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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5-30

[월간지 관련기사] 광주민중항쟁 주제 단편시리즈<2>/이삼교의 '그대 고운 시간'(월간예향, 1989. 4)

본문

이삼교의 '그대 고운 시간'



  경고한다. 경고한다. 폭도들은 무기를 버리고 즉시 자수하라 자수하라. 그 소리는 흡사 보꾹을 뚫고 쏟아져 내리는 총탄 한가지였다. 날선 비수가 되어 하늘로부터 내리 꽂히는가 싶더니 이내 헬리콥터의 굉음이 동트는 아침을 난도질했다. 덜 깬 잠 때문에 자꾸 몸이 비틀거렸다. 바지춤을 부여잡은 채 마당 가운데로 나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헬리콥터는 보이지 않았다. 그새 시내 중심가에 이른 모양이었다. 반복되는 경고방송만 멀리서 들렸다. 경고한다. 경고한다. 폭도들은 무기를 버리고 즉시 자수하라. 자수하라. 벌써 십 년을 헤아리는, 더 정확히 말하여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막다른 절벽 까마득한 단애에 선 듯 암담하긴 마찬가지다.
  "돌아댕기지 마라. 지금 세상이 어쩐 세상이라고 겁도 없이 나가기는 어딜 나가겠다는 거여."
  금방 머리통을 쥐어박힐 거라고 몸을 움츠렸는데, 어머니의 주먹은 반쯤 올라오다가 스스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왜 애잔한 창석이를 보고 그러세요. 저도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인데."
  경애 누나가 가로막고 나섰다.
  "늬는 뭣이 잘 났다고 나서는 거여. 쥐뎅이를 콱‥‥‥"
  이번에는 어머니의 불끈 쥔 주먹이 누나 머리통에 닿는가 싶었는데 아슬아슬하게 머리카락만 건드리고 그쳤다.
  어머니의 주먹은 언제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우리는 꿈쩍도 않고 입을 닫아버렸다. 그만한 정도의 닥달로는 안심이 안 되었던지 어머니는 또 단단히 오감을 박아 한 마디 던져 놓고는 청하니 밖으로 나갔다.
  "집안에서 한 발짝만 밖으로 나갔다가는 다리토막을 작신 분질러 놓을테니께. 알겠냐."
  누나와 나는 멀뚱멀뚱 시선을 마주쳤다. 누나의 무르춤한 시선이 목구멍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만 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쿡 하고 누나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쿡쿡쿡,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넌 뭐가 우스워서 그러니?"
  누나가 눈꼬리를 감추었다. 정말이지 우리가 이렇게 웃고 있을 땐가. 웃음을 거두고 나니 마음이 우울했다.  형 탓이었다. 형은 어제 밤에도 집에 들어오진 않았다. 대학생이면 어른이 된 것인데 늦다거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행여라도 오빠가 들어오면 소리소리 지르지 말라고 말했다고 해서, 누나는 어제 어머니에게 된통으로 얻어들었고 꿀밤을 거푸 너댓 대나 맞았다. 그래도 누나는 꾹 참고 울지 않았다. 나도 스무 살이 되면 무쇠 같은 어머니의 꿀밤을 맞고도 입만 꾹 다물 수 있을까. 하기야 그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눈 가장자리에 꼿꼿하게 힘을 주고 이를 앙당문 채 침을 꿀꺽 삼키면 된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머리통이 왕벌떼 달려드는 꼴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놈의 새끼가 뻣뻣하니 버티고 앉아서 누구 약을 올리는 거여 응. 누구 약들 올려!  연타로 꿀밤을 내리 꽂는 것인데, 오기라는 것이 있어서 버티기는 버티지만 남북을 가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얼얼해진다는 것을 체험하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나는 꼭 한 번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체험을 통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코 죽지는 않는다는 것과 함부로 시도할 일이 아니라는 것 두 가지였다.
  "창석아, 네가 나가면 정말 오빠를 찾을 수 있겠니?"
  정색을 한 누나의 목소리는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다.
  "거기 가면 찾을 수 있을 거야."
  웬지 나도 자신 있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거기가 어딘데?"
  누나의 맑디맑은 눈동자가 내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형이 다니는 대학교 안에 있는 당구장이야. 형은 가끔 거기에 들른다고 그랬어."
