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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자료실

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민중항쟁 주제 단편시리즈<3>/한승원의 '어둠꽃'(월간예향, 1989. 5)

본문

한승원의  어둠꽃



1



  방안에는 어둠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둠 속에 가야금줄처럼 팽팽한 긴장이 아내 순애와 남편 종남 사이를 조이고 있었다. 순애는 눈을 감았지만, 종남은 눈을 뜨고 있었다.
  한 시간쯤 전에 텔레비전을 껐다. 광주 민주화운동 국회 청문회의 녹화방송이 다 끝날 때까지 그들 부부는 그것을 보았다. 그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순애는 내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종남은 순애에게 그만보고 자자고 달래기도 하고, 다른 프로를 보자고 하기도 했다. 순애는 그때마다 고개를 젓기만 했다. 그러는 순애의 얼굴은 백지장같이 희었고, 식은땀이 홀렸다.
  "절대로요. 네, 절대로 대검을 사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
  증언대에 선 제복의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광주 기독교 병원이나 대학병원의 진료 카드에 자상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럼 누가 그들을 그렇게 칼로  찔렀더란 맡입니까?"
  진료카드 복사한 것들을 한 줌 움켜쥔 국회의원이 경멸하는 눈초리로 증언대에 선 제복의 얼굴들 쏘아보며 신문하듯이 물었다.
  "아까 저는 분명히 선서를 했습니다.  제가 한 말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죄로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입니다. 말씀을 드리지만 저는 결단코 그때 대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
  제복의 얼굴은 유들유들했다. 그 제복은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제복의 가슴에는 훈장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 제복의 유들유들한 얼굴을 보면서 아내 순애는 뱀에게 잡힌 개구리의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이를 갈았다.
  종남은 속아서 결혼했다.  순애한테 정신질환의 병력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결혼을 한 것이었다.  신혼 살림을 한 해쯤 하여본 뒤에 그것을 알았을 때는 아내와의 정이 들만큼 들어버렸다.  중매를 한 사촌누님을 원망해 보아야 그때는 너무 늦어 있었다.
  사실은 늦어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이었다.  아내한테 정신질환의 병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절대로 늦은 것이 아니었다.  아내한테 정신질환이 있었음을 모르고 속아서 결혼을 했다고 이혼소송을 하면 당연히 이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남은 그렇게 하지를 않고 살아오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정이 들대로 들어버렸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  그는 반드시 순애를 아내로 맞아 살아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강박관념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숨을 가빠지게 하고 으스스한 전율과 함께 식은땀이 흐르게 하였다.
  바야흐로 아내의 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흐른 땀이 마르고 또 흐르고 하여온 아내 순애의 몸에서는 단내와 시큼한 땀내가 풍겨왔다.  아내의  숨결은 가빠져 있었다. 아내는 까닭 없이 불안해하고 있다. 정서가 불안정해 있다. 가슴이 심하게 울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아내가 한숨을 쉬었다.  뛰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싶을 것이다.  남편인 그가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참고 있을 것이다. 아내가 불안해하는 것을 보면 그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도 아내를 따라 한숨을 쉬었다. 아내가 그에게 등을 돌린 채 돌아누웠다. 그는 아내의 뒤통수를 향해 돌아누웠다. 아내의 어깨 언저리 저쪽의 창문에서 부연 빛살이 날아왔다. 그 빛살에 눈이 부셨다.
  "하느님도 없고 부처님도 없어. 죄를 지은 놈들은 더 잘 살아. 감기 한 번도 안 걸리고 살만 피둥피둥 쪄 가지고, 대궐 같은 집에서 자동차를 두 대 세대씩 굴리면서....."
  아내 순애가 잠꼬대를 하듯이 말했다. 그는 아내의 말을 못들은 체했다. 잠이 든 것같이 숨을 고르게 쉬었다.  아내는 더 말을 이어하지 않았다. 그가 잠든 줄 안 모양이었다. 아스라한 곳에서 암코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봄이 오고 있었다. 저 짐승도 짝짓기를 하려고 저리는 것이다. 암코양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그의 아내 순애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순애는 마당을 서성거릴 것이다.  안집의 장독대가 있는 마당 안쪽으로 갔다가 대문간 쪽으로 갔다가 할 것이다.  마당 한가운데 서서 별들을 쳐다볼 것이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몇 차례 할 것이다.  가벼운 다리운동을 할 것이다.  팔 운동도 하고 고개운동도 하고 등배운동도 할 것이다.  그래도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으면 대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갈 것이다.  가로등불빛 희미한 골목길을 걸어갈 것이다.  구멍가게 앞을 지나서 한길로 나갈 것이다.
  그는 가슴이 답답했다.  바로 누우면서 심호흡을 했다.  그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귀를 문밖으로 내보냈다.  대문 여는 소리가 나면 뒤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혹시 어느 치한에게 희롱을 당하기라도 하면 어쩔 것이냐.
  고양이의 발자국 소리가 마당을 왕래하는 듯싶었다.  암코양이의 소리가 다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사람이 암코양이 소리를 흉내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우리 집 안을 살피다가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한테 복수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때 내 총에 맞아 죽은 혼령이 저 암코양이로 환생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몸은 식은땀에 젖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가 왜 이렇게 약해지는가. 대범해지자. 아내는 어째서 저렇게 건강이 좋아지지를 않을까.
