식이를 기어코 찾아야만 했다. 한 슈퍼마켓 앞에 트럭 한 대가 멈춰 있었다. 시민군이라는 표지를 앞세우고 옆으로는 갖가지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차였다. 그는 음료수나 빵을 시민들로부터 선물 받아 싣고 있는 그 트럭 위로 훌쩍 뛰어 올랐다. 시내를 빠짐없이 고루고루 누비고 돌아다니는 차량이니까 그 위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아들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놈의 차량은 백운동을 지나더니 곧바로 광목간 도로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어디로 간단가?"
  송달수씨는 얼떨결에 물었다.
  " X X로 갑니다. "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한 청년이 대답했다.
  "뭣하러 간단가?"
  "우리도 모르겠어요."
  목적이 있겠지만 밝히지 않는 것 같았다.
  "무기를 우리도 무기가 있어야 돼. 무기가 없으니까 당하고만 있는 거여."
  얼굴이 검고 키가 작달막한 청년이 소리높이 외쳤다. 돌아보니 종전에 해남 집에 왔었던 상구였다. 그 옆에는 열 댓 살쯤 되어 보이는 아마 중학생인 듯한 소년이 차체를 열심히 두들기며 외쳐대고 있었다.
  " X X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어찌나 많이 외쳤는지 그의 목소리는 허스키가 되어있었다. 송달수씨는 가만히 그들을 따라 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익힐 수가 있었다. 다른 노래도 불러봤다. 손뼉을 치며 합창을 하는 동안에 그의 마음은 달뜨고 신바람이 나기 시작했다 열 다섯이나 스물의 나이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여러분.! 우리가 X X에 도착하게 되면 절대로 그곳 주민들에게 불안감이나 피해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광주의 싸움만 가지고는 되지 않기 때문에 전국적인 호응을 얻고자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곧 전주와 서울에서도 광주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악랄한 X X X도 반드시 물러갈 것이기 때문에 그때 가서 우리는 진전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며칠 전 해남 집에 왔을 때는 용근이가 떠드는 동안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던 상구였다. 야학에 다니다가 직장을 잃었다는 그의 어디에 저런 식견과 웅변이 숨어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구! 자네 내 아들 경식이 알고 있제?"
  "전라대학 다니는 키 큰 사람 경식이 말이지요."
  "맞아, 그 학생이네."
  "저는 일주일 전 엔가 보고 다신 보지 못했어요. 그 학생이라면 같은 학교 학생들이 알 것이구만이라우."
  "그럼 용근이는 어디 있단가?"
  "오늘 정오 때쯤, 죽었구먼이라우. 용근이 말고도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그래서 우리도 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
  송달수씨는 비통한 마음에 잠시 동안 말을 잊었다. 가슴에서 불덩이 같이 뜨거운 것이 밀고 올라왔다. 그렇다면 정녕 경식이도 죽었나 보다.
  " X X X은 물러가라."
  그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팔을 하늘로 뻗었다.
  "물러가라 . "
  신기하게도 차내의 젊은이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 외쳤다.
  " X X X을 처단하자 ! 처단하자 ! "
  "처단하자 ! 처단하자 ! "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따라주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그는 여러 달 동안 잊었던 권위를 되찾은 듯한 기쁨에 가슴이 터질 듯이 뿌듯했다. 전장을 향해서 진군하는 부대의 지휘관이 된 기분이었다. 육이오 때도 그는 이렇게 GMC를 타고 전선으로 실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오직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이 떨리기만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게는 그런 단조로운 공포감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인 것이 얽히고 설케 있었다. 그것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소용돌이치는 비장감이었다. 하지만 그는 걸맞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 뛰어든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슬픔이나 좌절감 같은 것을 보여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만큼 젊어져 있었다. 그에게서는 이미 나이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고 없었다. 자기도 젊은이라는 의식이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차가 X X읍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시가지는 환영하는 사람으로 들끓었다. 마치 해방을 맞이한 식민지 백성 같다고 나 할까. 송달수씨는 지난날에 반장이며 통장을 하는 동안 궐기대회 환영대회 규탄 대회 등에 많은 시민을 동원해서 참가해봤었지만, 이런 열기를 느껴보기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마음의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반가움으로 환영을 해주었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심정들인 것 같았다. 남아도는 데도 갖가지 음식물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목포까지 내려가려다 말고 트럭은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가기로 했다. 초록빛 제방 사이로 영산강이 희고 긴 띠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는 것이 내려다 보였다. 지금쯤 다른 한 무리의 시위대가 그곳에 도착했을 영암의 월출산이 흰 안개 속에 아스라이 솟아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이렇게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면서 슬프고 아픈 일을 겪고 있는데도 자연은 어느 한 곳 자태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상구가 일어서서 투사의 노래를 선창했다. 차내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따라 불렀다. XX읍으로 떠날 때는 맨손이었던 그들에게는 이미 M1과 카빈이 들려 있었다. 그것말고도 방금 예비군 무기고에서 얻은 총기가 수십 자루였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시위자에서 전사로 변한 것이었다.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어떤 위험에 대한 두려움도 그들에게는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무기를 얻었으니 이제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애물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여러분 ! 탄창을 장진할 줄 아시지요?"