  얼마 전이었다. 나는 형과 함께 2층에 있는 그 당구장에 갔던 일이 있었다. 토요일이었던가, 아니면 일요일 오후였는지 모르겠다. 그날 오전에 비가 왔었는데 형은 들고 간 우산을 깜박 잊고 거기 두고 왔었다 우산을 잊고 온 것을 형이 기억해낸 것은 저녁때였다. 무슨 일로 시내 중심가에 갈 일이 있다며 나서다 말고 나를 불렀다. 나가는 길에 함께 가서 우산을 찾아 줄테니까 나더러는 그걸 가지고 집으로 오고 형은 곧장 약속한 곳에 가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형을 따라 나섰다. 형이 우산을 가지고 나오는 동안 나는 길에서 2층으로 올라 가게 된 층계 입구에 서 있었는데, 올려다보니 2층 유리창에 붉은 글씨로 '당구장'이라고 써 있었다. 가져온 우산을 받아들며 나는 형에게 여기가 형이 잘 다니는 당구장이냐고 물었다. 형은 가끔 온다며, 한눈 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선 지 길 건너편 승강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도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나도 뒤를 돌아보아 가며 걸었다. 형은 시내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 내게서 눈들 때지 않았다. 형이 준 백원짜리 동전 세 개 때문에 기분이 썩 좋았었다. 갈 때는 헝이 있어서 사내버스를 탔지만 올 때는 걷기로 되어 있었다. 가까운 데라면 몰라도 혼자서 버스를 타는 일은 내게 아직 걷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질 않아서 였다. 대충 반시간쯤 걸어 집에 도착해보니 동전 세 개는 내 손아귀에서 완전히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참, 애도‥‥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러니. 그래 가지고 오빠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그 야단이지."  어처구니 없다는 듯 누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이야. 거기가면 형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거야."
  그러나 누나는 내 말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우리 집은 시내 중심가와 사뭇 떨어진 주공아파트단지에서도 더 뒤쪽 언덕배기 밑에 있었으므로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었으나, 시내에서는 무엇인가 많이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하는 낌새만은 나도 눈치채고 있었다. 학교가 쉬고, 누나가 출근을 멈추고, 어머니도 공사장나가는 일을 중단했었다. 모두들 그렇게 되니까 시간은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샅아 있는 것은 밤과 낮이 교대되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밤과 낮이 가고 오는 건만 가지고 시간이 간다고 말하기엔 뭣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집안에서 한발짝만 밖으로 나갔다가는 다리토막을 작신 분질러 놓겠다는 어머니의 으름장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죽은 시간과 함께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집이나 넓은가. 시외나 진배없는 변두리 언덕배기 밑에 있는 집이니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그런 오막샅이였다. 어머니나 누나의 말대로라면, 나는 꼼짝없이 방안에 틀어박혀 숨도 제대로 쉬어서는 안 되었다. 왜 자꾸 밖으로만 나도느냐고 하지만 나도 사지가 멀쩡한 터에 숨도 크게 쉬어 보고 소리도 질러 보고, 공도 차보고, 뒹굴기도 해보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가 형을 찿으러 나가겠다는 말이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 나머지 꾸며댄 핑계라고 단정하는 것은 억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회를 준다면 결단코 그런 속뜻이 없음을 하늘을 두고 맹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의 뜻을 무참하게 뭉개버린 것이다. 하기야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데, 어머니의 주먹과 견주어 볼 때 하늘은 법보다 얼마나 먼 거리에 있었던가. 게다가 누나까지 내 말에 코방귀를 날리다니, 속이 있는대로 상했다. 나도 열 한살이다. 4학년이 되었으니까 알 만한 것은 다 안다고 스스로 믿었다. 시내에서 데모가 있다는 것도, 총에 칼을 꽃은 군인들이 쫙 깔려 있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잡혀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여 나도 걱정이었다. 형만 돌아온다면 우리 집은 모두가 아무 탈 없었다 그런데, 형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몰래 집을 빠져나가 당구장엘 가보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림없는 수작이었다. 밖에 나갔다가는 다리토막을 작신 분지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리토막인 결단나는 것까지는 몰라도 건축 공사장을 다니며 다져진 어머니의 주먹이 와 닿을 일을 생각하면 머리통부터 싸안아졌다.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종일토록 들랑거리기만 했었다. 그대로 꼼짝 말고 집안에 처박혀 있거라 잉. 들어왔다가 나갈 때마다 소리쳤다. 그 소리를 열 번도 더 들은 것 같았다. 참으로 우울한 하루였다.