  주인집 사람들이 마당에서 서설거리는 순애를 보면 어떻게 할까. 아직은 한번도 한밤중에 마당 안을 서성거리던 순애가 주인집 사람들한테 들킨 적은 없는 듯싶었다. 그는 눈을 뜨고 천장에서 수런거리는 어둠을 보았다.  그 어둠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거리고 있었다. 총에 맞거나 칼에 찔린 채 단말마 비명을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의 몸짓들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음 하고 안간힘을 쓰며 몸을 뒤척였다.  엎드려 누우면서 얼굴을 베개 속에 묻었다.  아내 순애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순애와 만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여기기 시작한 것은 그가 사촌 매부인 한일피혁상사 고근홍 상무의 말을 들은 뒤부터였다
  제대를 하고 한일피혁의 말단 사원으로 들어간 지 사흘 째 되던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매부인 고근홍 상무는 도청 앞 광장을 내다보고 있었다. 고상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뿌연 담배연기가 상무 실 안을 휘돌았다.
  날씨가 어두컴컴했다. 구름이 도청 건물의 국기 봉 위에 걸쳐져 있었다. 전일빌딩과 YMCA건물과 도청건물이 만들고 있는 삼각지 한복판의 광장 가운데에는 동그란 방죽 같은 분수대가 있었다 그 분수대에서는 물줄기들인 줄기차게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그 분수대를 자동차들이 휘돌아 달리고들 있었다. 길 한줄기는 학동 쪽으로 달려가고, 다른 한줄기는 노동청 쪽으로 달려가고, 또 다른 한줄기는 금남로 쪽으로 달려갔다.  차들은 요란스러운 엔진소리를 내고, 클랙슨소리들을 냈다.  분수대 가장자리 시울에는 울긋불긋한 펜지 꽃 화분들이 얹히어 있었다.
  날씨가 더욱 어두컴컴해지고, 무등산과 화순 쪽 하늘이 번해지는 듯하더니 굵은 빗방울들이 광장 한복판으로 창대처럼 내리쳤다. 광장 쪽으로 두른 유리창에 빗줄기들인 유리막대처럼 그어졌다. 빗줄기 쏟아지는 아스팔트와 자동차들의 유리창과 지붕에서 하얀 비안개가 일어났다 고층 건물과 가옥들의 지붕들이 번들번들 비에 젖었다. 아스팔트길에는 물이 괴었다. 자동차들이 물을 허옇게 튀기면서 달려들 갔다. 교통순경이 어느 사이엔지 투명한 비옷을 입고 나와 광장의 신호 조종대 옆에 서 있었다.
  그때 고근홍 상부가 턱 끝으로 분수대 한가운데를 가리키면서
  "바로 저기였어. "
  이종남은 자기의 가슴에서 무엇인가간 무너져 앉는 듯한 소리를 들으며 고상무가 가리키는 분수대를 보았다. 그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분수대와 금남로 일대를 향해 총을 갈겨대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그는 차마 사람들을 향해 정조준을 하고 총을 쏠 수가 없었다. 쏘라는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어 그는 눈을 딱 감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했다. 거역하면 항명인 것이었다. 부대장은 시내가 온통 간첩들의 사주를 반은 폭도들이 도청을 접수하려 하고 있으니 격퇴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폭도들을 물리치지 않으면 그들에게 밀려 부대 전체가 몰살을 당하게 된다고 했다.  이 나라 최강의 정예 부대가 오합지졸의 폭도들한테 밀려가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하고 했다. 뒷일은 자기가 책임을 질 테니 쏘라고 했다.
  "그날도 이렇게 창대같은 비가 쏟아졌는데 말이야."
  고상무는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종남은 피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이 총에 맞고 쓰러지고들 있었다. 전쟁이 일어났다. 시가전이었다.  전쟁이므로 그들은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전쟁이 이 도회에서 일어나게 되었을까. 그는 슬펐다. 광주 안에 살고 있는 작은아버지의 얼굴, 사촌 형제들의 얼굴, 결혼식장에서 잠시 본 적이 있는 사촌 매부 고근홍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제발 그들만의 폭도가 되어 있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 어떻게 들어갔는지는 모르는데 말이야, 언뜻 보니까는 여자 한 사람이 저 분수대 시울 위에 올라가 있더란 말이야. 처음에 나는 혹시 헛것을 보지 않았는가 하고 내 눈을 의심했지, 그날이 그러니까 그 사태가 평정된지 며칠 뒤였으니까, 열흘 뒤였는지, 열 이틀 뒤였는지…."
  고상무가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키면서 말을 이었다. 종남은 분수대를 휘돌아 달라고 있는 차량들을 보면서 몸서리를 쳤다.
  "나만 본 것인 아니었어. 이 밑에 사무실에서도 다들 봤다는 구만. 좌우간에 기막히게 재미있는 쇼가 벌어졌어. 그 여자는 우산을 쓰지도 않았어. 폭이 터진 스커트에다가 흰블라우스를 입었는데 말이야, 비에 흠뻑 젖어놓았으니 어쨌겄어?  젖가슴이 울뚝불뚝 다 튀어나왔지. 맨발인데다가 폭이 터진 치마 사이로는 속치마가 보였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빗물이 줄줄 흘렀고...."