  상구가 일어서서 총기 다루는 법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내에 들어가서 발사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안전장치를 풀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총구는 항상 공중이나 땅을 향해야지 옆을 향해서는 안됩니다. "
  송달수씨는 군복무 시절에 명사수라는 말을 들었고 한참 동안 사격선수 노릇까지 한 사람이었지만 귀를 기울이면서 그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한창을 넣고 빼는 법, 안전장치를 잠그고 푸는 법, 조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되풀이해서 연습을 했다.
  상구는 어느 사이 일행 중의 지휘자로 굳어져 있었다.  비록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지만 다부지게 생긴 그의 검은 얼굴에서는 투지가 넘치고 있었고, 그는 사람들을 대하는데 있어서 항상 상냥하면서도 중요한 대목에서는 엄격하게 처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출발당시에는 서로 잘난 사람이었고 덤벙거리며 큰소리 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동안에 점차 질서가 잡혀 이제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상구라는 한 사람 꼭 지도자 아래 하나 같이 뭉침으로써 사고를 방지하고 위험을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학생이래서 상구를 얕잡아 보려는 사람도 있었으며 얼굴이 좀 반질 하대서 뽐내려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출발 이후 두 시간 남짓 흐르는 사이에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 학식의 유무에 의해서 구분되는 모든 장벽이 사라지고 없었다. 송달수로 말하더라도 아들 찾는다는 일념으로 차에 오르긴 했었지만 나이 어린놈들과 어울린다는 일이 어쩐지 어색하고 쑥스럽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조금치도 위화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상구의 뛰어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착했습니다. "
  누군가가 머리 위에서 외쳤다. 눈을 떠보니 그는 한 젊은이의 가슴에 몸을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남평에 도착하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한치재부터의 일은 깜깜하였다. 생각해 보니 그는 요 며칠 동안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무너져버린 것에 대한 허무감, 경식이의 행방, 해남 집에서의 충격, 금남로를 비롯한 시내 도처에서 일어난 비극, 꿈틀거리는 군중과 그들의 외침소리에서 받은 자극, 이런 것들이 그의 머리 속에 어지럽게 얽혀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룻밤 사이에 마음의 갈피를 잡고 비로소 바탕을 얻음으로써 평온을 찾을 수가 있었다. 아마 이십 분쯤 되는 수면이었을까,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차는 다시 불이 붙고 쿵쾅거리는 도심에 닻을 내린 것이었다.
  "상구, 나한테도 총을 한 자루 주게."
  송달수씨는 총기를 일일이 관리하고 있는 상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는 관두세요. 이제까지 동행해 주신 것만 해도 고마워라우."
  "이래 뵈두 나는 육이오 때 참전한 명사수라네. 염려말고 이리 주게."
  단념할 기색이 보이지 않자 상구는 Ml총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송달수씨는 그것을 받아들고 군중 속을 헤집으며 도청 앞으로 접근해갔다. 여기 저기에 주검이 보이고 업혀 가는 부상자도 눈에 띄었다. 총성이 산발적으로 울려왔다. 건너편 이층에서 군인들이 총을 발사하자 바로 눈앞에서 한 사내가 풀썩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재빨리 몸을 돌려 건물의 벽에 몸을 숨겼다.
  "통장님이 웬일이세요?"
  돌아보니 중대장 김인규가 성긴 이를 드러내놓고 해죽이 웃고 있었다.
  "쉬이, 통장이라고 부르지 말게. 나는 이제 통장이 아니고 이렇게 총을 들게 되었다네."