  숨가쁘게 질주하는 자동차 소라와 경적 소지가 구들장을 흔들었다  "전쟁이다, 전쟁. 이것은 전쟁이여."
  해가 떨어진 뒤에도 집을 나갔다 돌아온 어머니는 더운 김을 뿜었나.
  장독대로 쓰이는 변소간 위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시가지쪽에서 검은 연기가 올랐다. 연기에 휩싸여 가끔 불길이 보였다.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가 뒤죽박죽으로 들렸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함성에 섞여 커다란 강철전이 흔들리는 소리를 냈었다. 장님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직접 볼 수는 없는데 소리만 듣는다는 것은 이만저만 궁금한 게 아니었다. 앞이 훤하게 트였거나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모든 것을 확연히 볼 수 있을텐데 그게 아니었다. 높은 건물들에 가려 그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 여간 답답하지 않았다. 어떤때는 따다다 닥 따다다닥, 연속으로 총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총소리가 아니라 저쪽 골목에서 터지는 장난감 딱총 소리 같았다. 내가 커오면서 실제로 총성을 들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는가 싶다. 동네 사람들이 골목 뒤 둔덕에 올라 시가지 쪽을 바라보며.중얼거렸다. 워매, 저것이 뭔 일이다요. 뭔 세상이 이런 세상이 있다요 잉. 밤이 늦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으나 우리는 하나같이 형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렸다. 골목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를 모았고, 개들이 짖는 소리에 숨을 죽였었다. 억세기로 소문난 어머니가 거푸 토해놓는 한숨으로 방안 공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파했다. 우리는 유리 인형처럼 딱딱한 자세로 굳어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밖으로 뛰쳐 나가 어디에 대고 형을 외쳐 불러볼 수도 없고, 아침이 오기만 기다렸다 시간을 죽 치는 것은 잠을 자는 것뿐이었다. 이불 속에 들어가 백을….그게 효력이 있엇던 모양이었다.
  눈을 떠 보니 늦은 아침이었다. 솟구치듯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울림으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말고는 조용했다. 참으로 이상한 아침이었다. 대문쪽 골목을 향해 소리쳤다.
  "누나야. "  대답이 없었다.
  "엄마야. "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꼽을 떼려 대문밖으로 나갔다. 시내로 통하는 길과 연결되는 큰길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방송국이 불타고,신문 제작이 중단되고,자동차들이 불타거나 파손되고, 시민들이 엉망으로 많이 도청앞으로 몰려가고‥‥ 그런 이야기들을 큰 소리로 주고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도청에서 계엄군이 철수했다는 말이었다.
  "도청을 내놓고 물러간 것을 보면 똥줄이 급하기는 되게 급했던갑소 잉 . "
  골목 맨 끝에 사는 경원이 어머니였다. 수다스럽기로 꼽히는 여자인 것이다.
  "앗따, 안 그러면 어쩔 것이요. 광주 시민들을 다 쏴 죽이면 몰라도 안 그라면 그만하고 물러 가야제."
  석구 어머니가 팔짱을 낀 채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었다.
  "암만 다져 봐도 나는 알다가 모를 일이어라우. 아, 세상 사람들이 계엄을 풀자고 하면 확 풀어번지고, 잽혀간 사람들을 석방하자고 하면 싹 석방해번지고, 너는 안 되것으니께 그만 둬라 그러면 좋다 그만 둘란다. 그러고 그만 두고‥‥, 거 뭐시냐, 민주화란 것을 하자고 그러면 당장 민주화합시다 그라면 될 것인디, 뭣 댐시 이렇게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고 아까운 젊은이들 생목숨을 빼앗느냐 이 말이여 "
  "그러네께 말이여라우. 사람이 하늘이라고 예부터 말이 있는디, 세상 사람들이 하자는 일을 어째서 한사코 막을라고만 한지 모르겄어라우.도대체 그런 심뽀가 뭔 심뽀여 하남댁, 어쩌요 내 말이 틀린가라우."