  고상무는 잠시 말을 끊고 담배 연기를 거듭 빨아 뿜었다.  붉은 신호등 때문에 학동 쪽으로 바지는 차들이 정체되고 있었다.  노동청 쪽에서 오는 차들은 거침없이 금남로 쪽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고상무는 그 정체된 차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첫눈에 머리가 헷가닥 돌아버린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처음에는 여자가 분수대 시울로 올라가더니 치맛자락을 걷어서 두 무릎 차이에 끼우고는 쪼그려 앉더라고, 그리고는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가 얼굴을 씻더니 아주 시울에 엉덩이를 붙인 채 물 속에 발을 담그고 걸터앉더란 말이야. 허연 다리를 물 속에 담그고 씻기도 하고,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가 화분에 끼얹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울에 엉덩이를 붙이고 뒤로 돌아앉더니 한 다리를 다른 한쪽 다리 위에 고고 앉아 한참동안 노동청 쪽을 보고 있더라. 또, 상무관 쪽을 오랫동안 보고 있기도 하고, 도청 정문 쪽을 보고 있기도 하더라.  그러다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우는 거야. 그때 교통순경이 그 여자를 잡으러 쫓아갔어. 울고 있던 여자가 순경을 흘긋 돌아보더니 피해 달아났지. 순경은 쫒고, 여자는 달아나고‥‥ 둘은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같이 분수대를 빙글빙글 돈단 말이야. 굿이 났지. 주번의 모든 건들 유리창에서는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었고, 우산을 받쳐 쓴 채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을 멈춘 채 그 굿을 보았지. 그런데 여자가 더 빨리 뛰겠어? 순경이 더 빨리 뛰겠어? 여자가 금방 잡힐 듯했지, 순경이 손을 뻗어 여자의 뒷덜미를 잡으려는 순간. 여자는 몸을 팩 돌려서 질주하는 자동차들 속으로 뛰어들어갔어. 달리던 자동차들이 끼익  끼익 브레키들을 밟고 급 정차를 했지, 그러느라고 서로 이중 삼중 충돌들을 했단 말이야. 한데 용케도 여자는 차에 치지를 않고 인도로 도망을 쳤어. 그러면서 그  여자가 뭐라고 소리를 질러댄 줄 알아? [공수부대다! 공수부대다!]... 좌우간 그 여자는 다른 순경의 손에 붙잡혀서 정신병원으로 실려 갔지 ."
  말을 마치 고 담배 연기를 한동안 빨아대던 고상무가  "이 도회지 안에 그렇게 헷가닥 해버린 여자들 무지무지하게 많다. 남자들도 도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헤아릴 수없이 많고‥‥ 시내 정신병원이 대만원이란다. 그 일이 일어난 뒤로, 이 도회지 사람들 겉은 멀쩡한 것 같지야?  그렇지만 속은 다 흐물흐물 흔들려 있다. 연장으로 무얼 만들다가 다친 손가락 끝에 생긴 피멍 같은 것이 수 천 개씩 들어 있다."
  분수대에서 쇼를 벌인 그 여자가 자기의 아내 순애인지도 모른다고 종남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순애는 결국 자기로 인하며 정신이 분열되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그때 광주 안에 얼룩 무늬 옷을 입고 나타났고, 그날 광장을 향해 총알을 날렸고, 방망이를 휘둘러대던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매를 선 사촌 누님이나 취직자리를 알선한 매부인 고근흥 상무까지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공수부대에 몸을 담고 있기는 했지만,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부대는 그 무렵 부산에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서울에 살고 있는지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동생들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는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를 한 다음 고근흥 상무 밑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서야 그는 자기를 비롯한 수많은 군인들이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했다는 것들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깨달음마저도 발설을 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그때 그렇게 그 도회에 투입되어 총칼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참회하는 투로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자기는 사람들한테 밟혀 죽게 될 것 같았다. 그 비밀은 응어리가 되어 그를 자나깨나 아프게 고문을 하곤 하였다.
  그가 정신질환을 가진 아내 순애를 버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아내가 장차 그 병을 여의든지 여의지를 못하든지. 자기는 그 아내를 자기의 운명처럼 안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자기가 지은 죄를 몇 백분지 일 만큼이라도 삭감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종남은 몸을 모로 뒤치면서 안간힘을 쌨다. 내일은 아내를 한 정신신경과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자기도 의사와 상담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의사에게 순애와 일생을 같이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도 들어보아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운동된 안에는 모종의 비밀결사가 이루어져서 당시 총질하고 칼질을 했던 사람들의 신원을 모두 파악하여 하나씩 조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싶었다. 청문회의 증언대에 가간 사람들이 한사코 발뺌을 하는 까닭을 알 수 있을 듯싶었다. 만일 "네, 제가 그때 그렇게 시키는 대로 총질하고 칼질을 했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는 누구의 발에 밟혀 죽게 될지 모르게 될 것만 같았다.