  "통장님도 참‥‥‥
  "통장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쏘아붙이고 나서 송달수씨는 셔터가 내려진 한 음식점 앞으로 나아가 몸을 숨겼다. 건너편 이층과 그 옆 사층의 창문 쪽을 살펴봤다.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기 전에 저들을 침묵시켜야 하겠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는 잘 훈련된 사람들일 뿐 아니라 장비도 우수했다.  이쪽은 그들에게 필적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저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통장님 !"
  뒤를 밟아왔는지 중대장의 부르는 소리가 다시 총성에 섞여 들려왔다.
  "왜 따라와서 그래 싼가?"
  그는 사층집 창을 경계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저도 나섰습니다. 총을 잡기로 했단 말입니다. "
  "중대장이 그러면 안돼."
  "안되긴요.  이미 나섰습니다. 대원들도 많이 나오고요"
  그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리는가 했더니 뒤에 섰던 중대장이 보도블록 위에 나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분홍의 선혈이 그의 엉덩이를 물들였다. 골목 안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뛰어나와 쓰러진 중대장을 끌고 사라졌다. 총알은 분명히 사층집 이층의 열린 창에서 날아왔고 그곳에는 두 명의 군복이 밖으로 총구를 내밀고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죽이리라 마음먹었다.  중대장을 쏜 저놈을 당장 박살내리라 다짐하고 엄폐물에 몸을 의지한 채 가늠을 하고 방아쇠에 손을 걸었다.  상대는 지금 다른 곳을 향해서 사격을 하느라고 이쪽이노라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과신하여 항상 노출된 상태였고 이쪽으로 말하면 왕년의 명사수이기 때문에 명중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조준을 하고도 차마 검지를 끌어당기지 못하고 있었다. 목표물의 얼굴이 너무나 앳되어 보이기 때문이었다. 용근이의 모습이 그 위에 겹치는가 했더니 다시 경식이의 얼굴이 되었다. 저놈이 방금 중대장을 쏘았어. 내 눈으로 분명히 보았으니까. 용근이도 어쩌면 저놈이 쏘았을지도 몰라. 남의 외아들을 쏘아 죽인 저놈을 가만 둘 수는 없지. 내가 저놈을 해치운 다음에 해남댁을 찾아가 사실대로 말하겠어. 그때 해남댁은 나이게 무어라고 말을 할까.  어떤 나를 붙잡고 울기만 하겠지. 송달수씨는 이런 환상을 더듬으면서 군바리 시절 선수로서 사격에 임하듯 간자주름 하게 눈을 뜨고 목표물을 가늠자 위에 올려놓은 다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눈을 지긋이 감으면서 그것을 당겼다. 그런데 반동이 없었고 격발음도 나지 않았다. 손가락이 얼어붙어 힘이 가지 않은 통에 발사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왜 이럴까?"
  왕년의 명사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서 자리를 고쳐 않았다. 아직도 상대는 이쪽에서 노리고 있는 것을 모른 채 M16임이 분명한 소총을 들고 거드럭거리며 바깥을 향해서 간간이 총을 쏘아대고 있었다.
  "이제야 말로 그냥 두지 않겠어. 함부로 사람을 죽였으니까, 너도 죽음이 어떻다는 것을 경험해 봐야 해."
  송달수씨는 중얼거리며 방아쇠에 손을 걸고 호흡을 중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것을 당기지 못하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경식이의 얼굴이 그 위에 나타나서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탕탕.

  바로 그때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순간 송달수씨는 총을 길바닥에 내던지며 모로 쓰러졌다. 오른쪽 팔과 가슴께가 묵직해지면서 붉은 피가 상체를 질척하게 적셔왔다.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몸이 흔들려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시 총성이 이번에는 그의 등뒤에서 세 발이나 울렸다. 그는 허우적거리며 시멘트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제 등에 업혀주세요."
  누군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은 채 등을 들이대고 있었다. 건물 사이에서 두 사람이 뛰어나와 그를 앞사람의 등에 밀어 올렸다.
  "아저씨 ! 그러니까 총을 들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아저씨를 쏜 그놈 제가 단방에 해치워 뿌렀어라우."
  상구는 송달수씨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리면서 가쁜 소리로 말했다.
  "그 자석을 내가 틀림없이 쏠 수 있었는데‥‥ 나는 명사수니까. 그런데 망할 놈의 총알이 나가주지 않았어. 끄응"
  왕년의 명사수는 자부심만은 버리지 않은 채 신음하면서 왼손으로 상구의 등을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