  그렇게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들쪽으로 접근해 가고 있을 때였다.
  "창석아 "
  돌아보니 누나였다.
  "누나, 어디 갔다오는 거야?"
  "어디 가기는‥‥ 오빠를 찾아 봐야 하지 않겠니."
  "찾았어?"
  "못 찾았다. "
  "어딜 가서 찾았는데?"
  나는 형이 가끔 들른다는 당구장엘 다녀온 것이나 아닌가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쪽 약방에 있는 공중전화통에 가서 명수 오빠네 집에 전화했다."
  "명수형한테만 자꾸 전화하면 뭘 해."
  어제도 누나는 명수형에게 전화를 했던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라도 혹시 무슨 소식을 들었는지 몰라서 그런 거야."
  누나의 목소리가 들릴락 말락 낮았다. 그렇기는 해도,솜털이 보송하게 나 있는 귓볼이 붉어 왔는데 그것은 평소 내가 누나와 명수형 사이를 수상쩍게 보아온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창규형과 같은 대학에 다니는 명수형은 가끔 우리집에 놀러 오는 형 친구들 중 하나였다. 언젠가 누나가 쉬는 날이었다. 명수형이 놀러 왔었다. 점심때가 되어 누나가 라면을 끓여 왔는데 쟁반을 받쳐든 손이 잔물결처럼 흔들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쟁반을 들여 놓고 나갈 때는 내리깔았던 시선이 얼핏 명수형과 마주치는 것이었는데 금새 귓볼이 물든 단풍빛이었다. 그 뒤로 나는 그와 비슷한 장면을 한두 번 더 보았었다.내가 보아도 누나는 예뻤다. 상고를 나와서 시네에 있는 대리점 경리사원인 누나를 보던 나는 언제나 마음이 포근하게 가라앉는 걸  느끼곤 했다 대학에 다닌다는 여학생을 많이 보았으나 누나만큼 고운 여학생을 본 적이 없었다. 왜 학교는 돈이 있어야만 갈 수 잇도록 된 것일까? 누나처럼 마음도 얼굴도 고운 여자들을 뽑는다면 대학교는 얼마나 아름다운 꽃밭이 될까. 마을 뒤 둔덕은 온통 연초록이었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은사시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은 하늘로부터 색종이가 흩어져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얼마나 싱그러운 5월 인가.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눈을 돌리고 있지 않았다.나는 누나와 나란히 골목을 들어찼다.
  "밥 먹을래 ?"
  누나가 내게 물었다. 아침 조반때가 지나고 있었다. 아침밥도 아니고 그렇다고 점심이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시간이었다. 누나가 밥을 챙겨왔다. 그리고는 명수형과 전화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부모들 감시가 심해서 문밖 출입을 할 수 없는 명수형은 창규형 뿐만 아니라 바깥 일이 궁금해 죽겠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흘째 형을 보지 못했고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창석아, 같이 오빠 찾으러 가 볼까?"
  한숟갈 떠올리던 밥을 입가에 정지시키고 누나의 얼굴에 시선을 꽂았다. 어머니의 꿀밤과 눈앞이 캄캄한 가운데 오락가락하던 별이 떠올랐다.
  "엄마가 가만두지 않을 거 야."
  "그런다고 이대로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니."
  "그래도‥‥‥"
  "누나가 책 임을 질께 "
  "정말?"
  하지만 나는 누나와 함께 형을 찾아 나서지 못했다. 내가 함께 나선 것은 어머니였었다.
  누나와 내가 형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이 내려질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대문을 들어서며 소리쳤다.
  "창석아, 너 이 에미랑 시내 좀 갔다 오자. 온 시내를 발칵 뒤져서라도 이번에는 내 기어코 창규를 찾아오고 말테니께. 경애 너는 집 잘 보고 있거라. 행여 오빠가 오면 꽉 붙들어 두어야 한다 잉. 알았지야."
  우리는 집을 나섰다.
  왜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데리고 갈 생각을 했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었다. 기필코 형을 찾아야겠다는 굳은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마음이 설레이면서 여간 홀가분한 게 아니었다. 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궁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자리에 직접 갈 수 있는 기회가 함께 주어진다는 것은 얼마든지 내가 바라던 일이었다.