  얼마 전부터 그는 직장이 싫어졌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주시하는 것만 같았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시시덕거리는 것을 보면 꼭 자기를 비웃는 듯싶기만 했다. 다들 그때 그가 얼룩 무의 옷을 입고 총질 칼질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촌 누님도 만나기 싫고, 매부 고근홍을 대하기도 끔찍스러워지곤 했다. 아내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싶었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 아무리 타일러도 그의 가슴은 늘 뛰고,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곤 했다.
  내일은 병원엘 가보아야겠다. 의사한테 다 털어놓자. 아내와 함께 가자. 말일에, 내가 그때 그 얼룩 무의 옷을 입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아내가 나를 더 지겨워하고 멀리하려 할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함께 가서 다 털어놓자.

2

  대보름을 이미 앞둔 달은 말 잔등처럼 뻗은 검은 산마루 뒤로 떨어졌다. 서북쪽으로 달려가는 구름장들 주변에 은색 잔광이 남아 있었다. 그 산마루는 옆집의 2층 지붕 모서리 저쪽에 있었다. 순애는 마당한가운데 서서 은회색의 잔광을 보고 있었다.
  남편이 남편 같지 않았다. 그는 무슨 비밀인가를 가지고 있었다. 제발 남편 쪽에서 이혼을 하자고 나서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은 능구렁이 같았다. 순애가 하자는 대로했다.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도 좋아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는 나를 끝까지 버리려고 하지를 않는단 말인가. 내가 어디 정신질환만 가지고 있는 여자인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든지 내 애인이라고 떳떳하게 내놓을 만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 사람은 금남학원 골목에 있는 만두집의 주방 조수였다. 주방이 바쁘면 주방 일을 털고, 홀이 바쁘면 홀의 일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주방장이나 카운터를 보는 주인 아주머니가 '이군'이라고 불렀다. 계집아이같이 생긴 눈일 도래의 아이였다. 얼굴이 하얀고, 머리칼들이 부수수한데다가 덧니가 나고, 속눈썹이 길고 쌍꺼풀이었다. 언제 보아도 이 군은 그 덧니를 내놓고 웃곤 했다.
  순애는 그때 금남학원에서 재수를 하고 있었다. 수학과 제2외국어 때문에 순애는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렇다고 국어나 영어 같은 것에는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타고나기를 둔재로 타고났음에 틀림없었다. 기어이 대학엘 가야만 하는 것인가. 책을 들여다보면 원시림처럼 칙칙하고 절벽처럼 답답한 막연했다. 진학을 하라고 강요하는 사회와 어머니가 원망스러워지곤 했다. 다 때려 치 우고 어디론가 훌쩍 달아나고 싶었다.  공장살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어머니는 순애가 사범대학엘 가서 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교사가 되면 무얼 할 것인가.
  순애는 수학시간과 영어시간을 늘 빼먹곤 했다. 불어시간도 빼먹었다.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디스코도 추러 다녔다. 술도 마셨다. 그러가 출출해지면 만두를 먹으러 들어가곤 했다.  만두를 먹으면서 이 군의 웃음을 대하면 부끄러워졌다.  이 군은 순애를 묘하게 위해주곤 했다. 5백원 어치를 시키면 주인 아주머니 몰래 천 원 어치쯤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 그 일을 당했을 때 순애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일이 몇 먼 거듭되었을 대, 이 군과 어디론가 훌쩍 도망을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만두집이 문을 닫고 쉬는 날 이 군과 함께 송정리 쪽으로 버스를 하고 나갔다. 순애 쪽에서 놀러 가자고 먼저 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마 이 군하고 연애를 한다든지 어쩐다든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이 군쪽에서 베풀어준 고마움에 대하 갚음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아니, 상대도 되지 않은 남자와 사귐으로써 그녀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었다.

  마른 망초숲 무성한 강둑을 거닐면서 순애는 이군에게 많은 것을 묻었다. 고향이 어디인가. 어떻게 그 훤칠한 키와 예쁘장한 얼굴과 밝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가 만두가게의 조수노릇을 한고 있는가. 부모들은 어디서 무얼 하는가 그녀의 물음에 이 군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코를 찡긋거리면서 이렇게 맡을 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저 먼데 섬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어.  나는 바다가 싫어서 도망을 쳤어.  중학교만 겨우 다녔지."
  "아니 왜 바다 가 싫어? 이 군 나하고 그 섬으로 들어가서 살꺼나?"
  순애가 이 군의 앞을 막아서면서 말했다.  이 군은 순애의 얼굴을 슬픈 눈으로 보다가 먼 하늘로 눈길을 던졌다.  순애를 피해 걸어갔다.  순애는 이 군을 꼬여서 그의 고향엘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이 군과 마주 앉은 채 그 고향 섬이 어디인지 꼬치꼬치 캐어물었다. 
  "내가 거기서 도망을 치려고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알아? 밤에 배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붙들리고 또 도망을 치다가 붙들리고 그랬어.  아이구 말도 말아.  그 섬이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한 섬 인줄 알아?  사방 어디를 보아도 시퍼런 바다 뿐야.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밀려오는 것은 파도뿐이고‥‥ 거기서 나오자마자 당장 죽더라도 육지에 발이나 한 번 디뎌보고 죽자 하고 몇 날 며칠을 굶어가면서 배를 저어서 도망을 쳤다고."