  아파트단지 뒤를 지나 시내로 나가는 큰길로 접어들었다. 빵 빵. 사람들이 타고 있다기보다 엉켜붙어 있는  트럭 한대가 신나게 지나갔다. 어찌나 요란하게 지나가는지 내가 그 차에서 볼 수 있었던 깃은 트럭 몸뚱이에 흰 페인트로 내갈겨 쓴 '시민군'이란 글씨 뿐이었타. 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 속에 형이 있는지 어쩐지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버스가 지나가고, 지프차가 지나가고, 택시가 지나가고, 장갑차까지 보았다. 하지만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연락'이니, '헌혈'이니, '수송'이니 하는 글씨였다. 차에 탄 사람들도 저마다 달랐다. 총을 들고 있는가 하면, 철모만 쓴 사람도 있엇다.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풀어헤친 사람도 있었다. 무어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차에 탄 사람들은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댔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악을 쓰는 것이어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길가에 모였거나 무리지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박수를 보냈다. 차들은 더욱 신이 나서 달려가고 달려왔다.
  "한눈 팔지 말고 바싹 따라와."
  잊을 만하면 어머니가 뒤를 돌아 보며 주의를 주었다. 어머니 걸음이 어찌나 빨랐던지 나는 줄창 달리다 시피했다. 시내 중심가가 가까와 질수록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많았고, 도청앞은 그야말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서 사람들 사이를 파헤치고 들어갔다.
  거기 모여들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죽은 사람들도 모여 들었다. 앵, 앵, 앰블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와 닿으면 죽은 사람을 담은 관이 내려지곤 했다. 대패질도 못질도 제대로 인 된 관은 죽은 사람의 발이며 팔목이 밖으로 삐져 나와 있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으스러지르록 움켜 쥔 채. 그 많은 관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 일일이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사이에도 앰블런스는 앵앵 소리를 지르며 왔다가는 가고, 뒤 이어 또 다른 앰블런스가 도착했다 분수대에 설치된 마이크는 한시를 쉬지 않고 왕왕거렸고 박수와 함성이 줄을 이었다. 죽음과 통곡과 환호와 박수와 구호, 그리고 군중들의 열창이 뒤얽혀 모든 것을 압도했다. 놀란 눈으로 시원스레 뿜어대는 물줄기를 바라보았던 분수대며, 제왕처럼 위엄을 부리고 서 있던 도청이며, 강폭처럼 넓게 뻗은 금남로며, 부신 눈으로 올려다 보아야 했던 빌딩들이며‥‥그 모든 것들을 압도하고 남아돌았으므로 이제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나로서는 그 때까지 보고 들은 무엇으로도 그것을 비유한 수가 없었다. 우군의 승리로 전쟁을 끝낸 프랑스의 어느 레지스탕스 마을을 연상하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관이 열리고 죽은 사람의 신원이 밝혀지면 도청 정문기둥에 올라선 젊은이가 육성으로 그것을 외쳐댔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부릅뜬 눈, 질끈 동여땐 머리띠, 터질듯 부풀어오른 울대, 창자를 쏟아내서라도 알려야 하겠다는 듯, 죽은 사람의 신원이나 인상착의를 외쳐대던 모습은 다름아닌 사천왕 한가지였다. 제석천(帝驛流)을 지킨다는 저 호세사천왕(謹世四天壬) 말이다. 나는 몸을 오싹 떨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내 이마엔 보송보송 땀이 배어 있었고 등줄기가 척척 했었다. 태극기에 싸여 통곡하는 가족들이 땅을 치며 따르는 가운데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관은 그래도 행복했다. 가족을 만나지 못한 관은 그대로 땅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 관들 속에서 어느 하나가 불쑥 열리면서 '창석아!' 피투성이가 된 형이 내 팔을 붙들 것 같아 몸이 더욱 으시시했다.
  햇살이 사라지면서 기온이 떨어졌다. '불쌍한 새끼,제대로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하고 키운 불쌍한 내 새끼'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그 말만 되풀이 해서 중얼거렸다. 도대체 형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없다면 형이라고 당구장 같은데 쳐 박혀 있을 리가 없을 것이었다. 나는 대학교 앞에 있는 당구장에 가면 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깡그리 버렸다. '불쌍한 새끼, 제대로 입히지도 맥이지도….'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발목에 감겨 몇 번이나 발을 헛딛을 뻔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쓰러지듯 방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간 밤에 열이 났고, 아침이 되었으나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물만 마셨다. 낮 동안 어머니와 누나는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밖으로만 나돌았다. 그렇다고 형에 대한 소식을 쥐고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오빠는 아무래도 광주에 없나 봐요."