  이 군은 순애에게 등을 두르고 앉은 채 강구비를 보면서 말했다. 한데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다가 이렇게 말을 했다.
  "아까 나 거짓말했다. 사실은 내 성이 정말로 이가인지 박가인지도 모른다 내 성은 우리 원장 선생님 성이야. 박애원의 원장선생님‥‥ 물론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
  그 이후로 순애는 이 군을 하루도 빠짐 없이 만나곤 했다.

속으로 그녀는 그와 결혼을 하리라고 생각을 했다. 내의를 사다가 주기도 하고 점퍼를 사주기도 했다 구두도 사주고 바지도 사주고 팬티도 사주었다. 한 달에 한번씩 있는 만두집 쉬는 날을 기다렸다가 함께 지산 유원지의 의자 차를 타러 가기도 하고, 화엄사나 송광사엘 가기도 했다. 그녀는 대학을 포기했다. 이 군이 만두 기술자가 되기를 기다리다가 이 군과 함께 서울로 도망가리라 했다. 만두집을 차릴 수 있는 돈을 어머니한테서 훔쳐내자고 생각했다. 아니, 서울의 한 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등록금을 타 가지고 가서 그 돈으로 가게를 차리자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도회 안에 얼룩 무의 옷을 입은 군인들이 들어온 것이 었다.
  그 무렵에 이 군은 만두기술자가 다 되어 있었다.  그녀가 시위군중들의 물결을 뚫고 만두집이 오면 이 군을 그때마다 보이지 않곤 했다. 도청 앞에서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던 날 밤에, 만두집 주방장은 집으로 돌아가다가 죽었다. 이튿날부터 주인 아주머니는 이 군을 가게 문밖으로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순애는 이 군이 가끔 도청 쪽엘 갔다가 오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비닐 자루에 뺑뺑하게 담은 만두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것을 시민 군한테 전해주곤 한 것이었다.  거지한테 만두 하나 건네주기를 아까워한다던 주인여자의 마음이 어찌하여 그렇게 변했을까.
  그 이 군이 시민 군 최후의 날 밤에 도청 안에 남아 있다가 죽었다. 아니 정말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도 없었다. 시체를 찾으려고 뒤질 만큼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살아 있다면 만두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인데 그는 그러 지를 알았다.
  "앞길이 만리 같은 년이 그래 그런 임자도 없는 귀신만 모시고 살 것이냐? 싹 잊어라. 악몽을 꾸고 났느니라 하고 색 남자 만나서 새 세상 살어"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순애는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 군은 어디에서인가 눈을 시퍼렇게 뜬 친 살아 있을 것 같았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문득 그 만두집에 나타날 것 같았다. 아니, 그녀의 집으로 찾아올 것 같았다.
  황금빛으로 샛노란 달의 얼굴에 눈 코 귀 입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 군의 얼굴 같았다. 그 얼굴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든 싶었다. 남편 종남은 그녀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남편이 얼룩 무의 옷을 입고 이 도회 안엘 들어온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고, 바로 그 이 군을 죽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싶었다. 남편한테서는 찬바람이 날아왔다.
  밤이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누워 있으면 남편의 모습이 새까맣게 부풀어난 헛것으로 보였다. 목을 조여 죽일 것 같고, 그를 번쩍 들어서 문밖으로 내던져버릴 것 같았다. 칼로 심장을 찔러 죽일 것 같았다.
  남편이 그럴 리 있느냐고, 신경이 쇠약해진 까닭에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래도 불안은 해소되지를 않았다.
  소형차 달리는 소리들이 간헐적으로 들려오곤 했다. 아득한 곳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럴 뿐으로 시가지의 밤은 평온했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평온한 밤이 오히려 불안스러웠다. 얼룩 무의 옷의 남자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골목길을 걸어오고 있을 것 같았다. 그녀를 잡으러 올 것 같았다.  순애는 쫓기 듯이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그녀는 남편과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 종남을 흔들어 깨웠다. 종남은 선잠을 깬 시늉을 했다. 눈을 비비고선 하품을 했다. 그녀는 그에게 다짜고짜로
  "우리 둘 사이에는 틀림없이 살이 끼어 있을 거요. 둘 가운데서 어느 하나가 치지 않았을 때 미리 갈라섭시다."
  하고 말했다. 그녀 쪽에서 그와 같은 말을 한번 두 번 하여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종남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픽하고 웃었다.
  "혼자서 또 뭔 생각을 했는데 그래?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얼른 자기나 해."
  종남은 순애를 끌어안았다. 그녀를 이불 속에 파묻었다. 순애를 잠들게 하고 그도 함께 자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순애의 잠옷자락을 헤쳤다. 부드러운 속살들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서로의 살을 비볐다. 함께 달아오르고 얼마 동안의 환 혹 속에 빠져 들어가고, 그런 다음 지쳐 늘어지면서 오는 잠을 받아들였다.
  그것도 점차 큰 효과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 행위를 하고 난 순애가 잠을 자는 듯싶더니 그의 품을 빠져나갔다.