  "광주에 없으면‥‥ 하늘로 솟았단 달이냐 땅으로 꺼졌단 말이냐?"
  "목포 고모네 집이나 승주 외삼촌 집에 가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지요."
  "에미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서 이리 애가 타고 갈 데 못갈 데 쑤시고 다니는 디, 저는 엉뚱하게 고모네집이나 외삼촌한테 가서 태평하게 앉아 있단 말이여?"
  "그게 아니에요. 지금 계엄군이 광주로 들어오는 길을 사방에서 막고 있으니까 오고 싶어도 을 수가 없잖아요. 내가 목포하고 승주를 갔다올가 봐요."
  "군인들이 사방을 지키고 있다며?"
  "그러게 갈 수 있으면 가고., 갈 수 없으면 돌아오면 될 게 아니에요."
  어머니와 누나가 나누는 이야기가 파리한 형광등 불빛을 받아 안개에 가린 듯 떴다 잠겼다 했다.
  우리는 며칠째 형을 찾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 영영 형이 우리 곁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 그것은 절망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우리 집에서 형은 얼마나 큰 위안이며 희망인가. 형이 다시 돌아오기 못할지 모른다는 건은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었다. 이제 도청 앞 분수대에서 관 밖으로 내밀고 있던 죽은 사람들의 손목과 팔목과 피. 생각하기 조차 싫엇다. 나는 그만 이불 속에서 으시시 몸을 떨었다. 내게 혼곤한 잠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가끔씩 잠이 깼다. 그 때마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누나와 어머니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렸다. 어느 때는 한숨 소리가 들렸고, 언젠가는 누나의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렸었다.  눈을 뜨니 한낮이었다.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씻은 듯 열이 사라지고 정신은 잘 닦아 놓은 유리 그릇처럼 맑았다. 머리맡에 밥상이 놓여 있엇다.밥상을 덮어 놓은 신문지를 벗겼다. 계란 후라이가 눈에 띄엇다.
  "창석이 일어났냐?"
  계란에 손을 뻗치는데 부엌에서 어머니가 기척을 보내왔다. 나는 무엇에 놀란 것처럼 계란을 얼른 한입에 집어 놓고,
  "예."
  꿀먹은 소리로 얼버무렸다.
  "많이 걸어서 몸치가 났었는갑다. 밥먹고 그대로 덮어둬라. 나 좀 나갔다 올라니께."
  어머니 발소리가 창 앞을 지나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꼼짝 말고 집에 있거라. 밖으로 나돌았다가는 다리토막을 작신 어쩌고 하는 소라가 뒤따르지 않는게 오히려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다. 귀가 멍멍하도록 사위는 조용했다.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도 함성인지 노래인지 뒤섞여 웅웅거리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풍랑에 뒤집혀 바다및 깊숙이 가라앉은 배처럼 고요했으나 마음은 어둑신한 납빛이었다.
  톡 톡 톡-. 창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빗방울이었다. 방문을 열어 보았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마루에 떨어졌다. 소나기였다. 앞집 지붕을 넘어 들어오는 구름이 낮고 두꺼웠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야 어머니는 젖은 걸레가 되어 돌아왔다.
  "무슨 놈에 비가 이렇게 어귀차게 쏟아지는지….암만해도 극구 말릴 것인디 내가 잘못 했는갑다. "
  어머니가 혼잣말로 뇌까렸다.
  오빠는 아무래도 광주에 없나 봐요. 광주에 없으면…. 하늘로 솟았단 말이나 땅으로 꺼졌단 말이냐? 목포 고모네 집이나 승주 외삼촌 집에 가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지요. 어머니와 누나가 간밤에 나누던 말이 앵 하고 귀속을 후볐다.
  "엄마, 누나는 어디 갔어요?"
  "가기는 어디를 가겄냐. 늬 형을 찾아 나설란다고 하길래 알아서 하라고 그랬제. 찾든 못 찾든 어둡기 전에 돌아오기나 해야 할 텐디."
  누나가 형을 찾아 떠났다는 어머니의 대답은 또 하나의 근심을 한자락 깔고 있었다. 목포건 승주건 누나는 무사히 광주를 빠져 나가기나 했을까. 어둠이 도둑고양이인 양 발소리도 없이 마당을 넘어오고 있었다.
  밤 늦도록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들려온 것은 불길한 소식 뿐이었다. 화순쪽에서, 담양쪽에서, 남평쪽에서, 사람들을 가득 채우고 가던 차들이 총격을 받아 숱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것이었다. 암만해도 극구 말릴 것인디 내가 잘못 했는갑다. 어머니는 완전히 넋나간 사람이 되어 중얼거리곤 했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나갔다가는 들어오고 들어왔다가는 나가는 일만 반복했다. 꼼짝 말고 집에 있어라 잉. 밖으로 나돌았다가는 다리토막을 작신 분질러 버릴테니께 하던 소리 따위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장차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형도 누나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다시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해 들어온다는 말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5월 하순인데도 여자들은 꼭 한겨울처럼 두 팔을 마주끼어 옹성거린 자세였고, 남자들은 주머니 깊숙이 손을 쑤셔 넣은 채 골목밖 큰길 모퉁이에서 네댓 명씩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골목을 빠져 나와 큰길을 지나서 고가도로까지 가 보았다. 공설운동장 옆 고속도로 진입로 한가운데 탱크가 시가지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탱크 좌우로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언제 탱크가 거기까지 굴러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단 군인하나가 지도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른들이 주고받던 말 그대로였다. 무엇인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이마를 때렸다.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심호흡을 했다. 싱싱한 가로수잎이 천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고기비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나는 오후께로 접어든 하늘을 이고 줄다음질쳐 집으로 돌아왔다. 숨이 턱에 닿았다. 형은 물론, 예의 누나도 돌아와 있지 않았다. 암만해도 극구 말릴 것인디 내가 잘못 했는 갑다. 어머니의 불길한 한숨이 범벅으로 집 안에서 묻어났다. 해가 서편으로 자리를 옮겨 갈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동네 뒤 둔덕에라도 올라가 볼 심산이었다. 심심할 때 거기 올라가는 것은 내게 하나의 버릇이엇다. 멀리 무등산이 하늘에 떠 있는 듯 다가오고, 그 밑에 엎드린 시가지는 장난감 도시가 되어 주곤 했었다. 가까이 아파트 건물 사이로 오락가락하는 사람들도 살아 있는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나는 뒷등에 오르지 못했다. 골목에서 어머니와 마주친 때문이었다. 꾸중이 쏟아진다면 고스란히 감당할 각오로 어머니 앞에 발길을 세웠다.
  "어디 갈라고 나오냐?" 
  "…"
  나는 말없이 고개만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나오는 길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서 있지만 말고 이 에미하고 같이 또 시내 좀 가자. 암만해도 낌새가 보통이 아닌디, 가 볼 데라고는 거기밖에 없다.… 골 백번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제."
  뒷 부분은 혼자 구시렁거리는 소리였다.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왠지 나는 그만 콧날이 시큰했다.
  "경애랑 창규는 아직 소식이 없고?"
  큰길가에서 만난 골목안 사람들이 아는 체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방금 내가 어머니의 물음에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께 경애는 뭇 할라고 가만나뒀오. 제 오빠야 사내니께 어디서 뭇을 하고 있었던 간에 올 때가 되면 올 것인디."
  "그랴, 창규도 창규제마는 경애가지 소식이 없으니께 얼매나 속이 탈까."
  "듣기로는 계엄군이 광주에서 나간 뒤에도 바깥 지역에서는 험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었다는디."
  "아니여, 그것이 아니여. 막말로 창규야 대학생인께 데모라도 하다가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제마는 경애야 뭔죄가 잇간디. 제 오빠 찾으러 간 것이 어디가 잘못이어서 뭔 일이 있고 말고 할랍디여, 암시랑토 않을 것이니께 너무 걱정 말드라고."