  "아이고 답답해서 미치겠네. 우리 갈라서자고 하니까 당신 참말로 어째서 내 말을 안 듣소?"
  순애는 이렇게 신경질적인 소리를 지르며 발딱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나갔다. 목욕탕으로조 가서 물을 몇 바가지 뒤집어쓰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는 자리에 드러누운 채 현관문 밖으로 귀를 내보냈다.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여편네가 이제야말로 정말로 발작을 일으킨 모양이라고 종남은 생각했다. 아내를 뒤쫓아 나갔다. 골목길에는 가로등의 형광불빛 흘러 들어와 있었다. 그 불빛 속으로 들어서면 는 아내의 모습을 찾았다. 아내는 한길 쪽으로 총총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아내의 뒤를 밟았다. 아내는 구멍가게를 지나서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에는 어둠이 진을 치고있었다. 아내의 걸음은 빨랐다. 그는 뛰었다. 한길간에 나와서야 그는 아내의 팔을 훔쳐 갑을 수 있었다. 그때 아내는 미쳐버린 개처럼 그에게 덤벼들어 그의 어깨를 물어뜯었다. 놀란 그가 그녀를 밀어붙였을 때, 그녀는 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통곡이었다.  어흑 어흑:.· 한길에는 작은 차들이 가끔씩 질주하곤 했다. 마침내 그녀는 그를 놓고 길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울어댔다.

3


  이튿날 종남은 아내 순애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정신과로 데리고 갔다.
  " 내가 어째서 정신과엘 가요? 내가 미쳤단 말이요?  갈라서려면 좋게 갈라서지 왜 생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갈라서려고 그래?"
  순애는 이렇게 악다구니를 쓰며 뻗댔다.  종남은 순애에게 통사정을 하였다.
  "서양 사람들은 불면증만 조금 있어도 정신과 의사하고 상담을 한대요."
  그가 길순남 신경정신과 병원의 접수창구 앞에서 순애의 진찰권을 끊고 잇는 사이에 순애는 창가의 긴 의지에 앉아서 맞은편 벽에 걸린 달력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토라져 있었다.
  그는 접수창구를 등진 채 망설였다.  나도 접수를 하고 의사하고 상담을 한 번 해볼까.  접수창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데 흰 밍크 목도리를 한 중년 부인이 딸인 듯한 붉은 점퍼 차림의 앳된 여자와 함께 들어섰다.  그 여자는 곧바로 접수창구 앞으로 가서 의료보험 카드를 들이밀었다.  그 여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순애에게로 갔다.  순애의 나온 입은 들어갈 줄을 몰랐다.  남편에게 이끌려 정신병원엘 왔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해 죽겠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내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아내가 보는 앞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청하고 싶지를 않았다. 이 병원 의사를 찾아오더라도 아내 모르게 혼자서 오리라고 생각했다.
  "충격을 받아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병은 반드시 그 충격만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충격은 직접적인 원인일 뿐입니다.  좌우간 한 번 두고 봅시다. "
  중년 의사는 상담을 마친 순애를 먼저 내보내고 나서 보호자인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종남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기만 했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이 도회 안에는 비슷한 환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얼마동안 약물치료하고 병행해서 이야기를 좀 하면 좋아질 겁니다.  그 동안 옆에서 간병을 잘해주십시오. 한사코 맑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고 가벼운 여행도 함께 하시고, 조용히 사랑해주시고‥‥환자가 고요한 평화를 맛보게 해보십시오. 가능하면 신앙을 가지시도록 해보시고..."
  이때 종남은 떨어뜨리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요즘 자기의 가슴도 실하게 울렁거리고, 답답하고, 불안해지곤 한다는 것을 호소하려고 했다. 자기도 한께 치료를 해달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의사가 재빨리 "됐습니다. 그 약을 다 먹여보고 사흘 뒤에 오십시오."
  하고 말했다. 종남은 그 말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아내를 버스에 태워 집으로 보내고 회사를 향해 가면서 그는 후회했다.  나도 떳떳하게 접수를 하고 그 의사와 상담을 할 것을 그랬다.
  사흘 뒤에는 의사가 종남을 들어오지 못하게 gkh 순애와 둘이서만 한 삼십 분쯤 이야기를 했다.  순애를 내보내고 그를 들어오라고 한 다음에 의사는
  "부인께서는 남편에 대한 공포감이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종남은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동시에 가슴속에서 부챗살 같은 뜨거운 김이 온몸으로 퍼졌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그것은 남자들에 대한 공포감이고, 그 고리는 얼룩 무의 옷하고 연결이 됩니다. 또 부인께서는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에 대한 공포감이 잠재되어 있어요. 다섯살 되던 해에 부인께서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일이 있어요. 친정 아버지가 던져버린 겁니다.  친정 어머니하고 싸운 끝에, 안고 있던 다섯 살 난 댁의 부인의 뺨을 호되게 때렸는데, 그 순간 댁의 부인은 오줌을 싸버렸습니다. 친정 아버지는 댁의 부인이 오줌을 싼다고 바지와 치마를 벗기고 엉덩이를 철썩 갈기고 댁의 부인을 번쩍 들어 던져버린 모양이어요.  그리고 그 아버지는 술에 취해 오기만 하면 온 집안 식구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살림살이를 두들겨 부시곤 한 모양이죠.  때문에 댁의 부인은 친정 어머니의 등에 업힌 채 이웃집으로 도망쳐가서 숨어 있곤 했답니다.  한 번은 혼자서 아버지를 피해 도망을 가서 이웃집 변소 옆의 두엄더미에 얼굴을 처박은 채 몸을 덜고 있다가 잠이 들기도 했더라는군요"
  "그것입니다. "
  하고 말했다 그가 의사의 번들거리는 안경알을 건너다보았다.  안경알이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반짝 되쏘았다.  그 빛이 그의 머리 속을 아프게 부시고 있었단.
  "잠재되어 있던 그 공포가 얼룩무늬 옷에 대한 공포감하고 연결인 되었습니다. 그것이 또 남자에 대한 공포감으로 이어졌어요. 남편도 한 사람의 남자입니다. "
  종남은 가슴에 경련이 일고 있었다. 사람들을 항해 총을 쏘아대던 생각이 전신을 뒤흔들고 있었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댁의 부인한테는 실금이 있습니다. 오줌을 참지 못하는 심리적인 병이지요. 때문에 부인의 속옷은 늘 젖어 있는 것이지요. 그 젖이 있다는 것이 부인을 두렵고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인은 밤마다 다섯 살 짜리 아기가 되는 것이고, 거대한 남자가 속옷이 젖어 있는 자기를 들어 던져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에 젖어 있는 겁니다. 아니, 언제 어느 때든지 부인께서는 오줌을 옷에 저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다섯 살 짜리 어린아이가 되어 있는 겁니다. 밤에 잠을 못 자는 것, 무엇이든지 손댄 다음에 손을 씻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결벽증, 집안을 쓸고 닦고 먼지를 털고, 살림 도구들을 제 자리에 반듯반듯하게 놓고 정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도 다 그것 전문입니다. "
  의사는 말을 멈추고 쓴 입맛을 다셨다. 그 의사는 남편인 朶멕게 해줄 수 없는 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 순애가 고등학생이었을 적에 해수욕장엘 갔다가 두 불량배한테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불량배들은 재크나이프로 그녀의 해수욕 복을 찢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기만 하면 칼로 유방을 도려내 버리겠다고 하면서 윤간을 했다. 의사는 그 부분을 쏙 빼놓고 말을 했다.
  "그러한 잠재적인 것들이 결국 얼룩 무의 옷에 대한 공포 때문에 터진 겁니다. 이제 부인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그러한 부인의 모든 것을 남편이 더러워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부인이 스스로 더럽다고 여기고 있는 그 중 요한 깊은 부들을 남편인 선생께서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도록 한번 사랑해보십시오. 모든 병은 성적인 데서부터 발원합니다 "
  종남은 가슴속에 화롯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의사가 그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얼룩 무의 옷을 입고 도회지에 나타나서 총을 쏘아댄 사실도 훤히 알고 있는 듯싶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밤에 잠꼬대를 했을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늘 악몽을 꾸곤 했다. 의사는 아내의 고백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지에 힘이 쭉 빠졌다.  의사는 마치 "네놈들이 저지른 일이니까 네놈들이 책임을 지고 치료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하는 뜻의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종남은 그런 정각들 곯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아내 쪽에서 내 과거를 모두 알고 있을 리 없다. 의사도 그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생각은 그러면서도 그는 눈치를 살폈다. 안경알이 되쏘고 있는 빛살에 눈이 아팠다 그는 도망을 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요즘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정신병 증 에 대한 이야기는 빼보지도 못했다.
  아내를 집으로 들여보내 고 회사로 가면서 그는 이 도회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두고 혼자서 도망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살아갈 것인가. 병든 아내를 어떻게 버리고 간다는 말인가. 아내의 병은 네가 치유해 주어야한다.  나로 말미암아 생긴 법이다. 도망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다른 도회나 다른 어느 시골 속에 처박힌다고 할지라도 그 죄책감은 어떻게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고통은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이다. 이 형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은 고백을 하는 것뿐이다. 아내에게도 털어놓고, 사촌매부, 사촌 누님, 회사 동료들에게도 털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를 미친 듯이 휘돌아 다니면서 "나는 그면 얼룩무늬 옷을 입고 이 도회 한복판에 들어와서 총질을 하고 칼질을 한 놈이요. 나는 미친개보다 못한 놈이요. 나를 쳐죽여 주시요. 나는 죄인이요. 쏘라는 대로 쏘고 찌르라는 대로 찔렀소. 간첩들의 충동질을 받은 폭도들이라고 하길래 정말로 그런 줄만 알고, 시키는 대로했소."하고 소리를 지르고 다녀야만 한다. 시민들이 주먹으로 치기나 발로 차면 맞고 밟혀야 한다‥‥ 그러한 그의 생각들은 스프링처럼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가까워지면서 발이 무거워졌다. 그 가 그렇게 고백을 하기만 하면 그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맞아죽고 밟혀 죽는 것은 개죽음이다. 꼭 남들은 다 살이 피둥 피둥 찌어 살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서만 희생양이 되어야 한단 말이냐. 나도 증언대에 나온 사람들같이 데면데면해지자. 당시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을 하자. 작은 희생으로 큰 희생을 막기 위하여 그렇게 총질을 끌 것이라고 생각을 하자. 나도 그 사람들같이 대담해지자. 외박을 하고 들어왔더라도 절대로 다른 여자하고 함께 잠자리를 함께 하지는 않았다고 시치미를 떼어야 한다 하지 않던가. 오입을 하는 현장을 아내에게 들켰더라도, 그대로 성행위만은 하지 않았다고 발뺌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남편이 계속 우기다가 보면, 아내 쪽에서 처음에는 그렇게 믿을 수 없다고 펄펄 뛰다가 점차 포기를 하게 되고, 남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남편이 아내에게 그 어떤 여자와 이러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정직하게 털어놓으면, 그것은 아내의 가슴속에 더 큰 상처를 만들게 된다던 것이다.  그 남편은 평생 동안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치지 못하게 된다던 것이다.  아내는 그것을 일미로 이혼을 청구하고 나설지도 모른다던 것이다. 그러니까 남편은 자기들 부부사이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서 끝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던 것이다. 세월이 약이라던 것이다. 세월이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은 잊혀지게 된다던 것이다.