  위로의 뜻이었지만,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도리어 고통이었을 터다. 어머니는 내 손을 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우리는 아까 내가 탱크를 보았던 고속도로 진입로를 피해 공설운동장 반대편 하천길을 걸어서 시내 중심가로 향했었다. 거리는 그 전보다 한산했다. 넘어지고 불탄 그대로 너부러져 있던 자동차며 깨진 유리조각과 보도블럭 따위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어디선가 자동차에 달고 달리는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우리는 죄인처럼 말이 없었다.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도청 앞에 그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대회는 진작부터 열렸던 모양이었다. 목이 쉬어들 있었고 땀냄새가 가득했다. 관이 놓였던 자리에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사람들을 파헤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붙들고 물었다.
  "창규라고, 지금 대학교 2학년인디 혹시 어디서 본적이 없고?… 그러면, 경애라고… 키는 이만하고 밤색 무늬가 있는 원피스를 입었는디, 그런 큰 애기이라우?"
  말하자면, 죽었거나 다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이 끼어 있지 않더냐는 뜻이었으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더러 상무관이나 병원에 가서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대답에는 어머니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거기도 가 봤지라우. 날마다 댕겼어라우. "
  실망에 휩싸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처량했다.아무렇게나 풀어진 머리며 질질 끄는 치마가 발에 밟혀 넘어질 듯 하다가 일어설 때는 물에 ㅃ바져 허우적이는 사람을 방불케 했다. 뒤죽박죽으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어머니는 누가 보아도 실성한 것으로 여기기에 딱 알맞았다. 퀭하게 들어간 눈빛만 유독 빛났다.
  창규라고, 지금 대학교 2학년인디 혹시 어디서 본 적이 없고?… 그러면 경애라고… 키는 이만하고 밤색 무느기 있는 원피스를 입었는디, 그런 큰 애기이라우? 물었던 사람을 다시 만나도 또 물었다. 목청을 돋우고 있는 연사를 졸라 마이크를 통해 불러 보았는가 하면, 도청 안에까지 들어가 돌아다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경애야! 창규야!"
  종당에 어미는 형과 누나를 소리쳐 불러댔다. 그리고, 그 허망한 외침을 사람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그쳤다.
  어머니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시 형을 만날 수 없었고, 누나와 관련하여 짐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떤 꼬투리도 얻지 못했다. 얻어 쥔 것은 오늘 밤 안으로 계엄군이 시내에 들어올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오직 형과 누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는 어딘가에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나는 아침나절에 보았던 탱크를 생각했다. 머리를 시가지쪽으로 향한 채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갈아 뭉개며 굴러 갈 것 같았던 그 쇳덩이를.
  마음을 단단히 도사리고 왔었으나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추릴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단단히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극구 말릴 것을…. 하나부터 열가지 모두가 이 에미죄다."
  제 정신으로 돌아온 듯, 어머니가 토해낸 더운 김이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빌딩들이 금방 어두워오는 하늘을 배경으로 괴물처럼 떠올랐다.
  "돌아 가자."
  어머니가 말했다
  그때였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우리들의 맞은편 쪽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커다란 해일처럼 금새 물결쳐와 우리를 삼켜버렸다.…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누구에 의해 노래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도 분명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의 지휘에 의해 불려진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발성이 그렇게 커다란 공감으로 번지면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란 사실이다. 아무튼 노래라는 것이, 그것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르던 노래가 우리들의 가슴 한 복판을 흔들 수 잇다는 것은 일찍이 체험하지 못했던 소중한 것이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그 때 부르게 될 어떤 노래가, 또 그와 같이 눈물을 솟구치게 할지 모르겠다.
  나는 눈 가장자리에 힘을 주고 입을 앙당문 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침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군중들 속에 휩싸여 들어갔다.
  형에 대한 소식을 안 것은 그 뒤 이삼 일쯤 후였다. 그 동안 연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서 형은 돌아왔다. 하지만, 형을 찾아 나섰던 누나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누나의 시간은 스무 살 고은 나이 그대로 정지해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꼭 그 때의 누나 나이가 되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해결의 마술사일 수는 없다. 우리는 여태 누나를 만나게 될 것이란 소망과 신념을 버린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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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교 : 1939년생 조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81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단편소설' 對角線(대각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 소설집 '아살박'. 소설 '결승' '목소리 사냥' '미늘' '산꿩은 알을 품고'등 다수.