  그러한 원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인 정부 당국자들은 자기 쪽의 증인들로 하여금 끝까지 위증을 하게 하는 것일 것이다. 총을 쏘라고 하지 않았다. 칼도 쓰지 않았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작은 것을 회생시킨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렇게 했다. 우리의 충정을 믿어 달라. 보상은 넉넉하게 해줄 터이니까, 우리 이 정도로 덮어두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나 걱정을 하기로 하자.
  대범해지자, 죄짓고도 정치 잘해 먹는 사랑들같이 대범하고 데면데면해지자,  하고 그는 자기를 달랬다.
  그러나 그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소외감에 시달렸다. 그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서로를 건너다보며 웃고 떠들던 직원들이 웃음을 그치고 말을 멈추었다. 그들은 그의 홍을 보고 있었던 듯싶었다.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쓸데없는 농담을 하다가 계장인 내가 들어오니까 그쳤겠지. 그는 자기를 타일렀다. 그래도 그의 부하 직원들이 무섭고 두려워지기만 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스러워졌다. 얼굴이 화끈 뜨거워지곤 했다.
  밤이면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엎치락뒤치락 잠을 못 이루곤 했다.
  이튿날부터 그는 아내 모르게 신경안정제를 사다가 복용을 하곤 했다. 그래도 숙면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는 늘 잠이 부족했다. 아침이던 얼굴 살결이 부석부석 하게 부어 있곤 했다.
  점차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중추신경을 움켜쥐고 있곤 했다.  어느 날 문득 발작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외치고 나갈지도 모르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악을 써댈지도 모르고, 사무실에서 서류를 만지다가 몸을 꼬면서 외쳐댈지도 모르고,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그럴지도 모른다 싶었다.
  "오병우씨, 나하고 오늘 저녁에 술 한 잔 합시다. "
  그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오병우한테 이렇게 말했다. 한데 오병우는 배시시 웃으며
  "오늘 저 약속이 있는데 어쩔까요?"
  하고 말했다.
  이후로 그는 아무한테도 함께 술마시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모두 그를 따돌리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혼자서 술을 마셨다. 혼자서 마시는 술은 빨리 취했다. 말을 하지 않은 채 술잔을 들여다보고만 있다가 거듭 마셔 버리기 때문이었다.
  "죽어도 내가 이 도회에 얼룩 무늬 옷 입고 들어온 그 일에 대해서는 발설하지 않아야만 한다. 내가 왜 발설을 해? 나 죽으려고 발설을 해? "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곤 했다.
  "우리 갈라서요. 나 미쳤어요. 더러운 여자여요. "
아내는 자기의 몸을 미친 듯이 탐하곤 하는 그에게 몸을 맡긴 채 이렇게 지껄였다. 마침내는 해수욕장엘 가서 윤간 당한 일까지도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의 아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기가 저지른 죄악하고 어쩌면 상쇄를 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미치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어? 더럽지 않은 연놈들이 어디 있어?"
  그는 안간힘을 쓰며 이렇게 말을 하고 의사가 가르쳐 준대로 아내의 몸을 속속들이 사랑했다. 성행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서 마당을 헤매거나 대문 밖으로 나가서 어둠에 잠긴 거리를 싸다니는 아내의 뒤를 따라다니다 가 그 아내를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쓰팔것, 어차피 우리는 함에 미칠 수밖에 없는 연놈들이다. 빌어먹을 것, 오늘 그만 미치고, 두었다가 내일 또 미치기로 하자."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잠을 청하는 아내를 끌어안은 채 그는 생각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그의 눈앞에 시는 어둠이 술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둠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이 어둠을 누가 만들고 있는가. 천장의 어둠을 쳐다보고 있던 그는 아내의 목 속에다 얼굴을 묻었다. 천장의 어둠이 시꺼먼 괴물로 변했다. 그 괴물이 그를 향해 덤벼 들고 있었다. 목을 조르려 하고 있었다. 그는
  "여보 !"
  하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들 부부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을 힘주어 감았다. 멀지 않은 길에서 작은 차들이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